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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128화 (128/316)

128화

고유석의 커브는 팬들 사이에서 제법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였다.

<‘느림의 미학’ Go, 슬로 커브로 완벽하게 타이밍을 빼앗았다!>

한 손에 꼽을 만큼 나온 적 자체가 적기는 하지만, 그 효과가 생각보다 좋았으니까.

리틀 야구 수준에서나 볼법한 느릿한 구속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삼진을 잡는다는 것 역시 꽤나 흥미로웠고.

[갓유석의 진짜 비밀병기는 커브다ㅇㅈ?]

-백발백중 아니냐?

└솔직히 ㅇㅈ

└아ㅋㅋㅋ 커브까지 던지면 밸런스 안 맞아서 일부러 숨기는 거지.

└메쟈놈들 운 좋은 줄 알아라. 66마일짜리 파워커브도 던졌으면 이미 300삼진 잡았다.

그것을 더러 우스갯소리로, 진정한 비밀병기라고 지칭하기도 했지만, 사실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고유석이 커브를 던진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조차 많았으니까.

한눈에 봐도 심각하게 완성도가 낮기에, 오히려 농담처럼 막강한 파워커브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그 조롱에 가까웠던 파워커브가 정말로 등장했다. 그것도 모든 이목이 집중된 순간에.

<고유석의 구종은 대체 몇 개? 새로운 신병기 장착!>

<슬라이더? 커브? Go가 꺼낸 새로운 구종에 시선 집중!>

양키스를 노히터로 잡은 경기는 당연하게도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특히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애런 저지의 삼진 장면은 고유석의, 그리고 오클랜드의 팬이라면 누구나 다섯 번 이상은 봤다.

그 장면에서 나온 커브는 압도적이었다. 딱 하나, 겨우 한 구밖에 던지지 않았음에도.

고유석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결정구인 역회전이 강한 서클 체인지업 V2와 비슷하다 평가하는 이들조차 있을 정도로.

[#A’s]

[Go가 저지 잡을 때 던진 건 커브야, 슬라이더야?]

└떨어지는 거 보면 커브 같은데··· 또 너무 심하게 꺾여서 슬라이더 같기도?

└Go는 진짜 마법의 주머니라도 있나? 쩔어주는 구종을 무슨 틈만 나면 하나씩 꺼내네.

└지금 Go 구종이 대체 몇 개야? 저거 다 컨트롤하는 게 가능하다고?

아니, 그게 커브인지조차 애매했다. 분명 떨어지는 각도는 커브 같았지만, 꺾이는 무브먼트는 굉장히 잘 긁힌 슬라이더였으니까.

그토록 정체조차 불분명한 20-80 스케일 기준 최소 Plus(60), 아니, 65점 이상의 가치를 지닌 수준의 신구종은 팬들에게 흥분을 안겨줬다.

이미 리그 최고의 투수인데, 거기에 충분히 빅리그에서 먹히는 또 다른 무기를 장착한 고유석이 기대됐으니까.

딱 하나밖에 던지지 않았기에, 더욱더 기대치가 높아진 것도 있었고 말이다.

[고유석 커브 안 던짐?]

-판사님 잡을 때 던진 거 개쩔던데. 오늘은 안 함?

└그러게, 아끼는 거 아님?

└원래 고유석 구종 아끼다가 막판에 던지기도 함. 밋밋한 체인지업도 경기 후반부터 자주 던지잖아.

└ㅇㅇ 처음부터 던지는 것보다, 타자들이 적응하면 그때 꺼내려는 듯.

[고유석 커브 아예 안 던지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저번에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그냥 커브 그립도 안 잡네.

└제구 안 되는 거 아님?

└그때 보니까 지리게 들어가더만

└그게 개뽀록이었던 거지

하지만 그 커브는 그 뒤로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단 한번도 말이다.

