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잠시 적막이 흘렀다.
고성문이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말 오랜 기간 써전으로 살아왔어요. 긴 세월이 지났는데 무척 엄했던 스승님 밑에서 송 원장, 이준영 교수, 이혁민 교수, 신기동 교수와 함께 배우던 시절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기억하고 싶든, 기억하고 싶지 않든 간에 젊은 날의 추억은 평생을 간다. 어쩌면 힘든 시기였을수록 더 오래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첫 수술을 하고 메스를 받았을 때는 가슴이 먹먹할 만큼 기뻤고, 전문의가 돼 내 책임하에 수술을 시작했을 때는 부담감을 못 이겨 하루에도 몇 번씩 긴장하곤 했어요. 송 원장, 내가 그랬지?”
“스승님도 호랑이, 선생님도 호랑이였다는 기억밖에 없어요. 오죽하면 이 교수가 술 먹을 때마다 무서워 죽겠다는 말을 했겠어요? 저 덩치가 말이에요. 저 덩치가. 울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다행.”
숨죽인 웃음이 터졌다.
이준영 교수가 당황했다.
“원장님!”
그래도 한마디뿐이었다.
“계속 근무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어쨌든 사정상 원주에 개원하게 됐고,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수술을 하고 살았어요. 다른 의사들이 보기에 어떨지 모르지만 돌이켜 보면 후회하거나 아쉬워할 일이 없어요. 내 나름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왔고, 부족한 면을 채워 주는 좋은 동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환자분들에게 인정도 받았고요.”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칼을 잡지 않겠다는 결정을 쉽게 할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지금이 끝이 아니라 제이의 인생을 시작하는 출발선에 섰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앞으로 소외받고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살 생각입니다. 비록 지역에 위치한 작은 병원이지만 실력 있는 병원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도 꽤 크고요. 김 교수, 손 교수, 좋은 후배들 있으면 소개해 줘. 대우는 섭섭지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맙네. 말이 너무 길어졌네요. 결론적으로 말해 내 자신을 축하해 주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써전으로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책임과 소임을 다하는 의사로서 살아갈 테니까요.”
김지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한편으로 기쁘기도 했다.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하셨나?’
결국 같은 길을 계속 간다는 의미였다.
더불어 가능하다면 누구나 밟아야 할 길이었다.
정말 축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로 손바닥이 마주쳤다.
짝! 짝! 짝! 짝짝짝!
“축하드립니다.”
“수고하셨어요. 수고. 메스 너무 오래 잡아도 욕먹는데 잘 결정하셨습니다. 나도 곧 정년인데 이왕이면 내 자리도 마련해 주세요.”
“송 원장은 병원에서 책임질 텐데 왜 내 병원에 와? 늙은 의사들 바글대는 병원 만들고 싶지 않다.”
“늙긴 누가 늙어요? 누가. 육십은 청춘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대학 병원 원장까지 한 사람이 청춘일 때 가겠다는데 이러시면 안 되죠. 서운합니다. 서운해요. 이 교수, 지금은 안 무섭잖아? 다 같은 처지인데 한마디 해라. 한마디.”
“원장님!”
역시 한마디뿐이었다.
“에이! 모르겠다. 일단 축하하는 의미로 건배합시다. 건배. 늙다리 병원을 위하여!”
“위하여!”
잔을 들며 다들 웃었다.
은퇴라는 말에서 벗어난 김지훈도 활짝 웃으며 고성문의 빈 잔을 채웠다. 손일석, 고경아, 고경희 모두 아버지의 결심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김 교수, 내 잔도 비었다. 내 잔도.”
“손 교수, 나도 한 잔 더 하자.”
슬슬 대화거리가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두 명의 교수가 입에 오르내렸다.
“김 교수, 새롭게 시도할 수술이 또 있지? 또? 너무 성급하게 시작하지 말고 나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손 교수, 신장 이식도 마찬가지야. 알다시피 내가 경험이 좀 많다. 많아. 우리 외과 명성이 하늘을 찌를 텐데 이왕이면 나도 묻어 가자. 묻어 가자.”
“송 원장, 추태야. 추태.”
“선생님, 제가 키운 교수들입니다. 제가.”
“이 교수, 신 교수가 아니고?”
“제가 다 품고 온 덕입니다. 품고 온 덕. 이 교수, 안 그래? 내 말이 맞지?”
