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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106화 (106/316)

106화

시름과 반성 속에서 도착한 탬파베이 레이스. 원정 시리즈의 1차전은 깔끔하게 박살났다.

상대 타선 살벌하더라.

13대4라는 엄청난 점수 차를 기록하며, 투수들이 나란히 털렸다.

더블헤더를 앞두고 있다보니, 불펜을 아껴야 해서, 길게길게 막았는데, 경기가 끝났을 땐 완전히 멘탈이 터진 것 같더라.

‘트로피카나 필드, 파크팩터 꼴찌로 알고 있는데, 레이스 타선도 살벌하네.’

탬파베이 레이스의 홈구장은 트로피카나 필드는 최근 3년간 기록된 파크팩터 통계에서 꼴찌를 차지한 곳이다.

콜리시엄처럼 홈런을 과하게 억제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극단적인 투수구장이라는 건데.

레이스 타자들의 조직력은 예상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타자 한 명 한명을 보면 그리 까다롭지는 않지만···’

사실 타자들 성적 자체는 그리 인상적인 건 아니다. 제법 준수하기는 한데. 앞서 상대했던 내셔널스라거나, 말린스 같은 팀들이랑 비교하면 좀 민망한 수준이지.

‘낼 점수는 확실하게 내는 스타일이야. 팀 타선 전체로 보면 좀 짜증나는 스타일이네.’

허나 점수는 확실하게 낸다.

득점 찬스가 오면 어떻게든 만든다고 해야 하나?

팀 자체가 클러치 능력이 좋은 건데, 그런 점에서 보면 조금 껄끄러웠다.

차라리 어느 놈 하나 X나게 잘하는 놈이 있으면, 걔만 조지면 되는데. 레이스의 경우 혹시라도 잘못 삐끗하면 조진다는 뜻이니까.

“Suck··· 꼭 복수해줘. 저 X같은 새끼들, 아주 다 죽여 버려. 내가 힘은 다 빼놨으니까.”

그런 레이스에게 탈탈 털린 투수 중 하나인 앤드류 트립스는 영혼이 사라는 눈빛으로 그렇게 부탁했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줬다. 같은 황족 투수이기에 분한 마음을 잘 이해하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위험한 놈 없다는 건데, 그냥 다 때려잡으면 되는 거지.’

자신감 있기도 하고.

비행기에서 이미 다 눌러놓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뽕은 확실하게 빠졌다. 이건 그냥 객관적인 자신감이고.

솔직히 지금 내 성적에 이런 자신감도 없으면, 그게 더 꼴불견이지.

‘컨디션도 제법 좋고.’

워밍업을 마친 몸은 적당히 개운했다. 보통 6월쯤 되면 슬슬 체력이 빠지는데. 아직은 괜찮은 것 같다.

이닝만 봐도, 벌써 83이닝인 만큼, 갓 데뷔한 신인치고는 빡세게 달리고 있는 건데.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체력 하나는 강철체력이거든. 몸도 튼튼하고.

‘겨울에 노력한 보람이 있구만.’

거기다 올해는 전문적인 트레이너, 대니얼까지 붙어서 미리미리 몸도 만들고, 벌크업도 했으니, 그 효과를 보는 거겠지.

어쨌든 그렇기에 여름의 초입에 도달했는데도 내 몸은 나쁘지 않았다.

“나이스 볼! 어우,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슬슬 받기 힘든데?”

아니, 오히려 정점에 다다랐다고 해야겠지. 불펜포수는 늘 하는 립서비스를 했지만, 약간의 진심이 느껴졌다.

어떤 의미에선 불펜포수야말로 내 공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인데, 그런 양반의 말이라면 어느 정도는 사실이겠지.

실제로 나도 계속 실점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제법 몸이 올라온 게 느껴지고.

‘아마 앞으로 한 세 경기 정도인가?’

허나 오래가지는 않을 거다.

정점에 올라섰다는 건. 그 뒤로는 내리막이라는 뜻이니까.

여러 이슈도 겹치고, 그래서 더 빡세게 던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몸이 올라온 건데.

버닝타임이 끝나고 나면.

한 몇 경기 정도는 흔들리겠지. 투수의 사이클이라는 게 영원토록 지속되는 게 아니니까.

‘그나마 중간에 올스타전이 낀 덕분에, 재정비 시간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네.’

어쨌든 슬슬 내리막이 시작될 텐데, 그러니 좋을 때 미리미리 좋은 성적 찍어야지.

“오늘은 어떻게 갈 거야? 평소처럼? 아니면, 저번처럼 처음부터 빠르게?”

