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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빼고 다 가짐-92화 (92/316)

92화

경기 종료 직후,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완봉까지 했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마음 같아선 아주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뽐내고 싶었지만, 그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거든.

그냥 조금 멍했다.

대체 어떻게 덕아웃 안으로 돌아온 건지 신기할 정도로.

사실 반쯤은 다른 선수들에게 업힌 거나 다름없지만.

‘죽겠네.’

나는 경기 끝난 직후의 라커룸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홈이라면 빠르게 옷만 갈아입고, 장비만 챙겨서 바로 집으로 도망칠 정도로.

원정이라도 대충 깔끔하게 준비를 마친 뒤, 잠시 자리를 피하고.

왜냐고? 생각해봐, 방금 전까지 열심히 땀 흘린 사내새끼들, 그것도 삼시세끼 치즈만 처먹는 건지, 아주 누린내에 찌든 놈들이 내뿜는 악취를.

메이저리그답게, 이런 곳에서도 차원이 다르다. 뭐든 간에 상상 이상이지. 과연 꿈의 무대야. 악몽도 구현하는 걸 보면. 진지하게 기절할 것 같다니까?

‘오늘은 그래도 좀 덜하네.’

그나마 아직까진 봄이라서 좀 다행이지, 여름쯤 되면 진지하게 코를 뽑아버리고 싶어진다.

‘아니, 너무 힘드니까 냄새도 못 맡는 건가?’

그런데 오늘은 좀 괜찮은 것 같다. 평소처럼 코가 썩는 대신, 쇠처럼 비릿한 냄새가 코끝에 감도는 걸 보면.

원래 악은 더 큰 악으로 제압한다고 하던데, 완봉의 피로가 그 위대한 악취마저 찍어 누른 거겠지.

“너 멀쩡한 거 맞아? 병원이라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멀쩡해, 멀쩡해. 아주 멀쩡하니까, 가서 데오드란트나 발라라. 좀 쏠린다.”

“You Fucking Racist, Dude.”

아니, 아닌가?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훅 들어오는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휘휘 저으니, 넋이 나간 내 모습에 걱정스레 묻던 브루스 맥스웰의 입이 삐죽거렸다.

약간 삐진 것 같기도 한데, 마음에 남아서 꿍할 수도 있겠지만, 감정을 풀어줄 아주 좋은 무기가 있지.

“그나저나, 적당히 G-Shock 정도면 괜찮지?”

“어?”

“퍼펙트도 아니고, 노히터도 아니니까, 롤렉스는 좀 그렇잖아. 똑같이 최저연봉 받는 처지에.”

“어, 어어. 그- 그렇지. 아니, 그게 아니라, 안 줘도 되는데··· 내가 오늘 한 게 뭐가 있다고.”

그제야 무슨 뜻인지 깨달은 건지,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얘도 오늘 고생 좀 했는데, 그 정도 선물은 해줘야지.

최소한 프레이밍이나 포구에 실수한 정도 없으니, 그 정도면 포수로서 자기 몫은 다한 거지. 연기도 잘해줬고.

‘돈이야 지금도 계속 복사가 되고 있으니까.’

지샥 자체가 중저가 브랜드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지갑 사정은 제법 넉넉하다.

집세도 안 내, 렌트비도 안 내, 대니얼 월급도 에이전시에서 나가, 사실상 내 돈 나가는 곳은 하나도 없잖아.

공짜 인생이지, 공짜 인생.

그 덕분에 차곡차곡 쌓인 봉급이 생각보다 꽤 되더라고, 열심히 모았으니, 고생한 포수한테 시계 정도는 사줘야지.

내 말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삐죽거리던 녀석의 얼굴이 환해졌다. 묘한 뿌듯함도 느끼는 것 같고.

조금만 더 있으면 경례도 하겠네. 충성충성 하면서.

“그냥 받고, 앞으로도 딱 오늘처럼만 해라,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Yes, Suck!”

Sir, 새꺄, Sir. 이럴 때도 부득부득 Suck이라고 하네.

