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소아외과는 별다른 걱정이 없었다.
아이를 마취하고, 수술하는 데 따르는 위험성은 개복이나 복강경이나 똑같았다. 적용하는 수술 또한 이미 성인에게 시행하고 있어 나종진의 경험과 능력이라면 충분했다.
희귀 질환 등이 문제였지만 소아만 특별한 어려움을 갖는 것도 아니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 가다 보면 차차 영역을 늘려 갈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복강경을 이용한 간 이식 공여자 수술은 성격이 달라 시기가 지연됐다. 휘플까지 복강경으로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식의 특수성에 기인한 탓이었다.
생체 간 이식은 한 사람의 목숨과 한 사람의 삶이 걸려 있다. 단 하나의 조건이라도 만족시키지 못하면 수술을 미루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유리했다.
무엇보다 간의 건강성을 유지해야 하는 데다 수혜자 수술이 곧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절제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시간이 지연되면 자칫 이식에 부적합한 상태를 유발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집도의의 능력과 경험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써전이라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지훈이 좀처럼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간 절제에만 최소 두 시간 반 이상 소요된다. 더 이상 줄일 방법이 없는 이상 담도와 혈관 처리를 두 시간 반 전후에 끝내지 못하면 이식 후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라파로로 안전하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까?’
이미 간 절제는 복강경으로 시행한 경험이 있었다. 혈관 처리 역시 휘플을 통해 경험을 축적하고 있었지만 장기를 버려도 되는 수술이 아니라 반드시 살려야 하는 수술이라는 사실이 발목을 잡았다.
더구나 시간적 여유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종합 병원 신축 건물 완공이 머지않았다. 뿌듯하기 짝이 없었지만 서류로 작업했던 모든 일을 실제로 진행시켜야 할 때가 왔다는 뜻이었다.
도면이나 업자들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했다.
시설 및 설비와 장비가 들어설 위치부터 효율적 사용 방식까지 점검해야 할 사항이 산더미였다. 이런 분야의 실무는 거의 모르지만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개원 후 문제 발생 소지를 줄일 수 있었다.
보다 핵심적인 일은 따로 있었다.
하드웨어는 중간에 장난을 치는 사람만 없다면 확실하게 구축할 수 있다. 성실한 사람에게 제값을 주는 한 불량이나 부실이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진짜 중요한 부분은 소프트웨어였다.
바로 사람이다.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과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 직원의 유능함이 요구됐다. 그들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살려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가진 능력을 끌어내는 일이 운영의 핵심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문질렀다.
‘각 부분의 책임자를 잘 뽑으면 대부분 해결될 일이지만 현수나 송재덕 선생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인 모양이네. 하긴 내 의견을 제시하는 일조차 힘든 마당에 인원까지 어마어마한데 말해 뭐 하나.’
어느 분야든 새로운 조직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정착되는 법이었다. 하지만 병원은 단순히 그런 이유로 실수를 용인할 수 없었다.
환자 치료와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큰 짐 하나를 덜었다.
산업 의학과는 신설이라는 점을 고려해 조기에 인력 확보가 진행됐다. 동시에 구미 병원 과장을 중심으로 필요 시설과 장비 구매도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후우! 그나마 하나는 해결됐지만 나머지 부분은 여전히 골치 아프네. 스승님도 인사 문제로 꽤 골머리를 썩으실 텐데 아직 진료 중이신가? 끝나셨으면 커피 한잔하며 상의드려야겠다.”
모처럼 주어진 한가함이었지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중얼중얼 전화기로 손을 뻗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무방비 상태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렸다.
“여보세요?”
(지금 시간 있어?)
“별일 없습니다.”
(잘됐네. 외래로 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이준영 교수가 딱 맞춰 전화를 했다. 부리나케 가운을 걸친 김지훈이 후다닥 달려 나갔다.
외래 환자가 한 명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환자를 기다리게 할 스승이 아닌데 무슨 일인지 모를 일이었다. 이준영 교수가 나직한 목소리로 용건을 말했다.
“라파로로 수술해야 하는 환자가 왔다.”
“예? 아직 미비한 구석이 많은데…….”
김지훈이 말꼬리를 흐렸다.
