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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302화 (1,302/1,329)

8화

느낌이 안 좋을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했다. 환자의 절박한 호소에 무작정 검사부터 시행한다면 정작 필요한 검사를 빼먹을 수도 있었다.

“일단 배부터 볼까요?”

김지훈이 신중하게 진찰을 시작했다.

담낭이 절제됐을 부위부터 절개창까지 염증이 발생할 수 있는 부위를 꼼꼼하게 살폈다. 가벼운 압통을 호소했지만 한 달 가까이 통증을 유발할 만한 요인이 없었다.

‘이 정도면 회복되고도 남을 텐데 이상하네. 수술 부위가 아닌가? 다른 질환이 숨어 있나?’

청진을 했다.

장 소리가 상당히 미약해 문제가 있다는 것은 확실했지만 외과 치료가 요구되는 배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심한 장염이나 수술 후 흔히 보는 위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김지훈이 깜짝 놀라 손을 멈췄다.

“아악! 아파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수술 부위나 절개창과는 하등 관련이 없을 배꼽 아랫부분을 청진기로 눌렀을 뿐이었다.

일반적인 통증으로 보기 힘들었다.

환자를 달래 가며 아랫배 구석구석을 촉진한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뭔가 있다. 이렇게 좁은 부위에서 심한 통증을 유발할 수 있는 질환이 뭐가 있지?’

대장 쪽이라면 설사 등 다른 증상이 나타났을 것이다. 난소, 자궁 등에 발생한 산부인과 질환 혹은 방광 등의 비뇨기과 영역 이외에 떠오르는 질환이 없었다.

“혹시 최근 생리 불순이나 하혈이 발생했거나, 소변 볼 때 상당히 불편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런 증상은 하나도 없었어요.”

“알겠습니다. 수술 부위가 아니라 하복부에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촉진만으로는 알 수가 없네요. 혈액 검사와 복부 촬영, 초음파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결과에 따라 필요하다면 CT까지 찍어야 하고요.”

“어디가 잘못된 거죠?”

어딘지 모르게 느낌이 안 좋았다.

결과를 보려면 다시 예약을 잡아 내원해야 하는 외래에서 검사를 시행할 상황이 아니었다.

“검사 결과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선생, 환자분 응급실로 모셔요.”

무척 신경 쓰였지만 진료할 환자가 밀렸다. 서둘러야 실수만 하기 마련이었다. 침착하게 진찰을 해 가며 마지막 환자를 볼 때쯤 연락이 왔다.

김지훈이 응급실로 향했다.

‘수술 부위와 압통을 느끼는 부위가 너무 멀다. 아무리 생각해도 담낭에만 집중해 다른 질환을 놓쳤을 가능성이 높아. 초음파를 시행했을 텐데 아무것도 안 보였나? 산부인과나 비뇨기과 질환이면 보였을 확률이 높을 텐데 이상하네.’

정확한 진단은 몰라도 어느 과 질환인지 정도는 감별해야 했다. 내심 수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혈액 검사부터 확인했다.

백혈구 수치를 비롯해 염증 수치가 상당히 증가했다. 한 달 동안 계속된 복통을 생각할 때 배 속에서 뭔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복부 촬영을 확인했다.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엉뚱한 음영이 관찰됐다.

“이거 뭐야? 지퍼 끝이 떨어져 나갔나? 인턴 선생, 아티팩트 같은데 확인 안 했어?”

방사선 사진에서 이물로 보이는 것이 관찰되면 부주의에 의한 아티팩트(Artifact:인공 구조물)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촬영 시 몸에 찬 금속성 물건을 모두 제거해야 하는 이유였다.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당황하고도 남아야 할 응급실 인턴이 재빨리 또 한 장의 사진을 걸었다. 아무리 바빠도 사진만은 꼼꼼하게 확인했다는 얼굴이었다.

“다시 촬영한 사진입니다. 저도 아티팩트인 줄 알았습니다만 동일하게 보입니다. 환자에게도 철저히 확인했습니다.”

좌우로 돌려 찍은 사진에서도 하복부 한가운데 깊숙한 부분에서 보이는 이물의 위치가 변하지 않았다. 결국 복벽이 아닌 그럼 배 속에 있다는 소리였다.

‘외상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인데 뭐지?’

