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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158화 (158/316)

158화

원래대로면 이번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 출전할 예정이었지만, 5일 휴식이 발표되면서 잉여인간이 됐다.

“Suck! 이번엔 트라웃 그 새끼 아주 반쯤 죽여버려!”

“그래, 너한테 홈런을 치고, 기고만장하던데, 다시 주제를 알게 해줘야지?

“대가리에 하나 꽂는 건 어때? 그럼 정신이 번쩍들 걸?”

그 사실도 모른 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내 경기를 따라온 레이더스는 내가 트라웃을 죽이길 바랐지만, 곧 진실을 가르쳐 주니.

“저 이번 시리즈 안 나오는데요?”

“응? 아니 그건 무슨 개소리야! 왜 안 나와! 원래대로면 3차전에 나오잖아!”

“뭐, 그렇게 됐습니다. 저 없어도 경기 재밌게 보십쇼.”

“X까! Suck 니가 안 나오는데 어떻게 재밌어!”

“이건 사기야! 이런 건 미리 말해줘야지!”

“에이 시부랄 괜히 애너하임까지 왔네··· 이참에 디즈니랜드라도 갈까··· 한번도 못 가봤는데.”

아주 오열하더라.

다 큰 어른들이 멘탈붕괴한 표정으로 절규하는 모습을 보니까, 왠지 좀 기분이 묘했다.

이 사람들, 날 진짜 사랑하긴 하나 봐. 겨우 내가 안 나온다는 것 하나만으로 저런 반응이라니.

뭐, 그래도 내 잘못은 아니니까. 프런트에 항의하세요, 프런트에.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휴식을 보장받아서 다행이네요.”

마찬가지로, 이번에 등판을 대비해서, 원정을 따라왔던 대니얼에게도 앞으로 5일은 무조건 확정적으로 휴식이란 말을 전해주니, 그는 절망에 빠진 레이더스와는 달리, 오히려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스콧 에머슨도 그렇지만, 대니얼도 평소 내가 과하게 혹사당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잖아?

피지컬 트레이너다 보니, 내 피로와 신체의 내구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야.

그런 그에게 5일 휴식이라는 소식은 꽤나 반갑게 여겨지겠지.

“그런데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조금 수정해야겠군요.”

“네, 마냥 하루 더 쉬는 게 아니니까요. 지금 프로그램은 4일 휴식에 맞춰졌죠?”

다만 휴식 자체는 좋지만, 약간은 위험할 수도 있다. 마냥 쉰다고 해서, 컨디션이 완벽해지는 건 아니거든. 적절하게 준비를 해야지.

“예, 그러니 기존의 루틴을 유지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감각의 영역이다.

난 이미 기존의 준비과정과 루틴에 적응했고, 트레이닝도 그렇게 맞춰져 있다.

거기서 하루를 더 쉰다고 해봤자, 오히려 흐름이 끊겨서, 잘 만든 사이클이 망가지는 거지.

그러면 더 쉬어놓고도 도리어 이전보다 컨디션과 경기력이 떨어질 수도 있고.

전반기에 잘하다가, 후반기부터 갑자기 폭망 하는 선수들도 같은 맥락이다.

체력적인 문제도 있지만, 올스타 브레이크 동안 쉬면서 흐름이 끊기는 영향도 적지 않거든.

“다음 시리즈 첫 경기 등판인데. 그때까지 다시 감각 잘 조절해야겠네요.”

“그게 제 일이죠. 더 빡빡해진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여유가 생긴 건데. 문제가 생기게 할 수야 없죠. 휴식일이 끼어있을 때를 대비해서 만든 프로그램이 있으니, 큰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대니얼이 있으니까.

나 혼자서 새로운 루틴을 만드는 것과 전문적인 피지컬 트레이너가 옆에서 세세하게 도와주는 건 좀 다르지.

그리고 최소한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그는 굉장히 유능한 사람이니, 금방 새로운 로테이션에 맞는 루틴을 짜줄 게 분명하고.

‘만약 사이클을 잘 돌리기만 한다면··· 효과야 끝내주겠지.’

고작 하루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4일을 쉬나, 5일을 쉬나, 거기서 거기 같잖아?

하지만 투수라면, 최소한 야구선수라면 알 거다. 그 하루를 더 쉰다는 게, 경기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일단 공이 다르지, 공이. 구위 자체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

“잘만 조절하면, 남은 경기 죄다 완투도 가능하겠네요.”

