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314화 (1,314/1,329)

20화

아이가 입원했다.

수술 팀은 김지훈과 나종진이었고, 송진우와 한수영이 참관할 예정이었다. 모두 모인 가운데 마지막 점검을 하던 김지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중요 사항을 강조했다.

“수차례 얘기했지만 탈장이든 아뻬든 어린아이라고 해서 수술이 더 어렵진 않을 거야. 그보다 라파로 자체가 주는 위험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해.”

훨씬 더 어린 연령층에서 탈장 발생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7살 아이를 첫 케이스로 잡은 이유가 있었다. 모든 조직이 작고, 여린 영유아의 경우 주의할 점이 상당히 많았다.

복강 내에 공기를 주입한 후 수술 내내 적절한 복압을 유지시켜야 하는데 복벽이 얇아 작은 압력 변화에도 손상을 줄 가능성이 있었다.

한참 성장 중인 작은 장기들을 제치고 수술해야 하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에도 장기에 손상을 줄 수밖에 없었다. 매 순간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탈장이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했다. 같은 개월 수라도 많은 면에서 취약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목표는 라파로가 가능한 질환의 경우 최대한 많은 아이들에게 적용하는 거야. 하지만 어린아이일수록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 따라서 이번 수술을 시작으로 앞으로 시행하는 모든 수술의 정보를 쌓아 기준을 만들어야 돼.”

“철저하게 기록하겠습니다.”

“나 교수와 내가 함께 수술하는 시간이 길지 않을 거야. 송진우 선생이 책임지고 소아 라파로를 개척해. 오늘은 쓰리 포트로 하지만 머지않아 소아 라파로도 원 포트가 대세가 될 거야. 그날을 앞당겨 봐.”

송진우가 눈가를 굳혔다.

난치성 희귀 질환부터 복강경 수술까지 소아외과 영역이 엄청나게 넓어지고 있었다. 한수영과 둘이 맡기에 벅찰 수밖에 없었지만 김지훈은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

송진우는 할 수 있다.

송진우를 믿는다.

지원은 걱정하지 마라.

나종진이 미소를 머금었다.

김지훈이 일부 수술에서 손을 떼더라도 함께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얼굴이었다. 최고의 써전이 보내는 신뢰와 존경하는 선배가 주는 힘에 송진우의 어깨가 절로 펴졌다.

한동안 대화가 이어졌다.

“그럼 내일 아침에 보자.”

자리를 끝낸 김지훈이 퇴근 전에 마지막으로 태훈이를 찾았다. 일곱 살 아이는 물론 엄마의 눈에도 두려움이 살짝 실려 있었다.

“태훈아, 겁먹을 거 없어. 잠깐 자고 나면 끝이고, 하룻밤만 더 자면 집에 가도 돼. 어머니도 걱정하지 마시고요.”

“잘 부탁드립니다.”

김지훈이 가볍게 태훈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집으로 향했다. 활짝 웃으며 품에 안기는 희연이를 유난스럽게 꽉 안아 주었다.

‘항상 아빠를 안아 주고, 건강하게 자라 줘서 고맙다. 공부는……. 음! 이왕이면 공부도 잘하자.’

“지훈 씨, 과일 안 먹어요?”

“곧 갑니다, 마님!”

과일 한 접시 앞에 놓고 가족이 한데 모여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지만 자식에 대한 욕심도 툭 고개를 내밀었다. 이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

다음 날 아침.

태훈이의 수술이 첫 수술로 시작됐다.

Laparoscopic Herniorrhaphy.

(복강경을 이용한 탈장 봉합술.)

흔히 보는 수술명이었지만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수술 기구를 준비해야 하는 간호과만이 아니라 마취과도 환자가 아이라는 사실에 다소 긴장한 기색이었다. 더구나 써전이 네 명이나 들어왔다.

“부원장님, 얼마나 걸릴까요?”

“처음이라 챙겨야 할 것이 많아 예측하기 어렵지만 한 시간 전후로 예상합니다.”

“알겠습니다.”

‘한 시간? 처음인데 가능할까?’

대개 새로운 시도나 경험이 없는 수술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마련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린 마취과 의사가 곧 마취를 시작했다.

“태훈아, 눈 떠 보자.”

“…….”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배꼽 안쪽을 살짝 절개했다.

상대적으로 가느다란 에어팁(Air Tip)을 찔러 넣던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처음부터 모든 정보를 세세하게 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확실히 적은 힘에도 쉽게 뚫리네. 에어팁 끝이 둥글다고 해도 주의해야겠어. 에어 온(On)!”

