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153화 (153/316)

153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아쉬운 루징 시리즈>

<사실상 날아간 지구우승, 하지만 Go로 인해 포스트시즌의 불씨는 지켰다!>

서부지구 1, 2위 팀들 간의 3연전이, 1위의 위닝 시리즈로 막을 내리면서.

대부분의 언론은 애슬레틱스의 지구우승 도전이 좌절되었고 평가했다.

큰 격차를 조금이나마 따라잡기는커녕, 더 벌어졌으니까.

물론 02년, 머니볼의 절정기처럼 엄청난 연승을 달리며, 마지막 순간 순위 역전을 해낼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때와 비교한다면, 지금 전력은 조금 부실했으니까.

강력하다 평가받는 투수진 역시, 고유석이란 슈퍼 에이스가 있기는 하나, 팀 허드슨-배리 지토-마크 멀더로 이어진 3인방에 비하면 손색이 있고 말이다.

다만 스윕까지 이어지진 않으며, 포스트시즌의 불씨만큼은 지켰기에 그래도 포스트시즌의 가능성은 아직 충분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그렇듯 애슬레틱스라는 팀에게 아쉬운 시리즈 결과와는 별개로, 고유석 개인은 충분히 챙길 것을 챙겼다고 할 수 있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소속 투수 중, 02년, 배리 지토 이후 15년만의 20승의 고지에 올라섰고.

<‘20승 300탈삼진 180이닝’, 사이 영과 MVP를 향한 퍼즐을 완성한 Go!>

그것으로 모든 것이 완벽한 시즌 성적이 완성되었으니까.

[#A’s]

[사실상 Suck은 이미 시즌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지.]

└20승 200탈삼진 180이닝이어도 대단한데. 거기다가 100삼진을 더했네.

└볼 때마다 신기해. 어떻게 하나도 빠짐없이 다 완벽하냐.

└사이 영은 이미 확정이라고 봐야지.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성적이니까.

└사이 영이 문제가 아니라, MVP도 이젠 정말로 확정이야. 애런 저지는 후반기에 맛탱이게 갔고. 알투베한테는 클래스 차이를 보여줬잖아?

세이버메트리션들을 만족시킬 압도적인 삼진과 볼넷. 클래식 스탯 선호자들을 푹 빠지게 만들 승수까지.

사실상 MVP와 사이 영 상의 투표인단이 어떻게 꾸려지든, 무조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성적이었으니까.

언론에서는 이번 경기를, 고유석의 신인왕-사이 영 상-MVP 트리플 크라운을 결정지은 마스터 피스라고 평가했다.

<초반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한 애스트로스, 확실한 득점에 성공했어야···>

이렇듯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던 경기에서, 몇몇 전문가들은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애슬레틱스가 경기 시작부터 2득점을 올리기는 했으나, 분명 초반 1~3회까지의 기세는 휴스턴이 우세했다.

리그 최강, 아니, 역대 최강이라고 불렸던 투수를 몰아붙이며, 대량득점의 기회를 잡기도 했으니까.

허나 휴스턴은 그런 초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한 채, 어느 순간부터 꺾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고.

그건 휴스턴의 막강한 화력과 역대급 투수의 몰락이라는 장면을 기대했던 이들에게 아쉬움을 선사했다.

[#Astros]

[처음은 용감하게 나섰지만, 시간이 갈수록 쫄보가 되네. Go한테 완전히 눌린 거야.]

└3회까지만 해도, 우리가 Suck 그 새끼를 제대로 털겠구나 싶었는데··· 결과는 뭐···

└그러게, 득점을 낼 수 있을 때 확실하게 내야 한다니까? 기회를 못 살리니까 결국 기세에서 밀리잖아.

└경기 막판부터는 타자들이 완전 쫄아 있더라. 맹수 앞에 토끼 새끼처럼. 명색이 1위 팀인데, 이게 맞냐?

└난 알투베가 마지막에 얼어 있는 거 보고 티비 껐어. 그 정도라고? 무슨 공포증도 아니고.

