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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126화 (126/316)

126화

“수고 많았어, 6이닝 딱 던지겠다더니, 많이 힘든 것 같네?”

경기가 끝나고, 옷 갈아입다가 잠깐 라커룸에 멍하니 있으니, 스콧 에머슨이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어우, 계획보다 한 이닝 더 던져서 그런가, 완투한 기분이에요.”

굳이 변명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좀 힘들긴 하거든. 4회부터 부스터를 높였던 건. 6이닝 딱 찍고 내려갈 거라서 그랬던 건데.

그러다 갑자기 한 이닝을 더 던졌으니, 힘든 게 당연하겠지. 코치 눈에도 딱 보이나 보다.

‘그래도 보람은 있네.’

스콧 에머슨을 간곡히 설득, 솔직히 그냥 온갖 생떼를 부려가며 마운드에 올랐는데.

나름대로 뿌듯하긴 하다.

“아기 사슴 같은 눈으로 보던데, 어떻게 내려가요.”

“아기··· 사슴?”

왜, 나 볼 때는 그런 눈으로 보는데. 물론 우락부락한 아저씨들이긴 하지만. 진짜 좀 눈망울이 촉촉했다고.

투수코치는 내 표현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가가 파르르 떨렸지만, 그래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

전반기 마지막 등판이고, 팬들을 위해서 일부러 한 이닝 더 던진 건데, 거기다 뭐라고 하면 그것도 좀 이상하지.

“후, 무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후반기까지 쭉 휴식이라 다행이야. 앞으론 오늘처럼 괜히 난동부리지 마. 이미 충분히 골치 아프니까.”

“옙, 명심하겠습니다.”

“말은 잘하지. 오늘도 수고했어. 푹 쉬고, 올스타전 잘 다녀와.”

그 말을 끝으로, 내 전반기가 끝났다. 뭔가 좀 시원섭섭하면서도, 거참, 편안~하구만.

앞으로 한 열흘쯤은 쉰다.

중간에 올스타전에 선발등판 하기는 하지만, 그거야 많아봤자 2이닝 꼴랑 던지는 아르바이트나 다름없으니.

꽤나 넉넉한 시간이지.

‘오늘 좀 무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대충 몸은 다 돌아오겠네.’

나도 다 머리 쓰고 한 거다 이거야.

오버페이스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시간은 넉넉하니. 피로는 다 떨어져 나가겠지.

사실 그냥 아쉬워하는 팬들을 보고 무지성으로 들이박은 거기는 한데. 어쨌든 결과는 좋으니까. 그럼 된 거지.

“수고했다, 올스타 MVP 알지?”

“투수가 MVP는 무슨··· 여섯 타자 연속으로 삼진 잡아도 힘들겠네.”

“에이, 명색이 Suck쯤 되면 그 정도야 껌이잖아?”

짐을 모두 챙긴 뒤, 나가려고 했을 때, 동료들도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탰다.

200탈삼진 달성을 축하하려고 했던 건지, 신성한 클럽하우스에 샴페인까지 들고 왔는데. 피곤이 찌든 모습 때문인지, 그건 얌전히 내려놨다.

“Suck, 200탈삼진 축하한다. 후반기엔 400까지 가야지?”

“푹 쉬다가 와. 후반기부터는 월드시리즈까지 다시 달려야 하니까. 그간 수고 많았다.”

대충 어색하게 덕담이나 던지고 자빠졌는데, 그러지 마. 영영 떠나는 것 같잖아. 방출되는 기분이라고. 무슨 송별회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도 겨우 전반기 끝났다고 이러는 것 자체가, 내가 제법 선수단에 잘 녹아들었다는 뜻이기에,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 선수들을 뒤로한 채, 대니얼과 함께 콜리시엄을 나서니. 왠지 조금 기분이 미묘했다.

‘전반기 끝이라, 벌써 이렇게 됐나?’

사실 당장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 남은 전반기 동안 등판은 없다고 해도. 벤치에는 들어가 있어야 하니까. 막말로 로스터에서 빠지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괜히 한동안 안녕이라고 생각하니까, 구려 터진 경기장이 괜히 뭉클하게 느껴졌다.

