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뛰어! 뛰어!”
“들어와! 넉넉하니까, 빨리 들어오라고! 노친네 진짜 X나게 느리네!”
4회 초. 다시금 따악-하는 날쌘 타격음이 터졌다.
쭉 뻗은 타구는 중견수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넘겼고, 이미 2루에 주자가 있었던 상황에서 나온 넉넉한 코스의 장타는 다시금 득점을 만들기 충분했다.
이것으로 3점.
아직 빅이닝까진 아니지만, 경기의 흐름을 한쪽으로 기울게 만들기는 충분한 점수에 요란한 박수 소리가 울렸다.
“나이스~ 오늘 느낌 좋은데?”
“아직 한참 부족하지! 어제 쟤들 14점 냈던가? 못해도 두 배로 갚아주자고!”
물론 우리 쪽에서만.
어제처럼 화끈한 한방을 기대하고 왔을 홈팬들은 무언가 못 마땅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기만 했다.
선취점을 내준 것도 모자라, 이후 추가로 2점을 더 허용했으니, 복장이 뒤집히겠지.
그나마 자기네 타자들의 타격감이라도 어제처럼 좋았다면 나았겠지만···
‘오늘 여기는 그런 타선 없습니다.’
오늘 트로피카나 필드에 그런 사람은 없다. 죄다 나한테 얻어터졌으니까.
흥이 난 건지, 어제의 복수를 하자며 소리를 높이는 동료들에, 여유롭게 덕아웃으로 돌아온 제드 라우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에이~ 뭐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오늘 선발투수 누군데, 3점이면 충분 하지. 안 그래?”
누구 마음대로 충분해.
제드 라우리는 이제 겨우 3점 내놓고,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하라는 듯 쳐다봤는데, 어이가 없네.
더 황당한 건 다른 놈들도 비슷한 표정이라는 거였다.
승리를 굳혀달라는 듯,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봤으니까. 어디 아래에 털 난 사내새끼들이 그딴 눈빛을···
‘배가 불렀구만, 배가 불렀어. 이래서 억지로 이겨주면 안 되는 건데.’
어제는 14대 3으로 털려놓고, 오늘도 겨우 3점 내놓고는 나보고 알아서 이기라는 건데.
이래서 검은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야. 꼴지 새끼들이 위닝 멘털리티가 너무 심해졌네.
웃긴 건, 저런 반응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거다. 내가 가장 많이 실점한 경기가 레드삭스전인데, 고작 2점이니까.
그러니 3점이나 냈으면 넉넉하게 세이프가 아니냐는 건데···
“충분하지? 이 만큼 했으면.”
“개소리하지 말고 점수 더 내. 내 목표는 트리플 크라운이니까. 30승도 할 거고.”
“오··· 이젠 아주 겸손한 척도 안 하네. 인터뷰할 때는 그런 언급이 나오는 것만으로 영광이라는 식으로 굴더니.”
“그거야 이미지 관리고. 자, 괜히 개소리하면서 체력 빼지 말고, 가서 점수 더 내고 와.”
어림도 없지.
어디서 꽁으로 먹을려고.
지금이야 내가 다 때려잡으니까, 3점 정도면 넉넉할 수도 있지만.
이거 버릇 들게 놔뒀다가는 나중에 신체리듬 안 좋을 때도 이 지랄 할 거다. 그러니 미리 싹을 잘라 놔야지.
단호하게 소리치며, 늘어진 타자들을 채찍질했지만, 진짜로 충분하다고 여긴 건지, 추가 득점은 없었다.
에잉, 쯧쯧. 기왕 점수 낼 때 더 뽑아낼 것이지.
3점 딸랑내놓고 이미 이겼다는 것처럼 구는 타자들이 못 마땅했지만···
‘그래도 쟤들보단 낫네. 맛탱이가 갔는데?’
레이스 타자들보다는 나은 것 같다. 경기 시작할 때부터 어두침침하더니, 지금은 완전히 눈깔이 맛이 갔으니까.
다시 마운드에 오른 뒤, 하나 둘 타석과 대기타석으로 나오는 탬파베이 타자들의 모습은 뭐랄까, 영혼이 나간 것 같았다. 거의 모든 걸 포기하기 직전이라고 해야 하나?
‘넋을 놨네, 넋을 놨어.’
