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316화 (1,316/1,329)

2화

수술 팀 구성부터 관건이었다.

공여자 수술 팀은 김지훈과 나종진 외 카메라를 잡을 한 명이 더 필요했지만 그 정도 경험은 차고 넘치는 써전이 많아 크게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반면 수혜자 수술 팀은 정말 최고의 써전이 요구됐다. 공여자 수술 중 발생할지 모르는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이식을 마무리할 수 있는 능력이 보장돼야 했다.

김지훈이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손 교수와 진충기 선생님이 함께 맡아 주면 좋겠는데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을까? 힘들다면 누가 집도를 하든 서 교수나 혁원이가 같이 들어갈 수밖에 없네.’

최고의 수술 팀!

김지훈 스스로 인정하는 써전이 넘치건만 왜 항상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마도 환자의 안전을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마음이 발전을 이끌 수도 있었다.

김지훈이 부리나케 움직였다.

다들 바빠 충분한 시간을 두지 않으면 원하는 수술 팀을 꾸리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당장 손일석과 진충기 교수의 얼굴조차 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그 시간.

병실이 다소 시끄러웠다.

“아까 오신 선생님 말이야. 텔레비전에 나오신 분 아니야? 왜 그 있잖아. 수술 잘못해서 난리 난 병원 의사를 고발했던 프로 말이야.”

“그걸 이제 알았어요? 수술 잘하기로 유명하신 분인 데다 이 병원 부원장님이세요. 나도 들은 얘기지만 저 선생님이 처음 시도해서 성공한 수술이 한두 개가 아니래요. 그러니까 저 나이에 부원장님까지 하지 않겠어요?”

“듣긴 들었지. 서울에 있는 큰 병원보다 훨씬 작은데 간 쪽으로는 유명한 의사들이 쌔고 쌘 걸 보면 이 병원 터가 좋긴 좋은 모양이야.”

“에휴! 뭔 말만 나오면 터 타령인지 모르겠네. 그럼 친절한 것도 터 때문이에요?”

“무시 못하지.”

두런두런 오고 가는 소리에 박소영 가족의 눈빛이 달라졌다. 명의라 소문이 났다고 해도 직접 치료받고 있는 환자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실망만 커지는 법이었다.

전문 병원은 그렇지 않았다.

이준영 교수는 모든 면에서 간암과 공여자 수술의 명의가 분명했다. 그런 의사가 소개한 김지훈 교수는 신뢰하고도 남았다. 큰 수술을 앞둔 사람의 불안과 건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자연스럽게 교차했다.

김지훈이 고민을 거듭했다.

‘모든 조건을 종합했을 때 라파로가 꼭 필요한 환자지만 첫 시도로 수술하기에는 도리어 악조건이 너무 눈에 띈다. 절제 범위가 정확해야 할뿐더러 수술 시간도 개복 때와 거의 동일해야 한다.’

전에 없이 긴 시간의 고민이었다.

복강경을 이용한 생체 간 이식은 그만큼 특별한 수술이었다. 작은 체격과 과소 체중을 간신히 넘긴 몸무게 역시 결코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었다.

고경아가 넌지시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라파로가 잡힐 것 같네요.”

“걱정 말아요. 지훈 씨에겐 어느 병원에서도 만들기 힘든 최고의 수술 팀이 있잖아요.”

“그렇죠?”

잠시 고경아를 보던 김지훈이 웃었다.

수술 팀뿐일까?

간 이식에 관련된 모든 의료진을 신뢰할 수 있었다. 준비부터 퇴원까지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의 일을 방기하면 실패하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실제 그런 각오로 일하고 있었다.

믿으면 된다.

‘내 자신도 믿자. 가족 모두 이식을 원했고, 라파로에 동의한다면 주저할 일이 아니다.’

답답했던 가슴이 뚫리기 시작했다.

***

수술 팀 구성이 원활하게 진행됐다.

김지훈의 수술 날인 월요일에 시행할 수밖에 없어 스케줄 조정이 필요했지만 이번 수술에 담긴 의미에 모두들 흔쾌히 협조했다.

“감사합니다.”

‘일단 동의는 얻었고, 최종 결정만 남은 건가?’

김지훈이 이준영 교수를 찾았다.

나종진과 함께였다.