사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별다른 감정은 없었는데 말이야. 딱히 애정도 없고. 충성도 없지.

하지만 이 경기장이 내 홈이라는 게, 이제는 마음속 깊이 단단히 박힌 것 같다. 이 잠깐의 안녕이 아쉽게 느껴지는 걸 보면 말이야.

어쩌면 일찍 내려가서 아쉬운 건 팬들만 그런 게 아닐 수도 있었고.

“후회했겠네. 딱 6회 끝내고 내려갔으면.”

“네, 그랬겠죠. 트레이너로선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닙니다만. 야구팬으로선 같은 생각입니다.”

“그쵸?”

비록 완투는 아니지만. 7회까지 던지기는 잘했어. 마찬가지로 씨익 웃는 대니얼과 주차장으로 향하니, 브라이언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바로 집으로 모시죠. 그리고 200 탈삼진, 축하드립니다.”

픽업해줬을 때도 그러더니.

브라이언도 여전히 기분이 미묘한 건지, 그렇게 말하며 조금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극진하게 대해주는 에이전트가 있어서 좋구만. 직접 에스코트까지 해주고. 뭐, 사실 평소에도 등판하고 나면, 대니얼이 대신 운전해주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좀 힘드네.’

좌석에 앉으니, 경기의 긴장이 완전히 풀린 건지, 한순간 피로가 쏟아졌다. 감정이 적절하게 제어하고 있던 게, 이제야 발산되는 거겠지.

오늘은 몸도 좀 올라왔겠다, 그래도 약간은 더 편안할 줄 알았는데. 막판에 시동을 다시 걸어서 그런가 좀 빡세네.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군요.”

“좀··· 그렇긴 하네요.”

“으음, 괜찮으셨다면, 내일 계약 문제를 처리하려고 했는데. 괜히 귀찮게 할 수는 없으니, 조금 더 편히 휴식하신 뒤에-”

“아, 방금 괜찮아졌어요. 진짜로, 집에 가면 자기 전에 찬찬히 살펴보고 싶은데··· 그, 뭐냐. 원래 수면 하기 직전에 책 읽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거죠. 활자를 보면 잠이 잘 오니까.”

“···예, 그렇군요. 하지만 오늘은 등판을 하셨으니. 바로 주무시는 걸 추천 드리겠습니다.”

“네, 저도 대니얼 씨와 같은 생각입니다. 계약 문제는 내일 이야기하죠.”

브라이언과 대니얼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룸미러로 흘끔 나를 봤다.

그런, 그런 눈으로 보지마. 돈에 미친놈처럼 보지 말라고.

절대로 금융치료 때문이 아니라. 그냥 전반기 끝났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런 거라고. 진짜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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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무적이고, 돈은 신이다. 몸은 아주 편안했다.

기쁜 마음으로 재빠르게, 수십 장도 넘는 계약서에 모조리 다 사인할 수 있을 정도로.

나중에는 좀 귀찮아져서, 지장으로 안 되냐고 하니까, 모르는 눈치더라. 미국엔 그런 거 없나봐.

“네, 작성은 완료됐으니, 조금 더 기다리시면, 일괄적으로 입금이 될 겁니다. 스폰서 물품들은 직접 집으로 보내준다고 하셨으니,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시면 되지만, 혹시라도 경쟁 제품을 사용하는 장면이 미디어를 통해 나간다면, 자칫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아이, 그건 당연하죠. 아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잘 쓸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자기네 회사 물건 좀 쓰고, 그걸 카메라에 비춰주면 알아서 돈을 복사해준다는데, 성실하게 이행해야지.

그걸로 스폰서 계약은 다 처리됐다. 전반기 일정 종료랑 같이 딱딱 진행되네.

‘다 모으면 한··· 오우야.’

대충 계산해 봤는데, 그리 인텔리하지는 못해서, 아마 약간의 오차는 있겠지만. 일단 지금 당장 은퇴해도 평생은 떵떵거리면서 살겠네.

‘들어오면 바로 엄마랑 아빠한테 보내줘야지.’

