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데드라인이 다가올수록. 트레이드 시장은 더욱더 활발해진다. 마치 마지막 회광반조를 일으키는 것처럼.
정규시즌 내에서의 마지막 찬스니까. 때때로 뜬금없는 트레이드 하나가 팀의 성적을 바꿔놓기도 하고.
“양키스에요. 당장 바꾸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엿이나 먹으라고 전해줘.”
“네, 글자 하나 안 빼놓고 그대로 전할게요.”
그런 의미에서 현재 애슬레틱스는 너무나도 탐스러운 자원을 가지고 있었다.
유망주를 바라는 이들에겐 프랭클린 바레토나 프랭키 몬타스 같은 좋은 자원이 있고. 반대로 윈나우를 바라고, 에이스급 투수가 필요한 팀에겐 소니 그레이라는 아주 그럴듯한 매물이 있었으니까.
거기다 현재 AL 서부지구 2위. 윈나우를 노리기에도, 리빌딩 혹은 리툴링을 이어가기에도 조금은 미묘한, 중간에 걸친 성적도 충분히 고려할 만한 사항이었고.
“시끄럽게 쪼아대는군.”
빌리 빈은 매일, 매시간, 매분마다 걸려오는 전화에 지친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사람을 괴롭히는 것에 도가 튼 놈들이다. 물론 자신도 똑같은 놈이긴 하지만. 하여튼 메이저리그의 단장이라는 놈들은 하나 같이 귀찮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좀 나아진 거지만.’
우스운 건, 이 귀찮은 상황조차 이전에 비하면 낫다는 거다. Go가 데뷔하고, 아직 시즌이 초반에 불과했을 무렵.
그때는 정말 모든 구단이 달려들었으니까. 유망주 패키지, 베테랑 패키지, 거기에 현금까지 얹어주겠다는 놈들까지.
죄다 Go에게 군침을 흘리며, 온갖 종류의 사탕발림을 했었으니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단순히 일시적인 폼이 아니라, 진지하게 리그 정상을 노려 볼 만한 선수라는 게 검증된 이후에는 숫자는 줄었지만, 규모는 더욱더 커졌었다.
자기들도 무언가 확실하게 내줄 수 있는 놈들만 남아서, 잊을 만하면 트레이드 제안을 보냈었지.
‘그때 보다는 낫지. 꿈에서 깨어났으니까.’
이제는 아니다.
Go는 더 이상 트레이드 따위로 감당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게 됐다.
몸값이 너무 많이 오른 탓에, 트레이드로는 뭘 어떻게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절대로 맞춰줄 수가 없어졌으니까.
‘소니, 바레토, 시미언, 그레이브맨. 이 정도인가?’
가장 불이 붙었던 Go가 빠진 현재, 애슬레틱스의 트레이드 매물들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매물들이지. 그렇기에 다른 팀들도 노리고 있고.
프랭클린 바레토와 마커스 시미언은 둘 다 유격수라는 포지션 특성상 값이 나갈 수밖에 없다. 시미언은 즉전감이고, 바레토는 유망주지.
그렇기에 둘 다 팔수는 없다. 이 정도의 유격수는 흔하게 나오지 않으니, 한 명은 쥐고 있어야지.
‘켄달은··· 나쁘지는 않지. 나쁘지는.’
켄달 그레이브맨은 무난한 4~5선발 정도의 투수니. 투수진이 약한 팀이라면 마다하지는 않을 매물이다.
‘그리고 소니는···’
소니 그레이.
2선발로서 애슬레틱스의 세컨드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다.
적어도 오클랜드에 한해서는 압도적인 원탑 투수였지만. Go라는 초신성의 등장으로 조금 밀려났지.
거기에 부상이 잦고,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걸 팬들도 잘 알고 있기에, 그를 판매한다면 반발은 있겠지만, 아예 반기를 들지는 않을 거다.
판매할 수 있는 선수들 중 현시점에서 가장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선수인 셈.
‘리빌딩을 바란다면··· 가장 적합한 매물이야.’
유망주를 긁어모을 수 있을 테니까. 특히 양키스는 지금도 지속적으로 제안을 보내고 있고.
