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투수는 멘탈이 터진 건지.
라제이 데이비스에게 한가운데로 몰리는 실투를 던졌고. 당연히 놓치지 않고 받아치며, 무난한 안타가 나왔다.
그대로 2루.
내가 뛸 때마다 사람들이 무슨 어린아이 대하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데. 은근 재밌네 이거.
직후, 마커스 시미언이 큼직한 타구를 날려 보냈지만, 펜스 앞에서 우익수에게 아슬아슬하게 잡혔고. 설마설마하는 눈빛을 받으며.
“어- 어어어어- 뛰- 뛴다!”
“뛰지마! 뛰지마! 아, 위험하니까 뛰지 말라고!”
“이게 뭐야 X발!”
“던져! 빨리 송구해!”
스타트를 끊었다.
오랜만에 뛰니까 기분이 좋단 말이야. 물론 다른 사람들은 당황하는 것 같지만.
언제나처럼 내 경기를 보러 온 레이더스는 인지부조화에 걸린 것 같다.
내가 뛰는 걸 보니까 당황스러우면서도. 혹시라도 다칠까, 황급히 만류하네.
반대로 홈팀, 메츠의 팬들은 그보다는 그냥 빡친 게 더 큰 것 같고. 투수한테 내야안타 맞더니-
“어··· 와아아아아?”
“이게 대체 뭔 X신 같은 상황이야···”
“Suck 쟤 왜 잘 달려?”
그 투수한테 첫 실점까지 내줬는데, 심정이 오죽하겠어.
‘어우, 시바꺼, 간만에 마음껏 뛰니까 좀 빡세네.’
송구가 들어오기 전, 유유히 홈 베이스를 밟고 잠깐 숨을 고르니, 팬들은 기뻐하는 대신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만 흘렸고.
“너··· 뭐야? 피칭 안 할 거야?”
“이 정도는 거뜬하지. 수고해라.”
메츠의 포수, 트래비스 다노는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난 상황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허탈하게 물었다.
뭐 이런 거 가지고 피칭을 운운해. 내가 매일 같이 하는 러닝이 몇 킬론데.
투수에게 홈을 내줬다는 것에 심각한 박탈감을 느끼는 것도 같은데. 그러게 왜 체인지업을 던져. 그 정도는 나도 칠 수 있다고. 다음부터는 조심해라.
그렇게 포수에게 살짝 윙크해준 뒤 덕아웃으로 돌아갔는데. 다들 많이 놀란 것 같다.
팬들도, 선수들도.
“아니- 무슨-”
“Suck 너 왜 빨라?”
“무슨 트라웃도 아니고··· 그 덩치에 그 속도가 나온다고?”
“유격수 봐도 되겠는데?”
“너 타자해라. 리키 핸더슨 기록도 갈아치우겠어.”
그렇겠지. 6.5피트(198cm)에 220파운드(99.7kg)짜리 거구가 미친 주력을 보여줬으니.
놀라울 수밖에.
동료들이 충격과 감탄이었다면, 코치는 그냥 충격이네.
“이 미친 또라이야··· 어쩌자고 뛰어! 무릎은, 무릎은 멀쩡해? 발목은 괜찮고?”
밥 멜빈 감독은 심각하게 눈동자를 떨면서, 뒷골이 당기는 건지 뒷덜미를 쓸었고. 스콧 에머슨은 등짝을 후려치려는 걸 간신히 참고서, 황급히 내 몸을 더듬거렸다.
왜 이러세요. 우리가 제법 친해지긴 했지만, 이 정도 사이는 아니잖아요. 어우, 좀 당황스럽네.
그래, 이해는 한다. 나 달리는 거 보면 다들 이런 반응이거든. 덩치가 덩치다 보니. 딱봐도 무릎 나갈 것 같잖아?
‘육상을 했으면, 군면제는 진작 받았을 텐데.’
근데 생각보다 훨씬 멀쩡하다. 내가 어깨 출력 낮은 것만 빼면, 몸 자체는 철인이거든.
