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111화 (111/316)

111화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투수가 도전할 수 있는 것들은 무수하게 많다.

시즌 전체를 놓고 본다면, 20승, 200탈삼진, 200이닝 등등이 있을 것이고.

한 경기로 제한하더라도 수두룩하겠지. 특히 현대야구에는 여러 가지가 새롭게 생겼으니까.

열 개의 탈삼진을 올린다거나, 무실점을 기록한다거나. 조금 세부적으로는 6이닝 3실점의 퀄리티 스타트 같은 것 말이다.

9이닝을 던지는 완투도 있다. 거기에 무실점이라면 완봉이 포함될 것이고. 어쩌면 무사사구까지 할 수 있겠지.

그런 무수히 많은 기록 중에서 가장 높이 위치한 건 두 가지다.

단 한 명의 주자도 출루 시키지 않는 퍼펙트 게임(Perfect Game)

단 하나의 안타도 맞지 않고, 실점을 내주지 않는 노히트 노런(No hit No Run)

흔히 이 두 기록은 하늘이 도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최소한의 운이 받쳐줘야지만 가능한 기록이니까.

그렇기에 정점이 이른 최강자, 역사로 남은 레전드들 조차 단 한 번도 못해본 이들이 수두룩한 거고.

“···미친놈.”

그중 한 명이자, 현대야구 최고의 투수로 불리는 투수는 티비 화면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맹랑한 놈. 그가 기억하는 저 투수는 그런 녀석이었다. 실력도 대단하긴 하지만, 싸가지도 없었지.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고.

그런 맹랑한 놈이, 이 자신조차 해본 적 없는 기록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손쉽게.

-스트라이크 아웃!

구속도 더럽게 느린 놈이, 삼진을 미친 듯이 잡아댄다. 놀랍지는 않다. 이미 예상했으니까.

‘천부적인 재능이 있지. 타자를 잡는 능력만큼은.’

스터프가 좋다. 무브먼트가 뛰어나다. 변화구가 날카롭다. 컨트롤이 대단하다. 그런 종류의 재능이 아니다.

그저 타자를 잡는 것. 타이밍을 읽는 것. 가장 중요한 순간, 적합한 공을 던지는 것.

그가 보기에 저 녀석, ‘커트 앵글’은 그런 재능을 타고났다. 그 재능으로 타자를 조지다 보면. 지금처럼 타자들은 완전히 타이밍을 놓쳐버리지.

‘그 뒤는 삼진 잡는 게 쉽고.’

뭐, 거기다 시범경기 때 보던 것보다 더 좋아진 것 같은 무브먼트, 힘도 한몫했을 거고. 한창 흐름을 타고 있는 투수니까.

-아웃!

하나 둘, 타자들이 지워졌다.

그리고 마지막 9회. 두 눈을 부릅뜬 그는 그제야 자신의 행색을 깨달았다.

내가 던지는 것도 아닌데, 손안에 땀이 흥건하구만. 쪽팔리게.

애들 경기 좀 보는 거 가지고 이렇게나 집중하다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긴장감이 가셨다.

마운드에 오른 녀석, 커트 앵글이 보였으니까. 저런 얼굴의 투수는 자주 본 적 있지.

거울로 본 적도 있고.

적어도 그, 그렉 매덕스가 기억하는 한, 저런 투수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저 지배할 뿐.

-스트라이크 아웃!

마지막 삼진이 올라갔다.

노히트 노런이 완성됐고.

동료들에게 둘러싸인 녀석과 자랑스럽게 떠오른 기록, 그리고 성적을 보니, 문득 얼마 전이 떠올랐다.

그리 오래전은 아니고, 작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시기의 기억이 말이다.

“···깨끗한 시대의 좌완 매덕스라.”

자신을 인스트럭터로 초청하기 위해, 저 녀석의 에이전트가 했던 그렇게 말했었다.

깨끗한 시대의 좌완 매덕스가 궁금하지 않냐고 물었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저 녀석뿐만이 아니라, 에이전트 역시 맹랑하기 그지없어.

그렉 매덕스 본인에게 그딴 소리를 하다니, Go와 참 잘 어울리는 에이전트군.

그 말에 혹하기는 했었지만, 직접 가르치면서도 솔직히 가능성은 낮게 봤다.

