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님! 연락도 없이 이 시간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혹시 무슨 일 있으십니까?”
“자네도 보고, 신장 이식 센터를 준비하고 있는 손 교수도 볼 겸 해서 왔어. 라파로로 공여자 수술을 하기로 했으면 얘기를 해야지. 이 교수와 연락할 일이 없었으면 못 볼 뻔했잖아?”
개인 병원에서는 엄두도 못 낼 수술이건만 열정은 여전했다. 눈치와 달리 평소와 목소리도 크게 다르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도대체 뭐지?’
“처음 시도하는 수술이라 성공할지, 실패할지 알 수 없어서 미리 말씀 못 드렸습니다. 오전에 수술이 없었을 텐데 간호과에는 들르셨습니까?”
“경아? 잠깐 봤어. 자네 수술 때문에 수혜자 수술 들어가기 직전까지 마음 졸이고 있더라. 그건 그렇고, 둘 다 늦을 텐데 희연이는 누가 봐?”
“오늘은 제가 일찍 퇴근해야죠. 그때까지 처제가 봐주기로 했습니다.”
“쯧! 애가 고생이네. 애가.”
김지훈이 얼굴을 붉혔다.
희연이와 고경희는 물론 손일석에게도 무척 미안한 일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퇴근 무렵까지 학원을 다녀 돌봐야 할 시간이 줄긴 했다.
‘아픈 곳을 찌르시네. 경아 씨와 함께 항상 신경 쓰고 있으니까 너무 노여워하지 마세요.’
서둘러 말을 돌렸다.
“오늘 진료 안 하세요?”
고성문이 헛기침을 했다.
“이런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새삼 그건 왜 물어? 손 교수 말로는 잘 끝났다고 하던데 오늘 수술 어땠어? 앞으로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
안부를 생략해도 넘어가지만 써전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불호령을 하고도 남을 고성문이었다. 다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간략하게 설명했다.
“생각보다 어려웠고, 개선할 점이 많았지만 의미가 무척 큰 수술이라는 판단이 섭니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적용 범위를 넓혀 갈 생각입니다. 저는 공여자 파트가 라파로로 수술할 능력을 갖출 때까지만 함께할 예정이고요.”
“소아외과도 라파로로 수술한다면서? 여기저기 판은 판대로 벌여 놓고 힘들 때쯤 쏙 빠지는 거야?”
“계속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겠지만 빠지는 게 맞지 않습니까? 제 전문 분야도 아니고요.”
“공여자나 수혜자나 뭐 다를 게 있어? 세월이란 놈이 발이 없어 그런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난다. 대가니 명의니 하는 소리를 떠나 인생에도 때가 있는 법이야. 욕심 부려야 할 때는 부려도 좋아.”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평소 고성문과 확실히 달랐다.
특히 몇몇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이런 말씀을 하실 분이 아닌데.’
“아버님, 정말 아무 일 없으신 겁니까?”
“별일 없어.”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정말 별일 없다면 모르지만 손 교수 눈치도 그렇고 공연히 느낌이 안 좋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신경 쓰여서 환자도 못 볼 것 같습니다.”
고성문이 긴 숨을 내쉬었다.
‘수술한 환자나 잘 볼 것이지. 왜 이렇게 신경을 써? 손 서방도 단박에 눈치챘는데 내가 너무 티를 냈나?’
어차피 알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특별한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나 시간 많아.”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님을 찾는 환자분들이 상당히 많을 텐데 병원 진료는 어떻게 하시고요?”
“많아야 개인 병원 수준이야. 수술 그만하기로 해서 일주일에 삼 일 진료면 충분해. 손이 떨리는 것 같아서 아뻬도 힘들어.”
“손이 떨리다니요?”
“떨리는 건 아니고 말이 그렇다는 거야. 내 나이 돼서도 수술에 욕심내다간 사고 내고도 남아. 메스를 놓는 게 환자를 위하고, 나를 위하는 길이야. 써전으로서는 은퇴할 때가 됐어.”
김지훈이 입을 열지 못했다.
이준영 교수는 나직한 한숨만 내쉬었다.
손일석은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확실하게 결정을 내리고 오신 건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언젠가 올 일이었다.
써전의 생명은 나이와 관계가 깊었다.