특히 경기 후반, 고유석이 본격적인 ‘사냥’을 시작했을 때, 휴스턴 타자들이 보인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은 아쉬움을 넘어, 실망감마저 느끼게 만들었고 말이다.

이번 시즌 가장 막강한 화력을 자랑했던 팀의 타자답지 않은 모습에, 몇몇 사람들은 타자들이 ‘고유석 공포증’에 걸렸다며 타식하기도 했다.

물론 진짜 진실은 따로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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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시리즈가 끝난 뒤, 오리올스와의 3연전을 마치고 다시 홈으로 돌아가는 길, 별다른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분명 감독이 보고했을 텐데, 프런트도 별말이 없었고, 다른 선수들도 오리올스와의 3연전에만 집중하며, 금방 잊어버렸다. 나도 마찬가지고.

“바뀐 사인 뭔가 좀 더 복잡해진 것 같지 않아?”

“한번 스틸 당했으니까, 더 어렵게 만든 거겠지. 참고 외워.”

“이 나이 먹고 머리 굴리려니까, 힘들어 죽겠네.”

다만 사인은 대대적으로 교체됐다. 이미 한번 읽힌 사인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으니까.

지금은 예비 사인을 쓰고 있는데, 어느 정도 선수들이 적응하고 나면, 새것으로 패턴을 바꾸겠지.

그래서 그런가, 전세기 안은 뜻밖의 스터디 분위기였다. 삼삼오오 모여서 암기하기 바빴으니까.

“그러니까, 이게 커브인가?”

“포심 새끼야. 몇 번을 말하냐. 너 포수는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나도 브루스 옆에 붙어서 집중 과외를 해주고 있고. X같지만 어쩔 수 없다. 얘가 못 외우면 나도 같이 X되니까.

휴스턴 새끼들 때문에 괜히 우리 대가리만 깨지네.

“아, 진짜. 휴스턴 때문에 괜히 고생하네, 그리고 사인 스틸 당했는데, 우린 뭐 항의도 안 하고.”

한참을 나한테 돌대가리라고 불린 브루스는 자신에게 이런 시련을 내린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별다른 욕을 먹지 않는 것에 분노한 것 같았다.

“그럼 뭐, 개판이라도 칠 줄 알았어? 사인 훔치기는 당한 놈이 X신이야. 알잖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거 때문에 루징 시리즈 된 건데··· 거기다 제법 중요한 경기였으니, 항의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앞으로는 우리 무시하지 못하도록.”

“뭐, 어쩌겠어? 프런트가 그렇게 판단한 건데. 징징거리지 말고. 암기나 잘해라. 혹시라도 내 경기에서 사인 버벅거리면··· 니 아래에다가 포심 꽂을 거니까.”

그렇게 말하며 흘끔 아래(?)를 봐주니, 브루스는 곧바로 쩍 벌렸던 두 다리를 살포시 오므렸다.

하얗게 질린 걸 보면, 상상력이 좋네. 하긴, 지금 내 구위를 감안했을 때, 거기(?)에 포심 패스트볼이 박힌다면···

‘보호대를 차고 있어도, 하나 정도는 충분히 깨고 남지. 어쩌면 일타이피가 될 수도 있고.’

참고로 농담 아니다.

상대팀이 내 경기를 망치는 거야 그게 걔들 일이니 충분히 이해하지만. 아군이 나한테 총질한다면, 그 즉시 즉결처형 해야 하거든. 그래야 다시는 안 그럴 테니까.

처신 잘하라고.

니 두 알을 간수하고 싶거든.

“열심히 외우고 있으니까, 그런 무서운 말은 하지 마. Suck 니 포심이 얼마나 좋은지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심장마비 올 것 같잖아.”

단단히 주의를 준 것 같으니, 다행이군. 덩치에 비해 은근히 쫄보라서 한번 겁먹으면 며칠은 가니까. 금방 외우겠어.

“그나저나··· 의외네.”

“응? 뭐가?”