불펜피칭이 거의 끝나갈 때쯤, 얌전히 지켜보고 있던 스콧 에머슨이 슬쩍 물었다.

지난 경기에선 오버페이스를 했다. 부정투구 의혹을 타파하기 위해, 처음부터 빡세게 달렸으니까. 전럭투구도 팍팍하면서.

당연하게도 그런 피칭은 위험성이 아주 높지.

그러니 투수코치로서는 혹시 오늘도 그렇게 가는 건 아닌가,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고.

“길게 가야죠. 오늘은. 더블헤던데, 뒤에 사람 위해서 불펜 좀 아껴주면 좋잖아요?”

하지만 오늘은 아니지.

이미 목적은 이뤘으니, 굳이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딱히 안 그래도, 충분히 때려잡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불펜에서의 마지막 공을 던졌고, 스콧 에머슨의 안도 속에서 불펜피칭이 끝났다. 그것으로 더블헤더의 첫 경기가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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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상대팀을 박살낸 레이스였지만, 타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더블헤더 경기인데다가, 상대할 투수들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오늘 저쪽 선발 진짜 더럽게 빡세네.”

“소니가 양반으로 보이는 건 또 처음이네.”

“로테이션이 X같이 꼬였어.”

지난 경기가 오클랜드의 약점이었다면, 오늘은 강점, 그것도 아주 극강의 강점을 상대해야 했다.

현시점에서는 리그 최고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원투펀치가 나란히 나올 예정이니 말이다.

소니 그레이야, 제법 커리어가 쌓인 선수니, 레이스에게도 이미 친숙한 선수였지만.

첫 경기의 상대 투수는 그런 약간의 익숙함조차도 없었다.

물론 이름은 이미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지만.

“0점대 ERA. 300삼진 페이스. 말만 많이 들었지, 직접 보니까 어이가 없네.”

“더블헤더인데, 하필이면 저런 놈까지 상대해야 하네···”

Go You-Suck.

정말이 대단한 이름을 가진 투수는 탬파베이 레이스에게도 요주의 인물이었다.

비록 이번이 첫 상대이기는 하나, 도저히 웃어넘길 수가 없는 성적을 기록한 투수니까.

리그를 강타하며, 현재까지는 압도적인 정점이라고 봐도 무방한 투수를, 하필이면 더블헤더 첫 경기의 선발투수로 맞이한 건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회전수가 2500이라던가?”

“진지하게 떠오르는 수준이라고 들었는데. 회전수 들으니까, 이해가 되네.”

“쟤 뭐 조심해야 한다고 했더라?”

“서클 두 개랑. 하이 패스트볼. 좌타자느 슬라이더. 우타자한테도 종종 백도어로 던지고. 경기 후반부터는 쓰리핑고도 섞기 시작. 종종 투심으로 땅볼도 유도하고.”

“X발 더럽게 많기도 하네.”

그런 이유에서, 전날의 압도적인 승리에도 레이스의 사기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그런 분위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루키한테 왜 그렇게 쫄아? 그리고, 더블헤더인게 뭐 어때서? 그나마 시즌 막판이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예예, 거참 대단하십니다.”

“에이, 그냥 그렇다고. 패배의식 아닌 거 알지? 혹시라도 나중에 나 나가면, 돌려서 욕하면 안 돼?”

“X발 그 얘긴 왜 또 꺼내?”

“혹시나 해서 그렇지.”

대표적으로, 올해로 9년 차에 접어드는 레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에반 롱고리아가 그랬다.

그는 동료들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퉁명스럽게 굴었지만, 주변의 이들은 그저 익숙하다는 듯 도리어 그를 놀려댔다.

나쁜 녀석이 아니라, 그냥 의욕이 강할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평소에도 항상 열정이 넘치는 선수 중 하나였기에, 대부분은 그러려니 넘겼지만. 에반 롱고리아는 점점 더 불타올랐다.

‘하루에만 두 경기 뛰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답도 없어. 한방 제대로 날려야, 분위기가 바뀌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더블헤더다.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면, 그다음 경기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지.

그렇기에 그는 벌써부터 쉰 소리만 내뱉는 동료들을 대신해, 기꺼이 선봉장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웃!”

그런 굳은 결의를 몸소 실천하듯, 1회 초의 수비부터 멋지게 타구를 낚아챈 그를 향해 홈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팀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이기에 늘 응원이 따라붙는 그였으니까.

“에반! 타석에서도 한 방 날려!”

“저 애송이가 아직 피홈런이 없던데, 알지?”

“살살해~ 살살! 오늘 두 경기나 뛰는데. 몸 조심 해야지!”