대충 계산했을 때, 풀시즌을 꽉꽉 채운다고 치면, 남은 경기는 다섯 정도. 그 다섯 경기를 죄다 완투하는 것도 가능할지도?

앞으로 남은 등판 때마다 기존과 충전량이 다를 테니까. 적당히 평범한 컨디션만 유지해도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진짜 그러겠다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그 정도의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결국 하루를 더 쉬는 효과가 없잖습니까. 어차피 어깨가 갈리는 건 매한가지인데.”

그러니까, 그렇게 정색하지 마요. 누가 보면 내가 엄청 나쁜 말이라도 한 줄 알겠네.

대니얼은 내 말에 그 어느 때보다도 싸늘한 표정을 했다. 내가 뭐, N-word라도 뱉은 것도 아니고. 너무하시네.

그냥 조크 조크, 저스트 조크.

“Suck! 너 이제 5일 쉰다며? 부럽네. 나는 매일 나가는데. 이래서 투수가 좋아. 그런데 네 트레이너 분은 표정이 왜··· 혹시 싸우기라도 했어?”

“아니, 아무것도. 대니얼, 일단 트레이닝부터 합시다. 너무 그러지 마시고.”

“예···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냥 그럴 수 있을 만큼 효과가 크다, 이걸 표현한 거지.

사람이 농담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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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슬레틱스, 에인절스에 아쉬운 1점차 석패! 스윕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해···>

<에인절스, 8:2의 압승! 위닝 시리즈 확정! 포스트시즌을 위한 질주 시작?>

3연전 중 1,2차전이 패배로 끝나며, 지난 시리즈의 스윕이 무색하게도 루징 시리즈가 되자, 애슬레틱스 팬들은 짙은 아쉬움을 느꼈다.

이대로 기세를 이어가, 연승을 달렸다면, 와일드카드 순위 경쟁에서 조금 더 높이 치고 올라갈 수 있었으니까.

[#A’s]

[3차전은 Go지? 그래도 스윕은 안 당하겠네.]

└에이스의 역할이 이래서 중요한 거야. 연패를 중간에서 끊어줄 수 있으니까.

└솔직히 Suck이 없었으면, 이번 시즌도 좀 힘들긴 했겠지.

그나마 그들이 안심할 수 있었던 건, 3차전의 선발투수가 고유석이라는 것이었다.

선발 로테이션 상 그의 출전이 확실했기에, 최소한 스윕은 면할 수 있을 테니까.

새삼 에이스의 중요성을 느끼며, 패배의 아쉬움 대신, 지난 경기에서 ‘매덕스’를 해낸 고유석이 이번엔 어떤 피칭을 보여줄지 기대한 팬들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기대는 깔끔하게 박살났다.

[#A’s]

[어? 뭐야? Suck이 라인업에 없는데? 이거 오류난 거 아니야? 오늘 등판이잖아?]

└그러게,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뭐야, X발 내 비싼 돈 받아 처먹으면서, 이런 것도 실수하냐? X같아서 못살겠네.

3차전, 선발 라인업에는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고유석의 이름이 없었고, Go You-Suck. 그 이름이 박혀있었어야 할 선발투수 자리에는 제시 한, 롱릴리프 투수가 대신 이름을 올렸다.

그에 팬들은 그저 중계방송 오류 정도로 여겼지만, 실제 마운드에 올라온 선수 역시 표기된 것과 동일했다.

[#A’s]

[뭐야 X발! Suck 어딨어! 내가 직관 못 갔다고 장난치는 거야 지금! 빨리 Suck 내보내 X새끼들아!]

└혹시 부상 아니야? 그게 아니면 Suck이 로테이션 거를 이유가 없잖아?

└아··· X발, 그러면 진짜 X되는데··· 제발 부상만 아니어라···

└DL 안 올라간 거 보면, 큰 부상은 아닌가 보네. 손톱이 부러졌다거나 한 건가?

그렇게 충격과 공포가 이어졌다.

영원토록 굳건할 것 같았던 슈퍼 에이스가 어쩌면 드디어, 혹은 이제야 부상을 당했을 지도 몰랐으니까.

사실 부상이 와도 진작 왔어야 했을 만큼, 엄청난 이닝을 소화하고 있었기에. 더욱더 그런 불안감이 크기도 했다.

