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1회 말.
리드오프 라제이 데이비스가 안타를 기록했다. 곧이어 도루에 성공하며 2루롤 밟았고.
2번 타자인 마커스 시미언이 아찔한 땅볼을 치긴 했지만.
“음, 나이스샷!”
“들어와! 쭉 들어와!”
3번타자, 제드 라우리가 우측 외야 깊숙이 들어가는 희생플라이를 날렸고, 라제이 데이비스가 발 빠르게 홈으로 들어오면서 첫 득점이 올라갔다.
시작부터 나쁘지는 않네.
“한점 냈으면 됐어, 한점 냈으면.”
“마운드에 Suck 얘가 있잖아. 1점이면 무난하게 이겨주겠지~”
그건 아니야.
공격이 끝난 뒤. 타점을 기록한 제드 라우리는 은근히 거들먹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타자들 길을 잘못 들여놓은 게 맞는 것 같다니까.
이 정도 했으면 알아서 이기라는 듯한 눈빛에 어이가 없어서 지그시 쳐다보니,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눈을 피했다.
언젠가 마운드에서 왕창 싸버려야 다시는 저런 소리를··· 아, 그건 내 손해네.
“가자. 저렇게들 닦달하는데, 특별히 이겨줘야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브루스와 함께 일어나, 다시 그라운드로 나갔다.
“첫 타자가 크리스 데이비스지? 5번타자부터 시작이니까.”
“크리스? 어, 크리스 데이비스 맞아. 오늘은 5번으로 나왔네. 씁, 이거 막상 같은 경기에서 만나니까, 좀 헷갈린단 말이야.”
2회 초 첫 타자는 크리스 데이비스다. 우리 크리스 말고, 저쪽 크리스 데이비스.
이쪽은 Khris고, 저쪽은 Chris다. 미국 놈들 이름 참 이상하단 말이야. 별의별 파생형이 다 있네.
다만 이름값은 저쪽이 더 높다. 크리스한텐 미안하지만, 그는 약간 파생형(?) 같은 느낌이지.
‘최근 들어서는 조금 달라졌지만.’
원정팀 덕아웃 한쪽을 훑은 뒤, 브루스에게 말했다.
“관찰 잘해. 혹시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무조건 나한테 사인 보내고. 애매해도 그냥 보내.”
“오케이, 그래야지. 지금은 좀 그래도, X나게 위험한 타자니까. 걱정 마. 확실하게 감시할 테니까.”
“그래, 수고해라.”
브루스를 홈플레이트에 앉혀두고, 홀로 마운드에 올라왔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볼티모어 쪽에서도 타자 한 명이 타석으로 올라왔다.
5번타자 크리스 데이비스.
앞서 말했듯 우리 팀 크리스랑 자주 묶이는데. 한국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저쪽을 참데, 이쪽을 짭데라고 부르더라.
저쪽 크리스가 진짜고, 우리 크리스가 가짜라는 뜻이지.
크리스가 안다면 길길이 날뛰고 굉장히 불쾌하게 여기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작년까지는.
‘조금··· 심각하게 망가졌네.’
오늘 경기를 준비하면서, 분석 자료에 적힌 저 양반 성적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현재까지 홈런 18개와 타율 0.212 출루율 0.311 장타율 0.427을 기록 중이더라고.
쉽게 말해서, 조금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던 작년과 비교해도, 스탯이 훅 내려갔다.
특유의 똥파워도 줄었고.
작년 후반기부터 조금 많이 처박기는 했지만. 올해는 그냥···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오랫동안 고통을 줄 완벽한 똥이 된 거지.
‘그 똥이 무려 7년 1억 6천 3백만 달러짜리라는 게 가장 최악이고.’
한때는 MVP 3위도 해본, 리그 수위급 타자가 완전히 팀에 불필요한 수준으로 떨어진 건데.
그래서 그런가, 요새는 조금씩 평가가 달라졌다. 우리 쪽 크데가 찐데고, 저쪽이 짭데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지.
재작년까지만 해도 사실 이름이 비슷하다는 걸 제외하면, 크리스가 많이 처졌는데 말이야. 세상일 모른다니까?
‘슬슬 약빨이 떨어지는 건가?’
그가 로이더라는 건 아니고.
