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인디언스와의 시리즈는 2승2패로 끝났다.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결과지. 인디언스가 약한 팀도 아니니까.
팬들도 만족하는 것 같고. 사실 시리즈 성적보다는, 그냥 내가 드론맨을 맛깔나게 찍어 누른 게 기쁜 것 같지만.
‘뭐, 실점하긴 했지만, 나도 후련하게 던지긴 했지.’
다만 확실하게 알았다.
제구를 내려놓는 건 확실히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속도 후련하고, 공의 위력 자체는 더 올라가지만. 몰리기 시작하니까, 좀 잘 맞긴 하더라고.
‘단점이 크기는 해도, 장점도 확실하니까. 그럭저럭 잘 제어만 하면 괜찮겠지.’
기분 좋은 승리와 약간의 깨달음. 그리고 후련함을 뒤로하고, 다시 홈에 딱 도착했을 때, 바로 연락이 왔다.
무슨 연락이냐고? 있잖아, 그거 말이야, 그거. 저번 달에 이어서, 이번 달도 내 수상이 확정된 상 두 개.
‘어째 미친놈 잘 때려잡았다고 표창장 주는 것 같네.’
5월 역시 화려하게 보냈기 때문인지, 이달의 투수와 신인이 이번에도 나에게로 돌아왔다.
정식 발표는 조금 더 걸리겠지만, 사전에 연락을 줬지.
저번 달은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연속 수상이라고 아마 미리 전해준 거겠지.
사실 별다른 감흥은 없다.
이미 한 번 타보기도 했고, 또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이미 예상했었으니까.
막말로 한 달 동안 여섯 경기 나가서 삼진만 66개를 잡고, ERA가 0점대인데. 당연히 나 줘야지.
‘이번엔 경쟁자라고 할 만한 사람도 없는 수준이지.’
그나마 유일하게 경쟁자로 언급되던건, 이달의 신인 부문에서 애런 저지였는데. 그마저도 사실 저번 달과 비교하면 좀 시들해졌다.
‘저지 걔는 아주 온갖 멋진 척은 다 하더니, 홈런 열 개도 못 쳤네.’
내 기세는 어떤 의미에서 4월보다 더 올라갔지만, 반대로 애런 저지는 조금 떨어졌으니까.
비율스탯은 더 좋아졌지만, 5월 홈런이 7개 밖에(?) 안 되고. 타점도 좀 줄었지.
양키스 팬들도 이젠 비비는 게 오히려 더 민망한 짓이라고 여기는 건지, 대충 훑어보니까, 그쪽 커뮤니티에서도 별말 없더라고.
접때, 원정에서 나한테 보란 듯이 홈런치고 쏘아보던 것과 비교하면 영 밍밍한 결과물이구만. 확신하는데, 걔도 가끔 내가 왜 그런 짓을 했지, 하면서 생각날 때마다 이불 팡팡 찰 거다.
아무튼 이걸로 두 달 연속 싹쓸이가 확정됐는데, 생각보다 구단에서도 더욱 긍정적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배리 지토 선수 이후로 역대 2번째의 일이라, 정말 송구스럽지만, 혹시 간략하게나마 인터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제까지 내게 별다른 부담을 주지 않던 것과 달리, 이례적으로 먼저 인터뷰를 요청했으니까. 요구는 아니고, 요청.
“혹시 Mr.Go가 불편하시다면, 당연히 거절하셔도 됩니다. 언제나 선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니까요.”
마케팅 팀 직원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저자세로 나왔다.
구단을 상대로는 웬만하면 선수가 갑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내 성적쯤 되면 갑도, 이런 슈퍼갑이 없으니까.
구단 내에서의 내 위치가 언터처블에 가까웠던 걸 생각하면, 인터뷰까지 요청할 정도로 이번 일을 꽤나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겠지.
“아무튼 이런 요청이 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대략적으로 의도는 알 것 같군요. 배리 지토라··· 오랜만에 듣는 이름입니다. 아마 구단이 원하는 건 이미지 메이킹일 겁니다.
아무튼 그런 요청을 받아서, 브라이언에게 물어보니, 그는 뻔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미지 구축이라.
그 말을 들으니 대충 나도 알 것 같네. 오클랜드가 뭘 노리고 있는 건지.
-배리 지토, 음, 아마도 강 건너 사람들에겐 치가 떨리는 이름이겠지만, 오클랜드에선 그리운 시절이죠.
오클랜드 소속 투수가 두 달 연속으로 이달의 투수를 수상한 건 내가 역대 두 번째라고 한다.
