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113화 (113/316)

113화

솔직하게 말하면.

애스트로스 역시 놀랐다.

이번 시즌, 홈런이야 지겹도록 봤지만, 설마 콜리시움에서, 그것도 저 녀석을 상대로 자신들이 첫 홈런을 기록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어··· 이렇게 쉽게?”

“저게 넘어가기는 하네···”

“쟤도 사람이긴 하구나.”

마운드 위의 투수는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어째서냐고 묻는다면, 성적을 봐라.

이게 사람의 성적인가.

선수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애슬레틱스가 수익 분배받은 돈으로 만들어낸, 야구 전문 로봇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황당한 말이긴 하지만, 그런 개소리가 타당하게 여겨질 정도로 압도적인 투수였는데···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는 걸 보니, 그도 결국 사람이긴 사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애스트로스 선수들의 머리에 떠올랐다.

“근데, 우리 괜찮은 거 맞지?”

“왜? 시작하자마자 홈런 날렸는데, 안 좋을 게 뭐 있다고.”

“아니, 저 자식 저거 딱 봐도 성격 지랄 맞을 것 같던데. 홈런 때렸다고 더 지랄하는 거 아니야?”

“엄···”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다.

어쩌면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뽑아버린 게 아닐까? 그런 걱정이 들었으니까.

당장 직전 경기에서 노히터를 기록한 투수고, 전반기 200삼진 같은 개소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투수다.

그런 투수인데, 그런 괴물이 만약 분노했다면? 자신의 깨끗한 피홈런에 얼룩을 묻힌 애스트로스에게 징벌을 내리려고 한다면?

그다지 좋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비록 이번이 두 번째 경기지만, 지난번, 첫 만남은 애스트로스 선수들의 머릿속에 똑똑히 각인됐다.

자신감 넘치게 타석에 나섰던 그들을 철저하게, 아주 폭압적으로 억누른 투수니까.

그런 기억이 가져다주는 불안감에 입맛을 다시던 선수들의 눈에, 문득 투수의 모습이 들어왔다.

“쟤··· 좀 넋이 나갔는데?”

“허, 삼진 잡고 낄낄거리는 건 봤어도, 저러는 건 처음 보네.”

“쟤도 좀 당황스러운 것 같지?”

“첫 홈런이잖아. 거기다 시작하자마자 맞았으니, 멘탈이 남아날 리가 있나.”

몽롱한 투수의 표정.

조금 딱딱하게 굳은 몸.

그건 어쩌면 오늘에서야 처음 나온, 저 녀석의 인간적인 면모였다.

귀신, 아니, 악마처럼 타자들을 농락하고, 머리 위에서 놀던 녀석인데. 지금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당황스러워 보였다.

그 인간적인 모습이, 애스트로스를 일깨웠고, 가슴 한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래! X발 우리가 쳤다! 꼽냐?”

“조지! X나게 잘했어! 저 새끼도 홈런 하나쯤 맞아야 맞는 거지!”

“똑똑히 기억해 둬라! 니 첫 피홈런은 우리야, 우리! 애스트로스라는 걸! 잘 기억해!”

그래, 우리가 해낸 거다.

저 괴물에게서, 첫 홈런을 빼앗아 낸 거다. 내셔널스나, 양키스, 레드삭스, 그리고 등신 같이 쥐어 터지기만 한 레인저스가 아니라, 우리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기어코 해냈다.

그것이 주는 묘한 성취감이 이번 시즌, 좋은 기세를 올리며 심어졌던 애스트로스의 위닝 멘털리티를 건드렸다.

“쟤 지난 경기에 노히터 했다며? 그럼 오늘은 맛이 갈 만도 하지.”

그렇게 불이 지펴진 위닝 멘털리티는, 애스트로스를 두렵게 만들었던 노히터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만들었다.

노히트 노런. 그리고 퍼펙트 게임. 투수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명예이긴 하나. 그 기세는 쉬이 이어지지 않는다.

원래 노히터나 퍼펙트를 기록한 투수가 그다음 경기에서 신명 나게 털리는 게 야구계의 상식이었으니까.

“넋이 나갈 만도 하겠네. 아주 자신만만했을 텐데. 시작부터 얻어 맞았으니.”

“어질어질할 때, 확실하게 KO 시켜야 돼. 어줍짢게 시간 끌면 다시 정신차릴 거야.”

이유는 간단하다.

기록이 주는 기쁨은 팬들이나, 구단뿐만이 아니라, 투수 본인에게도 해당된다.

