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오오··· 이- 이게, 올스타 MVP··· 역시, MVP 들어간 것들은 때깔이 달라.”
“와··· 이거 너무 예쁘게 만들어진 거 아니야? 레플리카라도 하나 갖고 싶다···.”
올스타 MVP 상으로 받은 유리 배트와 함께 돌아오니, 선수들이 우르르 몰렸다.
누가 보면 무슨 신성한 성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영롱한 자태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소니 그레이나 크리스 데이비스처럼,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할 만한 양반들조차 흘끔흘끔 살폈다.
“만지지 마라, 때 탄다.”
“만지지도 못하게 할 거면, 왜 클럽하우스에 가져온 거야?”
“그야··· 자랑하려고?”
“X새끼네.”
난 투수니까, 사실 유리 글러브를 줬으면 싶지만. 생긴 게 너무 예뻐서 막 남들한테 보여주고 싶더라고.
여기저기 잘 확인시켜준 뒤, 고이 라커룸 안에 모셔두니, 다들 입맛만 쩝쩝 다셨다.
“그나저나, 너클 커브, 커맨드 흔들린다고 하더니, 잡은 거야?”
“아, 그래, 그건 대체 뭐야? 그런 건 언제 배웠어? 완전 돌았던데.”
“좌타자들 곡소리 나겠더라. 난 얘가 헤까닥해서 하퍼 대가리 맞추는 줄 알았다니까?”
너클 커브에 대한 질문은 수도 없이 들었다. 기자들에게도, 만난 팬들에게도.
심지어 올스타전 다른 투수들도 은근히 묻고는 했으니까. 대체 누구한테 배웠고, 어떻게 던지느냐고 말이야.
뭐, 이게 그렇게 어렵다고.
그냥 그립 잡고 던지니까 위력은 처음부터 좋던데. 너클 커브, 이거 참 좋은 구종이야.
물론 여전히 다른 구종들처럼 완벽하게 제어할 수는 없다.
이전처럼 막 지 혼자 날아가는 건 아닌데, 조금은 미묘하다고 해야하나?
좌타자 기준으로 타자의 대가리를 조준해서 던지면 얼추 존안으로 들어가지만. 정확한 제구는 아직 힘들다.
‘그래도 워낙 위력이 좋으니까, 마음대로 스트라이크만 던질 수 있어도 충분하지.’
“아직 완벽한 건 아닌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가능해.”
아무튼 그렇기에 대충 대답해줬는데, 투수들은 표정이 굳었다. 뭐랄까, 약간의 박탈감? 그리고 짜증이라고 해야하나?
“미친놈··· 무슨 마술 모자도 아니고, 구종이 척척 나오네.”
“Suck, 인간적으로 그렇게 많이 가졌으면, 서클 둘 중 하나는 나한테 넘겨줘. 넌 다른 거 많잖아.”
“분명 내가 가르쳐 줬는데··· 난 왜 저렇게 안 꺾이지?”
내가 가진 구종이 워낙 많잖아? 쓰리핑거 체인지업이나, 커터, 슬로 커브를 제외하면, 대부분 완성도도 괜찮은 편이고.
다른 투수들이 구종 하나 새로 장착하려고 최소 1년 이상을 고생하는 걸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기는 하겠네.
특히 내게 직접 가르쳐 준 장본인인 리암 헨드릭스는 극심한 현타감이 닥쳐온 건지,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졌다.
약간 자괴감도 느끼는 것 같고. 이거, 본의 아니게 후반기 시작하기도 전에 팀 투수들 자존심을 박살 내버렸네.
“Suck! 괜히 뽐내지 말고, 빨리 와. 일단 폼부터 체크해야지.”
내가 투수진 자존심을 족치는 걸 더는 방치하지 않으려는 건지. 스콧 에머슨은 한숨을 내쉬며 나를 불렀다.
“체크가 필요하겠어요? 그냥 최고예요, 최고.”
“그래, 올스타전 피칭보니까, 최고인 건 나도 알겠는데. 그래도 일단은 정확하게 확인해야지. 어느 정도이고, 언제 등판시킬지.”
“어, 첫 경기 안 나가요? 저 1선발 밀렸어요? 저 이제 에이스 박탈이에요?”
내 말에 스콧 에머슨은 대체 그건 무슨 개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이 양반도 슬슬 나한테 진저리가 나기 시작한 것 같다. 락하운즈에서 존 와스딘도 그랬거든.
점점 높이 치솟기만 하는 성적과 반대로, 나에 대한 믿음? 신뢰? 같은 것도 사라졌지. 하이스쿨 애새끼를 보는 것처럼.
