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속 빼고 다 가짐-98화 (98/316)

98화

<다시 시작된 ‘Go!’? 말린스의 타선을 잠재우며, 7이닝 무실점 11K>

말린스전은 일종의 증명이었다. 거품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약간의 흔들림에 불과했다는 뜻이니까.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 고유석이 이전처럼 압도적인 페이스를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 자신감 있게 점쳤던 이들은 고개를 숙였다.

초신성이 무너지길 기대하며, 분위기를 조장하던 언론은 언제나 그랬듯, 안면몰수한 채 다시금 칭송의 시류에 합류했고 말이다.

<1루수··· 선발투수 – 1위 Go You-Suck>

그리고 그 불안감의 해소는 즉각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올스타전 투표가 시작된 이후로, 고유석은 꾸준하게 선발투수 부문의 1위를 차지했다.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의 투수라는 점과 어쩔 수 없는 인종의 벽, 그리고 비인기 팀인 소속팀 등.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기는 했으나, 갓 데뷔한 신인이라는 특수성과 충격적인 성적은 그 모든 것들을 억누르기 충분했으니까.

볼질이 없고, 대단히 공격적인 피칭 역시 애슬레틱스 팬덤 이외의 야구팬들에게 충분한 어필 요소가 되었고.

그런 전국적인 인기에 힘입어, 처음부터 1위로 치고 올라갔던 고유석이지만, 마냥 순탄한 건 아니었다.

5월에 들어서며, 그가 이전만큼의 파괴력을 보이지 못하고 흔들리는 동안 여러 투수들이 좋은 활약을 보이며,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으니까.

특히 무실점이 깨진 순간, 신기록 수립의 기대감에 쏠렸던 시선이 상당히 빠졌었고.

그러다 완봉을 거두며 다시 치솟긴 했지만, 곧이어 레드삭스전에서 2실점 하는 모습에 다시금 득표율은 저조해졌다.

<고유석의 올스타전 선발 등판? 현시점 ‘리그 최고의 투수’!>

<말린스전으로 증명해낸 Go, AL 팬들은 그를 별들의 잔치에서 보고 싶어한다!>

<압도적 전체 1위! Go라는 이름의 돌풍이 MLB를 휩쓸고 있다!>

허나 말린스전을 기점으로, 득표율은 굉장한 상승세를 보였고, 심지어는 가장 폭발적이었던 투표 시작 시점보다도 더 높게 치솟기까지 했다.

[#A’s]

[혹시 누구 프로그램 썼냐? Go 득표율이 왜 이래?]

└나도 좀 이상하긴 하더라.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훨씬 적었는데···

└솔직히 우리만으로는 힘들지. 에이스 팬이 얼마나 된다고.

└Korea쪽 아니야? Go가 거기 출신이잖아. 인기가 엄청날 텐데.

└글쎄, 나 한국인인데, 한국쪽 커뮤니티들도 예전만큼 투표가 활발하진 않아. 할 사람은 다 했으니까.

└그럼 갑자기 오르는 이유가 뭐야?

└뭐긴 뭐야? Mother Fucking 머저리 새끼들이 드디어 Go가 세계 최고, 아니 GOAT 투수인 걸 깨달은 거지!

└아, 레이더스 왔네. 그래, 너네 요즘 기분 좋아 보이더라. 나도 그렇고. 우리 같이 열심히 응원하자.

└안 그래도 나랑 내 Bro들은 여러 방법 동원해서 하루에 일곱 번씩 투표하고 있으니까, 너네 Nerd 새끼들도 좀 성의를 보여라!

└X발 너네가 범인이었냐? 몇몇 득표가 부정투표로 추정되서 사무국에서 거른다더니.

상황이 그렇게 되자, 애슬레틱스의 팬들 역시 조금은 당혹감을 느꼈다.

대단히 사랑하는 선수고, 오클랜드 전체(?)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선수이기는 하나.

지금의 득표수는 분명 팬덤의 규모 자체를 아득히 초월하는 수준이었으니까.