만약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눈물을 머금고 보냈을 거다. 씁쓸하겠지만, 빠르게 결단을 내렸겠지.
단기결전에서 수준급 선발투수의 영향력이 크다고는 하나. 애슬레틱스는 그 단기결전 포스트시즌에 나갈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군.’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당장 이번 시즌만 하더라도, 포스트시즌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으니까.
‘만약 소니를 지키고, 다시 도전을 위해 리툴링을 한다면. 두 가지를 채워야겠지.’
리툴링과 리빌딩. 둘 중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오클랜드에 무엇이 필요하냐는 것.
“불펜, 그리고 확실한 득점.”
먼저 불펜은 최소한 애슬레틱스와는 거의 모든 세월을 함께한 난제다.
스몰 마켓이고, 자금력이 떨어지다 보니, FA 수급이 불가능하기에, 선발과 불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으니까. 둘 다 가질 수는 없지.
다행히 시즌 전만 하더라도 5인 로테이션조차 애매할 만큼 완전히 박살난 상태였던 선발진은 그럭저럭 완성됐다.
그것도 상상이상으로.
Go라는 역대급 복권이 터지면서, 에이스의 선발진은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를 통틀어 못해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
‘그러니 준수한 클로저 한 명만 추가된다면. 투수진은 완성이야.’
그런 오클랜드에게 필요한 건 확실한 클로저였다.
현재 클로저인 산티아고 카시야는 위험성이 너무 크다. 경기를 끝내는 Closer라기엔 심하게 불안하지.
그렇다고 해서 대신 클로저로 올릴 만한 투수도 현재 불펜에는 없고.
‘그나마 리암 헨드릭스가 싱커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서 좀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은 부족해. 아직까지는 셋업맨 정도지.’
그러니, 막강한 선발진이 내려간 뒤에도 팀의 승리를 지킬 수 있는 클로저가 필요했다.
두 번째로 필요한 건 일정한 클러치 능력이 있는 타자다.
올해 애슬레틱스의 타선은 생각보다 제법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크리스 데이비스가 콜리시엄에서도 예상보다 더 강력한 파워를 뽐내줬지.
그를 중심으로한 타선의 파워 자체는 준수하나···
‘공갈포야. 한 경기에 몰아서 치는 경향이 너무 심해.’
타선에 일정함이 없다.
어느 날은 10점씩 내다가도 어떤 날은 고작 1~2점에 그치며, 민폐를 끼칠 정도로.
타자들이 죄다 공갈포 성향이 짙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아무리 투수진이 완성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점수가 없으면 이기지 못한다.
‘이길 경기만 확실하게 이겼어도, 지구 1위는 힘들겠지만. 와일드카드 경쟁에선 확실하게 선두주자가 됐겠지’
이 두 가지가 현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가장 큰 문제점인데. 어쩌면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난 게, 지난 블루제이스전이었다.
1차전과 3차전.
막판 끝내기 역전홈런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불펜의 문제점이 드러난 셈이지.
특히나 3차전은 Go의 등판 경기는 타자들의 지지부지한 득점까지 터지며, 확정된 승리가 날아갔었고.
‘불펜은 어떻게든 수급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타자인데···’
가장 해결하기 힘든 문제는 타자다.
불펜 자원은 언제나 넘쳐난다. 결국 선발투수와 달리 소모품이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1~2년 정도 써먹을 불펜은 어떻게든 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득점력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타자는 아니다. FA가 아닌 이상, 수급하는 게 쉽지는 않지.
그러니 소니를 지키고 선발진을 유지해서, 대권을 노린다고 하더라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겠지만. 들려오는 소문이 있기에 빌리 빈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말린스의 파이어세일.’
마이애미 말린스가 또 한번 내년 파이어세일을 할 수도 있다는 소문 말이다.
아직까지는 찌라시에 불과하지만. 이미 언론에서도 자주 언급하고는 했다.
말린스의 전적을 고려하면,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고.
