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154화 (154/316)

154화

8월이 거의 저물어가며, 시즌이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을 때.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에서는 상당히 난잡한 경쟁이 이어졌다.

휴스턴 애스트로스라는 절대적인 1강이 존재하긴 하나. 그 외의 팀들 역시 제법 성적을 냈으니까.

1위, 애스트로스를 제외한 각 팀의 게임 차가 단 1경기만이 나는 상황 속에서, 텍사스 레인저스는 놀랍게도 가장 아래, 지구 5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최악의 추락! 레인저스는 어떻게 약팀이 되었나?>

<운이 사라진 레인저스의 현실, 존 대니얼스는 책임을 져야만 한다!>

<최연소 단장의 신화가 무너졌다! 노련하지 못했던 방만한 운영의 대가.>

물론 지구 꼴찌 정도야 기록할 수 있다. 아직 시즌이 끝난 것도 아니고, 또한 리빌딩 시기라면, 대단한 거함들도 간혹 바닥을 찍고는 하니까.

문제는 텍사스 레인저스라는 팀이, 절대로 리빌딩을 달리는 팀이 아니라는 것이지만.

<페이롤은 지구 1위, 순위는 5위? 레인저스는 고비용 저효율의 값비싼 고물!>

AL 서부지구에서 압도적인 페이롤 1위, 현시점 메이저리그 전체 3위라는 막대한 페이롤을 자랑하는 레인저스는 누가 봐도 윈나우를 노리는 컨텐더급 팀이어야만 했지만.

정작 나온 성적은 아슬아슬한 차이라고는 해도 지구 꼴찌에 머물러 있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당연하게도 팬들은 이 모든 결과를 만들어낸 존 대니얼스 단장의 사퇴를 촉구했고.

-중요한 시리즈라는 건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부디 애슬레틱스를 잡고···

“예예, 어떻게든 지구와 와일드카드 순위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단장은 감독인 제프 베니스터 그에게 매달렸다. 어떻게든 체면치레라도 하라는 뜻이지.

지구우승이야 이미 물 건너갔고, 휴스턴이 올해 텍사스의 맹주가 되는 것이 확정되기는 했지만. 포스트시즌 진출 자체는 아직 가능했으니까.

그런 결과라도 내서, 조금이라도 팬들의 분노를 진정시키려는 것이리라.

“또 단장입니까?”

“말고 누가 있겠어?”

사실 8월에 들어온 이후 내내 이 모양이었다. 초조해진 단장은 계속해서 그에게 성적을 재촉했고, 제프 배니스터 그는 그런 어린아이 칭얼거림을 들어주는 게 일이었지.

사실 감독의 권한이 그리 크지 못한 메이저리그에서, 그가 뭘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순위를 올리기는 올려야 하는데···”

물론 순위를 올려야 한다는 것은 제프 베니스터 역시 동감했다.

원래대로라면, 이번 시즌은 과감하게 리빌딩을 해야 했지만, 그건 이미 늦었으니. 조금이라도 성과를 내야겠지.

단장은 물론 그를 향한 팬들의 분노에 함께 쓸려갈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이번에 최소한 위닝 시리즈라도 가져가야, 포스트시즌이 안정적일 텐데···’

이번 시리즈 상대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레인저스의 추락이 참담하다면. 그들의 반등은 찬란했다.

지난 2년 동안 서부지구에서 절대적인 호구였던 팀이 별다른 영입조차 없이 쭉 날아올랐으니까.

그것에 몇몇 팬들은 울분을 터트리기도 했고.

[#Rangers]

[대체 우리랑 오클랜드 그 거지 새끼들이랑 차이가 뭐냐? 뭐가 문제인 거냐고!]

└1억을 더 쓴 건 우리인데, 정작 성적이 좋아진 건 애슬레틱스라니···

억울하다 못해 어이가 없는 수준이니까. 애슬레틱스와 레인저스의 페이롤은 약 1억 정도 차이가 난다.