주의력결핍장애, 즉 ADHD 환자라서,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는데. 그게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애더럴인지 뭔지 하는 ADHD 치료제는 암페타민 계열의 약물이거든. 암페타민은 당연히 금지약물이고.
사무국에 신고하지 않고 복용하다가 문제가 된 건데. 이후 조금 덜 강한 치료제로 바꿨다고 들었더니.
그게 효과가 떨어지는 건가?
얼핏 듣기로, 각성제 계열의 약물은 내성이 빨리 생기기에, 점점 더 강한 약을 먹거나, 더 많이 먹어야 한다고 하던데.
건강 문제로 약 자체를 끊었다는 말도 나오는 걸 보면, 그쪽 문제인 건 확실해 보였다.
‘뭔진 몰라도, 볼티모어 입장에선 골치 아프겠네.’
다저스나 양키스처럼 풍족한 팀도 아니고. 결국은 스몰마켓 팀인데. 기껏 거액의 장기계약을 맺은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저 꼴이 돼버렸으니.
아마 생각이 많이 복잡할 거다.
뭐, 상대하는 내 입장에선 땡큐지만.
‘아직은 그래도 파워가 그럭저럭 남아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큰 걱정은 없지.’
원래도 삼진은 많이 당하는 편이나, 홈런 숫자로 그걸 대신하는 공갈포 스타일이었는데.
이젠 그 홈런 파워도 확실히 좀 떨어졌다. 공갈포인데 파워도 없는 타자. 이보다 더 먹음직스러운 선수가 있을까?
“스트라이크!”
단언하는데 없다.
절대로 없다.
초구는 바깥쪽으로 바짝 붙인 너클 커브. 큼직한 헛스윙이 허공을 가르며 휘둘러졌다.
원 스트라이크.
스윙 한 번이지만, 문제점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큼직한 스윙은 척 봐도 빈틈이 많지.
저 스윙이 파워 없이, 공허하게 비어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더욱더 그렇게 보이고.
극단적인 풀히터이기에, 수비 시피트 역시 이미 걸려있다.
또한 이곳은 오클랜드 콜리시엄. 애초에 홈런을 잘 억제하는 구장이지.
외야 곳곳에 야수가 깔려 있고, 담장은 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아무런 부담없이-
“스트라이크!”
타자를 잡는 수밖에.
거의 한 가운데로 몰린 서클 체인지업. 타자의 배트가 다시금 나온 순간, 공은 훅 떨어지며 풀스윙을 피했다.
일류 권투선수의 더킹처럼.
이제 투 스트라이크.
타자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저 양반은 약쟁이 아닌 게 확실해. 딱 봐도 불안해 보이는구만.
‘어쩌면 지금이 최악이 아닐 수도···’
그 모습을 보니.
볼티모어에겐 미안하지만, 더 밑바닥이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명색이 홈런왕을 2번이나 해먹은 거포가, 고작 스트라이크 두 개 당했다고 눈빛이 흔들리다니.
심지어 타고난 스타일 탓에 전성기 때도 삼진을 많이 먹기로 유명했던 선수가.
뭔가 단단히 문제가 있기는 있어 보였다. ADHD라는 말이 거짓이 아닌 건지, 약간 집중을 잃은 것 같기도 하고.
왠지 좀 안쓰럽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스트라이크 아웃!”
그를 최대한 빠르게 타석에서 내려 보내주는 것뿐. 순간적으로 와인드업까지 생략하며, 아예 세트 포지션으로 공을 던졌다.
몸쪽 포심 패스트볼.
공갈포에게 던지기엔 심하게 위험한 코스이나, 집중력이 떨어진 크리스 데이비스는 갑작스러운 투구에 잠깐 움찔거리더니, 완전히 타이밍을 잃은 듯 스윙에 실패했다.
“You Suck!”
“You Suck!”
“우리 크리스가 앞으로 진짜 크리스니까, 그렇게 알아! 이 가짜놈아!”
“이제부터 니가 짝퉁이야. 잘 알겠지?”
“우리 크리스는 너보다 돈도 훨씬 덜 받아! 아주 경제적이라고!”
삼구삼진. 아니나 다를까, 다들 유석거리신다. 우리 홈이라서 그런가, 어우, 소리가 웅장하네.
크리스랑 비교하면서 비웃기도 하는데, 그러지들 마세요. 안 그래도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한테 너무하시네.