올스타 투표 초반, 폭풍 같이 밀어주며, 고유석을 포지션을 넘어, 전체 AL 5위까지 만들었던 한국 쪽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최근 들어 시들해졌고 말이다.

그렇게 팬들마저 당황하며, 조금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지만, 진실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말린스전은 일종의 기폭제였다. 인터리그에서, 그것도 제법 강력한 타선을 구축한 것으로 이름난 팀을 상대로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그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지켜본 이들의 생각은 간단했다.

그저 저 선수를 올스타에서 보고 싶었다, 그것도 선발투수로서. 조금 흔들리는가 싶더니, 다시 굳건하게 섰으니, 자격이야 충분했으니까.

####

‘몸이 닳았네, 몸이 닳았어.’

브라이언에게 연락이 왔다.

말린스전까지는 경기장에 머물다가, 원정 일정에 맞춰서, 마찬가지로 오클랜드를 떴는데.

보스턴으로 돌아가자마자 아주 연락이 쏟아지네. 죄다 스폰서 계약 관련이고.

브라이언의 문제는 아니다.

그만큼 상대측에서 이번의 계약을 굉장히 활발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 이유야 더 말할 것도 없이 내 인기고. 내 입으로 말하긴 조금 뭐하지만, 시장에 풀린 매물 중에 나만큼 매력적인 상품이 없거든.

‘확실하게 증명됐으니까. 지금 내 인기가. 선발투수 1위라···’

엄청나게 득표를 받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대니얼이 아주 호들갑을 떨면서 알려줬지.

AL 선발투수 전체 1위.

아직 투표 종료까지 한참 남기는 했지만, 2위와의 격차가 꽤나 두터워서, 이 정도면 좀 처박는다고 해도, 넉넉하게 명단에는 들어갈 수 있을 거다.

그런 직접적인 인기로서 내 가치가 증명됐으니, 내 마케팅 가치를 탐내는 기업으로서는 애가 탈 수밖에 없지.

‘뭐, 비즈니스야 브라이언이 알아서 해줄 거고. 난 성적에만 신경쓰면 되는 거지.’

지금 내 기세는 대단하다.

자랑이냐고? 자랑 맞아.

ERA 0.39에 107탈삼진.

피안타 31개 볼넷은 3개.

고의사구는 둘.

최근 가치가 떨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몇몇 이들에겐 사랑받는 승리 역시 9승이나 된다.

탈삼진 1위, 방어율 1위, 승수 1위. 이 정도 성적이면 자랑 좀 해도 되지 않나? 트리플 크라운 페이스인데.

‘사이 영도 슬슬 진지하게 후보로 꼽는 사람들이 많아.’

5월에 들어서 조금 성적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기세가 엄청나다는 거지.

실제로 그걸 증명하듯, 5월 역시 이달의 투수를 내가 수상할 거라는 평가가 대다수다. 이번엔 경쟁자도 거의 없으니까.

두 달 연속 이달의 선수.

대단히 인정받지 못하는 상이라고는 하나, 무시할 수는 없다. 특히나 연속성이 있다면 더욱더 그렇고.

그러다 보니, 날 평가하는 스탠스도 조금 달라졌다.

신인 투수가 한 달 동안 휩쓰는 거야, 어느 정도는 가능한 일이지만, 두 달 내내 그런 기세를 유지하고 있다면, 보는 눈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

지금까지 리그 정상급, 아니 급자 떼고 그냥 정상의 성적을 찍은 나지만, 의외로 날 사이 영 후보로 점치는 매체나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루키라는 특성상, 언제 폼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단점이 컸으니까. 기껏해야 신인왕 정도.

‘이젠 진지하게 여기겠다는 거지. 올해 가장 뛰어난 투수로.’

허나 지금은 좀 달라졌다.

가장 강력한 사이 영 후보로 꼽혔으니까. 한 달 정도는 말아먹더라도 충분한 성적을 쌓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더 나아가서 신인왕, 사이 영. 그리고 MVP까지, 다른 의미의 트리플 크라운을 점치는 이들도 종종 있고.