2001년, 8,9월에 나란히 수상한 배리 지지토를 제외하면 말이야.
배리 지토, 미묘하지.
한국 쪽 커뮤니티에선 간혹 지토신이라고 지칭하기도 하는데, 반어법적인 의미다.
‘역대급 먹튀니까.’
애슬레틱스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자이언츠와 대규모 계약을 먹고 시원하게 튀었지.
-뉴밀레니엄의 첫 번째 전성기를 함께 한 슈퍼스타니까요. 아마도 이번 인터뷰에서 구단이 Go에게 바라는 것 역시, 그런 과거로의 회구일 테고요.
즉, 한창 올라가는 인기에 부채질을 해줄 기분 좋은 이벤트기에 적극적으로 밀어주겠다는 건데···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죠?”
-네, 구단에서 알아서 이미지 메이킹을 해주겠다는 건데,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 또한 제가 알기로 한국에서도 좋은 반응이 나오는 걸로 알고요.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뇌리에 박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주목이 더 올라간다면, 진행 중인 계약도 더 수월해질 테고요.
그러고 보니, 아시아 선수로는 역대 최초라고 했었지. 두 달 연속 이달의 투수가.
브라이언의 말은 그것 역시 이번 기회에 적극적으로 어필하자는 건데, 확실히 나한테 있어선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니다.
얼마나 좋아?
내가 이달의 투수를 싹쓸이 하고 있다는 걸 온 동네방네 알릴 기회인데.
물론 한없이 빨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물어뜯는 언론이 조금 껄끄럽긴 하나.
‘이런 경우는 좀 다르지.’
구단에서 주관하는 인터뷰 혹은 기자회견, 그것도 좋은 일로 인해서 열린 만큼, 잔치 분위기라는 건데, 그런 기자회견에 초청된 기자들은 쉽게 말하면 어용 언론이다.
구단과 좋은 관계를 가진 기자들 모아다가, 하하호호 하는 거니까.
그렇기에 딱히 귀찮은 일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아서 흔쾌히 수락했는데···
“···네,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특히나 팬 여러분께 만족스러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는 게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질문하실 분 있으십니까?”
“최근 Go에 대한 부정투구 의혹이 나오고 있는데, 혹시 그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내가 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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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석이 5월을 휩쓸었다.
아니, 5월마저 휩쓸었다.
그건 분명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기대를 가졌던 이들에겐 축제와 같았지만. 항상 그렇듯, 모든 일에는 명암이 존재했다.
<루키의 오버페이스, ‘Go의 신화는 5월에 무너질 것!’>
<‘빅리그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전문가들, 입을 모아 Go의 위험성을 지적!>
고유석이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모든 주목을 자신에게 끌어오면서.
신드롬을 일으키다시피 하며, 전국적인 슈퍼스타가 되긴 하였으나, 당연하게도 그에 따른 의혹의 눈길도 따라왔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오버페이스. 고유석의 성적은 긴 시즌이 아닌, 당장의 이득에 급급한 피칭이 낳은 결과라는 것이었으나.
└5월, 5월, 노래를 부르더니. 이젠 말도 안 하네.
└웃긴 거 말해줄까? 저번 달만 하더라도 5월에 퍼질 거라고 했는데, 이젠 말 바꿔서 6월이라고 하더라. 아마 그다음에는 후반기로 바뀌겠지. 그다음은 내년이 될 거고.
└언제쯤 인정할란지 몰라. Go가 X나게 쩔어주는 건, 오버페이스를 하거나 플루크가 따라준 게 아니라, 그냥 실력이라는 걸.
결국 고유석이 두 번째 달마저 이겨내면서, 그러한 주장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민망함에 못이긴 전문가 혹은 졷문가 역시 떨어져 나갔고 말이다.
<오클랜드 콜리시엄은 부정구장? ‘Go의 성적은 콜리시엄으로 만들어졌다!’>
그다음으로 나온 것은 구장. 이해가 안 될 만큼 기이한 성적의 원천을 구장에서 찾았다.
애초에 투수 친화 구장으로 유명한 오클랜드 콜리시엄이기에 아예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A’s]
[Go가 구장빨이라고 하던데, 삼진도 구장빨을 타나?]
└몰라, 콜리시엄에선 그런가 보지~
└콜리시엄 덕분에 홈런을 덜 맞는 거야 맞기는 한데, Go는 애초에 장타 자체를 잘 안 맞잖아?
