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주말 집담회를 준비하고 있던 고경철과 양재필이 어느 틈엔가 달려와 필사적으로 바이탈을 잡고 있었다. 정선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김지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운에 피칠을 한 채였다.
“피 아직 안 왔어? 인턴 선생, 혈액실로 가서 직접 가져와. 정선호, 빨리 피 안 짜고 뭐 해?”
살가운 사람은 아니어도 평소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바이탈이 흔들리는 환자 앞에서는 성인군자라 해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띠띠띠띠띠띠!
급박한 심박동 소리가 잦아들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호흡이 멎을 것만 같았다.
“비본 두 개 주고, 수액 교체해. 간호사 선생, 혹시 모르니까 CPR 준비합시다.”
CPR이란 말에 혈액 팩을 짜던 정선호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심근경색 환자에 이어 또 한 명의 환자가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잡히지 않는 바이탈, 탈색된 얼굴, 차갑게 식은 피부,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소변까지 모든 소견이 환자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하지? 피만 짜면 되는 건가?’
순간 머릿속이 텅 비었다.
정선호만의 상황이었다.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간신히 뛰고 있는 심장을 지키기 위해 수액과 혈액을 쏟아붓다시피 투여하고 있었다. 수시로 동맥혈 검사를 시행해 필사적으로 혈액의 항상성을 유지시켰다.
인투베이션까지 시행했다.
폐의 기능이 떨어지지 않도록 호흡을 유지시키며, 100퍼센트 산소 주입까지 필요한 조치를 모두 시행했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일 분이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주요 장기가 버틸 수 있는 한계가 깨지지 않았다면 반응을 보여야 했다. 조금이라도 혈액이 공급되고 있다면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몰랐다.
‘자발 호흡까지 사라지면 끝이다. 후우! 그깟 비장 하나 깨진 걸로 목숨 하나를 잃을 수는 없는데 너무 늦었나?’
“부종 발생하면 더 악화된다. 라식스(Lasix:이뇨제) 하나 투여해.”
대량 주입된 수액과 피가 온전히 혈관을 타고 흘렀다면 벌써 바이탈이 잡혔을 것이다. 깨진 비장만이 아니라 조직 속으로 빠져나간 양이 거의 대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유로 피가 부족한 상태에서도 부종이 유발된다. 바이탈의 핵심인 심장과 폐에 상당한 부담을 줄 요소였다.
이뇨제까지 투여됐다.
그때 한 방울의 소변이 흘러나왔다.
돌연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띠띠띠! 띠띠띠!
심박동 수가 떨어졌다.
혈압이 잡히기 시작했다.
자발 호흡은 사라지지 않았다.
“동공반사 살아 있습니다.”
70-80-90.
마침내 혈압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비장이 깨진 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환자를 살릴 방법은 오직 수술뿐이었다. 하지만 바이탈이 워낙 크게 흔들린 직후라 적절한 타이밍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전신 마취만으로도 다시 쇼크 상태에 빠져 사망할 수 있었다.
‘시간을 끌면 보다 안전해질까? 아니다. 나빠질 확률이 훨씬 크다. 테이블 데쓰를 각오하는 수밖에 없다.’
“간호사 선생, 보호자 불러 주세요. 고경철 선생, 동의하는 즉시 수술 방으로 옮기자.”
보호자들이 주저앉았다.
바들바들 떨며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수술을 못하면 100퍼센트 사망이었다. 수술을 한다고 해도 버틸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 그러나 보호자에겐 선택의 길이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는 도리어 허망한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우리 아빠 살려 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경철 선생, 옮기자.”
드르르륵!
환자를 싣고 있는 침대를 잡고 수술 팀 모두 달렸다. 단 일 초라도 아끼기 위해 엘리베이터까지 미리 잡아 놓고 대기했다.
수술실에 도착했다.
띠띠띠띠! 띠띠띠띠!
바이탈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산소 포화도까지 떨어졌다.
마취과 의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부원장님, 환자 상태가 너무 안 좋은데 마취해도 되겠습니까? 테이블 데쓰 각오하셔야 합니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의사에게도 선택의 도리가 없었다.
더 이상의 응급 치료는 무의미했다.
깨진 비장을 제거하고, 동맥을 잡는 것 이외에 어떤 방법도 없었다. 실낱같은 희망에 불과할지라도 오직 살릴 수 있는 길로만 가야 했다.
책임은 그 이후의 문제였다.
“시간 없어요. 빨리 진행합시다.”
환자의 의식이 없었다.
마취와 거의 동시에 배를 개복했다.
배 속이 피로 꽉 차 있었다.
목표는 명확했다.
퍼내다시피 피를 제거했다.
깨끗한 시야를 확보할 겨를조차 없다고 판단한 김지훈이 피가 흥건한 채로 깨진 비장을 잡았다.
“켈리! 타이! 컷!”
연결 조직을 거칠게 묶고 잘랐다.
그 안에 동맥이 있어야 했지만 일일이 확인하는 것마저 허용되지 않았다. 수없는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과 감각을 믿었다.
순식간에 비장을 들어냈다.
끝이 아니었다.
“고경철 선생, 절제한 비장 연결 조직에 동맥이 포함됐는지 확인해. 양재필 선생, 정선호 선생, 간 확인한다.”
동반 손상 확인이 남았다.
“물! 석션! 탭!”
찌이익! 찌이익!
한도 끝도 없는 것처럼 석션 줄을 따라 붉은 액체가 끊임없이 빨려 나왔다. 두툼한 천이 흥건하게 젖은 채 바닥에 수북이 쌓였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양이었다.
심장이 뛰고, 자발 호흡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기적에 가까웠다.
“동맥 확인했습니다.”
