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130화 (130/316)

130화

“이 X새끼가 날 무시해? 갓 데뷔한 루키 새끼가, 아주 자기 세상이네, 자기 세상이야.”

라커룸은 시끄러웠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평소보다는 덜하다.

오늘 등판하는 자신을 의식하는 건지, 조금 목소리를 줄였으니까. 사실 여전히 시끄럽지만.

트레버야 원래도 조용한 녀석은 아니지만. 오늘은 부쩍 더 심하다. 이번 경기 내 맞상대가 원인이지.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재밌는 말이네.’

트레버의 도발에 녀석은 그저 비웃었다. 무시도 이런 무시가 없지.

쉽게 말하자면, 맞대결을 펼치기엔 급이 안 맞는다는 뜻이지. 무려 트레버 바우어를 본 거고.

‘Go도 생각보다 에고가 강한 성격이었나?’

투수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에고가 있지만. 이런 성향이라고는 생각 안 했는데 말이야.

어쨌든 그런 철저한 비웃음에 트레버는 단단히 열이 난 것 같다.

내일 등판이니까, 차라리 감정을 다스리는 게 나을 텐데 말이야.

굳이 그런 말에 화를 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완벽하게 준비해서, 무시 못 할 성적을 올리는 게, 본인에게도 더 이롭지 않나?

하지만 트레버는 그러는 대신, 동료들을 쳐다봤다. 마치 무언가를 바라는 것처럼. 은근히 당부하는 것도 같고.

“어떻게든 죽여줘. 프랭크, 간만에 홈런 하나 쳐야지? Suck 같은 놈도 이젠 철벽이 아니잖아?”

특히나 타자들에겐 아주 극진하다. 직접 음료수까지 가져다주며, 홈런을 요구하는군.

자기를 대신해서, 멋지게 이겨 달라는 건지, 내게도 눈빛을 보냈지만. 그래도 귀찮게 굴지는 않았다. 다행이네.

‘트레버에게 시달리면, 집중이 떨어지니까.’

그 뒤로도 트레버는 응원단장이라도 된 것처럼 열정적으로 클럽하우스를 돌아다녔다.

경기가 코앞인데 소란를 부리는 그를 코치들은 귀찮다는 눈으로 보는데. 아무래도 본인은 모르는 것 같고.

그런 트레버를 피해, 불펜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계속 있다가는, 나도 붙잡고 소리치겠지.

“코리, 오늘 폼은 어때? 챔피언을 끌어 내려야지?”

“나쁘지는 않습니다. 평소처럼 적당한 정도죠.”

불펜에 들어가니. 코치가 웃으며 반겼지만.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만만치 않은 녀석과 마운드 위에서 겨뤄야 했으니까.

챔피언, 불펜코치는 상대 투수를 그렇게 지칭했다. 맞는 말이지. 트레버를 우습게 내려볼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하고 위대한 시즌을 보내는 투수니까.

자신 역시 좋은 시즌을 보내고 있지만. 그에 비하면 언더독이라고 해도 되겠지.

‘승을 얻기는 힘들겠어.’

올스타전에서 한 차례 봤다.

지난번의 경기에서도, 벤치에서나마 봤고. 듣던 것처럼 대단했지.

지금도 열심히 떠들고 있을 트레버가 바라는 완승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웬만하면 승수를 추가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조금 힘들 것 같았다. 타격감이 떨어진 타자들이, 손쉽게 공략할 상대가 아니니까.

“나이스볼~ 오늘도 좋네!”

그러니 나도 열심히 해야겠지. 난 클리블랜드의 에이스니까. 에이스로서 팀이 무기력하게 지게 할 수는 없으니까.

‘감은 나쁘지 않네.’

느낌은 좋았다.

공은 손에 잘 감겼고.

원정 경기인데도 포근한 기운이 들었다. 폼이 괜찮은 건가?

‘7이닝.’

Go는 완투를 두 차례 한 적 있다. 하나는 완봉. 하나는 노히터지. 하지만 보통은 7이닝 정도에서 끊는다.