그럴 만도 한 것이.
이제 4회 말인데.
딱 한 타순이 돌았다.
이제부터 두 번째 타석이지.
그게 무슨 뜻이냐면···
‘한 타순 싹 쓸었네. 솔직히 어제 경기 보고 좀 쫄았는데, 생각보다 약하네.’
퍼펙트는 아니고.
3회 초에 안타 하나 주긴 했는데, 그마저도 곧바로 병살로 잡아서, 그냥 한 타순이 깔끔하게 삭제됐다. 삼진도 네 개나 잡았고.
그러니 저쪽 타자들 입장에선 멘탈이 터질 만도 하겠지.
‘저러다 다시 정신 차리기 시작하면 껄끄러울 수도 있으니까, 확실하게 못을 박자.’
물론 적들의 심리 따위를 배려해줄 생각은 없다. 오히려 딱 조지기 좋게 요리된 것 같아서 입맛이 돋았을 뿐.
타석에는 다시 1번타자 말렉스 스미스. 눈이 마주치자, 마치 PTSD가 온 사람처럼 옅게 몸을 떨며 손을 쥐락펴락했다. 긴장감을 떨치기 위해서. 물론···
‘어딜 정신 차리려고.’
난 그걸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었다. 거의 맞출 듯이 날아오는 공에 집중력을 올리던 타자는 황급히 몸을 둥글게 말았다.
패스트볼의 묵직한 무게감이 떠오른 듯 살짝 떨기도 했지만···
“스트라이크!”
미안하지만 슬라이더다.
주심의 스트라이크 콜에 그제야 자신의 추태를 깨달은 듯 말렉스 스미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그런 굴욕을 선사한 걸 갚아 주겠다는 듯 나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아니, 지가 지레 겁먹어놓고 나한테 지랄이야.
한계를 넘어선 부끄러움이 오히려 정신을 번쩍 들 게 만든 건지, 자신감 있는 스윙이 나왔지만.
“파울!”
오래가지는 않았다.
묵직한 포심이 망치처럼 강타했으니까. 묵직한 무게감에 팔이 밀린 건지, 타자의 눈썹이 흉하게 찌그러졌다.
아무리 아파도 그렇지, 너무 그렇게 대놓고 감정을 표현하니까, 인정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지잖아. 왜 사람을 웃게 만들고 그래.
신성한 경기 중인데.
‘그럼그럼, 난 이해한다. 내 포심이 X나게 무겁지. 그렇고 말고.’
한껏 업 된 기분을 타자에게도 전해주기 위해, 다시금 왼팔에 힘을 올렸다.
발바닥에서부터 왼손가락의 끝마디까지, 쭉 올라온 힘은 공에 실려 뻗었고.
“스트라이크 아웃!”
이번엔 처음과 반대로 바깥에서 들어오는 서클 체인지업을 타자는 멍하니 지켜봐다.
이걸로 한 놈은 못 박았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농락 당했으니, 정신이 남아나지 않을 법도 하겠지.
말렉스 스미스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다시금 눈물을 머금고 타석에서 물러났고.
“You-Suck!”
“You-Suck!”
“너 진짜, X나 병신 같다! 꼬추 떼라, 꼬추 떼! 크하하하핳.”
우리 레이더스(약탈자)분들은 그 꼴이 불쌍하지도 않은지, 그 이름값처럼 잔혹하게 마지막 확인사살까지 마쳤다.
확실하게 망가졌구만.
그냥저냥 이번 경기 동안만 정신 못 차리게 하려고 했는데, 어쩌면 좀 오래갈지도 모르겠어.
‘뭐, 내 탓은 아니니까. 꼬우면 쳤어야지.’
그렇게 다시금 원아웃.
투구수는 서른여섯? 일곱? 아마 그쯤 될 텐데, 아직 한참 남았네.
내셔널스 때처럼 전력투구만 주구장창 한 것도 아니고. 이 정도는 간에 기별도 안 오지.
계속 짧게 끊는다 치면, 8이닝은 충분하겠네. 잘하면 9이닝도 가능할지도 모르고.
‘그러니, 그냥 계속 지금처럼만 갑시다.’
기대감을 담아 타자를 봤지만, 코리 디커슨은 그저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지난 타석, 그래도 제법 매서운 스윙을 보였었지. 확실히 최근 성적이 좋은 타자라서 그런가, 타격감이 좋더라.
