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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112화 (112/316)

112화

노히터의 여운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특히 그 본거지인 오클랜드는 더 말할 것도 없었고.

애슬레틱스 프런트는 이런 좋은 이벤트를 쉬이 넘길 사람들은 아니었다. 언제나 수익을 원했으니까.

거기다 수익 분배마저 줄어든 상황이기에, 그들은 충성스런 홈팬들을 사로잡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어? 저거··· Go 아니야?”

“Suck, 맞는데? 원래 저런 게 있었던가?”

도시 곳곳에는 그런 큼직한 글귀와 함께, 고유석의 얼굴이 내비쳤다. 광고용 전광판은 물론, 그냥 조금이라도 크다 싶은 건물에는 죄다.

만약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새롭게 시장 선거라도 하는 건가? 하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오클랜드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저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뿐.

거기다 노히터의 여파로, 양키스를 손쉽게 잡으며, 드디어 그토록 기다렸던 시즌 첫 스윕까지 올렸기에. 분위기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행운과 승리의 상징.

그리고 오클랜드 부흥의 상징으로서 고유석은 도약했고, 심지어는 마치 부적처럼, 자동차 같은 곳에 그의 MD(굿즈)를 세워놓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직접 봤다는 거 아니냐!”

“···닥치라고 X새끼야.”

“아니, 그러게 왜 맨날 직관하는 놈이 그 날만 일이 생겨서 지랄이야? 쯧쯧, 너 그러고 보니까, Go한테 사인도 못 받아봤다며?”

“닥치고 운전이나 하라고 X발!”

마크와 저스틴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어릴 적부터 같은 동네 친구에, 직장도 같은 곳에 취업한 탓에. 함께 출근할 정도로 친밀한 그들이었지만, 오늘은 조금 냉담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운절은 하는 마크 쪽이 일방적으로 저스틴을 놀리는 것에 가까웠지만.

도시 곳곳에 나부끼는 노히터라는 글자는, 마크에게 있어서 오랜 친우를 놀려먹을 좋은 무기였다.

자신은 봤고, 그는 못 봤으니까. 물론 저스틴 역시 보기는 했다. 다른 건 몰라도 고유석의 경기는 무조건 찾아보니까.

사실 그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오클랜드 팬들이 그렇고. 다만···

“넌 평생 가도 모를 거다. 그날 콜리시엄 분위기가 어땠는지. 그때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가족 같더라니까? Go가 얼마나 멋졌는지 모르지?”

“X발 나도 봤으니까, 닥치라고!”

“보긴 뭘 봐? 티비 쪼가리로 본 게 본 거냐? 현장 분위기를 느껴야지.”

중계방송이었을 뿐.

자신을 놀려먹는 친구에 열이 오른 저스틴은 자동차 룸미러에 달랑거리는 자그마한 보블헤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하필 나 없을 때···’

위대한 Suck이시여.

대체 왜 제게만 이런 시련을 내리시나이까. 옆자리의 이 빌어먹을 새끼는 애초에 에이스의 팬도 아니었단 말입니다.

워리어스가 오클랜드를 떠난다고 하니, 철새처럼 애슬레틱스로 갈아탄 이교도인데.

왜 이 녀석에게만 그런 축복을 내리시나이까. 난 X부랄 놈의 사인도 못 받아봤는데.

“그래도 다음 등판도 홈에서 하던데. 그땐 어떻게든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아서, 사인이라도 받아라. 어우, 요즘 오클랜드에 Go 사인 없는 놈이 내 친구라니. 내가 다 쪽팔리네.”

냄새가 난다는 듯 코까지 틀어막는 마크의 행동에, 저스틴은 극도의 우울함을 느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직관이라도 한 번 해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의 사인을 가지고 있다.

너무 희소성이 낮아서, 옥션이나 이베이에 팔수도 없을 정도로. 그래봤자 직관 티켓값도 안 나오겠지.

그럴 정도로 죄다 사인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은 없다. 주변 사람들 죄다 노히터를 직관했는데, 자신은 못 봤다.