이물은 무조건 외상부터 생각해야 했다. 그러나 심각한 손상을 입은 병력이 없었다. 만에 하나 있다고 해도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아왔는데 새삼 문제를 일으킬 리 없었다. 더구나 수술을 받은 후 증상이 발생했다.

결국 수술이 원인이라는 말이었다.

‘라파로로 했는데 그렇게 작은 구멍으로 도대체 뭐가 들어간 거야? 가능하긴 한 건가?’

초음파 소견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더 심각했다.

김지훈의 얼굴이 확 굳었다.

Abdominal abscess due to foreign body.

(이물로 인한 복강 내 농양)

비명을 지를 정도로 심한 압통을 호소한 이유는 복강 내 발생한 농양 때문이었다. 이물을 중심으로 최근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덧붙였다.

수술 이외에 다른 원인을 생각할 수 없었다.

다만 이물이 무엇인지에 따라 원인이 바뀔 수는 있었다. 사고로 인한 외상 이외에 경우 수가 없어 무척 희박한 확률이지만 말이다.

즉각 환자와 보호자를 찾았다.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은 사항이 있습니다. 정말 크게 다친 적이 없습니까? 아니면 뾰족한 물체에 배를 찔린 기억은 없습니까?”

“없어요.”

질문 자체가 난센스였다.

배를 뚫고 복강 내에 이물이 들어갈 정도의 손상을 기억하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 어마어마한 통증을 느꼈을 텐데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원인을 확정적으로 단언하기 어렵지만 배 속에 이물이 있습니다. 주변에 고름이 잡혀 심한 복통, 열, 오한 등이 동반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물이요? 도대체 뭐가 들어가 있다는 말입니까? 혹시 수술 중에 들어간 것 아닙니까?”

보호자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수술 이외에 칼을 댄 적이 없는 이상 당연한 의심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별일이 다 있었고, 여러 사람이 걸린 이상 속단은 금물이었다.

“가능성이 높지만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CT를 시행해 농양 주변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수술로 제거해야 합니다.”

환자가 사색이 됐다.

가뜩이나 수술이 잘못됐다는 의심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수술을 해야 한다니 눈앞이 캄캄할 것이다.

보호자가 이를 악물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 입장에서는 처음 수술한 의사를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술을 하신 후 이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당연히 말씀드려야죠.”

“혹시 같은 의사라고 숨기시는 것은 아니겠죠?”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잘 압니다. 물론 저도 의사 입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겠지만 분별없는 행동을 하지는 않습니다. 수술장에서 직접 확인하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곧바로 CT를 시행했다.

김지훈의 얼굴이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이물이 확연하게 보였다.

문제는 이물이 아니라 농양의 양상이었다.

소장과 대장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수술 기구에 쓰이는 금속 자체가 염증 반응을 거의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장 천공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소장이나 대장 혹은 둘 다 절제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수술이 예상외로 커질 수도 있겠어.’

아뻬와 치질 수술 후 발생한 합병증이 우습게 생각될 지경이었다. 환자를 잘 치료하는 것이 최우선이었지만 담낭을 절제한 집도의도 반드시 알아야 할 상황이었다.

솔직히 가재는 게 편이라고,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과실과 불가피한 상황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기도 했다.

‘과실이면 난리 나겠네. 사진 한 장이면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괜찮다는 말만 한 거야. 후우! 마음 같아서는 나 몰라라 하고 싶지만 보호자와 합의할 기회라도 줘야지.’

명백한 과실에 의한 의료사고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환자에게 큰 피해를 주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해결 방안은 결국 돈이 될 수밖에 없었다. 법적인 문제는 논외로 하고 말이다.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게 중립을 지킬 사안인가?’

의료에 문외한이라고 해도 이물의 출처가 수술이 맞는다면 과실이라는 점에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결코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개 숙여 백번 사죄하는 것이 마땅했다.

수술 팀을 불렀다.

송진우, 고경철, 정선호였다.

이젠 네 명이 들어가는 수술이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특수해 사소한 문제라도 사전에 예방해야 했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더 있는 편이 나았다.

수술을 들어가기 전 집도의가 근무하는 병원에도 연락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수술 중 무슨 일이 벌어졌든 합리적으로 대처하려면 시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민정호를 찾았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소문나 좋을 일이 없으니까 되도록 조용히 연락해 달라는 말씀이시군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라파로를 했는데 배 속으로 이물이 들어가다니 나도 이해가 안 되네요. 일단 확인해 봐야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내 추측이 틀리면 좋고, 맞는다면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하겠죠. 환자와 보호자에겐 어떤 보상도 부족하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틀리길 바랐다.