구단의 이렇다 할 발표가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저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당연하게도 경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한 타이밍이라고는 하지만.

고유석의 현재 상황만큼 중요하진 않았다. 애초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라는 팀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다.

그가 곧 팀의 알파이자 오메가였으니까.

<애슬레틱스, 에인절스에 스윕패! Go는 어디에?>

<덕아웃에서 얼굴을 비춘 Go의 심각한 표정, 결국 우려했던 부상이?>

그런 팬들과 마찬가지로 언론 역시 혼란에 휩싸였다.

이번 시즌 리그의 흥행을 담당한 선수이자. 고대의 데드볼 시대에나 볼 법한 전설을 써내려가는 투수.

그런 투수가 어쩌면 부상으로 꺾일지도 모른다는 소식은 당연하게도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마지막 3차전 역시 패배로 끝나며, 애슬레틱스가 스윕패를 당하는 것으로, 지난 시리즈의 이득을 모두 망쳤지만,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좋을 만큼의 걱정이 흘러나왔고.

온갖 종류의 추측이 난무했을 때, 그제야 구단이 입을 열었다.

<에이스의 5일 휴식! 포스트시즌을 포기한 애슬레틱스?>

<애슬레틱스의 5+1선발 로테이션, 도박은 성공할까?>

[#A’s]

[앞으로 쭉 5일 휴식이라는데? 다행히 부상은 아니었나 보네.]

└뭐? 왜? 지금 중요한 시기인데, 빡세게 달려야지!

└사실 좀 쉬게는 해줘야지. 첫 데뷔시즌인데 지금 이닝이 말이 되냐···

└5+1은 뭐야? 6선발도 아니고.

└선발 자체는 다섯인데, 5일 휴식 체재로 가겠다는 거네. 마지막 경기는 오늘처럼 롱릴리프랑 불펜으로 막고.

└우리 불펜이 그만큼 남아도나?

└이제부터 확장로스터니까. 투수야 마이너에서 끌어오면 되지. 선발들 콜업 해서 롱릴리프로 써도 되고.

5일 휴식 체재가 공식적으로 발표되면서, 눈치가 빠른 팬들은 구단의 생각을 금방 알아차렸다.

애초에 지금 애슬레틱스의 전력으로는 6선발 로테이션은 불가능했으니까. 마냥 쏟아붓기엔 불펜 역시 안정적이지 않고.

그렇다면 결국 남는 건 확장로스터를 통해 콜업된 선수들 뿐인데. 결국 신인 선수들이니, 어쩔 수 없이 문제점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5+1이라는 기괴한 방식으로 임시적인 6선발 로테이션을 돌리겠다는 것은 곧.

[#A’s]

[포스트시즌 포기했네.]

└그게 왜 그렇게 돼?

└간단하잖아? 선발투수를 아끼는 대신, 한 경기씩 버리겠다는 거야. 땜빵으로 대충 막으면서.

└아···

└굳이 그래야 하나? 포스트시즌 가능성은 아직 있잖아? 제법 높고.

└일단 나가기만 하면, 단기전이니까 Suck이 알아서 해줄 텐데, 좀 아쉽네.

대다수의 팬은 아쉬움을 느꼈다. 한동안 바닥에 처박히더니. 드디어 일어나, 다시 날아오르는 줄 알았건만, 그것을 일찌감치 포기해버린 것이니까.

그에 프런트에 대한 불만을 품은 이들도 제법 많았으나. 한편으로는 기대감을 품은 이들도 있었다.

[#A’s]

[막 굴려도 X나게 잘하는데. 만약 하루 더 쉬기까지 하면···]

└혹시 몰라, 성적이 더 좋아질지도. 더 좋아질 게 있나 싶긴 하지만.

└매 경기마다 삼진 15개씩 잡는 거 아니야?

└대충 계산해보니까, 앞으로 한, 다섯 경기쯤 더 나올 것 같은데. 푹 쉬면서 던지다 보면, 진짜 놀란 라이언 기록 잡을 지도?

└그러니까, 앞으로 나오는 Suck은 언제나 풀컨디션이라는 거 아니야? 타자 입장에서 X나 무서울 거 같은데?

확실하게 휴식이 보장된 고유석. 이미 기절해버릴 만큼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선수지만. 어쩌면 거기서 조금 더 오버클락이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그들을 흥분시켰으니까.

