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구단이 오는 15일을 맞아,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금방 널리 퍼져나갔다.
애초에 엄청나게 홍보했으니까.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8월 15일, Korean Independence day를 맞아, Korean Night 개최.>
<15일, 전 좌석 티켓 30% 할인 및 오클랜드 한인들에겐 50%까지 할인?>
사실 특별한 이벤트는 아니다. 한인 인구가 많은 지역, 특히 캘리포니아의 경우, 종종 이런 이벤트를 열고는 했으니까.
당장 베이 에어리어에도 총인구가 9만 명 이상이니, 그리 적은 숫자는 아니다.
그러니 이번 행사가 대단히 특이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연한 일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했다.
<고유석의 마음을 잡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애슬레틱스! 애국가 제창까지?>
한국 가수 초청 및 각종 굿즈와 기념품 등. 흔한 행사치고는 꽤나 본격적이었으니까.
최소한 사람들이 보기에 오클랜드의 의도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고유석이라는 슈퍼 루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뜻.
비록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어쩔 수 없는 자금 사정 탓에, 영원히 함께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앞으로 5년은 팀의 에이스이자, 핵심 코어 선수가 될 것이 확정적인 선수이니.
어떻게든 팀에 애정을 가지고 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테니까.
그런 생각이 드러나는 행동에 몇몇 한국 언론에서는 묘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지 팬들이 집중한 건 Korean Night가 아니었다.
“이번에 구단에 초청해서, Go의 부모님이 처음으로 경기 관람한다고 하던데.”
“진짜? 이번이 처음이라고? 아, 하긴, Go는 Korean이니까, 거리가 좀 멀긴 하네.”
“프런트 새끼들은 여태까지 그런 것도 안 챙겨주고 뭐 한 거야? 진작 좀 모셔와서 경기도 보여드리고, 주변 관광도 시켜드리고 그래야, Suck도 힘이 나서 팍팍 잘 던지지!”
최소한 애슬레틱스에게 고유석은 구세주였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 팀을 구원했으니까.
그러니 그 부모님은 성부와 성모라고 해야겠지. 조금 부담스러운 칭호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애슬레틱스의 열성 팬이라면,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 성부와 성모가 드디어 오클랜드에 도래했다는 것은, 애슬레틱스에게 포스트시즌 가능성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일이었다.
위대한 구세주를 낳아, 기르신 뒤, 친히 오클랜드로 보내시어, 애슬레틱스를 굽어살핀 분들이니까.
“포스트시즌은 Go가 있는 동안에는 언제든지 도전할 수 있지만, Go는 아니지.”
“100년에 한 번 나올 수준인 투수인데. 이쪽이 훨씬 중요한 게 당연하잖아.”
그런 Go를 낳아주신(?) 분들께서 이젠 본인이 직접 오셔서, 그 위대한 아드님의 경기를 볼 예정이라는 소식은 팬들을 기쁘게 했다.
“원래 부모님 보면 끝난 거야. Suck도 애슬레틱스가 좋아졌다는 뜻이지.”
“그럼그럼, 잠시 있다가 갈 팀 정도로 생각했으면. 굳이 오라고 하지도 않았겠지.”
“뭐, FA가 되면··· 솔직히 우리가 잡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있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거 아니겠어?”
그가 직접 부모님에게 소개(?)할 정도로, 애슬레틱스가 사랑스러워(?)졌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최소한 팬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다.
-지난밤 60번가에서 또 한 번 총격사건···
-지역 갱단의 소행으로 보이며, 주변을 공포로···
아무리 생각해도, 이 도시는 부모님에게 보여주기 그리 좋은 곳이 아니었으니까.
로컬 팬들이야, 어릴 적부터 오클랜드에서 자라며 이 같은 일을 자주 접했기에 어느 정도 익숙하게 여겼으나.
듣기로 Korea는 치안이 좋은 나라라고 하니, 그런 안전한 국가 출신의 사람들에겐 굉장히 공포스럽게 느껴지겠지.