박소영의 아버지, 박태준의 수술이 이미 예정된 상태라 공여자 수술 방식을 빨리 결정한 후 수술 팀을 확정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두 수술 모두 집도의와 퍼스트가 정해진 상태나 다름없어 상의하는 성격이 강했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 동의한다면 라파로로 시행하겠습니다.”

“언제쯤 가능하겠어?”

“기존 스케줄에 이미 포함된 수술이기 때문에 예정대로 일주일 후에 시행하겠습니다.”

“특별히 준비해야 할 일은 없어?”

“수혜자 수술 팀 구성은 진충기 선생님께 부탁드렸고, 만에 하나를 대비해 서도진 선생이나 오만석 선생 중 한 명이 퍼스트를 서기로 했습니다. 공여자 수술 팀도 세 명이 필요한데 세컨은…….”

“내가 서마.”

김지훈이 깜짝 놀랐다.

박소영이 이준영 교수의 환자이긴 했어도 지금은 김지훈의 환자였다. 더구나 세컨은 카메라를 잡는 일 이외에 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 정도 역할은 펠로우가 아니더라도 충분했다.

“선생님, 참관만 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최소 다섯 시간인데 무리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애초 내 환자였고, 라파로를 권한 사람이 나다. 조금이라도 불안을 줄여 주어야 해.”

환자에게 온갖 경고를 다 했다.

복강경 수술로 최종 결정이 나면 더욱 심한 불안과 걱정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았다. 심리적 불안이 지속되면 수술 이후에까지 영향을 줄지도 몰랐다.

이준영 교수는 그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반면 특수한 상황이라고 해도 환자는 환자일 뿐이었다. 평소 다른 의사에게 환자를 보내고 난 후 내 환자 아니라고 신경 쓰지 않았는지 반성할 일이었다.

‘환자에게는 정말 타협이 없으시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오늘 오후 회진 때 환자와 보호자 다시 만나 의사 확실하게 확인하겠습니다.”

“같이 만나자.”

이준영 교수가 나종진을 보았다.

“나 교수!”

“예. 말씀하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의사임을 잊지 마. 환자의 결정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의사의 확신과 자신감이다. 의사의 불안을 누구보다 잘 느끼는 사람이 바로 환자야.”

나종진이 눈가를 굳혔다.

김지훈은 다소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게 하시는 말씀이네. 알겠습니다. 확신과 자신감을 갖고 이번 수술을 시행하겠습니다.’

걱정만 너무 앞세웠는지도 몰랐다.

절제할 시간이 충분하다면 못할 수술이 아니었지만 바로 그 시간을 지켜 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하기에 머릿속으로는 이미 수백 번도 더 그려 보았다.

나종진 이상의 퍼스트가 없었다.

더구나 대가라 불리는 스승이 세컨을 선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져도 대처할 수 있다는 말이었고, 이는 곧 성공을 의미했다. 불행한 결과를 부르고 싶지 않다면 불길한 생각부터 버려야 했다.

박소영 가족을 만났다.

첫 면담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았다.

결정하기 어려운 시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수술 날이 정해진 이상 공여자 수술 날짜 역시 정해진 상황이었다. 방법만 택하면 끝이기에 오히려 갈등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이준영 교수가 뒤로 물러났다.

여전히 모든 일을 김지훈에게 맡겼다.

김지훈이 가슴을 폈다.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복강경이 가장 유리한 방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결정하셨습니까?”

“예. 복강경으로 받고 싶어요.”

“부모님도 동의하십니까?”

아버지는 한숨만 쉬었다.

어머니는 또 눈물이었다.

가끔은 감정에 휘말려도 괜찮을 것이다.

지나치게 단점만 설명하기도 했다.

“수술이 잘 끝나면 다른 사람에 비해 고생을 훨씬 덜 할 겁니다. 배에 나는 상처도 눈에 띄게 줄 테고요. 이미 수술 팀까지 다 구성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아버님은 물론 소영 씨 역시 몸 관리 잘하셔야 합니다. 감기라도 걸리면 수술 미뤄야 해요.”

김지훈이 애써 활짝 웃었다.

“소영 씨, 체중은 줄지 않았죠?”

“열심히 먹고 있어요.”

“살쪘다는 소리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행복해 보여서 저도 기분이 좋네요.”