스스로의 강력하게 취해버리는 거지. 욕심도 생겨나고.

거기다 애초에 노히터나 퍼펙트를 했다는 건, 완투를 했다는 것이기에. 완투가 주는 피로도 무시할 수 없고 말이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지금 상대 투수, 저 괴물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이번 홈런이 그걸 증명한다.

그러니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오기 전에, 완전히 고꾸라뜨려야 한다. 그 간단한 목표가 애스트로스를 이끌었다.

“세이프!”

홈런에 이어, 연달아 나온 안타. 1루를 밟은 조시 레딕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포효했다.

“저- 저저 X발 놈이-”

“야! 이 X새끼야! 넌 존중도 없냐! 작년까지 우리 팀에 있었던 새끼가···.”

“X발 나중에 X같이 망해도 우리가 받아주나 봐라!”

작년까지 오클랜드 소속으로 뛰면서, 프랜차이즈 스타에 가까웠던 선수기에, 그 배신감 때문인지, 경기장이 격렬하게 요동쳤지만.

애스트로스는 눈을 반짝였다.

홈런이야, 원래 뜬금없이 하나씩 맞을 때도 있다지만. 연이어 안타를 내줬다는 건, 분명 투수에게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진짜 맛이 간 건가?”

“그래,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아직 루키인데, 슬슬 체력이 후달릴 때가 됐지.”

“쟤 지금까지 100이닝 넘겼던가? 그럼 피로가 쌓이기는 했겠네.”

홈팬들의 야유에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애스트로스에 흘렀고.

3번타자, 호세 알투베는 팀의 중심으로서, 약해진 괴물의 목덜미에 칼을 박기 위해 타석에 올랐다.

‘압박감도 덜해. 그때보다 훨씬. 드디어 맛이 가나보네.’

배터 박스를 채운 그는 입맛을 다셨다. 지난번 경기에선, 저 투수는 그야말로 지독한 위압감을 풍겼었다.

맹수의 앞에 선 것만 같은 느낌이었지. 허나 오늘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전문가들이 그토록 떠들어댔던 슬럼프가 드디어 시작되는 건가? 허나 그렇게 기대하기에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미묘했다.

노아웃. 1실점. 홈런.

거기에 주자도 1루.

투수로선 짜증스러운 상황이 겹쳤을 텐데도, 표정이 미묘했다.

“스트라이크!”

그리고 들어온 공.

묵직하게 몸쪽을 찔렀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날카로웠다.

‘맛 간 거 맞나? 그러고 보면, 조지도 그렇고, 조시도 그렇고. 둘 다 초구만 때리고 나갔는데···’

몸쪽 패스트볼은 저 녀석, Suck의 주특기다. 묵직한 포심으로 타자의 기를 한 차례 누르는 거지.

이번의 공도 그랬다.

맛이 갔다고 생각하기에는, 꽤나 무거운 공. 전광판을 확인하니, 구속도 88마일이다.

즉 구속도 제대로 나오고, 무브먼트도 살아 있다는 건데. 그 미묘한 간극이 호세 알투베의 머리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볼!”

이어서 2구는 슬라이더.

바깥쪽에서 날아오기에, 또 백도어인가 싶었지만, 마지막에 스윙을 참았다.

다행히 들어오지 않은 코스.

유인구로 던졌다기에는 조금 미묘했다. 딱 코스를 찍어서 던졌다기보다는, 덜 꺾여서 볼이 됐다는 느낌이니까.

차라리 이번에도 날카롭게 하나가 들어왔다면, 그래, 아직 여전하구나, 하고 판단하고, 최대한 집중을 했으련만.

투수의 기색처럼 미묘하기 그지없는 공은 한층 더 혼란을 일으켰다.

‘대체 어느 쪽이 진짜야?’

자세히 투수의 안색을 살폈지만, 그냥 평범하다. 아무런 미동도 없이, 무덤덤했다.

억지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일부러 표정을 흐린 것 같기도 하고.

한번 시작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스트라이크!”

그 약간의 집중 저하를 투수는 놓치지 않았다. 다시 몸쪽으로 낮게 때려 박힌 포심.

주심은 주저없이 콜했다.

더 볼 가치도 없다는 거겠지.

‘X발, 지금 내가 뭐 하는 거야? 저 새끼가 마운드에 있는데. 집중하자, 딴생각했다간 뼈도 못 추려.’

한 차례 자신을 채찍질한 호사 알투베였으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래, 이건 확실하게 멀쩡해 보이네. X발.’

