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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303화 (1,303/1,329)

9화

삐끗하는 순간 바로 찢어질 장을 다루면서도 김지훈의 손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매서운 눈빛으로 오직 수술 부위에만 집중했다.

바짝 긴장한 송진우 역시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조직에서 흘러나오는 액체를 거즈로 닦는 손이 여간 신중한 것이 아니었다.

예상외로 순조로웠다.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염증이 심한 조직에서 나오는 삼출물로 인해 거즈가 다소 붉게 물들 뿐이었다.

고경철이 콧등을 찡그렸다.

‘이렇게 약한 조직을 다루는데 쉽게 보이다니, 언제 봐도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마침내 농양에 바짝 접근했다.

김지훈이 간호사를 찾았다.

“지금부터 내가 요청할 때마다 수술 부위를 중심으로 사진 찍어 주세요.”

수술 팀의 기록만으로는 유불리에 따라 분쟁의 소지가 발생하고도 남았다. 민감한 상황인 만큼 이물의 정체만이 아니라 수술 소견과 과정까지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했다.

찰칵! 찰칵!

김지훈이 신중하게 손을 움직였다.

모스키토 끝이 사라지는 순간!

툭! 주우욱!

고름이 흘러나왔다.

찰칵! 찰칵!

김지훈이 반사적으로 석션을 가져가는 고경철을 막았다. 고름이 배 속으로 퍼지면 제거하기 힘들 수밖에 없는데 의아한 일이었다.

“거즈! 고경철 선생, 거즈 밖으로 빠져나가는 고름만 석션으로 제거해.”

거즈가 누런 고름으로 푹 젖었다.

김지훈이 돌연 간호사에게 마스크를 벗겨 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소장이든 대장이든 어느 한 부분이라도 터졌다면 참기 힘들 정도로 역겨운 냄새가 날 것이다.

“송진우 선생, 맡아 봐. 어때?”

“똥 냄새는 안 나는데요.”

“대장은 터지지 않은 것 같은데 소장은 어떨지 모르겠네. 일단 이물부터 찾아 제거하자.”

단편적인 사실 하나로 확신한다면 명백한 실수가 될 것이다. 농양 주변의 소장과 대장 벽의 상태까지 확인해야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했다.

흘러나오는 고름을 모두 제거했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농양 내부로 기구를 넣어 이물을 찾았다. 톡톡 뭔가 작고 단단한 금속성 물체가 기구 끝에 걸렸다.

신중하게 잡아 끄집어냈다.

김지훈이 꿀꺽 침을 삼켰다.

“셀라인!”

깨끗이 씻었다.

수술 팀의 눈길이 일제히 쏠렸다.

말이 사라졌다.

다들 눈만 껌벅거렸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만 지었다.

찰칵! 찰칵!

있어서는 안 될 것이 분명했다.

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는 정선호 역시 어디선가 많이 봤다는 눈치였다.

김지훈이 수술 방 간호사를 불렀다.

“라파로 기구 중 켈리 하나 부탁해요.”

허탈한 한숨이 터졌다.

이물의 정체는 켈리 끝 부분이었다.

추측건대 수술 중 부러져 나갔을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집도의는 찾는 것을 포기했고, 부러진 기구 끝을 놔둔 채 배를 닫은 것이 확실했다.

“빤히 알았을 텐데 어떻게 이걸 두고 나올 수 있죠? 문제가 생길 줄 몰랐을까요?”

“크기가 작은 데다 수술 기구니까 이물 반응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초등학생도 이런 짓은 안 하겠다. 게다가 바로 농양이 발생한 것으로 봐서는 수술 중 오염이 됐던 것이 분명해. 기구가 부러질 정도니 관리 자체가 안 됐던 거야.”

“명백한 과실이네요. 문제가 엄청 커질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떻게 하긴? 있는 그대로 설명해야지. 이건 실수가 아니라 고의라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야. 일반외과 의사 전체를 욕 먹이는 의사의 과실을 보호할 이유가 없어. 보호자 불러 주세요.”

김지훈의 눈이 이글거렸다.

생각만으로도 화가 치밀었다.

같은 의사라고 입장을 고려할 상황이 아니었다. 실수는 누구든 할 수 있지만 책임감을 가진 써전이라면 배를 열어서라도 반드시 해결하고 끝냈어야 했다.