“아니, 그냥. 있어, 그런 게.”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프런트의 반응이 조금 의외였다.

브루스처럼 막 깽판을 쳐달라는 게 아니라, 거의 확신하고 있었거든.

‘진짜 평범한 사인 훔치기였던 건가? 정황상 거의 확실해 보였는데.’

이미 말했다시피, 평범한 방법으로는 사인을 훔칠 수가 없었을 테니까.

아마도 구단에서도 어느 정도는 검토과정을 거쳤을 거다. 조사도 했을 거고.

그런데도 우리 팀에서 별다른 반응이나, 무언가 성명 같은 것도 내지 않는 걸 보면. 그런 과정에서 의심할 만한 거리를 찾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내가 틀린 건가? 어쩌면 그냥 평범한(?) 사인 훔치기였나 보네.

‘휴스턴 이 새끼들, 이런 곳에서도 쓸데없이 능력이 좋네.’

대체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그 상황에서 정정당당(?)하게 사인을 훔치다니.

역시 잘 나가는 팀은 뭐가 달라도 다른 건가? 어쩌면 자기들만의 노하우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지, 사인을 훔친 시점에서 이미 정정당당은 아닌가?’

어쨌든 별다른 반응이 없는 걸로 봐서는, 그냥저냥 넘어갔구만.

좀 민망하네. 솔직히 거의 확신했거든. 벨트란한테 괜히 실망했어.

물론 눈치로 봐선 그 양반이 사인 훔치기에 발을 많이 걸친 건 확실해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전자기기를 동원하지 않았다면야, 어디까지나 경기의 일부이니까.

‘뭐, 규정위반이 아니라면 더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누군가가 내 투구사인을 훔쳤다는 것은 여전히 조금 불쾌하긴 하지만, 지나간 일이니까.

괜히 계속 찝찝해하는 것보단, 그냥 앞으로의 경기에 집중하는 게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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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어떻게 생각해?”

묵묵히 보고서를 읽던 빌리 빈 단장은 이내 파일을 덮고는 앞자리에 앉은 데이비드 포스트 단장에게 물었다.

구단의 모든 일은 운영사장인 그의 결재로 처리가 되지만···

이건 애슬레틱스만의 일이 아니었으니까. 더 나아가, 아메리칸 리그, 아니,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자체와 연관되어 있지.

그렇기에 단순히 그 혼자 독불장군처럼 처리할 수는 없었다. 잘못 건드렸다간, 애슬레틱스로 역풍이 불 수도 있으니까.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이야기가 나오고 있잖습니까?”

“그래, 그렇지. 사무국에서 조사에 착수했다고?”

일의 시작은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시리즈가 마친 뒤, 밥 멜빈 감독이 올린 하나의 보고서였다.

현장 스태프들의 면밀한 검토와 추론 끝에, 이번 시리즈에서 애슬레틱스는 사인 훔치기를 당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

또한 그저 추측에 불과하기는 하나, 사인 스틸의 방법이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것과 이번이 처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이야기했었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했으나, 코치들의 분노가 느껴졌었다.

현장에선 전자기기를 이용한 전문적인 사인 훔치기를 의심하고 있었으니까.

‘본인들의 책임을 면탈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 사인이 훔쳐졌는데, 그걸 코치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고. 그리하여 1,2차전을 패배했다면.

어쩔 수 없이 코칭스태프의 직무유기 혹은 무능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변명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전자기기를 이용했다면, 그건 단순히 코칭스태프의 능력과는 별개로, 치팅이니까.

‘비디오 판독이 시작된 이후, 몇몇 구단이 리플레이룸을 이용한 사인 훔치기를 한다는 소문이야, 늘 있었지만···’

그렇기에 구단 자체적으로 어느 정도는 조사했고, 마찬가지로 전자기기 사용의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내부에서 간단하게 조사한 정도인 만큼, 확실한 증거가 없기에 단순히 추측에 불과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실체가 잡히고 있지.’

