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고유석 9이닝 1피안타 무사사구 15K 무실점 완봉승)
<무사사구 완봉 15K, Go의 질주는 여름에도 계속된다!>
<사이 영 후보 간의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둔 Go! ‘인종차별이 없다면, 이미 확정’이라는 평가가 주류!>
<후반기도 그저 ‘Go!’, 여름에도 계속되는 그의 질주!>
고유석이 사이 영 상 경쟁자 중 한 명이었던 코리 클루버를 꺾고, 무사사구 완봉을 만들자.
당연하게도 여러 반응이 나왔다. 루키 선수는 보통 체력 관리나, 시즌 운영에 약한 편이니.
여름부터는 그 역시 약간의 난관을 겪을 것이라며 기대했던 이들은 그저 좌절했다.
어떻게 봐도 너무 멀쩡하다 못해, 오히려 더 강력해진 듯한 느낌이 물씬 들었으니까.
당장 올스타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무기도 무사히 장착되었다는 것을 증명했고.
<한층 더 괴물이 된 Go! 서클에 이어, 이젠 압도적인 슬라이더까지?>
등장 이후 미디어를 뒤흔들었던 너클 커브는 이젠 절망의 상징이 됐다.
그 기이한 궤적에 종종 몇몇 언론에서는 슬라이더라고 지칭하기도 했고. 평균 72마일의 그리 빠르지 않은 구속인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파워커브라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돌겠네. 우타자는 서클 체인지업, 좌타자는 저 슬라이던지 커븐지 뭔지 던지면. 대체 저 새끼는 어떻게 공략하냐?]
└공략 못 하지. 그러니까 문제고.
└완전체네, 완전체야. 구속만 없다 뿐이지, 죄다 가졌구만.
└그나마 구속이라도 느린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저 실링에 구속까지 95마일쯤 나온다고 생각해봐.
└기록이란 기록은 죄다 깨부수겠네.
워낙 다양한 구종을 자랑하는 고유석이지만, 최종 필살기를 꼽는다면, 당연하게도 두 가지 종류의 서클 체인지업이다.
떨어지는 것과 꺾이는 것.
보통 그렇게 지칭되는 두 개의 구질은 최소한 올시즌 전반기에서 빅리그 타자들에겐 자연재해 수준이었으니까.
특히 역회전이 강한 V2는 대다수의 전문가가 당당히 구종 가치 1위에 놓을 정도고.
[좌타자들도 이제 골치 아프겠네.]
└슬라이더도 괜찮긴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X같은 게 생겼어.
└상대적으로 편했던 시절도 이젠 끝난 거지. 같이 고통받을 시간이야.
└재미는 Suck 그 새끼만 보고?
└뭐, 오클랜드는 같이 재미 보겠지.
└X같다 X발. 왜 하필 저런 새끼가 오클랜드, 같은지구 팀에 있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압도적인 서클 체인지업 덕분에, 도리어 같은 손인 좌타자들 상대 성적이 더 높기도 했다.
슬라이더도 준수하긴 하지만. 서클 체인지업과 비견될 만큼 수준 높다고는 말 못 하니까.
물론 그 서클을 좌타자에게도 자주 던지며, 삼진을 만들어내지만, 일단 역회전인 만큼, 안쪽으로 들어오는 궤적이기에 잘만 컨택 한다면 최소한 우타자보다는 더 쉽고.
그런 좋았던 시절이 이제 끝난 거다. 같은 손 타자들에게 던질 최종병기마저 다시금 새롭게 장착됐으니까.
“쉽게 말해서. 이제부턴 완전히 바뀌는 겁니다.”
“어떻게 바뀐다는 거죠?”
“이번 경기에서 보여준 너클 커브가 정상적으로 가동한다는 가정하에. 좌타자와 우타자가 느끼는 Go가 서로 다른 투수가 된다는 뜻이죠.”
“흔히 파워피처의 탈을 쓴 피네스피처, 혹은 그 반대로 불리는 Go인데. 어찌 됐건 그의 핵심은 타이밍입니다.”