그게 당연한 거고.

그러니 자신도 최소한 그것에 맞춰서, 상대 타선을 막는다면. 승수를 챙기긴 힘들더라도. 팀이 이기게 하는 건 가능하겠지.

물론···

“오- 이번 건 아주 제대로네. 어깨가 싱싱한데? 두 번째 사이 영 타겠어?”

가장 최고는 이기는 거고.

무승부를 바라고 올라서는 선발투수는 없으니까. 에이스라면 언제나 승리를 바라야지.

그것을 이끌어야 하고.

최소한 자신, 코리 클루버가 생각하는 선발투수는 그랬다.

서서히 어깨를 달아올린 뒤, 조금 타이밍을 조절했다.

원정 경기이기에, 1회 말에 등판하니까. 길게 잘 막아야 하니. 너무 풀려도 안 되지.

‘시작하네.’

잠시 숨을 고르며, 불펜 한쪽의 티비를 봤고. 거기선 중계방송이 시작됐다. 바깥이 조금 소란스럽더니. 이제 시작하는 거겠지.

‘아직도 저러고 있네.’

그라운드를 잡은 화면.

그 한쪽에 우리 쪽 덕아웃이 보였다. 그곳에서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트레버도 보였고.

좋은 TV는 아닌 건지.

화질이 조금 나빠서, 동료들의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타자들은 귀찮은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일찍 불펜에 들어오길 잘했어. 안 그랬다면, 걱정했던 것처럼 나도 붙잡혀서 시달렸겠지.

어쩌면 트레버가 상대 투수에게 가진 적개심이 생각보다 더 클 지도 모르겠다.

‘평범하네.’

동료들을 적극적으로 응원하며, 눈으로는 자신을 노골적으로 노려보는데도. 마운드에 올라 선 투수, Go는 트레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마운드를 체크했을 뿐.

한편으로는 대단하다. 일부러 속을 긁는 것 같은데. 그 방법이 아주 효과적였으니까.

자신이 트레버에게 물렸다면 너무나도 귀찮았을 텐데 말이야.

‘올스타 게임에선 컨디션이 좋아 보였지.’

여섯 타자 연속 삼진. 그리고 네 타자 연속 삼구삼진. 이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Go의 컨디션이 최고라는 건.

하지만 올스타전을 등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어쩌면 조금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스트라이크!

역시 아닌 것 같다.

리드오프, 브래들리 짐머.

브래들리는 초구에 헛스윙했다. 안쪽 포심. 자신감이 대단하다. 거의 대부분의 경기에서 초구가 저 코스였던가?

여전히 화질이 나빠서, 브래들리의 표정은 잘 안 보였지만. 당황하고, 긴장한 게 느껴졌다.

그러면 안 될 텐데.

적어도 자신이 보기엔, Go의 앞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표출하지 않는 게 옳다. 좋든 나쁘든 조금이라도 실마리를 흘리면.

-스트라이크!

그걸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할 줄 알았으니까. 당황한 걸 캐치한 Go는 공을 건네받는 즉시 2구를 던졌다.

이번엔 낮은 코스의 공.

아, 그래, 슬라이더군.

당혹감에 한 차례 몸이 굳은 브래들리는 배트를 내지 못하고, 공을 그저 바라만 봤다.

투 스트라이크. 최고의 카운트다. 여기까지 몰아넣는 순간. 극도로 유리해지니까.

타자에겐 최악의 상황이지.

또한 그 투 스트라이크 상황을 현재 리그에서 그 누구보다도 가장 잘 이용하는 투수가 마운드에 있다면.

-스트라이크 아웃!

‘큰일이네.’

악몽이 펼쳐지는 거고.

삼진을 좋아하고. 특히 삼구삼진을 많이 잡는 스타일의 투수이니. 브래들리는 당연히 들어올 걸 예상하고 배트를 냈지만.

투수의 선택은 바깥쪽으로 길게 빼는 것이었다. 스트라이크존을 가르며, 멀고, 낮게 떨어진 공.

