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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325화 (1,325/1,329)

11화

신현수의 때 이른 결정에 따른 후속 조치가 빠르게 시행되는 동안 종합 병원 개원 준비가 착실하게 진행됐다.

민정호의 주관 아래 건물 내장 공사는 물론 설비, 시설, 장비 설치가 순조롭게 이뤄졌다. 김지훈과 이준영 교수는 부원장과 원장으로서 전체적인 상황을 총괄했다.

모든 시설이 환자와 의사의 유기적인 동선을 보장해야 했지만 김지훈 입장에서는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건물이 있었다.

박재순 기념관으로 명해진 소아 병동.

노인들을 위한 병동.

연구 및 실험을 위한 학술동.

각 건물의 규모가 결코 작지 않았다.

‘원래 계획했던 재단 자금 일부가 투입되긴 했지만, 아이들 치료에 쓰고도 건물을 세 개나 세우다니 삼백억이란 돈이 어마어마하긴 하네. 저 안에서 근무할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데 잘 진행되고 있겠지?’

진료까지 가능할 정도로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난 건물을 뿌듯한 눈으로 지켜보던 김지훈이 누군가를 보고는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박재순 회장과 박현철 이사였다.

“회장님, 이사님, 오셨습니까?”

“진료하느라 바쁘실 텐데 부원장님이 직접 나오시다니 죄송합니다.”

“이 정도 시간은 있습니다. 아직 어수선합니다만, 소아 병동 내부라도 둘러보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약간 마른 것처럼 보였지만 상당히 정정한 박재순 회장이었다. 진료실, 수술실, 병실 등을 둘러보는 발걸음에 힘이 넘쳤다.

사업가의 면모도 잃지 않았다.

“박 이사, 우리가 기부한 금액 중에서 얼마나 투자됐어? 허투루 쓰인 곳은 없겠지.”

“세 개 건물에 모두 백오십억 정도 사용됐습니다. 나머지 소요 비용은 약속대로 재단 자금이 투여됐고, 덕분에 국내 최고 수준의 병동이 될 겁니다.”

“아이들과 나 같은 늙은이를 위한 시설인데 그래야지. 젊은 사람들과 비교하면 모든 면에서 약자인 환자를 위한 시설이니까 안전과 편의성에 중점을 다해야 돼.”

“김 부원장님과 민 부원장이 보통 꼼꼼한 것이 아닙니다. 장애를 가진 환자들의 동선까지 고려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박재순 회장이 김지훈을 보았다.

“부원장님, 기분이 참 묘합니다.”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병실이 꽉 찰 정도로 한 명도 빠짐없이 치료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데, 한편으로 아픈 사람이 없어 텅텅 비었으면 하는 마음도 듭니다. 그럼 병원이 망해서 안 될까요? 허허허!”

모든 사람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가족 중 한 명이 아프면 온 가족이 영향을 받기 마련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이와 노인은 가슴이 아픈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바짝 붙어 간병할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가족 중 한 사람이 희생하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암 등의 중증 질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긴 해도 빈도 차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자칫 한 가정이 파탄 나고도 남았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회장님 덕분에 경제적 어려움을 덜 수 있어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마음 놓고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허허허!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이 편이 훨씬 낫지요. 자식 놈들이 나머지 돈도 기부할까 봐 내 눈치를 보는 것은 더 좋습니다.”

박현철 이사가 얼굴을 붉혔다.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서로가 서로를 대하길 바라건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떤 이유로든 일단 등을 돌리면 남보다 못한 존재가 가족일 수도 있었다.

그만큼 불행할 것이다.

웃음이 아닌 울음일지도 몰랐다.

“주제넘은 말이지만 자제분들도 회장님의 뜻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너무 부족해도 안 되지만 너무 넘쳐서도 안 되는 것이 자식 농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야 알았어요. 부족함을 알아야 풍족함을 알게 되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무시한 대가겠지요.”

세상 모든 사람이 똑같지 않겠지만 박재순 회장의 말을 부인하기 어려웠다.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이거나, 반대로 눈물을 자아내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많이 힘드신 모양이네.’

가슴 먹먹한 말이었다.

즐거운 날이건만 분위기 가라앉았다.