피곤함에 슬쩍 손을 휘저으니, 브루스 맥스웰은 조심스럽게 물러났고, 잠깐 그대로 멍하니 앉아, 숨을 골랐다.

경기가 끝난 라커룸 안은 부산스럽다. 선수단 스물다섯 명에, 코치들, 직원들. 죄다 바글바글하니까.

아마 제일 바쁜 건 클러비들일 거고. 잘 다려놓은 새 옷, 양말, 오늘 쓴 장비 등등. 처리해야 할 일이 많거든.

그렇게 바글거리는 와중에도 날 터치하거나, 감히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눈이 마주치거나 스쳐 지나갈 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뿐. 마치 신성불가침이라도 되는 것처럼.

과도한 배려라는 생각도 들겠지만, 당연한 거다. 오늘 나 혼자서 레인저스를 셧아웃 시켰으니까. 왕처럼 대우해줘야지. 원래 투수가 왕이기는 하지만.

‘미친 짓 벌이기는 했어.’

그런 조심스러운 모습들에 그제야 실감이 났다. 완봉이라, 내가 생각해도 미치기는 했네.

심지어 경기 초반에는 좀 털리는가 싶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다 때려잡고 완성했으니···

‘어떻게 일이 이렇게 돼버렸네.’

솔직히 나도 완봉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냥저냥 초반만 쉽게 넘기고, 후반에 재미 좀 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이상하게 상황이 잘 돌아간 덕분에 결국 이런 결과가 나왔다.

사실 원래 기록이라는 게, 대부분 그런 식이지. 누가 노리고 해, 그냥 지금처럼 어쩌다가 우연히 상황이 맞아떨어지는 거지.

‘반응이 생각보다 크겠어.’

그만큼 뜻밖의 일이기에 반응도 클 거다.

마이너, 락하운즈에서 했던 완봉은 나한테 많은 걸 선사했었지.

팽팽한 여론전을 펼쳤던 구단은 그날 이후 곧바로 항복을 선언했고, 당당히 메이저 캠프 초청, 시범경기 이닝 보장, 로스터 보장, 거기에 인스트럭터 초빙까지 죄다 얻어냈다.

그렇기에 궁금했다.

과연 마이너가 아니라 메이저, 빅리그에서 달성한 완봉은 무엇을 가져다줄까?

‘모르긴 몰라도, 시원찮지는 않겠지.’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초주검이나 다름없는 몰골인데도, 묘한 뿌듯함과 성취감이 가슴 안쪽에서부터 차올랐으니까. 뭐, 기대와 달리 반응이 변변찮더라도 이거면 충분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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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lete Game Shutout.

완투완봉승(完投完封勝).

대단한 기록은 아니다.

한 ‘시즌’ 동안 10개의 완봉을 올린 투수도 있고, 심지어 커리어를 통틀어 50회 이상을 달성한 투수도 몇몇 있다.

해당 분야의 1위, 아니 투수계의 1인자나 다름없는 월터 존슨은 무려 110회의 완봉을 자랑하고.

그러니 메이저리그 전체 역사를 통틀어도 단 23번 밖에 나오지 않았던 퍼펙트 게임과 비교하면, 그 희소가치는 조금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허나, 그렇듯 조금 더 과거에는 흔했던 기록이기에, 야구팬에게 완봉은 묘한 울림을 느낄 수밖에 없는 단어였다.

홈런이 야구의 시원함, 그리고 박력을 대표한다면, 완봉은 낭만을 대표했으니까.

특히나 선발투수들의 이닝이 서서히 줄기 시작한 이후로는 더더욱 그렇고.

<‘불굴의 의지가 만들어낸 최고의 순간’ 글로브 라이프를 점령한 You-Suck!>

<고유석, 첫 실점의 아픔을 이겨내고, 레인저스를 압도했다! 11K 완봉승!>

그 낭만이 이뤄졌다.

그것도 루키의 손에서.

굉장히 극적으로.

조이 갈로를 거르고. 무사사구 완봉이 날아갔을 때. 많은 이들이 탄식했다.

[#A’s]

[아··· 거르네. 위험할 것 같은데.]

└현명한 거지. 완봉이라도 건지는 게 우선이니까.