홈팬들의 응원은 언제나 힘을 불어넣어 준다. 자신감도 채워주고. 저들에게 있어선, 자신이 히어로라는 걸 다시금 되새길 수 있으니까.

그래서 덕아웃에 돌아온 에반 롱고리아는 더욱더 결연한 의지로 타석을 준비했고. 드디어, 그토록 이름이 높은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성적이··· 조금 심하기는 하네.’

솔직하게 말하면, 성적을 보면, 그 역시도 조금은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수많은 투수들을 상대해봤고, 수없이 많은 홈런을 날려봤던 그조차도 어색한 성적이니까.

허나 그 압도적인 성적은 더욱더 강력하게 달려들 또 다른 이유에 불과하다.

‘그래, 깨끗한 피홈런에 얼룩 하나 남겨주는 거야.’

한 관중이 좋은 목표를 만들어줬다. 시즌이 개막한지 얼마나 됐는데. 아직도 피홈런이 없다니.

이것 역시 어이가 없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도전의식도 따라왔다.

또한 저 투수가 오클랜드에겐 어떤 존재인지 잘 안다. 당장 대체 표를 어떻게 예매한 건지. 원정팬인 주제에 3루 관중석을 싹쓸이한 기괴한 몰골의 오클랜드 팬들만 봐도 알 수 있지.

‘절대적인 에이스. 무패의 철벽.’

그런 철벽에게 피홈런을 안겨주고, 첫 패배까지 선사한다면, 분명 다음 경기에도 영향이 미치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에반 롱고리아는 잘 정비된 배트를 꽈악 쥐었다.

“스트라이크!”

그 사이 이닝이 시작된 건지. 주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속과 다르게, 대단히 공격적이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 건지, 투수는 초장부터 강력하게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스트~라잌!”

“볼.”

“스트라잌 아웃!”

순식간에 올라간 삼진 하나.

비록 타석은 아니지만, 덕아웃에서 보니 이해가 됐다.

물러서는 기색조차 없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타자를 잡는다. 그 오만한 자신감이 피칭에서부터 느껴졌다.

‘삼진쯤은 별거 아니라는 건가?’

왠지 모를 불쾌감에 눈살이 좁혀졌고, 승부욕 역시 조금 더 올라왔다.

“어때?”

“X같아요. 아니, 저게 파인타르가 아니라고?”

“그래, 잘 알겠어.”

돌아온 1번타자, 말렉스 스미스에게 물었지만, 이미 압도되어버린 건지, 그는 허탈한 웃음만 흘렸다. 아까 전처럼 투덜거렸고.

얻어낼 정보는 없겠지.

저런 상태로는 제대로 공을 보지도 못했을 테니까.

하긴, 아직 어린 녀석이니, 과한 걸 기대하는 것도 좀 그렇다. 직접 자신이 파악할 수밖에.

대기타석으로 나간 에반 롱고리아는 잡념을 버리고, 오직 투수의 피칭을, 공을 눈에 담았다.

조금 더 가까워지니, 그 막강함이 여실하게 느껴졌다. 어째서 타자들이 잡힐 수밖에 없고, 저 투수가 그걸 당연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지도 이해됐고.

‘못 칠 정도는 아니야.’

허나 그렇게 믿었다.

구속이 느리기에, 타이밍을 잡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라이징 패스트볼처럼 떠오르는 착시효과를 준다고 하는데, 그것 역시 경험이 있기에, 어느 정도는 대처가 가능하고.

서클 체인지업은··· 솔직히 모르겠다. 옆에서 봐도 이 정도인데, 직접 타석에서 본다면, 한 두 번 본 것 정도로는 어림도 없겠지.

“아웃!”

에반 롱고리아가 스스로 눈으로 얻어낸 정보를 분석하는 사이, 2번타자 코리 디커슨 역시 그대로 물러났다.

비록 삼진은 아니지만. 돌아오는 그의 표정은 앞서 말렉스 스미스와 똑같았다.

“배트가 밀렸어?”

“완전히. 분명 제대로 맞춘 것 같았는데··· 그냥 힘에서 밀려.”

아니, 어떤 의미에선 더 몽롱했다. 믿을 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젓기도 했고.

차라리 스치지도 못했다면, 오히려 나았겠지만, 정확하게 맞췄다 싶었는데도 힘에서 밀렸기에, 그 박탈감이 더 클 수밖에.

“X발 이게 파인타르가 아니라니··· 에반, 하나 날려줘. 쟤, 어떻게든 빨리 내려야 돼.”

“OK.”

자신에게 그런 감정을 선사한 투수에게 위협을 느낀 건지, 간곡하게 부탁하는 코리 디커슨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인 에반 롱고리아는 긴장된 마음으로 타석에 올랐다.

