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복강경으로 간 이식 공여자 수술을 성공했다는 사실이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모든 공여자가 두려움을 갖고 있는 탓에 대부분 복강경으로 수술받기를 원했다. 마음 같아서는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싶었지만 말처럼 간단한 수술이 아니었다.
이제 시작한 만큼 수술의 완성도와 위험도를 고려해야 했다. 따라서 공여자 팀이 모두 모여 신중을 기해 수술 여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써전의 능력 또한 제한 요인이었다.
퍼스트로서 손색이 없는 나종진조차 집도하기에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다. 안호석과 오만석의 당면 목표는 퍼스트의 능력을 얻는 것이었다. 결국 현재 공여자 팀 능력으로는 김지훈이 유일한 집도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심각한 문제였다.
“다음 일정은 잡았어?”
“가장 안전하게 시행할 수 있는 공여자를 엄선하고 있습니다만, 워낙 원하는 사람이 많아 일주일에 한 건 이상 예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종진의 말에 안호석과 오만석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기존에 맡고 있는 수혜자 수술, 분담했다지만 다른 어떤 수술보다 정신적 소모가 막대한 소아외과 수술, 불가사의할 정도로 줄어들지 않는 일복만으로도 김지훈의 일이 이만저만 아닌데 공여자 수술까지 떠넘긴 꼴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김지훈이 가장 먼저 제안해 자청한 상황과 비슷했지만 그런 이유로는 부담을 면할 일도, 책임을 피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김지훈은 회의 때마다 무척 강력한 압박을 서슴지 않았다.
‘수술하는 날에는 아예 쉴 틈이 없네.’
“안 교수, 퍼스트 설 수 있겠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배워야 할 부분이 남았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오 교수는?”
“아직 이릅니다.”
김지훈의 눈가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사실 합당한 답이었다.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도 했지만 매번 답답한 한숨이 터졌다. 더구나 공여자 팀이 아닌 써전들이 주도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안호석의 얼굴만 벌게질 뿐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집담회 때만 불길이 난무할 이유도 없었다.
“나 교수, 제대로 하고 있는 거야?”
“최대한 시간을 짜내고 있습니다.”
“선배라고 말 못하고, 동기라고 봐주는 거야? 나 교수가 어떤 선택을 하든 공여자 팀의 능력을 빨리 키워야 정상적으로 돌아갈 거 아니야? 언제까지 똑같은 소리를 들어야 해?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명심하겠습니다.”
“똑바로 하자.”
나종진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결국 전공의 때부터 가슴을 섬뜩하게 했던 말을 들었다. 교수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고, 부담은 엄청나게 커졌다.
안호석과 오만석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모든 사달의 원인이 능력 부족인 이상 죽어라고 달리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었다. 그때까지 김지훈의 살벌한 눈빛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내부적으로 한계를 느끼고 있었지만 외부의 시선은 완전히 달랐다. 특히 공여자 삶의 질에 관한 한 똑같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던 간 이식 학회 구성원들이 강한 자극을 받았다.
수술 방법과 정보에 대한 요구가 빗발쳤다. 아직 정립되지 않았고, 다수의 써전이 집도하기에 무리한 점이 많다고 설명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학회장이신데 전체를 보셔야죠. 혹시 전문 병원만 앞서 나갈 생각이면 정말 곤란합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수술 영상이라도 보내 주세요.)
“미숙한 점투성이인데 괜찮겠습니까?”
(준비하고 있는 입장인데 가릴 것이 없죠. 학회 발표 때까지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생각입니다.)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만큼 다들 같은 생각이자 빠르게 해결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하긴 수혜자 이상으로 힘들어하는 공여자를 보는 일이 쉬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로 부족하고, 미비한 점을 나누다 보면 더 좋은 생각들이 나오겠지. 학회를 만든 이유와도 부합해.’
건전한 경쟁은 개인만이 아니라 병원 간에도 필요할 것이다. 더불어 후발 주자 역시 전문 병원 못지않게 쟁쟁한 써전들이 분명했다. 선도하는 팀의 수술을 보며 문제점을 찾아낼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비밀이랄 것도 없었다.
무작정 서두를 이들도 아니었다.
비록 몇 번의 경험뿐이었지만 모든 정보를 공유했다. 노력하지 않는 병원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시도를 해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김지훈이 자신의 일처럼 뿌듯해했다.
대신 공여자 팀이 죽어났다.
“안 교수, 부산 병원에 이어 H 병원도 성공했단다. 이러다 시작은 우리가 했지만 바로 추월당하게 생겼어. 공여자 뺏기면 수혜자 수술도 없어질 텐데 어떻게 생각해?”
