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Go가 퍼펙트를 했다.
그것이 달성된 순간. 소식은 순식간에 사내에 퍼져나갔다.
누군가 굳이 소식을 옮길 필요도 없었다. 모든 언론이 그 이야길 했으니까.
미디어, 언론과 친밀할 수밖에 없는 에이전트의 특성상, 모를 수가 없는 일이지.
“진짜 대단하긴 대단해.”
“보는 눈이 다른 건가?”
“마이너 애송이한테 올인한다고 해서 미친 줄 알았더니···”
이른 아침, 회사를 찾은 브라이언은 자신을 향한 수군거림에도 평소처럼 무표정을 유지했다.
이미 숱하게 들었으니까.
사실 퍼펙트게임 이전에도, 그는 이미 수많은 부러움 그리고 질투의 주인공이었다.
영화 같은 일이 아닌가?
서서히 떠오르던 마이너리거.
하지만 플루크일 가능성이 높은 선수에게 올인한 에이전트와 결국 최고로 올라선 선수.
영화도 이런 영화가 없지.
처음에는 마이너 선수 하나 맡기 위해, 기존 고객을 포기한 그를 비웃거나, 감을 잃었다며 조롱하는 말이 제법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브라이언, 일찍 출근하셨네요?”
“이야기는 들었어. Go가 퍼펙트를 하다니, 진짜 좋겠네. 사실상 브라이언 네가 키워낸 거잖아? 자랑스럽겠어.”
친근하게 다가왔다.
똑같은 에이전트, 직원이 아니라. 언젠가 회사를 떠나, 슈퍼 에이전트가 되어, 자신의 회사를 세울 지도 모르는 존재가 되어버렸으니까.
자기들도 거기에 한몫을 하고 싶다는 거겠지. 에이전시의 일개 직원과 새로운 슈퍼 에이전트의 개국공신은 다른 이야기니까.
그런 이들의 존재는 브라이언에게 그 자신의 입지가 어떠한지 대신 설명해주고는 했다. 또한 얼마나 견제를 받을지도.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빨리 왔군. 앞에 앉게.”
브라이언은 본인의 사무실이 아닌, 꼭대기, 사장실로 향했다. 오늘 굳이 회사를 찾은 이유가 그곳에 있었으니까.
“일단 축하하네. Go가 퍼펙트마저 해버리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야.”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보스, 스캇 보라스는 푸근하게 웃으며 살갑게 반겨줬다.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것처럼.
“네, 그렇죠. Go는 분명 최고의 선수이지만, 퍼펙트게임은 단순히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니까요.”
상대가 미소로 나온다면, 똑같이 미소로 나와야지. 브라이언은 그의 의도를 짐작하면서도, 가볍게 웃었다.
‘뭘 원하는 거지?’
스캇 보라스, 슈퍼 에이전트는 이미 한 차례 공격을 가했었다. 차량 지원과 매니저 지원을 빌미로. 그러다가 Go에게 걸려서, 차량 렌트비만 뜯기고 끝났지만.
그것이 몇 달 전인데.
한동안은 잠잠하더니.
다시금 그를 호출했다.
퍼펙트게임 직후라는 꽤나 공교로운 시기에. 단순히 살갑게 축하하려는 건 아니겠지.
‘Go는 이미 거물이 됐어.’
단순히 가망 있는 루키를 넘어, 리그 최고, 역대 최고의 시즌을 보내는 정점의 투수.
그 가파른 성장세는 에이전트인 브라이언조차 조금 버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니 이제부턴 본격적인 전면전이 시작되겠지. 잭팟이 터졌으니. 카지노에서 손님을 가만히 둘 리가 있나.
“일단 고맙다는 이야기부터 하지. 자네의 그··· 과감한 투자 덕분에. 코퍼레이션의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졌어. 유망주를 잘 키워낸다는 이미지는, 향후 드래프트 계약에도 큰 도움이 되겠지. 다 자네 덕분일세. 아마추어 전담팀에서도 자네 칭찬을 많이 하더군. 덕분에 일이 수월하다면서.”