레인저스가 전체 3위라면, 애슬레틱스는 밑에서 4위이지.

그런데도 정작 순위는 그들이 꼴찌고 완전히 내려박았던 애슬레틱스는 2위를 지키고 있었다.

물론 게임차는 대단히 아슬아슬하지만, 어쨌든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는 건 확실하겠지.

팬들은 대체 왜 이런 것이냐며 소리쳤지만, 답은 간단했다.

“단장 차이지.”

단장 차이. 이거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순위는 선수단에서 나오고, 선수단은 프런트가 만들며, 프런트의 수장은 단장인데.

“Go 차이이기도 하고.”

오클랜드에 압도적인 고효율과 저비용을 자랑하는 최고의 가성비 선수가 있다는 것 역시 차이를 만들었고 말이다.

이것 역시 단장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선수를 미처 데려오지 못한 것도 단장 책임이겠지.

“한동안 못 봐서 좋았더니···”

상대팀의 예상 엔트리를 보며, 제프 배니스터 감독은 긴 한숨을 뱉었다.

Go You-Suck.

오래간만에 다시 보는 이름이 그의 기분을 완벽하게 망쳤으니까.

아마 팬들을 비롯해, 레인저스의 관계자들 중 저 이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있다면 정체를 감춘 비밀스러운 애슬레틱스 팬이겠지.

시즌 초반, 두 경기를 맞붙은 이후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지만, 크나큰 트라우마로 남은 이름이니까.

‘1점이나 내면 다행이지.’

분명 순위를 올려야 하지만, 저 이름을 본 순간 스윕이라는 글자는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일단 1패는 확정이니까.

왜냐고? 0점대 ERA다. 311개의 삼진을 잡았고. 20승을 올렸지.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는 마치 메이저리그에 강림한 코즈믹 호러였다.

감히 대적할수도, 반항할 수조차 없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미지의 공포지.

더군다나 여기는 그런 괴물의 홈그라운드. 콜리시엄이다. 그나마 이번 시즌 레인저스는 공갈포기는 해도 제법 파워를 보여줬지만, 이곳에선 그마저도 힘들지.

“혹시, Go가 부상당했다는 소식은 없지? 어깨가 뻐근하다거나?”

조심스럽게 수석코치에게 물었지만, 그는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180이닝쯤 던졌으면 좀 쉬기라도 해야지··· 정말 꾸역꾸역 다 나오는구만. 바멜(BoMel)도 어지간히 알뜰하게 써먹고.”

정말 지독스러운 괴물이다.

성적만 봐도 그렇지만, 또 내구성도 튼튼한 건지, 도무지 로테이션을 거르지를 않는다.

루키라는 놈이 180이닝을 던지고도 여전히 멀쩡하다니. 구속은 저조하지만, 어쨌든 강철 어깨를 타고난 거겠지.

“그래도 애스트로스전을 보니, 공격적으로 나섰을 때 제법 흔들리던데. 그쪽으로 가닥을 잡자고.”

그나마 지난 등판에서 애스트로스가 제법 적극적인 타격을 행하니, 약간 흔들렸던 모습에 기대하며,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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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나이스, 볼?”

“왜 끝이 의문형이에요?

“어? 어, 나이스야, 나이스.”

오늘은 조금 미묘했다.

내가 저번에 말했던가?

불펜포수의 립서비스로 그날 컨디션을 알 수 있다고.

과한 칭찬은 컨디션이 안 좋다는 것, 평범하면 무난하다는 것, 없어질수록 좋다는 것이라고 말이야.

원래는 그렇게 나뉘는데. 오늘은 살짝 애매했다. 약간 의문스럽다고 해야 하나?

“음!”

포심을 던지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 좋다는 뜻이지. 뭐라 더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으음··· 나이스.”

하지만 너클 커브나 서클을 던지니까 미묘하게 말끝을 흐리고.