“너 말고 에이스가 누가 있어. 그러니까, 괜한 소리 하지 마. 아, 소니한테는 이런 말 하지 말고.”
“그렇게 눈치 없는 놈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튼 출장은 왜요?”
“너, 올스타전 뛰었잖아. 설마 첫 경기 등판할 생각이었어?”
아, 그렇지.
2이닝만 꼴랑 던져서 몸이 너무 쌩쌩해서 그런가, 이걸 생각 못 했네.
만약 올스타를 나가지 않았더라면, 난 당연히 첫 경기에 선발등판 했을 거다.
7월 5일, 화이트삭스전이 마지막 등판이니까. 쉬어도 너무 쉰 거지. 뭐, 그 덕에 피로는 확 풀려서, 시즌 초반처럼 몸이 돌아왔지만.
“고작 2이닝이라고 해도, 딱 보니 Go 너 죄다 전력투구던데. 후반기 첫 경기가 14일이니···”
“좀 짧긴 하네요.”
나는 별로 상관없다.
누누이 말하지만, 멀쩡하거든.
물론 대니얼은 기겁하겠지.
마찬가지로 구단도 꺼릴 거다. 아무리 2이닝밖에 안 던졌고, 투구수도 거의 연습피칭 수준이라고 해도.
팀 최고의 유망주, 아니, 역대 최고의 유망주를 며칠 쉬게 하지도 않고 바로 등판시키는 건 좀 그렇지.
막말로 내가 막 굴릴 정도로 값싼 놈도 아니니까. 반대로 기스라도 났다가는 단장 모가지가 위험할 정도로 비싼 몸이지.
진지하게 60일 부상만 끊어도, 단장, 감독, 코치, 죄다 갈려나갈 걸?
“선택지는 둘이야. 15일, 2차전에 등판하는 것. 하루 더 쉬고 16일에 등판하는 것. 사실 15일에 등판하는 것도 조금 그렇기는 한데···”
그렇기에 아무래도 스콧 에머슨은 내가 충분한 휴식일을 갖춘 뒤에 등판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16일에 등판이라. 올스타전이 11일이었으니. 딱 적절한 수준이기는 한데···
“상대 선발은 누가 나와요? 15일이랑 16일 둘 다.”
“라인업 까보기 전에는 모르지만, 아마도 15일은 클루버겠지. 9일에 등판했으니, 로테이션도 딱 맞네. 올스타전에도 등판하지 않았으니까. 16일에는 당연히 트레버 바우어일 거고.”
로봇이랑 드론맨인가.
인디언치고는 굉장히 기계적인 선발진이네.
“그럼 15일이 좋겠네요.”
“굳이?”
내 말에 스콧 에머슨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딱 그런 표정이네. 언행이 일치되는 사람이야.
사실 그게 당연하기는 하다.
승수를 챙기기 위해선, 나뿐만이 아니라, 성대 선발투수도 중요하니까.
내가 9이닝 완봉을 하더라도, 일단 우리 타자들이 빠따를 놀려야, 이길 거 아니야?
그런 의미에서 코리 클루버. 야구 로봇은 그리 적절한 상대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이 영 후보 중 하나지.’
사이 영 상 레이스에서 내가 독보적인 선두주자기는 한데, 당연히 후발주자들은 있다. 2위권을 형성했지.
대표적으로 나와 함께, 300탈삼진 페이스인 크리스 세일이 있고. 그다음으로 꼽히는 게 지금 언급한 코리 클루버다.
그러니 승리를 챙기고 싶다면, 그리 반가운 상대는 아니지. 사실 그중에선 내가 최고겠지만.
어쨌든 스콧 에머슨은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지었는데, 이유는 있다.
“일단 너무 오래 쉬었어요.”
7월 5일 이후로 올스타전에 잠깐 깔짝한 걸 빼면 등판이 없다. 푹 쉬어서 좋기는 한데···
‘시즌 중에 이렇게 오래 등판이 없는 건, 마냥 반가운 일은 아니야. 선발 감각이 무뎌질 테니까.’
이러면 감각이 무뎌진다.
연습으로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전 감각이 좀 떨어지지.
2이닝 던졌다고는 해도, 크게 힘든 것도 아니니, 차라리 조금이라도 일찍 올라서, 리듬을 유지하는 게 더 나았다.
그리고···
“드론맨은 좀 껄끄러워서. 분명히 또 입을 털 거 같은데. 그거 일일이 대꾸하는 것도 귀찮아요.”