경기를 리뷰 하는 몇몇 프로그램에선 전문가 혹은 전직 메이저리거들이 나와, 이제부터 진정한 재앙이 시작될 거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위대한 시즌을 보냈던 선수가 거기서 한층 더 높이 올라섰으니까.
“타자의 타이밍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삼진을 잡는 형식이죠. 체인지업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요.”
“예, 그렇죠, 특히나 완성도가 높은 서클 체인지업이 중심이었고요.”
“그런데 이제부터는 다릅니다. 우타자에겐 여전히 똑같겠지만. 너클 커브라는 수준급 슬라이더 이상의 무기가 새로 생겼으니···”
“그냥 좌타자에겐 정상급 파워피처입니다. 이젠 좌타자에 한해선 피네스피처인 척 연기할 필요가 없죠.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못 칠 테니까요.”
그렇게 평가한 남자는 그 이상도 이하도 평가할 필요가 없다는 듯 입을 꾹 닫았고.
진행자는 그를 대신해 그의 평가를 정리했다.
“이미 완벽한 것 같았던 선수가. 한층 더 완벽해졌군요.”
수많은 프로그램 중 하나였고, 그중에서 특별히 평판이 높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고유석의 후반기 첫 경기를 정리한 것 중에서는 가장 정확한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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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돈 들어왔냐고? 그건 이미 며칠 전에 들어왔어.
“저기! 보물 고블린이다!”
“털어! 털어! 분명히 뭐 먹을 거 나올 거야!”
“천만 달러도 넘게 벌었다면서? 그럼 식사라도 좀 대접해라.”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건지.
동료들은 죄다 한턱을 쏘라고 난리다. 저번 경기에서 꼴랑 한 점 내놓고 바라는 것도 많네.
“나 등판한 경기에서 5점 이상 내면 선수단 전체에 식사 돌릴게요. 콜?”
“그건 너무 어렵잖아.”
“3점은 안 돼? 그 정도만 되도 솔직히 너는 충분하지 않나?”
“ERA 0점대니까, 1점도 충분하지. 우린 할 일 다 한거야.”
이런 쓰레기들에게 밥 먹일 돈따윈 없기에 가뿐하게 무시했다.
아무튼 계약금 말고. 다른 거 말이야. 시즌 초반부터 은근히 기대했던 일이 드디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아··· 멍청한 NL 새끼들··· 시대의 흐름에 좀 따라올 것이지···‘
스콧 에머슨은 물가에 내놓은 아이 보듯 나를 바라봤다. 시대착오적인 룰을 고수하는 내셔널리그를 욕하기도 했고.
내가 뭔가 하려고만 하면 아주 바들바들 떠는데, 타격코치는 그런 스콧 에머슨을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스콧, 뭘 그렇게 걱정합니까? 이거 좀 한다고 안 죽어요. 누가 보면 고문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그치, 이 양반은 이게 본인 일인데. 마치 기피 직업처럼 취급하면 기분이 좀 그렇겠지.
타격코치의 따끔한 질책에 스콧 에머슨은 그나마 조금 잔잔해졌다.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떠시나 몰라.
원래도 나한테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기는 한데. 유독 왜 저러냐면, 내가 방망이를 들어서 그렇다.
남자라면 누구나 하반신에 가지고 있는 그거 말고. 진짜 나무 방망이. 배트 말이야.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생겨서, 타자로 전환하려는 건 아니고. 드디어 시간이 왔거든.
‘인터리그. 내내 홈에서만 던졌는데, 이제야 원정 좀 가보네.’
다음 등판은 원정이다. 그것도 인터리그. 상대는 뉴욕 메츠지. 인터리그 룰? 조약? 아무튼 그거에 따라서.
지명타자의 경우 홈팀이 소속된 리그의 것을 따른다. 즉 나도 타석에 서야 한다는 거지. 내셔널리그는 지명타자 없으니까.
‘캬~ 이 감촉도 오랜만이네. 타자글러브가 원래 이렇게 두꺼웠나? 좀 보드랍기도 하고. 메이저리그가 좋긴 좋구만.’
오래간만에 느끼는 딱딱한 나무방망이의 감촉. 나쁘지 않아. 예전에만 하더라도 열심히 놀렸는데 말이야.