체력이 떨어지면 장시간 수술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웬만한 수술에서는 손을 떼기 마련이었다. 환자와 직결되는 문제기에 정신력으로 버틸 일이 아니었다.
또한 누구나 은퇴를 한다.
써전의 은퇴는 진료를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메스를 잡지 않을 때였다. 고성문의 나이를 생각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다소 빠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김지훈에겐 분명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아버님, 아직도 현역에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깊게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야. 대학 병원처럼 후배들이 든든히 받쳐 주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책임져야 하는 개인 병원은 달라. 내 욕심만 부리다간 사고 치고도 남아.”
인정하기 힘들었다.
만일 고성문의 은퇴 시점이 적정하다면 송재덕 교수와 이준영 교수도 손에서 칼을 놓아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말이었다.
행정적 의미의 정년이 남아 있다고 해도 얼마 안 있어 존경하는 스승들의 실질적 은퇴가 줄줄이 이어진다니 생각만으로도 섬뜩했다.
하지만 스승의 손은 조금도 녹슬지 않았다. 체력적인 문제야 수술 안배 등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김지훈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고성문도 그럴 것이라 믿었다.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그런 일이 있으면 지금 내가 여기 있겠어? 박수 칠 때 떠나라는 소리 괜히 하는 게 아니야. 수술만 안 한다 뿐이지 환자는 평생 볼 거니까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그래도…….”
“가만히 보니까 이 교수 걱정을 하는 모양인데 나하고는 체력 자체가 다른 사람이니까 걱정하지 마. 송 원장도 잘 관리하면 앞으로 몇 년은 거뜬하겠더라.”
“아버님!”
“왈가왈부할 일 아니야. 내일 아침에 갈 거니까 저녁에 가족 모두 모여 밥 먹자. 몇 시면 되겠어?”
손일석이 이제야 입을 열었다.
“저희 집에 가 계시죠. 시간 맞춰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고깃집으로 예약해 놓겠습니다.”
“알았다. 근데 둘 다 여기서 이렇게 노닥거려도 되는 거야? 환자 안 봐?”
이준영 교수도 일 보라는 눈짓을 했다.
급작스럽게 들은 말이었고, 마음까지 무거워졌지만 휴게실에서 할 얘기가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오히려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될지도 몰랐다.
휴게실을 나왔다.
김지훈이 손일석을 보았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하루 이틀 고민하고, 결정하실 일이 아니잖아. 조용히 따르는 것이 맞는다고 봐.”
“난 이해가 안 돼. 그동안 수술 계속해 오셨고, 별말씀 없으셨잖아. 솔직히 아버님만큼 써전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강한 분이 안 계시고, 연세도 은퇴해야 할 정도로 많으신 게 아니잖아.”
손일석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분이라 도리어 말을 못한 거야. 자부심만 강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놀랄 정도로 강한 열정을 갖고 계신 분이 메스를 놓을 때는 이유가 있지 않겠어?”
“이유가 없는 것 같아.”
“김 교수나 내 눈에 그런 거겠지. 이준영 선생님도 별다른 말씀 안 하시는 걸 보면 아버님 연배를 가지신 선생님들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몰라.”
김지훈이 눈가를 비볐다.
‘일석이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네.’
의사가 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 시기마다 처한 환경이 달라졌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 이후에는 여러 측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당연했던 일이 선택이 되고,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필수가 돼 생활 전반에 영향을 줬다.
변해야 하는 이유 중에는 분명 나이도 있었다.
물론 인생 내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원칙과 마음가짐은 동일할 것이다. 하지만 스무 살의 김지훈과 지금의 김지훈은 결코 같은 사람일 수 없었다. 십 년, 이십 년 후에는 또 다른 나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당황스럽네.’
가슴이 답답했다.
고경아에게 알려야 했지만 수혜자 수술을 들어간 이상 퇴근 후에나 얼굴을 볼 것이다. 나이 먹은 아버지를 실감하며 눈물을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가슴을 폈다.
훅훅 숨을 내뱉었다.
‘눈앞의 일부터 충실하자.’
박소영의 병실을 찾았다.
복강경으로 했지만 배 속에 공기를 가득 채운 것만으로도 상당히 불편할 것이다. 더구나 아랫배를 제왕절개 때와 비슷하게 열었다.
생각대로였다.