투 스트라이크 원 볼.

그 예쁜 카운트에서 쭉 날아온 서클 체인지업은 우타자의 혼을 쏙 빼놓기 충분했으니까.

스윙 한 번 제대로 못 한 채 삼진 아웃. 팀의 기세를 끊은 것 같아, 민망하게 머리를 긁은 호세 알투베를 동료들은 가볍게 위로했다.

“미안, 내가 흥을 깼네.”

“에이,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네가 보기엔 어때 보여? 좀 떨어진 것 같아?”

“글쎄··· 잘 모르겠어.”

힘없는 그의 말에 다른 선수들은 그저, 루킹 삼진이 민망한 탓에 그러는 거라고 여겼으나. 곧 그들에게도 호세 알투베가 앞서 겪은 의문이 똑같이 찾아왔다.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기념비적인 첫 홈런과 연이은 안타로 이어가던 기세가 애석하게도 손쉽게 끝나버린 1회 초.

선취점을 올렸고, 올 시즌 최고, 아니, 역사상 최고의 시즌을 보내던 투수에게 첫 피홈런까지 안겨줬지만.

아까 전과는 달리, 애스트로스 타자들의 표정은 기이했다.

“맛이··· 갔나? 아닌 것 같은데··· 아직 멀쩡한 거 아니야?”

“왜? 난 쉽던데. 그냥 딱 때리니까 쭉 날아가더만.”

“그야, 조시 너는 초구 냅다 후려쳐서 그런 거지.”

“혹시 약한 척하는 거 아니야? 저번에 레인저스 완봉으로 잡았을 때도 그랬다던데.”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 영악한 놈이니까, 노히터 다음에 털리는 것처럼 연기하는 걸지도. 홈런은 어쩌다 맞은 거고. 아, 조지 너 비하하는 건 아니야. 그건 네가 잘 쳤어.”

저 괴물은 최소한 지금까지 그들이 보고, 들었던 모습 중에선 가장 먹음직스러웠지만.

과연 그걸 정말로 베어 물어도 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마저도 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 불확실함을 해소하기 위해, 투수, 고유석에게로 시선이 향한 애스트로스였지만.

그는 평소와 달리, 그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판단은 본인들에게 맡기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 미묘한 찝찝함이, 애스트로스의 발목을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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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발 해냈다.

쫄려 뒤지는 줄 알았네.

빡치는 건 빡치는 거고, 일단 똥꼬부터 틀어막아야지.

확신할 수 있다. 방금 전 내 인생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는 것을. 이 정도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받아야지.

‘애스트로스 새끼들, 눈치가 빨라가지고, 바로 대가리 쳐들던데··· 이제 좀 잠잠해졌네.’

처음에는 당연히 화가 났지.

내 소중한 피홈런을 이런 그지 깽깽이들한테 헌납했으니까.

트라웃이나 하퍼 같은 놈들이면 그래도 멋진 장면으로 이슈라도 될 테지만, 얘들은 아니잖아?

허나 그다음에 눈에 들어온 건 무섭도록 살아난 애스트로스의 기세였다.

‘확실히 최근 잘나가는 놈들이라서 그런가, 승리의식이 아주 단단하게 잡혀 있어. 조금이라도 틈 보이는 순간, ᄇᆞ로 후드려 맞는다.’

그래서 최대한 아리까리하게 던졌다. 적절하게 전력투구를 섞으니까, 아리송한 표정들이던데.

간신히 1회 초를 잘 마치니, 타오르던 불꽃이 조금 사그라드는 게 눈에 보였다.

남은 건 지금 정도의 열기를 적당하게 유지하다가, 다음 투수한테 토스하는 거겠지.

“스티븐, 다음 이닝부터는 입 좀 써줘요.”

“입? 갑자기 왜?”

스티븐 보그트. 열심히 포수장비 벗고 있는 오늘의 파트너에게 그렇게 부탁하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원래 내 좋을 대로, 줄여서 좋대로 하는 편이긴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포수 도움 좀 받아야지.

“쟤들, 지금 긴가민가할 텐데. 그 상태 유지합시다.”

“차라리, 다음 이닝부터 기세를 꺾어버리는 게 낫지 않아?”

“그랬다가 하나 맞으면, 오히려 더 악화돼요.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게 베스트지.”

“오케이, 그럼 적당히 트래쉬토크 좀 할 게. 약한 척도 하면서, 살짝 긁기도 하면서. 그렇게?”

“잘 아시네.”

베테랑 포수가 이래서 좋아.