중,고등학생 때 육상부 코치가 날 호시탐탐 노렸었지. 그렇게 달리는데도 몸에 부하도 없는 것이, 아주 타고난 스프린터라면서.
그때 그 말을 들었다면. 지금쯤 아시안게임에 나가지 않았을까? 올림픽은 조금 오버고.
어쩌면 잘못된 길을 선택한 건지도 모르겠어. 아니지, 지금 내 성적 생각하면 옳은 선택이네.
“거뜬해요. 엄마가 절 아주 튼튼하게 낳아주셨거든요.”
“그래··· 참 대단한 어머님을 두셨네··· 나 대신, 정말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개짓거리 하지마. 뛰다가 잘못해서 발이라도 접질리면, 난 그거 감당 못 해. 안 할 거지?”
“예에··· 뭐···”
“대답.”
“진지하게 고려해보겠습니다.”
간신히 욕을 참는 것 같은데. 나도 자제할 생각이다. 애초에 한 번 당했는데, 좋은 공을 주겠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체인지업이라 어설프게 때리기라도 한거지. 그냥 평범하게 패스트볼 던졌으면 공 근처도 못 갔어.
아마 상대 투수도 한 차례 뜨거운 맛을 봤으니, 다음부터 주의할 테니까, 단발적인 이벤트로 끝이겠네.
이벤트치곤 효과가 죽이지만.
“그래도 점수 냈잖아요? 그럼 된 거죠.”
“그래··· 참 좋겠어, 아주. 직접 점수도 다 내시고. 대단하네. 그치?”
“으흠흠···”
“오, 저기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는데? 하하.”
“음? 아~ 슬슬 타석 오를 준비 해야겠네. 어우, 시간 참 빠르다 빨라.”
내 말에 타자들은 딴청을 부렸다. 그래, 이 쓰레기들아. 첫 득점의 주인공이 선발투수니까. 더럽게 쪽팔리지?
아무리 이제 겨우 3회라고 해도 말이야. 어떻게 선발투수가 점수를 내게 하냐. 반성들 해라.
그런 의미를 담아 타자들을 흘겨봤을 때, 반박자 느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Go! Go! Go! Go!”
“슈퍼소닉이네! 슈퍼소닉이야!”
“캬~ Suck 니가 그냥 타석에 오르는 게 낫겠다! 출루만 하면 무조건 득점이겠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이젠 그게 조금 가신 건지. 드디어 흥분이 올라온 것 같네.
멋진 광경이긴 하잖아? 선발투수가 엄청난 주력을 선보이며 내야안타를 만들더니. 결국 첫 득점까지 올렸으니까.
다 합쳐봐야 얼마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인데. 경악한 메츠 팬들을 압도하며, 시티 필드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치, 이렇게 좋아해야 열심히 뛴 보람이 있지. 마음에 드는구만.
“한 번 더?”
“···그런 Fucking Bullshit 같은 소리는 집에서 혼자하고, 제발 얌전히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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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호흡은 멀쩡하고? 왜 그런 짓을 해. 그냥 우리 믿고 있지.”
“한 짓이 있는데 어떻게 믿어요. 멀쩡하니까, 걱정마요.”
오늘의 파트너인 조시 페글리는 마운드에 오르기 전, 최대한 내 상태를 살폈다.
충분한 휴식이 주어졌다고는 하지만, 갑자기 스프린트를 했으니, 체력이 훅 닳았을까, 염려되는 거겠지.
하지만 괜찮다. 내가 우리 팀에서 체력은 제일 좋을걸? 그리고 달리는 체력과 공 던지는 체력은 좀 다르다. 최소한 나는 그래.
‘어깨 쓴 것도 아니니까.’
적어도 나한테 있어서 마운드 위에서의 체력은 어디까지나, 어깨의 한계치니까.
어깨가 무리 없이 버틸 수 있는 정도, 그게 투수의 체력이지. 그러니 좀 뛰었다고 피칭에 지장이 오지는 않는다. 고딩 때도 그랬다니까?