그렇게 되니, 사람들은 생각을 달리했다. 새로운 구종을 장착한 것이 아니라. 슬라이더든 커브든. 기존의 구종을 던졌는데, 그게 그냥 그 순간에 운 좋게 잘 긁힌 거라고.

종종 있는 일이다.

어쩌다가 긁힌 공이 엄청난 위력을 선보이는 것은. 그 뒤로는 영원토록 쓰지 못하는 거고.

[#A’s]

[아쉽네, Go는 이미 완벽하지만. 저지 잡은 커브도 장착됐으며, 진짜 신이 됐을 텐데.]

└뭐, 이미 구종이 넘쳐나는데, 더 바라는 것도 좀 그렇지.

└지금 사용하는 것만 해도, 패스트볼 세 종류에, 슬라이더, 서클 두 개. 평범한 체인지업 하나. 합쳐서 세븐 피치인데. 이게 한계겠지. 더 늘어나면 커맨드 잡기가 힘들걸?

└월드시리즈 가서 딱 마지막 아웃카운트 그걸로 올리면 멋지긴 하겠다.

└그건 너무 갔어. 무슨 영화도 아니고.

자취를 보이지 않는 커브에, 흥분했던 사람들은 금방 식었고, 그대로 그때 던졌던 커브, 아니 슬러브는 잊혀졌다.

그저 뉴비를 놀릴 때, 농담하듯, 장난스럽게 회상하는 정도였지. 고유석에겐 또다른 최강의 무기가 있다는 식으로.

그런데 그 슬러브가.

-스트라이크 아웃! Go! 엄청난 구질로 브라이스 하퍼를 잡았습니다! KKK! 무결점 이닝이군요!

-허, 정말이지, 타고난 슈퍼스타네요. 최근 몇 년간 올스타전을 통틀어 최고의 장면이에요.

-다시 리플레이가 나오는데, 이게 대체 뭐죠? 슬라이더? 커브? 그에게 새로운 무기가 생긴 걸까요?

-확실한 건, 엄청난 공이네요. Go의 서클 체인지업이 리그 최고의 구종으로 평가를 받는데. 노리고 던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하퍼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네요. 그렇죠! 위험한 데드볼 코스였는데, 이게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가다니요!

다시 나왔다.

심지어 올스타 게임에서. 심지어 브라이스 하퍼를 삼진으로 잡으며. 세 타자 연속 삼구삼진을 만들었다.

[#A’s]

[미친, 이게 또 긁힌다고?]

└긁힌 게 아니라··· 저거 너클 커브 같은데? 원래 던지던 커브 그립이랑 달라.

└허, 그럼 또 구종을 더 추가했다는 말이야? 무슨 문어도 아니고···

└9구3삼진도 대단한데. 솔직히 이게 더 쩌네. 뭐야 대체.

그 충격은 올스타전에서 나온 무결점 이닝조차 잠시 잊게 만들 정도였다. 그것 이상의 충격이었으니까.

오클랜드와 고유석 개인의 팬들만이 아니라, 올스타전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에게 말이다.

아니, 어쩌면 다른 선수, 구단의 서포터들이야 말로 가장 충격을 받았다.

[#Rangers]

[X발 저 미친 새끼가 구종이 더 늘어났다고?]

└충분히 X같은 놈인데, 한층 더 X같아 졌네.

└X발 저걸 어떻게 쳐? 궤적 쳐돌았네.

└앞으로 좌타자는 저거랑 슬라이더로 잡고. 우타자는 서클로 잡겠네. X발 이게 야구냐?

그의 팬들이야 그저 새로운 것에 환호하게, 기대하면 되지만, 그들은 직접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겨우 구종 하나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불러일으킨 충격은 올스타전 전체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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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먼-스탠튼-하퍼라는 미친 타선을 손쉽게 꺾었고, 특히 하퍼는 너클 커브를 보고 완전히 넋이 나간 것 같지만.

2회 역시 만만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올스타니까. 다들 이름값이 대단하지.