처컥! 처컥!

공기가 들어가며 배가 빵빵해지기 시작했다.

복압을 보여 주는 압력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부풀어 오르는 아이의 배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수술에 적절한 공간을 제공하면서도 아이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 복압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충분합니다. 주입 중단하세요.”

송진우가 재빨리 압력을 기록했다.

“5밀리미터 트로카 주세요.”

카메라가 들어갈 통로는 성인의 절반 정도면 충분했다. 내시경이 점점 가늘어지는 것처럼 복강경 기구도 빠르게 발전한 덕이었다.

카메라를 넣었다.

렌즈 크기는 문제가 아니라는 듯 배 속이 환하게 보였다. 아이의 하체 쪽을 살짝 올려 장기가 상부로 밀려 나가게 해 보다 넓은 시야를 확보했다.

“3밀리미터 트로카!”

팬티 선 아래에서 두 곳을 절개한 후 구멍을 뚫었다. 수술 후 얼마 동안은 흉터가 확연하게 보이겠지만 팬티 선 아래가 다른 사람에게 노출될 일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시간이 지나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질 테니 흉터로 인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았다.

두 개의 기구를 넣었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사람 눈이 참 무섭네. 5밀리나 3밀리나 확대된 채로 보이면 그게 그거일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가늘어 보이지? 하긴 아이 장 크기를 생각하면 이보다 굵어서는 안 되겠지.’

조심스럽게 장을 상부로 밀어냈다.

고환으로 연결되는 혈관 다발을 찾았다.

옆으로 난 구멍으로 장이 빠져나간 흔적이 확실하게 보였다. 이제 복강의 막이 구멍을 따라 밀려 나가며 만들어진 탈장 주머니를 찾아 봉합하면 끝이었다.

김지훈이 나종진을 보았다.

그 전에 복강경을 이용한 탈장 수술의 최대 장점 중 하나를 확인할 때였다. 전통적 방식으로는 어떤 수단을 써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반대쪽 확인하자.”

좌측 혈관 다발이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희열에 찬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좌측에도 발생했네요.”

기뻐할 일인가?

당연한 일이었다.

전통적 방식으로 외부에서 우측 서혜부를 절개하고 수술했다면 반대쪽에 발생한 탈장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오직 복강경만이 복강 내부에서 좌우를 모두 볼 수 있는 덕이었다.

수술 하나를 피한 것이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전신 마취 역시 단 한 번으로 끝낼 수 있었다.

이보다 더 큰 이득은 없었다.

김지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좋았어.’

“수처합시다.”

수술 방법은 간단했다.

탈장 주머니를 복강 내부로 끌어낸 후 입구 부분을 단단히 봉합해 주면 끝이었다. 발생 기전이 다소 다르기 때문에 성인처럼 인공 막을 대 줄 이유가 없었다.

복강경의 귀재가 집도의였다.

뒤를 바짝 쫓는 전문의가 퍼스트였다.

좌우 양쪽의 탈장 주머니를 확인하고 봉합하는 과정이 빠르게 진행됐다. 혈종 발생 등 여러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었지만 큰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컷!”

마지막 봉합이 끝났다.

‘우와! 양쪽을 수술하셨는데 한 시간이 안 걸렸네. 역시 부원장님이야. 숙달되시면 얼마나 걸릴까?’

수시로 진행 정도를 보던 마취과 의사가 재빨리 깨우기 시작했고, 김지훈은 그사이를 이용해 다른 장기를 한 번 더 살폈다.

건강한 아이였다.

“콜록! 콜록!”

인투베이션을 제거하자마자 기침을 하며 눈을 떴다. 숨을 따라 퍼지는 마취약 냄새와 멍한 눈빛도 잠시, 이내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를 찾았다.

김지훈이 긴 숨을 내쉬었다.

‘걱정이 많았는데 순조롭게 끝나 정말 다행이다.’

드르륵!

회복실이 부산해졌다.

어린 환자에게만 용인되는 보호자의 출입이 허락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걱정으로 눈가가 벌게진 엄마가 자식을 안았다.

“엄마!”

“우리 태훈이 잘했네. 잘했어.”

“어머니, 수술 전에 잠깐 말씀드렸는데 반대쪽에도 탈장이 발생해 한꺼번에 해결했습니다. 추가 수술을 면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깜짝 놀란 엄마가 김지훈과 아이를 번갈아 보다 고개를 숙였다. 안도와 감사의 표현은 결코 보호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고맙습니다.”