└난 오히려 잘했다고 봐.

└무사사구는 날아갔네, 좀 아쉽다.

같은 완봉이라도 무사사구 완봉쯤 되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기록으로 쳐줬으니까.

그렇기에 몇몇은 아쉬워하면서도, 차라리 옳은 선택이었다며 이야기 했지만. 당연하게도 지켜본 모든 이들의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현명한 선택이라고는 하나, 결국 결과가 중요했으니까. 다르게 말하면 주자 1,2루의 최후의 위기상황.

만약 안타라도 하나 나온다면 코스에 따라 완봉조차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올라간 순간, 기사는 해안가에 굽이치는 파도처럼 쏟아졌다.

마지막까지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보던 기자들은 짜릿한 마음으로 미리 작성했던 기사의 업로드를 눌렀고.

마찬가지로 팬들 역시 참았던 숨과 흥분감을 토해내며, 감정을 표현했다.

[속보)킹갓엠퍼러제너럴충무공마제스티황금올리브갓갓유석 완봉승!]

└엄마! 나는 커서 고유석이 될래요! 엄마 나는 커서 고유석이 될래요! 엄마 나는···

└15졌다 진심, 고유석 수준 실화냐? 정말 세계관 최강 투수다.

└진심 보면서 바지가 흥건해졌음

└고유석은 급이 다르다 급이 달라 앞으로 조크보 레쟈투수들 킹유석한테 비비면 죽을 줄 알아라.

└난 4회 말 끝나고 덕아웃으로 가면서 싸가지 없이 껌 짝짝 씹으면서 풍선껌 불고 웃는 거 보고 소름이 쫙 돋더라.

[#A’s]

[Suck, Rangers Shutout!]

└보면서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어! 하트 브레이크가 왔다고!

└오늘 Suck은 진짜 Crazy야, 경기 보면 다 이해할걸?

└맞아, Madness지, 마지막 이닝에 고의사구보고 난 진짜 또라인줄 알았어. 그 상황에서 고의사구라니. 뭐, 결국 Suck이 플루톤이었고, 내가 닭대가리였던 거지만.

└저거 직관한 놈들은 두고두고 자랑하겠지? 진짜 부럽다···

팬들의 반응은 격렬했고, 어쩌면 당연했다. 단순히 완벽한 피칭으로만 완성되진 않았으니까.

경기 초반, 4회 말 투아웃까지만 하더라도, 심하게 흔들렸고, 여섯 개의 안타를 허용하며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사람들 머릿속에 오늘은 글렀구나라는 생각이 든 순간, 그때를 기점으로 한순간 타자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렸다.

그 약간의 시련과 난관이 상황을 더 멋스럽게 만들었다.

그토록 완벽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욱더 가슴에 와 닿았으니까.

[#Rangers]

[X발 X같은 X신 타자 새끼들, 확실하게 끝내던가! 빨리 죽기 대결만 하다 쳐 망했네.]

└하아··· 저번 경기는 5.2이닝 동안 퍼펙트를 당하더니. 오늘은 기어코···

└차라리 쭉 털렸으면 아쉽지라도 않지. 앞에 있던 기회만 잘 살렸어도 최소한 완봉은 안 당했잖아!

└진짜 심각하다. 우리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건데? 왜 내 돈주고 경기보러 가서 그런 X같은 모습을 봐야 하는 거냐고!

└그래도 안타 많이 쳤잖아. 운이 나빴던 거지.

└운? 경기 제대로 본 거 맞냐? 안타를 치면 뭐 해! 큰 거를 날리라고! 점수를 내든가!

물론 반대 측이 보기에는 오히려 그렇기에 더할 나위 없는 악몽이 완성된 것이지만 말이다.

추민수의 예상처럼, 하하호호 웃으며 같은 나라 선수끼리 친목을 도모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빌어먹을 애송이에게 두 경기 연속으로 제대로 물먹은 레인저스 팬들은 작금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으니까.