가장 먼저 버스터 포지.

더 말할 것도 없는 선수다.

현시대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이니까. 공수가 완벽한 포수지. 하지만 괜찮다.

“스트라이크!”

어차피 나도 뒷일 생각하지 않고 풀파워로만 던질 거니까. 이번 이닝이 마지막이니. 죄다 쏟아 부으면 되는 거지.

초구는 바깥쪽 포심.

버스터 포지는 살짝 배트가 움찔거렸다. 체크 스윙. 애매한 코스에 중간에 잘 멈췄지만, 어차피 넣었다.

“스트라이크!”

뒤이어 2구는 가볍게 체인지업 하나. 설마 쓰리핑거를 던질 줄은 몰랐던 건지. 유유히 날아간 공을 가만히 지켜봤다.

서클 두 개에, 아까 하퍼한테 던졌던 너클 커브까지. 훨씬 좋은 구종이 많은데, 굳이 올스타전에서 밋밋한 체인지업을 던지는 건 상식 밖의 행동이잖아?

그치만 난 진심이라고.

무조건 삼진 잡을 생각이기에, 최대한 다 이용해야지.

마지막 3구.

다시 한번 바깥쪽이다.

다만 상당히 멀게, 거의 폭투나 다름없을 정도로.

실투처럼 느껴지는 공이지만, 타자는 생각이 많아질 거다. 왜? 아까 봤잖아. 하퍼 맞출듯하다가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가던 공을.

그 궤적을 생각해보면, 좀 많이 빠지기는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걸치기 충분하다. 마치 백도어 슬라이더처럼.

‘참지 않으시는구먼.’

어쩌면 올스타전이기에, 어차피 정식 경기도 아니니, 과감한 판단을 내린 걸 수도 있다.

버스터 포지는 궤적을 예측하고, 아주 큼직한 스윙을 보였지만-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이번에 던진 건 그냥 패스트볼이다. 커터지. 약간 꺾이기는 했기에, 제대로 속았네.

미안하지만 내 커터는 막 그렇게 대단한 놈이 아니라서. 이 정도로 나간 게 존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와아아아아아!”

“KKKK! KKKK!”

“Two More! Two More!”

“끝까지 가자아아아아!”

또다시 삼구삼진.

이젠 네 타자 연속이다.

레이더스야 당연히 환호성을 질렀고, 그 외의 이들조차 이젠 분위기에 휩쓸렸다.

어차피 올스타전이라, 니팀 내팀 가릴 것도 없으니. 그냥 멋진 피칭에 순수하게 환호하는 거지.

‘누가 보면 콜리시엄인 줄 알겠네. 죄다 Suck Suck거리니까 말이야.’

말린스 파크, 오클랜드에서 정 반대에 위치한 곳인데도. 지금은 완전히 홈그라운드가 됐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입장한 5번타자, 대니얼 머피. 워싱턴 내셔널스 소속 선수로. 일단은 1루수다.

원래도 타격 실력이 준수한 편이지만, 작년에는 아주 제대로 포텐이 터졌고. 올해도 그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올스타지.

‘눈치 챙겨야지? 한 4만 명쯤 되는 사람들이 죄다 네 삼진을 바라고 있잖아?’

기왕이면 그 삼진이 공 세 개로만 이뤄지길 원하고 있고.

그런 마음을 담아 눈짓했지만, 그는 그저 배트를 꽈악 잡았다. 피도 눈물도 없군.

괜찮아. 네가 열심히 한다고 해도. 내가 알아서 뺏어가면 되니까.

“파울!”

초구는 몸쪽.

나를 잘 아는 건지, 패스트볼 타이밍에 맞추어 스윙했지만, 서클 체인지업이다.

날카롭게 역회전한 공은 배트 밑동을 아슬아슬하게 스쳤지만, 다행히 라인 밖으로 떨어졌다.