박재순 회장이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주책을 부렸네요. 신 이사장님이 곧 이 병원으로 오신다면서요? 남들은 그 자리에 못 올라서 안달인데 다 버리고 의사로 살고 싶다니, 부원장님부터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습니다.”

“의사로서 정말 실력 있는 써전입니다. 종합 병원 개원에 맞춰 합류할 예정인데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개원할 때요?”

어조가 묘했다.

“왜 그러십니까?”

“박 이사, 어느 쪽이 맞는 거야?”

“원래 계획은 개원 때가 맞습니다만 지난주에 갑자기 일정을 바꿨습니다. 다음 주면 신임 이사장이 결정될 테니까 송 원장님과 함께 곧 합류하실 것 같습니다. 부원장님은 모르셨습니까?”

‘이게 무슨 말이지?’

“이사장과 원장님이 빠르면 다음 주에 우리 병원으로 오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중앙 의료원 원장 인선에 서울 병원 외과 교수 영입까지 겹쳐 바쁘긴 해도 미리 연락하신 줄 알았는데 뜻밖이네요.”

“정말 뜻밖이네요. 혹시 다른 일이 생긴 건 아닙니까? 이사회 내부에서 잡음이라도…….”

“그런 일은 없습니다. 경륜이 무색할 정도로 매사 공정하게 잘 처리하셨기 때문에 이사장님 결정에 놀라긴 마찬가지였어요.”

박현철 이사가 아니라면 아니었다.

다행이었지만 왜 시기를 당겼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신이 팔린 탓에 박재순 회장과 박현철 이사의 숨은 미소를 보지 못했다.

‘이사장 자리를 내팽개칠 정도로 큰 불을 지른 당사자가 모르면 누가 알까? 송 원장님까지 상식을 깨는 선생들인 것은 분명해.’

김지훈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보다 큰 뉴스는 없었다.

사실이라면 진료부터 수술까지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했다. 전문 병원의 규모상 당장 위장과 대장 파트를 뒷받침할 수 없어 녹록지 않았다. 솔직히 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유는 둘째 치고 골치 아프네. 이런 문제를 모를 현수가 아닌데 사전 연락도 없이 결정하다니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겠지?’

다행히 박재순 회장과의 일이 끝났다.

김지훈이 서둘러 이준영 교수를 찾았다.

가는 내내 진료실과 수술실에 여유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공간 자체가 부족했다. 억지로 확보해 봐야 인력이 따라 주지 못해 정상적으로 근무할 여건 자체를 마련할 수 없었다.

“선생님!”

“원장님과 신 교수 일이야?”

김지훈이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가 이 정도로 급하게 날 찾을 일이 뭐가 있겠어? 빨리도 알았네.’

“방금 전에 연락받았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나쁜 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후우! 다행이네요. 하지만 당장 진료실 확보는 물론 수술실 배정까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 텐데 왜 일정을 당긴 건지 모르겠습니다. 천막이라도 설치해야 할 판입니다.”

이준영 교수가 힐끗 눈길을 주었다.

솔직히 신현수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해되는 구석이 적지 않았다. 신현수는 일반적인 명예보다 써전의 자부심과 존재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무엇보다 복강경을 이용한 간 이식 공여자 수술 성공과 평생 사라지지 않을 라이벌 의식이 기폭제가 된 것이 확실했다. 단 몇 달 사이에 성큼 앞서갈 수도 있는 김지훈을 보며 전에 없던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어차피 눈치챌 일이었다.

반면 신현수 입장을 고려해야 했다.

굳이 이 자리에서 말할 이유가 없었다.

“수술하고 싶은 모양이야.”

“서울 병원에서도 하지 않습니까?”

“여건이 다르잖아. 전념할 생각이겠지. 김 교수 말대로 우리 병원의 제반 조건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왜 모르겠어? 미리 와 철저히 준비하고 싶을 거야.”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단지 스승이기에 원장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아니었다. 일단 한 발 내디디면 무시무시한 추진력을 가졌을뿐더러 누구보다 현실을 정확하게 꿰뚫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스승의 말이었다.