엄마, 내가 말했잖아. 공 두 개 더 붙여서 갚겠다고. 두 개가 아니라, 세 개를 더 붙여도 되겠네.

이 집? 그냥 사버리자. 아이, 너무 살기 좋아. 차? 지금 타고 다니는 거랑 같은 모델로 하나 뽑지 뭐. 넓직해서 좋으니까.

거기에 명색이 메이저리거니까, 감상용으로다가 슈퍼카도 한 대 뽑고. 부모님한테도 한 대씩 사드려도 남겠어.

“대니얼이나 브라이언은 혹시 뭐 필요한 거라도?”

“마음은 감사하지만, 회사 내부 규정에는 에이전트가 고객에게 선물을 받는 걸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수료 중 일정 퍼센트는 제 몫이니, 이미 선물은 받은 셈이죠.”

지금 당장 가장 가까운 사람이 브라이언과 대니얼, 이 두 사람이니, 그들에게도 뭔가를 해주고 싶었지만. 둘 다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대니얼, 숙소 따로 잡아드릴까요? 저랑 부대끼고 사느라 불편했을 것 같은데.”

“하하, 저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드리려면, 지금처럼 같이 머무는 게 더 낫고요.”

아쉽군. 난 이제 부자라서, 뭐든지 들어줄 수 있는데 말이야.

물론 계약금은 조금 더 뒤에 들어올 테니, 지금 당장은 통장에 봉급 모아둔 것만 있긴 하지만. 갑자기 거금이 생겨서 그런가. 막 다 써버리고 싶네.

“제가 감히 충고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충동적인 소비는 자제하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아, 네. 그렇죠. 메이저리거라는 게, 평생 직업은 아니니까.”

“네, 생각보다 많으니까요. 은퇴 이후 무너진 영웅들이.”

그런 내 심리를 파악한 건지, 브라이언은 아주 직설적인 조언을 했고, 퍼뜩 제정신이 들었다.

맞는 말이지. 이렇게 충동 소비 습관이 들다 보면, 망하는 거 한순간이니까.

사무국에서 연금 주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그래도 리그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웅들인데.

은퇴하고 나이 들어서 추한 모습을 보이면, 이미지에 손상이 생기거든. 최소한 품위 유지는 하라는 거지.

‘당장 커트 실링만 보더라도···’

계속 낙선 중이긴 하지만.

빅게임 피처의 이미지가 강하니,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이 높은 레전드 투수. 커트 실링.

피 묻은 양말로 유명한 그 양반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업하다 아주 대차게 말아먹었지.

그 정도 급의 인물도 헛돈 쓰기 시작하면 훅 가는데. 나도 방심할 수는 없지.

물론 실링은 단순히 사업 실패만으로 망한 건 아니다. 제발 팬들이 좀 닥치고 살라며 애원할 정도로 절망적인 입 털기를 자랑하는 양반이니까.

한때 정말 동경하고, 좋아했던 선수였는데.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참···

“현명하게 사용해야겠네요.”

“예, 돈 앞에서는 현명해야죠. 언제나.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커트 실링을 떠올리고 내가 딱딱하게 굳자, 브라이언은 조금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피식 웃었다.

“앞으로 은퇴할 때까지, Go가 벌어들일 돈은, 지금의 수십 배도 넘을 테니까요. 미래를 생각하되, 너무 걱정할 이유는 없죠.”

“네, 저는 슈퍼스타니까요.”

바로 그거라는 듯 브라이언은 웃었고, 대니얼도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실 4월 이후로는 이 방안에 있는 사람 모두 다 부자가 될 운명이 됐죠. 슈퍼스타와 그의 에이전트. 그리고 트레이너니까요.”

선물, 필요 없을 만하네.

어쩌면 금융치료는 나만 받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어.

어쨌든 내 데뷔 시즌 전반기가 종료되는 동시에, 잭팟이 터졌다. 남은 건 더 큰 보상을 위해 다음을 준비하는 것뿐.

자본주의 덕분에 마지막 남은 피로도 금방 떨어질 것 같으니까. 성실하게 가다듬는 것만 남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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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기가 끝나고. 다음 후반기 첫 등판까지 나한테 주어진 휴가는 대략 열흘이다.