불방망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였지.
“Go, 너 마지막으로 배트 잡은 게 언제야? 뭐가 이렇게 엉성해···”
“한··· 5년? 아니, 6년인가? 아무튼 그 정도쯤?”
근데 그 불방망이가 이제 좀 식었나 보다. 하긴, 미국 건너온 뒤로 빠따를 쥐어본 건 손에 꼽을 정도니까. 그쯤 되면 식어도 한참 전에 식어야지.
내 기억이 맞다면, 마지막으로 배트 잡은 게 싱글A였을 거다.
내 구속이 더럽게 안 나오니까. 피지컬이 아깝다면서. 타격코치가 은근하게 권유했거든. 타자로 전환하면 슬러거가 될 거라면서.
나야 오직 황족 투수의 정도만을 걷고 싶었지만, 그래도 그땐 코치 말이면 무조건 들어야 한다는 한국식 세뇌 교육이 머리통에 박혀 있을 때라. 몇 번 타격연습 정도는 했었지.
그 뒤로 성적 처참하게 박고, 루키 리그에 내려가면서 흐지부지됐지만 말이야.
“···최소 5년이면··· 좀 심각하긴 하네. 진짜 위험하겠는데?”
아무튼 그래도 몇 번 연습삼아 휘둘러 보니, 예전의 감각이 돌아오는 건지. 제법 태가 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코치가 보기에는 영 아닌가 보다. 내 폼을 보고 조금 긴장한 타격코치의 모습에 투수코치는 잠시 억눌러뒀던 걱정이 더 심해진 건지, 눈을 질근 감기도 했다.
“왜요? 한때는 진짜 잘했는데.”
“거짓말하지 마. 딱 보면 알아. 절대로 잘할 수가 없는 타격폼인데 무슨.”
귀신이네. 사실 불방망이 아니야. 고딩 때도 더럽게 못 했거든. 난 분명히 어퍼 스윙으로 쭉 당겼고. 스윗스팟도 제대로 맞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타구가 바닥을 구르더라.
그래도 진짜 성적은 나쁘지 않았어. 진짜야. 덩칫값 못한다는 말은 종종 들었지만. 더럽게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거든.
“그래도 일단 정확하게 확인은 해야 하니까. 몇 번 감 좀 보자.”
“막상 하면 또 잘해요. 제가 재능이 워낙 대단해서.”
“그래, 그렇겠지. 기왕이면 공 던지는 것처럼 시원시원했으면 좋겠네. 그 뭐야, 요즘 일본 선수 유명하더만. 투타겸업하는 녀석. 내년에 포스팅 나오는 거 잡겠다고 다들 난리던데. 그 녀석처럼 해라.”
그건 조금 힘든데요.
그 정도는 아니라서··· 그래도 자신은 있다. 못 믿는 눈치인데, 제대로 보여줘야지.
사실 테스트라고 해봤자, 프리배팅 정도다. 고물딱지 피칭머신 몇 대 때리는 거지.
배팅장에 들어가니, 동료들은 니가 왜 여기 있냐는 듯 나와 타격코치, 그리고 불안함에 쫄래쫄래 따라온 투수코치를 번갈아서 보다가, 뒤늦게야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Suck, 조심해. 타격이란 게 말이야, 생각만큼 쉽지 않거든.”
“허리가 제일 중요해 허리가. 남자는 원래 허리가 중요하잖아? 이것도 같은 맥락이지.”
“잘못하면 손 다치니까. 잘 받쳐서 오케이? 손가락을 마는 것보다는. 빈틈없이 꽈악 가져다 댄다는 식으로 잡아야 돼.”
그러더니 훈련은 내팽개친 건지, 죄다 몰려들었다. 아주 우글우글거리네. 뭐하는 짓거리야.
아주 난리를 치면서, 나한테 별걸 다 가르치는데. 딱히 뭔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알아듣게 말해봐, 이 양반들아.
“무슨 소리! 엉덩이야! 피칭할 때도 하체에서부터 힘 끌어오지? 그거랑 비슷해. 엉덩이 잘 회전해야 회전력이 먹어서 공이 쭉 뻗어. 허리? 웃기고 있네.”