“혹시라도 Suck의 부모님이 도시 분위기 보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부추기면···”
“솔직히 나 같아도 이런 동네에서 아들이 야구한다고 하면 조금 그럴 것 같긴 해.”
“Go야 메이저리거니까, 안전한 곳에서 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 걱정될 거야.”
처음 이 소식이 알려지며, 팬 커뮤니티에서 나온 말처럼. 확실히 대책이 필요해 보였다.
최소한 고유석, Go라는 선수가 팬들에게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정도는 알려줘야 할 것 같았고.
그렇게 가난한 팀의 가난한 팬덤이 손님맞이를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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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오른 순간.
두 사람의 심장은 똑같이 두근거렸다. 신혼여행 역시 제주도로 갔었기에, 살아생전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는 것이니까.
“아들 덕분에 미국을 다 가보고···”
“퍼스트 클래스가 다르긴 다르네. 좌석이 무슨, 침대보다 더 나은데?”
“그렇겠지. 비즈니스도 아니고, 퍼스트 클래스니까.”
거기다가 퍼스트 클래스다.
처음에는 조금 마음이 그랬다. 아들이 잘나가고 있다는 거야,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운동선수라는 것이, 그리 안정적인 직업은 아니지 않은가? 젊을 때 쌓은 업적으로 평생을 먹고 살아야 하지.
또한 메이저리거라고 하여, 신인 시절부터 연봉이 높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기에, 자신들을 위해 혹 무리하게 지출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이코노미면 충분할 것을. 왜 비싼 돈 들여가며 과한 좌석을 잡았냐고 물어봤더니.
구단에서 지원해준 것이라는 아들의 말에 얌전히 좌석에 앉았다.
본인이 아니라, 그 부모에게도 이렇게 대접해줄 만큼.
아들이 구단에 큰 이득이 되는 선수라는 것이 마음에 와닿았으니까.
그렇게 아들 덕분에 구단에 정식적으로 초청되어, 처음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은 편안하고, 뭉클했다.
-···기내에 계신 승객 여러분 께서는···
“여보, 여보! 대충 들어보니까, 이제 도착한 것 같은데?”
한 차례의 경유 후.
드디어 도착한 오클랜드.
입국심사장에 들어섰을 때, 몇몇은 두 사람을 흘끔거리기도 했다.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그런 시선을 이해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방문 목적이 어떻게 되십니까?”
“어··· Visit? 그러니까, 대충 뭐 때문에 방문했냐는 것 같은데··· 아들 경기 관람을 위해서입니다.”
“아들 경기요? 아드님이 프로 선수인가요?”
“Professional? 아, 프로냐고? 메이저리거입니다. 여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소속이고.”
대학 시절 영문과를 나온 것과 오늘을 위해 다시 벼락치기로 공부했던 것이 제법 도움이 된 건지.
영어를 전담했던 남편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입국 심사관의 모습에 약간 불안함이 피어올랐다.
기껏 아들을 보러, 미국까지 왔더니.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해서 얼굴 한번 못 보고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으니까.
“당신 뭐 잘못 말한 거 아니야? 표정이 이상한데.”
“아닌데? 제대로 말한 것 같은데··· 발음이 좀 이상한가? 쓰읍,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혀가 잘 안 굴러가네. 유석, 고유석. He’s My Son. 모르나? 혹시 야구 안 좋아하는 건가?”
남편 역시 덩달아 불안해진 건지, 조심스럽게 입국 심사관을 봤지만, 그란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 뒤는 모두 다 프리패스였다.
잠깐 몸을 부르르 떨은 입국 심사관은 영광이라는 듯 악수까지 하더니. 최대한 친절하게 모든 절차를 진행했으니까.
마치 ‘절대 이분들을 놀라게 하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야, 미국은 입국심사 까다롭다고 하던데, 우리 유석이 약빨이 대단하기는 하네. 얼마나 잘했으면 공항에서도 이래?”