오죽하면 내가 너무 멀쩡하니까, 야구부 감독님은 나한테 리드오프를 맡길까, 고민하기도 하셨다. 물론 결국 그러지 않으셨지만 말이야.
“가서 죄다 때려잡죠.”
“허, 그래. 멀쩡하니까, 다행이네. 가보자.”
빠따 파트타임은 성공적이었으니. 이제 다시 본업에 충실할 시간이지.
1회 말에 안타 하나를 맞은 탓에 이번 이닝은 8번부터 시작이다. 음, 어메이징 메츠, 생각보다 빠따가 좋더라고.
삼진도 세 개 잡았지만, 방심하면 안 될 것 같다. 뭐, 저번 경기에 완봉해서. 오늘은 스콧 에머슨이 어떻게든 빨리 내릴 생각인 것 같으니. 짧게 치고 빠지면 되겠지만.
‘특히 1번까지 연결되면 귀찮아. 9번은 투수타석이니까, 괜찮고. 8번만 확실하게 잡으면 되는데.’
올라오는 타자. 트래비스 다노. 구면이다. 아까 윙크도 주고받은 사이지.
그는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건지, 눈이 마주치니, 살짝 움찔거렸다.
타격은 뭐··· 안 좋지. 할 일 많은 포수한테 빠따질 바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좀 심각해.
타율 .227에 출루율이 .288인 걸로 기억한다. 쉽게 말해서 선구도 안 되고 컨택도 구리다는 거지.
다만 깡파워는 제법 있는 것 같다. 장타율이 .436이니까. 홈런이 아홉 개였던가? 엄청나게 준수한 건 아니고. 최소한 컨택보다는 나은데.
‘파워도 살짝 부족한 공갈포. 그렇게 봐야겠네.’
약간의 위험을 제외하면. 투수 입장에서 엄청나게 반가운 타입이지.
“스트라이크!”
이렇게 막 붕붕 휘두르거든.
초구는 바깥쪽 너클 커브.
조금 낮게 던졌다. 존 안으로 들어오는 듯하다가, 살짝 내려갈 정도로.
좌타자가 있다고 이미지를 그리고, 몸통을 저격해서 던지면 이렇게 들어가더라.
스윙은 떨어지는 공의 한참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걸로 스트라이크 하나.
‘눈 감고 휘두르네, 감고 휘둘러.’
그래도 힘은 제법 묵직한데.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2구는 반대로 몸쪽.
그것도 높게 찍히는 하이 패스트볼이다. 의욕이 넘쳐 보이는데, 절대로 못 참을 걸?
‘역시나 못 참네.’
높이 뜬 포심 패스트볼을 배트가 간신히 때렸지만, 공은 바닥을 뒹굴었다. 컨택이 안 좋긴 안 좋아.
우리 사랑스러운 맷 채프먼은 이런 걸 놓칠 녀석이 아니다.
“아웃!”
이거 봐. 쉽게 잡아서 던지잖아? 얼마나 사랑스러워? 좀 애매하게 굴러갔는데. 역시 수비가 좋다니까. 3루쪽은 믿어도 된다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그나저나 솔직히 나였으면 아슬아슬하게 접전까지 갈 수 있지만. 이 친구는 엄청 느리네.
어떻게 투수보다 느려. 분발해라. 덩치도 나보다 작은 게, 좀 샤프해보이는데 말이야.
간만에 기분 좋게 달려서 그런가, 막 다른 선수들 주루를 평가하고 싶고 그러네. 아마 오늘 경기 뛰는 놈들 죄다 나보다 느릴걸?
‘너는 어떠니, 친구야?’
가장 중요했던 8번을 손쉽게 넘겼으니. 이젠 더 쉬운 9번 차례다. 물론 방심할 순 없지.
당장 아까 전에 마찬가지로 투수타석이었던 내가 안타를 치고, 득점까지 했으니까.
스티븐 마츠.
가족 대대로 메츠 팬이었고, 성도 마침 마츠(Matz)라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투수인데. 지금은 아까 내야안타랑 실점으로 멘탈이 좀 나간 것 같다.