사실 내 컨디션이야 내가 잘 알고, 그의 역할은 다른 사람의 눈, 포수의 시선에서 확인시켜주는 거지.

“변화구가 좀 안 받네요.”

“어, 약간씩 밋밋하네. 혹시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어?”

“아뇨, 멀쩡한데요.”

“그럼 그냥 감이 안 좋나 보네.”

포심과 커터, 그리고 투심 등. 패스트볼들은 평소보다 훨씬 좋았다. 포심은 쭉 잘 뻗고, 커터와 투심은 평소보다 무브먼트가 좋지.

반대로 변화구들은 죄다 평소보다는 조금 밋밋하고. 특히 서클 체인지업의 경우 굳이 V1과 V2로 나눌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역회전이 좀 덜하네.’

특별히 몸이 안좋은 것도 아니고, 컨디션도 그럭저럭 괜찮은데 이렇다는 건. 스콧 에머슨의 말처럼 감각의 문제지.

“오늘 잠을 잘 못 잤나? 아닌데? 딱 맞게 잤던 거 같은데. 루틴도 잘 이행했고.”

“안 좋은 꿈이라도 꿨겠지. 뭐, 이런 날도 있는 법이니까.”

사실 감각이야말로 가장 X같은 영역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거든. 그냥 최대한 루틴을 이행하면서, 조심스럽게 유지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으니까.

이거 엿 됐네. 변화구가 내 전력의 70%인데. 그게 죄다 밋밋해졌으니 말이야.

“오늘은 슬라이더나 너클 커브는 비중 줄이고. 변화구는 웬만하면 오프스피드 위주로 가자.”

“네, 그래도 패스트볼이라도 좋아서 다행이네요.”

“혹시 너무 무리해서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80구까지만 던지고.”

“그건 좀···”

이 양반이 은근슬쩍 투구수를 깎으려고 하시네. 하지만 컨디션이 좋지는 않다는 건 확실하기에, 이번에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80구라, 6이닝 간신히 던지겠네. 아끼면 7이닝도 가능하겠고.

이게 다 휴스턴 때문이다. 걔들이 사인을 훔친 것 때문에 내가 너무 성을 내서 그래. 심신이 상해버린 거지. 징벌한다는 의미에서 8이닝을 던지기도 했고.

아무튼 애스트로스가 나쁜 놈들이다.

‘그나마 금방 알아차려서 다행이지···’

곱씹을수록 빡친단 말이야.

만약에 내가 스스로 쿠세라고 생각했다면, 일이 커졌을 수도 있다.

있지도 않은 투구습관 잡겠다고 투구폼 뜯어고치다가 시간 날려 먹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나마 내가 착해서 8이닝 11탈삼진 정도로 넘어가 준 거지.

‘아무튼 오늘은 좀 빡세겠네. 슬슬 타자들이 너무 몸을 사리던데···’

평소보다 조금 밋밋한 정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쉽지는 않겠어.

최근 타자들은 나를 상대할 때, 꽤나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지. 내 성적을 보고 안 쫄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나마 애스트로스가 공격적으로 나왔지만, 그거야 걔들은 사인 훔쳤으니, 훤히 보여서 그런 거고.

아무튼 잔뜩 몸을 웅크린 타자를 끌어내려면 변화구의 역할이 중요한데, 오늘은 좀 힘들겠어.

‘80구만 딱 던지고 금방 내려가자. 이런 날은 길게 끌어봤자 별로 안 좋아. 후딱 지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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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ck이 그랬다고? 그렇게 화가 많이 났어?”

“그렇다니까? 역시 이래서 직관을 해야 해. 그 티비 쪼가리로 보니까, 현장 분위기를 모르네, 분위기를 몰라.”

사람이 꽉 들어찬 3루 관중석. 언제나 그렇듯 그곳을 점령한 레이더스 사이에서는 지난 경기에 대한 감상이 흘러나왔다.