브루스에게 부탁했다면,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내가 지시를 내려야 했을 텐데.

스티븐 같은 경우는 경험이 많아서 그런가, 대충 말해도 적당히 알아듣는단 말이야.

‘그리고 고분고분하기도 하고.’

최근 들어 스티븐 보그튼 더욱더 고분고분해진 편이다. 이유는 뭐, 더 말할 것도 없이 성적이고.

빠따가 많이 죽었거든.

타격이 저조해진 상황에서 포수가 기댈 건 투수 밖에는 없다. 어찌 보면 이게 나한테는 더 이롭다.

우리 팀 포수들은 다들 타격이 애매하거나 조금 부족한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내 말 잘 듣거든.

괜히 잘나가는 포수 하나 있었으면, 지금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기는 힘들었겠지.

아무튼 각설하고, 오늘 경기는 그 무엇보다도 미묘한 줄타기가 중요했다.

‘한쪽으로 확 쏠리지 않도록 적당하게 밸런스를 유지하는 거야.’

만약 너무 강하게 굴어서, 내 컨디션이 좋다고 오인하면, 그만큼 의지를 불태우고 달려들 테니, X되는 거고.

반대로 너무 얕잡아 보이면, 자신감 있는 스윙을 하니, 그건 그거대로 X되니까.

뒤이어 2회 초와, 3회 초.

나는 적당하게 얻어맞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세이프!”

“아웃!”

“세이프!”

“아웃!”

1회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안타를 두 개 이상 허용했으니까. 다만 그러면서도 적절하게 삼진도 잡았고.

“눈치가 어때 보여요?”

“여전해, 네 말처럼 아리송한 것 같더라. 네 컨디션에 대해서 확신이 안 선 것 같아.”

“오케이, 지금처럼만 갑시다. 입 잘 털고 계시죠?”

“열심히 나불거리고 있으니까, 그만 좀 해라. 볼배합도 가져가더니, 이것까지 간섭하려고?”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나. 그냥 좀 궁금해서 그런 거지.”

그것으로 미묘한 줄다리기는 유지됐다. 안타를 잘 맞는 것 같기는 한데, 근데 또 막상 막 털린다는 느낌은 안 드니.

저쪽 타자들 입장에선 미칠 노릇이겠지. 조금이라도 자신감을 가지는 것 같으면 잽싸게 전력투구로 진압했기에, 더욱더 그럴 거고.

‘내리막이기는 해도, 변화구마저 맛이 간 건 아니야. 그 덕에 잘 막고 있기는 한데···’

그럴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변화구의 도움이었다.

일단 패스트볼, 특히 포심의 위력은 확실히 좀 떨어졌다.

구속은 여전히 잘(?) 나오고 있기는 한데, 구위가 약해졌거든. 그만큼 피로가 누적됐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피로와 별개로, 손가락의 감각은 아직 살아 있는 건지, 변화구들은 그나마 이전과 똑같이 들어갔다.

그덕에 잘 버티고 있는 건데, 아슬아슬하네. 한번 제대로 얻어맞기 시작하면, 그땐 걷잡을 수 없을 테니까.

‘적당하게 막으면서, 어떻게든 버틴다. 그러면··· 다시 내 세상이니까.’

열심히 공을 던진 덕분인지, 몸이 좀 풀린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조한 컨디션.

하지만 아직 한방이 남아 있다. 컨디션이 안 좋더라도, 집중력은 계속해서 끌어올렸으니까.

####

“들어와! 들어와!”

“세이프!”

“나이스~ 이대로 역전가자!”

“우우우우우우!”

“좋댄다, X신 새끼들! 이제 겨우 동점이야!”

4회 초, 1회 초의 홈런 이후 드디어 첫 득점이 올라갔다.

깔끔한 중전 안타에 손쉽게 홈으로 입성한 동료를 아낌없는 박수로 맞아준 애스트로스였지만.

홈팬들의 야유와는 별개로, 그들의 감정은 여전히 미묘했다. 4회 만에 2실점이나 했으니, 그 어느 때보다도 안 좋은 피칭을 하는 거긴 한데.

고유석은 여전히 마운드를 굳건하게 지탱하고 있었으니까.

“확실히, 원래 컨디션은 아닌 것 같긴 하지?”

“어, 최소한 다른 경기들이랑 비교해도, 좀 부족하긴 해.”

그나마 제 컨디션이 아니라는 건 이젠 확실하게 알 것 같았지만, 어느 정도로 약해진 건지가 아직은 미묘했다.