‘내가···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아주 어릴 적부터 애슬레틱스를 응원해왔고, Go, 이젠 Suck이라고 더 자주 부르는 선수를 눈여겨 보던 것도 자신이 먼저였다.

팀의 선발투수 유망주로서 큰 기대조차 받지 않았던 시절부터 응원했건만··· 사인 하나 못 받았다니.

심지어 홈에서 등판한 경기는 죄다 직관했는데! 어린 양처럼 부들거린 저스틴이었지만, 차마 원망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래도 X나게 멋졌어.’

비록 저 빌어먹을 새끼의 말처럼 그깟 티비 화면 쪼가리에 불과하겠지만. 그날 본 고유석은 X나게 쿨했다.

아마 평생 죽는 날까지 추억으로 남겠지. 그가 저스틴 자신이 어릴 적 좋아했던 빅맥이나, 칸세코, 지암비, 테하다처럼 약쟁이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것을 되새김질하며 한숨을 내쉰 그는 이내 불쑥 짜증이 솟았다. 정말 되는 일이 없었으니까.

“에이 X발, 저건 또 뭐야? 어떤 대가리에 총맞은 자식이 오클랜드에서 저런 차를 타고 다녀?”

“얼씨구? 이젠 아주 세상 온 천지가 다 원망스럽나 봐? 냅둬. 좋은 차 타고다니는 거야 자기 마음이지.”

“그냥 좀 X신 같잖아! 멍청한 새끼도 아니고. 분명히 샌프란시스코에서 넘어온 새끼일 거야. 아마 자이언츠를 좋아하겠지.”

“너 직장 때려치우고 그냥 점술가나 되라. 아주 독심술까지 다 하네. 차만 봐도 그게 보이냐?”

드디어 친우의 분노가 한계치를 넘어 섰다는 것을 깨달은 마크는 실실 웃으면서도, 긁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입은 좀 거칠지만, 폭력적인 녀석은 아니니, 딱 놀려먹기 좋았으니까.

“그리고 저건 뭐야? 영어는 아닌 것 같은데. 저 좋은 차에 뭐 저런 X신같은 말을 다 적고 다녀?”

“응? 뭐 말하는 거야? 어, 그러게? 영어는 아닌 것 같은데···”

분노를 토해낼 대상으로 삼은 건지, 값비싼 독일차를 보며 투덜거리던 저스틴은 이내 조금 이상하게 보이는 스티커를 보며 다시금 투덜거렸다.

이래서 요즘젊은 것들은, 차에다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는 글자를 적어놓질 않나, 이상한 래핑을 하질 않나.

아주 허영심이 가득 한 게 분명이 강 건너 샌프란시스코에서 넘어온 더러운 자이언츠-

“아! 나 저거 알아! 저거 Go 나라 글자 아니야? Korea 말이야. Go 때문에 그쪽 나라 사이트에도 들어가 봐서 알아.”

“그래? 어우, 아주 좋은 말이겠네. Korea면.”

일리가 없지.

이거 참, 전우를 못 알아봤군.

저스틴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고유석이라는 성자를 보내준 그의 고향을 욕할 뻔했으니까.

더 내뱉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 저스틴은 곧 마크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근데, 저번에 크리스 데이비스 트위터 보니까. Go도 저 브랜드 타고 다닌다던데. 새로 면호 뽑자마자 한 대 마련했다고.”

“어? 진짜? 아니, 아니지. X발 내가 X신도 아니고, 또 속을 것 같냐?”

“이번엔 진짜야 새끼야.”

저스틴의 심장이 요동쳤다.

어쩌면, 어쩌면 정말로.

매번 타이밍이 어긋나서 가까이서 보지 못했던 고유석을 드디어 만날 지도 몰랐으니까.

“빨리, 빨리 차 옆으로 대봐.”

“뭐 하려고 미친놈아.”

“닥치고 빨리 차 대!”

