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313화 (1,313/1,329)

19화

주말 집담회가 시작됐다.

평소와 달리 한 주 동안 시행된 수술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빨리 끝났다. 살짝 뜨거울 정도로 불어온 열기에 펠로우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집담회는 다시없을 것이다.

나종진의 긴장이 고조됐다.

마치 시험을 앞둔 사람처럼 자료들을 확인하며 중얼중얼 무언가를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김지훈은 공언한 대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간 이식 공여자 수술 및 소아 수술 일부에 적용할 수 있는 라파로에 대한 나종진 교수님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발표가 시작됐다.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공여자 수술 팀은 물론 수혜자 수술 팀까지 귀를 쫑긋 세웠다. 만족스러운 기색을 보였던 이준영 교수도 눈가를 좁힌 채 한마디도 놓치지 않았다.

“이상입니다.”

손일석이 곧바로 포문을 열었다.

“혈관 박리나 처리 때 가장 유념해야 할 부분 중 하나가 전기 소작기 사용입니다. 혈관 벽에 미세한 손상이라도 주면 수혜자 수술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전기 소작 기능이 있는 후크(갈고리:Hook)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매우 실전적인 질문이었다.

시작에 불과했다.

“개복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혈류가 끊어진 간이 얼마나 버틴다는 전제하에 시행하는 겁니까?”

“담도와 혈관 세 개를 처리해야 할뿐더러 간까지 절제해야 해 기술적인 부분이 무척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어떤 수련이나 경험이 필요합니까?”

질문이 쏟아졌다.

나종진이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이경석이 지원 사격에 나섰다.

반면 정작 새로운 수술 시도를 처음으로 제안했고, 가장 먼저 집도해야 할 김지훈은 눈가만 좁힌 채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나종진은 확실하게 준비했다.

비록 이경석의 도움이 있었지만 교수로서의 자격과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또한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날카로운 지적 감사드립니다. 최대한 빨리 자료를 찾아 보완하겠습니다.”

정직한 대답이었다.

반드시 갖춰야 할 써전의 덕목들이었다.

상당 시간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공여든 수혜든 유기적인 협조와 관리가 필요한 간 이식 팀 입장에서는 사소해 보이는 문제조차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직감하고 있었다.

복강경을 이용한 공여자 수술을 성공한 이후 경험이 축적되면 김지훈은 수혜자 수술까지 복강경으로 시도하고도 남을 써전이었다.

수혜자 수술 자체가 공여자 수술과 비교해도 상당히 어려운 수술이다. 이는 곧 수혜자 수술 팀 역시 지금부터 복강경 수술을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자연스럽게 눈길이 쏠렸다.

“김 교수님, 함께 준비하신 입장에서 추가로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나 교수와 함께 최선을 다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 후 공여자 수술 팀과 실질적인 준비에 들어가겠습니다. 나 교수, 정말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으로 소아 수술 라파로에 대해 송진우 선생의 발표를 듣겠습니다.”

송진우의 뺨이 가볍게 상기됐다.

“국내 및 국외의 사례들을 살펴본 결과 예상외로 많은 수술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관건은 소아에 맞는 기구 확보 및 보다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곧바로 질문이 쏟아졌다.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가서도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충만한 자신감을 보였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송진우 역시 예전의 송진우가 아니라는 점만은 확실했다.

김지훈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송진우의 얼굴은 더 이상 빨개지지 않았다.

소아외과를 책임질 써전다웠다.

‘이렇게 다들 발전해 나가는구나.’

여러모로 의미가 큰 집담회였다.

퇴근 전, 하윤호 사건 경과를 몇몇 주요 인물들에게 알렸다. 모두들 한결같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본보기의 좋은 예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서울 병원에서부터 마음에 안 들어 죽을 뻔했는데 앓던 이가 쏙 빠진 것 같네. 김 부원장, 고생했어. 큰 도움이 못 돼 미안하다.”

“그런 소리 마. 내가 고마워.”

“공여자 라파로도 거의 다 준비된 것 같은데 언제 시도할 거야? 시간 끌 이유가 없잖아?”

“환자 선택도 무척 신중하게 진행해야 하고, 어떻게 보면 내가 다른 분야를 침범한 꼴인데 공여자 팀에게 최종 양해부터 구해야지.”