‘그래, 상상이나 했겠냐. 같은 투수한테 그런 꼴 당할지. 꼬우면 너도 해라. 공평하게 가줄게.’
초구는 포심 패스트볼. 얘량 똑같다. 힘을 아낄 찬스니, 가볍게 하나 던졌다.
“스트라이크!”
스티븐 마츠는 자신의 굴욕을 나도 겪게 하겠다는 듯. 아주 이를 악물고 휘둘렀지만. 공은 스치지도 않았다.
얘는 그래도 내셔널리그니까, 나보다 빠따 많이 휘둘렀을 텐데, 좀 심각하네.
2구는 한번 더 패스트볼.
이번엔 몸쪽으로 넣었다.
“스트라이크!”
역시나 배트가 크게 헛돌았고. 스티븐 마츠는 분한 마음에 얼굴을 일그렸다.
일단 여기까지는 쟤랑 똑같이 던졌다. 공평해야지. 같은 투수끼리 너무 막 그러면 안돼. 울분을 풀어낼 기회를 줘야지.
그런 의미에서 3구는 체인지업이다. 화나면 너도 쳐라.
“스트라이크 아웃!”
칠 수 있으면 말이야.
좌투우타인데. 자신을 놀리듯 유유히 멀어지는 서클 체인지업에 거의 한 바퀴를 빙글 돌은 그는 씩씩거리며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왜? 체인지업이라고만 했지. 무슨 체인지업이라곤 안 했잖아? 이것도 일단 체인지업이야. 그렇게 분류가 된다고.
물론 위력은 내가 후렸던 것과 심하게 차이가 나긴 하지만.
‘이번엔 좀 쉽게 가자. 오케이?’
이제 투아웃. 마지막 타자다.
타순이 돌아서 다시 1번타자 마이클 콘포토. 오늘 1피안타의 주인공이시지.
중견수인데, 이번 시즌 성적은 대단히 좋다. 제대로 포텐이 터졌지.
타율 .286에 OPS가 .953. 그리고 홈런 16개로, 사실상 메츠 타선의 핵심 원동력이다.
아까 1회 말 첫 타석에서는 3구째 슬라이더를 잘 받아쳐서 안타를 만들었다. 첫 타자니까 쉽게쉽게 가려고 했는데, 그러다가 한 방 맞았지. 그러니···
‘앞에 놈들이 잘 내려가 줬으니까.’
이번엔 확실하게 조진다.
“스트라이크!”
‘아낀 만큼 너한테 털어 넣는다.’
초구는 바깥쪽 포심.
아마도 89마일을 찍었을 거다. 한 타순을 돌아본 결과, 얘가 제일 잘하던데, 전력으로 제대로 던져야지.
마이클 콘포트는 배트만 움찔거릴 뿐, 스윙을 내지 못했다.
“볼!”
2구는 살짝 빠졌다.
음, 서클 떨어지는 걸로 하나 던져봤는데. 잘 참네. 스윙할 줄 알았더니.
“스트라이크!”
3구는 너클 커브.
이번에도 바깥쪽. 쭈우우욱 떨어지는 커브에 마이클 콘포토는 짧게 스윙했지만, 맞추지는 못했다.
이제 마지막 4구. 과감하게 가자. 내 사인에 조시 페글리는 괜찮겠냐는 듯 걱정스럽게 봤지만. 괜찮아, 괜찮아.
‘삐끗하면 X되겠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안 그러면 되는 거지.
머리를 맞출 듯 날아간 공.
타자는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았다. 하지만 뒤이어 들린 것은 스트라이크콜.
어이가 없다는 듯 주심을 흘기지만, 본인 빼고 모두가 다 안다. 그거 삼진 맞아. 너클 커브였거든.
대놓고 대가리 맞출 듯이 던졌으니, 겁먹을 만도 하지. 실제로 좀 높게 찍혔고. 아슬아슬했네.
이걸로 삼진 두 개 추가.