[#Mariners]

[Go 등판 거른 것 때문에 우리 시리즈에 등판하네. X발 대체 어째서!]

└그래, 걔는 좀 쉬어야 한다는 건 나도 동의해. 동의하는데, 왜 폭탄이 우리한테 온 거야···

└모르지, 오히려 너무 쉬어서 맛이 가버릴지도?

└그보다는 풀충전되서 우릴 조질 가능성이 더 높긴 하지.

물론 그걸 직접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선 굉장히 절망적이게 느껴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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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더 쉬긴 했는데. 뭔가 어메이징한 변화는 없네.

‘원정원정이라서 그런가?’

그도 그럴 것이, 비행기 타고 애너하임 찍은 뒤에 통보받았으니, 아무리 대니얼이라고 해도 제대로 준비는 못했다.

그저 최대한 등판을 위해 감각을 가다듬고, 컨디션을 조절했을 뿐.

거기다 애너하임 찍고 호텔 방에서 지내다가, 다시 시애틀, 이 먼 곳까지 왔으니. 하루 더 쉬었다고 해서 체력이 어메이징하게 좋을 수가 없기도 하고.

‘인간적으로 서부 중부 동부가 아니라, 북부지구도 만들어야 돼.’

애너하임과 시애틀은 약 1000마일 정도 거리차가 존재한다. 거의 미국 서부의 남쪽 끝과 북쪽 끝 수준이거든. 이걸 같은 서부지구로 묶어버렸으니···

다른 팀들도 그렇지만, 애스트로스랑 레인저스는 시애틀 원정이 잡히면 진짜 골 때리겠어.

‘그래도 평소보다 좀 낫기는 하네. 딱히 피곤한 곳도 없고.’

뭐, 엄청난 변화가 없다 뿐이지, 평소에 원정이 겹쳤을 때와 비교하면, 훨씬 컨디션이 좋기는 했다.

원정 연달아 있으면 솔직히 X같거든. 몸도 축 늘어지고. 내가 홈 원정 안 가리고 잘하는 편이긴 하지만. 원정이 좀 더 피곤한 건 사실이지.

그런데 오늘은 그런 게 없네. 바로 비행기 타고 왔는데도, 생각보다 멀쩡해. 확실히 쉬는 게 좋긴 좋아.

“Suck! 딱 맞춰서 일어났네. 안 그래도 너 기다리고 있었는데.”

호텔방을 나와, 식당으로 내려가니, 브루스가 맞이해줬다.

느긋하게 자고 일어났는데, 그걸 기다리고 있네.

“뭣하러 기다려? 빨리 먹고 가서 몸 풀 생각부터 해야지. 너 슬슬 성적 아슬아슬한 거 알지? 빠따질 좀 잘해라.”

“에이, 타격 좀 못해도 난 괜찮지. 너랑 배터리인데. 니 노히터랑 퍼펙트, 둘 다 포수가 누구였어? 나지?”

“···어? 그으···렇지?”

가만 생각해보니, 밖에서 보면 명콤비로 보일 수도? 노히터와 퍼펙트를 함께한 동지니까.

어쩌면 자세한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얘를 엄청난 명포수로 볼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왠지 좀 기분이 더럽네. 버스터 포지나 야디어 몰리나도 아니고. 브루스 니가 내 파트너라니.”

“···말이 심하네. 내가 그 정도 포수가 아니라는 건 나도 인정하지만··· 좀 섭섭하다?”

“농담이야, 나도 그런 삐까뻔쩍한 양반들보단 네가 나아.”

“그치?”

응, 단순해서 말 잘 들으니까.

어우, 우리 팀에 몰리나나 포지가 있었어 봐. 지금처럼 내 마음대로 못 하지.

그런 대단한 사람들한테 어떻게 개겨? 내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평소처럼 무난~하게만 가자.”

“지난 경기 같았으면 좋겠네. 포구할 일 없어서 좋았는데. 계속 체크하느라 머리는 조금 아팠지만.”

브루스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은 것 같았다. 저번 경기는 솔직히 좀 쉽긴 했지.

포구하는 게 생각보다 피로를 많이 받는 일인데, 완봉을 해놓고도 정작 공은 몇 개 안 받았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어림도 없다.

쉰 만큼 뽕을 뽑아야지.