‘다만 컨택은 괜찮은 것 같은데, 역시 파워는 생각했던 것처럼 조금 부족하네.’
작년 24홈런을 때렸고, 올해는 이미 14개나 친 타자에게 파워가 부족하다는 게 좀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힘으로 넘기기보다는, 잘 맞은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는 형식의 중장거리형 교타자거든.
“파울!”
이거 봐. 배트가 쭉 밀리잖아.
컨택을 잘했다 싶은데도 튕겨져 나오는 배트에 스스로 놀란 건지, 코리 디커슨은 눈을 질끈 감았다.
‘물론 성적을 보면, 이게 제 실력일리는 없고,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거겠지.’
뭐든 간에 상관없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건, 좋은 시기의 코리 디커슨이 아니라.
약간 애매한 힘을 컨택으로 커버할 정도의 컨디션이 아닌, 조금 모자란 교타자니까.
‘사실 어제도 쓰리런 하나 날린 걸 제외하면, 그리 감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
최근 9할 후반의 OPS와 6할에 근접한 장타율을 자랑하며 준척급 타격감을 보여줬는데. 아마도 슬슬 타격 사이클이 내려가는 것 같다.
그러니 기왕이면 다른 투수들을 위해서라도-
“아웃!”
확실하게 등을 떠밀어야지.
변화구는 없다. 그저 다시 한번 더 포심 패스트볼. 타이밍은 잡은 건지, 이번에도 배트를 쭉 뻗은 코리 디커슨이었지만.
곧 배트에 맞은 공은 퉁-하는 공허한 타격음을 내며 홈 플레이트 높이 떠올랐다.
내가 직접 마운드에서부터 걸어가도 잡을 만한 타구였기에, 오늘의 파트너, 조시 페글리는 여유롭게 일어나 공을 살포시 포구했다.
‘이걸로 투아웃. 이제 또 남은 건 에반 롱고리아.’
처음보다는 기세가 덜하다.
1회 말에는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는 건지, 아주 살벌한 표정으로 나왔었는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니까.
다만 한 팀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답게, 앞선 타자들과는 달리 여전히 대단한 집중력을 보이고 있지만.
‘그나마 레이스에서 가장 중심이라고 할 타자가 있다면 이 양반이겠지.’
본인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있는 듯, 어떻게든 하나 때려서 분위기를 바꾸겠다는 생각이 가득해 보이는구만.
이번 시즌 성적은 아직까진 기대이하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강타자다.
작년 36홈런을 날린 만큼, 파워가 좋고, 배트 스피드도 빠른데다가, 기본적인 타격기술도 좋다. 거기서 선구안도 나쁘지 않고.
‘3년 전 기준으로는 말이야.’
물론 여전히 좋은 타자지.
위협적인 타자고.
다만 시간의 흐름 때문인지, 저 무수한 장점 중 하나가 조금 내려앉았다.
“볼.”
주심이 시큰둥하게 콜한다.
볼이랑 스트라이크랑 콜 할 때 차이가 너무 심하다니까.
하긴, 볼인데, 우렁찬 목소리로 보올!하고 외치는 것도 그림이 좀 이상하기는 하네.
“스트라이크!”
그래, 이게 진짜 콜이지.
비슷한 코스에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인데도 소리가 다르구만.
“스트라이크!”
타자, 에반 롱고리아의 눈이 흔들렸다. 만발의 준비를 갖추고 나왔을 텐데, 약간 억울하다는 것처럼.
그도 그럴 게, 1회 말부터 지금까지 나는 대부분 위험성 짙은 코스 위주로 던졌으니까. 빵빵한 구위를 믿고.
허나 이번엔 확 뺐다.
바깥쪽, 철저하게 보더라인 위주로 제구되는 공.
시간이 만든 에반 롱고리아의 약점은 간단하다. 모난 곳 없이 완벽하기만 했던 타격에서 선구안이 살짝 떨어졌지.
2013년을 기준으로, 볼넷과 출루율이 꾸준하게 떨어졌으니까.
“볼!”
“파울!”
“볼!”
그래도 역시 한가락 하던 타자 답게 끝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풀카운트를 만들었으나.
‘이번엔 몸쪽으로 넣자.’