무작정 밀어붙일 이준영 교수가 아니었다.
수술 팀의 준비와 환자 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일 것이다. 그 점을 바로 인지한 김지훈이 눈가를 굳히며 환자에 대해 물었다.
“어떤 환자입니까?”
이준영 교수가 조용히 차트를 건넸다.
심각한 대화가 오고 갔다.
잠시 후 환자를 불렀다.
20세 여자. 박소영.
김지훈이 다소 긴장했다.
이준영 교수는 평소와 똑같은 태도로 환자를 대했다. 당연히 입가에 미소가 걸렸고, 말투는 믿기 힘들 정도로 나긋나긋했다. 김지훈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면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가 말씀드린 김지훈 교수입니다. 복강경으로 수술이 가능하다면 환자분을 집도할 의사입니다.”
“안녕하세요.”
박소영의 눈가를 스치는 두려움이 보였다.
간염으로 인한 간경화로 투병 중인 아버지에게 간을 공여하고자 하는 딸이었다. 제법 말라 보여 간신히 공여에 적합한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였다.
“김 교수, 진료해.”
이준영 교수가 자신의 의자까지 내주었다.
김지훈이 헛기침을 했다.
이제 막 상의했는데 환자에게 복강경이란 소리를 하며 곧바로 자신을 소개할 줄 몰랐다. 이준영 교수는 제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꿈쩍하지 않았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새로운 시도에 대한 모든 결정을 일임했다. 그만큼 뛰어난 제자를 둔 덕이지만 자신의 환자를 공개적으로 의뢰하는 스승 역시 흔치 않을 것이다.
‘내가 계속 머뭇거리니까 아예 환자를 잡으셨구나.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주시는 건 좋은데 솔직히 아직도 불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환자는 정말 라파로가 필요한 환자다. 어떤 면에서 보면 더 이상의 준비는 무의미하다.’
김지훈이 다시 한번 차트를 확인했다.
전에 없이 신중했다.
이식에 필요한 검사는 모두 정상 소견을 보였지만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체중은 물론 체격까지 작아 예상되는 간의 크기까지 아슬아슬하게 적정선을 넘는 상태였다.
이준영 교수가 김지훈을 부른 까닭이기도 했다.
이식 수술 전후의 건강은 수혜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 공여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부담이 가해지면 어떤 고통에 시달릴지 알 수 없었다.
걱정이 되고도 남았다.
“아버님에게 간을 주기로 하셨는데 불안한 요소가 적지 않네요. 혹시 적합한 사람 중 체중이 더 나가거나 남자 형제는 없습니까?”
“없어요.”
유일한 기증자였다.
“평소에 이 정도 체중을 유지하셨습니까?”
“아니요. 맨 처음 검사할 때 체중 미달이라고 해서 살을 찌우려고 노력해서 만든 몸무게예요.”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과다 체중만큼 문제가 되는 요소가 과소 체중인데 적정 몸무게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박소영이 다시 보였다.
살을 빼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적정한 몸무게를 만드는 일일 수 있었다. 박소영은 아버지에게 간을 주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조건을 만족시킨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은 실제 수술 시행을 좌우하는 요소가 아니었다.
납득할 수 있는 지표만을 기준 삼아야 했다.
특히 공여자의 건강이 중요했다.
“건강하신 편이었습니까?”
“운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약했단 말이었다.
‘육체적인 요소는 모두 기준 미달이었네.’
수혜자를 위해 공여자의 건강까지 망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 가정에 아픈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늘면 고통은 그 이상으로 커지기 마련이었다. 누구보다 환자 상황을 중요시하는 이준영 교수 역시 분명하게 경고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공여를 결정했다.
어떤 마음인지 잘 알지만 얼마 전까지 부적격자였던 사람이었다. 불과 몇 주 사이에 적격자가 된 이상 기초 체력 자체가 부족할 수도 있었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했다.
“공여에 따른 문제를 들으셨죠?”
“들었어요.”
“체력이 약한 것은 물론 체격이 작은 것까지 모두 수술 후 몸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상당 기간 통증과 쇠약으로 고생한다는 말입니다.”