“오늘은 컨디션 보고 좋으면, 확실하게 삼진 잡을 거야. 맞춰 잡으니까 편하긴 한데. 영 안 맞더라고.”

“씁··· 그럼 다시 빡세겠네.”

엄살은, 그럭저럭 잘하는 녀석이. 그렇게 식사를 마친 뒤, 곧바로 훈련을 위해 경기장으로 향했다.

조금 더 쉬어서 그런가, 왠지 몸이 나른한데. 이럴 때일수록 빡세게 조져야지.

“딱 맞춰서 오셨네요.”

“새로운 루틴일수록 더욱더 빡빡하게 지켜야죠. 그래야 잘 적응되니까.”

그래서 잽싸게 클럽하우스로 들어가니, 먼저 온 건지, 대니얼이 미리 기다렸다.

보통은 개인 트레이너라고 해도, 선수랑 같이 오는 게 아니면, 잘 출입 안 시켜주지만.

대니얼은 사실상 애슬레틱스 직원 취급받고 있다. 죄다 프리패스지. 그만큼 구단 내에서 내 입지가 크다는 뜻이기도 하고.

“좋은 자세입니다. 이래서 제가 Go를 좋아하죠.”

가볍게 너스레를 떠니까, 대니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남은 경기 죄다 완봉하겠다고 하니까, 사납게 노려볼 때는 언제고.

“오늘은 날씨가 조금 서늘한 편이니, 조금 더 몸을 덥히도록 하죠. 유니폼 갈아입고, 바로 나오세요.”

그 뒤는 뭐, 워밍업이지.

더 쉬긴 했지만, 준비를 게을리 한 건 아니다. 이미 적당한 수준으로 컨디션을 유지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몸은 금방 덥혀졌다. 좀 서늘한 것 같더니, 워밍업 하니까, 오히려 딱 좋네.

“느낌은 어떻습니까? 어딘가 모자란다거나. 부족하다거나. 아니면 조금 이상하다거나 하진 않아요?”

“그런 건 딱히 없어요. 그냥저냥 평소 정도?”

그렇게 대충 몸은 올라왔는데, 중요한 건 이번에도 감각이다. 늘 이게 문제지.

하루 더 쉰 것 때문에 혹시라도 피칭 감각이 떨어졌다면, 그거보다 낭패가 없지.

대니얼 역시 그것만큼은 조금 걱정이 되는 건지 수시로 물으며 체크했고, 스콧 에머슨이나 감독님 역시 조심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지켜봤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 하나 때문에 선발 로테이션 자체를 뜯어고친 건데. 그 효과가 없다면, 얼마나 개뻘짓이야.

“음··· 일단은 괜찮은 것 같은데··· 시간 됐네요. 확실한 건 불펜에서 체크해보죠.”

“뭐, 느낌은 좋으니까. 괜찮겠죠.”

지난번처럼 변화구 감각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긴장감을 품고 입장한 불펜.

평소와 다르게, 투수코치만이 아니라, 감독님 역시 따라오셨다.

다들 나한테 집중하는 것 같아서 왠지 조금 흥분, 아니아니, 부담스럽네.

‘쉬었으면, 쉰 만큼 값을 해야지? 멋지게 좀 들어가라.’

불펜피칭을 하기 전, 내 왼쪽이, 왼손에게 그렇게 부탁하며, 공을 쥐었다.

“자, 멋지게 하나 넣어봐! 매리너스 자식들, 아주 놀라서 자빠지도록.”

준비를 마쳤다는 걸 깨달은 듯 불펜 포수 역시 가볍게 글러브를 때리며, 공을 유도해다.

그 신호를 따라, 포수 글러브 안쪽에 시선을 둔 채, 차분하게 왼팔을 휘둘렀다. 가볍게 던진 오늘의 첫 번째 공.

왼손을 놓는 순간 제법 끈적한 여운이 손에 남았고.

“와우.”

공은 글러브를 뚫을 듯 직선으로 뻗으며 박혔다. 가죽을 터트리는 듯한 소리가 귓가를 사납게 울리면서.

“몇 퍼센트야?”

“한 40%정도?”

“···엄청나네. 특별히 컨디션이 좋다거나? 퍼펙트나 노히터 할 때처럼.”

“그냥저냥 평범해요. 딱 무난한 정도?”

“그럼··· 앞으로는 이게 평균이라는 거네.”

하루의 휴식.

그 효과는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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