하얀 김을 자욱하게 뿜어 대는 가습기와 코에 낀 산소 튜브, 한 방울씩 떨어지는 수액과 이제 막 수술을 받았다는 증표인 소변 줄까지 여느 환자와 다르지 않았다.
때문인지 얼굴마저 창백해 보였다.
박소영이 김지훈의 기척에 눈을 떴다.
“선생님!”
“힘들죠.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편히 쉬세요. 많이 아프진 않아요?”
“견딜 만해요.”
김지훈이 편안한 미소를 머금었다.
우려와 달리 개복해 공여 수술을 받은 환자와 비교하면 목소리에 제법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대부분 꼼짝도 하지 못하는데 팔다리를 움직이기까지 했다. 무통 치료를 하고 있지만 진통제 하나 찾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복강경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상처를 치료했다.
드레인은 첫날 보여야 할 양상과 다르지 않았다. 초반에 안정만 잘 취한다면 하루 이틀 내에 일어나 먹고,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다 좋네요. 불편한 점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어머님은 수술 방 앞에 계신가 보네요. 아버님 수술도 잘될 겁니다.”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답답함이 조금은 풀렸다.
원래 수혜자 수술을 하는 날인 만큼 여유가 없어야 했지만 공여자 수술 덕에 시간이 남았다. 간만에 얻은 여유에도 불구하고 김지훈이 정신없이 뭔가를 작성했다.
‘또 뭐가 어려웠었지? 빠짐없이 다 썼나? 후우! 아버님은 꼭 메스를 놓으셔야 하나? 어후! 수술 기록에만 집중하자.’
정신이 사나웠다.
생각이 분산돼 어느 하나 집중할 수 없었다. 미리 알려 줬으면 받아들일 준비라도 했을 텐데 불쑥 찾아와 폭탄 발언을 한 장인어른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때 누군가 노크를 했다.
민정호였다.
“무슨 일이에요?”
“공여자 수술이 라파로로 잘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병원 사정은 모르지만 우리 병원 첫 시도인 만큼 알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수막 만들어 걸겠습니다.”
“오늘 수술했습니다.”
“이식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공여하는 사람들의 두려움도 클 테고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면 모르지만 계속하실 생각이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행정부원장으로서 당연한 조치였다. 여느 때 같았으면 함께 문구를 작성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장인어른 일 때문인지 달갑지 않았다.
민정호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별일 없습니다.”
“얼굴이 그렇지 않으십니다. 걱정거리가 있다고 광고하고 계시네요. 병원 일이면 빨리 말씀하시고, 개인적인 일이면 나가 보겠습니다.”
‘눈치 하나는 일석이 못지않네.’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민정호였다. 사실 지극히 사적인 일이라면 모르지만 개인적인 고민을 숨겨야 할 사이도 아니었다.
답답하기도 한 참이었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묵묵히 듣고 있던 민정호가 평소와 똑같은 얼굴로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주제넘지만 한 가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세요.”
“개인적으로 경제적인 문제 없이 은퇴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은퇴 후에도 자신의 일을 지속할 수 있다면 일종의 축복이죠. 왜 침울해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써전에게 메스는 자부심이자 상징입니다. 손에서 놓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요.”
민정호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의사의 자부심은 이해합니다만 환자를 빼고 생각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윤호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를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하윤호가 여기서 왜 나와요?”
“자의든 타의든 능력이 없거나 안 되기 때문에 메스를 놓아야 하는 면에서 보면 같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환자를 수술할 자신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셨다면 도리어 존중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 스스로…….”
“평소 환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고, 실제 그렇게 행동하고 계시는데 부원장님은 언제까지 수술하실 생각이십니까? 설마 주변에서 만류할 때까지 수술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당연한 일이다?”
“순리라는 말입니다. 어떤 일이든 후배들과 자신의 경험을 나눌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이를 이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계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일석이도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었겠지?’
김지훈이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아쉽고, 가슴 먹먹한 일이 분명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온몸을 짓누르는 부담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실제 김지훈도 자다 깰 정도로 수술 중, 수술 후에 느껴지는 압박감을 이겨 내기 쉽지 않았다.
이십사 시간 의사가 상주하지 못하는 개인 병원 특성상 고성문은 더할 것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아무리 마이너를 위주로 수술한다고 해도 말이다.
“조언 고마워요.”
“당사자가 아니기에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누구나 부원장님 같을 겁니다. 현수막 설치는 예정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또 누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