파트타임과 함께 본업도 무사히 잘 진행됐다. 음, 그라운드에서 뛰니까, 어째 몸이 더 후련한 것 같은데?
‘어디 보자, 다음 타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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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석, 엄청난 질주를 선보이며 첫 안타!>
<슈퍼소닉의 재림? 고유석, 숨겨뒀던 주루 능력을 뽐냈다!>
<투수인데도 몸을 아기지 않는 허슬 플레이! 고유석이 프로선수의 귀감을 보여줬다!>
<‘부상을 초래하는’ 위험한 플레이!, Go는 투수의 본분을 자각해야···>
고유석의 첫 안타가 나온 순간. 언제나 그를 주목했던 기자들마저 당혹감을 느꼈다.
“Go 설마 홈런 치는 거 아니야?”
“하하, 그러면 그림은 죽여주긴 하겠네.”
“선배, 고유석 선수 고교시절 자료는 없어요? 타격도 잘했다거나. 류영진도 고교야구 때 4번타자였잖아요?”
“원래 야구 잘하면 다 잘하기는 하는데. 잘 모르겠네. 내 기억으로 거기 성적이 안 좋아서, 별로 주목받는 곳은 아니었거든.”
“아, 홈런 하나 날리면, 조회수는 그냥 끝장나는 건데.”
“바랄 걸 바래라. 차라리 두 경기 연속 완봉이 더 현실성 있지···”
농담 정도는 했었다.
워낙 기상천외한 선수니까.
상상을 초월한 실력으로 전 야구계를 뒤흔들지 않나, 갑자기 새로운 구종을 꺼내지 않나.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는 선수지.
그렇기에 어쩌면 이번에는 갑자기 숨겨뒀던 타격실력을 뽐내는 건 아닐까, 농담삼아 거론하고는 했는데.
그게 반절의 정답이었다.
예상치 못한 타격 실력을 꺼내기는 했다. 그 타격의 종류가 생각과 달라서 그렇지.
준수한 피지컬로 장타를 만들었다면 오히려 더 수긍이 됐을 거다. 그런데 정말로 뜬금없이, 이런 거구의 선수가 엄청난 주력을 선보였다.
<1루까지 3.92?! Go는 올해 최고의 스프린터!>
<좌타인 걸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속도! Go는 사실 제2의 매덕스가 아닌, 제2의 리키 헨더슨이었다?>
그에 충격을 받은 언론은 과거 오클랜드의 레전드였던 리키 헨더슨을 거론하기도 했다.
다만 고유석의 타격과 리키 헨더슨의 그것은 심한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오클랜드라는 공통분모가 있었으니까.
이렇듯 언론이 예상치 못한 광경에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면, 한국의 팬들은 묘한 기시감을 느끼기도 했다.
[고유석 보고 똑딱이라고 했던 사람 아직 있음?]
-표현 개잘했네. 진짜 이대영인데?
└속도도 이대영이고. 타격도 이대영임ㅋㅋㅋ
└그 새끼 비유 지리게 잘했던 거였네ㅋㅋㅋ
└그런 줄도 모르고 X신 어그로 취급했던 거 미안하네
└야알못 새끼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야잘알이었던거임~
└그 새끼 옛날이라 기억 안 난다고 하더니, ㅈㄴ 잘하고 있었음ㅋㅋ
[해설자:리키 헨더슨 같았다]
-ㅈㄹ하네ㅋㅋㅋ 거꾸로 봐도 이대영이구만ㅋㅋㅋ
└삼단 분리타법을 메쟈에서도 볼 줄은 꿈에도 몰랐음.
└상체 하체 코어 밸런스가 완벽한 안정적인 투구폼을 가져놓고, 타격폼은 왜 씹엉망이야zzz
└타구 안보고 엉덩이 먼저 나가는 거 보고 진짜 이대영인줄ㅋㅋㅋㅋ
└솔직히 묘한 기시감 느꼈다 ㅇㅈ?