선수단은 물론, 감독 코치, 심지어는 서서히 레인저스의 암흑기를 열고 있는 프런트를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Go는 오늘 더러운 피칭을 했고, 더러운 경기를 만들었다!’ 제프 배니스터 감독, 인터뷰에서 격분?>

<‘모든 건 그저 연기’ 고유석, 레인저스 타자들을 ‘낚았다’!>

[#Rangers]

[애새끼가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X발 대놓고 속이는데 타자들이 어떻게 안 속아?]

└진짜 게임 더럽게 하네.

└X같은 놈이 왜 우리랑 할 때만 그렇게 대가리를 굴리냐고!

└하, 어째 잘 처 맞는다 싶더니. 아예 대놓고 가지고 놀았네. X같은 새끼.

└솔직히 이게 우리 잘못이냐? Suck이 X같이 굴어서 타자들 속인 거지!

다만 그들 역시 변명거리는 있었다. 대놓고 낚시질을 한 고유석에게 놀아난 것이니까. 그에 억울함을 가득 담아 열변을 토해냈지만···

[ㅋㅋㅋㅋ레인저스 레이딧 들어가니까 난리났네.]

-더럽게 야구한다고 ㅂㄷㅂㄷ하면서 갓유석 ㅈㄴ 욕한다

└그거 극찬 아님?

└???:공 조까치 던지네!

└ㅗㅜㅑ 완봉했는데, 상대팀 감독이랑 팬들한테 최상급 포상까지 들어?

└더럽게 플레이 한다=당신은 정말 최고의 선수군요. 당신의 뛰어난 실력과 영리한 두뇌에 그저 탄복했습니다. ㅇㅈ?

딱히 잘 먹히지는 않았다.

분노한 적의 욕설은 다르게 말하면 인정 혹은 칭찬이라는 게 정설이었으니까.

####

아침에 일어나니, 아주 난리도 아니다. 무리 안 한다고 큰 소리 떵떵쳤었는데, 무리였나 보네.

‘이거 좀 오래 가겠는데?’

원래도 등판하고 나면 몸이 쑤시고, 뻐근하고 하지만, 오늘은 느낌이 사뭇 달랐다.

고통의 진원지가 조금 더 깊숙한 느낌이었으니까. 그만큼 피로가 크게 누적됐다는 거겠지.

자칫 다음 경기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기에, 왠지 기분도 좀 축 가라앉았다.

[메시지+99]

밤 동안 쌓인 메시지만 봐도 반응은 장난이 아닌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완봉 하나에 두 경기 치 체력을 다 털어 넣었구만.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게 인간이라더니, 이제 와서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경기 완봉하고, 그다음 경기 털리면 결국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잖아. 아니, 오히려 역효과가 더 크겠지.

‘다음 경기가 레드삭스였던가? 혹시라도 망치면, 아주 물어뜯고 난리 나겠네.’

내구성이 약하다는 둥. 과도하게 기록에 욕심냈다는 둥, 루키라 자기관리를 못했다는 둥. 별말이 다 나올 거다.

이제 좀 프로 짬밥 좀 먹어서 그런지, 대충 예상되는 반응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저었다.

“쓰읍-”

심지어 목도 뻐근하네.

아니, 어깨나 다른 부위야 썼으니, 조금 뻐근할 수도 있지만, 대체 목은 왜?

사인 내면서 고개 까딱까딱 거리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었나?

몸의 피로가 정신에도 영향을 끼치는 건지, 괜히 짜증스럽게 투덜거리다,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스트레칭이라도 좀 해야지··· 이렇게 침대에 죽치고 있으면 답도 없어.’

힘들고 피곤하다고 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진짜 문제가 심각해진다. 억지로 몸을 풀여야 회복이 빠른 법이고.

꽈짖꽈짖 거리는 근육을 억지로 억누르며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왠지 메시지가 가득 찬 휴대폰이 눈에 걸렸다.

‘대충 아는 사람은 죄다 연락했겠네.’

일가친척부터 시작해서 사돈의 팔촌, 야구부 동문이나 오다가다 알고지낸 사람들, 마이너 동료 코치들까지.

적당히 좋은 성적만 올려도, 죄다 연락이 오는데, 완봉까지 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

보통은 부모님이나 야구부 감독님, 브라이언의 연락 정도만 확인한다.