결국 흥분한 저스틴의 요구에 다른 차들의 클락션을 무시한 채 방금 전까지 신나게 욕먹었던 검은 차의 옆에 차를 댄 마크는 마찬가지로 침을 꿀꺽 삼켰다.

“Go··· 맞는데?”

“Suck, Suck이야, 진짜로 Suck이야.”

“훈련장 가는 건가? 와, 어떻게 도로에서 다 만나- 미친놈아 너 뭐하려고!”

방금 전까지 전광판으로 수없이 본 얼굴, 아니, 당장 룸미러에 걸려 있는 보블헤드와 닮은 얼굴이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마크 역시 이처럼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기에, 저도 모르게 시선이 향했지만. 눈이 돌아간 저스틴은 거기서 한 술을 더 떴다.

주섬주섬 안전벨트를 푸는 친구의 모습에 마크는 기겁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 건지 완전히 벨트를 풀어버린 저스틴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기다리고 있어. 내가 사인 받아올 테니까.”

“미친놈아! X발 제정신이냐? 여기 도로 한복판이야!”

“닥쳐! 교통사고 나서 뒈지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받을 거니까.”

“허, 뭐, 티셔츠에라도 받- 그게 왜 거기서 나와 미친놈아. 내 차에 왜 니 맘대로 유니폼을 숨겨둬.”

“언제 만날지 모르니까. 항상 준비해야지.”

익숙한 듯, 차 한쪽에서 유니폼과 사인펜을 꺼내는 친구에 마크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무래도, 이 녀석.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광적으로 야구를, 아니, Go를 좋아한다는 것을.

어떻게든 막은 마크였지만, 결국 차 문이 열렸고, 미칠 듯한 클락션 소리와 욕설이 쏟아졌다.

“뭐야? 안 꺼져?”

“X발 뒈지고 싶어? 비켜!”

압도적인 질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옆 차로 다가간 저스틴은 조심스럽게 창문을 두들겼다.

그러자 돌아서는 고개, 그래, 그가 맞았다. 다만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릴 뿐.

“잠깐! 지- 진짜 잠깐이면 됩니다. 제가 정말 무례하고, 민폐고. 고소하셔도 되는데. 제발 사인- 사인 하나만-”

신호조차 무시하고, 황급히 출발하려는 듯한 모습에 처절하게 절규하며 무릎을 꿇은 순간, 광명이 내려왔다.

“아··· 지금 해주는 건 그렇고, 미리 해놓은 사인볼이 있기는 한데. 그거라도 드릴까요?”

“예! 예! 그거면 충분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아주 조금 열린 창문, 그리고 조심스럽게 건네진 사인볼, 눈물을 머금고 그것을 받아든 저스틴은 차에 오른 뒤에야 자신의 추태를 깨달았다.

또한 그토록 사랑해 마지 않는 고유석이 어째서 그렇게나 경계했던 건지도.

‘X발, 총만 들었으면 영락없는 차량 강도잖아.’

“···미친 새끼, 앞으로 내 차 타지 마라. 쪽팔려서 같이 못 다니겠으니까.”

“그래도 이거 하나 받았으니까··· 그거면 됐어.”

황급히 차에 오른 뒤,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지만.

우습게도, 그보다는 드디어 사인볼을 얻었다는 기쁨이 조금 더 컸다.

노히트 노런.

그것이 불러일으킨 결과물은 간단했다. 광기, 고유석이라는 이름의 광기가 오클랜드에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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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의식적으로 도시 전체에 최면이라고 걸은 건가?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미친 건 레이더스 정도면 족한데, 그냥 일반적인 팬들도 점점 맛이 가고 있어.

“···Suck, 너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내 감정을 느낀 건지, 크리스 데이비스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노히터한 뒤로 항상 헤실헤실 웃고 다니던 놈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었으니. 조금 신경이 쓰이겠지.

고개를 저으려다가, 나는 문득 그에게 질문했다. 궁금했으니까.

“아, 크리스. 잠깐 하나만 물어도 돼요?”