다른 방법 없었다.
의학, 특히 수술은 천재라는 말 자체가 통하지 않는 영역이었다. 누구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경험 많은 써전을 이길 수 없었다. 결국 복강경 수술이란 수술은 죄다 참관하거나 참석해 가장 강한 체력을 가진 오만석마저 퇴근과 동시에 쓰러지기 일쑤였다.
김지훈이 악마의 미소를 머금었다.
‘이 정도면 호석이까지 독이 바짝 올랐겠지? 종진이하고 둘이 사람 좋기로 유명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가져가면 소원이 없겠어.’
남은 일은 김지훈의 몫이 아니었다.
하나를 해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확실하게 키워야 할 파트가 또 있었다.
“송진우 선생, 한수영 선생, 나 교수가 라파로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인데 대부분 기본이잖아. 빨리 수준 끌어 올려서 웬만한 수술은 둘이 알아서 해야 하지 않겠어? 시간 많지 않다.”
“최대한 라파로 수술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라파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야. 박재순 회장님이 기부하신 액수가 삼백억이야. 박현철 이사님도 눈을 부릅뜨고 소아외과를 지켜보고 있어. 게다가 박재순 기념관이란 이름으로 소아과 및 소아외과 전용 병동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다들 걱정이 많아.”
“걱정이라니요?”
“지금 송진우 선생 수준이 어느 정도일까? 메이저 과도 전용 병동이 없는데 독립 병동을 사용하려면 그에 걸맞은 수준을 갖춰야 하잖아. 개인적으로는 국내 최고가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
전공의와 펠로우의 무덤인 집담회에서도 당당하고 담담하게 대처했던 송진우의 얼굴이 벌게졌다. 한수영은 아예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물론 유학도 가야 할 테고, 사람도 많아야 할 거야. 하지만 앞에 서서 끌고 나가야 할 사람의 수준이 떨어지면 모든 조건을 다 채워도 일류를 넘보지 못하겠지. 난 최고의 써전을 원해. 소아외과 대가라는 소리를 듣는 의사와 함께 일하고 싶다.”
“노력하겠습니다.”
“희귀 질환 수술을 단독으로 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지. 종합 병원 개원이 얼마 남지 않은 이상 현실이어야 돼.”
부담과 압박으로만 받아들이면 자신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모든 수술의 기본이 다르지 않기에 필요한 부분은 애걸을 해서라도 배워야 할 것이다.
송진우는 그렇게 하고도 남았다.
김지훈의 일도 덩달아 늘 것이다.
공여자 파트는 이준영 교수라는 엄청난 의사가 버티고 있지만 소아외과는 자신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난관에 부딪치겠지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만은 확실했다.
***
그 시간.
서울 병원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재단 이사장인 신현수와 서울 병원 원장인 송재덕 교수가 모든 직위를 내려놓고 한 사람의 써전으로 돌아올 준비를 서두른 탓이었다.
“신임 이사장님이 선출되는 대로 전권을 넘기겠습니다. 아울러 유명무실해졌던 중앙 의료원 원장님의 권한을 정상적으로 복구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병원을 옮기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상당할 겁니다. 가장 큰 지분을 가졌는데 의사 결정에 어떻게 참여하실 생각입니까?”
“한 사람의 이사로서 견제와 균형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사리사욕이 아니라 병원 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제가 어디에서 근무하든 문제없을 겁니다.”
이사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병원이든 사재를 출연해 설립했다면 병폐가 있기 마련이었다. 비영리를 천명하지만 돈 욕심 없는 사람이 없을 테고, 조그만 권력에 눈이 머는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기에 젊은 이사장의 결정은 의외이자 용단이라 할 수 있었다.
“산하 병원을 총괄하는 중앙 의료원의 성격상 재단 이사장의 근무처에 둘 수밖에 없는데 서울 병원에 권한을 집중시키겠단 말씀이십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생각하고 있는 분은 있으십니까?”
“이사님들을 믿습니다.”
“고마운 말씀이지만 오래도록 함께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무척 아쉽네요. 송 원장님도 동시에 옮기시는 겁니까?”
“준비할 것이 많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이사들의 시선이 송재덕 교수에게 쏠렸다.
이제는 한 병원에서 안정적으로 근무하다 은퇴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의 나이가 됐다. 그런데 병원을 옮기는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일이었다. 원장직 수행을 위한 일이라지만 절대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수고를 끼치는 것 같아 그럽니다.”