“개소리는 크리스 니가 하네! 이 공갈포가 뭘 안다고 떠들어! 너 타율 3할 넘은 적은 있냐?”
얼씨구? 그러다가 또 지들끼리 싸우네? 내가 맞네, 네가 틀리네, 아주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데. 학구적인 것 같아 보기 좋네. 내 앞에서 이 지랄하는 것만 아니라면 말이야.
“코치, 신경 사나우니까, 다들 좀 꺼지라고 해주세요.”
“Go, 네가 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은데?”
“어우, 제가 루키라서. 좀 그렇죠. 시미언까지는 그냥 꺼지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조금···”
“그래. 어이! 다들 꺼져! 에이스께서 불편하시단다. 귀찮게 하지 말고, 경기 준비들이나 해.”
“그러면 제드 너는 홈런 서른 개는 넘긴 적 있어? 없지? 그게 다 엉덩이를 안 쓰니까 힘이 없어서 그런 거야.”
“이 선풍기 새끼가 근데 진짜.”
코치의 호통에 다들 흩어졌는데, 그러면서도 계속 싸우네. 개판이구만, 개판이야.
아무튼 선수들을 헤치고, 빈 곳으로 들어갔는데, 여전히 아닌 척하면서도 다들 나를 봤다.
“Suck 쟤 설마 타격까지 잘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그건 너무 사기지.”
“이미 사기잖아.”
“그렇긴 하네. 그럼··· 진짜?”
“라이온, 너 지명타자 자리 뺏기는 거 아니야? Suck이 엄청나게 잘해서. 지가 던지고 지가 치고. 다 하는 거지.”
“그런 선수가 있으면, 뭐, 고이 넘겨드려야지.”
약간의 기대가 느껴지는 군. 내가 지금까지 워낙 뜻밖의 성적을 올렸으니. 이번에도 혹시나 그럴지도 모른다는 표정이야.
좋아, 똑똑히들 지켜보라고. 내 엄청난 타격실력을.
“몇 마일이에요?”
“75마일.”
“겨우?”
“더 높였다가 혹시라도 Go 네가 다차기라도 하면, 나 하나 잘리는 정도로 안 끝나.”
75마일이라니. 그렇게 느리게 세팅이 된다는 게 신기하네.
피칭머신을 가동한 타격코치는 언제라도 위험하면 뛰어들 수 있도록 날 뚫어져라 봤고. 나는 피칭머신을 봤다.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공이 하나씩 날아왔고, 청아한 타격음이 흘렸다. 뭐랄까, 똑딱거리는 게, 연못에 물 떨어지는 소리 같다고 해야 하나?
“와우···”
“이야~ 다른 의미로 대단한데?”
“Korea는 투수들은 타석에 안 세우나봐? 우리는 하이스쿨이나 NCAA에선 투수도 무조건 타격하잖아?”
“뭐, 나라마다 룰이 다르겠지.”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타구가 뻗지를 않네.”
“엉덩이는 잘 쓰네.”
“허리도 잘 쓰고.”
“저게 무슨 타격폼이야···”
“투구폼은 무난한 녀석이. 타격폼은 뭔 끔찍한 혼종이네.”
난 크리스 데이비스와 제드 라우리가 했던 조언을 정확하게 지켰다. 허리와 엉덩이를 적극적으로 쓰지. 둘 다 따로 놀아서 문제지만.
“그만, 그만!”
“후우, 어때요? 상상이상이죠?”
그래도 이만하면 나쁘지는 않네. 아직 제법 살아있어. 오랫동안 배트 놓았던 걸 감안하면 훨씬 기대이상이군.
75마일이기는 해도, 죄다 맞추기는 했으니까. 그거면 된 거지. 역시 난 재능이 있다니까?
기대감을 담아 타격코치를 봤는데, 그 역시도 놀랍다는 표정을 했다.
“그래, 상상이상이네. 정말로. 정말로 상상이상이야.”
그런 타격코치와는 달리, 스콧 에머슨은 오히려 편안해진 표정을 했다. 내 타격 실력을 보니 안심이 된 건가?