└벌써 삼진이 100개를 넘겼는데, 이걸 구장빨이라고 하는 건 멍청이나 다름없지.
└다른 투수들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진짜 구장빨이 크다면, 다른 애들 성적은 뭔데?
구장 빨이라는 전제가 애초에 불가능한 스탯인 삼진과 그것의 압도적 1위를 달리는 고유석이기에 간단하게 논파가 되었다.
그렇게 다시금 한 차례 의혹이 털어졌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남은 이들은 더욱더 악에 받쳤다.
압도적이고, 기괴한 성적은 분명 그들의 상식을 벗어났고, 단순히 재능 혹은 실력에 의한 결과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허나 눈앞의 성적이 워낙 완벽하고, 빈틈이 없었기에, 계속 속만 타던 찰나.
그런 사람들, 안티팬들의 눈에 고유석의 마이너리그 시절이 들어왔다.
[#Rangers]
[Suck 얘는 마이너보다 메이저 성적이 더 좋네. 이게 말이 되나?]
└트리플A X같기로 유명하잖아. 타고투저, 아니, 타신투병수준 아니었나? 간혹 그런 경우가 있긴 하지.
└트리플A 아닌데? 애초에 Suck 이새끼 트리플A 간 적도 없네.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진짜 좀 이상하긴 하네. 이거 Suck 맞아? 피홈런 왜 이렇게 많아?
마이너와 메이저.
그 압도적인 격차를 생각했을 때, 고유석의 성적은 다소 기괴했다.
마이너 시절에도 삼진율이 그럭저럭 높긴 했지만, 지금 정도는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피홈런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였으니까.
└이름만 같은 다른 선수 아니야?
└세상에 Go You-Suck이라는 X창난 이름이 또 있을 리가···
└혹시나 싶어서 경기영상 보니까, Suck 이 새끼 맞는데? 와, 이땐 X나게 못했네. X같이 던지는 건 똑같지만.
허나 처음에는 단순히 의아함, 딱 그 정도였다. 갑자기 실링과 툴이 터지면서, 급격한 성장을 보인 선수가 한 둘이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유망주를 키우는 이유가, 그런 성장을 기대해서 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처음에는 그저 역대급 유망주의 하찮았던 과거 정도로 치부되었으나. 조금씩 의심이 생겨났다.
└감각적인 영역이야, 경험이나 다른 요인으로 나아질 수 있긴 하지만, 스터프도 그런가?
└좀 의심스럽긴 하네. 달라도 너무 달라. 영상 좀 봐봐. 화질이 좀 떨어지긴 해도, 너무 다른 거 아니야?
└힘 빼고 캐치볼하는 수준인데? 그러다 갑자기 시범경기부터 X같은 공 던지기 시작했고. 이게 가능한가?
마이너리그 중계 특유의 저조한 화질으로도 충분히 포착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가 나는 구위.
높은 피홈런이 이해가 되는, 작대기 같은 공을 던지던 투수가, 단 몇 달 만에 메이저리그 최강의 무브먼트를 자랑하게 되었다.
그 사실은 고유석의 질주에 못 마땅한 시선을 보내던 이들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혹시 *아니야?
└*이 뭔데? 왜, 금지어야?
└도핑 말이야. 그거 아니면 이해가 안 되는데?
└에이, Suck이 X같은 놈이긴 한데, 그건 너무 갔어.
└솔직히 마이너리거들 약물 의심이야 오랜 전통이잖아? 아무도 모르지.
└겨울 동안 좋은 디자이너 구해서 한 방 맞은 것 같은데?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약물 도핑. 마이너리거들의 약물 도핑은 미국 프로야구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였다.
뒤가 없고, 어떻게는 빅리그에 올라간다는 열망 하에 당장의 성적을 위해 도핑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니까.
실제로 매 년 수십 명 이상의 선수들이 대거 약물 도핑의 이유로 사무국 차원에서 중징계를 받을 정도로.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급격한 성장을 도핑에서 찾았으나, 한 가지 맹점이 존재했다.
└구속은 저때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X같이 구려.
└약 맞고 최고구속이 89마일이면 그거 진짜 문제 있는 거 아니냐?
└문제 있지. 약팔이 한테 문제가 있지, 그건. 가짜를 줬다는 거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약물의 의심에서 고유석을 구해낸 건, 더럽게 느린 구속이었다.
원래도 89마일을 던지던 투수. 지금도 89마일을 던지는 투수. 구속만 놓고 본다면, 도핑 의심을 하는 것 자체가 미안한 수준이었으니까.