수술 후 환자가 수차례 고통을 호소했건만 원인을 찾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들어도 직무 유기였고, 의사 전체를 욕먹게 하는 행위였다.

비난받아 마땅했다.

반드시 책임을 지어야 했다.

잠시 후 보호자가 들어왔다.

이물의 정체를 알려 주었다.

보호자의 손이 달달 떨렸다.

“수술 기구가 배 속에 있었다고요? 신문에서 보던 일이 제 와이프에게 벌어졌다고요? 말도 안 돼.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보호자분, 죄송합니다. 수술을 진행해야 하니까 진정하시고 기다려 주십시오.”

김지훈이 마치 자신의 잘못인 양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의사로서 정말 미안하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랄 뿐이었다.

다시 박리가 진행됐다.

새로운 부담이 가중됐다.

김지훈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환자가 받는 정신적 충격이 무척 클 텐데 장까지 자를 수는 없다.’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마침내 고도의 집중력과 극도의 긴장 속에 농양을 둘러싸고 있던 장을 모두 분리해 냈다. 천공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철저하게 소장과 대장의 벽을 살폈다.

물을 부은 후 적절한 압박을 가해 공기가 새어 나오는지까지 살폈다. 육안으로는 천공 부위가 보이지 않았지만 장 내용물이 흘러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천공의 징후는 단 하나도 없었다.

김지훈이 갑자기 혀를 찼다.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일단 수술한 부위는 가급적 건드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담낭을 절제한 부분이 너무 지저분했다. 동맥과 담낭관을 잡을 클립이 빠지지 않은 것이 용할 지경이었다.

별생각이 다 들었다.

‘참담하네. 전문의 면허는 따고 수술한 거겠지? 설마 무자격자가? 아니겠지.’

“송진우 선생, 어떻게 생각해?”

“기존에 수술한 부위는 가급적 건드리지 말라고 배웠지만 두고 보자니 너무 찜찜합니다. 계속 염증이 발생할 것 같기도 하고, 뒤늦게 담즙이라도 새면 또 열어야 하지 않습니까?”

“거칠게 남아 있는 담낭 조직만이 아니라 동맥과 담낭관까지 안전하게 처리해야 될 것 같다. 고경철 선생, 아무리 급해도 절대 이따위로 수술하면 안 돼. 환자를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일 수도 있어. 모스키토!”

기존 수술 부위를 다듬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남아 있는 담낭 조직을 제거하는 내내 김지훈의 마스크가 부풀어 올랐다. 좀처럼 화를 삭이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후우! 흥분하면 안 된다.’

남아 있는 동맥과 담낭관을 처리할 때가 되자 김지훈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변했다. 여느 수술처럼 평정을 유지하는 가운데 긴장과 집중을 유지했다.

살얼음판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박리를 진행한 끝에 동맥과 담낭관의 뿌리를 찾았다. 그나마 건강한 부위를 확보해 다시 잡아 묶었다.

“타이!”

송진우의 긴장이 눈에 보였다.

소아외과를 담당하는 써전답게 세심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무난하게 타이를 끝냈다. 클립과 실을 이용해 이중으로 묶은 이상 터질 일은 없을 것이다.

“후우! 아예 수술을 다시 한 것 같네. 더 이상 손봐야 할 부분은 없지?”

“한결 안전해 보입니다.”

배 속을 깨끗이 씻어 냈다.

문제가 없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농양을 감싸고 있던 소장과 대장을 재차 삼차 확인했다. 박리 중 손상을 거의 입히지 않아 염증이 빠지면 다시 정상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송진우 선생, 마무리해.”

자리에서 빠져나와 배를 닫는 과정을 지켜보는 김지훈의 얼굴이 펴지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다 말고 찡그리기를 반복했다.

‘농양이 발생한 원인도 애초 담낭을 제거한 부위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어디서 교육을 받았기에 이따위로 수술을 한 거야? 이건 실수라고 할 수가 없어. 책임감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놈은 더 이상 써전이 아니야.’

“컷!”

분을 삭이는 사이 수술이 끝났다.

환자가 회복실로 옮겨졌다.

“사진 잘 챙기고, 기록 정확히 해.”

김지훈이 교수 휴게실로 향한 뒤 소파에 몸을 기댔다.