삼진에 조롱까지 이어지니, 크리스 데이비스는 조금 넋을 놓은 듯한 표정으로 덕아웃에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몹쓸 짓을 한 것 같아서 내가 다 미안하네.
‘마크 트럼보. 이 양반도 좀 먹튀 끼가 보이는데···’
그다음 6번타자는 마크 트럼보. 지명타자로, 작년 47홈런을 때리며 AL 홈런 타이틀을 먹은 양반인데.
연장계약 첫해인 올해는 먼저 삼진당한 친구를 따라가는 건지. 마찬가지로 먹튀가 되고 있고.
오리올스는 진짜 좀 힘들겠어. 뭔 놈의 거포들이 계약만 했다하면 죄다 먹튀가 되네.
큼직한 비거리를 자랑하는 파워가 일품인 타자였으나. 올해는 그게 많이 죽었다.
앞서 삼진 당한 크리스 데이비스보다도 조금 더 못하고 있지.
“스트라이크!”
오늘은 내가 볼티모어 팬들을 대신해서 먹튀들을 좀 혼내줘야겠어. 먹튀 청산 펀치다.
몸쪽 아주 낮은 포심 패스트볼. 선구안이 많이 떨어져서, 터무니없는 공에도 자주 손이 나간다는 분석이 정확했던 건지. 타자는 시원스럽게 스윙했지만, 아예 근처도 못 갔다.
“스트라이크!”
“파울!”
연달아 세 번 스윙하며, 간신히 파울 하나를 만들어, 삼구삼진은 면한 마크 트럼보였지만. 누가 봐도 대놓고 휘두르겠다는 의지가 돋보였기에.
헛스윙이 만들어낸 바람이 마운드까지 불어오는데도, 그다지 위협적이게 느껴지진 않았다.
3구로 못 잡았으면.
“스트라이크 아웃!”
4구로 잡을 수 있는 타자니까. 그것으로 다시 연달아서 삼진 하나 더.
“세이프!”
“이걸 왜 쳐!”
“얌전히 삼진이나 당할 것이지! 괜히 X같이 구네!”
이후 트레이 만시니에게 2루타를 내주며, 홈팬들이 욕설을 뱉게 만들긴 했지만.
“아웃!”
곧이어 아담 조이스를 외야플라이로 잡으면서, 2회 초 역시 무난하게 막을 내렸다.
####
-스트라이크 아웃!
이후 경기는 적당히 무난하게 이어졌다. 3회 말, 고유석이 스트라이크 하나를 추가하며, 다시금 삼자범퇴로 틀어막자.
[#A’s]
[오늘 Go 완봉하나? 느낌 좋은데.]
└가능할지도?
└사실 Go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밥 먹듯이 할 수 있지.
└그럼그럼, 퍼펙트나 노히터도 아니고, 완봉쯤은 간단하지.
몇몇 팬들은 완봉하는 것 아니냐며 설레발을 치며, 반 박자 빠른 기대를 품기도 했지만.
-세이프!
그런 기대가 머쓱하게도 곧이어 4회, 연이어 안타를 내주며, 실점이 올라갔고.
저번 경기에 이어, 오늘 역시 두 경기 연속으로 실점하는 모습에 몇몇 팬들은 어색함을 느끼기도 했다.
[#A’s]
[Suck이 실점하는 거 보니까,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냐. 마치 못 볼 걸 본 느낌이야.]
└나도, 뭔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그야, 거의 두 달 정도 무실점이었으니까. 어색한 게 당연하지.
└애초에 0점대 ERA인 것만 봐도, 실점하는 게 이상한 투수지.
└혹시 체력이 떨어진 건가? 두 경기 연속 실점이라니.
고작 1실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점하는 것보다, 내내 무실점으로 달리는 것이 더욱더 익숙한 선수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당장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만 보더라도, 데뷔 직후 시즌 초반에는 43.1이닝 연속 무실점을 달렸고.
중반부부터, 바로 저번 경기 6회까진 그보다 10이닝을 더 달리며, 53.1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한 선수이니.
더 말할 것도 없겠지.
그렇기에 팬들은 그가 두 경기를 연이어 실점하는 장면이 조금 당혹스럽게 여겨질 정도였다.