아직 경기가 시작되기 전이었기에, 행복한 추억을 되새기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막판에는 아주 열이 제대로 받아가지고 타자들을 때려잡는데, 크~ 삼진은 11개밖에 안 되지만, 그때 포스는 최소 20개 이상이었어.”

“그렇게 말해봤자, 데이브 얘는 몰라. 직접 안 봤으니까.”

“그러게 데이브 너도 같이 갈 것이지, 왜 혼자 빠지고 그래.”

“아버지 가게 일 도와드리느라 그랬지···”

하지만 데이브는 그런 대화에 끼지 못했다. 언제나 원정까지 쫓아가기로 유명한 ‘진정한’ 레이더스가 아니라는 이유로.

딱 한 경기 거른 것에 불과하건만, 겨우 그것 때문에 이방인 취급을 받다니. 억울함마저 들었다.

레이더스 형제들의 놀림 속에서 홀로 울적하게 맥주를 홀짝거리던 데이브는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마지막에는 그 알투베인지 뭔지, 땅꼬마 같은 놈이 아주 넋이 나가서-”

“닥쳐! 닥쳐! Suck 나온다!”

“써어어어어어어어억!”

“오늘도 삼진 가자! 오늘은 시작부터 달리자고!”

“그래! 여기 데이브는 너 저번에 삼진 X나게 멋지게 잡는 거 못 봤으니까, 오늘 보여줘!”

주인공이 등장했으니까.

한창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조차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곳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감히 배은망덕하게도 고향을 등지고 떠나기로 결정한 더럽고 추악한 오클랜드 레이더스를 대신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지루하고 샌님 같던 야구의 세계로 인도한 선수가 등장했으니까.

“You Suck!”

“It’s Suck Time!”

평소처럼 평범하게(?) 차려입은 코스튬을 휘날리며 본인을 외치는 목소리에 Suck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사실 웃지는 않은 것 같고, 겉모습을 보며 한숨을 쉰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데이브를 비롯한 그의 형제들에겐 그렇게 보였다.

“오늘 Suck 표정 왜 저래?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다만 평소보다 조금 딱딱하고, 약간 걱정도 느껴지는 얼굴에 데이브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어허, 의심하지 말지어다.”

“이래서 Noob은 안 된다니까. Suck을 못 믿잖아.”

“내가 왜 뉴비야!”

“원래 한 경기 거르면 다시 카운트하는 거 몰라?”

“감히 Suck을 못 믿다니. 아버지 가게 일을 도우면서 레이더스의 물이 빠졌구만.”

다른 이들은 그의 불경스러운 신앙심을 질책하기 바빴다.

“잘 봐! 다시 홈으로 돌아왔겠다, 처음부터 삼진 세 개 박고 시작할 테니까.”

“두 눈 똑바로 뜨고 봐라, 데이브. 지난 경기를 거른 넌 모르겠지만, Suck은 너무 Speedy해서 금방 이닝이 지나가거든.”

눈 깜짝할 사이, 삼진을 잡을 것이라며, 지난 경기에서 못 본 삼진을 오늘 잘 눈에 담아두라고 소리치기도 했고 말이다.

그들의 말처럼 빨리 지나가긴 했다.

“딜리아노 드쉴즈? 쟤 잘하나? 예전에 본 거 같은데, 검색 한번 해봐.”

“어디보자~ OPS? OPS+? wRC+? 이런 건 너드 새끼들이나 보는 거라고 했으니까, 거르고. 타율이··· 2할 7푼이네. 홈런도 적고.”

“그럼 못하는 거네. 원래 타율은 3할 넘어야 잘 치는 거잖아? 그렇지 않나? 난 그렇게 들었는데.”

“그럼 쓰레기네. 순위 보니까 텍사스 새끼들 꼴찌던데, 타자 놈들도 더럽게 못하는구만.”

첫 타자 딜리아노 드쉴즈.