올해 초, 컨소시엄을 통해 구단이 매각된 뒤, 새로이 등극한 구단주와 사장으로 부임한 데릭 지터가 구단의 체질 개선을 바란다는 것이야 업계에선 이미 유명했으니까.
‘긴축재정이 필요한 시기이기는 하지. 리빌딩과 탱킹이 동반돼야 할 테고.’
말린스의 핵타선 중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거론되는 선수는 괴물 같은 파워를 뽐내고 있는 지안카를로 스탠튼이다.
말린스 사상 역대급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게 불과 재작년이건만.
결국 말린스가 그 규모를 결국 감당 못 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으니까.
‘스탠튼은 제외. 어차피 감당 못해.’
하지만 그는 애초에 애슬레틱스가 노릴 체급이 아니다.
구단 재산일 죄다 팔아치워도, 절대로 감당 못 할 몸값이니까.
구단주가 갑자기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해주거나. Go의 파생 효과로 Korea 쪽 기업에서 엄청난 스폰서 계약을 제안하는 게 아닌 이상은.
‘그러면 남은 자원 중 가장 좋은 건 오즈나. 디 고든. 그리고 옐리치.’
그를 제외한 나머지 탐스러운 자원은 이 셋이다. 셋 모두 말린스의 핵심 코어이고. 어느 팀이든 탐낼 선수들이지.
관건은 그것이다.
그 엄청난 계약 탓에 스탠튼이야 확정적으로 팔아치운다고 하더라도. 과연 이들까지 매물로 나올까?
그러면 단순히 개미털기를 넘어서, 마이애미라는 마켓 자체가 말린스를 완전히 등질 텐데?
‘만약 가능만 한다면. 셋 중에서 우리가 노릴 선수는 디 고든과 옐리치야.’
디 고든은 비록 야구 경력은 짧지만, 수준급 테이블 세터이기에, 한방이 있는 오클랜드 타선에 좋은 윤활유가 되어줄 거다.
크리스티안 옐리치는 어떻게든 사용할 수 있는 툴을 갖추고 있으니, 당연히 탐스러운 자원이고.
‘만약 노린다면, 팜을 아예 털어야겠지만. Go가 지금 터졌고. 소니가 계속 성적을 내고 있는데. 이 이상의 적기가 있을까?’
도전해서 실패한다면, 오클랜드는 미래를 잃을 거다. 나락으로 치닫겠지. 하지만 어차피 다 도박이 아닌가?
쥐고 있는 유망주들이 미래에 코어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것 역시 도박이지.
“앞으로 트레이드 제안은 일단 다 연기해둬.”
“어··· 전부 다요?”
“다. 아직 데드라인까진··· 아직 조금 더 남았으니까.”
그렇다면, 조금 더 리스크가 크더라도. 리턴 역시 큼직한 판에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않은가?
그런 유혹의 목소리가 빌리 빈의 귓가에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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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Suck, 혹시 불편한 곳은 없으신지요?”
“혹여 무언가 바라시는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저를 호출하십시오. 바람처럼 빠르게 달려오겠사옵니다.”
“물.”
“다 내 눈앞에서 꺼져! 길에서 비키라고! Suck께서 물이 마시고 싶다고 하신다!”
“물! 빨리 물을 가져와! Suck께서 목이라도 타시면 너희들이 책임질 거야?”
나쁘지 않군.
왜 폭군이 생기는지 알겠어. 권력의 힘이란 이토록 달구나. 아주 좋아.
왜 갑자기 지랄이 풍년이냐면, 토론토전 이후로 동료들이 하인을 자처해서 그렇다.
지은 죄가 있어서 그런가. 아주 극진하게 모시고 있지. 슬슬 자기들도 재밌나봐. 무슨 중세시대 상황극까지 하네.
그치, 선발투수가 7이닝 무실점으로 지리게 막았는데. 타자 놈들이 고작 2점내서 말아먹었으면. 하인이 아니라, 노예가 되도 모자라지.
심지어 그게 한두 번이 아니라면 말이야.
“여기, 여기 물을 대령했사옵니다.”
전속 하인이나 다름없는 브루스 맥스웰은 물이 무슨 신성한 성수라도 되는 것처럼 양 손으로 떠다 받쳤다.
