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143화 (143/316)

143화

“저게 넘어가?”

“아, 진짜 트라웃, 이 개새-”

“트라웃 저 새낀 우리 팀에 도움이 안 된다니까. 기록을 여기서 끊네.”

고유석의 연속 이닝 무실점이 깨진 순간 가장 분노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바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마케팅팀이었다.

일단 연속 이닝 무실점은 현재 가장 이슈가 된 이벤트다. 수십 년만에 다시 실현되고 있는 전설이 아닌가?

단순히 오클랜드 팬만이 아니라, 모든 메이저리그가 주목하고 있는 대사건이지.

그것이 만들어낸 마케팅적인 이득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런 무실점이 깨져버린 거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이름, 마이크 트라웃으로 인해서.

또한 모든 언론과 팬들, 전문가, 심지어 구단 스카우트팀과 전력분석팀마저 역대 1위, 신기록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했기에.

기껏 수많은 이벤트를 준비했건만, 그간의 노력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버린 셈이고.

“50이닝은 그대로 진행하고. 신기록 이벤트 준비해둔 건 다 폐기해야겠죠?”

절규하는 팀원들의 모습에 팀장 역시 한숨을 내쉬면서도, 최대한 지시를 내렸다.

“그건 좀 아깝고. 일단은··· 애슬레틱스 신기록이지? 원아웃이니까, 53.1이닝이잖아?”

“네, 어··· 1910년에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때 했으니까. 107년 만이네요.”

“그럼 신기록은 그쪽으로 살짝 바꿔서 이벤트 진행하도록 하고. 107년 제대로 강조해. 애슬레틱스의 새 시대, 필라델피아에서부터 이어진 전설, 뭐 이런 식으로.”

비록 신기록 달성은 못 했으나. 그래도 충분히 역사에 남을 기록이고, 또한 기껏 준비한 프로젝트를 모두 포기할 만큼, 풍족한 팀은 아니었으니까. 애슬레틱스는.

“반응은 어때?”

“생각보다 괜찮아요. 팬들은 화가 난 것 같기는 한데. 외부 반응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리고 제법 멋진 마무리이기도 했다. 짜잘한 안타로 끝난 것이 아니라. 화끈하게 홈런으로 막을 내렸고.

그 홈런에 투수 본인, Go가 선보인 모습, 후련하게 인정하고 기꺼이 박수쳐주는 장면은 제법 그럴듯했으니까.

“60이닝으로 신기록을 달성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네.”

끄것이 그나마 아쉬움을 덜어줬다. 팬들에게도, 마케팅팀에게도. 어쩌면 또다른 마케팅을 낳을 수도 있고.

‘중요한 시기지.’

최근 몇 년 들어 이토록 일이 쏟아진 적은 처음이다. 애슬레틱스에 한 개인의 선수가 이 정도의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꽤나 오래전의 일이었으니까.

‘그나마 빅맥 정도. 그 또한 본격적으로 폭발한 건 카디널스 시절이지만.’

지금은 추악한 치터이자, 눈물이나 짜는 비겁자로 몰락했지만, 한때는 슈퍼스타였던 선수.

허나 그가 진짜 최고의 슈퍼스타로 떠오른 건. 새미 소사와 홈런 기록을 놓고 겨뤘던 1998년이다.

70홈런을 날리며, 신이 됐지. 허나 그건 카디널스지, 애슬레틱스가 아니다.

지금 Go는 투수이지만, 애슬레틱스에서 그에 범접한 신화를 쓰고 있다.

그리고 모든 메이저리그의 주목을 빨아들이고 있지. 그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관중이 늘었어.’

지난해, 애슬레틱스의 평균 홈관중 동원수는 18784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수익 분배마저 줄어들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연고지의 힘이 필요한 상황에서 마주한 절망적인 숫자니까.

전체 29위, 그 아래에는 탬파베이밖에 없다. 그렇다면 올해는?

‘2만 3천. 23%가 증가했지.’

그야말로 비약적인 상승.