앞선 두 동료 타자들의 참담한 몰골 때문인지, 그에게도 감정이 전염된 것 같았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저 투수는 꽤나 위험하다. 단순히 실력을 넘어서, 경기의 흐름 자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 알았다.

‘괴물 같은 투수. 하지만 어떻게든 때린다. 안 그러면···’

잡아먹힌다.

그렇게 생각한 에반 롱고리아는 배트를 쥔 손에 힘을 조금 더했다.

모든 준비는 마쳤다.

몸은 충분히 풀었고, 타격감도 나쁘지는 않았다. 정신은 언제나 그렇듯 단단하게 무장됐고.

그러니 남은 건, 이 네모난 박스 위에서, 모든 걸 토해내는 것뿐.

“스트라이크!”

이번에도 과감했다.

몸쪽으로 찌르는 패스트볼.

80마일대의 구속인데도,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릴 만큼, 그 파괴력이 대단하다.

들어온 공을 흘끔 살펴본 에반 롱고리아는 침을 꿀껌 사켰다.

‘차분하게 기다린다. 차분하게.’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조금 본 것 정도로는 적응하기 힘든 투수이니, 조급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마음을 갈무리하며 타격을 준비했지만, 투수는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볼!”

“스트라이크!”

“볼!”

“파울!”

한순간 호흡을 늦추며 조금씩 숨통을 조여들었다. 뜬금없이 날아온 백도어성 슬라이더를 간신히 커트해낸 그는 팔을 부풀렸다.

‘생각보다··· 더 X같네.’

한 구 한 구가 예리한 검처럼 느껴졌다. 비웃는 건지, 아니면 원래 저런 놈인 건지. 감정 표현이 다양한 투수의 얼굴도 거슬렸고.

이런 것 하나하나가 승부의 분위기를 잡아갔다.

‘코리의 말처럼··· 어떻게든 빨리 내려야 돼.’

완봉도 했었지.

레인저스를 상대로.

방식은 다르겠지만, 지금처럼 자기 흐름을 만들어낸 결과겠지.

그러니 아예 집어 삼키기 전에 미리 입을 찢어야 했다.

텁텁한 기운을 떨쳐내며, 에반 롱고리아는 힘을 집중했다.

‘어떻게든 흐름을 끊는다.’

억지로라도 하나 날리기 위해. 그리고 승부를 결정지을 공이 날아왔다.

높은 눈대중. 이것도 착시인가? 아니, 아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겠지만, 실제로 코스 자체가 높다.

‘왔다.’

하이 패스트볼.

구속이 느린 투수치고는 즐겨 쓴다고 했는데, 과연 승부를 길게 끌 생각이 없었던 건지.

곧바로 위닝샷이 나왔다.

그렇게 쭉 뻗어오는 공을 두 눈 가득 똑똑히 담으며, 에반 롱고리아는 스윙을 가져갔다.

제아무리 기괴한 무브먼트라도, 구속이 느리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충분히 맞출 수 있다. 중요한 건 확실한 임팩트.

공과 배트가 맞부딪친 순간, 소리가 들리기 전, 그보다 먼저 통증이 오른팔을 타고 올라왔다.

‘Fuck-!’

찌릿한 느낌이 손과 팔꿈치를 울렸고, 그에 욕지거리를 중얼거렸을 때, 소리가 들렸다. 다소 맥이 빠지는 소리가.

틱-하는 타격음을 내며, 공은 바닥을 뒹굴었고, 투수는 자신의 코앞까지 굴러온 타구를 가볍게 낚아챘다.

“아웃!”

투수 앞 땅볼.

1루까지 몇 발자국 걷기도 전에 삼자범퇴가 결정됐고, 에반 롱고리아는 앞선 동료들처럼 허탈하게 웃으며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X발 저게 왜 파인타르가 아니야? 얼마나 처발랐으면, X같이 무겁던데.”

“내 말이 그거라니까!”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토해낸 말 역시 그들과 똑같았고 말이다.

이제야 자신들과 비슷해진 에반 롱고리아에 만족스럽게 웃던 선수들이었지만.

곧 클클웃으며 내려가는 투수의 모습에 상황을 깨달은 듯 다시 암울한 기운이 덕아웃에 흘렀다.

저런 놈을 상대해야 한다고? 아니, 그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저런 놈 상대하고 나서, 한 경기를 더해야 한다고?

타선의 끈끈한 조직력이, 이런 곳에서도 발휘가 되는 건지. 1회 말이 끝났을 때. 탬파베이 타자들은 똑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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