“당신 말처럼 최고의 선수잖아. 우리 아들이.”
“유석이 직접 온다고 했었지? 기다리고 있을 텐데, 빨리 가보자.”
약빨이 확실한 아들의 이름에 묘한 뿌듯함을 느끼며, 입국장에 들어선 두 사람은 다시금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겨울 이후, 굉장히 오랜만에 다시 아들의 얼굴을 보게 됐으니까.
성적이 좋다는 것은 티비만 틀어도 알 수 있기에 염려 없지만. 혹시 무언가 힘든 건 없는지,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는지도 걱정됐고.
“엄마! 아빠!”
그렇게 출구를 나섰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고, 미국으로 떠나기 전 보았던 에이전트와 처음보는 남자, 그리고 아들이 웬 피켓을 들고 자신들을 불렀다.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저거 Go 아니야?”
“또또 그소리. 동양인만 보면 죄다 Go라고 하- 어? 진짜 Go 같은데?”
“듣기로 부모님이 온다고 하더니 직접 마중 나온 건가?”
“티비로 봐도 크긴 했지만, 경기장 밖에서 직접 보니까, 진짜 엄청 크네.”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걱정은 사라졌다. 평생 보았던 아들의 얼굴 중에서 지금이 가장 밝고, 자신감에 차 있었고.
그렇기에 그들 또한 아무런 걱정 없이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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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속보, Go가 부모님을 맞이했다.]
└그건 어떻게 알아?
└스토커냐? 너 같은 놈들 때문에 Go가 진저리 나서 오클랜드 떠나면 어쩌려고!
└SNS로 본 거니까, 엄한 사람 몰지 마 X신들아. 아무튼 공항에서 누가 봤대. Go가 직접 마중 나왔다고 하는데.
└그럼 오늘 당장 경기 관람하시나?
└모르지. 푹 쉬고 내일, 아니면 15일 당일에 오실지도.
공항에서 고유석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금방 퍼져나갔다.
오클랜드 시민이라면, 절대 모를 수가 없는 얼굴이니까.
당장 전광판 아무거나 봐도, 그 얼굴이 큼지막하게 보이고, 티비를 틀면 매일 같이 그에 대한 소식이 나오는데.
모를 수가 없지.
[#A’s]
[준비는 다 됐는데. 계획대로 가는 거지?]
└해야지. 기껏 오셨는데.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겨드리자고.
└Go 집이 크레스트몬트(Crestmont)쪽에 있던가?
└아마도, 그쪽에서 많이 보였으니까. 거기 살겠지.
└그럼 부모님도 거기로 가시나? 아니면 호텔?
└그거야··· 모르지. 아무도.
└샌프란시스코 쪽에 호텔 잡으면, 콜리시엄은 아이젠하워랑 니미츠 고속도로 타고 올 거고.
└집에서 머무는 거면, 세미너리랑 캠던 타고 쭉 오겠네.
└그쪽에 쭉 깔면 되겠네.
└세미너리 쪽은 좀 위험하지만··· 그래도 괜찮겠지.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의 부모님이 온다는 것이 단순히 뜬소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기껏 준비한 것들이 있는데. 만약 그게 전부 그냥 어쩌다 나온 이야기 정도였다면, 무척이나 허무했을 테니까.
[#A’s]
[니들 진짜로 하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겨우 선수 하나 때문에?]
└그 겨우 선수 하나가 X발 18승 중이다. X신아.
└285K나 잡았지.
└ERA는 0.58이고. 이게 X발 고작 선수 하나냐? 신이지.
└이해 못 하는 거 보니까, 에이스 팬이 아니네. 너네 집으로 꺼져라.
선수 본인도 아니고, 그 부모를 기쁘게 한다니. 그것이 조금 어처구니없게 여겨졌던 이들은 고개를 젓기도 했지만.
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이었다. 조금이라도 보답해주고 싶었으니까.
[#A’s]
[고작 53만 5천 달러 받으면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데. 최소한 대접이라도 해줘야지.]