‘깨끗한 대신, 더 발전했으니까. 아주 집요해졌고. 그러니, 내가 마지막 매덕스겠지.’

세이버매트릭스는 발전된 데이터 분석을 낳았고, 그것은 선수들을 낱낱이 해부했다.

위대한 선수조차 곧바로 다음 시즌, 아니, 한 달이 지나면 카운터가 나오는 수준이었지.

비록 약물은 그의 시대보다 훨씬 덜 하겠지만, 그보다 더 까다로운 게 생긴 셈이다. 그렇기에 회의적으로 생각했다.

또한 그렉 매덕스는 저 자신, 매덕스라는 투수가 얼마나 위대했던 건지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내심 자신감도 있었고.

저 녀석이 아무리 잘하더라도, 자신 만큼은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미친놈. 한 시즌 커리어만 놓고 보면 나보다- 아니, 아니지. 으흠, 그럴 리가.’

그런데 이 미친놈은 리그를 휩쓸기 시작하더니, 매덕스 자신이 아니라, 고대의 전설들을 꺼내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아직 한참 멀기는 했지만, 그래도, 최소한 하나는 이미 앞섰네.”

그조차 해내지 못했던 노히터를 당당하게 쟁취했다.

묘한 표정으로 티비 화면을 보던 매덕스는 이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맛을 다셨다.

빌어먹을, 더럽게 놀리겠네.

시범경기가 끝난 뒤, 개인 코치 제안을 거절하고 헤어지면서, 연락을 그리 자주 하지는 않았는데. 왠지 예상됐다.

아주 어깨가 하늘까지 승천해버린 저 녀석이 뭐라고 할지가.

선배를 존중할 줄 모르는 싸가지 없는 녀석이니, 분명히 그럴 거다.

그리고 시작된 인터뷰.

노히터를 했으니, 인터뷰를 하는 거야 당연할 텐데, 피곤할 텐데도 흔쾌히 수락하며 씨익 웃는 고유석의 미소가 매덕스는 마음에 걸렸다.

뭔가를 저지를 것 같은 눈빛.

왠지 느낌이 안 좋은데···

-오늘 노히터를 달성하셨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예상치 못했기에 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제 스스로가 자랑스럽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제가 존경해 마지않는 그렉 매덕스조차도 해보지 못한 기록이잖아요? 그저 영광이죠.

“어- 어어 저 개새-”

예감은 적중했다.

카메라를 보며 씨익 웃었지만, 매덕스는 깨달았다. 저 새끼 저거 분명히 나보고 한 말이야.

노히터까지 해놓고서, 저런 짓거릴 하는 제자 아닌 제자가 어처구니없었지만, 그렉 매덕스는 마찬가지로 피식 웃었다.

겨우 한 달 가르친 것 가지고, 스승 노릇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묘하게 가슴 한쪽이 뿌듯했다.

아무래도 그때 녀석의 에이전트의 호언장담은 틀려먹은 것 같다. 지금 이대로만 간다면, 좌완 매덕스가 아니라···

‘그냥 Go가 되겠지..’

2017년 6월 15일.

새로이 탄생한 전설 앞에서, 앞서간 전설은 미소를 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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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IP 17K 1BB Zero Hit&Run, ‘All Rise’를 외치는 이들에게, Go가 건넨 대답!>

노히트 노런.

그 압도적인 충격이 리그를, 아니, 전 아구계를 강타했다.

단순히 노히터라서가 아니다.

그것 외에도 수많은 수식어가 존재했으니까.

데뷔 시즌 노히터. 노히터 최다 탈삼진. 7년 만의 오클랜드 A’s 소속 노히터 등등.

가져다 붙이는 것만으로 그럴듯한 스토리가 될 것들이 넘쳐났으니까.

또한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리그 최고의 인기팀, 양키스라는 것도 주요했고.

[#RedSox]

[다른 팀 경기 보고 이렇게 짜릿한 적은 처음이네.]

└패배자 양키스에게 조롱을! 승리자 Go에게 찬양을!

└루키한테 노히터나 당하고. 양키스 진짜 맛 갔네~

└Go, 양키스 한번 맛깔나게 팰 줄 아는 녀석이네.

└그건 곧 우리 아군이라는 뜻이지.

└세일보다 낫다는 말이 많아서, 솔직히 띠꺼웠는데. 이젠 인정한다. Suck이 No.1이야.