몸쪽으로 쭉 날아오는 공에 큼직하게 스윙했다. 마지막 위닝샷으로 포심 같은 걸 예상한 것 같은데.
‘어우, 패스트볼을 왜 던져. 때릴 생각 가득해 보이는구만.’
미안하지만 서클 V1이다.
뚝 떨어지는 공을 바라보며, 에반 롱고리아는 억지로 스윙을 거뒀으나, 이미 선을 넘어가버린 배트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금 깔끔하게 삼자범퇴.
아직 다섯 개의 이닝이 더 남아 있었지만, 더블헤더의 첫 경기는 그것으로 완벽하게 망가졌다.
마지막 불씨를 피우려던 에반 롱고리아마저도 하얗게 꺼져버렸으니까.
‘열심히 조졌겠다, 이제 빠릿빠릿하게 수확이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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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크 아웃!
이제는 익숙해질 지경인 삼진소리가 다시금 스피커 너머로 흘러나왔다.
열 번째 삼진.
6이닝 동안 무실점, 1피안타. 거기에 10탈삼진이면, 이미 선발투수로서 완벽하다 싶은 성적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최소한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똑같이 생각했다. 아직 한참은 더 남은 것 같다고.
-또 다시 스트라이크 아웃! KK!
-전날 14점을 몰아치며, 화끈한 타격을 선보였던 탬파베이 타선인데, 오늘은 Go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합니다!
-과연 이 선수의 질주를 막을 수 있을까요? 이번 시즌 내에 멈출 수 있을지조차 이젠 의심스럽습니다.
캐스터의 말은 어쩌면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단순히 오늘 한 경기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데뷔 이래, 폭압적으로, 그리고 압도적으로 리그를 휘어잡은 투수는 여전히 더 보여줄 게 남았다는 것처럼 지치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가쁘게 달렸다.
-스트라이크 아웃!
화면 속에서, 투구 간격을 빠르게 좁히며 미칠 듯한 속도감으로 탬파베이 레이스를 때려잡는 것처럼 말이다.
-삼진 두 개를 더 곁들이며, 7회마저도 삭제! 허나 아직 그는 부족한 눈치군요!
-더블헤더의 첫 경기인 만큼, 기세를 내줘서는 안 되는데, 이건 답이 없네요.
그저 환호하기 바쁜 오클랜드와 고유석 개인의 팬들과는 달리, 그 외의 이들은 불안감을 느꼈다.
처음에는 일시적이라고 생각했고, 그 뒤로는 그냥 조금 오래가는구나 싶었다.
그 누구보다 빛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언젠가 연료가 다 달아서, 꺼질 거라고 생각했지.
허나 그것이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고,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자.
사람들의 머릿속엔 어쩌면 마지막까지 저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런 사람들의 불안감을 현실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처럼, 마운드 위에 우뚝 선 고유석은 끝까지 기세를 유지했다.
그나마 8회 말, 안타 하나를 추가로 내주며, 약간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이후 철저하게 끝마무리를 하는 모습이 더욱더 지독스럽게 느껴졌지만 말이다.
-아웃! 결국 실점을 내주지 않고, 8회마저 완벽하게 마무리 짓습니다.
-완봉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네, 불펜에는 이미 교체투수가 들어가 있군요.
마지막 하나 탬파베이에게 다행스러운 점은 완봉은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8회를 끝마친 뒤,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온 고유석은 점퍼를 입는 대신, 아이싱을 했으니까.
그나마 그거 하나가 탬파베이 레이스의 팬들에겐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Rangers]
[Suck 저 X발놈은 우리한테는 기를 쓰고 9회까지 던지더니.]
└저 새끼 저거 서부지구 차별하는 거 맞다니까?
└서부지구가 아니라, 텍사스 차별 아니야?
└X같이 던지면서, 왜 완봉은 우리한테만 해!
물론 유일하게 완봉을 당한 서부지구 어느 팀의 팬들은 그 모습이 더욱더 야속하게만 느껴졌지만 말이다.
8이닝 2피안타 무실점 무볼넷, 그리고 14탈삼진.
그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고유석은 더블헤더 첫 경기를 찍어 눌렀고.
부정투구, 파인타르라는 흠집조차 사라졌기에, 그 앞에서 사람들은 경이로움과 공포심을 느꼈다.