이번 시즌, 아니, 역사상 최고에 도전하고 있는 투수.
하지만 루키라는 이유로 받는 연봉은 최저연봉이다.
내년에도 마찬가지겠지. 연봉조정 이전까진 쭉 그럴 거고.
그런 선수에게 물질적인 보상은 주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들이 얼마나 감사하게 여기고 있는 지는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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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유석이 너, 얼굴 때깔이 좋아졌다 싶더라니. 아주 궁전에서 사네, 궁전에서 살아.”
“렌트라고 했지? 감당은 돼? 많이 나갈 텐데. 뭐하러 저번에 그렇게 많이 보냈어. 너희 엄마 아빠가 못 버는 것도 아닌데.”
일단 부모님은 집으로 모셔왔다. 두 분의 성향이 확 드러나는구만.
생각보다 훨씬 잘살고 있는 모습에 안심하는 거야 똑같지만. 아빠는 순수하게 감탄, 엄마는 걱정인가?
이건 어쩔 수 없다.
두 분이 가진 정보가 다르거든. 엄마야 날 항상 걱정하시니. 메이저리그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는 있지만. 그리 많지는 않으시고.
“당신은 뭐 그런 말을. 유석이 얘가 버는 수익이 얼만데.”
아빠는 애초부터 야구팬이셨으니, 지금 같은 성적을 찍고 있는 내가 얼마나 돈을 쓸어 담고 있는지 아주 잘 아실 거다. 그러니 걱정이 없으실 수밖에.
“속 부대끼지는 않아? 네가 괜찮다고 해서 안 보내고 있지만, 반찬이라도 보내줄까?”
“엄마 아들 이미 미국놈 다 돼서, 괜찮습니다요. 그리고 여기 한인타운도 있는데. 가서 먹으면 되지. 거기도 엄마만큼 맛있어.”
엄마는 자신의 솜씨를 미국물 먹은 한인타운과 비교된 게 약간 화가 나신 건지 눈썹을 씰룩거렸다.
내 딴에는 염려 말라고 한 거였는데, 이건 내 실수구만.
“물론 엄마보단 못하지.”
황급히 수습해봤지만. 그리 잘 먹히지는 않았다. 늘 입이 문제란 말이야.
“그래서, 우리는 호텔에서 지낸다고? 아들 집 멀쩡히 있는데. 굳이?”
“그게 오클랜드가 좀 위험하거든. 그리고 경기 준비하느라 엄마랑 아빠 잘 보지도 못할 거고. 경기관람은 15일에 한다며?”
“기껏 미국까지 왔더니, 아들한테 문전박대 당하네.”
“이참에 엄마랑 같이 오붓하게 여행 좀 하슈. 호텔은 구단에서 최고급으로 잡아줬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통역사도 구해줬어.”
참고로 두 분은 다시 베이 브릿지를 건너셔야 한다. 호텔이 샌프란시스코에 있거든. 집은 잠깐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러 온 거고. 바로 호텔 가셔야지. 나도 경기장 출근해야 하고.
마음 같아서는 가족끼리 오래간만에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이런 때일수록 마음 풀어지지 말고 확실하게 준비해야지. 그래야 멋진 경기 보여드릴 수 있는 거고.’
휴식일이라고 해도, 경기 준비는 해야 하는데다가. 솔직하게 말하면 부모님을 오클랜드에 두고 싶지 않았다.
나야 이제 많이 적응해서 아무렇지 않지만, 별로 좋은 동네는 아니니까.
물론 그나마 내가 사는 동네는 부촌이라 치안이 좀 안전하다고 해도. 자식된 입장에서는 쪼끔 그렇지.
‘가이드 붙여준다고 해도, 혹시나 돌아다니시다가, 자칫 위험지역에라도 들어가면···’
진짜 큰일이니까.
자칫 소매치기나, 강도라도 당한다면 경기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집중이 안 될 걸?
그럴 바에는 차라리 경기 전까지 샌프란시스코 관광 시켜드리는게 낫지.