‘정말로 커맨드가 잡힌 건가.’

그거다. 이번 올스타 게임에서 가장 히트를 친 것. 너클 커브. 리그 최고의 투수가 들고나온 뜬금없는 구종에 모두가 놀랐었지. 자신도 그랬고.

단순히 이벤트성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낸 것을 보면 확실히 어느 정도 수준은 제어가 되는 것 같다.

삼구삼진. 리드오프가 허무하게 잡혔다. 그 뒤의 린도어.

-스트라이크 아웃!

그리고 브랜틀리까지도.

-아웃!

삼구삼진. 4구 삼진. 그리고 초구 내야 팝플라이. 1회 초가 투구수 단 여덟 개만에 사라졌다.

‘난감하네.’

이기고 싶었고. 최소한 무승부라도 만들고자 했는데. 아무래도 쉽지는 않아 보였다.

‘이기는 건 힘들겠어.’

에이스로서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승리를 상정하지 않았다.

자신감이 없는 건 아니다.

지레 겁먹은 것도 아니고.

자신 역시 잘 던질 자신도 있다.

그저··· 타자들이 저 투수를 공략하는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지금도 열심히 열을 올리고 있을 트레버에겐 미안하지만, 그가 바라던 것처럼. Go가 무너지는 건 힘들 것 같았다.

‘최소한 끝까지 가야겠지.

어쩌면 무승부조차도, 버거울 지도 모르고. 앞서 예측했던 7이닝 정도론 어림도 없어 보였으니까.

“코리, 준비해.”

그렇게 1회 초가 끝났고.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내려간 고유석을 뒤이어, 코리 클루버 역시 마운드로 향했다.

일관적으로 무표정한 얼굴 때문에 클루봇이라는 별명이 붙은 만큼.

험악한 적지에서, 맞대결 상대의 호투를 보고도 코리 클루버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무덤덤함을 유지했지만.

눈동자만큼은 조금 흔들렸다.

최소한의 목표라도 이루고 싶다면. 상당한 고생이 필요해 보였으니까.

####

우리의 드론맨은 아주 끈질긴 사람이다. 경기 안 보냐? 나만 계속 쳐다보고 있네.

약간 거슬리기는 하지만, 뭐, 그거야 그냥 무시하면 되고. 중요한 건 타자들이다.

‘어제 봤던 그대로네. 역시 타격감이 별로 좋지는 않아.’

일단 인디언스 타자들은 내가 기대했던 대로였다. 어제 소니한테 털리더니.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더라고.

현재까지 3이닝 동안 삼진만 다섯 개를 잡았다. 안타나 볼넷은 아직 없고.

그러니 참 좋기는 한데.

중요한 건 타자들이다. 왜 같은 말을 반복하냐고? 아냐아냐, 이번엔 다른 타자들 말하는 거야.

“스트~라이크 아웃!”

“우우우우우우우! 좀 잘 해봐 x새끼들아!”

“또 시작이냐! 또!”

“왜 Suck만 올라오면 공을 못 치냐고! 일부러 그러냐! 너네 X발 레이시스트야?”

그래, 지금 욕 더럽게 처먹고 있는 양반들 말이야. 홈팬들이 아주 단단히 열받은 것 같네.

나도 나지만, 코리 클루버도 우리 타자들을 잘 조지고 있다. 3회 말이 끝난 지금, 안타 하나와 볼넷 하나니까.

무실점이고.

“에너지바 값 좀 해줘요.”

“어허, 그건 이미 계산 끝난 걸로 아는데? 대신 글 써줬잖아?”

“에, 거참 대단하십니다. 대단한 대필작가 나셨어.”

“크흠...”

타자들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아니지, 죄인 맞지. 자기 일도 안하고 있는 건데. 그게 죄인이지, 다른 게 죄인이야?

어제 글 하나 써준 대가로, 나한테 음료수와 간식을 한 상자씩 받아갔던 제드 라우리는 민망한 듯 헛기침만 했다.

나머지는 눈도 잘 안 마주쳤고. 그런 제스처의 의미는 간단하다.