혹시라도 땅볼이 돼서 아웃 됐으면 피눈물 흘렸을 텐데. 다행이네.

“스트라이크!”

2구는 다시 바깥쪽.

이번에도 조금 멀게 뺐는데, 앞서 버스터 포지에게서 교훈을 얻은 건지 그는 참았지만.

백도어 슬라이더가 유유히 꺾여 들어오며, 얄밉게 보더라인에 박혔다.

투 스트라이크. 사람들은 이미 흥분했다. 다섯 타자 연속 삼구삼진을 바라는 눈치지.

나도 그걸 이뤄주고 싶은데.

“파울!”

마지막 결정구로서 던진, 3구 하이 패스트볼을 대니얼 머피는 어거지로 쳐냈다.

타격감이 좋은 놈들이라 그런가, 이걸 기어코 커트하네.

“우우우우우우우!”

요상하게 날아간 타구는 다행히 파울이 됐지만, 관중들은 그에게 아낌없이 야유를 보냈다.

눈치 더럽게 없다, 진짜. 올스타전인데 아주 이 악물고 커트하는 것 봐. 무슨 월드시리즈 7차전도 아니고.

물론 그는 타자로서 본인의 일을 한 거지만. 그래도 기분이 팍 상했고.

원래는 하퍼한테만 던지려고 했지만, 그 못된 마음씨가 괘씸해서 다시 검지를 세웠다.

“스윙! 스트~~~~~ 라잌 아웃!”

바깥쪽에서부터 스트라이크존을 사선으로 가르며 들어온 너클 커브.

대니얼 머피는 아주 큼직한 헛스윙을 선보이며 삼진으로 물러났고. 주심은 마치 분위기를 깬 그를 질책하듯 스트라이크 콜을 굳이 길게 늘였다.

‘다섯 타자 연속 삼진이라. 이 정도면 MVP 확정인가?’

솔직히 투수가 이쯤 했으면 개쩌는 건데 말이야. 근데 또 몰라. 나중에 무슨 역전 홈런, 끝내기 홈런 같은 거 나오면 말이야.

그러니 마지막까지 철저해야지. MVP를 받으려면 말이야.

‘참, 힘들다 힘들어. 뭐가 이렇게 잘난 놈들이 많아.’

내 올스타전 마지막 타자가 올라왔다. 6번타자 놀란 아레나도. 콜로라도 로키스 소속 3루수지.

현재 2년 연속 40홈런 130타점을 기록한 미친놈인데. 산기꾼인 걸 감안해도 엄청난 성적이다. 거기다 수비력도 수준급이고.

어떻게 보면, 버스터 포지보다 오히려 4번, 클린업에 더 어울린다고 볼 수도 있겠어.

상대하는 게 살 떨릴 정도로 엄청난 성적을 올리는 타자인데. 올스타전의 흥분감이 나하네도 영향을 끼친 건지, 그저 몸이 뜨거웠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도장을 찍어야, 힘쓴 보람이 있지.

기껏 온갖 똥꼬쇼 다 해놓고 MVP 못 타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그러니, 여섯 타자 연속 삼진. 한번 만들어보자고.

“볼!”

초구는 바깥쪽으로 낮은 포심. 아슬아슬하게 꼭지점에 넣을 생각이었는데···

어우, 흥분하니까, 바로 제구 흔들리네. 조심하자. 마인드 컨트롤, 마인드 컨트롤.

뭐, 그래도 어차피 연속 삼구삼진은 이미 끊겼으니 상관없고. 괜찮아, 어떻게 돌아가든 삼진만 잡으면 되니까.

“스트라이크!”

2구는 한번 더 바깥쪽.

이번에도 포심이었다.

놀란 아레나도는 차분하게 공을 체크했고. 이쪽도 찐이네.

무슨 정규리그 경기처럼 제대로 확인했어. 무섭다, 무서워.

원 앤 원.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이니, 느긋하게 가도 상관없다.

“볼!”