뭐, 대부분 친 오클랜드적인 언론사거나, 아니면 그마저도 아닌, 그냥 내 열성팬들이지만. 어쨌든 그런 의견도 나오고 있다.

‘동화 같은 일이네. 이뤄진다면 말이야.’

내가 알기로 MVP와 신인왕을 동시 석권한 선수는 단둘 뿐이다.

한 명은 프레드 린, 레드삭스 소속으로 풀타임 첫해에 위업을 이뤘고.

다른 한 명은 이번에 만났던 스즈키 이치로인데, 이 양반은 좀 미묘하지. 이미 NPB에서 정점을 찍고 넘어온 거라서, 진짜 신인이라고 보긴 뭐하니까.

신인왕과 사이 영을 동시에 수상한 사람은 한 명이다.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El Toro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레전드 투수다. 그것 밖엔 기억이 안 나네.

이런 걸 왜 아냐면 친절히 설명해주더라고. 기사에서.

어쨌든 만약 달성한다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위업이 되는 건데···

‘솔직히 MVP는 힘들고, 나머지는··· 가능성은 있지.’

MVP는 사실상 타자상이다.

애초에 사이 영이랑 MVP를 동시에 수상한 투수도 굉장히 적으니까.

정말 엄청나게 잘하고, 또 그해에 타자들 성적이 좀 저조한 게 아니라면 그조차 힘들다.

그러니 MVP는 불가능하나, 나머지는 솔직하게 말하면 욕심이 나네. 아예 불가능은 아니거든.

개중에서 그나마 가장 쉬운 건 당연히 신인왕이지만, 그것도 마냥 쉽지는 않다. 나 못지않게 돌풍을 일으키는 놈이 있으니까.

‘일단 신인왕 경쟁자부터 먼저 만나보겠네.’

####

The City.

‘그’ 도시.

일개 도시를 가리키는 말로는 정말이지 오만하기 짝이 없는 단어지만, 그 도시의 이름을 들으면, 아마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일 거다.

‘뉴욕이라···’

뉴욕 시티.

더 말할 것도 없지.

세계 도시들의 행복지수를 매길 때, 100점의 기준치가 뉴욕이라고 한다.

어떤 기사에서 봤던 것 같은데,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만큼 뉴욕이라는 도시가 세계적으로도 상징적이라는 거겠지.

오죽하면 미국 수도가 뉴욕인줄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겠어?

‘웃긴 건 미국인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종종 있다는 거고.’

대체 누구냐고?

마이너에서는 생각보다 무식한 놈들이 많다.

엘리트 체육 시스템인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운동선수라고 하여, 마냥 운동에만 몰빵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놈들은 언제나 있지.

지네나라 수도도 모르는 놈이 있다는 게 참 신기했지만, 미국은 연방 국가라서 연방의 수도 따윈 몰라도 된다고 부득부득 우겨서 그냥 내버려 둔 기억이 나네.

루키에서 같이 숙소 쓰다가, 나 싱글A로 올라가기 직전에 야구 그만뒀던 걸로 기억하는데, 잘 사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메가시티 뉴욕을 연고지로한 팀이 우리 상대다. 누구냐고? 당연히 양키스지.

올해는 NL 동부랑 붙으니, 인터리그에서 어메이징 메츠도 한번 만나기는 할 텐데.

어쨌든 이번 원정 시리즈 상대는 뉴욕 양키스다.

‘양키스, 느낌이 좀 이상하긴 하네. 내가 양키 스타디움에 간다는 게.’

양키스. 모르긴 몰라도, 메이저리그에 아예 까막눈인 사람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팀.

최소한 NY라는 새하얀 글자가 빛나는 야구모자 정도는 한 번쯤 다 봤을 거다.

메이저리그에 상징이 있다면, 양키스가 바로 그거겠지.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고.

그런 팀을 직접 마주한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내가 빅리그에 있기는 있구나, 싶었으니까.

‘그리고 걔도 한번 만나볼 거고.’