‘결국 예전 생활이 그립고, 대가를 향한 꿈이 더욱 강해졌단 거네. 그렇다면……. 헉! 최고의 라이벌이 시간을 앞당겨 복귀하는 거구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지만 다시 생각하면 무조건 환영할 일이었다. 신현수, 손일석, 이경석이 모두 모여 바야흐로 완전한 사인방이 되는 것이다.

건전한 경쟁을 통해 각자의 꿈에 한 발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부원장의 업무를 상의하며 보다 넓은 시각을 얻을 수도 있었다.

일반외과의 앞날을 환하게 비출 빛이었다.

온통 장점뿐이었다.

딱 하나만 빼고.

지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었다.

치열하다 못해 죽기 살기로 달려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룬 성취에 안주했다가는 순식간에 신현수의 꽁무니를 바라보아야 할지도 몰랐다.

김지훈이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야! 이 나이에도 현수 때문에 긴장을 하게 될 줄 몰랐네. 그래. 이왕 올 거면 빨리 와라. 우리가 만든 종합 병원을 정말 제대로 키워 보자. 어떻게든 근무할 공간과 인력을 확보하마.’

“알겠습니다. 정상 업무가 가능하도록 최대한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공간 확보 자체가 무리라며? 당장 손 교수의 신장 이식 센터조차 개설하기 힘든 판이라는 걸 신 교수도 인정했고, 대신 개원 전까지 현 수술에 참가하며 손을 푸는 것으로 결정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자신의 전공 분야인 위장 수술 대신 다른 파트 수술에 참가한다니 속을 알 수 없었다. 모든 수술의 기본이 동일하다지만 누구보다 탄탄한 실력을 가진 신현수였다.

김지훈이 돌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사인방이 그동안 얻은 것을 쏙 빼먹으면 지난 시간을 만회하고도 남았다. 신현수의 능력이라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릴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었다.

이사장을 그만둔다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복귀할 여건을 만들며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전문 병원에 온 첫날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최고이자 최강의 라이벌이 되는 것이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알겠습니다. 신 교수가 오는 즉시 이경석 과장과 함께 어떤 방식으로 근무할지 결정하겠습니다.”

“김 교수가 집도하는 휘플과 공여자 라파로, 소아외과 수술에 반드시 참여시켜.”

이준영 교수가 아예 불을 질렀다.

김지훈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럴 생각입니다.”

오히려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상당히 침착해졌다.

“원장님은 어떻게 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까?”

“계획했던 대로 종합 병원 개원 후 진료를 시작하실 거야. 그 전까지는 나와 함께 병원 일을 맡기로 하셨다.”

무엇보다 환영할 일이었다.

송재덕 교수의 경험과 노련함은 천군만마나 다름없었다. 기존 업무를 그대로 수행하며 원장 업무까지 준비해야 하는 이준영 교수에게 엄청난 힘이 될 것이다.

면담을 끝냈다.

알아야 할 사람이 많았다.

손일석과 이경석을 만났다.

더불어 이젠 전문 병원의 핵심이자 종합 병원 개원 이후에는 더 큰 책임과 역할을 맡아야 할 진충기 교수에게도 연락했다.

상황을 전달했다.

“이사장 업무를 하면서 밤마다 칼을 갈았네. 그래도 우리 사인방이 다시 모인다니 기분 좋다.”

“사인방이 아니라 이젠 오인방이죠.”

“아! 손 교수 말이 맞네.”

너무 자연스러웠다.

진충기 교수가 미소를 머금었다.

‘오인방이라! 애들 장난 같지만 이젠 나도 확실한 동료이자 친구란 소리겠지?’

“부원장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까?”

“신 교수가 참여를 원하는 수술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욕심 많은 써전이니까, 그 점 감안하시고요.”

“일이 줄 수도 있겠습니다.”

손일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써전 하나 퍼스트로 부려 먹을 기회긴 한데 도대체 뭘 빼먹으려고 할까요? 라파로하고 간 이식 파트 쪽일 가능성이 높겠죠? 이렇게 되면 내가 제일 안전하네. 신 교수의 싸늘한 눈초리에 시달릴 김 부원장님하고 과장님은 긴장 타셔야겠습니다. 진충기 선생님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김지훈이 웃으면서도 눈가에 바짝 힘을 주었다.

그렇다.

이제부터 진검 승부다!

검이 아닌 메스를 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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