<오늘도 ‘Go!’, 8이닝 무실점으로 레이스를 압도하다!>
지난 의혹에 대한 반성 혹은 보상인지, 터무니없는 추측들이 언론을 통해 나오는 상황에서. 몇몇 이들은 다음 경기에 시선을 보냈다.
<애런 저지, 시즌 19호 홈런! 목표는 전반기 30홈런?>
마치 리그 전체를 정복할 기세인 파괴적인 마왕에 대척할 용사를 기대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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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헤더는 스무스하게 잡았다. 타자들 망친 보람 있게, 소니도 잘 조지더라고.
그 뒤로 4차전마저 잡으면서, 또또 위닝 시리즈를 기록한 뒤, 곧바로, 동부 온 기념으로 겸사겸사 찍고 가는 듯, 말린스 원정이 있었는데. 로테이션이 고맙더라.
‘저저, 고릴라 새끼 저거.’
인터리그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투수 타석을 아직까지 못 해보는 게 아쉬웠는데. 고릴라가 홈런 날리는 걸 보니, 그게 쑥 가라앉더라고.
홈팀 타자가 홈런 치면, 저~ 뒤에 돌고래 조형물이 빙빙 둘던데, 내가 다 정신이 돌아버릴 것 같았다.
홈런 맞은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저런 것까지 당하면 기분 진짜 죽여주겠네.
아무튼 그렇게 말린스 시리즈가 끝난 뒤, 다시 홈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터넷을 보니.
제법 반응이 뜨거웠다.
<2017시즌 최고의 타자vs투수 맞대결 성사!>
<과연 올해의 루키는 누구?>
<홈런 타이틀을 노리는 저지, Go에게 첫 피홈런을 안겨줄 수 있을까?>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리그에서 가장 잘나가는 투수와 타자가 만났으니까.
아주 흥분해가지고 무슨 포스트시즌 경기처럼 띄워주는 분위기인데, 이해는 된다.
‘나도 나지만, 얘도 진짜 미치기는 했네.’
타율 0.338에 OPS 1.146. 22홈런, 49타점. 이 정도면 얘도 MVP 페이스다. 실제로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는 하고.
그러니 가장 잘 나가는 타자인 게 맞기는 한데··· 사실 언론이 띄어줄 뿐 사람들 반응은 조금 거시기했다.
└맞대결? 누구랑 누구? Suck이랑 저지? 진심인가?
└저지도 잘하긴 하는데, 솔직히 Go한테는 비비면 안 되지.
└왜? 난 비슷하다고 보는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면, 그냥 야구 보지 마라.
└애초에 비교가 되나? 저지도 역대급 페이스이긴 한데, Suck은 그냥 현재 임팩트로는 올타임급 수준 아니야?
└하퍼랑 트라웃 때도 그러더니, 언론에서 또 억지 라이벌리 만드네.
한 급수 차이가 난다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었으니까.
특히나 내 팬들은 비교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분위기고.
물론 애런 저지도 역대 다섯손가락 안에는 넉넉하게 들어가는 루키 시즌을 보내고 있으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뭐해도, 나는 솔직히 루키 빼고, 그냥 역대급 시즌이다.
13경기 11승 0패.
ERA 0.49 142탈삼진, 3볼넷 고의사구 4개. 피안타 46개니까.
새삼 미치기는 했네.
내가 이 정도였나?
성적을 떠올리니, 뿌듯하다 못해 웃음이 절로 나오네.
“Suck 쟤 왜 저래? 갑자기 웃고 있네. 드디어 맛이 가는 건가?”
“왜,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저런 성적이면 매일 웃고 다니겠구만.”
“아, 하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긴 하겠네.”
아무튼 그래서 그런가, 언론의 호들갑을 비아냥거리는 반응이 많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런 반응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주목이 쏠렸다는 거지.’
애초에 얼토당토않은 매치업이었다면, 비아냥거리는 대신 그냥 무시했을 테니까.
당장 팬들만 보더라도, 싫은 척하면서도 은근히 주목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신인왕 결정전이라···’
그러니 딱 좋은 것 같았다.
슬슬 페이스가 떨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불사지르기에 말이야.
때마침 기다렸다는 것처럼, 마지막 정점에 다다른 몸도 아직 오클랜드에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열심히 펄떡거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