3할도 못 치는 쓰레기(?)는.

“아웃!”

초구 만에 아웃당했다.

졸졸 흘러간 땅볼을 3루수 맷 채프먼이 가볍게 잡아서 1루로 송구했지.

“Choo, 얜 알아. Suck이랑 같은 나라 사람이잖아?”

“그럼 잘하겠네. Suck이랑 같은 나라라면 말이야.”

“몰라, 그런가보지.”

그토록 사랑하는 Suck과 같은 나라라는 이유로 그나마 호의적으로 맞이한 추민수 역시.

“아웃!”

2구만에 내야 팝플라이로 아웃으로 물러났고 말이다.

“어?”

“뭐야, 삼진이나 당해!”

“저쪽 무슨 빨리 죽기 대결이라도 하나?”

“에이, 어차피 죽을 거면 Suck 삼진을 올려줄 것이지. 같은나라 선수인데, 영 눈치가 없네.”

“뭐, 이제 시작이니까. 다음타자 삼진 잡으면 되지. 저번 경기도 초반엔 못 잡다가, 막판에 몰아서 잡았으니까.”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것은 그때부터였다. 분명 그토록 고대했던 삼진은 없었지만···

“아웃!”

정말로 이닝이 더럽게 빠르게 끝나기는 했으니까.

3번타자 엘비스 앤드루스마저 2구만에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면서. 그대로 이닝 종료.

“응?”

“어?”

“뭐야, 벌써 끝이야?”

“1분은··· 넘었냐?”

“···모르겠는데?”

1회 초는 공 다섯 개 만에 끝났다.

문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린 이닝에 레이더스도, 다른 홈팬들도 조금은 몽롱한 눈빛으로 그라운드를 봤다.

너무 빨리 끝나버린 나머지, 상황이 조금 이해가 안 됐으니까.

“잘했어! Suck, 아무튼 잘했어.”

“삼진이 없기는 한데··· 그래도 이것도 화끈··· 한가?”

“빨라서 좋긴 하네.”

“그, 뭐야, 범타가 자주 나온다는 건 타구가 잘 안 뻗는다는 뜻이라고 했으니까. 오늘 Suck 공이 좋나보네.”

“뭐, 삼진이야 차근차근 잡으면 되니까.”

잠시 뒤, 반박자 느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실 그마저도 약간은 미묘했지만 말이다.

레이더스가 생각하는 고유석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삼진이었다. 속 시원하게 삼진 잡는 모습에 반해, 야구로 넘어온 것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삼진이 없는 것이 아쉬우면서도, 또 막상 이닝 자체는 후련하게 금방 끝내버리기는 했기에, 조금은 미묘한 반응이 나왔다.

“그렇지! 점수 팍팍 내라 이거야!”

“처음에만 찔끔찔금 내지 말고, 좀 꾸준하게 쳐라!”

“오늘 Suck 승리 못 챙겨주면 다 뒤질 줄 알아!”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어진 1회 말, 애슬레틱스가 선취점을 올리면서, 콜리시엄에는 다시금 흥분감이 돌았고.

“이번 이닝은 삼진 잡아, 삼진!”

“1회도 잘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삼진이 최고인 거 알지?”

곧이어 2회 초, 마운드에 올라온 고유석을 보며, 이번에야말로 시원하게 삼진을 잡으라며 독촉한 레이더였지만.

“아웃!”

“아웃!”

“아웃!”

“?”

이번 이닝 또한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끝났고, 데이브를 비롯한 레이더스는 이번에도 그토록 바라던 삼진을 보지 못했다.

그나마 이번에는 투구수가 7구로, 이전 이닝보다는 조금 늘긴 했지만. 여전히 더럽게 빨리 끝났다는 것은 변함없었다.

분명 방금 전에 나온 것 같은데,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고유석을 멍하니 바라보며, 레이더스는 생각했다.

뭔가, 뭔가 일어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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