부담스럽고, 왠지 좀 바보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좋구만.
그래, 이 미천한 것. 앞으로도 날 이렇게 성심을 다해 모시 거라.
“좋구나. 이것이면 충분하니, 이만 가보거라. 그런데 산티아고는 어디 있느냐?”
“그 불민한 자는 아무래도 Sir Suck을 피하시는 것 같사옵니다. 그자를 이곳으로 부를까요?”
“되었다. 같은 투수로서 홈런이라는 비극을 맞이한 이에게 내 어찌 쓴 소리를 하겠느냐. 내 그저 홀로 자책하고 있을가, 걱정되는 것이니. 괘념치 말거라.”
“역시, Suck께선 참으로 자비로우십니다.”
멋들어진 역전 쓰리런을 맞은 산티아고 카시야는 아예 날 피하는 눈치다.
타자들은 중세시대 놀이라도 하면서 날 달래려고 하는데, 그 양반은 나만 보면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도망가기 바쁘더라고.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나 그렇게 나쁜 놈 아니야. 겨우 승리 하나 날려먹었다고 동료 패고 그런 놈 아니라고.
그냥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위로해주려고 했더니. 자기 혼자 찔려서 막 도망 다니네.
“역시 선발투수가 최고야. 나도 잘하면 저런 대접 받을 수 있겠지?”
“그냥 잘하는 걸로는 어림도 없고. Suck 쟤만큼 잘해야지.”
“아, 그럼 불가능하겠네.”
다니엘 고셋은 극진한 대우를 받는 나를 보며 조금 부러워하는 눈치인데. 에헤이, 지지야지지. 이런 거 보고 배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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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역전패와는 별개로.
팬들이나 언론은 블루제이스전을 긍정적으로 봤다.
일단 고유석의 성적 자체는 좋았던데다가, 그 덕에 사실상 확정됐으니까.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완벽한 4개월을 보낸 Go!>
7월 이달의 투수.
블루제이스전을 기점으로, 이번에도 사실상 고유석이 확정 지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7월 내내 여전히 무실점을 기록했고, 28이닝 48탈삼진으로, 다른 것들 역시 완벽했으니까.
한 시즌에 네 번의 이달의 투수를 달성한 경우는 있지만. 4회 연속은 이달의 투수가 만들어지고 이번이 처음이기에.
당연하게도 ‘최초’에 환장할 수밖에 없는 언론은 조금 이른 타이밍에 샴페인을 터트렸다.
[#A’s]
[역대 최초? 아니, Suck은 역대 최고야. 그거 말곤 필요 없지.]
└이달의 투수? 그거 그냥 Go가 매번 받는 거 아니야?
└이렇게 쉬운 걸 왜 다른 투수들은 못했나 몰라~ 그냥 평소처럼만 하면 되는 건데.
└걔들은 Suck이 아니니까.
└역대 최초가 뭔 상관이야? 시즌 끝나면 수두룩하게 나올 텐데. :)
└투수 최초로 이달의 선수상도 주면 안 되나? 메츠전 때 진짜 쩔어주게 잘했잖아? 솔직히 7월에 Go보다 인상적인 타자가 있었어?
└너 천재냐?
[#A’s]
[그냥 앞으로 매월 Go한테 이달의 투수상 주고 시작하자. 어차피 Go가 받을 텐데. 괜히 희망고문하지 말자고.]
└그래, 이쪽이 더 좋겠네.
└우리도 빨리 기뻐할 수 있어서 좋고. 다른 투수들도 헛꿈 안 꿔서 좋고. 완벽한데?
└내년부터는 그냥 사이 영도 미리 주고 하면 안 되나? 어차피 한 10년 동안은 Go가 계속 받을 텐데.
└너 X신이냐? 뭐? 10년?
└너무 갔나? 그럼 5년 정도?
└15년은 돼야지. Go를 10년만 보고 말 거야?
└내 배포가 작았다. 그래 그 정도는 돼야지.