평균 관중이 못해도 5천 명이 늘어난 건데. 그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물론 포스트시즌도 노려볼만한 좋은 성적 역시 이유 중 하나이지만··· 결국 핵심은 Go지.’

당장 그의 등판 경기만 봐도 알 수 있다. 양키스를 노히터로 잡으며, 본격적으로 리그 최고의 투수, 올시즌 최고의 슈퍼스타로 인정받은 이후.

그가 홈에서 등판할 때마다, 오클랜드 콜리시엄은 평균 2만8천의 관중들 동원했다. 그 숫자는 점점 증가하고 있고.

당장 중계 화면만 보더라도, 그의 출장 여부에 따라, 관중석의 밀집도가 다르다.

즉 그가 관중을 몰고 다닌다는 뜻이지. 실제로 오클랜드 레이더스에서 넘어온 팬들은 그를 따라 기꺼이 원정길을 떠나기도 했고.

‘그리고 그 인기는 단순히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이지.’

로컬 팬덤의 지지도가 관중에서 드러난다면, 전국적인 인기는 시청률로 증명된다.

애슬레틱스 경기 중계를 보는 사람들이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급격하게 증가된 관중 동원과 마찬가지로.

모두 한 명의 슈퍼스타가 이뤄낸 일이지. 결국 시청자를, 팬을 모으기 위해선 합당한 Hero가 필요하다는 뜻이고.

그렇기에 이번 시즌은 꽤나 중요했다. 그런 슈퍼스타가 만들어낸 관심을 어떻게든 구단에 정착시켜야 했으니까.

‘만약 어느 정도만 흡수할 수 있다면, 그리고 전국적인 인기의 초석을 닦을 수 있다면. 애슬레틱스는 날아오를 수 있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이 선수 한 명, 스타 하나에 기댄 것인 만큼,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지만 말이다.

‘그런 스타를 대우하는 차원에서 특별 이벤트 정도는 준비해야지.’

원래는 8월 10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 Go가 신기록을 달성할 경우.

그것과 연계하여 연달아 축제를 일으킬 생각이었지만. 아쉽게도 그건 엎어졌다.

그래도 South Korea에선 국경일이고, 미국 내에서도 어느 정도 기념일이기는 하니.

딱 좋기는 하겠지.

“그건 준비 잘 되고 있지?”

“그거라면··· 아, 네. 이제 거의 막바지입니다. 잘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Go를 대우한다는 건 잘 드러날 겁니다.”

오클랜드에도 코리안타운은 있고, Korean American들도 꽤 있으니. 그들을 코어 팬층으로 확실하게 붙드는 것도 좋을 것이고.

아마 Go를 영원히 애슬레틱스에 품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5년 정도는 오클랜드의 선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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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가··· 몬가, 일어나고 있다.

다음날, 아직 에인절스 시리즈가 한 경기 남았기에, 다시 에인절 스타디움으로 출근했을 때. 일이 벌어졌다.

“Suck?”

“어··· 예, 맞는데 혹시 무슨 일로···”

“크흠, 별건 아니고, 그냥 사인이나 하나 해줘. 그래, 야구공에다가.”

“아··· 예.”

사람들이 나한테 사인을 받았다. 이것만으로 이미 신기한 일이지. 왜냐고?

말했잖아, 너무 많이 해줘서 그런가, 요즘에는 도통 내 사인을 안 받는다니까? 이미 차고 넘친다면서. 같이 사진이나 찍고 말지.

그러니 오래간만에 펜을 놀리는 것만으로 대단히 신기한 일인데. 더욱더 놀라운 건···

‘에인절스 팬이 왜 내 사인을···’

지금 나한테 사인받는 이들이 입은 유니폼이 빨간색과 하얀색이라는 거다. 에인절스의 팬이라는 뜻이지.

꽤 나이가 있으신 어르신인데, 백발이 무성한데 머리는 풍성하네. 부럽군. 아빠 요즘 이마가 슬슬 벗겨지던데. 그러면 나도 나중에···

근데 이 영감님 어제 나한테 욕하지 않았나? 얼핏 스치듯이 얼굴을 본 기억이 나는데.

