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배꼽 안을 1센티미터 정도 절개했다.
새빨간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피부 탄력이 충분하고, 혈류가 좋다는 것은 곧 건강하다는 의미였다. 적은 체중과 작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지방층이 의외로 적정해 한시름 놓았다.
“에어팁!”
무척 익숙한 일이건만 오늘따라 단단한 복벽과 복막이 뚫리는 느낌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긴장이 감각을 끌어 올려 준 모양이었다.
곧바로 공기를 주입했다.
환자의 배가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삐이이이이!
적정 복압에 도달했다는 신호가 울렸다.
“10밀리 트로카!”
카메라를 넣었다.
“10밀리 트로카! 5밀리 트로카!”
신중하게 기구가 들어갈 위치를 정한 후 환자의 우상복부에 두 개의 구멍을 뚫었다. 집도의가 사용할 기구기에 무엇보다 위치 선정이 중요했다.
기구 두 개를 넣었다.
김지훈이 익숙하게 배 속을 확인했다.
긴장을 유발하는 순간이었다.
소장, 대장, 비장을 비롯해 복강 내에서 보이는 모든 장기를 철저하게 살폈다. 만에 하나 이상 소견이 관찰되면 수술을 중단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건강했다.
가장 중요한 장기가 남았다.
아슬아슬하게 적정 체중을 넘겼고, 애초 체격이 작은 박소영이었다. CT에서는 적정했지만 간의 크기가 적절하지 못하면 심각한 난관에 처할 것이다.
“간 확인하겠습니다.”
카메라를 간 가까이 접근시켰다.
절제해야 할 우측 간은 물론 수술 후 제법 오랜 시간 박소영의 삶을 지탱해 줄 좌측 간의 크기와 건강성 모두 확실하게 평가했다.
“나 교수, 어때?”
“크기도 적정하고, 건강해 보입니다.”
이준영 교수는 침묵으로 대신했다.
기본적인 사항이 모두 충족됐다.
“오케이! 마취과, 공여자 수술 계속 진행합니다. 5밀리 트로카 주세요.”
좌상복부에 두 개의 구멍을 더 뚫었다.
퍼스트가 조작을 담당할 기구가 들어갈 자리였고, 적절한 위치 선정 역시 무척 중요했다. 복강 내에서 보이는 기구를 살짝 움직여 보던 나종진이 눈짓을 했다.
‘좋습니다.’
카메라까지 도합 다섯 개의 기구가 들어갔다. 이제 세 명의 써전이 가진 능력을 총동원해 시간 내에 공여할 간을 절제해야 한다.
김지훈이 힐끗 시계를 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정각 아홉 시! 두 시 전후에 반드시 간을 전달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해야 한다.’
“시작하자!”
드디어 복강경을 이용한 간 이식 공여 수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최고의 수술 팀이 모든 집중력과 긴장을 끌어 올렸다.
기본적으로 장기를 절제하는 수술이기 때문에 과정은 복잡하지 않았다. 다만 이론과 실전의 엄청난 괴리가 있을 뿐이었다.
총수담관으로 합류하기 직전에서 우측 담도를 잘라야 한다. 이후 우측 간 동맥과 문맥을 잘라 묶고, 간 정맥을 처리한 후 간을 절제하면 된다.
차례차례 시행할 과정이 아니었다.
먼저 담도와 혈관을 감싸고 있는 주변 조직을 모두 박리해 처리해야 할 구조물을 확실하게 노출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일단 담도를 자르고 혈관을 묶으면 그때부터 또 다른 시간 싸움이 될 것이다.
“모스키토!”
김지훈이 담도를 덮고 있는 조직을 살짝 잡았다.
오직 박리 부분에만 집중했다.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여 과도한 긴장을 덜어 냈다. 작고 가느다란 기구, 카메라를 통해 확대된 시야는 분명한 장점이었다.
“보비!”
타닥!
전기에 지져진 막이 속살을 드러냈다.
노랗게 보이는 지방조직을 따라 박리를 시작했다. 염증 하나 없는 건강한 조직이었지만 가느다란 혈관이 무수하게 분포된 부분이었다.
모스키토를 벌릴 때마다 숨어 있던 혈관이 찢어지며 피를 내비쳤다. 아무리 양이 적고, 가지에 불과해도 무시해도 될 출혈은 없었다.
보비를 이용해 지혈시켰다.
타이가 필요한 부분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대부분 클립을 사용했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수처를 이용해 단단히 출혈 부위를 묶었다.
“수처! 타이! 컷!”
서서히 담도 상부가 드러났다.