“알고 있어요. 선생님, 성년이 되기만을 기다렸어요. 저 아니면 아빠는 얼마 버티시지 못해요. 각오하고 있으니까 수술해 주세요. 제 간을 아빠에게 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박소영의 의지는 확고했다.
간절한 눈빛이었다.
‘이제 스무 살이다. 부모와 자식이라지만 효심이란 말로 설명이 될까?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결정한 일일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생체 간 이식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
김지훈이 이준영 교수를 보았다.
냉철하게 검사 결과로만 판단한다면 박소영은 간을 제공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복부를 크게 절개하는 수술 방식으로는 수술 후 고통을 누구보다 크게 겪을 가능성이 높았다. 육신에 가해지는 부담에 지속적인 통증이 더해진다면 일상이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복강경으로 시행해야 할 명확한 이유가 있건만 공여자의 건강과 결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준영 교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중을 확인하고도 남았다.
‘어떤 걱정을 하는지 알지만 환자만 보자. 지난 기간 아버지를 위해 노력한 사람인 만큼 다른 요소는 배제해도 좋아. 무엇보다 정말 라파로가 필요한 환자야.’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현재 건강 상태를 유지한다면 우려에 불과할 수도 있다. 만일 이상이 생긴다면 미루는 수밖에.’
“혹시 복강경 수술에 대해 들으셨습니까?”
“교수님께서 간단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스스로 걱정하고 있으면서 장점을 강조한다면 의사의 욕심만 채우는 꼴이었다. 환자는 새로운 시도가 갖는 단점과 위험성을 모두 알고 결정해야 할 권리가 있었다.
더욱이 많은 수술이 복강경으로 시행되는 데다 의료 정보를 얻기 쉬워 복강경 수술이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졌을 수도 있었다.
“알겠습니다. 본인만의 수술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 모두 이번 수술에 대해 설명을 들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후에 결정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내과에 입원 중이었다.
곧바로 병실을 찾았다.
아버지, 어머니, 딸.
단 셋뿐인 가족이었다.
‘하필이면 외동딸이네. 수술 후 누구 한 명에게라도 문제가 생기면 가족 전체가 풍비박산이 나겠어.’
대단한 압박이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가뜩이나 황달과 피부 변화로 까매진 얼굴이 더욱 안타깝게 보였다. 자신이 살기 위해 자식의 간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한스러울 것이다.
어머니는 눈물만 흘렸다.
열 달을 품어 낳은 후 애지중지 키운 딸에게 몹쓸 짓을 한다는 생각만 가득해 보였다. 간 이식 이외에 살 가망이 없는 남편을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고, 자책하는지도 몰랐다.
‘보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가슴 아프고 괴롭지 않다면 사람이 아니겠지.’
부담이 가중됐다.
그럴수록 솔직하게 말해야 했다.
“따님의 결정이 정말 놀라워 저희로서도 가장 유리한 방법을 택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100퍼센트 안전한 방식은 없습니다. 장점보다 단점을 자세히 알고 결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복강경 수술이 갖는 일반적인 단점을 세세히 설명했다. 개복으로의 전환 가능성과 간을 절제하기 때문에 심각한 출혈이 발생했을 때 대처할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는 말에 아버지의 고개가 더욱 처졌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또 있나요?”
“복강경으로는 우리 병원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수술이란 겁니다. 다른 수술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았지만 어쩌면 처음 한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큰 단점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김지훈이 나직한 숨을 토해 냈다.
‘개복은 선택지가 아니다.’
“결정은 따님과 부모님의 몫이지만 의사로서 말씀드린다면 이제야 간신히 공여에 적합한 몸과 체력을 만들었기 때문에 복강경을 권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복했을 때 따님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너무 큽니다. 실제로 무척 건강한 상태에서 공여하신 분들마저 수술 후 여러 문제로 시달리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우리 딸도 고생이 심할까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복강경 수술이 성공한다면 적어도 수술 후 통증은 상당히 감소할 수밖에 없고, 일상으로의 복귀도 빨라진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당장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수술이지만 그럴수록 더욱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었다. 미진한 부분을 보충 설명한 김지훈이 병실을 나왔다.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상황이었다.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지만 단단히 준비하자.’
성공을 위한 조건을 최대한 충족시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