김지훈도 정중하게 인사했다.

‘아닙니다. 우리가 배운 것이 정말 많습니다. 다른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전문 병원에서 시행한 첫 번째 소아 복강경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 준비 과정이 무척 길었고, 수술 중에도 긴장을 풀 수 없었지만 수술 후 치료는 정말 간단했다.

절개창의 통증은 거의 없을 것이다.

복강에 가해진 압력으로 인한 복통이 가라앉으면 물을 먹이고, 하루 정도 별 탈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퇴원시키면 끝이었다. 일주일 후 실밥까지 풀면 다시는 병원에 올 일이 없었다.

김지훈이 나종진과 송진우를 보았다.

‘이 정도 난이도면 굳이 내가 또 할 이유가 없다. 특이한 경우라고 해도 나 교수와 진우 정도면 충분히 대처하고도 남는다.’

“나 교수, 다음부터는 나 교수가 집도하고, 적절한 때 송진우 선생에게 메스 넘겨.”

“예? 이제 안 들어오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난 공여자 수술 준비해야 해서 더 이상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아뻬도 적응이 되면 시행해 봐. 송진우 선생, 최대한 빨리 메스 받아.”

나종진이 웃었다.

간 이식 공여자 수술은 자신도 참여한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했다.

내심 단 한 번을 끝으로 복강경 수술을 넘겨주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최고의 써전이 보내는 강한 신뢰이자 인정이었다.

‘송진우 선생이 최대한 빨리 메스를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려는 순간!

김지훈이 머리를 톡톡 쳤다.

“3밀리미터가 정말 가늘게 보였지만 영유아에게는 그것도 굵을지 몰라. 그 점 유념해. 그리고 5밀리미터 트로카를 이용해 원 포트로 수술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는 사실 잊지 마. 솔직히 빨리 보고 싶다. 이왕 시작한 수술인데 선도적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어?”

턱턱 짐을 얹은 김지훈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수술 방을 나섰다. 오늘 수술이 무사히 끝난 이유는 결코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었다. 믿을 수밖에 없는 써전이 수두룩한 덕인데 즐겁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김지훈이 활짝 웃었다.

복강경으로 시행한 덕분인지 몰라도 아이의 회복 속도가 정말 놀라웠다. 배고프다고 울상이 된 아이를 달래야 할 정도였다.

“태훈아, 아무거나 막 먹으면 안 돼. 어머니, 며칠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식 위주로 먹이세요. 그럼 일주일 후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무사히 퇴원하는 태훈이가 기쁨을 배가시켰다. 하루 전 수술했건만 결코 어색하지 않은 발걸음을 보다 말고 툭 한마디를 던졌다.

“송진우 선생, 당일 입원에 당일 퇴원도 멋지지 않겠어? 아이가 어려도 가능할 것 같네.”

“오전에 입원해 수술하고 오후에 퇴원시킨다고요? 너무 빠르지 않습니까?”

“훨씬 더 아픈 치질 수술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병원이 있잖아. 따지고 보면 5밀리 하나, 3밀리 상처 두 개뿐인데 이틀씩이나 입원할 필요가 있겠어? 흐음! 원 포트로 수술하면 고민거리도 아니겠다.”

“나종진 선생님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상의는 무슨! 라파로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고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은근슬쩍 압박을 가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는 말이었다.

회진 내내 즐거운 미소를 머금던 김지훈이 수술 방으로 향하다 말고 멈칫거렸다. 민정호가 마치 우연인 것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부원장님, 마침 여기 계셨네요.”

‘속이 다 보이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마주친 김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번에 라파로로 수술한 아이 때문인데요. 이런 식으로 퇴원을 시키면 병실 회전률이 상당히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병원 수익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서요?”

“별 뜻은 없습니다만 부원장님인 이상 알고는 계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병원을 위해서 말입니다. 거액을 기부하신 박재순 회장님의 뜻도 있고요. 바쁘실 텐데 시간을 뺏어 죄송합니다. 그럼 이만!”

민정호가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기껏 일을 줄였는데 계속 신경을 쓰라 이 말이지? 그런데 너무 즐거워하는 거 아니야?’

민정호가 행정부원장으로 계속 근무하기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이 다름 아닌 김지훈 자신이었다. 그 결과 일복에 일을 더하고 있었다.

‘에휴! 적어도 나 교수나 진우가 실적 타령에 스트레스받는 일은 없어야겠지. 수술은 안 하더라도 당분간 소아 라파로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네.’

김지훈이 입맛만 다셨다.

타고난 팔자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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