“뭐라고 할 사람 한 명도 없다.”

“스승님께 허락을 받았지만 후배라고 해도 교수들이야. 예의를 지켜야지. 나도 나지만 신장 이식은 언제부터 시작할 수 있겠어?”

“지금 우리 병원 규모로는 펠로우 선생과 간호사 확보부터 전담 수술실 배정까지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신장 내과 개설까지 필요해서 자칫하면 종합 병원 개원 이후로 미뤄야 할 수도 있겠어.”

김지훈이 입을 삐죽였다.

“손일석 실행력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엄살은! 너무 서두르지만 마.”

“솔직히 애초 스승님이 시작한 분야였고, 나도 제자리를 찾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긴 한데 마음이 급하긴 해. 내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혁원이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 이식 분야만 따지면 귀중한 인재를 잃는 꼴이었지만 전체적인 관점으로 보면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가는 일이기도 했다.

기대가 컸다.

한편으로 걱정도 됐다.

지금은 선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간 이식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선발 주자의 성격이 강해 성과를 논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반면 신장 이식은 후발 주자라 할 수 있었다.

모든 면에서 다른 병원과 비교될 수밖에 없고, 그만큼 큰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더구나 여러 차례에 걸친 시도에도 부침을 겪은 분야기도 했다.

‘이식 전문 병원이란 특성이 작용하면 별문제 없이 안착하겠지만, 그보다 난 일석이 네 능력을 믿는다. 차근차근 진행시키면 확실하게 자리 잡고도 남으니까 걱정하지 마.’

“잘될 거야.”

“그래야지. 스승님이 은퇴하시기 전에 모셔서 함께 수술하고 싶다. 아직 배울 게 많거든.”

각자 개성이 뚜렷하지만 닮은 점도 참 많은 김지훈과 손일석이었다. 스승들에 대한 존경과 애틋한 마음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손일석이 탁탁 손바닥을 치며 일어났다.

“퇴근하자. 주말에 뭐 해?”

“가족하고 지내야지.”

“자료는 안 들고 가는 거겠지?”

“그럴 생각이야. 와이프도 그렇고 희연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아. 환자도 중요하지만 솔직히 내 가족만큼 소중한 사람은 없잖아.”

“그걸 이제 아셨어요? 앞으로는 병원 일 집으로 끌고 들어가지 마라. 우리 김 부원장님 말고도 일할 사람 많으니까 웬만한 일은 모두 믿고 맡겨.”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머리는 그렇게 하라고 시키는데 내 짐을 억지로 떠안기는 것 같아서 그런지 말처럼 쉽지 않네. 내년에 종합 병원으로 승격하게 되면 나도 그렇고 병원 체계까지 달라지지 않겠어?”

“이준영 선생님을 보는 관점도 바꿔.”

“무슨 소리야?”

“원장님이 해야 할 일을 부원장이 대신 하지 말라고. 지금까지 고사하신 이유가 있겠지만 반대로 수락하신 이유가 있을 거야. 그만큼 고심하셨을 테고, 원장님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 아니겠어? 스승님이라는 사실에 집착하면 자칫 월권을 저지를 수도 있다.”

김지훈이 말을 잃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지당한 말이었다.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 행정적인 일은 극히 피하려 한다는 사실에 원장과 부원장의 경계와 직위에 따른 한계를 잊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끝까지 못했다면?’

아무리 제자라지만 이준영 교수 성격상 불편함을 느끼고도 남았다. 설령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해도 외부 시선은 절대 좋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원장직을 넘보는 부원장!

제자라고 월권을 용인하는 스승!

자신만이 아니라 이준영 교수까지 욕을 먹었을지도 몰랐다. 결국 스승의 얼굴에 먹칠을 한 제자라는 말을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식은땀이 절로 났다.

김지훈이 와락 손일석의 어깨를 안았다.

“너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고맙다.”

“새삼스럽게 왜 이래? 그런 감정은 ‘아! 세상에 이런 친구 없구나’ 하는 마음으로 항상 가슴속에 품고 살아. 에휴! 처형과 내가 브레이크를 잡아 주지 않으면 누가 우리 부원장을 챙겨 줄까?”

고마운 일이었다.

퇴근길 내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지만 남편과 아빠임을 잊지 않았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일을 싹 잊고 가족에게만 충실했다.