물론 그마저도 팬들의 호들갑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비록 올스타 브레이크가 중간에 섞이면서, 조금 짧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완벽했던 7월에 팬들은 환호했고.
아예 이달의 투수든, 사이 영이든, 그냥 미리 주면 안 되냐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기도 했다.
거기다 시즌 초반에 이어, 다시금 시작된 연속 이닝 무실점 역시 마음에 들었고 말이다.
[#A’s]
[Go 전반기에 했던 기록이 43.1이닝이었던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번 달에 갱신하면 되겠네.
└그래, 마침 멍청한 놈들 만나는데, 걔들한테 하면 되겠어.
그렇기에 팬들도, 언론도 깊이 바랐다. 그토록 완벽했던 7월의 종지부를 고유석이 확실하게 찍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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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리그 매치업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지구 순환 매치업으로, 매년 AL과 NL 두 리그의 각 지구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붙는 형식이다.
인터리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매치업이나. 그리 인기가 있지는 않았다. 더 확실한 게 있었으니까.
<다저스vs에인절스. 프리웨이 시리즈의 승자는?>
<윈디 시티의 혈투! 디펜딩 챔피언 컵스vs화이트삭스의 대결!>
<뉴욕의 진짜 주인을 가린다! 서브웨이 시리즈 개막!>
바로 지역 라이벌전.
같은 지역 혹은 근처에 있는 구단끼리 맞붙는 매치업으로. 치열한 매치업인 경기 전부터 저렇게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어댈 정도다.
그런 라이벌간의 고정 매치업 외에도, 지역 라이벌이 없는 팀의 경우 격년제 스플릿 라이벌 리가 따로 있지만.
최소한 우리는 확실한 지역 라이벌이 있었다. 그것도 강 건너, 다리 건너편에.
‘자이언츠라···’
이번 미네소타 트윈스전이 끝나면, 우린 사이 나쁜 이웃을 홈으로 불러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베이 브릿지를 두고 서로 아웅다웅거리는 이웃이지.
인터리그 고정 매치업인 베이 브릿지 시리즈의 상대팀이기도 하고.
물론 솔직하게 말하면.
최근 기세만 놓고 따졌을 때, 애슬레틱스는 자이언츠의 라이벌이 못 된다. 심하게 차이가 나니까.
‘저쪽은 우승 세 번. 80년대 이후로 제로. 심하긴 하네.’
사실 애슬레틱스가 못 나간다기 보다는, 최근 자이언츠가 너무 잘 나가는 것에 가깝기는 하지만 말이야.
“Suck, 어떻게든 자이언츠는 죽여줘! 부탁이야!”
“일단 트윈스전부터 보시죠.”
“그 잘난 척하는 새끼들 콧대를 짓눌러버려.”
“그걸 왜 지금 부탁하세요.”
그렇기에 우리 팬들은 더욱더 열을 올리는 것 같다. 미운놈이 잘 나가면서 자기들을 비웃고 있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겠어.
홈에 돌아오고, 경기장에 출근할 때마다 나 붙잡고 저러더라. 사인도 안 받고 말이야.
트윈스전도 다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퍼펙트니, 노히터니, 아주 자이언츠를 죽이라면서 소리치는데, 진짜 난리도 아니네.
“어깨가 무겁겠습니다, Sir Suck.”
“그거 하지 마. 이제 재미 없으니까.”
“그래? 다행이네. 계속 하려니까 좀 쏠렸거든.”
“누가 보면 우리 팀에 너만 있는 줄 알겠어. 죄다 SuckSuck. 나한테도 Suck한테 잘하라고 전해달라고 했다니까?”
“나한테는 Suck 등판할 때 또 타격 X같이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는데. 나보단 낫네.”
“레이더스죠?”
“그럼 누가 또 있어?”
나만 그런 건 아닌 건지.
다른 동료들도 헛웃음을 흘리며 각종 증언을 쏟아낼 정도니, 말 다 한 거지.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집착하고 있는데. 아주 부담스럽기 그지없지만. 그런 팬들의 염원이 하늘에 닿은 것 같았다.