“뭐든지.”

“도로 한복판에서 차에서 내려서 사인볼을 요구할 정도의 팬심은 대체 어느 정도일까요?”

“···Pardon?”

“들으신 그대로에요.”

그래도 나보다 훨씬 선배고, 베테랑인 선수에다, 만만찮은 스타니,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이해하는 표정이 아니군.

크리스 데이비스는 그건 대체 무슨 개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요, 나도 잘 모르겠네.

“···그건 팬심이라기 보다는 광기에 가깝지. 그런데 설마-”

“예, 오늘 있었던 따끈따끈한 일입니다. 처음엔 강도인 줄 알았는데, 아스팔트 위에서 무릎 꿇고 사인을 요구하더라고요.”

“Oh God···”

크리스 데이비스는 본인이 더 안절부절했다. 혹시라도 내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까, 걱정스러운 거겠지.

근데 나는 의외로 괜찮았다.

그냥 좀 놀랐을 뿐.

오클랜드에서 내 인기가 절대적이라는 거야, 이미 잘 알고 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진짜 스토커도 붙겠네. 뽕을 빼야겠는데?’

아마도 시즌 초반부터 역대급 성적을 이어오면서 올라온 팬심이, 노히트 노런으로 선을 넘어버린 것 같은데.

다행스럽게도 진정제가 있었다. 말했잖아, 좀 털릴 거라고. 몇 경기 조지면 조금 잔잔해지겠지.

갈퀴로 쓸어담을 수 있을 돈이 아깝기는 한데, 지금도 충분히 잘 벌고 있으니까.

아, 참고로 브라이언에게는 눈물을 머금고 그냥 빨리 계약을 체결해달라고 했다. 단기간으로.

‘노히터 버프가 빠지기 시작하면, 다시 내려갈 텐데. 그전에 몸값 좋을 때 처리해야지.’

그는 조금 아쉬운 눈치였지만, 그래도 내 생각을 존중하는 건지, 금방 처리하겠다고 연락을 줬다.

아무튼 지금 내 인기, 아니, 신앙심은 거의 지저스에 근접한 것 같은데, 그걸 잠재울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호사다마라고 하더니. 그 말이 딱이네. 내리막이 시작되려고 하니, 그걸 도우려는 건지. 딱 좋은 상대를 만났으니까.

휴스턴 애스트로스.

묘하게 껄끄러운 팀이 다음 경기의 상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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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편하게 먹고, 공 던져. 설마 오늘도 무리할 생각은 아니지?”

“오늘까지 그러면, 내일 바로 병원 실려갈 걸요.”

컨디션은 예상대로 저조하다. 열심히 스트레칭도 하고, 워밍업도 성실하게 했는데. 뭔가 물먹은 솜처럼 좀 무겁다고 해야 하나?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스콧 에머슨은 의심스런 눈빛을 나한테 보냈다.

컨디션이 저조한데도, 내가 스스로 노히터의 흥에 취해서 무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인데,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솔직히 노히터 생각하면 여전히 기분이 좋기는 한데, 어쨌든 아닌 건 아닌 거지. 지금은 쉬어갈 타이밍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네. 딱 중간점검하기 좋겠어.’

사실 말이 중간점검이지, 본질은 간단하다. 그냥 피로가 풀리고, 체력이 다시 올라올 때까지 잘 버티는 것.

어영부영 잘 막는다면 참 좋겠지만···

‘타자 새끼들, 은근히 눈치가 빠르단 말이야.’

타자는 냄새를 잘 맡는다.

상대가 누구든지, 뭐, 사이 영 위너이건, MVP까지 수상한 정상급 투수건 간에.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였다 싶으면, 곧바로 침 질질 흘리면서 달려들지.

그 순간 투수는 마운드 위의 킹갓엠페러에서 타자들의 연봉을 올려줄 소중한 스탯이 되는 거고.

일단 지금 나는 X나게 약하다. 물론 가장 좋았던 시기와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거지. 진짜 좋밥은 아니야.

