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김지훈이 애써 평정을 유지했다.
“얼마나 먹었죠?”
“하루 한 병은 마시는 것 같습니다.”
“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까?”
아들이 허탈하게 웃었다.
“이십사 시간 내내 감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화도 내 보고, 눈물로 호소해 봤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알코올 중독 치료도 불가능했고요.”
김지훈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 간의 이식을 시행한 중 가장 최악의 경우였다. 간을 이식받고도 술을 끊지 못한 환자, 간을 줬기에 요양이 필요하건만 오히려 극심한 스트레스로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아들, 알코올 중독자의 집안이 으레 그렇듯 무기력해진 아내까지 모든 악조건이 다 겹쳤다.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
환자는 여전히 복통만 호소하며 술을 마신 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간 이식과 관련이 없는 단순 복통으로 판명됐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을 보듯 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이 망가질 것이다.
돈이 있다면 간의 주인이 누구든 간에 또 삶을 구걸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아들의 간조차 망가트린 사람이 타인의 간을 소중하게 관리할 리가 없었다.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한낱 술 때문에 말이다.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다시 환자를 찾은 김지훈이 꾹꾹 화를 눌렀다.
“약은 제때 먹었습니까?”
“먹고 있습니다.”
“술은 왜 마셨습니까?”
“딱 한 잔 했을 뿐입니다. 아들놈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오해하신 겁니다.”
후욱! 후욱!
“다시 간이 상하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술은 당연히 끊어야 하고요. 복통이 가라앉는 즉시 정신과에 입원해 술부터 끊으세요.”
“내가 미친 것도 아닌데 왜 정신과에 입원합니까? 술 한 잔에 사람 죽는 것도 아니잖아요.”
믿기 힘들지만 술 때문에 저승 문턱을 밟았던 사람이 술을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 무조건 안 먹겠다고 해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자기 목숨 자기 마음대로 한다지만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다.
김지훈이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한 잔이든 한 방울이든 술은 무조건 안 됩니다. 또 마실 겁니까?”
“안 마십니다. 나도 양심이 있는데 아들놈 간을 받고 또 술을 마시겠습니까? 이번은 정말 화가 나서 실수한 겁니다.”
이식을 이긴 술이었다.
알코올 중독은 상상 이상으로 무섭다.
술에 관대한 정서 탓에 대부분 지나가지만 상당수 사람이 중독 범주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었다. 그깟 몇 잔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었다.
거짓말이 빤했다.
김지훈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아내와 아들을 불렀다.
양심은 있는지 환자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아드님 얼굴을 똑똑히 보세요. 지금 배 속에 있는 간은 환자분의 간이 아니라 아드님의 간입니다. 또 한 번 술을 입에 댄다면 자신만이 아니라 아드님까지 죽이는 겁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거란 말입니다. 이래도 술을 마실 겁니까?”
“안 마신다고 했잖아요.”
말 한마디로 끝낼 일이 아니었다.
미덥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더욱 나직해졌다.
“확실하게 경고합니다. 다음번에 또 술을 마시고 오거나, 그사이 한 잔이라도 입에 댔다면 더 이상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지 않아도 역시 진료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료 거부로 신고해도 좋습니다. 치료 방침을 따르지 않는 환자를 굳이 치료할 이유가 없습니다. 장염 약을 처방할 테니 증상이 나아지면 집에 가셔도 됩니다.”
‘이 정도 말에 술을 끊을 사람이 아니다. 어떤 감정을 가졌든 단호하지 못한 가족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아내와 아들 모두 독하게 변해야 한다.’
“보호자분, 알코올 중독은 본인 스스로 치료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족 동의가 있으면 강제 입원이 가능하니까 돌아가는 즉시 입원시켜 치료하세요.”
“너무 난리를 쳐서…….”