영어도 잘 안 되실 텐데, 나 없는 동안 집안에만 계시는 것보다는. 차라리 여기저기 구경이라도 다니시는 게 낫지 않겠는가?
‘샌프란시스코야 미국 내에서도 손꼽힐 만큼 좋은 도시이니, 걱정 없지. 통역사까지 있으면 더더욱.’
가이드 겸 통역사는 구단에서 구해줬다. 원래는 내 통역사로 붙을 예정이었지만.
내가 구단의 예상보다 훨씬 영어를 잘해서, 졸지에 일자리를 빼앗긴 불쌍한 분이시지.
“같이 식사라도 해야 할 텐데···”
“그냥 두 번째 신혼여행이다, 생각하세요.”
“이 나이에 신혼은 무슨··· 이제 황혼 다 됐구만.”
다만 부모님은 못내 아쉬운 건지 그렇게 말하셨지만. 신혼이라는 말에 표정이 묘해지셨다.
내가 알기로 이번이 첫 해외여행인 걸로 아는데. 간만에 분위기 좀 내시겠네.
“이런 일 맡겨서 죄송해요, 브라이언. 매니저가 아니라 에이전트인데.”
“다른 것도 아니고, Go의 부모님이신데, 제가 직접 나서야죠. 괜찮습니다.”
픽업은 브라이언이 맡았다. 본인이 직접 자처하긴 했지만, 왠지 좀 미안하네.
종종 몇몇 선수들은 에이전트를 하인처럼 부려 먹는다고 하던데. 나도 그렇게 되버렸구만. 아니지, 생각해보면 내내 하인처럼 부려 먹긴 했네.
‘집도 브라이언이 알아봐준 거고. 시즌 초반에는 직접 픽업까지 해줬으니···’
상상이상으로 악덕고객이구만.
생각해보니, 진짜 많이 부려먹기는 했네. 스폰서 계약도 죄다 체결하느라 고생했을 테고. 거기다 부모님까지 직접 케어해주니, 진짜 잘해야겠어.
그에게도, 경기에서도.
얼굴을 직접 본 순간, 마음 한쪽이 단단해졌다. 모든 경기에서 잘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메이저리거라고 내 입으로 말했지만.
어쩔 수가 없기는 하네. 더 긴장되고, 의욕이 올라오는 건.
‘기왕이면 최고의 경기를 보여드려야지. 그러기 위해서, 바다 건너까지 모신 거니까.’
내가 할 줄 아는 효도는 그게 전부다.
“유석이 니 방이 2층이라고?”
“어, 2층, 제일 안쪽이야. 한번 올라가 봐. 거기 전망 좋아. ···가셨네. 아빠, 아빠.”
“어, 왜? 왜, 갑자기 속삭거려?”
“이거. 엄마 몰래 아빠가 가지고 있어.”
“응? 카드?”
“내 카드야. 하나 새로 발급했어. 엄마는 어차피 줘도 안 받으려고 할 테니까, 엄마한테 말하지 말고, 아빠가 몰래 가지고 있다가, 엄마랑 맛있는 것도 사먹고, 선물도 해주고 그래. 아빠 쓸 거도 쓰고.”
아, 물질적 효도도 할 줄 알기는 하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효도와 선물은 언제나 현금이 최고다.
올스타전 MVP 상품인 쉐보레도 같은 의미지. 내가 스포츠카에 눈이 팔린 게 아니라. 그냥 귀찮게 저런 거 드릴 바엔, 차라리 돈으로 드리고 싶어서 그런 거야.
이거 봐, 얼마나 좋아하셔.
“우리 아들··· 진짜 다 컸네. 아주 어른이야, 어른. 아빠는 웬만하면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눈물이 다 나네.”
아빠는 남자 간의 의리에 코끝이 찡한 건지,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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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기는 했지만. 아들의 마음이 느껴졌기에, 거절하지는 않았다.
또한 내심 괜히 경기 준비를 방해하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하기도 했었고.