시작은 언제나 칭찬이다.
칭찬받을 일이 맞기는 하지.
졸지에 애매한 마이너리거를 빅리그 최고의 투수로 키운 에이전시가 되어버렸으니까.
하지만 단순히 그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텐데. 이번에도 에이전트를 바꾸자고 할 생각인가?
‘어쩌면 전면으로 나올 생각일 수도 있겠지. 그때보다 더욱더 급진적으로.’
명분은 있다.
루키라고는 하나. 엄청난 성적을 올렸으니. 합당한 보상을 받기 위해, 스캇 보라스 본인이 나서서 구단을 압박하겠다. 아주 좋은 말이지.
실제로 그렇게 구단을 압박하여, 좋은 결과를 얻어낸 적이 수두룩하고. 그렇기에 메이저리그의 악마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은근하게 본인이 전담하는 방식으로 간다면···’
대처하긴 꽤나 까다로울 거다. 스캇 보라스라는 슈퍼 에이전트가, 이젠 에이전스의 얼굴이 된 선수를 직접 맡겠다는데. 거기다 대고 뭐라고 반대를 하겠는가?
그 외에도 수만 가지 가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브라이언은 줄곧 미소를 유지했고. 약간의 침묵 뒤, 스캇 보라스는 상자 두 개를 꺼냈다.
“별건 아니고, 자네를 직접 부른 이유는 이것 때문이야. 엄청난 업적을 이뤘는데. 에이전시 입장에서도 무언가 선물을 해줘야 좋은 관계가 유지되겠지. Go를 보러 갈 건가?”
“그래야죠. 퍼펙트게임을 했으니. 보스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직접 축하를 드려야, 좋은 관계가··· 유지될 테니까요. 또한 여러 가지 비즈니스도 있고요.”
미묘한 말. 그것에 스캇 보라스의 눈살이 아주 조금 좁혀들었다. 좋은 관계, 그 대상이 에이전시가 아니라는 걸 잘 아는 거겠지.
사실 이건 어느 정도 거짓말이다. 솔직한 이유로는, 그냥 순수하게 그를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니까.
“그래, 그렇지. 그럼 가는 길에, Go에게 이걸 전해주겠나? 아무래도 어린 선수이고. 리그 최고의 투수라고는 하나, 겨우 최저연봉만 받는 처지이니. 선수가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는, 이런 건 우리 쪽에서 대신 해주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보라스는 두 개의 상자를 브라이언에게 밀었고, 가볍게 확인한 브라이언은 그의 의도를 깨달았다.
‘전략을 바꾸시겠다?’
지난번, 급진적으로 달려들었던 게 잘 안 먹혔으니. 이젠 방식을 바꾸겠다는 거다.
“직접 전해주게. 그리고 정말 축하한다는 말도 전해주고.”
“예, Go에게 전해드리죠. 아마 크게 기뻐하겠군요.”
“그랬으면 좋겠군.”
이번에도 급하게 달려들어, 괜히 관계가 상하기보다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조금씩 환심을 사겠다는 것이지.
이렇게 차근차근 빚을 지워두다 보면. 결국 그 무게에 때때로 방향이 바뀌기도 하니까.
여전히 미소를 띤 채, 자신을 바라보는 보스를 보며, 살짝 어금니를 물은 브라이언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챙겼다.
‘날, 찌를 무기를 내가 직접 들고 가는군.’
품속에서 느껴지는 상자의 묵직한 무게감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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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게임을 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지진 않았다.
그거 한 번 했다고, 또 달라지기엔, 난 이미 너무 커버렸거든.
“잘 듣고 계십니까?”
-···애들 가르쳐야 하니까, 좀 가라. 커트 앵글. 왜 나한테 자랑하고 난리야? 이거 참 웃긴 놈이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 그렉이 못해본 노히터를 두 번, 심지어 그중 한번은 퍼펙트-”
-Fuckoff.
대신 자랑질은 가능하지.
거 영감님 나이도 많이 먹으신 분이 입이 험하시네.