└양키스 노히터로 잡았으면 No.1이지~

당연하게도 레드삭스 역시 축제였다. 양키스가 노히터의 치욕을 당했다는 건, 레드삭스의 승리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고유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이들조차 이번 경기만큼은 그를 찬양했고.

단순히 레드삭스 뿐만이 아니라, 두 팀에 아무런 감정이 없던 이들 역시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런 시선은 곧 이 사태, 이 기록을 막지 못한, 사악한 드래곤의 대항마로 지정됐던 용사에게로 향했다.

<애런 저지, 3타석 3타수 3탈삼진 무안타. 팀의 노히트를 막지 못했다!>

<‘All Down’ 애런 저지, 신인왕 라이벌전에서 완패!>

<라이벌? 전제 자체가 넌센스! Go, 저지에게 클래스를 보여주다!>

애슬레틱스와 양키스.

아무런 접점도 없는 구단이기에, 이번 매치업 자체는 그리 주목받을 요소가 없었다.

허나 애런 저지와 고유석. 이 두 사람에겐 스토리가 넘쳤기에, 자연스럽게 라이벌전이라는 주목을 받았지만.

눈앞에 놓인 결과는 처참했다. 애런 저지는 노히터를 막지 못했고, 세 타석 연속 삼진을 당하며 물러났다.

그의 팬들은, 그래도 볼넷을 거부하고, 마지막까지 투지를 보여줬다고 평가하기도 했으나.

최소한 다른 이들이 보기엔 그런 위로는 그저 패배자의 변명에 불과했다.

결국 팩트는 애런 저지가 고유석이 올린 17개의 삼진 중 세 개를 담당한 것이었으니까.

라이벌이라는 수식어는 사라졌다. 겨우 한 번의 매치업의 결과치고는 가혹할 수도 있겠으나.

더는 이슈를 바라는 언론도, 저지를 지지하던 팬들조차도 그 두 사람을 라이벌이라고 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언급조차 되지 못했다. 언론은 억지 매치업을 만들었던 자신들의 추태가 잊혀지길 바랐고, 양키스는 애초에 이 경기 자체를 더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100IP 5ER 159K, Go의 질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대 최고의 투수로의 길, Go는 이미 ‘반환점’을 넘었다!>

그렇기에 더욱더 고유석에게 시선이 몰렸다. 잡스러운 어둠 정도는 가뿐하게 지워버릴 만한 광명이었으니까.

역대 최고, 전반기 200K, 신인왕&사이 영&MVP 트리플 크라운 등.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스운 농담 정도로 여겨졌던 말들은 이미 기정사실처럼 변했다.

그리고 몇몇 이들은 다른 것에 주목하기도 했다. 이미 처참하게 패배하여, 시체가 되어버린 애런 저지를 다시 들쑤시는 건 미안하지만.

그의 패배를 결정지은 마지막 타석에선 엄청난 공이 나왔으니까.

[#A’s]

[Go가 애런 저지한테 마지막에 던졌던 건 뭐야? 처음 봤는데···]

└커브 아니야? 종종 던졌잖아. 아주 가끔씩이지만.

└(커브) 이거랑 (슬러브) 이거랑 같은 공 같냐?

└저거 커브는 맞아? 슬라이더 아니야? 무슨 꺾이는 게 슬라이더 수준이던데.

└저거··· 너클 커브 같은데?

└맞아, 잘보면 손가락 세웠네.

└너클 커브가 뭔데 Nerd야.

└···레이더스 너네는 Go 응원하는 거 이전에, 일단 야구부터 배워라.

너클 커브. 이번 경기 100개가 넘는 투구수 중, 단 한 번 밖에 나오지 않는 공이지만, 적어도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걸 기억했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에서 나온, 가장 화려했던 마구니까.

슬라이더처럼 꺾이면서, 커브처럼 떨어지는 공은 몇몇 이들에게 의문마저 안겨줬다.

└Go가 서클 체인지업이 두 종류라는 건 이미 알지만. 커브도 그런 건 몰랐는데.

└그야··· 오늘 처음 던졌으니까.

└저렇게 죽여주는데, 대체 왜?

└그러게, 처음부터 썼으면··· 어우, 상상도 안 되네. 성적이 어땠을지.