이제 우측 간에서 뻗어 나오는 담도 초입을 찾아 말끔하게 박리해야 할 차례였다. 담도든 혈관이든 자르기 전에 최대한 깔끔하게 만들어 놓아야 이식 시간을 줄일 뿐만 아니라 합병증을 막을 수 있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체격이 작은 탓에 모든 구조물이 확실히 작네. 원활하게 이식하려면 최대한 길게 확보해야 한다.’
예상했던 문제였지만 실제 체감이 달랐다.
더구나 평소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기구까지 사용해야 할 상황이었다. 갈고리처럼 생겨 깊게 숨은 부분을 보다 쉽게 처리할 수 있다지만 생소함이 주는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퍼스트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나 교수, 간에 인접한 부분 확보해.”
상당히 좁은 공간에서 네 개의 기구가 움직였다. 자칫 서로를 방해할 수 있었지만 경험에서 축적된 노련함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종진이 공간을 확보했다.
조금만 과한 힘이 가해져도 찢어질 정도로 약한 조직이었지만 안전하게 기구를 다뤘다. 시야 또한 충분하게 좋아져 한결 수월하게 진행시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역시 노련해.’
“후크!”
김지훈이 우측 담도 끝부분까지 기구를 밀어 넣어 주변 조직을 갈고리로 잡았다. 정상적인 구조라면 위험 구조물이 없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었지만 시야에서 사라지는 기구 끝이 막연한 불안을 몰고 왔다.
기구에서 전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혈관도, 담도도 아니다.’
“보비!”
삐익! 삐익!
나종진이 짧게 보비를 작동시켰다.
일시적이라도 시야가 가려진 이상 예상하지 못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 만에 하나 발생한다면 최소한의 손상을 입히려는 의도였다.
김지훈이 원했던 바였다.
집도를 수월하게 하는 조건 중 퍼스트가 주는 안정감 이상의 요인은 없었다. 뒤를 받쳐 주는 이준영 교수는 존재만으로도 든든했다.
김지훈이 과감하게 기구를 조작했다.
갈고리에 걸렸던 조직이 잘렸다.
이준영 교수가 오밀조밀 모인 네 개의 기구 사이로 카메라를 접근시켜 능숙하게 시야를 확보했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간에서 막 빠져나오기 시작하는 우측 담도가 명확하게 노출됐다. 다행히 어떤 손상도 없었지만 간과 너무 가까워 하마터면 간을 지질 뻔했다.
‘간 손상도 문제지만 혈관이면 차원이 달라진다. 후크에 접한 조직 모두 주의해야 한다.’
어떤 구조물이든 확실한 시야 속에서 다룰 수 없는 후면이 문제였다. 우측 담도와 바짝 붙은 후복막 역시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모스키토! 수처! 타이!”
난관이 이어졌다.
시간을 단축시키고, 보다 안전한 클립의 사용까지 제한됐다. 클립 크기가 있어 좁고 작은 부위에서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수처와 타이로 출혈 조직을 잡아야 했다.
숱하게 해 온 과정이었지만 기구를 조작할 공간이 부족해 상당히 힘들었다. 안전을 위해 나종진과 번갈아 시행했고, 슬슬 수술복이 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측 담도를 모두 박리해 노출시켰다.
‘이 정도면 이식 때 무리 없겠어.’
어떤 면에서 보면 가장 쉬운 과정이 끝났을 뿐이었다. 실제 간 동맥과 간 문맥을 확보하는 과정이 가장 어렵고, 핵심일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간 문맥 박리합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제아무리 노련한 써전이라고 해도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과정이었다. 윤서연 역시 바짝 긴장하며 바이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모스키토!”
간 문맥은 동맥 이상의 혈류를 가졌지만 상대적으로 혈관 벽이 약하다. 손상을 받을 경우 자칫 감당하지 못할 출혈이 발생할 수 있었다.
개복을 떠나 생명을 위협하고도 남았다.
긴장이 고조됐다.
출혈은 피하지 못할 일이었다.
“클립!”
끼이익!
은빛 클립이 벌겋게 물들기 시작한 조직을 꽉 물었다. 클립 자체는 금속이기 때문에 문제없지만 물려 있는 조직이 문제였다. 박리 도중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클립을 과도하게 건드린다면 조직 자체가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높았다.
인위적인 출혈 유발이었다.
어려움이 가중됐다.
이미 담도 박리로 주변이 정상 모습을 잃은 후였다. 정확한 구분이 어려워지며 더욱 시야를 제한했다. 가뜩이나 좁은 부위에서 네 개의 기구를 조작해야 해 공간의 여유마저 모두 사라졌다.