그 외에도 약쟁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징후가 없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약물에 대한 의혹은 사라졌지만.
곧 사람들은 구속의 상승 없이, 오직 구위가 좋아질 만한 방법을 찾아냈고, 떠오른 건 하나였다.
└파인타르네.
└그거면 이해가 가지. 무브먼트가 갑자기 좋아진 것도. 컨트롤이 뛰어난 것도. 모두 말이 돼.
파인타르.
송진을 탄화시켜 만드는 점액질로, 투수들이 가루 형태의 송진을 쓰는데 반해. 타자들의 경우 고체화 된 이 파인타르를 배트에 바른다.
배트가 손에서 미끄러져,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데, 원래 의도와는 달리, 꽤나 자주 부정투구에 사용되기도 한다.
특유의 끈적한 접착성 덕분에 공이 보다 더 잘 채여, 구위가 상승하고, 메이저리그 공인구 특유의 미끄러움을 제거해줘서, 제구를 돕는 효과가 있으니까.
그런 파인타르를 이용한 부정투구의 효과는 어쩌면 고유석의 안티팬들이 바라던 것과 정확하게 동일했다.
이 기괴한 성적을 드디어 자신의 상식 혹은 광신에 맞게 설명할 수 있었으니까.
└파인타르 맞는 것 같은데?
└쯧쯧, 역대급 유망주가 아니라 부정투구 선수였네.
└어쩐지, 성적이 너무 기괴하다 했어. 이건 좀 말이 안 되긴 하잖아?
처음 생겨난 의혹은 점점 더 불이 붙었고, 서서히 음지에서 양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듯, 인기가 대단하고, 가장 주목받는 선수이기에, 더욱더 퍼져나가기 쉬웠으니까.
####
부정투구라.
이제 대충은 잘 알겠다.
사람들이 내 성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말이야.
‘하긴, 이해가 안 되는 수준이긴 하지. 다른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솔직히 나도 좀 놀랍다. 내가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거든.
그래서 그런가 가끔씩 거울을 볼 때마다, 내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X새끼들아.
‘아주··· 물 만난 고기네, 물 만난 고기야.’
기자회견은 곧바로 끝났다.
불쾌한 질문을 던진 기자는 곧바로 퇴장 조치 되었고, 직원의 말로는 앞으로 콜리시엄에는 얼씬도 못한다고 했지.
구단에서 제대로 찍은 건데···
‘기자들 눈빛이 묘하더라니. 끝나자마자 이것부터 쓰셨구만?’
그런 조치가 무색하게도, 상황은 순식간에 돌변했다. 두 달 연속 이달의 투수&신인을 축하하는 잔치 분위기에서.
청문회로 돌변했으니까.
예상은 했다.
쫓겨나가던 그 기자를 바라보는 다른 기자들의 눈빛이 미묘했으니까.
내가 어용 언론이라고 지칭하긴 했지만, 어쨌든 기자는 이슈를 받아먹고 사는 동물인데. 이것보다 더 큰 이슈가 어딨어?
‘한명이 총대 메고 터트리니까, 아주 다 같이 신나게 총질하네.’
처음으로 결장했다.
아무리 로테이션 상 휴식일이라도 항상 덕아웃에서 응원은 했는데, 오늘은 구단에서 먼저 간곡히 부탁하더라.
제발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귀 닫고 눈 감고 계시라고.
곧 등판을 앞둔 투수가 괜히 X같은 꼴을 볼 필요가 없다는 거겠지.
-Go, 인터넷은 웬만하면 접속하지 마시고, 휴대폰은··· 웬만하면 꺼버리십시오. 곧바로 대응 기사가 나갈 테니, 그저 평소처럼 다음 등판만 준비하시면 됩니다.
그런 간곡한 부탁에, 등판 준비를 위한 훈련만 하고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곧장 브라이언에게서 연락이 왔다.
꽤나 다급한 목소리로.
아침에만 하더라도, 내 수상이 기쁜 듯 기분 좋은 느낌만 감돌았는데, 지금은 약간의 신경질마저 느껴졌다.
하긴, 브라이언은 내 사정을 잘 아니까. 어이가 없으면서, 좀 빡치겠지.
“Go, 다행히 오프시즌 동안 훈련 프로그램 기록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브라이언에게 전달해서 기사가 나가기 시작하면, 금방 잠잠해질 테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대니얼, 우리 솔직하게 말해봅시다. 만약 대니얼이라면, 그걸 믿겠어요?”