걔 있잖아, 지금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판사님. 애런 저지 말이야. 하도 들어서 아는 사이 같네.

타자와 투수로서 서로의 포지션에서 가장 압도적인 성적을 올리고 있기에, 언론에선 나와 저지를 꽤나 많이 비교를 했다.

신인왕 경쟁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기도 한데, 지금 당장은 내가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몇 경기 말아먹으면 또 모르지.

‘이번에 한 번 보겠네.’

아, 참고로 내가 등판해서 직접 자웅을 겨룬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바로 어제, 아니 이틀 전에 선발로 등판했는데, 밥 멜빈 감독이 미친놈이 아닌 이상, 이번 시리즈 안에는 절대로 등판 안 시키지.

설사 진짜로 밥 멜빈이 미쳐가지고 등판시킨다고 해도, 프런트 선에서 컷하거나, 그전에 내 팬들이 총기난사할 걸?

아주 대서특필이 되겠지.

기괴한 페이스페인팅과 해골바가지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총기난사를 벌이며, 오클랜드 시내를 공포로 물들였다고.

그게 누구냐고?

있어, 대체 티켓을 어떻게 구한 건지는 몰라도, 등판할 때마다 3루쪽 관중석에서 소리 고래고래 지르는 양반들.

부끄럽지는 않다.

신기하긴 한데, 어쨌든 내 팬들이잖아? 그만큼 날 사랑한다는 거니까.

“네, 여기에 사인해주세요.”

“음··· 미안하지만, 다른 팀 유니폼은 조금 그런데, 대신 사인볼이라도 받을래?”

“그것도 좋아요!”

근데 그런 인기의 폭이 생각보다 꽤 넓은 것 같다. 상대팀 선수로서 양키 스타디움에 입장했는데도, 제법 사람이 몰렸으니까.

오늘 등판하는 것도 아닌데도, 아니, 어쩌면 등판하지 않기에, 더 거리낄 게 없는 것도 있겠지.

양키스의 성지에서 상대팀 선발투수에게 사인받는 건 좀 눈치가 보이는 행위니까.

“쟤 벌써 홈런이 몇 개라고 했었지? 열다섯 개?”

“어, 잘 아네.”

“하, 인생 참···”

그렇게 사인을 해치운 뒤, 내 할 일은 구경이다. 언제나 그렇지. 로테이션 남은 선발투수가 할 일이 그거 말고 뭐 있겠어?

얌전히 벤치 한쪽 구석탱이에 앉아, 그라운드를 지켜보는데, 마찬가지로 서드 포수라 개점 휴업인 브루스 맥스웰은 내 옆에 바짝 붙어, 불공평하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벌써 15홈런. 나도 나지만, 쟤도 참 엄청난 루키시즌을 보내고 있기는 하다.

통산 10홈런을 못 넘기고 은퇴하는 선수도 생각보다 많다는 걸 감안하면, 축복받은 인생이지.

‘뭐, 사실 따지고 보면 나도 그렇긴 하지만.’

내가 이런 생각하는 것도 조금 우습긴 하네. 사실 불공평한 걸로 따진다면 내 쪽이 더 심하니까.

그래도 난 나름대로 빡세게 굴렀어. 마이너에서. 그러니 정당한 대가··· 라고 보기에는 너무 심하긴 하네.

같은 생각인 건지, 시도 때도 없이 투덜거리던 브루스 맥스웰은 이내 흘끔 나를 곁눈질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인상적이기는 하네.’

저쪽도 같은 생각인 건지, 경기를 소화하는 애런 저지 또한 중간중간 내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은근히 의식하고 있구만.

하긴, 내가 쟤가 익숙한 만큼, 쟤도 내가 익숙하겠지. 언론에서 얼마나 떠들어댔는데.

양 팀의 팬들 간에도 은근하게 신경전을 벌이고 있고. 물론 인터넷에서.

‘원정팬은··· 그냥 없네.’

오프라인에선 상대가 안 되지. 내가 등판하는 날이라면, 그나마 우리 레이더스들이라도 있었겠지만. 오늘은 아니니까.