“호텔을 무슨 이런 걸···”
“스위트룸이면 한두 푼이 아닐 텐데··· 퍼스트 클래스에 호텔까지.”
그렇기에 안내를 받아 도착한 호텔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
샌프란시스코. 그들 역시 몇 차례나 들어보았던 도시 이름값에 걸맞았으니까.
이미 퍼스트 클래스를 경험한 만큼, 구단이 구해줬다는 말에 어느 정도 높이 예상하기는 했지만. 직접 마주한 숙소는 그것마저도 아득히 초월했다.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유석이 걔가 당신 닮아서, 애가 능글맞아서. 힘들어도 은근히 내색 안하잖아.”
“나 닮아서 성격이 좋다고 해야지. 능글맞은 게 아니라. 그리고 어련히 잘 지낼까. 구단에서 보물처럼 여길 텐데.”
마음은 한결 더 편안해졌다.
아들이 생각보다 훨씬, 정말 훨씬 더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두 눈 똑똑히 봤으니까.
트레이너와 함께, 남정네들끼리 사는 집치고는 꽤 깔끔하기도 했고.
다만 아들 입으로 직접 말한, 오클랜드가 위험하다는 말은 조금 걱정스럽긴 했지만.
“오클랜드가 그렇게 위험한가?”
“위험하지. 미국에서 제일 치안 안 좋은 곳 중 하나니까.”
“···그래?”
남편은 정말이지 별걸 다 안다. 은근히 잡다하게 지식이 많은 사람이지. 그런 사람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로 별로 좋은 곳은 아니겠지.
그에 대한 걱정도 생겼지만, 안심시키려는 듯 남편은 피식 웃었다.
“유석이 말마따나, 거기 딱 보니, 부촌이던데. 그런 곳은 괜찮아. 그리고 당신도 공항이랑 집 근처에서 사람들이 유석이 보던 눈빛. 그런 눈빛 가진 사람들은 절대로 당신, 그리고 내 아들한테 나쁜 짓 못 해.”
아마도 본인도 야구를 좋아하기에 더욱더 잘 아는 거겠지.
허구헌날 씹고, 찬양하고를 반복했던 선수가 어쩌다 한번 가게에 들렸을 때, 웨이터처럼 극진하게 대우했던 것이 본인이니까.
오클랜드, 그 도시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들도 그런 존재이리라. 아니, 그보다 더한 존재겠지.
야구를 잘 모르고, 야구선수, 메이저리거의 어머니이기에 스스로 찾아본 정보 외에는 야구에 그리 관심도 없지만.
남편의 말처럼, 스치듯 마주친 사람들이 아들에게 보내던 감정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수십 년 장사하면서, 사람들 감정에 이골이 났으니까.
“당신, 나 몰래 유석이한테 뭐 받았지?.”
“어? 받긴 내가 뭘 받아···”
“딱 보니, 유석이가 나 일부러 2층으로 올려보내던데. 나한테 주면 안 받을 거 알고, 당신한테 줬구만. 카드야?”
“···귀신이네.”
그건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 두 남자는 은근히 알기 쉽다. 감정을 얼굴에 훤히 드러내니까.
“자, 미국에서 있을 때만 좀 쓰다가, 당신이 다시 돌려줘. 솔직히 나도 받으면서 조금···”
“가지고 있어. 아들이 드디어 장한 일 좀 하겠다는데. 기 좀 살려줘야지. 계속 거절하는 것도 조금 그러니까.”
잘 사는 모습을 봤으니 됐다.
마지막 걱정마저 완벽하게 사라졌으니. 이젠 그저 마음속 깊이 기뻐하기만 하면 되는 거겠지.
이젠 그저 순수하게 궁금했다.
아들은, 고유석은 어떤 선수이기에 이 먼곳의 사람들이 아들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건지.
그리고 며칠 뒤, 아들의 경기에서 자신이 무엇을 보고, 얼만큼 기뻐할 수 있을 것인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