“Go, 당부하는데. 타석에서 절대 뭐 하려고 하지마. 절대로. 그냥 얌전히 올라갔다가, 상대 투수가 공 세 개 던지면, 얌전히 내려와. 알겠지?”
“왜요?”
“···그냥 하지 마. 부탁이야.”
“아, 제가 번트도 진짜 잘하는데. 한번 보여드려요?”
“됐어, 됐어. 괜히 손 다칠라. 그런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그냥 몸 성하게 내려오기만 해라.”
진짠데 안 믿어주네.
희생 번트, 기습 번트, 스퀴즈 번트. 전부 다 기가 막히게 댈 줄 아는데.
초딩 때부터 거의 그것만 하다시피 했으니까.
하지만 타격코치는 제발 참으라는 듯 사정하며 나를 강제로 끌어내렸고, 구경하던 선수들은 대단하다는 듯 엄지를 추켜보였다.
그걸로 타격훈련은 끝났다.
코치는 약간 자세를 교정해주다가, 제분에 못 이긴 듯 씩씩거리며,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을 다시금 반복하며 나를 놓았고.
“차라리 다행이네. 말 잘 들었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삼진만 당해.”
투수코치, 스콧 에머슨은 안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러나 몰라. 난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며칠 감만 잡으면, 고딩 때보다 훨씬 낫겠는데? 내가 원래 타격에 재능이 좀 있거든. 아직 여전하네.
그것을 확인해서 그런가, 왠지 조금 욕심이 났다.
‘간만에 손맛을 봐서 좋은데. 경기에서도 한번?’
잭 그레인키가 왜 그렇게 타격에 집착하는지 알겠다. 이게 피칭이랑 조금 다른 맛이 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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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석, 첫 타자 데뷔! 과연 베일에 감춰진 그 실력은?>
<메츠 원정에서 타석에 오를 고유석, ‘투수의 타격은 부상 위험이 높아’ 오클랜드 팬들은 걱정 중!>
메츠와 애슬레틱스의 경기가 다가왔을 때.
고유석이 타석에 오른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리그 최고의 투수가 타석에 오른다는 건 꽤나 흥미로운 주제였으니까.
물론 정식 타자 데뷔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그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제법 기대되는 일이었고. 혹시라도 부상의 위험은 없을지, 걱정하는 반응도 적지는 않았다.
<준수한 타격능력을 뽐냈던 류영진, 혹시 고유석도?>
<고유석은 과연 답내친을 할 수 있을까?>
다만 한국의 경우 메이저리그 선배인 류영진이 타격에서 제법 그럴듯한 실력을 보여줬기에, 그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또한 최근 등판 경기에서 타자들의 득점지원이 상당히 부실했기에, 소위 말하는 ‘답내친’, 답답해서 내가 친다를 시전할지도 궁금했고 말이다.
[고유석 빠따질 잘함?]
-ㅈㄱㄴ
└아무도 모르지.
└애초에 휘두른 적이 있나?
└고딩 때는 했겠지.
└솔직히 기대하면 안 됨. 미국 건너나고 배트 놓은 지 한참 됐을 텐데.
[고유석 솔직히 기대된다.]
-몸은 진짜 거포 스타일 아님? 피지컬 씹사기라서 기대된다 ㅇㅈ?
└쌉거포지. 똥배도 없이, 허리통이 두툼한게 깡파워 좋은 체형임.
└원래 저런 몸이 타격도 잘함. 류영진도 힘이 좋잖아.
└이렇게 보니까, 고유석 피지컬 진짜 개사기네.
└솔직히 절대 동양인 체형은 아님. 저 정도면 미국에서도 충분히 상위클라스임.
└고유석 3타석 3타수 3안타 3홈런. 9이닝 무실점. 3대0승리 각이다.
└└ㅅㅂ 타자새끼들ㅋㅋㅋ 그 와중에 한 점도 못 냈네.
└베이브 루스냐?ㅋ
워낙 피지컬적으로 이상적인 선수였기에, 어쩌면 타격에도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겨났고.