└└인정. 보고 비명지름
└└깝대영 언제 미국갔나 생각했음ㅇㅇ
엄청난 속도도 속도지만.
하체와 상체가 따로 놀고, 오직 출루 하나에만 신경을 쓴듯한 타격폼은 마치 프로야구에서 슈퍼소닉으로 유명한 선수를 연상케 했으니까.
그 임팩트가 한국 네티즌들을 웃게 했지만, 대부분은 그저 운이 좋았던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주력의 경우 충분히 인정할 만하고, 상당이 인상적이기는 하나. 메이저리그라는 꿈의 무대에서 통할 만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으니까.
워낙 그 단점이 명확하기에, 그저 딱 한 번의 행운, 초심자의 행운 정도로 여겼지만.
[빠중)고유석 번트 성공]
-뭐냐 대체, X나 빠르네.
└심지어 1루 세이프
└미친놈이네
└아니, 왜 잘하냐고.
└번트 개지리는데?
└ㅈㄴ 깔끔하게 댄다.
└저 덩치에 번트 잘하니까 좀 이상하네
그 기이한 이벤트는 단발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
5회 초. 원아웃 주자 3루.
아담 로살레스의 선두타자 안타 이후. 조시 페글리가 진루타를 치면서 찬스가 됐다.
원아웃이긴 해도, 주자가 3루면, 솔직히 점수를 못 내는 게 이상하지. 내야뜬공만 아니라면, 거의 확정적으로 점수가 나니까. 내야땅볼이더라도 운만 좋으면 득점이고.
타자가 내가 아니었다면 말이야.
‘댈까?
일단 번트 찬스다.
이보다 더 번트가 필요한 상황이 없지. 아담 로살레스의 주력이 좋은 편이라. 적당히 사이드로만 굴리면, 무조건 득점이니까.
그런데 스콧 에머슨의 표정이 흉흉하다. 마치 절대로 안 된다는 것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고.
타격코치도 저번에 타격 훈련할 때처럼,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왜, 날 못 믿어. 내가 이걸 얼마나 많이 해봤는데. 그리고 얼마나 잘하는데. 내가 번트 하나는 세계 최고인 사람이야.
‘어우, 살벌하네.’
다만 좀 쫄리기는 한다.
마운드에는 아직 스티븐 마츠가 지키고 있는데. 이번엔 절대로 개짓거리 하지 말라고 경고하듯 날 노려보고 있다.
진지하게 번트 대는척하면, 대가리에 헤드샷 날릴 것 같은데? 그만큼 지난 내야안타가 굴욕적이었다는 거겠지.
음, 일단 진정시키자.
“스트라이크!”
초구는 패스트볼. 악에 받쳐서 던졌다. 더럽게 빠르네. 나도 이 정도 구속 찍고싶다.
그럼 소원이 없겠는데.
“볼!”
2구는 볼이다.
의도한 건 절대로 아니지.
마찬가지로 패스트볼인데.
아무래도 힘을 너무 넣은 탓에 좀 나간 것 같다. 어우, 흥분 많이 했네.
씩씩거리는 투수의 모습에 최대한 무해하다는 표정으로 살짝 물러섰고. 슬쩍 포수에게도 속삭였다.
“니 친구 좀 진정 시켜. 너무 흥분한 거 같은데?”
“지금 트래쉬 토크 하는 거야? 이 또라이 새끼야?”
“아니, 그게 아니라. 뭐하러 투수한테 그렇게 던져. 아무짓도 안 할 테니까, 그냥 편하게 해.”
내 목소리에서 진심을 느낀 건지, 신경질적으로 굴던 트래비스 다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무언가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스티븐 마츠는 같은 투수에게 전력투구한 자신의 실태를 알아차린 건지. 조금 누그러진 반응을 보였는데. 이제 좀 훈훈하네.
그래, 같은 동업자끼리 너무 열 내고 그러면 안 돼. 잡을 타자들 널리고 널렸는데. 우리끼린 상부상조해야지.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니, 스티븐 마츠는 내 뜻을 잘 알겠다는 듯 가볍게 공을 던졌고.