대학생 애기들 가르치시는 분께서, 말씀을 조심하셔야지.
온갖 연락이 다 왔다.
뭐, 노히터 때도 그랬으니까.
그중에서 떨떠름하게 보낸 티가 확 나는 그렉의 메시지에 전화를 걸어 놀려대니. 아주 반응이 좋구만.
그의 반응을 보니, 새삼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저질렀는지 아주 잘 알겠다.
현대야구 최고의 선수라고 불리는 그렉 매덕스도 못한 일 아니야?
그런 의미에서 마침 잘 걸린 그렉을 놀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뒤척였을 때. 문득 침대 옆 탁상에 놓인 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용케 챙겨왔네. 죄다 물고 빨고, 들고 던져서 정신없었는데.’
별건 아니고. 저게 어지 마지막 공이다. 무려 퍼펙트게임 기록구다 이거지.
브루스가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찔러 넣어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잘 들고 왔네.
전 세계에 스물네 개밖에 없는 리미티드 에디션인데. 중간에 잃어버렸으면 진짜 울었을 거야.
그걸 보니, 절로 흐뭇해졌다.
짜릿해, 너무 좋아.
역시 퍼펙트가 최고야.
내가 누구? 퍼펙트게임 투수.
“자, 그럼··· 쓰읍-”
뿌듯한 미소를 짓다가, 이를 꽉 깨문 뒤 일어났다. 아마 엄청난 격통이 닥칠 테니까.
완투하면 몸이 작살나거든.
그래도 기쁨의 통증이지.
다른 것도 아니고 퍼펙트게임의 여운인데, 이건 아픈 게 아니라, 훈장이지, 훈장.
“생각보다 괜찮네?”
그런데 의외로 몸은 괜찮았다. 물론 피곤하긴 한데, 막 죽을 정도는 아니야. 어제 컨디션이 진짜 장난 아니게 좋긴 했나 봐.
완투를 했는데도 적당히 피곤한 정도인 걸 보면. 하긴, 그러니까 퍼펙트를 했겠지.
구단에선 그냥 쉬라고 했다.
클럽하우스도 오지 말고. 덕아웃도 오지 말고. 그냥 닥치고 쉬라고. 아마도 피로가 만만찮을 걸 예상한 것 같은데. 딱히 안 그래도 되겠네. 지금 몸 상태면. 물론 휴가를 마다하진 않겠지만.
‘꽤 됐네. 진짜 죽은 듯이 잤구만.’
시간은 이미 상당히 늦었다.
벌써 늦은 오후네. 이러면 대체 몇 시간을 잔 거야? 이러니까 몸이 멀쩡하지.
평소 칼같이 수면시간을 유지하는 편이지만. 오늘 만큼은 대니얼도 그냥 자게 내버려 뒀나보다.
“어? 브라이언 웬일이에요?”
“방금 막 왔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퍼펙트 게임을 하셨는데. 직접 봐야죠.”
대충 씻고, 비틀비틀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대니얼 대신 브라이언이 반겨줬다.
요즘 내가 별짓을 많이 해서 그런가, 자주 보네. 환한 미소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인 그는 내가 자리에 앉자 몇 가지를 이야기해줬다.
뭐, 별건 아니고.
다 비즈니스지. 퍼펙트게임 기념 굿즈, 추가적인 스폰서 계약, 스포츠 잡지에선 날 표지 모델로 쓰고 싶다고도 하고.
“화보요? 저요? 벗고 찍는다고요? 제가요?”
“음··· 네, 충분히 당혹스럽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합니다. 슈퍼스타의 전유물이죠. 그만큼 Go의 브랜드 가치가 높다는 뜻이죠.”
“그런 전유물은 별로···”
뭐··· 진짜 별게 다 있네.
비몽사몽 듣다가, 깜짝 놀랐네. 화보? 내가? 벗고 찍어? 탱탱한 오일바디? 이야~ 상상만 해도 토가 쏠리는데?
