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고성문이었다.
어떤 용무가 있어 왔든 전문 병원에 발을 디딘 이상 이번 수술에 관심을 가지고도 남을 써전이었다. 다만 평일인 관계로 예약된 수술이나 진료가 있을 텐데 왜 왔는지 의아한 일이긴 했다.
‘아버님이 이 시간에 어떻게 오셨지?’
수술 중이다.
의문도 잠시, 김지훈이 가볍게 목례만 했다.
이준영 교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시간이 중요한 수술이기에 더 이상 정신을 분산시킬 때가 아니었다.
‘하긴 전에도 불쑥 오시긴 했었지.’
김지훈이 곧바로 수술을 진행했다.
“간 정맥 박리합니다.”
간 후면에서 대정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정맥 역시 상당한 주의를 요했다. 혈관 자체가 상대적으로 약할뿐더러 가장 깊숙한 곳에 있어 출혈이 발생하면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나종진이 간을 지그시 하방으로 끌어당겼다.
카메라가 적절한 위치를 잡았다.
간에서 나온 정맥이 대정맥 쪽으로 주행하는 경로가 보였다. 기구를 접근시키는 일이 용이하지 않아 결코 쉽지 않아 보였다.
“모스키토!”
기다란 기구가 간을 타고 넘었다.
정맥 박리까지 염두에 두고 기구 위치를 잡았지만 첫 시도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간을 이리저리 밀고, 자세를 바꿔 보아도 적정한 수술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워 기구 조작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적절하게 대처하는 길밖에 없었다.
“보비!”
삐이이이! 삐이이이!
“후크! 보비!”
노련한 김지훈마저 상당한 곤란을 느꼈다.
그나마 인접한 부분에 위험 구조물이 없어 다행이었다. 허용 한도 이상으로 깊숙이 찌르지만 않으면 안전을 담보할 수 있었다.
실수를 할 써전들이 아니었다.
나종진이 공간과 시야 확보에 최선을 다했다.
일단 조건이 충족되면 김지훈은 과감하게 박리를 진행시켰다. 환자의 체격과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출혈만은 철저히 통제했다.
“클립! 수처! 타이! 컷!”
‘후우! 기구 조작이 정말 쉽지 않다. 라파로로는 정맥도 동맥 처리 이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네. 어떤 부분이 힘든지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끊임없이 최적의 공간과 시야를 확보할 방법, 적절한 기구 조작 방식을 고민하며 수술해야 했다. 눈앞의 과정에만 매몰되면 첫 시도에서 반드시 얻어야 할 귀중한 경험과 지식을 축적시킬 수 없을 것이다.
김지훈은 멈추지 않았다.
그간의 모든 경험을 동원했다.
퍼스트와 세컨의 역할 역시 한 가지에 국한될 수 없었다. 나종진과 이준영 교수 역시 최선을 다해 수술을 지원하며 단 하나의 과정도 빼놓지 않고 모두 머릿속에 담았다.
노련함과 노련함이 모였다.
마침내 간 정맥 끝부분이 노출됐다.
바로 앞에 위치한 대정맥을 본 김지훈이 극도로 신중해졌다. 어차피 잘라야 하지만 자칫 손상을 줘 간 정맥부터 잘라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지금까지 기울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
흘러 나갈 통로를 잃은 혈액이 간에 과도한 압력을 가한다면 최악의 경우 간 조직에 손상을 유발할 수 있었다. 이식에 가장 중요한 건강성을 잃는 것이다.
‘침착하게!’
“나 교수, 간 우상방에서 공간 확보해. 카메라 최대한 접근시켜 주십시오.”
모스키토로 살살 조직을 벌렸다.
후크를 걸어 조직을 잘랐다.
보비를 이용해 출혈을 막았다.
마침내 간 정맥까지 모든 혈관을 확보했다.
훅! 안도의 숨이 터졌다.
김지훈이 윤서연을 보았다.
“담도, 혈관 자른 후 바로 간 절제 시작합니다. 수혜자 수술 팀에게 연락해 주세요.”