그렇기에 한번 서클 체인지업을 떨어뜨려 봤는데, 이번에도 놀란 아레나도는 꾹 참았다.

딱 보니 알겠네.

코스를 잡고 있으시구만.

너도 MVP가 되고 싶나봐?

멋지게 다른 타자들 조진 투수한테 홈런 빵빵 날려서 하이라이트 되시려고?

“스트라이크!”

어딜! 어림도 없지!

4구는 과감하게 높이 던졌다.

하이 패스트볼. 홈런을 노리던 타자에겐 참기 힘든 유혹이지. 물론 대부분은 참아야 하는 유혹이고.

이걸로 투 앤 투.

결정적인 상황인데.

이번에도 커브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주 제대로 보여주는 거지. 내 커브를. 그리고 기왕이면 마지막 삼진까지 확실하게 임팩트를 줘야 더 멋지잖아?

‘이거 치면 인정한다. 너 홈런 쳐라.’

그런 마음가짐으로, 오늘 들어 가장 여유롭게 공을 쑤욱 던졌다. 그러자 유유히 날아가는 5구.

한가운데로 박히는 그것을 놀란 아레나도는 몽롱한 표정으로 멍하니 보기만 했다.

말했다시피 커브다.

“스트라이크 아웃!”

65마일짜리 커브지.

커브라고 했지, 너클 커브라고 안 했잖아? 잘 구분해야지. 엄밀히 서로 그립도 다르고, 구질도 다른 별개의 구종인데.

간만에 던져서 그런가. 1마일이 더 줄었네. 원래는 항상 66마일쯤 찍히는데 말이야.

‘이걸로 삼진 잡으면 기분이 좋단 말이야.’

설마 여섯 타자 연속 삼진을 남겨두고 이런 걸 던질 줄은 몰랐다고 생각하는 건지.

뒤늦게 정신차린 놀란 아레나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치 인정하겠다는 듯 엄지를 추켜보이기도 했고.

뭐야, 생각보다 좋은 녀석이었잖아. 그런 녀석을 느려터진 똥볼로 잡은 게 좀 미안하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젠 경기장 전체가 요동쳤다. 일부가 아니라, 모든 사람, 모든 관중들이 말이다.

심지어는 제법 많은 선수들, 무려 메이저리그 최고의 올스타들도 가볍게 손뼉을 치기도 했고.

그럴 만한 일이지.

올해 갓 데뷔한 루키가.

올스타전에 입성하더니.

선발투수로 나와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슈퍼스타 여섯 명을 연달아 삼진으로 잡았잖아?

‘그것도 그중 넷은 삼구삼진이고.’

이걸로 확실해졌다.

올스타전 MVP는 내가 타간다. 명칭이 아마도 테드 윌리엄스상이었던가?

내 올스타전은 그걸로 끝났고. 아직 많은 이닝, 많은 기회가 남아 있지만. 일단 침은 내가 먼저 발라뒀고.

그 침은 올스타전이 끝날 때까지도 마르지 않았다. 이렇게 표현하니까 좀 더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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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스타전 승리팀, 아니, 리그는 AL이었다. 10회, 연장전까지 가서 막판 역전 홈런으로 2대1 승리를 차지했지.

로빈슨 카노가 홈런을 쳤는데. 솔직히 엄청 쫄리더라.

다른 것도 아니고, 연장전에 역전 홈런을 친 거잖아.

“테드 윌리엄스상의 주인공에게, 쉐보레를 선물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축하합니다, Mr.Go.”

하지만 다행이게도 MVP는 나한테 돌아왔다. 여섯 타자 연속으로 잡아서 다행이지.

만약 조금이라도 임팩트가 모자랐다면, 아슬아슬하거나, 넘겨줘야 했겠지.

그렇게 올스타 게임이 끝난 뒤. 나는 다시금 그라운드 한복판에 섰다. 차 두 대와 함께.