14일은 대니얼과 구단이 함께 입을 모아 반대할 테니, 어차피 안 되니, 제외하면. 남은 건 16일인데.
좀 귀찮거든. 나한테 제대로 발렸으니, 아주 이를 갈고 있을 것 같은데. 무시하자니, 더 지랄할 거고. 대응하자니, 귀찮다.
코리 클루버야, 한결같은 표정 외에도 무난한 나이스 가이로 유명하니, 딱 좋지.
마지막으로···
“그리고 원래 에이스는 에이스로 잡아야죠.”
사이 영 상 후보 간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는 것도 제법 그림이 예쁠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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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스볼~”
“이 정도면 괜찮죠?”
“음··· 여전히 조금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네, 문제는 없겠네요.”
15일 등판이 확정됐다.
개인 트레이너인 대니얼과 팀 트레이너까지, 모두 다 멀쩡하다는 평가를 내렸으니까.
휴식일이 조금 짧은 게 걱정스럽기는 해도, 몇 구 던지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지.
이거 봐? 공도 좋잖아?
묵직하게 쭉 들어간 포심이 포수 글러브를 거칠게 때렸고, 강렬한 파공성이 후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불펜피칭이라 적당히 조절하고 있는데도, 느낌은 오히려 올스타전 때보다 더 나았다.
오히려 올스타전의 등판이 적절한 윤활유가 된 것 같네.
내내 쉬었다면 좀 녹슬었을 텐데, 중간에 한번 목줄 풀고 던져서 그런가, 몸이 시원하네.
“멀쩡하다니까요. 올스타전 그거, 투구수가 몇 개나 된다고. 죄다 삼진으로 잡았는데.”
“네, 다 삼진이었죠. 모두 다 전력투구였고요. 이해는 하지만, 그런 피칭은 웬만하면 자제하세요. 과도한 부하는 신체에 독이니까요.”
내 말에 대니얼은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똑똑히 당부를 내렸다. 엄마네, 엄마.
뭐, 그래도 나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까. 조심히 주워섬겨야지. 이것도 엄마 잔소리랑 비슷하네.
“예예, 아무튼 코치, 15일에 나가면 되죠?”
“그래야지. 프런트에서도 오케이했고. 컨디션 잘 가다듬고, 등판에 맞춰서, 폼 관리해.”
그거야 당연한 거고. 아무튼 등판일도 결정됐으니. 이젠 순수하게 경기에 집중할 차례다.
테스트와 같았던 불펜피칭을 마친 뒤, 나는 곧바로 분석팀의 자료를 뒤적였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저번에도 상대해보기는 했지만, 좋은 팀이다. 투타 양쪽으로 좋은 선수진을 갖췄지.
‘69년간 우승 못 한 팀이라고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말이야.’
애초에 그토록 오랫동안 우승을 못했기에, 이처럼 적극적으로 윈나우를 달리는 것이기도 하고.
투수진이야, 나랑 관계없고.
타선은 저번에 상대했을 때보다는 조금 기세가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준수하다.
‘중심타선의 파워과 제법 그럴듯하지.’
다만 프란시스코 린도어의 경우, 폼이 좀 안 좋았다. 컨택이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전반기 끝나고 적절하게 휴식하면서, 다시 타격 사이클이 올라왔을지도 모르니, 무시할 수는 없다.
‘휴식기간 끼면 이게 애매하단 말이야. 타자들 상태가 어떤지가 불분명해.’
사실 린도어 외의 다른 타자들도 마찬가지로 감이 잘 안 잡혔다. 적절하게 쉬면서, 폼이 올라왔을 수도 있고.
잘 하고 있을 때 리듬이 끊겨서, 좋았던 사이클이 내려갔을 수도 있으니까.
‘14일에는 소니가 나가던가?’
내 로테이션 문제로, 소니 그레이가 에이스는 아니지만, 다시 1선발을 차지했다. 후반기 첫 번째 투수지.
소니에겐 미안하지만, 그의 피칭이 모르모트가 돼주겠지. 유심히 지켜봐야겠어.
물론 그런 소니 그레이를 두들겨 팰 정도로 타격감이 올라왔다고 하더라도···
‘그냥 떄려잡으면 되는 거고.’
폼 좋아진 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후반기 첫 경기에, 사이 영 후보 간의 맞대결인데.
기왕이면 멋지게 잡아야지.
삼진도,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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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아아아앙~
우렁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방귀라도 뀌었냐고?
무슨 그런 상스러운 말을!