“…….”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다른 일은 모두 양보해도 한 가지만은 양보하지 않는 이준영 교수였다. 보란 듯이 빈 잔을 내밀어 김지훈의 술을 받았다. 송재덕 교수가 무릎 꿇고 깍듯하게 술을 따르는 김지훈을 보며 입맛만 다셨다.
이대로 끝나면 섭섭하다.
살짝 어색하기도 했다.
“원장님! 제 잔 받으시죠.”
“그래! 그래!”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손 교수밖에 없다. 손 교수가 최고다. 최고.”
손일석이 슬그머니 김지훈을 보며 눈짓을 했다.
‘이런 날은 융통성 좀 발휘하자. 원장님께 한 잔 따라 드리지 않고 뭐 해?’
재빨리 자리를 옮긴 김지훈이 술을 따르자 송재덕 교수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민망한 일마저 무척 자연스럽게 보이는 송재덕 교수였다.
“잘하자. 잘하자. 고맙다. 고마워.”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색한 분위기가 싹 사라졌다.
손일석을 보며 엄지를 치켜들 수밖에 없었다.
세 명의 스승, 두 명의 제자, 두 명의 딸과 손자까지 늦은 시간이 되도록 자리를 즐겼다. 고성문이 불콰해진 얼굴로 내일을 말하고 나서야 다들 일어섰다.
“아버님, 저희 집에서 주무시죠.”
“아닙니다. 저희 집에서.”
“왜들 이래? 빨리 합의 봐.”
고성문의 말투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원래 있던 자신의 자리에 있었다.
김지훈이 얼굴을 굳혔다.
“손 교수, 처제, 서열대로 하자.”
손일석이 움찔거리긴 했지만 고경아까지 고개를 끄덕이자 ‘아야’ 소리조차 하지 못했다. 윗사람이 모시겠다는데 아랫사람이 무슨 말을 할까?
합의는 필요 없었다.
김지훈이 씨익 웃었다.
모처럼 군기 잡았다.
‘복잡한 하루가 아니었네.’
즐거워해도 되는 날이 분명했다.
김지훈이 밤하늘을 보았다.
왠지 바람이 따스했다.
선배가 후배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예전처럼 나이 들었다는 이유 하나로 뒷방 신세를 져야 한다면 안타까운 일일 수도 있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말 그대로 두 번째 인생의 시작이었다.
평생 쌓아 온 지식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고, 공헌한다면 그보다 의미 있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하기에 스승을 생각하면서도 웃을 수 있었다.
‘원장님부터 스승님까지 곧 정년이 다가오지만, 그것으로 인연이 끊어진다면 내가 나쁜 놈이겠지. 큰 스승님께 배웠던 것처럼 스승님께도 평생 배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
띠리리리!
“여보세요?”
(응급실입니다. 서울 병원으로 이송했던 청각장애 환자는 협심증이 맞았고, 늦지 않게 치료해 지금은 안정적인 상태랍니다.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고성문은 메스를 놓았을 뿐 누구보다 섬세한 눈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의 생을 지켜 냈다.
카르페 디엠!
***
일상으로 돌아왔다.
김지훈이 회진을 돌 때마다 깜짝 놀랐다.
박소영의 회복이 예상외로 빨랐다.
수술 후 이틀 만에 걸었다.
상복부의 조그만 절개 부위 다섯 곳은 물론 아랫배에 난 절개창이 발생시키는 통증마저 개복 시와 비교 자체가 불가했다.
통증이 적으면 유리한 점이 많았다.
음식물이 직접적으로 통과하는 장기는 아니지만 엄연히 소화기관 중 하나인 간을 잘랐지만 운동과 동시에 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불편하지 않나요?”
“괜찮은 것 같아요.”
환자의 심리적 상태도 안정적이었다.
큰 수술 후에 겪는 불안, 초조 등의 증세가 거의 없어 수면을 취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아직 중환자실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간을 이식받은 아버지의 경과도 좋아 더할 나위 없었다.
미음에 이어 죽까지 진행시켰다.
어떤 문제도 관찰되지 않았다.
잘 먹고, 잘 자면 만사 오케이다.
드레인을 예정보다 빨리 뽑았다.
절개 부위 역시 순조롭게 아물었다.
아버지가 일반 병실로 올라왔을 무렵에는 간을 절반 넘게 잘랐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였다. 마음의 여유를 얻었는지 농담 아닌 농담까지 던졌다.