‘힘들다는 거지.’

단순히 지금 성적이 안 좋은 게 민망한 게 아니다. 자신감이 있었다면, 큰 소리를 떵떵 쳤겠지. 다음 타석에 홈런 하나 때리겠다면서.

그런 허세조차 없다는 건, 자신들이 상대 투수를 공략하기 힘들다는 걸, 타자들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드론맨이었으면, 내 쪽에서 긁기라도 했을 텐데···’

지금 돌이켜보면 상대가 아쉽단 말이야. 만약 지금 날 열심히 노려보고 있는 우리 드론맨이 내 상대고. 좋은 피칭을 보였다면, 그걸 망치는 방법은 아주 쉽다.

이닝 마칠 때마다 세리머니하고, 대충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노려보면 되지. 그러다 보면, 또 혼자 급발진해서 말아먹을 테니까.

그런데 코리 클루버는 아니다. 도발이 통할 사람이 아니지. 아니, 애초에 인간은 맞나? 얼굴 봐봐. 저게 어떻게 사람이야? 로봇이지.

인디언스에서 69년간 우승 못해서 몰래 야구로봇 하나 만든 게 분명해.

‘상대 투수를 흔들 수는 없으니··· 방법은 하나네.’

뭐가 더 있겠어? 공격은 타자들한테 맡기고. 나는 내 할 일 하는 거지. 사실 이게 당연한 거고.

끝까지 조지다 보면, 누구 먼저 내려가겠지. 그게 내가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좀 길게 갈 거예요.”

“이젠 그냥 막 통보하네? 설득도 안 하고.”

“이제 우리가 그 정도 사이는 되잖아요?”

“글쎄, 난 조금 생각이 다른데. 일단 잘 던지고 와.”

글러브 끼고 당당하게 말하니, 스콧 에머슨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식으로 고개를 저었다. 뭐요, 내가 뭐 나쁜 말이라도 했수?

굉장히 힘들어 보이는 스콧 에머슨의 모습이 조금 마음에 찔리긴 했지만. 애써 무시하고, 옆에 사이드킥 끼고서 그라운드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의 빌런께서 바로 노려봐 주시는 구만. 너 사실 내 팬이지? 아니, 팬들도 그렇게 집중해서 보지는 않겠다.

그냥 팬은 아니고, 레이더스 수준은 되겠네. 이참에 너도 해골 마스크 껴라. 페이스페인팅을 하던가.

“징글징글하다, 진짜.”

“그러게 미친놈을 왜 건드려. 괜히 자극하니까, 더 달려드는 거 아니야.”

“욕먹고 가만히 있는 성격은 아니라서. 그래도 저렇게까지 집착할 줄 알았으면, 좀 참을 걸 그랬네.”

같이 싸잡혀서 시선을 받은 사이드킥, 브루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경기 중인데 빠져 가지고 말이야.

“무시하고, 공이나 잘 받아.”

“넌 나한테 그거 말고 다른 할 말 없냐? 맨날 공이나 잘 받으래. 사람 서운하게. 누가 보면 매번 공 놓친 줄 알겠네.”

“알았으니까, 잘 받아 인마.”

“예예.”

좀 친해지긴 했나봐.

브루스 녀석, 처음에는 바짝 쫄아서 말 잘 듣더니. 요즘에는 조금씩 개긴단 말이야.

볼배합도 안하고. 프레이밍도 못하는 놈이. 그럼 공이라도 잘 받아야지. 물론 볼배합은 내가 안 시켜주는 거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브루스를 내려보낸 뒤, 상대 타자들을 한 차례 쭉 훑었다. 이제 한 타순 돌아서 다시 1번부터인데.

‘표정 좀 감춰라. 에이스 보고 배워.’

다들 감정이 훤하다.

어떤 생각인지 뻔히 보여.

팀 에이스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로봇인데. 타자들은 그래도 얼굴에 드러나네.

날 바라보는 타자들.