배기음이야, 배기음.
“소리 죽이네. 무슨 머슬카 같은데요?”
“하하, 원래 Made in America는 귀로 먼저 타는 법이죠.”
올스타전 MVP 타고 받은 거 있잖아. 그 멋진 놈 말이야. 그래, 나 불효자 만든 그거.
그라운드에 있던 거 그대로 주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새로 뽑아서 주더라고? 색상까지 골라서.
그래서 멋들어진 빨간색으로 요청했는데, 드디어 오늘 배송이 됐다.
‘배송이라고 하는 게 맞나? 그렇게 표현하니까, 뭔가 페덱스로 받은 것 같네.’
아무튼 기왕 왔으니, 출근길에 타고 가려고 시동을 걸었는데. 역시 미국차!
시동을 걸자, 미국에서 흔히 보는 머슬카처럼 무거운 배기음이 나왔다. 소리부터 미국차네, 미국차야.
왠지 동심이 피어올랐다. 중학생 때만 하더라도 이게 꿈이었지. 메이저리그 딱~가서 멋진 슈퍼카 모는 거 말이야.
옆좌석엔 금발의 서양···
“이런 차는 저도 처음인데, 신기하네요. 조금 위험해 보이기는 하지만, 멋은 있어요.”
아저씨가 있네. 제기랄.
사실 대니얼은 별로 반기지는 않았다. 슈퍼카, 스포츠카라는 게 멋있기는 해도, 조금 위험해 보이잖아?
사고 났을 때 완전 박살이 날 것 같으니까. 그리고 오클랜드라는 도시 자체가, 이런 슈퍼카 타고 돌아다니기 좋은 곳도 아니고.
그렇기에 처음만 하더라도 장비도 실어야 되는데, 픽업트럭이나 고르지, 뭐 이런 걸 선택했냐고 타박하기도 했는데. 역시 직접 타보니, 그도 나랑 비슷한 표정을 했다.
남자는 다 똑같아.
“그럼 가죠!”
“위험할 수 있으니, 오늘은 제가 운전을···”
이 아저씨가 어디서 그런 저급한 개수작을. 단호하게 눈을 부라리니, 대니얼은 잔뜩 시무룩해진 얼굴로 얌전히 옆자리에 앉았다.
그대로 콜리시엄까지 시원스럽게 달리니,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 괜한 망상이 아니야. 진짜라고.
‘내가 누구? 쉐보레 콜벳? 코르벳? 아무튼 스포츠카 오너.’
사실 차만 새 거인 건 아니다. 스폰서 계약하면서 받은 물품들도 다 왔거든.
글러브랑, 야구화, 간식, 음료수 등등. 많기도 하더라. 너무 많이 봐서, 택배기사랑 친해질 정도였지.
처음에는 날 봤다면서 좋아하던데. 나중에는 뭐가 이리 많냐고 짜증내더라. 사람이란 게 적응의 동물이라니까.
‘글러브랑 야구화는 길들여놨으니 됐고. 간식은··· 막상 이것만 먹으라고 하니까, 좀 껄끄럽네.’
카메라에 잘 잡히도록 야무지게 먹어 달라고 요청했는데. 억지로 한다고 생각하니, 괜히 좀 어색했다.
아무튼 그런 새 마음, 새 몸, 새 뜻으로 콜리시엄에 도착하니, 제법 사람이 많았다.
“누구길래 저런 갈 타고다녀? 선수인가?”
“모자란 놈이네. 오클랜드에서 뭐 저런 휘황찬란한 걸 타고다니- 어? Suck?”
거, 다 들었어요.
선수전용 주차장에 주차하니, 제법 사람들이 많았는데, 쓸데없이 멋진 자동차의 외형에 투덜거리다, 내 얼굴을 보고는 눈동자가 하트로 변했다.
내 예쁜 붕붕이를 욕한 것 때문에 조금 화가 나서, 조금 짜증스럽게 사인을 해준 뒤 클럽하우스로 들어오니.
어쩐지 저번과 비슷했다.
마주친 선수들마다, 피식피식 웃거나. 무언가를 바라는 것처럼 흘겨봤으니까.
저번에 인디언스 원정 경기 때, 호텔 식당에서 저런 표정이었지. 대충 알겠구만.
“드론맨 또 입 털었어요?”
트레버 바우어. 우리의 드론맨. 얘밖에 없지.
드디어 후반기 첫 경기가 오늘 열리니, 아마도 이 경기장 안에 있을 텐데. 또 손가락을 놀리셨구만.