이번 시즌,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투수기에, 고유석의 구종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또다시 처음 보는 구종을 들고나왔으니, 그를 주의 깊게 보던 이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또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저런 걸 던질 수 있었다면, 대체 왜 지금까지 던지지 않았는가? 뭘 위해서?

└최근에 배운 거 아니야?

└저게? 에이, 완성도가 엄청나던데. 그럴 리가.

└···저런 공을 잠깐 배운 정도로 던질 수 있다면, 그것도 놀라운데?

└Go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그건 좀 불가능하지.

누군가 정답에 근접한 이들도 있었으나, 워낙 터무니 없은 이야기였기에 금방 밀려났다.

이렇듯 너클 커브가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면, 업계의 사람들에겐 벼락처럼 느껴졌다.

이미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는 투수.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오는 투수.

그런 투수에게, 결정구인 서클 체인지업과 비슷한 구종이 하나가 더 생겨난 셈이니까.

그것을 깨달은 이들은 스스로에게 되묻기도 했다.

└이제부터 던지기 시작한다고 치면··· Go를 공략할 수 있기는 한가?

└못하지. 구종이 너무 많아.

└체인지업 두 개, 커브도 두 개. 패스트볼은 세 개. 슬라이더도 하나. X발 이게 사람이냐?

└솔직히··· 좀 무서울 정도네.

막을 수 없는 선수.

넘지 못하는 철벽.

고유석이라는 투수는 오클랜드 이외의 팀들에겐 그런 존재였다.

리그를 파괴하고, 억압하고, 더러운 군홧발로 메이저를 짓밟는, 악의 축이었으니까.

그런 마왕이, 새로운 무기를 쥐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생각했다. 어쩌면, 저 악당이 최후까지 승리할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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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유~ 휴대폰 터지겠네.”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을 쥐니, 아주 뜨끈뜨끈하다. 내내 쉬지도 못하고 혹사를 당했겠지. 어제 내 어깨처럼.

분명 풀충전을 해뒀던 것 같은데, 배터리는 꺼지기 일보직전이다. 오만 곳에서 다 전화가 왔나 보네. 충전하기 위해 휴대폰을 쥐고 일어났을 때.

“씹-”

강렬한 통증이 찾아왔다.

자는 동안 집단 린치라도 당한 것처럼 온몸이 다 아프네. 이거··· X된 거 같은데?

‘부상- 설마 부상은- 아닌 것 같네. 어우, 식겁했네.’

부상, 나랑은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불쑥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다행이게도 그런 느낌은 없었다. 그냥 X나게 피곤하고, X나게 뻐근할 뿐.

이야~ 독하다 독해. 이렇게 굴려도 부상 한 번 안 와? 내 몸이지만, 진짜 징그러울 정도야. 무슨 금강불괴도 아니고.

“뭐, 그것도 이제 끝이겠지만.”

몽롱함이 사라지니, 확실하게 느껴졌다. 연료가 다 떨어졌다는 것이.

점점 올라가며, 정상까지 치솟았던 컨디션은 괜히 짜증이 솟을 만큼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미 예상하긴 했다. 애초에 누누이 말했잖아. 내리막이 시작될 거라고. 정점을 찍었으니까.

그저 생각보다 이르게 찾아온 거다. 그 이유도 나 때문이고. 적절하게 끊었다면, 다음 경기까지도 괜찮았겠지만···

‘그럴 바엔 그냥 임팩트 빡 주고 몇 경기 죽은 듯이 지내는 게 낫지.’

대신 노히터 했잖아?

그래, 노히터 말이야.

노히터··· 결국 하기는 했네.

상상하면 할수록, 괜히 웃음꽃이 핀다. 내가 누구? 노히터 투수.

그래, 22년, 무려! 이.십.이.년간 커리어를 보낸 그렉 매덕스조차 못해본 노히트 노런을 내가 해버렸다. 그것도 이제 노히터 최다 탈삼진 타이기록까지 곁들인. 그런 노히터를.

행복함을 계속 되새기고 싶어서 전날을 떠올렸지만, 잘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저지를 X바른 건 기억이 나는데··· 그다음은 어쨌더라?“

8,9회는 그냥 얼핏얼핏 장면만 떠올랐다. 그냥 관성처럼 공을 던졌으니까.

이 나이에 치매가 온 건가.