“남편이 아니라 아드님을 생각하세요. 환자 때문에 본인 몸조차 건사하지 못하는 게 안 보이십니까? 정말 가족을 모두 잃고 싶으십니까?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 모든 고통을 떠안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선생님!”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치료 원칙을 지켜야만 가족이 살 수 있다는 사실, 가족을 위해 아드님이 희생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김지훈이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환자에게 이토록 화가 난 적이 없었다.
배신감 때문일지도 몰랐다.
사실 알아들어야 할 사람은 아내와 아들이 아니라 환자 본인이었다. 그러나 애먼 사람을 책망하며 책임을 물은 것만도 아니었다.
가족이기에 더욱 단호해져야 할 상황이었다. 아비 한 명으로 인해 온 가족이 모두 불행해지는 사태를 막으려면 혈육의 정마저 잠시 접어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
아들이 쫓아 나왔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아드님이 왜 죄송하다는 말을 합니까? 칭찬받아도 부족합니다. 아드님, 아버지가 아니라 간 이식을 받은 환자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술 한 방울 때문에 가족을 모두 잃기 싫다면 슬기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본인 몸부터 챙기세요. 힘이 있어야 싸울 수 있지 않습니까?”
아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몸이 힘들면 마음까지 약해지기 마련이라는 걸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달라져야 합니다. 힘내세요.”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어깨를 두드렸다.
비록 예외적인 경우지만 스트레스 없이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간을 절제한 후에는 더욱 민감해지기 마련이었다.
공여자의 고통을 다시 생각해야 했다.
응급실을 나온 김지훈이 병동으로 향했다.
공교롭게도 박태준 환자의 차트를 보며 멈칫거렸던 이유 역시 술이었다. 알코올성 간 질환이 원인이었다면 지나쳤을지도 몰랐다.
‘B형 간염으로 간경화가 발생한 사람인데 간헐적으로 술을 먹었다? 언제일까?’
환자의 다짐이 필요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간경화가 발생한 이후에도 술을 마셨습니까?”
순간 환자가 움찔거렸다.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살아갈 힘을 완전히 잃은 때라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다시는 입에 대지 않겠습니다. 제 몸도 몸이지만 우리 딸에게 죄를 지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박소영도 거들었다.
“원래 술을 잘 드시지 못했어요. 엄마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만 잠깐이었고요. 선생님, 왜 그러세요? 혹시 수술에 지장이라도 있는 건가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박태준 환자는 술을 언급한 것만으로도 죄를 지은 사람처럼 얼굴을 들지 못했다.
‘내가 너무 과민했는지도 모르지만 사소한 방심조차 용납할 수 없는 원칙이다.’
“차트를 보다 발견하고 반드시 확인해야 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평생 주의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이식을 받은 환자입니다. 수술 후가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술만이 아니라 사소해 보이는 주의 사항까지 철저하게 지키셔야 합니다.”
이미 충분하게 설명을 들었을 것이다.
복강경 수술이 주는 부담과 압박 때문에 더욱 민감해졌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환자를 믿어야 할 때였다. 사실 백이면 백 치료 방침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믿겠습니다.”
박소영이 돌아서는 김지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당연한 점검이겠지만 자신만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사항까지 모두 파악하는 모습에 더욱 믿음이 갔다.
성공을 장담하기 힘든 수술을 앞뒀다.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가 가장 필요한 시간이었다.
***
김지훈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움직였다.
복강경 수술을 직접 하고, 참관하며 손과 눈의 감각을 살렸다. 나종진과 수시로 점검해 미비한 부분을 최대한 방지하고자 했다.
환자들의 상태가 무척 중요했다.
다행히 박태준 환자의 전신 상태는 나빠지지 않았다. 정맥을 통한 영양 공급과 안정으로 수술에 적절한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었다.
박소영이 정식으로 입원했다.
감기 등의 사소한 감염을 방지하고, 몸무게가 줄지 않도록 상당한 신경을 기울였다. 더불어 심리적 안정을 위한 조치도 잊지 않았다.
“많이 불안하죠?”
“예. 솔직히 불안해요.”