[#Rangers]
[오클랜드 팬들은 죄다 또라이냐? 가끔 Suck새끼 폼 죽었나 보려고, 그쪽 커뮤니티 가는데. 고작 1실점 했다고 징징 짜고 있네. 진짜 체력 떨어진 거 아니냐면서.]
└Go가 애들을 망쳐놓은 거지. 1점 했다고 아쉬워 할 만큼.
└배가 부른 거지. 지들이 언제부터 저런 투수 있었다고. 벌써부터 저 지랄인지···
└그냥 그 망할 애송이가 데뷔한 이후로, 애슬레틱스 자체가 살짝 맛이 갔어.
└그냥 자랑하는 거야. 잘나신 Suck은 1실점만 해도 슬픈 일이라는 식으로.
물론 그런 오클랜드 팬들의 반응이 다른 이들에겐 황당하기 그지없었지만 말이다.
간혹 우리 에이스는 이런 녀석이라며 자랑하는 것처럼 느낀 사람들도 있었다.
팬들은 그저 지극히 진심어린 마음이었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더 같잖게 느껴졌다.
-스트라이크 아웃!
어쨌든 그토록 아쉬워 하는 팬들을 달래듯, 고유석은 종종 삼진을 섞으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줬고.
그 모습에 실점 장면을 보고 신이 나 기사를 작성하던 이들은 잠시 키보드에서 손을 내려놓았다.
-아웃!
4회 말 1실점 이후.
5회부터 고유석은 속도를 높였다. 마치 더 이상의 득점을 오리올스에게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A’s]
[오늘은 7회쯤 내려가나보네. 5회부터 투구 간격 빨라진 거 보면.]
└아마도 그렇겠지. 4회부터 시동 걸리면 6회까지 던지고. 5회부터 걸리면 7회까지 던지는 게 정설이니까.
└그래도 홈이라서 Go도 저번 경기보다 조금 더 던지려나보네.
그것을 보며, 팬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교쳬시기를 예측했다.
그가 언제 인터벌을 가속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으로 그의 교체를 예상할 수 있다는 건, 이미 팬들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었다.
Go라는 선수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그들이기에, 그에 대한 정보라면 도가 텄으니까.
####
실점을 내줬다.
먹튀라고 여기며, 조금 가볍게 생각하고, 안쓰럽게 여겼던 크리스 데이비스가 타점의 주인공이지.
이건 순전히 내 잘못이다. 상대를 동정하다니. 고유석이 아직도 한참 멀었구만.
요즘 너무 잘나가서 그런가, 기강이 해이해졌어. 정신이 빠진 거지. 타자들 버릇 잘못 들인 걸 한탄할 때가 아니야.
‘집중 빡세게 하자. 엄마 아빠 앞에서도 이럴 거야? 정신 차려.’
스스로를 질책한 뒤. 느슨해지던 긴장을 바짝 조였다.
아닌 척해도 부모님 온다는 사실에 조금 집중이 흐뜨러진 거겠지. 이래서는 안 된다.
“브루스, 빡세게 가자. 정신이 번쩍 들도록.”
“아··· 그래. 쩝··· 열심히 받을게.”
브루스는 내가 속도를 높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포수라는 놈이, 공 받는 걸 즐겁게 여겨야지 말이야. 그거 좀 빡세다고 노골적으로 싫어하네.
“잡으면 바로바로 넘겨줘.”
마지막으로 브루스에게 당부를 남긴 뒤, 다시 마운드에 올랐고, 5회 초, 선두타자는 9번타자 조이 리카드.
일단 오늘 타격감은 별로 좋지 않았다. 어찌어찌 컨택은 하는 것 같던데. 파워가 많이 밀렸지.
그렉 매덕스의 방법론에 따르면 무조건 잡을 수 있는 타자로 분류할 수 있으리라.
‘매니 마차도가 오늘 타격감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잡아야지.’
그리고 무조건 잡아야만 하는 타자이기도 하다. 다시 상위타선으로 이어지니. 혹시라도 출루 시킨다면 껄끄럽겠지.
그럭저럭 어떻게 공은 맞히는 것 같은데, 파워가 부족해서 그리 신통치는 않았다. 그렇다면 더욱더 확실하게 잡아야지.
“스트라이크!”
몸쪽 패스트볼이다.
살짝은 몰린 듯한 코스.