“···”
대니얼도 위로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나서기는 했는데, 내가 보기엔 영 아니다. 왜냐고?
‘이유가 X같잖아. X발 이걸 누가 믿어.’
내가 봐도 좀 아니거든.
자, 생각해보자.
역대급 선수가 탄생했다.
지난 두 달을 휩쓸었지.
근데 부정투구란다.
파인타르를 썼다고 하지.
근데 그 선수가 그런 의혹을 해명하겠답시고, 말하는 거지. ‘난 지금까지 손가락 끝으로만 공 던졌어요! 그러다 손가락 마디로 던지니까, 공이 죽여주게 날아가더라고요!’라고 한다.
무슨 생각이 들까? ‘아, 이 새끼가 X발 진짜 뭔가 있으니까, 이런 개소리를 변명이랍시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나라면 그럴 거 같은데?
‘절대 진정 안 돼. 오히려 역효과가 나면 났지.’
어처구니없는 해명은, 그게 진실이라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설픈 언론 플레이로 간주되어, 더욱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뿐. 그렇기에 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어차피 집에 틀어박혀만 있는 거, 골똘히 방법을 갈구하다, 문득 현타가 왔다.
‘드론맨 조지고 기분 좋게 돌아왔더니, X발 별 X같은 일이···’
아니, X발 내가 부정투구를 할 거였으면 진작 했지. 마이너에서 얼마나 털렸는데.
그 갖은 수모를 다 겪었을 때도 깨끗하게 털리기만 했는데, 이제야 좀 잘나간다 싶으니까, 하지도 않은 부정투구라니. 억울하면서도 야마가 돌았다.
그에 괜히 씩씩거렸을 때,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정면돌파로 가자.’
“브라이언.”
-네, Go. 괜찮으십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나가는 투수라면, 한번 쯤은 겪는 일이니까요.
“반박 기사, 정정기사, 해명, 뭐든 간에 하지 맙시다.”
-···혹시 따로 생각이 있으십니까? 자칫 내버려뒀다간 일이 터 커질 수도 있습니다.
“아뇨, 어설프게 막는 것보다는, 차라리 정면승부로 갑시다.”
과거 메이저리그에서 불꽃 같은 활약을 펼쳤던 한국인 투수가 있다. 나한테는 선배님이시지.
언더스로 투구폼으로 엄청난 공을 던진 양반인데. 사차원에 마이페이스로 유명하다.
그분께서 한번은 보크가 걸린 적이 있다. 투구준비 동작 중에 멈췄다는 판단에 선언됐지.
뭐, 보크야 투수라면 살다가 한 번쯤은 걸리는 거긴 한데, 진짜는 그다음이다.
‘투구동작을 로봇처럼 끊어서 보여줬지. 똑똑히 보라고 말하는 것처럼.’
얼핏 보면 심판한테 개기는 거다. 사실 그리 좋은 행동은 아니지. 심판도 사람이라서, 기분이 나빠지면, 저도 약간 편향된 판정을 하니까.
허나 오히려 당당하게 정면돌파했기에 유쾌하게 넘어갔다.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어쨌든 그런 퍼포먼스가 사람들에게 먹힌다는 거지.
조금 상황이 다르긴 하나, 내가 볼땐,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설프게 무마하거나, 반박하면 일이 더 커지겠지만. 반대로 유쾌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돌파한다면.
‘역풍이 제대로 불어주겠지. 다시는 부정투구의 부자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아마 앞으로 내가 잘할 때마다, 계속 이런 말이 나올 거다.
브라이언의 말처럼, 잘나가는 투수한테 늘 따라붙는 의혹이니까.
그러니 마침 고개를 처들었을때, 사전에 뿌리를 뽑아야지.
다시 언급하는 것조차, 쪽팔려서 못할 정도로.
생각을 마친 뒤, 나는 마지막으로 브라이언에게 물었다.
“브라이언, 덕아웃 쪽 카메라 말이에요.”
-중계 카메라 말씀이십니까?
“네, 그거요. 혹시 선수가 그 카메라에 다가간다거나 하면 룰 위반인 건 아니죠? 그 앞에서 제스처를 한다거나.”
-···최소한 제가 알기론 그런 규정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브라이언의 목소리가 묘하게 떨렸다. 설마설마하는 것 같은데. 네, 그 설마가 맞습니다.
“그냥, 궁금해서요. 아무튼 해명 없이, 그냥 개깁시다. 어차피 등판 코앞이니까. 구단에도 그렇게 전해주고요.”
카메라 딱 대.
환상의 스트립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