쉽게 베이스를 내주는 것 같으면서도, 또 막상 기세를 이어서 몰아치려고 하면-

“스트라이크 아웃!”

지금처럼 귀신같이 흐름을 끊는다. 최소한 멘탈은 아직 멀쩡하다는 뜻이겠지. 타자를 잡는 본능도 마찬가지고.

허나 삼진을 당하고 돌아온 타자, 조시 레딕은 처음과 똑같은 평가를 내렸다.

“다들 쫄지 말라니까? 쟤 절대로 정상 아니야! 포심 자체가 확 떨어졌던데. 왜들 그렇게 쫄았어?”

“삼진 당해놓고 말이 많네.”

“아, 그거야 서클이 더러워서 그런 거고. 아무튼 쟤 맛 간 거 확실해. 그냥 냅다 휘둘러! 맞으면 무조건 정타니까.”

삼진으로 물러난 주제에, 투수가 약하다고 말하는 꼴이 조금 우습기는 하나.

그의 말은 애스트로스의 정신을 일개우기 충분했다. 거기다 추가적인 증거도 있었고.

“그리고 스티븐이 원래 말이 많은 편이 아니야. 최소한 지금처럼 애매하게 트래쉬 토크 하는 놈은 아니지. 니들도 알잖아? 저거, 분명히 감추는 거야. 감 못 잡도록.”

수준급 타자의 감은, 무섭도록 정확했고, 그의 열변 같은 말에 그제야 타자들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그런가?”

“확실히··· 하이 패스트볼이 생각보다 낮더라. 예전처럼 떠오른다는 느낌은 없더라고.”

“아, 씨. 그냥 한번 휘두를 것을, 괜히 생각이 많아서 말렸네.”

“···내가 한 방 날리고 올 게.”

변하는 분위기 속에서, 다시 타석이 돌아온 호세 알투베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충분한 찬스가 왔음에도 애스트로스가 그 기회를 잘 잡지 못한 건, 그의 책임이 컸다.

물론 2점을 냈으니, 적절하게 득점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분명 더 낼 수 있었던 경기니까.

‘내가 연달아서 삼진당하면서, 다른 녀석들이 흔들린 거야.’

팀 내 최고의 타자이자, 타선의 중심인 자신이 허무하게 물러났으니.

다른 녀석들 입장에선 확신이 안 들었겠지. 그렇기에 그는 책임 의식을 느끼고, 확실하게 몰아치기 위해 당당하게 타석에 올랐지만.

‘어?’

느낌이 묘했다.

첫 타석과는 다르다.

두 번째와도 다르고.

그때는 마치 커튼 뒤에 숨은 실루엣처럼 모호했다면, 이제는 대놓고 칼을 들고 있었다.

‘갑자기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걸까.

머릿 속이 멍해졌을 무렵.

불현듯 떠올랐다.

저 녀석의 특징이.

‘이제··· 4회. 거기다 투아웃. 보통은 이때부터-’

“스트라이크!”

‘속도가 빨라지지.’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 저 녀석, Suck은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방금 전까지.

어떻게든 숨기고, 일부러 신비로움을 유지한 채 자신들을 속였던 거겠지.

그러니 이제 열심히 때려줄 일만 남았는데···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났다.

“스트라이크!”

체감상, 2구가 날아오는 건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기타 불가피한 시간을 제외하면. 공을 받는 즉시 던졌으니까.

이번에도 서클 체인지업.

황급히 배트를 휘둘러 봤지만, 낮게 떨어지는 서클에 완벽하게 배트가 헛돌았다.

그런 헛스윙을 다시 재정비하기도 전에 3구가 날아왔다. 바깥쪽으로 깊숙하게.

‘이건- 너무 급하잖아.’

오늘, 컨트롤이 조금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던 투수이나, 지금은 또 정확하게 들어온다.

그래도 배드볼히터 답게, 어떻게든 스윙을 내며, 먼 코스에도 배트가 따라갔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그것 역시 예상했다는 것처럼, 다시 한번 더 서클 체인지업. 떨어지는 공을 보며 호세 알투베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왜 나한테만 이렇게 열심히 던지는 거야. 그런 식의 하찮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X발, 맛이 가도 저건 여전하네. 약할 거면, 확실하게 약하던가. 하나만 할 것이지···’

앞으로 타석에 오를 다른 동료들도 죄다 똑같을 테니까.

손쉽게 홈런을 징수했음에도 그 분위기를 잘 활용하고, 이어가지 못한 것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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