비록 찰나에 불과한 휴가지만, 다시 뛰어갈 에너지를 보충할 소중한 정비 시간이지.

물론 실질적인 휴식은 그보다 조금 더 짧다. 올스타 게임을 나가야 하니까. 그것도 선발투수로. 이젠 확정이지. 선정 다 끝났으니까.

짧은 휴가가 더 줄어든 게 좀 아쉽기는 하지만···

‘올스타에 선발투수로 등판하는데, 겨우 하루 더 못 쉰다고 징징거리는 것도 좀 우습지.’

솔직히 휴식이 아니라, 수명이 하루가 줄어든다고 해도, 충분히 감내할 만한 보상이잖아?

“몸도 생각보다 더 좋고.”

솔직하게 말하면, 조금 더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6회를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던졌는데.

막판에 한 이닝 더 던져서 무리했으니, 안 좋아질 수밖에 없거든. 그런데 생각보다 몸은 괜찮았다.

금융치료 덕분도 있을 거고, 그만큼 컨디션이 이제 정상 궤도에 진입했다는 뜻이겠지.

언론에서는 여전히 200탈삼진을 이야기 중이다. 티비를 틀거나, 인터넷 기사를 확인하면. 높은 확률로 저런 타이틀의 기사를 볼 수 있지.

내가 진짜로 하긴 했나봐. 하긴, 눈 뒤집고 던졌으니까. 감정을 제어하는 척 했지만, 막판을 제외하더라도, 조금 위험한 피칭이었다.

어떻게든 삼진을 잡는 것에 초점을 둔 나머지, 과할 정도로 공격적인 피칭을 했으니까.

뭐, 그덕에 멋들어지게 삼진 올리긴 했으니, 나쁘지 않긴 한데, 그래도 조심해야지.

‘이런 식으로 조금씩 치우치기 시작하면, 피칭 밸런스 무너지는 거야 순식간이니까.’

반성하자. 멋진 타이틀도 걸린데다가, 컨디션까지 다시 돌아오니까, 너무 흥분했어.

아무튼 지난 경기에 대한 고찰은 여기까지 하고. 일단 큰 목표의 절반은 채웠다. 아니, 사실 절반 이상이지.

시즌 전, 구위가 올라간 이후에 내가 혼자서 예상했던 성적을 이미 아득하게 초월했으니까.

‘10승, 150삼진, 150이닝. 딱 이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아무리 좋아도 180이닝에 15승 180삼진 정도라고 생각했고.’

물론 자신감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내 실력은 내가 제일 잘 알지. 아주 죽여준다는 거 말이야.

그걸 다 감안하고 내린 현실적인 목표가 딱 저 정도였고. 근데 그걸 이미 넘었네?

“미친놈이긴 해.”

승은 못 채웠고, 이닝은 살짝 부족하지만, 삼진은 이미 가장 높은 목표마저 아득히 넘어갔다.

그러니, 일단 전반기만 놓고 본다면, 기대했던 것의 150%는 초과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지.

브라이언에게 말했던 목표, 슈퍼스타의 길도 이미 반환점을 지나, 거의 목적지까지 도착한 상태고.

그러니 나름대로 만족하고 쉬더라도 괜찮겠지만. 욕심을 채웠으면 원래 더 큰 욕심을 내야하는 법이지.

“그렇게 여기까지 온 거고.”

지금의 내 성적을 만든 건, 각성하듯 실링이 터진 덕분이지만, 그것도 다 욕심 덕분이지. 그 욕심을 나는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이제 완전히 사이클이 돌아왔군요. 다행이네요.”

“네, 솔직히 저도 더 길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궤도에 진입했어요.”

어차피 전반기 일정도 끝났겠다, 침대에 누워서 늘어지게 휴가를 보낼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안 돼지. 진짜 시즌이 끝난 것도 아니고, 이제 절반 지난 건데.

“바로 가죠. 오늘은 제가 운전할게요.”

“음, 오늘은 제가 운전하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차가 좋아서 그런지, 모는 맛이 있는데.”