그 외에는 솔직히 좀 부담스럽거든.

‘적당히 골라서 답장은 해줘야지. 특히 엄마랑 아빠는 많이 궁금할 테니까.’

피곤하긴 해도, 어차피 등판 다음 날이라 딱히 스케줄도 없으니, 적당히 관계가 깊은 사람들 정도는 답장을 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늦게 간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고.

‘아, 홈팬들은 좀 시비걸 수도 있겠네. 완봉하더니 루키 주제에 잘난척한다고.’

어쨌든 내 면전에다가 욕할 사람은 없잖아? 그럼 된 거지.

그리고 어차피 텍사스 사람들은 날 이미 싫어하는 것 같으니까, 상관없지.

대충 메시지만 빠르게 훑으며, 번호가 저장된 이들을 위주로 감사하다는 답변을 보냈을 때, 문득 휴대폰이 진동했다.

‘브라이언이네?’

타이밍 좋게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 편할 때 연락하라는 메시지가.

이전에 보낸 완봉 축하 메시지는 그도 경기를 지켜봤던 건지, 대충 시간대를 보아, 경기가 끝나마자 보낸 것 같은데. 그 사이 무슨 일이 더 생긴 건가?

‘어차피 시간도 널널하니까.’

곧바로 전화를 거니, 잠깐 수신음이 나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딸깍하는 연결음이 들렸.

“브라이언,”

-이런, Go, 제가 괜히 귀찮게 해드린 건 아닌지 죄송스럽군요. 주무시고 계실 것 같아서 미리 메시지를 보낸 건데···

“끄떡도 없어요. 잠도 딱 알맞게 잤고. 그나저나 무슨 일이에요? 중요한 일이라니.”

설마 바로 답신이 올 줄은 몰랐던 건지, 조금 당황한 듯한 그를 진정시킨 뒤 슬며시 묻자, 약간의 웃음기 띤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음··· 비즈니스와 관련된 일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Go에게 스폰서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꽤 많이요.

스폰서라··· 슬슬 입질이 올 때가 되기는 했지.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핫한 선수잖아? 고유석이 말이야.

‘스폰서라··· 사실 지금은 딱히 필요 없지. 협찬이나, 지원 같은 건.’

그나마 차가 없을 때는 차량 지원을 기대하기도 했었지만, 보라스 코퍼레이션에게 렌트비를 지원받은 뒤로는 별생각이 없었다.

돈이야 차곡차곡 쌓이고 있고, 딱히 필요한 것도 없거든.

하지만 그가 간략하면서 길게 늘어놓은 제안들과 그 ‘쩐’에 축 늘어졌던 활력이 차올랐다.

“···와우.”

-네,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제안서는 제가 따로 보내드릴 테니, 괜찮으신 게 있다면 골라서-

“다 하죠.”

-예?

“다요, 다. 싹 다.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옛 말에 돈은 들어올 때 긁어모아야 한다고 했다. 누가 그랬냐고? 몰라, 누군가는 그랬겠지. 옛날 사람 한 명쯤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자기네 브랜드 둘둘 말고 다니면 알아서 돈을 복사해 주겠다는데, 그걸 왜 마다해? 미친 놈도 아니고.

-···예,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만, 가볍게 이야기할 사항은 아니니, 원정 일정을 마치시면, 제가 오클랜드로 찾아가겠습니다.

설마하니 내가 이 정도로 흔쾌히 수락할 줄은 몰랐던 건지, 브라이언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지만,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금융치료 확실하네.’

놀랍게도, 방금 전만 하더라도 죽을 것 같았던 몸에는 다시 생기가 감돌았으니까.

그래, 이제 좀 살 것 같네!

이만큼 노력을 했으면 응당한 대가가 있어야 살맛도 나고, 야구할 맛도 나는 거지.

“어우, 시간이 벌써, 괜히 숙소에서 미적거리지 말고 바로 스트레칭이나 하자. 빠릿빠릿하게 살아야지.”

절대로 돈 때문이 아니다.

그저 내 노력의 가치가 인정받은 게 기쁜 거라고, 아무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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