그냥 예전보다는 못하다고.

‘그 덕분에 타자들도 긴가민가하겠지.’

아예 맛탱이가 갔으면, 차라리 두들겨 패기라도 할 텐데. 그건 또 아닌 것 같겠지.

또 워낙 쌓아놓은 성적이 많아서, 약한 것처럼 보여도 쉽게 무시할 수가 없을 거고.

‘즉 적당~히 조절만 하면, 슬럼프라도 슬럼프처럼 안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거지.’

요컨대 가장 중요한 건 연기력이다. 털리면서도, 그러다가 다시 벌떡 일어나서 타자들 쥐어 팰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건데··· 그래야 하는데···

“오늘도 노히터 가자!”

“원래 Suck은 서부지구 상대로 더 잘하거든! 그러니까, 오늘은 퍼펙트지!”

“난 욕심 안 내! 그냥저냥 딱 완봉 정도만 해줘! 그건 쉽지?”

경기 시작 후.

확실히 노히터의 뽕이 빠지지 않은 건지, 퍼펙트니, 완봉이니 하는 아주 탐욕이 그득그득 담긴 바램을 외치던 관중들이 곧 조용해졌다.

“어? 어어··· 저거-”

“왜··· 안 떨어져?”

“설마 넘어가는 건 아니겠-”

의문에 잠기기도 했고.

그들로선 처음 보는 광경일 테니까. 미들랜드 사람들은 자주 봤을 텐데.

1회 초.

선두타자로 나온 조지 스프링어는 자신감 있는 스윙으로 초구를 공략했고. 타구는 쭉쭉 뻗었다. 내려올 생각조차 없는 것처럼.

“X발?”

물론 물리법칙에 의해, 날아가던 타구는 서서히 힘을 잃고 떨어졌다. 다만 그게 담장 너머라는 게 문제지만.

타자 역시 놀라운 건 매한가지인 듯 아리송한 표정으로 몇 발자국 떼지 못했다.

이래도 되나? 싶은 눈빛.

원래라면, 홈런 친 놈이 저렇게 뭉기적거리면 욕을 뒤지게 처먹어야 하는데. 관중들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인 건지, 심지어 레이더스님들 마저도 금붕어처럼 입만 뻥긋거렸다.

“X발 꺼져어어어어!”

“X새끼야아아아아아악!”

“구경났어! X발 빨리 안 뛰어! 뒤지고 싶어! 기관총이라도 갈겨 줄까?”

아니네, 바로 욕하네.

메이저리그 첫 피홈런.

그 주인공은 조지 스프링어였다. X발 영광으로 생각해라. 말린스의 고릴라도, 하퍼도, 저지도 못 날린 거. 댁이 성공한 거니까.

살짝 입술을 씹은 뒤, 나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듯 몽롱해 보이는 조지 스프링어에게서 눈을 돌려, 휴스턴의 덕아웃을 훑었다.

당황한 것 같더니, 아주 환호성을 내지르며, 누가 보면 북한 군인처럼 신명 나게 손뼉을 치는데. 어? 열 받네?

‘홈럼은 선 넘었지.’

그 꼴을 보니 배알이 꼴렸다.

홈런은 투수의 세금. 죽음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 것.

하나쯤 맞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

오히려 세금 납부가 조금 많이 늦었다고 볼 수도 있고.

어쨌든 납부를 마쳤으니···

‘환급도 좀 받자, 이 국세청 새끼들아.’

환급도 받아야겠다.

그냥저냥 몇 대 맞는 건 각오하고 있었지만. 홈런은 아니지. 감히 이런 식으로 내 뒤통수를 쳐?

역사적인 첫 홈런의 주인공이니, 그에 걸맞은 예우를 해드려야지.

저조한 컨디션에 조금 느슨해졌던 마음이 빡 잡혔다. 중간점검이고 나발이고, 일단 얘들은 조지고 보자. 그런 생각이 머릿 속 가득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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