그토록 팬들이 소리높여 외치던, 최면을 걸듯 무조건 잘하라며 당부했던 7월 31일. 7월의 마지막 날.
눈을 뜬 순간 깨달았으니까.
“Go, 오늘 컨디션-”
“좋아요, 진짜 엄청나게.”
그 부담감에 몸이 각성이라도 한 건지. 내 컨디션이 12시를 가리켰다는 걸.
이 정도면 곰도 때려잡겠어.
아니지, 곰이 아니라, 거인을 때려잡아야겠지.
####
언제나처럼 콜리시엄 앞에 바글거렸던 애슬레틱스 팬들은 새로운 유니폼의 등장에 일제히 야유를 퍼부었다.
“우우우우우우!”
“새끼들 표정 봐라! 오줌 지리겠네?”
“자이언츠? 까고 있네. 니네가 무슨 자이언츠야? 드워프면 또 모를까.”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시민들에겐 그리 반가운 도시는 아니다.
베이 브릿지를 놓고, 바로 이웃한 도시이기는 하나. 서로 사정이 판이하게 달랐으니까.
특히 애슬레틱스의 경우, 오클랜드로 연고지 이전 이후, 자이언츠가 텃세를 부리고는 했기에, 더욱더 감정이 좋지 않았고.
오죽하면 자이언츠와 관계가 나쁘다는 이유로 다저스에게 친밀한 감정을 느낄 정도였다면 말 다 했으리라.
그렇기에 애슬레틱스 팬들은 베이 브릿지를 건넌 자이언츠 원정 팬들을 격하게 반겨주며 벌써부터 신경전을 벌였지만.
“아, 이래서 이 매치업이 싫다니까. 열등감 덩어리 새끼들.”
“떽떽거리는 것 좀 봐라. 더럽게 시끄럽네. 이러니까 도시가 이 모양이지.”
자이언츠에게 애슬레틱스는 솔직하게 말해서 그리 중요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저스라는 같은 리그, 같은 지구, 그리고 꼴보기 싫은 LA를 연고지로 한 구단이 더욱더 치열한 라이벌이지.
자이언츠에게 애슬레틱스는 좀 가난한, 아니, 많이 가난하고 종종 시끄럽게 구는 이웃이었다.
“요즘 잘 나간다고 뵈는 게 없네.”
“Suck인지 뭔지가 잘한다던데. 이름부터 딱 애슬레틱스에 어울리네.”
“걔가 잘하면 뭐해? 어차피 몇 년 뒤에는 다른 팀 유니폼 입고 있을 텐데.”
물론 역사적으로 따진다면, 오클랜드가 더 잘나가던 시절도 있기는 하다.
월드시리즈 우승 횟수는 여전히 애슬레틱스가 우위를 점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명문이던 시절은 이미 한참 전의 과거가 되었고, 머니볼마저 무너진 뒤.
자이언츠는 2010년대에만 세 차례의 우승을 더 추가했다.
말이 더 필요한가?
“솔직히 이젠 우리랑 체급이 안 맞지.”
“스몰 마켓이잖아. 그것도 아주 더럽게 가난한 스몰 마켓. 우리랑은 이제 노는 레벨이 달라.”
“불쌍하다 불쌍해. 얼마나 거지새끼면 올해 데뷔한 루키한테 저렇게 의지 하나 몰라.”
아무리 옆 동네라고 해도.
이젠 라이벌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수준이 되어버린 애슬레틱스였기에.
성난 홈팬들의 야유에도, 자이언츠 팬들은 그저 미소 지으며 콜리시엄에 입성했다.
“와, 여긴 수리도 안 하나?”
“심각하네, 진짜. 무슨 2차대전 때 지은 것도 아니고.”
“리글리 필드도 여기보단 낫겠네. 이거 녹물 맞지?”
“좀 불쌍할 지경이야. 이런 곳에서 야구를 본다고?”
꾀죄죄한 콜리시엄의 모습은 그런 자이언츠 팬들의 기분을 한층 더 올려줬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자이언츠와 애슬레틱스의 근본적인 수준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니까.
날씨마저 축축한 상황에 자이언츠 팬들이 원정팬 좌석을 채우며 비웃음을 머금었을 때.