어림잡아서 4만명쯤 되 보인다. 대충 우리 홈경기의 두 배가 살짝 안 되는 것 같으니, 아마 딱 그 정도겠지.

나라는 특수성과 준수한 성적 덕분에 우리도 올해 제법 인기가 올라오긴 했지만, 역시 양키스는 상대가 안 되는구만.

그런 압도적인 응원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저력을 발휘하며 첫 경기를 가져가긴 했으나, 나머지 두 경기는 패배했다.

“와아아아아아아!”

-All Rise! Home Run! 애런 저지의 16호 홈런입니다!

마지막 경기에서 애런 저지는 16호 홈런을 날렸고 말이다.

양키스 팬들 역시 그들이 자랑하는 선수와 비교되는 내가 의식이 되는 건지. 마치 들으라는 것처럼 소리쳤다.

“ROY! ROY!”

“MVP! MVP!”

“오클랜드 허접한 투수보다, 네가 훨씬 낫다!”

“이번에 등판 안 한 걸 다행인 줄 알아! X같이 처맞았을 테니까!”

신인왕과 MVP라.

나도 나지만, 쟤도 가능하긴 하지. 지금 성적을 유지한다면, MVP가 너끈할 테니까.

MVP를 받으면, 신인왕이야 그냥 따라오는 거고.

그런 팬들의 과격한 응원에, 애런 저지 역시 마음이 동한 건지, 베이스를 도는 와중에도 은근히 우리 쪽 덕아웃을 봤다.

아니, 정확하게는···

“Suck, 저지 저 자식 저거, 너 보는 것 같은데?”

날 쏘아봤다.

마치 다음에 만나면, 그때도 이렇게 하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 강렬한 시선에 잠깐 중계 카메라가 날 잡기도 했다. 좋은 이야깃거리니까. 경쟁자의 앞에서 홈런을 날린 거잖아? 보란 듯이.

“이야, Suck이 잘나가긴 한가보네. 벌써 도전자도 생기고.”

“얘가 압도적인 탑독이긴 하지.”

“분발해야겠네? 경쟁자가 바짝 쫓아오는데.”

루키의 풋풋함이 즐거운 건지, 동료들의 반응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홈런 쳐놓고 덕아웃 노려보는 게 좀 짜증스러울 법도 한데도 말이다.

‘어쨌든 잘 봤네. 잘하긴 잘해.’

“분발해야죠, 쫓다가 가랑이 찢어지도록.”

신인왕, 그리고 MVP라.

경쟁자께서 저렇게나 의지를 드러냈는데, 나도 열심히 해줘야지.

####

뉴욕 원정을 루징 시리즈로 마친 뒤, 5월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클리블랜드로 날아갔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이번 4연전의 상대로, 나는 2차전 등판이 예정되어 있다.

작년 컵스를 옭아맸던 염소의 저주가, 앱스타인 왕자님의 키스로 풀리면서.

가장 오랫동안 월드시리즈가 없는 팀이라는 칭호의 새로운 주인공이 된 팀인데.

공교롭게도 작년 월드시리즈에서 컵스와 서로 저주빵을 했는데, 거기서 패배하면서, 타이틀을 넘겨받았지.

‘1948년이면··· 진짜 오래되기는 했네. 굿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무려 69년. 69년간 우승이 없다. 와후 추장의 저주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괜히 도시에 우울감이 감돌았다.

누구는 저주를 풀고 우승했는데, 자기들은 마지막 한 끗을 남겨놓고 나가리 됐으니.

제아무리 대단한 팬심이라도,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지.

허나 그런 안습한 저주와는 상관없이. 인디언스 자체는 대단히 강팀이다.

‘당장 작년 월드시리즈를 진출한 팀이니까. 전력도 고스란히 남아 있고.’

사이 영 위너 코리 클루버가 있는 투수진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프란시스코 린도어를 중심으로 한 타선도 상당히 강력하다. 꽤나 두텁지.

‘폭발력은 말린스가 더 좋긴 하지만, 여기도 만만치 않은 건 마찬가지야.’