내 화보가 대체 왜 가치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추가적인 스폰서는 솔직히 좀 그렇고. 굿즈는 구단에서 알아서 해달라고 해주세요.”
“네, 저도 솔직히 이 이상의 계약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내년에 몰아서 하는 게 낫겠죠. 그럼 말씀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아, 브라이언 혹시 시간 나면 저 좀 도와줘요. 롤렉스를 사야 하는데, 뭐가 좋을지 모르겠어서.”
비즈니스는 대충 그쯤으로 하고. 브루스에게 시계를 사줘야 하는데, 뭐가 좋을지 모르겠다.
노히터 했을 때 지샥을 사주긴 했지만, 이번엔 진짜 롤렉스를 사줘야 하는데. 내가 뭘 알아야 말이지. 막말로 나도 시계를 안 차고 다니는데.
멋쩍게 웃으며 말하니, 브라이언은 왠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Mr··· 보라스의 선물입니다. 퍼펙트게임을 성공하신 걸 축하한다고 전해달라더군요. 이쪽은 포수 분께 드리고. 이건 Go 본인이 사용하십시오.”
스캇 보라스의 선물이라. 그래서 표정이 안 좋았구만.
상자 안에 든 건 시계였다.
롤렉스 말이야. 오늘 쉬는 김에 나가서 사려고 했더니. 선물이 들어왔네.
의도는 알 것 같다.
축하를 빌미로, 이런 식으로 나랑 관계를 만들겠다는 거겠지.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마음은 감사한데, 거절한다고 대신 전해주세요.”
또 그렇다고 먹을 이유도 없지. 차량 렌트비 정도야 에이전스 차원의 지원이지만···
‘이건 명백히 ‘선물’이지.‘
브라이언도 그랬잖아? 선물이라고. 슈퍼 에이전트와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게 참 영광스럽긴 한데. 여기부터는 확실하게 거절해야 한다.
‘하나 받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계속 받아야 하니까. 그러다 보면 나중에 이런 거 하나하나가 걸림돌이 되는 거고.’
물론 받아먹기만 하고 입 싹 닦을 수도 있겠지만. 별로 좋은 말이 나오지는 않겠지.
그런 건 사양이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이랑 천년만년 함께할 생각도 아니니까.’
내가 거절하는 건 예상하지 못한 건지, 브라이언은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좋으면서 그러시네.
“시계 있어봤자 어차피 쓰지도 않고. 그리고 명색이 퍼펙트게임 선물인데. 선물로 돌려막기 하면 좀 그렇잖아요?”
막말로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나 부자야. 통장에 안 쓰고 모아둔 스폰서 계약금이 얼만데.
“이건 됐고. 나중에 같이 시계나 보러 갑시다. 선물은 직접 사야죠.”
“···예, 그래야죠. 아, 롤렉스의 정식 매장은 샌프란시스코 쪽에 있으니, 베이 브릿지를 건너야 합니다. 오클랜드에도 판매하는 곳이 있긴 하겠지만. 그리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브라이언은 피식 웃으며 열심히 설명해줬다. 이런 건 또 언제 알아봤대?
정식 매장은 오클랜드에 없다니, 하긴, 오클랜드랑 롤렉스는 좀 안 어울리지. 근데··· 베이 브릿지를 건너야 한다면···
“샌프란시스코? 저 다리 건너면 맞아 죽는 거 아니에요?”
내가 어제 퍼펙트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한테 했는데. 롤렉스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서 포수한테 준다고?
‘이거 능욕 아니야?’
자이언츠 팬들한테 걸리면 그냥 린치 정도론 안 끝날 것 같은데? 그냥 선물 감사히 받을까? 이것도 다 사람 간의 정인데. 거절하는 것도 좀 그렇지.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생각에 심각하게 고민됐지만. 눈 딱 감고 상자를 밀었다. 그래, 설마 죽기야 하겠어.
물론 내가 자이언츠 유니폼 입고 오클랜드한테 퍼펙트한 다음 다리를 건너서 롤렉스를 사야 했다면. 기꺼이 이 선물을 받았을 거다. 왜냐고?