설거지와 청소 후 뒹굴뒹굴!

희연이 숙제를 도와준 후 뒹굴뒹굴!

잠깐 놀아 주고 땀 줄줄!

아빠가 끓이면 엄마가 끓인 것보다 묘하게 맛있다는 라면을 끓여 준 후 뒹굴뒹굴!

직장인의 면모도 한껏 보여 주었다.

고경아는 어떻게 버티는지 모를 일이었다.

‘엄마라 그런가? 오늘따라 참 예쁘네.’

평생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인이었다.

***

모든 준비가 착착 진행됐다.

간 이식 팀이 수시로 모여 최종 점검을 했다. 곧 복강경으로 집도해야 할 안호석과 오만석은 물론 이준영 교수마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소아외과는 별도의 준비가 하나 더 필요했다.

간 이식은 기존 장비를 이용하면 되지만 소아외과 복강경 기구는 새로 주문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기한 내에 도착한 반짝반짝 빛나는 새 기구가 묘한 압박감을 전했다.

“이제 준비는 다 끝났네.”

“언제 시작하실 겁니까?”

“소아 수술은 적용이 되는 아이가 오는 대로 시도하고, 공여자는 신중하게 선택한 후 환자와 함께 결정하자.”

난치성 희귀 질환은 복강경으로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질환이었다. 일단 일반적인 질환으로 안정성을 확인한 후 경험이 쌓이면 고려해 볼 일이었다.

준비는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김지훈은 참관을 멈추지 않았다.

같은 과정을 진행해도 써전마다 방식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었다. 도움이 될 만한 구석은 아무리 손에 익었어도 다시 살폈다.

특히 이경석과 나종진의 수술에 집중했다.

“부원장님이 보고 있으니까 손이 다 떨리네. 언제까지 들어올 생각이야?”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까지죠.”

나종진은 오죽할까?

복강경을 전문적으로 시행한다고 하지만 김지훈 앞에서는 주름을 잡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더구나 대부분 기본적인 수술인 탓에 도움이 될지 의문만 생겼다.

‘후우! 부담되네.’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붉혔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렀다.

드디어 환자가 왔다.

7세 남아, 우측 서혜부 탈장.

전통적인 방법으로도 절개 부위가 작고, 탈장 주머니만 묶어 주면 되지만 통증이나 흉터를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양측에 발생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고, 재발이 없는 것이 아니기에 복강경으로 시도할 가치가 있었다.

김지훈이 보호자와 만났다.

“탈장은 수술 이외에 치료 방법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간단한 수술로 끝나지만 태훈이는 조금 애매합니다. 기존 방식으로는 재발 가능성이 다소 높은 데다 통증을 꽤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복강경으로 시도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수술 방식을 자세히 설명했다.

장점은 많은 데 비해 단점이랄 것은 거의 없었다. 사실 수술 팀의 실력은 뛰어나지만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일 수도 있었다.

“비용이 조금 더 들지만 확실하게 재발을 막을 수 있고, 입원 기간 역시 이틀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이가 많이 아파하지는 않을까요?”

“말씀드린 것처럼 기존 방식의 탈장 수술은 체격이 클수록 통증을 더 많이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태훈이는 확실히 덜 아파할 겁니다.”

“언제 가능할까요?”

“급한 수술이 아니니까 편하신 날짜로 정하시면 됩니다. 복강경으로 할 경우 수술 전날 입원하고, 수술 다음 날 퇴원하면 됩니다.”

자식이 아프면 더 아픈 사람이 엄마다.

장점이 뚜렷한 복강경으로 수술한다는 소리에 오히려 안심하며 가장 빠른 날짜로 정했다. 해부학적 이유 등으로 실패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김지훈도 내심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 경우는 정말 어른의 축소판이다. 아직은 경험이 없어 원 포트로 수술하기 힘들다는 것이 아쉽네.’

단일공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었지만 복부 벽이 약하고 얇은 아이에게는 도리어 다른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다. 서두르지 않고 시행해 나가야 더 어린 아이들에게도 안전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획기적인 시도가 아니었지만 의미 하나만은 결코 작지 않았다. 작은 발걸음 하나가 씨앗이 되어 더 큰 고통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도 자그마한 위안을 전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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