“수술 자체가 주는 두려움은 우리도 어쩔 수가 없네요. 저 역시 어떤 수술을 하든 여전히 긴장하곤 합니다. 피할 수 없는 일이죠.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영 씨와 아버님을 위해 모든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수술 방법을 설명했다.
아무리 작아도 배를 절개한다는 사실 자체가 무섭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수술을 받는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건강하기에, 아픈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기에 도리어 더욱 자세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진충기 교수도 박태준 환자를 만나 최종 설명을 하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났다.
드디어 수술 날 아침이 밝았다.
이른 시간에 수술 전 처치를 받는 딸을 보던 어머니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가족 두 명이 연이어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을 감당하기 힘들어 보였다.
“엄마, 나 괜찮아.”
“우리 딸, 엄마가 미안해.”
“괜찮다는데 왜 자꾸 그래?”
스무 살 딸이 도리어 엄마를 위로했다.
김지훈이 미소를 머금었다.
‘참 의젓하네. 엄마를 걱정할 정도면 심리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겠어. 결국 우리 수술 팀의 손에 달린 일이네.’
각오를 다졌다.
생체 간 이식 수술이 워낙 오래 걸리는 탓에 수술 시작 시간이 빨랐다. 회진을 일찌감치 마친 김지훈, 이준영 교수, 나종진이 수술 방으로 향했다.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평생 입어 온 옷인데 오늘따라 유난한 무게가 느껴졌다. 긴장 때문이 분명해 더욱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환자가 오기 전 담당 간호사와 기구를 점검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김진호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벌써 나오셨어요?”
“내가 세컨이야.”
“들었습니다. 김 부원장, 나 교수, 선생님까지 들어오셔서 정말 마음이 편하겠어. 평소와 똑같이 마취하면 되지? 윤 교수에게 말해 놓을 테니까 일찍 끝내고 점심 같이 먹자.”
언제나 넉넉하고 유쾌한 김진호 교수였다.
김지훈이 맞장구를 쳤다.
“그럴까요?”
“기다리고 있을게. 발표거리 많아서 좋겠다. 역시 학회장다워.”
덕분에 수술 전 불필요한 긴장이 누그러졌다.
드르르륵!
드디어 환자가 수술실로 옮겨졌다.
박소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온기 하나 느껴지지 않는 무영등 불빛, 수술 모자와 마스크에 가려져 눈만 내놓은 의료진, 상상 속에서만 보던 수술실 풍경부터 희미하게 들리는 바이탈 소리까지 모든 것이 환자에겐 두려움이었다.
김지훈이 전해질지 모를 미소를 머금었다.
“환자분, 긴장하지 마세요.”
“선생님!”
가볍게 손등을 두드려 주었다.
환자의 불안을 느낀 윤서연이 재빨리 자리를 잡았다. 동작 하나하나 모두 여유롭고 자연스러워 중견 의사의 노련함이 철철 넘쳤다.
“마취 시작합니다. 환자분, 천천히 깊게 숨 쉬세요. 한잠 자고 나면 수술 끝나 있을 거예요. 이 선생, 스타트하세요.”
정맥 마취제가 수액 줄을 따라 주입됐다.
환자의 의식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 근육 이완제를 투입했다. 힘을 잃은 근육은 아주 쉽게 인투베이션을 허락했다.
“벤틸레이터(Ventilator:인공호흡기) 연결합니다.”
슈우욱! 슈우욱!
“바이탈 확인하세요.”
안정적인 생징후를 확인하며 인공호흡기와 연결된 마취 밸브를 열었다. 간에 가장 적은 영향을 끼치는 호흡 마취제가 박소영의 깊은 잠을 유지시켰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맞은편에 선 퍼스트 나종진과 세컨 이준영 교수가 긴장을 끌어 올렸다. 복강경을 이용한 간 이식 공여자 수술이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 처음이라는 사실 자체를 잊어야 한다. 이제 성공하는 일만 남았다. 환자와 보호자를 실망시키지 말자.’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메스를 잡은 김지훈의 눈이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