그들의 얼굴에 씌워진 감정은 딱 하나였다. 두려움. 그래, 그렇겠지. 퍼펙트로 털리고 있으니까. 심지어 그 퍼펙트가···

“스트라이크!”

끝나기는 할지조차 불확실하다면. 더욱더 두려울 수밖에.

초구는 과감하게 던졌다.

몸쪽으로 박히는 너클 커브.

아직 제구가 완벽하진 않지만, 대가리 조준하면 몸쪽으로 들어가더라고. 삐끗하면 헤드샷으로 퇴장이지만.

1번타자 브래들리 짐머는 아까 전보다는 그래도 제법 감정을 다스리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긴장이 여실하게 느껴졌다.

“볼!”

그래도 이걸 고르네.

2구는 바깥쪽 슬라이더.

배트를 낼 것 같아서 유인구로 던졌는데, 아쉽네.

“볼!”

오, 진짜 각성이라도 했나?

다시 한번 바깥쪽. 하지만 이번엔 포심이다. 넣으려고 했는데, 살짝 나갔네. 이걸 안 잡아주다니, 너무하시네, 심판양반.

그래도 이걸 골라내다니. 대단한데? 투 볼 원 스트라이크. 엿 같은 카운트다.

별로 친한 녀석은 아니지.

여기서 까딱하면, 쓰리볼이 돼서, 진짜 애매해지는데···

“스윙! 스트라이크!”

그렇기에 한번 더 뺐다.

배트를 낼 것 같았거든.

4구 서클 체인지업.

당연히 역회전으로 들어가는 V2가 아니라, 떨어지는 V1으로 던졌다.

아슬아슬하게 걸치게 넣는다면 모를까. 저런 코스로 역회전 강한 거 던지면. 한복판으로 들어가지.

그래도 배트를 낼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존 안으로 들어올 걸 예상하고 휘두른 타자는 크게 헛스윙했다.

이제 투 앤 투.

‘힘이 빡 들어갔네.’

내가 잡으러 들어갈 걸 알고 있나봐. 하긴, 지금 리그에 내 피칭 스타일 모르는 타자는 없을 테니까.

그 유명한 Go You-Suck이라면, 무조건 잡으러 올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것도-

‘하이 패스트볼로.’

마지막 5구.

타자는 자신이 생각한 것과 똑같은 눈높이의 공에 망설임 없이 스윙했다. 하이 패스트볼을 대놓고 노렸네.

큰 거 한방 날릴 생각에 얼굴이 밝아졌는데.

“스트라이크 아웃!”

그거 서클이야. 이번에도 V1. 타자는 떨어지는 공에 다시금 헛스윙했다.

참고로 잡으러 들어간 거다? 잘 봐, 코스가 스트라이크존 안이잖아? 거의 한가운데네.

한복판에 꽂히는 체인지업. 실투나 다름없는 공이니, 때리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하도록. 이걸로 다시 1번타자 컷.

“You Suck!”

“You Suck!”

“Your Fucking Suck!”

멘탈도 컷!

유어 퍽킹 석이라니.

왜 내 이름 사이에 욕을 넣고 그러세요. 사람 서운하게. 너무들하시네.

그래도 효과는 확실하다.

비틀비틀 덕아웃으로 돌아간 브래들리 짐머는 결국 울분을 이기지 못한 듯 덕아웃 한쪽 벽을 강하게 때렸으니까.

그러지마, 안 그래도 낡고 병든 건물이라 들어올 때마다 불안불안한데, 괜히 그러다 무너질라.

‘다음은 린도어.’

부디 브래들리 짐머가 스스로 화를 다스리기 바라며, 그다음 타자를 맞이했다.

프란시스코 린도어.

마찬가지로 첫 타석은 삼진으로 잡았다. 확실히 컨택이 안 좋더라고.

‘다만 본인은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고.’

저조한 타격감과는 별개로.

린도어 본인은 자신감 가득 눈을 빛내고 있는데. 좋은 자세다.

괜히 슬럼프라고 기분 바닥으로 쳐박다간, 진짜 맛이 가는 법이니까. 저도 모르게 소극적은 타격을 하게 되거든.