갑자기 사인을 요구한다고?

“진짜로 사인 해드려요?”

“그래, 진짜 해달라니까?”

“진짜로?”

“몇 번을 묻는 거야? 혹시 해주기 싫은 거야?”

“아뇨, 그냥 좀 신기해서요. 바로 해드리죠.”

왜? 나한테 왜 사인을 받지?

나 미워한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 미워했는데?

어제만 봐도 죽일 듯이 노려보더만. 트라웃한테 홈런 맞았을 때는 아주 박장대소를 했고. 근데 사인을 받아?

갑자기? 자기들 홈에서?

심지어 좀 우호적이다.

자기들도 이제 와서 친한 척하는 게 민망한 건지, 괜히 헛기침했지만. 눈빛이 전보다 훨씬 따뜻했다.

이렇게 따뜻한 눈빛을 원정에서 받아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아, 생각해보니 아예 없지? 이번이 처음이구만.

“예··· 여기요.”

“음··· 그래, 앞으로도 잘해라.”

심지어 덕담도 해줬어.

왜,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

차라리 욕을 해. 째려보고.

그게 훨씬 잘 어울리니까.

지금 내 심정이 어떠냐면.

평소에 아웅다웅 다투고, 매번 날 볼 때마다 혐오스럽다는 듯이 보던 같은 반 여자애가 갑자기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렛을 선물한 기분이다.

어? 생각해보니 좀 좋다?

‘뭐야, X나 좋잖아. 아니, 아니지.’

아무튼 뭔가··· 뭔가가 일어나고 있어. 너무 어색해서 그런지, 닭살이 다 돋네.

“브루스, 에인절스 팬들이 드디어 미쳤나봐! 갑자기 나한테 잘해줘! 전략을 바꾼 건가? 내가 이쪽에 약한 걸 파악하고?”

휘리릭 사인을 갈겨주고 황급히 클럽하우스로 도망쳤다.

노려보고 욕하는 건 견디겠는데. 갑자기 잘해주니까 오히려 못 버티겠네.

당황스러운 마음에 혹시 이유를 알까, 브루스에게 물었는데, 대답은 제드 라우리가 대신해줬다.

“응? Suck 니가 유도한 거 아니었어? 어제 인터뷰 그렇게 해놓고.”

“그거야 그냥 대충 눈치보고 멋진 척한 거죠.”

“아, 그래. 그런 것 같더라.”

인터뷰? 담담하게 하긴 했다.

트라웃을 좀 올려줬지.

어차피 기록 깨졌는데 투덜투덜 징징거려봤자, 기록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생각해봐.

나한테 홈런을 쳤는데, 깎아내리면 그거야말로 속좁은 X신짓이다. 나도 같이 깎이는 거니까.

누군가가 나를 이기면 상대를 최대한 추켜세워야 나도 같이 올라간다, 이 말이야. 이게 바로 인터뷰의 스킬이지.

근데 겨우 그것 때문에?

“지금 난리도 아니야. 너 기사 안 봤어?”

“숙소로 돌아가니까, 갑자기 너무 억울해져서 엉엉 울다가 잠들었거든요. 그럴 시간이 없었죠.”

갑자기 막 화가 나더라고.

애써 무덤덤하게 넘기긴 했는데. 두 달에 걸쳐서 도전했던 기록이 한순간 날아갔다고 생각하니까. 눈물까지 나오더라.

“···그래, 대단하네. 아무튼 스포츠맨쉽이 대단하다면서, 찬양하는 분위기야. 한번 쭉 봐봐. 그럼 감이 올 테니까.”

제드의 말을 따라, 유니폼으로 갈아입는 대신, 황급히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쭉 훑으니, 아주 가관이었다.

‘경쟁자의 홈런을 기꺼이 축하하는 Go?’