이토록 심난한 분위기 속에서 수술을 한 적이 없었다. 집도의에게 느껴지는 분노도 가라앉지 않았다. 수술은 잘 끝났건만 답답한 마음을 풀 길이 없었다.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보호자를 찾았다.

김지훈을 보자 한걸음에 달려왔다.

아직도 격앙된 안색이었다.

의사를 믿고 아내의 수술을 맡긴 대가가 너무 큰 탓일 것이다. 아내를 향한 걱정, 불안, 사랑이 분노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까?”

“잘 끝났습니다만, 농양이 발생한 소장과 대장에 염증이 심해 며칠 지켜봐야 합니다. 죄송한데 몇 가지 다시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수술 후 세 차례 내원했고, 아무 검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내원 당시 복부 진찰은 하지 않았나요?”

“진찰은 했지만 어떤 검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김지훈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부러진 기구를 남기고 나온 상황에서 농양까지 잡혔는데 진찰을 하고도 몰라? 수술을 그따위로 할 정도면 수술 부위 근처만 만져 보고 말았겠지.’

“첫 수술을 한 병원과 연락을 취하셨습니까?”

“경황 중이라 아직 못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일단 정리되는 대로 필요한 자료를 모두 제공해 드릴 테니 그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보호자가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의료사고가 분명했다. 대부분 양측의 주장이 엇갈려 소송까지 벌이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들었다.

과실 입증이 어려운 탓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의사들이 관여하길 꺼려하기 때문이었다. 입증이 안 되니 적정한 피해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김지훈이란 의사는 도리어 자신의 일처럼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선생님, 외람된 말씀인데 우리를 도와주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대부분 같은 의사의 문제라 비협조적이라고 들었습니다.”

“솔직히 난감한 문제입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과실 여부가 명확하지 않거나 불가피한 일이지만 피해가 발생한 것도 사실이라 분쟁을 피하기 어렵죠. 그게 결국 의사와 환자 간의 불신을 초래하고요. 전 그 벽을 조금이라도 허물고 싶습니다.”

“그래서 도와주시는 겁니까?”

“아내분의 경우는 이견의 여지가 없어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객관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소리를 듣고 싶네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 판단을 내려도 수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경계가 불분명한 문제일수록 상호 간의 신뢰만큼 중요한 요소는 없을 것이다. 김지훈은 분쟁이 격화된 경우에도 신뢰만큼은 잃지 않고 싶었다.

불가능할지라도!

김지훈이 휴게실로 돌아왔다.

답답한 심정 때문인지 옷을 갈아입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천장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을 때 누군가 노크를 했다.

송진우였다.

“무슨 일이야?”

“입단속을 해야 할까요?”

“입단속? 왜?”

“의료 과실이 명백하지만 전후 사정을 확실히 모르는데 여러 사람이 알아서 좋을 일이 없지 않습니까?”

“이게 과실일까? 사고라고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중대한 문제야. 애초 실력이 부족해 수술을 개판으로 한 것은 둘째 치고 아예 기본을 지키지 않았어. 그런 의사가 수술을 한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어. 경철이 입이든, 선호 입이든 막을 생각이 없다.”

“알겠습니다.”

송진우가 눈가에 힘을 주었다.

‘기본을 갖추지 못하면 의사로 인정조차 하시지 않는구나. 하긴 이 환자도 조금만 더 늦었으면 소장과 대장까지 잘라야 했을 텐데 절대 넘어가서는 안 되겠지.’

여러 면에서 수술 팀에게 경각심을 준 수술이었다.

다음 날.

오후 늦게 일과를 마친 김지훈이 유난한 피곤에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최해연 환자 때문인지 수술 내내 어깨에 잔뜩 힘이 실린 탓이었다.

‘왜 이렇게 화가 안 가라앉는지 모르겠네. 힘들다!’

똑똑똑!

일 끝나지 않았다.

민정호였다.

“이 시간까지 퇴근 안 했어요?”

“부탁하신 병원과 집도의에게 연락이 됐습니다. 그런데 집도의 이름이…….”

‘왜 얼버무려? 아는 사람인가?’

한 장의 팩스를 받아 든 김지훈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하루 종일 참고 있던 분노를 당장이라도 터트릴 것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하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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