-어젯밤, Go의 퍼펙트게임이 이루어진 당일, 이스트 17번가에서는 사건이···
지역뉴스 봐라. 그럼 알아.
마침 나오고 있네.
음, 그렇군, 강도가 발생했군.
살인이 아니라니, 다행이네.
‘이놈의 도시는 무슨 매일 같이···’
여긴 진짜 좀 아니야.
물론 나한테는 사람들이 다 엄청 친절하고, 눈만 마주쳐도 순수한 아이처럼 좋아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 아니야.
####
퍼펙트를 당한 굴욕을 만회하려는 건지, 자이언츠는 2차전에서 시원한 폭발력을 보여줬다.
선발투수로 나온 션 마네아에게 무려 6점을 빼앗아내고, 그 뒤에도 4점이나 냈으니까.
10대4. 아주 처절한 복수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겨우 그 정도로 퍼펙트가 지워지나.
어제 베이 브릿지 건너서 몰래 시계 살 때 보니까, 오히려 욕하더라. 전날에 진작 그렇게 좀 하지 그랬냐고.
“선물 받아라.”
아무튼 그렇게 자이언츠와 홈 시리즈가 끝난 뒤, 다음 날.
AT&T 원정을 앞두고 베이 브릿지를 건너기 전. 위풍당당하게 클럽하우스에 들어서니. 선수들이 일제히 바라봤다.
“이야, 기세가 다르다, 기세가 달라.”
“이게 퍼펙트게임의 후광인가? 눈이 멀어버리겠네.”
“와, 저 자신감 있는 미소 좀 봐, 진짜 좀 역하다.”
“양손 무겁게 해서 왔네.”
“나도 어제 하나 잡았는데, 안 주겠지?”
“솔직히 그거 잡고 롤렉스 받을 생각 하면 안 되지.”
음, 그래, 그렇게 봐야지. 퍼펙트게임 투수님을 잘 경배하는군. 아주 마음에 들어.
특히 브루스는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환한 얼굴로 주춤주춤 다가왔다.
너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냐?
“옛다.”
“오··· 오오오! 오오오오오!”
울겠네, 울겠어. 그렇게 좋냐? 브라이언과 심사숙고 끝에 엄선한 롤렉스를 건네주니. 브루스는 양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으며, 마치 불을 처음 발견한 원시인처럼 우가우가 거렸다.
그러더니, 지금까지 잘 차고 있던 지샥을 휙 풀어서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황급히 착용하는데.
너 인마 r 지샥도 내가 선물해준 거야. 소중하게 다뤄야지. 가격에 따라서 대우가 너무 다르네.
“수고 많았어. 공 잘 받던데,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라.”
“그-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충성충성! 평생 개처럼 받겠습니다! 내가 퍼펙트게임 선물을 다 받다니. 평생, 아니 대대로 가보로 간직할게!”
띠리링! 브루스 맥스웰의 호감도가 상승했다!
왠지 이런 효과음이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군. 생각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괜히 뿌듯하네. 역시 직접 고르길 잘했어.
아무튼 브루스한테 증정식 해주는 건 이걸로 됐고. 아직 한 명이 더 남았다.
“오냐, 그리 기뻐하는 것을 보니, 나도 참으로 좋구나. 맷은 어딨어?”
“어떤 맷?”
어떤 맷이라.
그러고 보니 우리 팀에 맷이 두 명이지? 맷 조이스랑 맷 채프먼. 잠깐 콜업 했다가 얼마 전에 다시 트리플A로 강등된 맷 올슨까지 합치면 셋이나 되네.
“어린 맷.”
“Suck 니 뒤에 있네.”
내가 지칭한 맷은 맷 채프먼이다. 선수단에선 어린 맷이로 불리지.
“채프먼, 너도 하나 받아라.”
“나? 나는 왜?”
“버스터 포지 안타 잡았잖아. 그거 아니었으면 퍼펙트 깨졌는데. 너도 하나는 받아야지. 브루스보단 좀 싼 거긴 한데, 그래도 롤렉스야.”