내가? 내가 트라웃 홈런을 축하하고 인정했다고? 아닌데? 얼굴보고 쌍욕을 박았는데? 엄지는 그냥 어쩌다보니까 눈 마주쳐서 얼떨결에 세운 거고.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나온 아름다운 장면, Go의 멋진 스포츠맨쉽?’

내가? 내가 스포츠맨쉽을 보였다고? 내가? 상대를 존중? 내가 그런 놈이었던가?

‘기록에 연연하지 않으며, 기꺼이 웃은 Go?’

아, 이건 확실히 개소리네.

아니, 울었다니까? 숙소 돌아가자마자.

속에 부글부글 끓은 것 때문에 아직도 위가 좀 쓰리다.

아무튼 이것 외에도 뭔가, 대단히 이상한 내용의 기사들이 많은데. 웃긴 건 팬들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우리 팬들이야 아쉬워하고 있지만, 그래도 멋졌다며 적당히 자축하고 있고. 다른 팀 팬들은 날 다시 봤다면서 칭찬했다.

이렇게 스포츠맨쉽이 넘치는 선수인줄 몰랐다고. 그동안은 편견에 사로잡힌 것 같다고.

심지어는 트라웃에게 기록이 깨진 것을, 내가 차라리 후련하게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만한 선수로 인해 끝난 것이니, 시원스럽게 인정하는 것이라고.

‘자의적인 해석도 정도가 있지. 이 정도면 자기들 마음대로 소설을 한편 써놨구만.’

날 무슨 프로 선수의 모범, 스포츠맨쉽의 화신으로 평가하기도 하는데···

“···가끔은 진실을 묻어둬야 할 때가 있지.”

내 원래 이미지는 X같은 애새끼가 맞겠네. 내 팬들, 오클랜드 팬들을 제외하면,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데 지금은 그 좀 많이 나간 듯한 자의적 해석으로 인해.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스포츠맨쉽이 넘치는 선수’정도가 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반응은 내가 조금 새롭게 보인다는 것이었으니까.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지.

때때로 진실을 밝히지 않는 게 더 나은 때가 있는데. 아무래도 지금이 그 순간인 것 같다.

네, 맞아요. 전 정말 스포츠맨쉽이 뛰어나답니다. 스포츠는 즐기자고 하는 거죠. 하하, 트라웃 이 녀석. X같이 홈런을 날리다니. 멋진 홈런 인정한다.

‘아, 한국은 이미 까발려졌네.’

아쉽게도 한국은 내 입모양을 읽었네. 아, 너무 허탈해서 나도 모르게 그냥 말했어. 입이라도 가렸어야 하는 건데.

한국 사람들 무섭네.

이걸 알아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정확하게 해석했어.

좀 무서울 정도야.

그래도 다들 묻어주려고 하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눈치가 빨라. 그래, 이건 우리만의 비밀로 간직합시다.

유대감 생기고 좋네.

비록 기록은 깨졌지만. 이미지는 좋아졌다. 그래도 애너하임에서 하나는 챙기고 가네.

####

애너하임 원정이 끝난 뒤.

우린 다시 홈으로 돌아왔다.

행복한 시간이지. 앞으로 9경끼 동안 쭉 홈이니까.

“아, 난 원정이 더 좋은데.”

“콜리시엄으로 돌아왔네. 쩝···”

“어떻게 홈인데 다른 구단 원정클럽하우스보다 못한지 몰라.”

“다른 팀들도 여기 오기 진짜 싫을걸. 홈팀 클럽하우스도 이 정도인데, 원정팀은 어떻겠어?”

아, 물론 콜리시엄이 싫어서, 원정을 더 선호하는 선수들이 있기는 한데. 나는 뭐, 상관없다.

아무튼 에인절스에서 느낀 어색함을 뒤로한 채, 다시 홈으로 돌아와, 경기장에 출근한 뒤. 나는 곧바로 구단의 제안을 받았다.

“부모님이요?”