아, 그러고 보니, 마지막 타자 잡고 나서, 뛰쳐나온 동료들한테 휩싸여서, 헹가레 비슷한 것도 한 것 같은데···

‘어? X발 몸 아픈 거 그 새끼들 때문 아니야?’

어쩐지, 뭔가 맞은 것처럼 아프더라. 안 그래도 힘 좋은 놈들인데 흥분해서 아주 들고 난리치고 다 했으니···

앞으로 또 노히터 할 일 있으면, 그땐 마지막까지 정신줄 붙잡아야겠어. 다시는 내 몸에 손대지 못하도록.

피로가 아니라, 그냥 남정네들의 거친 손길(?)이 문제라는 걸 깨달아서 그런가. 기분이 한층 더 더러워졌다.

“그래도··· 노히터인데, 뭐 어때?”

물론 오래가지는 않았다.

찝찝하고 나발이고, 노히터 이 세 글자 하나면 다 끝이지~

다만 마냥 행복에 취해 있을 여유는 없다. 물론 평생 기억할 거다. 축하할 거고.

경기 영상도 미리 저장해둬서, 매 년 주기적으로 관람하고, 죽은 뒤에는 유언으로 남겨서, ‘생전 고인의 쩔어줬던 피칭입니다.’하고 장례식장에서도 틀 생각이지.

하지만 어쨌든, 노히터는 이미 달성했고, 지나간 일이니. 그다음을 준비해야지.

‘아마··· 몇 경기쯤 망치겠네. 최근 들어서, 오버페이스를 한데다가, 노히터의 피로까지 겹쳤으니까.’

정상적일 수는 없을 거다.

애초에 전반기에만 100이닝 던졌는데, 멀쩡하면 이상하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렇다고 해서 오래갈 생각도 없지. 푸짐하게 싸버릴 생각도 없고.’

방 한쪽에 놓인 달력을 봤다.

앞으로 네 경기 정도인가?

올스타전까지 남은 전반기 등판 경기가. 로테이션을 계산하면, 아마 그 정도쯤 되겠네.

‘적당히 똥꼬 틀어막고, 재정비해서, 후반기도 불태우자고.’

그 네 경기 정도는 아마 바쳐야할 것 같은데. 나쁘지는 않지. 이미 쌓아놓은 게 워낙 많으니까.

후반기부터 다시 달리기 위한 부스터도 준비됐고. 어제 하나 던져보니까, 성능 좋더라.

컨디션이 좋았던 것도 감안해야겠지만, 조금만 더 다듬으면, 바로 던질 수 있겠지.

보험도 마련해 뒀으니, 마음 놓고 간만에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내 초심이 어디냐고? 어디긴 어디야. X부랄 놈의 마이너지.

그래도 그때만큼 처참하진 않을 거다. 체력이 닳았을 뿐 실력은 남아 있으니까.

그냥 잠깐 중간점검하는 거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 털고 일어났을 때, 문득 꺼질랑말랑하던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 이번에는 누가 어떻게 찬양하는지 한번 볼까?

[정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Go. 저도 오래간만에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봤습니다. - 브라이언]

브라이언한테도 당연히 연락이 왔구만. 에이전트가 손에 땀을 쥘 정도라면 말 다 한 거지. 야구가 일인 사람들이니까.

조금 더 내리니, 새로 보낸 메시지도 보였다. 일어나기 조금 전에 보낸 것 같은데.

[Mr.Go, 이른 아침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스폰서 계약을 진행했던 모든 업체에서 새로이 연락이 왔습니다. 기존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제안하는 대신, 스폰서 기간을 늘리자고 요구하는데, 계획대로 단기 계약으로 진행할까요? - 브라이언]

[메시지 이제 봤어요. 더 좋은 조건이라면 어느 정도?]

[년으로 끊는다면, 기존보다 두 배 이상 규모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메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브라이언]

기존 제안이 못해도 50만, 보통 100만이었으니까 달러였으니까, 그 두 배면 200만인가? 아니, 두 배 이상이라고 했으니 어쩌면···

‘중간점검 하지 말까.’

확 그냥 계속 잘해버려?

잠깐 숨을 고르기에는 꿀이 너무 단데? 아이 X발, 퍼펙트 했으면 3배였던 거 아니야?

볼넷 하나를 왜 줘가지고···

이대로 조금만 더 몸을 축내서 돈을 긁어모으자는 악마의 속삭임이 귓가에 살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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