설마 자기도 받을 줄은 몰랐던 건지, 맷 채프먼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몸을 덜덜 떨었다.
기분 째지네. 락하운즈 때만 하더라도, 맷 채프먼은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갑부’였다.
보너스 베이비잖아. 1라운드에 지명된. 나랑 받은 계약금 레벨이 다르지.
그런 녀석에게 롤렉스를 선물하며 돈지랄을 하다니. 고유석, 멋지게 성공했네.
“얘도 받을만 하지.”
“솔직히 난 그거 그냥 안타라고 생각했어.”
혹시나 얘한테만 특혜를 주는 것 같아서, 다른 야수들이 반발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눈치는 아니네.
하긴, 사실 어제 퍼펙트는 내 원맨쇼였으니까. 그나마 퍼펙트에 확실하게 한몫을 한 건 얘밖에 없지.
안타 하나를 막아낸 호수비였기 때문인지, 다른 이들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Suck 나도 땅볼 두 개 잡았는데. 혹시 뭐 없어?”
“네, 없어요.”
“···서운하네. 내가 이때까지 네 경기에서 잡아준 타구가 몇 갠데. 어린놈들끼리 잘해봐라.”
2루수인 제드 라우리는 빼고.
이 아저씨는 나이도 많이 드신 분이 왜 이래. 연봉도 두둑하게 받는 양반이 말이야.
직접 사세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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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AT&T에서 1승1패>
<2승2패, 동률로 끝난 베이 브릿지 시리즈. 허나, 자이언츠의 완패?>
AT&T 원정에서 애슬레틱스가 1승1패를 거두며, 베이 브릿지 시리즈는 서로 2승씩 나눠갖는 방식으로 끝났지만. 누구도 그걸 무승부라고 보지 않았다.
퍼펙트게임, 심지어 맷 케인이 세운 최다 탈삼진마저 강탈당한 자이언츠가 더 말할 것도 없이 완패였으니까.
<37이닝 'Zero' ERA 65K, Go의 질주는 후반기에도 계속된다!>
자이언츠 시리즈가 끝난 직후.
이달의 투수 발표가 나왔다.
이미 고유석이 받을 것이라는 평가가 주류였으나, 네 달 연속 수상은 역대 최초인 만큼, 당연하게도 박수가 이어졌지만. 최초라는 타이틀에 비해 생각보다 반응은 적었다. 사람들이 기대한 건 따로 있었으니까.
<목표는 다저스! Go, 돈 드라이스데일과 오렐 허샤이저를 노려라!>
[#A's]
[이제 11이닝 남았지? 진짜 코앞이네.]
└6이닝 무실점 두 번만 하면 돼. 그럼 신기록이야.
└6이닝 무실점 두 번? 다른 투수라면 몰라도, Go한텐 X나게 쉽네.
└그럼그럼, 이번 시즌 완봉만 노히트, 퍼펙트 포함해서 네 번 했는데. 6이닝 무실점이야, X나게 쉽지.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이 이젠 정말 가시권에 들어왔으니까.
이미 48이닝으로 역대 5위, AL 3위로 올라섰으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만큼. 이젠 그 정도로 만족하는 사람은 없었다. 딱 50이닝만 채워도 만족이라며 외쳤던 팬들도 탐욕스러운 눈으로 기록을 바라봤고.
마침 다음 상대도 나쁘지 않았다.
<신기록을 향한 Go의 끝없는 질주! 다음 목표는 에인절스?>
<상대전적 14IP 20K ERA 0, 에인절스의 사신이 돌아왔다!>
마침 다음 상대가 고유석 신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에인절스였으니까.
리그 최고의 투수이지만. 특히나 같은 서부지구 팀들에겐 사신과도 같은 성적을 기록 중인 고유석이기에, 팬들은 기대감을 가득 품은 채, 경기를 지켜봤고.
반대로 에인절스 팬들 역시 경기를 기다렸다. 부디 이번에야말로 트라웃이 그 오만한 애송이의 공을 담장 너머로 날려주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