괜히 선수출신 해설위원들이 부진하는 타자에게 자기 스윙을 강조하는 게 아니지.

그런 의미에서 린도어는 어떻게든 자신의 스윙 감각을 유지하려고 했다.

“아웃!”

결과는 안 좋지만.

초구는 이번에도 과감하게 넣었다. 몸쪽 꽉찬 코스. 린도어는 기다렸다는 듯이 타격했지만. 미안하지만 투심이다.

마운드로 데굴데굴 굴러온 땅볼을 주워, 1루로 송구하니, 린도어는 몇 발자국 떼지도 못한 채 방향을 틀어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2번타자도 컷.

그나마 운 좋은 줄 알아.

삼진 아니라서, 유석유석은 안 들었으니까. 방금 전에 니 동료 봤지? 브래들리 짐머 말이야. 그 꼴 안 난 걸 감사히 생각해라.

‘마이클 브랜틀리.’

브랜틀리. 브래들리 아니다.

나도 처음엔 마이클 브래들리라고 불렀었는데, 시미언이 제대로 가르쳐줬다.

미국놈들 이름 참 이상해.

세계 각지에서 다 모여서 그런가. 별의별 성이 다 있다니까.

아무튼 3번타자다.

타순에서 드러나듯, 팀 내에서 가장 잘하는 타자라는 거지.

‘지금은 5번에 있는 호세 라미레스가 더 나은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는 없지.

“세이프!”

아니나 다를까. 어거지로 안타 하나 만드네. 퍼펙트, 기대도 안하긴 했지만. 좀 짜증나네.

“야! X발놈아!”

“그걸 왜 쳐!”

왜 치긴 왜 쳐요.

타자니까 쳤지.

고정들 하세요.

홈팬들은 아주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은데. 본인은 좀 억울하겠어. 타자의 본분을 다한 건데 말이야.

1회 초와 마찬가지로 날로 먹으려고 살짝 범타 유도해봤는데. 음, 내가 너무 얕봤네.

그래도 중견수 라제이 데이비스가 빠르게 대처해준 덕분에 1루에서 멈췄다.

마음을 너무 가볍게 먹었나봐. 자신감이 좋은 것도 좋지만. 적절하게 제어할 줄 알아야 하는데 말이야.

쉬면서 몸이 근질근질거려서 그런가. 마음이 너무 들떴네.

“스트라이크 아웃!”

반성하는 의미에서, 후속타자, 에드윈 엔카르나시온? 엔카나시온? 아무튼 그는 최선을 다해서, 아주 철저하게 공을 던졌다. 본인은 별로 바라지 않는 것 같았지만.

바깥쪽에서부터 기괴한 궤적을 그리며 존안으로 들어온 너클 커브에 그는 얌전히 지켜봤고. 그것으로 4회 초도 끝났다.

“역시 좀 오래 가겠네.”

“응? 뭐라고?”

“아니, 그냥 분발하라고. 홈런 하나 쳐라.”

“하하, 당연하지. Suck 너 드디어 내 타격을 인정하네. 그럼그럼, 나 정도면 코리 클루버라고 해도 홈런을-”

“아니다, 내가 잘못 봤네. 넌 그냥 공이나 잘 받아라.”

보니까, 너는 안 되겠다.

사실 얘 말고 다른 타자들도 안 될 것 같고. 애초에 표정이 없긴 하지만, 코리 클루버는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약간 눈빛이 달라진 걸 제외하면. 타자들이 때려잡긴 힘들겠네.

‘뭐, 그럼 9회까지 가는 거지.’

그러면 별 수 있나. 나도 계속 상대 타자들 조지는 수밖에.

후반기 시작부터 무리하면 안 되니까, 원래는 적당히 7이닝만 딱 던지려고 했는데, 코치에게 통보했던 것처럼 역시 좀 길게 가야할 것 같았다.

아마도 인디언스 타자들은 그리 반기지 않겠지만, 어쩌겠어? 그쪽 에이스를 원망하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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