휴식 기간이라고 해도, 루틴은 이전과 똑같았다. 아침에 일어나고, 식사하고. 경기장 출근해서 훈련하고.

그리고 덕아웃에서 동료들 응원이나 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다.

“스타병 걸렸다고 욕 먹는 건 아닌가 몰라.”

“구단에서 제외한 건데, 설마 그럴 리가.”

화이트삭스전이 끝난 뒤. 마지막 전반기 시리즈인 매리너스 원정에서 나는 제외됐다.

이닝 많이 먹었으니까, 괜히 원정 따라오지 말고, 닥치고 쉬라는 거지.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이제 데뷔한 루키이기에 아무리 자기 일정 끝났다고 해도 웬만하면 덕아웃에는 들어가야 하지만. 그것마저 차단해버린 거지.

‘영 적응이 안 되네.’

그 덕분에 넓은 콜리시엄을 나 혼자 쓰고 있는데, 그다지 적응이 되지는 않았다.

항상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이기에, 이렇게나 조용한 건 처음이니까.

조금 어색하지만, 뭐, 그래도 그 덕에 집중이 잘 되기는 하네. 귀찮게 말걸지 않으니까, 말이야.

“15분. 됐습니다.”

오늘도 조용한 훈련장에서 홀로 워밍업을 했다. 보통 워밍업하고 있으면 다른 선수들 혹은 코치가 주변에 기웃거리면서 날 체크하고는 하는데 말이야.

휴식이 필요한 시기라, 웬만하면 워밍업 정도만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나머지 트레이닝을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니, 감각도 한번 봐야지.

‘여기도 조용하네. 원래도 조용한 편이기는 하지만.’

불펜 역시 평소와는 다르다. 대니얼과 나밖에 없으니까.

립서비스를 해줄 불펜포수도, 조심스럽게 내 컨디션을 살피는 불펜코치와 투수코치도 없지.

“여기, 공 바구니입니다. 혹시나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 대신 구장 관리인이 있긴 하지만 말이야. 그는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나와 대니얼을 졸졸 따라다녔다.

최대한 지원을 해줬지. 클러비에게 하던 것처럼 팁이라도 주려고 했는데. 한사코 거절하더라.

그래도 그 대신처럼, 그는 한 가지 기회를 얻었다. 나랑 대니얼 이외의 사람 중에선 처음으로.

“와···”

완벽하게 돌아온 내 컨디션을 처음으로 보게 됐으니까.

공을 하나씩 던질 때마다, 구장 관리인이 외마디 탄성을 뱉었다.

진심이 담겨 있어서 그런가, 불펜포수들이 흔히 하는 립서비스보다 더 듣기 좋네.

서서히 출력을 올리자, 빠악- 하는 피격음이 점점 더 거세졌고,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차분하게 구종을 살핀 뒤. 마지막 그립을 쥐었다.

“나이스 볼···”

“아니, 언제 저런 걸-”

비밀병기도 이젠 완전히 준비됐구만. 포수가 없어서 정확하게 제구를 확인하긴 힘들지만. 이 정도면 래퍼토리에 넣어도 되겠지.

기이할 정도로 꺾이는 무브먼트에 혹여 내가 무리하지 않도록 딱 붙어 있던 대니얼마저 옅은 감탄사를 뱉었고.

구장 관리인은 날 꽤나 잘 아는 건지, 처음 보는 듯한 구종에 눈이 동그래졌다.

처음 아닐 텐데. 내 경기를 잘 챙겨봤다면, 딱 한 번은 봤을 텐데 말이야.

“이 정도면··· 후반기도 문제없겠네요. 폼이 다 올라왔습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불펜피칭은 끝났고, 살짝 숨을 고르며 대니얼을 쳐다보니, 말없이 엄지를 추켜세웠다.

폼은 확실하게 돌아왔다. 새로운 부스터도 잘 장착됐고. 그러니 이제 새롭게 달리는 것만 남았네. 그 시작은···

‘올스타 게임 MVP 보상이 뭐더라? 차였던가?’

올스타전일 거고.

MVP, 솔직히 바라지도 않았지만. 공을 보니까, 충분히 가능할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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