“어, 아주 제대로. 저번이랑 다르게, 이젠 그냥 욕하고 있는데?”
“차라리 그게 낫겠네. 바빕이니 뭐니, 논리적인 척 씨부리는 것보다는.”
“어떻게, 이번에도 들이받을 거야?”
손수 드론맨의 SNS를 보여준 제드 라우리는 무언가 기대하는 듯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아마도 내가 확 들이받아서, 또다시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
그때야, 어차피 등판일이 겹쳐서, 겸사겸사 털어준 거지. 지금은 뭐하러? 그리고 오히려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걸 보니까, 오히려 마음이 식었다.
“됐어요. 뭐 대단하다고. 그리고 이미 내일 등판 확정됐어요.”
“그래? 아쉽네. 드론맨 멘탈 터지는 거 또 보고 싶었는데.”
내 말에 제드 라우리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아쉬움을 표출했는데. 이 양반은 곧 경기인데 경기 생각은 안 하고, 이상한데 관심을 가지고 있네.
뒤를 맡겨야 할 2루수가 이러고 있는 거 알면, 소니 눈물 흘리겠네.
“제드, SNS하죠?”
그러니 그냥 무시하고 싶은데. 아마도 계속 입을 털 거다. 내가 뭐라고 대꾸하든지 말이야. 딱 봐도 집요한 놈이니까.
그러니, 어차피 떠들 거, 제드 라우리가 바라는 대로 복장이나 뒤집어 놓을까?
아무리 무시한다고 해도. 나도 사람인지라, 욕먹으니까, 좀 열 받네?
“어, 하지. 애초에 우리팀에서 안 하는 건 Suck 너 밖에 없어. 넌 무슨 원시인이냐? 휴대폰도 있으면서. 남들 다 하는 걸 왜 너 혼자 안 해.”
“인생의 낭비라서? 아무튼 SNS하면, 지금 글 하나만 적어서 올려줘요.”
“싫어. 난 드론맨이랑 척지기 싫거든. 나만 보면 기를 쓰고 조지려고 할 텐데. 내가 뭐하러?”
한가득 받은 탓에 두고두고 먹으려고, 어제 미리 클럽하우스로 옮겨뒀던 간식 상자를 가리키니, 제드 라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올릴까?”
“Go가 말하길, 저번에 상대했을 때, 너무 기대이하여서 딱히 관심도 없다고 하더라. 원래 짖는 개는 안 문다. 뭐, 이런 식으로?”
“명문이군. 좋아, 금방 올릴 게. 그럼 저 상자 하나는 내 거 맞지?”
“가져가서 맛있게 드슈. 기왕이면 카메라에도 딱 보이게.”
아마도 아주 눈깔이 뒤집어질 것 같은데. 그거야 이제 나랑 관계없고. 질척거리는 드론맨에게 흙도 뿌렸으니.
이제 남은 건 내일 경기에 집중하는 것뿐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잠시 뒤 시작된 후반기 첫 경기에서, 소니 그레이는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고서 내려갔고.
이후에도 인디언스 타자들은 점수를 내지 못하며, 영봉패를 당했다. 자존심이 상하는 건지 얼굴색이 안 좋네.
‘저쪽은 더 안 좋고.’
마찬가지로 덕아웃에 콱 틀어박힌 트레버 바우어는 경기는 안 보고, 계속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새 봤나보네. 너 그거 중독이야, SNS 중독. 경기가 끝난 뒤에도 끝까지 노려보는데.
누가 보면 얘가 패전투수인줄 알겠네. 영봉패로 털린 타자들보다 더 낯빛이 안 좋아.
“Suck,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거래는 내 손해 같아. 네 말 받아적은 것 때문에 경기 내내 노려본단 말이야.”
제드 라우리도 내내 시달렸던 건지,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거, 이미 잘 챙겨놓고 말이 다르시네.
“한 상자 더 드릴게요.”
“간식은 이제 필요 없어. 누구 덕분에 나도 남아돌거든.”
“그럼 음료수 어때요? 그거도 한가득 있는데.”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해. 바로 올려줄 테니까.”
거래를 할 줄 아는 양반이네. 자기 몸값을 올릴 줄 알아. 역시 베테랑은 다르다니까? 노하우가 있어.
싱글벙글 웃으며 멀어지는 제드 라우리를 뒤로 한 채, 나는 조금 더 인디언스를 눈에 담았다. 일단 오늘 경기로 확정됐다.
‘걱정 안 해도 되겠네. 마음 놓고 조지면 되겠어.’
내일 인디언스는 내 손에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