빌리 빈은, 그리고 데이비드 포스트 단장은 어느 정도는 그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미 한 차례 소문이 돌았으니까.

“네, 팀을 꾸려서 레드삭스를 털 예정이랍니다.”

주인공은 보스턴 레드삭스.

그들이 스마트 워치, 즉 손목시계형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사인을 훔쳤다는 소식이 업계에 파다했다.

사무국이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팀을 꾸렸다는 소식도 함께.

흔한 뜬소문 정도는 아닐 거다. 커미셔너와 사무국이 메이저리그 구단들에 보낸 메시지일 테니까.

“커미셔너는 일을 크게 키울 생각이 없겠지?”

“네, 아무래도··· 그는 개혁을 원하는데, 개혁을 위해선 구단들의 지지가 필요하니까요. 굳이 구단들과 대립각을 세울 필요는 없죠.”

15년에 취임한 롭 맨프레드는 야심이 넘치는 인물이다. 야구를 직접적으로 개혁하길 원하지.

여러 스피드업 룰과 피치 클락 등을 만들어, 경기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메이저리그가 다시 인기를 끌어모으길 바라고 있고.

Go라는 전대미문의 선수가 등장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때마침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졌기에, 그 기세를 몰아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

일을 키우기 보다는, 그저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 개인의 일탈로 끝내려고 하겠지..

‘그마저도 분석팀 직원 선에서 꼬리를 자를 가능성이 높고.’

조사 소식이 흘러나온 것 역시 똑같은 의미다. 바로 구단들에게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보낸 것.

혹시라도 부정한 방법으로 사인을 훔치는 팀이 있다면, 이제라도 그만두라고. 넘어가주겠다고.

만약 확실하게 엄벌을 내리고, 뿌리를 뽑을 생각이었다면, 소문 따위는 없었을 테니까.

“만약 우리가 터트린다면···”

“일이 커지겠지. 휴스턴은 지금 1위 팀이니까. 아메리칸 리그 전체를 통틀어서.”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누가 뭐래도 이번 시즌의 주인공 중 하나다.

내내 탱킹을 거듭하며 웅크리고 있다가, 리그 전체를 휩쓸고 있었으니까. 아메리칸 리그 전체 1위에 올라섰고.

‘그렇기에 적이 많지.’

그 돌풍에 부정한 방법이 섞여있다는 게 밝혀진다면, 구단과 사무국이 일의 규모를 축소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

신생의 강호는 언제나 적이 뒤따르고, 그간 때를 기다리며 웅크린 동안 휴스턴이 저지른 일들로 인해, 애스트로스는 이미 수많은 팬들에게 미운털이 박혔으니까.

그러니 아주 격렬한 반응이 나오겠지. 안 그래도 미운짓을 하던 놈들이, 이젠 정말로 규정까지 어긴 것이니.

“조금 더 조사를 거쳐야 하겠지만, 증거가 없다 뿐이지, 거의 확실합니다. 만약 증거나 증언을 확보하고, 타이밍을 잘 재서 터트린다면··· 휴스턴을 날릴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포스트는 그러한 가능성에 흥분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천재일우의 기회였으니까.

같은지구 경쟁팀이자 1위팀.

그런 팀을 날려버릴 수 있는 기회인데, 당연히 흥분될 수밖에 없겠지.

그런 외부의 반응에 선수단이 똘똘 뭉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서로 분열되기 시작한다면. 정말 막판 대역전으로 서부지구 1위를 탈환하게 될지도 모르고.

허나···

“아니, 올해는 덮어야 해.”

“어째서요? 좋은 기회잖습니까? 애스트로스만 잘 치운다면, 포스트시즌도 거의 확실···”

빌리 빈은 생각이 달랐다.

“현명하게 생각해. 애스트로스를 날렸다 치지. 그럼 그다음은?”

“···예?”

“직접적으로 묻지. 데이비드, 올해 우리가 월드시리즈를 노릴 수 있나? 포스트시즌은? 확신할 수 있나? 조금 흔들린다고 해서, 지구우승이 정말 가능한가?”