“현수막에 적혀 있는 환자가 저죠?”
“맞습니다.”
“선생님께 복강경으로 수술받은 첫 번째 환자라니 영광이네요. 그런데 이름값 같은 거 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름값이요? 드릴까요?”
“수술 잘해 주신 걸로 퉁 칠게요.”
“감사합니다.”
사실 환자의 호소만큼 의사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도 없었다. 질환 이외의 일로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기도 했지만 건강하게 퇴원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가족 중 둘이나 큰 수술을 받아 누구보다 힘들 박소영의 어머니도 활기를 되찾았다. 하루 종일 병실 두 곳을 오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유쾌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간혹 복강경으로 처음 수술했단 사실, 수술 중 마주했던 어려움이 떠올라 불안한 적이 있었지만 끝까지 순조로운 경과를 보였다.
드디어 박소영의 퇴원이 결정됐다.
김지훈이 나종진을 불렀다.
이번 수술의 일등 공신을 뽑으라면 당연히 나종진이었다. 준비부터 실제 수술과 수술 후 치료까지 김지훈 이상의 몫을 해냈다.
뿐만 아니었다.
다음 환자 선정까지 맡겼다.
절로 미소가 머금어질 지경이었다.
‘비록 단 한 번의 경험이지만 라파로의 이점이 얼마나 큰지 똑똑히 확인했다. 더욱 철저히 준비해서 확대 적용시켜야 한다.’
“나 교수, 두 번째 수술 해야지.”
“공여자 팀과 상의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공여자가 있어?”
“지금 수준에서는 혈관 주행이나 위치가 다소 불명확한 환자는 배제해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선정할 수가 없습니다. 수술 전에 만든 표준에 준하는 환자가 오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한 번의 성공에 취해 욕심 부리다간 개복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하고도 남았다. 아직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때였다.
“이준영 선생님이 또 들어오시지는 않을 거야. 수술 팀 준비는 잘 진행되고 있어?”
“안호석 선생님은 과장님 수술에 들어가시고, 오만석 선생은 저와 함께 라파로 수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당분간 세컨을 선다고 해도 앞으로가 문제야. 웬만한 경험으로는 공여자 수술을 라파로로 진행하기 힘들 수밖에 없으니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밀어붙여.”
‘동기 중에 제일 순해서 걱정이다.’
“알겠습니다.”
“한 가지 더 있어. 서도훈 선생 수술은 개복이나 라파로를 가리지 않고 무슨 일이 있어도 참가해. 결정적인 도움이 될 거야. 그건 그렇고, 송진우 선생은 어때?”
“한수영 선생과 함께 정말 적극적입니다. 곧 기본 수술은 맡겨도 될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김지훈이 나종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누구보다 성실했고, 자신이 맡은 일은 군말 없이 시행하는 의사였다.
복강경에 국한된다고 해도 관한 한 자신의 수술, 공여자 수술, 소아외과 수술까지 맡은 이상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인 무리가 오고도 남았다.
“힘들지 않아?”
“이제 시작했습니다.”
“공여자 팀과 소아외과 팀의 능력이 갖춰진다고 해서 나 교수 위치가 달라지는 게 아니야. 어느 파트든 자격이 충분하니까 서두를 것 없어.”
“파트 두 개를 맡으라는 말씀입니까?”
“당연하지. 공여자든 소아외과든 다 좋아. 과장님과도 얘기 거의 끝난 상태니까 그렇게 알고 차근차근 진행해.”
나종진이 훅 숨을 몰아쉬었다.
살다 보면 여러 의미를 가진 기회가 무수하게 온다. 대부분 어떤 선택을 하든 별다른 영향이 없기 마련이었지만 전환점이 되는 기회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을 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금이 그 기회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감사합니다.”
“내 일을 줄여 주는데 오히려 내가 고맙지. 아! 공여자는 괜찮지만 소아외과를 하고 싶으면 라파로만으로는 안 돼. 희귀 질환 수술까지 다 할 줄 알아야 통과야.”
김지훈이 기분 좋게 웃었다.
단 한 번의 수술이 가져온 여파가 적지 않았다.
온통 긍정적인 면이 가득해 더욱 즐거웠다.
이것이 바로 후배 키우는 맛일 것이다.
오늘도 역시.
카르페 디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