악조건이었다.
첫 시도의 어려움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의 손이 갈수록 신중해졌다.
“수처! 타이! 컷!”
나종진 역시 초긴장 상태였다.
숨어 있는 동맥은 물론 노출된 담도까지 손상을 주면 안 되는 데다 절대 집도의의 움직임을 방해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지난 기간 복강경에 매달리며 쌓아 온 경험이 아니었으면 실수를 하고도 남았다. 수술 부위에 집중하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만이 답이었다.
“후크! 나 교수, 간과 연결된 조직 제쳐 줘. 선생님, 좌측에서 시야 확보해 주십시오.”
간과 연결된 문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힘차게 피를 보내고 있어 다행이었지만 그만큼 혈류량이 많다는 의미였다. 기구 끝이 문맥 벽을 스칠 때마다 섬뜩한 기운이 감돌 지경이었다.
째깍! 째깍!
한없이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김지훈의 수술 모자가 땀으로 푹 젖었다.
위험 부위를 박리할 때마다 딱딱하게 굳은 것 같은 어깨를 풀었다. 오직 눈과 손에만 집중하며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전진했다.
집도의를 보조하며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나종진은 숨소리마저 죽였다. 행여 기구끼리 충돌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될 상황이었다.
이준영 교수만이 변함없었다.
김지훈과 나종진의 긴장이 확연하게 느껴졌지만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강한 신뢰 속에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실제 그런 능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마침내 우측 간 문맥을 모두 박리했다.
원하는 만큼 깔끔하게 박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절대 욕심 부릴 일이 아니었다. 간을 빼낸 후 다듬는 것이 시간을 아낄뿐더러 훨씬 안전했다.
김지훈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이제 두 개! 다음은 동맥이다.’
“간 동맥 박리합니다.”
강한 혈관이었다.
반면 대동맥과 바로 연결돼 있어 혈류량은 물론 압력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혈관이었다. 날카롭고 뾰족한 후크, 주변 조직을 함께 지지는 보비, 거의 같은 공간에 위치하고 있어 극도로 조심해야 하는 담도와 간 문맥까지 주의해야 할 요인이 엄청났다.
‘후후! 개복 때와 차이가 이 정도였다니!’
자만은 금물이었다.
과도한 자신감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모스키토!”
간 동맥이 박동을 따라 요동쳤다.
웬만한 힘으로는 손상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긴장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담도와 간 문맥을 피해 가며 동맥을 박리했다.
식은땀이 맺혔다.
피가 비칠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수술 팀 모두 침착함만은 잃지 않았다.
“클립! 수처! 타이! 컷!”
동작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했다.
점점 간에 가까워지며 위험도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나직한 바이탈 소리만이 수술실을 지배했고, 마취과마저 숨을 죽였다.
윤서연이 눈가를 좁혔다.
‘동맥만 잘 처리하면 곧 절제를 시작하겠네.’
출혈을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간 절제 특성상 눈으로 확연하게 보이는 출혈이 발생했을 때 수혈을 시작하면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그 전에 충분한 혈액을 유지시켜야 했다.
“수혈 시작하세요.”
똑! 똑! 똑!
정맥을 따라 흐른 한 방울의 피가 심장을 통과한 후 동맥을 타고 흐르다 수술 부위에서 빠져나왔다. 노련한 의사답게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은 수준을 유지시켰다.
어느새 우측 간 동맥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툭툭 요동칠 때마다 한 방울의 땀이 흐르며 긴장이 오르내렸다.
김지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손톱 정도 전진하면 간 동맥이 완전히 박리된다. 수혜자의 생명이 될 간과 바짝 붙은 부분이기에 가장 조심해야 할 과정이었다.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했다.
모스키토, 후크, 수처, 타이 할 것 없이 필요한 기구를 모두 사용했다. 마침내 간에서 빠져나오는 동맥 초입이 보였고, 수처와 타이 한 번으로 온전히 노출시켰다.
담도, 간 문맥, 간 동맥.
세 개의 구조물이 이식에 알맞을 정도로 확보됐다. 우려할 만한 출혈은 보이지 않았고, 의미를 둘 정도의 손상도 없었다.
김지훈이 힐끗 시계를 보았다.
막 열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후우!”
이제야 막혔던 숨이 터졌다.
뻣뻣해진 목을 살짝 돌리며 다음 과정을 진행하려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수술 중 많은 사람이 오고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생각도 못한 사람이 참관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