솔직한 마음이었다.

의사 개개인에게는 상당히 호의적이지만 집단으로 인식하는 순간 부정적인 이미지가 앞서는 것이 현실이었다. 과실 또한 다르지 않아 한 명의 문제를 빌미 삼아 의사 전체를 돌팔이로 매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람들 탓만은 아니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의사 스스로 자초한 면도 분명히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명백한 과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불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상반된 감정 속에 보호자를 다시 만난 김지훈이 침착하게 수술과 마취의 위험성을 설명했다. 과도하게 강조해 봐야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 빤해 평소와 똑같이 행동했다.

“꼭 배를 열어야 합니까?”

“복강경으로는 제거하기 힘듭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언제 연락이 갈지 모르니까 수술 방 앞에서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환자를 수술실로 옮겼다.

당직이 아닌 날 또 수술을 들어간다는 사실, 다른 병원 의사가 시행한 일 차 수술 후 문제가 생겨 다시 수술하는 것이 최근 들어 벌써 세 번째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곧바로 마취가 시작됐다.

결코 즐거울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유난히 공기가 무거웠다.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기에 다른 의사의 일만으로 치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시작하셔도 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배를 열었다.

라파로로 했건만 흉이 쉽게 생기는 체질인지 벌써 유착이 발생했다. 어쩌면 농양으로 인한 염증 반응 때문일 수도 있었다.

조심스럽게 복막과 유착된 부분을 박리했다.

배 속이 환히 드러났다.

김지훈이 인상을 썼다.

‘개복보다 훨씬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데 수술 부위가 왜 이렇게 거칠어 보이지? 후우! 실력이 부족하면 확실하게 배우고 난 후에 수술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욕을 해 봐야 제 얼굴에 침 뱉기였다.

치미는 화를 꾹꾹 눌러 참은 김지훈이 농양이 발생한 부위를 찾았다. CT 소견대로 소장과 대장이 농양을 중심으로 바짝 붙어 있었다.

시쳇말로 떡이 된 것이다.

한숨만 나왔다.

수술 방법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농양을 포함해 들러붙은 소장과 대장을 한 덩어리로 제거하는 것이었다. 장을 자르고 다시 이어 주어야 하지만 고름이 퍼질 염려가 없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쉬울 수도 있었다.

반면 환자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갈 수밖에 없었다. 치료 기간까지 길어져 일상으로의 복귀가 그만큼 늦어진다는 것 자체가 큰 단점이었다.

두 번째는 농양과 이물만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성공한다면 환자에게 가장 유리한 방법이었고, 수술 범위가 적은 만큼 회복도 빨라질 방식이었다. 첫 수술을 한 집도의도 부담을 덜 것이다.

단점 또한 만만치 않았다.

미세 천공이 동반됐다면 수술 후 아예 장이 터질 수 있었다. 100퍼센트 재수술을 해야 할 테고, 차라리 다 제거하는 편이 훨씬 나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집도의에겐 절제보다 훨씬 어려운 수술이었다. 박리 도중 장 특히 대장이 찢어지기라도 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상황이었다.

김지훈이 고민을 거듭했다.

‘오직 환자만 생각해야 한다. 어느 쪽이 더 환자에게 유리할까? 첫 집도의가 짊어져야 할 책임과 부담을 철저히 배제하고 결정해야 한다.’

CT를 다시 확인했다.

임상적으로 미세 천공이 의심되긴 했지만 천공이 발생했다는 어떤 소견도 없었다. 수술 중 발생한 조직 찌꺼기와 이물이 반응하며 농양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결론을 내렸다.

“송진우 선생, 소장과 대장 박리하고 이물과 농양만 제거하자.”

“염증이 심할 텐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살펴보지도 않고 자르는 건 환자에게 결코 득이 될 것이 없어. 수술 도중 포기하더라도 일단 진행하자. 모스키토!”

소장과 대장 사이를 조심스럽게 벌렸다.

유착으로 단단하게 들러붙은 데다 조직까지 약해 김지훈도 쉽사리 진행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실력에 관한 한 자타가 공인하는 써전이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공간을 확보했다. 마치 간을 자를 때처럼 조금씩 박리해 미세한 손상마저 피하며 농양으로 접근했다.

사악! 사악!

소장과 대장을 분리하는 소리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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