‘이건 못 참지.’
나는 그것을 가볍게, 아주 가볍게 토옥 땅바닥에 굴렸다. 말했잖아, 초딩 때부터 꾸준하게 해왔다고.
내가 동체시력이 좋아서 그런지. 맞추는 건 힘들더라도, 빠따를 공에 가져다 대는 건 어릴 때부터 천부적이었거든.
이것도 아직 살아있구만.
거기다 여전히 좀 빠르지만, 그래도 긴장을 놓아서 그런가, 초구보단 느렸다. 퉁~ 하고 배트를 때렸는데, 묵직하니, 좋네. 너 공 잘 던진다.
“이- 이런 개색-”
뒤에서 포수 트래비스 다나가 욕설을 토해내는 게 들려왔지만. 어쩌라고. 내가 편하게 가자고 했지, 쉬운 공 던지라고 했냐? 이건 전적으로 포수 미스야.
원아웃에 주자 3루인데. 번트 대기 딱 좋은 공을 주면 어떡해? 다 니 책임이니까, 두고두고 반성해라. 아무튼 난 잘못 없어.
그저 프로선수로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거니까.
“세이프!”
갑작스런 스퀴즈 번트에 예상치 못했던 건지, 후속 대처가 늦었다. 뒤늦게 3루수가 잡아서 공을 던졌지만, 결과는 양쪽 다 세이프.
점수가 올라갔고. 전광판의 숫자는 2가 됐으며, 나는 다시금 1루를 밟았다.
“야이 쓰레기야. 니가 인간이냐?”
“말씀이 심하시네. 상대팀한테 욕을 다하고.”
“Go, 이번엔 나도 같은 생각이야. 너 대체 왜 그러냐.”
왜요. 잘 했구만.
2타석 2안타 1득점 1타점인데 칭찬을 못 해줄망정 너무 갈구시네. 저거 봐, 상대 투수도 완전히 망가졌잖아.
메츠의 투수코치와 포수 트래비스 다나는 나를 노려보더니, 황급히 마운드로 올라갔다.
투수에게 2점을 내준 스티븐 마츠를 위로하는 것 같은데. 그리 신통하지는 않았다.
잠시 뒤, 나는 다시 홈으로 향했다. 이전처럼 필사의 질주가 아니라, 아주 느긋하게.
“Fuuuuuuuuuuuuuck!”
“야이 X새끼야아아아아!”
“이 X같은 새끼, 다, 다 너 때문이야 이 개X같은 X새끼야!”
바로 다음 타자, 라제이 데이비스한테 홈런 맞았거든. 진짜 멘탈 제대로 터졌네.
홈팬들은 홈런을 친 라제이 데이비스 대신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온갖 종류의 욕설을 토했다.
메츠 선수들 역시 흉흉한 눈빛으로 날 노려봤고. 조금 위험하겠는데?
“Suck, 너 다음 타석에 빈볼 맞는 거 아니야?”
“진지하게 대가리 노리겠는데?”
“어쩌자고 이런 미친 짓을···”
“하, 왜 하필 이런 미친놈이랑 같은 팀인 거야···”
상대의 반응이 워낙 심상치 않았던지라. 동료들은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온 나를 반겨주는 대신. 빈볼에 대한 걱정을 쏟아냈지만.
“괜찮아. 어차피 다음 타석 전에 내려갈 거니까. 오늘은 많이 안 던질 거야.”
그리고 어차피 인터리그라서, 다시 만나는 것도 3년 뒤, 혹은 월드시리즈라. 뒷일은 걱정 안 해도 된다.
“너 대신 우리가 맞으면?”
“투수가 2점이나 냈으면, 그건 그쪽들이 알아서 견뎌야지. 뭘 더 바래?”
난 딱 6이닝만 채우고 후딱 내려가면 되니까.
투수가 북치고 장구치고, 삼진 잡고 득점하고 다 했으면. 빡친 상대팀 빈볼 정도는 타자들이 대신 맞아야지. 나머진 알아서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