“와아아아아아아!”
“Suck! 이 X새끼들한테 똑똑히 보여줘! 에이스의 에이스가 뭔지!”
“봐주지 말고, 그냥 확 죽여버려! 토론토에서처럼 중간에 내려가지 말고. 끝까지! 확실하게!”
경기장이 요동쳤다.
평소보다 훨씬 더 가득 찬 콜리시엄. 그것을 꽉 매운 홈팬들은 한 투수의 등장에 이미 목이 다 쉴 정도로 사정없이 소리를 질렀다.
그 압도적인 환호성과 함께.
낡은 콜리시엄에서 가장 빛나는 물건이 불펜의 문을 열고 등장했다.
“쟤가 걔야?”
“사진보다 실물이 낫네.”
“올스타전에서 보던 것보다, 덩치가 더 커 보이는데?”
그를 본 자이언츠 팬들은 조금 술렁였다. 그들 역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선수니까.
당장 같은 베이 에어리어의 도시이고, 신문도 똑같은 걸 보는데. 어떻게 모르겠는가?
Go You-Suck.
정말이지, 자이언츠가 바라보는 애슬레틱스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이상한 이름을 가진 투수.
그 이상한 이름은 자이언츠에게도 익숙했고. 신문과 티비로 자주 보던 얼굴에 몇몇 자이언츠 팬은 처음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뭐, 한 경기 정도야···”
“쟤도 불쌍하네. 하필이면 이런 팀에서 데뷔해서.”
“살짝만 더 내려와서 우리 팀이었으면. 진짜 사랑했을 텐데.”
“또 모르지. 한 7년쯤 뒤엔 우리가 데리고 있을지도.”
“AT&T도 투수구장이니까. 잘 어울리긴 하겠네.”
리그 최고의 투수.
유일하게 애슬레틱스에서 탐이 나는 게 있다면, 바로 저 투수일 거다.
실제로 제법 많은 자이언츠 팬들이, 그가 베이 브릿지를 건넜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까.
워낙 많은 정보를 접하기에, 리그가 다르더라도 더욱더 와닿는 거겠지.
그런 투수의 등장에 약간 긴장할 지언정. 그렇다고 해서 압도되지는 않았다.
물론 질 수도 있겠지.
그만큼 대단한 투수니까.
때때로 한 명의 투수의 역량은 팀의 체급을, 수준을 넘어,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기도 하니까.
그렇기에 한 경기 정도는 충분히 내줄 수 있다. 각오하기도 했고. 이 몰락한 도시에 딱 하루의 행복을 주는 것조차 기피할 만큼 잔인한 사람들은 아니니까.
“구경이나 하자. 얼마나 대단한지.”
“Suck, Suck, 아주 노래를 부르는데. 우리한테 털리면 볼 만하겠네.”
그렇기에 조금 긴장하더라도, 여전히 여유로운 심정으로 그라운드를 내려본 자이언츠였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곧 경기가 시작되고.
한 타석.
“스트라이크 아웃!”
한 타석.
“스트라이크 아웃!”
한 타석이 지날 때마다.
여유는 한 꺼풀씩 벗겨졌다.
세 타자 연속 삼진. 이것도 어느 정도 생각은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올스타전에서 여섯 타자 연석 삼진을 올린 미친놈이니까.
충분히 가능하겠지.
“삼구삼진이네. 죄다.”
“미친···”
“뭐 저런 놈이-”
하지먼 이건 예상 못했다.
세 타자 연속 삼구삼진.
그보다 더한 네 타자 연속 삼구삼진을 올스타전에서 하기는 했는데, 아무튼 이런 개짓거리를 우리한테 한다고? 정말로?
당혹감을 넘어, 오히려 조금 황당할 정도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리던 자이언츠 팬들은 곧 뒷목이 서늘해졌다.
들뜬 홈팬들의 환호성과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유유히 마운드를 내려가는 투수를 본 순간.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으니까.
어쩌면 단순히 하루의 자비. 한 번의 패배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정한 것 이상의 굴욕을, 오늘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