“수고랄 게 있나요? 이젠 원장 업무도 벅찹니다. 벅차요. 정년이 되기 전까지 한 사람의 써전으로 살았으면 해서 자청한 일이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 나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나 좋아서.”
의사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명예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다른 길이 극히 좁은 이상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의사가 병원 내 최고의 직위에 오르기를 갈망하고도 남았다.
더구나 그간의 업적으로 볼 때 중앙 의료원 원장으로서 손색이 없기에 송재덕 교수, 자신이 원하면 따 놓은 당상일 수도 있었다.
특이한 사람이 분명했다.
“허허! 욕심이 없으시네요.”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그동안 너무 욕심을 부렸어요. 너무. 박수 칠 때 떠나야죠. 박수. 제 욕심 하나 때문에 병원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당장 우리 과만 해도 원장감이 넘친다는 걸 잘 아시잖아요?”
팔은 안으로 굽는지 이혁민 교수를 염두에 두는 모양이었다. 하긴 유난히 평지풍파가 심했던 일반외과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는 공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좌중이 잠시 침묵에 잠겼다.
저마다 신현수와 송재덕 교수를 보며 상념에 잠겼다. 누구의 압박도 아닌 자신 스스로 권한을 놓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들 때가 되면 은퇴하기 마련인데 수술이 그렇게 의미가 큽니까? 이사장님도 지금처럼 외과 일을 하며 이사장직을 수행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신현수가 웃었다.
“일전에 원장님과 대화를 나누다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써전에게 메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존심이자 자부심이라는 사실을요. 뿐만 아니라 제 인생의 목표는 이사장이 아니라 원장님처럼 한 분야의 대가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신 이사장, 내가 대가니? 대가야?”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데 모르셨습니까?”
“몰랐다. 몰랐어. 뒤늦게 대가가 되고 싶어 전문 병원으로 가는데 가지 말까? 그럴까?”
이사들이 웃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가로 인정받기 위해 아직도 신설 병원 딱지를 떼지 못했고, 규모도 작은 전문 병원으로 가다니 의아한 일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주목을 받기 쉬운 서울 병원만큼 적절한 곳이 없었다.
“이상하죠? 이상할 겁니다. 근데 전문 병원에 불을 지르는 의사가 한 명 있어요. 의사가. 일복도 많고, 툭하면 남들이 안 하는 수술을 시도해서 힘들지만, 그 의사 옆에 있으면 젊은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심장이 두근거릴 지경입니다. 그러니 젊은 의사들은 어떻겠어요? 젊은 의사들은. 신 이사장, 안 그래? 내 말이 맞지? 그치?”
“맞는 말씀입니다. 솔직히 한때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많이 뒤처졌습니다. 써전으로서 이겨 보고 싶습니다.”
일정을 앞당긴 진짜 이유였다. 그래서 더욱 대단한 일인지도 몰랐다.
“뒤처지긴 뭐가 뒤처져? 우리가 가면 단박에 전세 역전이야. 전세 역전. 경석이가 과장이잖아. 과장. 부원장도 우리 과 내에서는 한 수 접어야 한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 둘이 동시에 대가 소리 듣자. 대가. 좋다. 좋아.”
너스레에 웃음이 터졌다.
동시에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쳤다.
간 이식 분야에 있어 전국 최고 수준의 병원을 만든 의사, 환자와 의사의 친분 하나로 수백억의 기부를 이끌어 낸 의사, 식지 않는 열정으로 최근 복강경으로 공여자 수술을 해낸 의사.
그런 의사가 신현수의 가슴에 불을 지른 것이다. 동기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었다. 송재덕 교수까지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가 또 있을 것이다.
‘김 부원장이 대단하긴 하네. 종합 병원에서도 부원장을 맡고, 이사장님과 송 원장님까지 합류하는 이상 네 번째 병원은 걱정할 일이 없겠어.’
어쨌든 신현수의 결정은 분명히 의외였다.
반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비록 분야가 다르지만 지훈이를 능가하는 의사로 우뚝 서고 싶다. 더구나 한동안 외도 아닌 외도를 했다. 더 늦기 전에 내 모든 것을 불살라 대가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래. 그래. 내 제자들 모두 대가 소리를 들으면 그보다 값진 일이 어디 있겠니? 지훈이, 현수, 일석이, 경석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면 얼마나 큰 힘을 낼까? 우리와는 비교하기 힘든 곳에서 훨훨 날자. 훨훨.’
인생에 있어 소중한 것은 수없이 많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무엇이 됐든 그것을 성취하고, 지키는 일에 전념한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신현수 입가에 걸린 미소처럼.
나직하게 퍼지는 너털웃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