의사의 농담과 웃음에 다소 불안을 덜었는지 박소영과 가족의 표정이 나아졌다.

면담을 끝낸 김지훈이 이준영 교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박소영과 박태준 환자의 차트를 면밀하게 재검토했다.

사소한 변화 하나라도 놓치는 순간 다른 환자에 비해 훨씬 큰 영향을 받을 박소영이었다. 수혜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

가급적 완벽한 상태에서 수술을 하고 싶었다.

한 장 한 장 차트를 넘기던 김지훈이 돌연 고개를 갸웃거리며 맨 앞부분을 살폈다. 박태준 환자의 과거력과 병력이 기록된 부분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B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화로 오랫동안 앓았다고 했는데 이게 뭐지?”

김지훈의 눈가가 좁아지는 순간 호출이 왔다.

응급실이었다.

(세 달 전 선생님께 간 이식을 받은 65세 남자 환자가 복통으로 내원했습니다.)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세 달이라면 거부반응의 우려가 있을뿐더러 간이 제대로 안착되지 않았을 시기였다. 게다가 복통은 그로 인한 대표적 증상이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온갖 생각이 다 머릿속을 스쳤다.

급히 응급실로 내려갔다.

차트를 보던 김지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야? 술을 먹었어?’

금기 중의 금기였다.

환자의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수술 전후 모두 굉장히 협조적이었고, 치료 방침을 잘 따랐다. 더구나 아들의 간을 받은 터라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인턴 선생, 확실해?”

“예. 술 냄새가 분명합니다.”

“보호자는?”

“환자와 함께 있습니다.”

“아들도 같이 왔어?”

“젊은 사람이 있긴 합니다.”

‘한 모금의 술도 안 된다고 그렇게 강조했는데 세 달도 안 돼 술을 마시고 복통으로 병원을 와? 술 때문에 간경화가 왔고, 아들의 간을 받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삶을 원했던 환자가 스스로 독을 찾았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와 땀을 흘렸는지 안다면 이럴 수 없었다.

아니다.

단 한 가지만을 기억해야 했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간을 준 사람이 바로 아들이었다. 가장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기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부모 자식 사이가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단 한 방울일지라도 술을 입에 대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환자를 찾았다.

술 냄새가 풍겼다.

적은 양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술을 마셨습니까?”

김지훈의 목소리가 나직했다.

막상 얼굴을 보니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기가 찰 뿐이었다.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딱 한 잔 했습니다. 일단 배부터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안 좋은 일이 있건 없건 가족만이 아니라 의사에게도 해서는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 그런데 미안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 갈 때 올 때 다르다고, 아비란 작자가 딱 그 짝이었다.

김지훈이 묵묵히 진찰했다.

필요한 검사를 내고 임시 투약까지 마쳤다.

수액을 통해 약이 들어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배가 아픈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환자가 조금도 안쓰럽지 않았다. 가슴은 부글부글 끓는데 머리는 차가워져만 갔다.

보호자와 따로 자리를 가졌다.

아내와 아들이었다.

공여한 지 세 달이 지나 건강을 많이 회복했을 줄 알았건만 아들의 혈색이 좋지 못했다. 지금도 상당한 통증과 쇠약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몸 관리를 못한 얼굴이야.’

“몸은 어떻습니까?”

“좋지 않습니다.”

“얼굴만 봐도 그렇게 보이는데 혹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식사는 제대로 한 겁니까? 휴식이 무척 중요한데 적정하게 취했습니까?”

아들이 이를 악물었다.

‘의사가 내 걱정을 더 하네.’

환자의 아내는 아들의 손을 잡은 채 입을 열지 못했다. 마치 죽을죄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안절부절 눈치만 보았다. 한편으로 삶의 의욕을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십중팔구 아비이자 남편이란 작자 때문일 것이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퇴원하고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부터 아버지가 다시 술을 입에 댄 것 같습니다. 병원 진료가 있을 때만 피한 것 같고요. 어머니와 제가 뒤늦게 알아차리고 말렸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김지훈이 눈가를 문질렀다.

아들의 간을 받아 삶을 연장한 아버지가 독이라고 해도 무방한 술을 마셨다. 그 탓에 아들은 자신의 건강조차 회복시키지 못했다.

말도 못하게 비참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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