날카로운 눈빛, 날이 선 말에 데이비드 포스트 단장은 순간 목구멍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잘하면 포스트시즌은 가능하겠지만, 월드시리즈까지는 힘듭니다. Go와 Sonny, 두 더블 에이스가 있기는 하지만···”

“부족한 곳 또한 많지. 물론 Go는 확실한 필승 카드이지만, 그의 경기 외에서 우리가 승리를 가져올 수 있나?”

“···없지는 않겠습니다만. 힘들기는 할 겁니다.”

말끝을 흐리는 데이비드 포스트 단장과는 달리, 빌리 빈은 확신했다.

올해는 힘들다. 월드시리즈는. 어쩌면 포스트시즌 진출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그게 끝이겠지.

그렇기에 트레이드를 통한 자원 보충을 깔끔하게 접은 것이고.

“그리고, 설사 지금 당장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도, 시간은 꽤나 오래 걸려. 데이비드 자네도 잘 알잖아? 누군가 떠먹여 주기 전까지는, 이런 사안에 대해 사무국의 일 처리가 느리다는 걸.”

사무국은 늘 그래왔다.

리그의 이미지에 해악을 끼칠 것 같은 일의 앞에서는 항상 조금씩 주저했었지.

당장 스테로이드 시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청문회와 미첼 리포트 이전에도 꾸준히 선수들의 약물 남용에 대한 말들이 나왔지만. 사무국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러한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이번 일 역시,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고, 결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꽤나 소모될 테고. 그러다 보면 정규시즌이 끝나겠지.

“그럼··· 그냥 덮는 겁니까? 이렇게 좋은 카드를요?”

데이비드 포스트 단장은 조금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치팅을 당해놓고 그걸 말하지도 못한다니.

그런 그의 불만스러운 말에 빌리 빈은 피식 웃었다. 역시, 아직은 젊다. 물론 나이가 적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전체적인 판을 그리기에는 아직까진 그렇게 노련하지 못하지. 어쩔 수는 없다. 언제나 그의 역할은 빌리 빈 자신을 보조하는 수준에 그쳤으니까.

“덮어야지, 올해는. 최적의 타이밍은 따로 있으니까.”

“최적의··· 타이밍이요?”

빌리 빈이 생각하기에, 지금은 터트린다고 해서, 그다지 효과를 볼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

이미 시즌이 너무 늦은데다가, 안티팬이 많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확실한 결과를 낸 것은 아니기에. 휴스턴에 대한 분노도 적겠지.

어쩌면 사무국 차원에서 그냥 덮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애슬레틱스로 역풍이 불 테고.

“일단 증거부터 확실하게 수집해. 분석팀, 스카우트팀, 죄다 동원해서, 우리가 먼저 전격적으로 조사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 카드가 쓰일 진짜 타이밍은 따로 있다.

모든 증거가 확실하게 확보되고, 그것을 이용해 애슬레틱스 역시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시기. 그리고 휴스턴 애스트로스 역시 어느 정도의 결과를 달성했을 시기.

“조사 결과에 따라, 부적절한 방법을 이용한 사인 훔치기라는 것이 확실해지면, 내년 스프링캠프쯤 터트리자고.”

바로 내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본격적인 패권 도전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때야말로, 빌리 빈이 생각하는 최고의 타이밍이었다.

‘좋은 패가 들어왔으니, 판을 키워야지. 내년에 우린, 같은지구 경쟁 팀 하나를 날리고 시작한다.’

빌리 빈은 진심으로 바랬다.

부디, 이번 시즌 애스트로스가 최대한 높게 날아오르기를. 완벽한 성과를 내주기를.

그래야지만, 사람들은 더욱더 강하게 분노할 테고, 추락의 여파 역시 더욱 강해질 테니까.

그렇게 기도하며, 빌리 빈은 환하게 웃었다.

맞은편에 앉은 데이비드 포스트 단장이 소름 돋을 만큼, 아주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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