몇몇은 투타겸업이라는 만화에서 있을 법한 일에 도전한 오타니 쇼헤이를 거론하며. 고유석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 농담에 가까웠고.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지만 말이다.
[고유석 파워 약함]
-똑딱이 스타일임
그렇게 경기 전, 사람들이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나와 직접 목격한 고유석을 증언했다.
└ㅈㄹ 몸만 봐도 공갈포면 모를까, 절대 똑딱이는 아님.
└저런 체형에 똑딱이면 그거 병 걸린 거 아니냐?
└못 하는게 당연하기는 한데. 솔직히 맞기만 하면 쭉 뻗을 몸임. 딱 봐도 타고난 장사야.
고유석이 사실 베이브 루스급의 재능이라는 것만큼이나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이기에.
당연하게도 대다수의 이들은 그저 저급 어그로 정도로 취급하며 넘겼지만. 그는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진짜라니까. 예전에 드래프트 할 때. 우리 팀이 픽한다는 얘기 나와서 몇 번 경기 봐서 앎. 덩칫값 못하는 개똑딱이임.
└└ㄹㅇ?
└└저 덩치에 똑딱이라니. 상상이 안 되네.
└└구라ㄴ ㅂㅅ아
└└진짜라고 ㅂㅅ들아, 옛날이라서 가물가물한데, 타격 스타일 걔랑 비슷함.
└└누구?
└└이대영
└└이대영? 홈런 쿠폰 모으시는 분?
└└ㅇㅇ 고유석 ㅈㄴ빠름.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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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배트를 휘두른다.
기겁하는 스콧 에머슨이 시야의 사각에서 보이는데. 그래도 너무 좋은 코스라서 참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투수라도 그렇지. 한가운데로 체인지업을 던지네. 이건 못 참지!
아마도 승부 내내 미동도 없는 내 모습을 보고, 그냥 타격에 마음이 없다는 걸 알아채고서, 장난삼아 하나 던진 것 같은데. 패스트볼이라면 모를까. 대충 던진 느린 체인지업 정도는 아무리 나라도 충분히 때릴 수 있다.
‘가나?’
배트와 공이 맞닿는 순간,
기분 좋은 상상이 들었다.
타고난 힘이 좋은데, 어쩌면?
체인지업을 제대로 컨택했으니, 쭉 날아가지 않을까?
혹시나 했지만, 역시 그럴 리가 없지. 통~하고 울린 타격음을 남긴 채, 타구는 여지없이 땅바닥을 굴렀다.
고딩 때도 매번 이러더니.
힘은 참 좋은데 말이야.
이상하게 타구가 안 뻗네.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이쪽이 더 익숙하니까. 배트를 대충 던진 뒤 곧바로 달렸다.
3루쪽으로 굴러갔는데. 조금 애매한 타구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지.
투수, 스티븐 마츠는 굉장히 당황한 것 같다. 내가 자기 공을 칠지도, 이렇게나···
“세이프!”
빠를지도 몰랐을 테니까.
날렵한 체형은 아니니까.
솔직히 말하면 곰이지, 곰.
근데 이상하게 빠르더라고. 예전부터. 러닝을 성실하게 해서 그런가, 어째 팔팔했던 고딩 때보다 더 빨라진 것 같네.
‘한 3초대 안쪽으로 끊은 것 같은데. 신기록이네.’
“발이라도 접질리면 어쩌려고!”
“미친 새끼···”
1루 코치는 혼이 나간 듯한 표정을 했다. 선발투수가 냅다 뛰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네.
저~기 보니까, 스콧 에머슨은 거의 혼절하려고 하는 것 같고.
“괜찮아요. 매일 같이 달리는데 무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데··· Go 너 왜 이렇게 빨라? 무슨 대주자도 아니고···”
“제가 덩치는 이래도 은근히 슈퍼소닉이거든요.”
허세는 아니다. 고딩 때 3할도 찍봤거든. 내야안타랑 번트로만. 연습할 때부터 감이 좋더니. 아직 살아 있네.
2이닝 1피안타 3삼진. 그리고 1타석 1안타. 현재까지 내 성적이다. 나중에 경기 끝나고 안타 못 친 타자들 갈구면 제법 재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