한껏 고조됐던 긴장이 수그러들다 말고 다시 솟구쳤다. 간이 가진 고유의 저항성 때문에 혈류가 끊어진 후에도 쉽게 조직이 손상되지 않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시간을 이길 장기는 없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공여자와 수혜자를 모두 생각해야 할 시점이었다. 모든 혈관을 자른 후에는 반드시 적정 시간 내에 절제해야 했다.
“담도 자릅니다.”
단단한 담도를 잘랐다.
맑은 갈색 담즙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건강한 색깔이었다.
“석션!”
임시방편으로 열린 담도 구멍을 막았다.
“간 문맥 자릅니다.”
끼이익! 끼이익!
클립 조이는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간 동맥 자릅니다.”
끼이익! 끼이익!
두 개의 클립이 잘린 동맥을 단단히 물었다.
“간 정맥 자릅니다.”
마침내 간과 이어졌던 모든 구조물과의 연결이 끊어졌다. 담즙과 혈류가 정체되고, 산소가 부족해지며 서서히 기능을 잃어 갈 것이다.
김지훈이 곧바로 손을 내밀었다.
“모스키토!”
사각! 사각!
미리 설정한 절제 선을 따라 절개를 시작했다. 매 순간 간 속을 주행하는 담도와 혈관들이 잘리며 남아 있는 피와 담즙이 새어 나올 것이다.
버리는 장기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줄 장기기에 어느 한 면도 소홀히 처리할 수 없었다. 복강경을 이용한 간 절제 경험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었다.
“보비!”
“수처! 타이! 컷!”
“석션! 클립!”
연결 구조물이 모두 잘린 이상 간은 이미 떨어져 나온 장기와 같았다. 이식에 최대한 초점을 맞춰 자르는 과정만 남았다.
김지훈은 과감하고 노련했다.
나종진은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준영 교수는 든든한 기반이었다.
간 절제가 빠르게 진행됐다.
박소영의 생명을 책임질 좌측 간 처리가 무척 중요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허용 수준 이상의 출혈을 막는 기본 조치만 시행하고 우측 간 절제에만 집중했다.
끝이 보였다.
“손 교수에게 연락됐습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일석, 모찬우, 펠로우 한 명까지 모두 세 명이 들어왔다. 고성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후 곧바로 절제된 간을 받을 채비를 갖췄다.
손일석이 조용히 물었다.
“들어갈까요?”
“준비해 주세요.”
수술에 참여할 준비를 모두 마친 손일석이 김지훈 옆에 섰고, 모찬우는 이준영 교수 옆에 자리했다. 나직한 바이탈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측 간이 완전히 절제되기 직전이었고, 예정했던 시간을 넘기지도 않았다.
모찬우가 입술을 물었다.
‘후우! 모든 면에서 개복했을 때와 큰 차이가 없네. 저런 실력을 가진 선생님들이 준비까지 엄청나게 한 결과가 바로 이거구나.’
툭!
마침내 우측 간이 분리됐다.
이제 빼내는 일만 남았다.
“셀라인! 석션!”
절제된 간을 깨끗이 씻어 낸 후 복강 하부에 위치시켰다. 간을 꺼내는 동안 출혈이 우려되는 부분인 좌측 간의 절단면을 빠르게 확인한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합시다.”
손일석이 곧바로 손을 내밀었다.
“하복부 절개합니다. 메스!”
마치 제왕절개를 하는 것처럼 팬티 아래 선을 따라 피부를 절개했다. 절제된 간보다 약간 작게 열었지만 피부 탄력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빼낼 수 있을 크기였다.
복막만 남았다.
김지훈이 절개창 아래로 간을 밀었다.
우측 간의 윤곽이 보였다.
촉진을 한 손일석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적당한 위치에 놓였습니다. 멈춰도 됩니다. 선생님, 카메라 빼 주십시오. 모찬우 선생, 간 받을 준비 해. 포셉!”
조심스럽게 복막을 절개했다.
복강을 채웠던 가스가 빠르게 빠져나왔다.
손일석이 배 속에 손을 넣어 조심스럽게 우측 간을 빼냈다. 부분적으로 손봐야 할 부분이 남아 있었지만 무척 만족스러운 상태였다.
“펠로우 선생, 바로 옮겨.”