도저히 인간 같지 않은 고릴라는 없지만, 어쨌든 인디언스의 타선은 짜임새가 높다.

대단한 수비력을 자랑하는 유격수였던 린도어가 올해는 빠따까지 터지면서, 한층 더 강력해졌고.

그렇기에 다시금 절치부심하며, 컨탠더급 팀으로서 전력을 자랑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3연전 중 1차전은 스무스하게 졌다. 야구에서 한 경기쯤 지는 거야 일도 아니니, 딱히 별생각 없지만···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시작은 충분한 숙면 후 개운한 몸으로 기상했을 때였다.

대충 간단하게 샤워를 마친 뒤, 식사를 위해 호텔의 식당으로 내려갔는데, 평소라면 마찬가지로 잠에 취해 비틀비틀거리며 반겨줬을 동료들의 시선이 조금 묘했다.

“···왜, 사람을 그따구로 꼬라봐?”

“아니, 그냥 Suck 네 인기가 요즘 참, 대단한 것 같아서.”

“뭔 개소리야.”

“오늘 수비할 때 아주 열심히 뛸 테니까, 마음껏 던져, 마음껏. 네가 우리 자존심이니까.”

“크리스는 또 왜 그래요? 그냥 평소처럼 빠따질이나 잘하슈.”

뭔가 좀 실실 웃는다고 해야 하나? 재밌는 이슈가 있는 것처럼. 왠지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지려던 찰나.

젊은 배터리 간의 호흡을 맞추기 위함인 건지, 오늘 다시금 파트너가 된 브루스 맥스웰이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몰랐어? 하긴, 좀 일찍 잤으니까. 저쪽 팀 드론맨이, 입 좀 털었어. Suck 널 대상으로.”

“드론맨?”

드론맨.

내가 아는 드론맨은 하나다.

트레버 바우어. 미친놈이지.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작년부터 드론 가지고 놀면서 사무국에 경고를 받더니.

작년에는 무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를 앞두고 드론을 수리하다, 손가락이 베이는 부상을 당했다.

투수는 웬만하면 공 던지는 손으로는 밥도 잘 안 먹는다는 걸 감안하면 미친놈이 확실하지.

덕분에 작년 우승 실패의 원흉으로 꼽히기도 했고. 그것 외에도 SNS로 입을 털거나, 괜히 갑자기 권투 글러브를 끼고 있는 둥.

특유의 똘끼를 보여줘서,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또라이로 자리매김한 선수인데···

‘이 양반 이거, 또 손가락 놀렸네. 드론에 베인 거 아직 다 아물지도 않았겠구만.’

그 미친놈이 이번엔 날 찍었다. 그것도 아주 대놓고.

[@BauerOutage]

[Go는 현시점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투수야. BABIP만 보더라도 굉장히 행운이 따라준 걸 알 수 있지. 얘가 사이 영 후보라고? 솔직히 전문가들 생각은 좀 이해가 안 된다니까. 내일 경기 한번 두고 보라고, 어떻게 되는가. :)]

이러니까, 분위가 이렇지.

아마 내가 잠든 사이 아주 난리가 났겠네. 기자들 입장에서 이만큼 좋은 소스가 없으니까.

대체 뭔 생각인 걸까?

뭐, 선발투수간의 신경전? 도발이라도 해서 기세를 누르려고? 아니면 그냥 루키가 잘나가는 게 아니꼬운 걸지도.

내 입지가 많이 오르긴 했나 보다. 아니꼽게 굴기는 해도, 일단 날 찍었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는 의식한다는 거니까.

급이 안 맞았으면, 애초에 신경조차 안 썼겠지. 어느 정도는 승부욕이 생기는 상대니까, 달라붙는 건데.

이야~ 너무 기쁜데?

‘제대로 인정을 받기 시작해서 그런가, 점점 미친놈들이 꼬이네.’

저번 시리즈에선 애런 저지가 괜히 날 노려보더니. 이젠 또 또라이 하나가 붙었네.

참, 피곤하다,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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