초구는 지켜볼 심산인지, 얌전히 자세를 유지하던 조이 리카드는 침을 삼킨 건지 목젖이 움직였다.
파워가 부족한 타자. 그리고 컨택도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은 타자. 위험을 방지하는 방법은 하나다.
힘으로 확실하게 찍어 누르는 것. 제구마저 살짝 놓아버리고서 던진 포심은 경기 초반과 비교하더라도 오히려 조금 더 묵직하게 들어갔다.
“아웃!”
2구 역시 포심 패스트볼.
바깥쪽으로 바짝 붙여서 던졌다. 이번에도 약간 몰렸네.
조이 리카드는 곧바로 스윙했지만, 묵직한 힘에 밀린 건지, 배트는 힘없이 튕겨 나갔고, 타구는 힘없이 바닥을 뒹굴었다.
마운드 앞에서 가볍게 잡아 1루로 송구하며 아웃. 몇 걸음 떼지도 못한 조이 리카드는 손이 아픈 건지, 몇 차례 오른손을 털었다.
‘계속 이렇게 던지면, 타자가 아니라 포수를 때려잡겠네.’
다만 브루스 역시 아픈 건 매한가지인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포수라는 녀석이 90마일도 안 나오는 공 좀 받았다고 뭐 그렇게까지 아파해?
이제 다시 1번으로 돌아오, 타석에는 팀 베컴. 역시나 그리 타격감이 좋지는 않다.
오늘 경기 무안타니까.
그래도 1번타자는 다른 건지. 앞서 아웃당한 조이 리카드와 비교하면, 둘 다 범타기는 해도 타구의 질은 좋았다.
외야까지 날아간 라인드라이브였으니까. 느낌 자체는 좋은 거지.
“스트라이크 아웃!”
물론 타구의 질이 좋다는 거지. 타격감이 좋다는 건 아니다. 진짜 좋았으면 안타를 쳤겠지.
빠른 타이밍의 투구에 단단히 준비한 건지, 집중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마지막 순간, 순간적으로 타이밍을 늦추며 쓰리핑거 체인지업을 던지니, 멍하니 지켜보며 타석에서 물러났다.
‘일곱 개째인가?’
이번 경기 일곱 번째 삼진이네. 그를 뒤이어 올라온 건 매니 마차도.
이쪽은 확실하게 집중해서 잡아야 하는 타자다. 올시즌 성적이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다고 하나. 어찌됐든 수위급 타자이고. 뒤에 있는 양반이 좀 부담스럽거든.
‘의지가 강렬하네. 하긴 동점이니까.’
참고로 점수는 1대1이다.
이 망할 타자 놈들. 거들먹거리더니, 1회 이후로 한 점도 못 냈네. 니들이 사람이냐?
비록 타선이 틀어막혀 있다고는 하나, 마찬가지로 우리 쪽 역시 콱 막혀서, 동점이기에.
매니 마차도는 제법 의지를 드러내며 타석에 올랐다.
실력있는 타자가 집중력까지 갖췄다면, 대단히 까다로워지지.
“세이프!”
아니나 다를까, 과감하게 초구를 공략한 그는 유격수를 살짝 넘기는 안타를 기록하며 1루 베이스를 밟았다.
순간 맥이 탁 끊겼으나. 아직은 괜찮다. 리듬은 유지됐으니까. 껌을 빠르게 씹으며 다음 타자를 봤다.
조나단 스쿱.
오늘 경기 가장 타격감이 좋은 타자지. 멀티 히트를 기록 중이니까. 4회 초 크리스 데이비스의 안타로 홈인하면서, 첫 득점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고.
‘자신감이 대단하네.’
그래서 그런지, 앞서 매니 마차도와는 조금 다르게, 의지라기보다는, 대단한 자신감을 뽐내며 타석에 들어왔다.
리그 최고의 투수를 손쉽게 두들기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 조금 기쁘겠지만. 너무 그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좀 짜증나네. 뭐 그거 안타 두 개 친 거 가지고 유난이야.’
내 기분이 조금 나빠지잖아.
축 늘어진 것보다야 자신감 넘치는 게 낫지만, 그것도 정도껏 해야지.
초구부터 망설임 없이 시원스런 스윙이 나왔다. 그럴 줄 알았지. 자신감이 강할수록 스윙에 헤퍼지니까.