“쉐보레 콜로라도 ZR2와 쉐보레 코르벳 그랜드 스포츠,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수상식 겸 증정식이지.

쉐보레라. 진짜 차를 주네.

솔직히 좀 구라인 줄 알았는데. 올스타전을 잘 챙겨보는 편은 아니거든.

아쉽게도 둘 다 주는 건 아닌 건지, 마이크를 들이밀며 나한테 선택을 종용했다.

아니, 명색이 메이저리그 사이즈가 이거밖에 안 돼? 기왕 줄 거, 이렇게 두 대 세워뒀으면 둘 다 줘야 그게 진짜 Major 아니야?

그래서 싫냐고 묻는다면, 어우 감사합니다. 2이닝 꼴랑 던져서, 땀 한방울 없이 뽀송뽀송한데 이렇게 멋진 신차까지 주시고.

‘픽업트럭이 커서 딱 좋아 보이기는 하는데···’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하나는 콜로라도. 하나는 콜벳. 픽업 트럭과 스포츠카지.

픽업 트럭인 콜로라도는 일단 큼직~한게 아주 든든하게 생겼다. 이것도 나름대로 멋이 있기는 한데···

‘쩐다.’

슈퍼카, 안사도 되겠는데?

남색의 스포츠카는 생각보다 꽤 멋들어지게 생겼다. 마음이 흔들릴 정도로.

원래는 올스타전 MVP가 되면 상품은 엄마랑 아빠 드릴 생각이었거든. 난 차가 있으니까.

한국에서 보니까, 차가 좀 많이 낡으셨더라고. 사실상 가게 차로 쓰시는데. 그런 용도로는 큼직한 픽업트럭인 콜로라도가 좋아 보이지만···

“콜벳으로 하겠습니다.”

“하하, 네, 잘 어울리시는군요.”

원래 효도는 내 돈으로 해야 하는 거야. 남의 돈으로 효도하는 건 아주 호로 상놈의 새끼나 하는 생각이지.

그리고 미국에서 한국까지 차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겠어? 그거 귀찮은 절차 다 처리하려면, 차라리 한국에서 새로 한 대 뽑아드리는 게 훨씬 낫지. 암, 그렇고말고.

절대로 생각보다 훨씬 취향에 맞는 디자인 때문이 아니다.

엄마 미안. 아빠 미안. 그치만··· 너무 예쁘게 생겼는걸.

대신 한국 돌아가면 직접 더 좋은 걸로 뽑아드릴게요.

그것으로 올스타전은 끝났다.

공짜 차 한 대랑 새로운 구종 하나. 이 정도면 후반기 시작할 준비는 다 됐네.

‘이제 다시 적이구만. 죄다 삼진으로 잡긴 했지만, 그래도 든든해서 좋았는데.’

내가 아쉬워했다면.

아까 전만 하더라도 든든하게 내 뒤를 지켜줬던 야수들은 먼발치에서 불안한 눈으로 나를 봤다.

축제가 끝나고 나니, 이젠 이후가 두렵다는 것처럼.

오늘 하루 두들겨 맞고, 인터리그나 월드시리즈 외에는 다시 마주칠 일이 없는 NL이랑 달리. 그들은 다시 리그에서 나를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특히나 저~기 있는 린도어랑 마이클 브랜틀리는 그 첫 빠따고.

원래도 X같은 투수인데, 걔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걸 직접 목도했으니, 얼마나 껄끄럽겠어?

반대로 나는 두근거렸다.

새로 장착한 무기, 너클 커브가 다른 것도 아니고 올스타전에서, NL 최고의 타자들에게도 통한다는 걸 똑똑히 확인했으니까.

‘자, 오늘 하루 같이 살갑게 뒹굴었으니, 다음부터는 다시 우리끼리 재밌게 놀아봅시다.’

축제는 끝났고, 이젠 한여름 밤의 꿈을 뒤로한 채, 다시 콜로세움의 검투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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