“예.”
정맥과 정맥을 인조혈관으로 이어 주어야 하지만 수혜자 팀 집도의인 진충기 교수의 검수 아래 진행될 것이다. 적정한 시간 내에 절제한 만큼 문제없이 수혜자에게 이식될 것이다.
“모찬우 선생, 복부 닫자.”
순식간에 하복부 절개창이 닫혔다.
좌측 간과 잘린 담도 및 혈관을 안전하고도 확실하게 처리하는 과정이 남았다. 단단히 봉합된 것을 확인한 김지훈이 곧바로 복강경 수술을 진행시켰다.
“손 교수, 수고했어요. 수처! 타이! 컷!”
담도를 봉합했다.
“클립!”
초창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신뢰성을 획득한 클립을 이용해 잘린 혈관들을 이중 삼중으로 처리했다. 수처 이상으로 안전할 것이다.
좌측 간 절단면 처리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방심했다간 수술 직후 대량 출혈로 재수술을 하거나, 지속적인 출혈로 인해 환자에게 큰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한 시간이 더 흘렀다.
손일석과 모찬우는 물론 고성문까지 수술을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확인 과정까지 모두 끝났다. 좌측 절단면이 상당히 깔끔해 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해.’
배를 닫는 일만 남았다.
하복부를 꿰맨 자리가 눈에 들어왔지만 수술의 어려움과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남은 절개창 다섯 개가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컷!”
마지막 봉합까지 완벽해 보였다.
김지훈이 미소를 머금었다.
드디어 복강경을 이용한 간 절제 수술이 끝났다. 수술 내내 환자의 바이탈은 안정적이었고, 수혈량은 오히려 적은 편이었다.
다섯 명의 전문의가 수술에 참여했다.
어느 한 명 노련하지 않은 써전이 없었고, 각자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비록 개복 때보다 더 많은 인원에 시간까지 오래 걸렸지만 환자가 얻는 이득은 그보다 훨씬 클 것이라 확신했다.
김지훈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일 것이다.
“끄으으응!”
여섯 시간에 걸친 마취에도 불구하고 박소영이 빠르게 깨어났다. 약간 창백해 보였지만 모든 장기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순간 본래의 혈색을 찾을 것이다.
박소영이 회복실로 옮겨졌다.
손일석이 어깨를 툭 쳤다.
“김 부원장, 축하해.”
“너무 이르지 않아?”
“깔끔하게 끝났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도 돼.”
김지훈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수술 준비부터 방식까지 오늘의 수술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개선할 점이 눈에 들어올 테고, 누군가는 훨씬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겠지. 어쩌면 수혜자 수술을 라파로로 시행하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지도 모르겠네.’
잊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수술 중 겪었던 문제들을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동료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 보면 하나하나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수술 끝났습니다.”
나종진이 수시로 환자 상태를 확인했다.
“끄응! 수술은…….”
“복강경으로 잘 끝났습니다. 숨 크게 쉬세요.”
박소영의 가슴이 제법 크게 오르내렸다.
배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눈가를 찌푸렸지만 개복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수술 직후 고통을 크게 줄인 것만은 확실했다.
스스로도 느낀 것일까?
박소영의 눈이 김지훈과 나종진의 얼굴에 머물렀다. 살짝 떨리는 눈동자와 애써 움직이는 손가락은 고마움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병실에 올라가는 대로 통증 조절해 드릴 겁니다. 오늘은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몸에만 신경 쓰세요.”
“고맙습니다.”
“잘 버텨 줘서 오히려 내가 고맙네요.”
김지훈이 한동안 환자 곁을 지켰다.
은근히 다가오는 뿌듯함과 감동을 즐겼다.
‘너무 성급한가? 어이쿠! 불길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그나저나 일석이는 방금 전까지 옆에 있더니 어디 간 거야?’
습관적으로 드레인을 살피던 김지훈이 화들짝 놀라며 머리를 툭 쳤다. 나종진에게 환자를 부탁하고 급히 휴게실로 향했다.
‘아버님!’
고성문이 이준영 교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웬만한 일로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잘 대처하는 손일석의 표정이 왠지 어두웠다.
이상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