뭘 해도 되는 날이라는 생각에 일단 칠만하다 싶으면 배트부터 내밀고 보는 거지.
몸쪽으로 파고든 코스에 그는 배트를 휘둘렀고, 손맛을 느낀 건지 살짝 미소도 감돌았으나, 곧 딱딱하게 굳었다.
“아웃!”
커터였거든.
공은 우타자의 몸쪽으로 파고드는 무브먼트를 보이며, 조금 배트를 비껴 맞았고. 둥실 떠오른 타구는 가볍게 2루수가 잡았다.
그것으로 5회 초 종료.
안타 하나를 내주기는 했으나. 그 외에는 손쉽게 타자들을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렸다.
####
-스트라이크 아웃!
이후 고유석은 6회 초를 삼진 하나와 내야뜬공 두 개로 지웠다.
오늘 첫 타점을 기록했던 크리스 데이비스는 그 이상의 활약을 하지 못했고 말이다.
곧이어 6회 말. 애슬레틱스가 다시금 1점을 더 추가하며. 리드를 되찾아왔고.
그 기세를 이어, 고유석 역시 삼진 두 개를 더 추가하며, 7회 초를 삼자범퇴로 찍어 눌렀다.
7이닝 1실점 10K 6피안타 무볼넷.
비록 제법 안타를 내줬으나, 충분히 준수했던 성적을 기록하며 그는 마운드에서 내려갔고.
이후 애슬레틱스가 더 점수를 추가하지는 못했으나, 아슬아슬한 1점차 리드를 지켜내며, 승리를 챙겨왔다.
<7이닝 1실점에도 ERA가 올라가는 투수? Go는 무더위 속에서도 끄덕 없다!>
당연하게도 홈런 이후 스멀스멀 생겨났던 체력저하나 부진의 시작 같은 말들은 곧바로 조기 진압됐다.
그렇게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경기에 팬들이 웃음을 머금고 있었을 때, 새로운 소식이 새어나왔다.
[#A’s]
[구단이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던데.]
└뭐, 요즘 마케팅 하느라 바쁜 거야 늘 보는 일이잖아?
└Go가 사람들 시선 끌어주고 있을 때. 팬들 끌어모으려는 거겠지.
└그게 아니라, Go의 부모님이 직접 경기보러 온다고 하던데? 내 친구가 구단 프런트에서 일해서 잘 알아.
└그럼 이야기가 다르지. 누가 오신다고? Go의 부모님?
└오클랜드에? 어··· 솔직히 나도 로컬이긴 하지만··· 그리 좋은 풍경은 아닐텐데···
└혹시 오클랜드 보고 정이 떨어져서, Suck한테 다른 팀으로 가라고 말하는 거 아니야?
└진지하게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 그날 하루라도 제발 강도나 살인 같은 거 안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구단의 새로운 이벤트와 위대한 구세주(?) Go를 낳고, 오클랜드로 보내주신, 성모와 성령이 오클랜드로 온다는 소식이 말이다.
팬들은 그것을 기쁘게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오클랜드라는 도시가, 다른 이들에게 자랑스럽게 선보일 만한 도시는 아니었으니까.
[#A’s]
[어이, 레이더스들 집합. Go의 부모님이 오신다 거 들었지? 대책이 필요하다.]
└알아, 알아. 우리가 Suck의 부모님을 위해서 신나게 축하해드리라는 거잖아?
└하긴, 우리가 제일 Cool하긴 하지. 축하 퍼레이드라도 할까?
└제일 멋진 거 입고 가야겠네. 월드시리즈 올라가면 입으려고 아껴둔 거 있는데. Suck의 부모님이라면 기꺼이 꺼내서 입어야지!
└이참에 우리가 직접 에스코트해드릴까? 사열식처럼 우리가 다 같이 주차장에 딱 서 있는 거야. 그리고 좌석까지 모셔다 드리는 거지. 그러면 본인들 아드님께서 얼마나 우리한테 사랑받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겠어? 내 생각 어때?
└너 천재냐? 이 새끼 좀 똑똑하네.
└X발놈들아 그거 좀 쳐 입지 말고, 그런 짓 좀 하지 말라고 부탁하려고 부른 거야 X새끼들아. 니들 보고 Go 부모님이 기겁하면 어쩌려고!
마찬가지로 밖으로 내놓기 민망한 열성 팬들도 있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