“네, 지금 구단에서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는데. Go의 부모님을 초청한다면. 딱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물론 부담스러우시다면 거절하셔도 좋고요.”

“저야 뭐, 상관없고, 부모님이야 좋아하실 텐데. 시간이 있으실지가 문제죠. 일단 물어는 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경기 준비만으로도 충분히 번거로우실 텐데,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부모님을 혹시 경기장에 초청할 생각 없느냐고 묻더라고. 이벤트를 위해서.

그러고 보면, 엄마랑 아빠는 미국에 오신 적이 없다. 시간이 안 나지. 장사하고 계신데.

가만 생각해보니 나 조금 후레자식이네. 명색이 메이저리거라는 놈이 부모님 모셔올 생각은 안 하고.

‘어? 진짜 좀 나쁜놈 아니야?’

물론 연락이야 주기적으로 하지만··· 모시고 사는 것도 아니고. 경기장 관람 정도는 충분히 해드릴 수도 있으면서. 구단이 먼저 제의하기 전까지 생각도 못하다니. 반성해야겠어.

그래도 나름대로 핑계는 있다. 솔직하게 말해서···

‘여길 어떻게 모시고 와.’

옆동네, 샌프란시스코면 말도 안 해. 여긴 오클랜드잖아. 콜리시엄 일대는 그런 오클랜드 내에서도 우범지역으로 꼽히는 곳이고.

물론 경기가 있을 때는 사람이 바글거려서 좀 낫다고 하지만.

아무튼 그래서 그런 거다. 난 절대 불효자가 아니야. 솔직히 효자는 아닌 것 같긴 한데. 어쨌든 불효자는 아니야.

-아들, 왜? 무슨 일 있어? 지금 경기장에 있을 시간 아니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전화를 거니, 바로 받으시네.

하긴, 여긴 오후지만, 저쪽은 아침이니까.

“경기장인데. 잠깐 이야기할 게 있어서. 엄마랑 아빠 혹시 시간 있어?”

-아들이랑 전화할 시간은 있지.

“그 시간이 아니라, 팀에서 엄마랑 아빠 초청한다고 하는데.”

-초청?

자초지정을 설명드리니, 말은 안 하셔도 내심 뿌듯한 게 느껴졌다. 아들내미가 잘나가서 무려 메이저리그 구단이 직접 초청하겠다고 하니.

감회가 새로우시겠지.

나도 마찬가지고.

매번 용돈 타 쓰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그 용돈에 공을 세 개는 더 붙여서 드릴 수 있잖아? 실제로 그러기도 했고.

그래, 이 정도면 효자지. 효도는 원래 돈으로 하는 거야.

정성이 담긴 현금, 마음이 담긴 현금. 사랑이 담긴 현금. 이게 바로 모든 선물의 끝판왕이지.

-일단 너희 아빠랑 의논 해볼게. 아들 보러 가는 건데, 가게야 며칠 닫으면 되는 거지. 우리 아들이 명색이 메이저리거인데. 겨우 그거 아깝겠어?

아무튼 그것으로 통화는 끝났다. 오시겠네. 아빠야 뭐, 무조건 오케이일 테니까.

‘고딩 때 이후론 처음이네. 엄마랑 아빠 보는 앞에서 공 던지는 건.’

그땐 그래도 한국이니까, 시간 내서 경기 보러 와주셨는데. 미국 건너온 당연히 그러지 못했다 거기다 마이너리그는 경기 중계 찾아보기도 힘들고.

‘다다음 경기라고 했지. 특히나 더 잘해야겠네.’

다다음 등판. 로테이션을 생각하면, 아마도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상대일 텐데. 그날 잘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기껏 아들 경기 보러 미국까지 오셨는데, 평범하게 잘해서 쓰나.

‘준비 제대로 해야겠어.’

X나게 잘해야지. 그래야 면이 살잖아. 부모님 앞에서 못하면 그거야 말로 진짜 불효지, 불효.

물론 일단 다음 상대인 볼티모어 오리올스부터 잘 조지는 게 우선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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