김지훈은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간, 위장, 췌장, 소장 및 대장까지 샅샅이 뒤져 추가 출혈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만 집중했다.
동반 손상은 없었다.
사고 후 병원 내원까지 적절한 시간을 놓친 것이 최악의 상황에 빠진 원인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드레인 넣고 닫자.”
띠띠띠띠! 띠띠띠띠!
여전히 바이탈이 불안했다.
마취 시간까지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복막, 근육, 피하지방, 피부를 차례차례 봉합할 여유가 없었다. 가장 굵은 실을 든 김지훈이 복벽 전체를 한 번에 떴다.
몇 번의 수처로 배를 닫았다.
Layer By Layer가 아닌 One Layer 방식이었다.
“중환자실로 갑시다.”
드르르륵!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의사와 간호사가 우르르 달려들어 필요한 처치를 빠르게 수행했다. 바이탈 측정, 혈액 검사, 흉부 사진 촬영 등이 순식간에 이어졌다.
“동공반사 있어?”
“반응합니다.”
“혈압은?”
“심박동 100회 전후고, 90에 60입니다.”
“호흡은?”
“자발 호흡이 있습니다만 미약합니다. 인공호흡기를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연결해.”
김지훈이 얼굴을 펴지 못했다.
동공반사가 있어 다행이었지만 의식 여부를 평가할 수 없었다.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탓이라 여기고 싶었지만 워낙 큰 충격을 받아 혼수상태를 배제하기 힘들었다.
통상의 치료 이외에 특별한 치료가 없었다.
대량 출혈과 수혈로 인해 완전히 붕괴됐을 체내 균형이 회복될 때까지 바이탈을 유지시키고, 합병증을 방지하면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슈우욱! 슈우욱!
인공호흡기 소리가 건조하게 들렸다.
김지훈이 보호자를 만났다.
“손상된 비장을 제거했고, 다른 장기 손상은 없었습니다만 너무 늦게 도착했습니다. 지켜봐야 합니다.”
숨죽인 오열이 터졌다.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었다.
정말 무력해지는 순간이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눈가를 찡그리던 김지훈이 답답함을 못 이기고 훅 숨을 뱉어 냈다. 의사의 노력과 정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다 말고 혀를 찼다.
‘사람 많다고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네 명 모두 자리를 지킬 이유가 없지. 너희들은 아직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할 때야.’
“고경철 선생, 집담회 아직 안 끝났을 거야. 다들 데리고 가서 참석해.”
“환자는요?”
“내가 있을 테니까 오후 회진까지 다 돌고 내려와. 양재필 선생, 이 환자 기록 확실하게 해.”
김지훈이 환자 앞에 앉으며 손을 저었다.
잠시 망설이던 고경철이 양재필, 정선호와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도중 정선호가 유독 눈치를 보며 모기만 한 목소리로 물었다.
“김지훈 선생님도 불안하시겠죠?”
“당연하지. 안 불안한 사람 있겠어? 수술실에서 환자가 사망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야.”
“살 수 있을까요?”
“누가 알겠어?”
“이 와중에도 기록을 확실하게 하라는 말씀을 하시네요. 불안해서 그러실까요?”
고경철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도대체 뭘 배운 거야? 김지훈 선생님이 인턴 차트까지 확인하시는 이유를 몰라서 물어?”
정선호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미 김지훈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환자가 사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걱정이 너무 앞선 나머지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팍팍 인상을 쓰던 고경철이 무엇인가를 꾹꾹 눌러 참으며 말했다.
“나중에 환자 차트 확인해 봐. 테이블 데쓰까지 각오했던 만큼 김지훈 선생님 기록이 상당히 많을 거야.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기록하시는지 확실하게 배워. 누가 킵을 하든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야 해.”
따끔한 말을 던진 고경철이 회의실로 들어갔다. 집담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중환자실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띤 논의가 진행 중이었다.
정선호가 구석에 앉았다.
가슴이 떨릴 정도로 불안했다.
‘살 수 있을까?’
걱정이 걱정을 낳았다.
불현듯 소송이라는 단어까지 떠올랐다.
학교 다닐 때 의료 분쟁에 대해 배울 정도로 의사에게는 현실적인 문제였다. 가장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탓인지 이상스럽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때 고경철과 양재필이 눈에 들어왔다.
엄청나게 깨지면서도 눈빛이 살아 있었다.
선배들의 눈빛에 숨은 두려움은 소송 따위가 아니었다.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열정이었고, 이는 곧 환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중환자실 환자만이 아니라 매일매일 수술대 위에 오르는 모든 환자들이 생과 사의 경계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생과 건강을 위해 싸우는 선배들에게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알고 싶어졌다.
지성오는 분명 집담회 중 인턴이 할 일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귀를 기울여야 했다. 일 년 내내 비슷한 수술을 하면서도 집담회가 매주 반복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극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듣던 대로 살벌함 그 자체였다. 심지어 일반외과만의 전문적인 내용이 오갈 때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뜨겁고 열정적이었으며, 배우고 가르치려는 의욕으로 넘쳐났다.
소문난 써전들이 근무하는 전문 병원!
결코 우연히 얻은 명성이 아니었다.
정선호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어떻게 하면 그 환자를 살릴 수 있을까?’
모든 생각이 중환자실 환자에게 집중됐다. 하지만 지식이 너무 얕았다. 결국 배워야 한다는 말이었고,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 손을 내밀어 줄 선배가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지훈까지 말이다.
집담회가 끝났다.
교수들과 회진을 돌아야 하는 고경철이 병동으로 향하며 정선호에게 오더를 내렸다.
“선호야, 중환자실에서 킵해. 김지훈 선생님이 어떻게 환자를 보는지 잘 보고 배워.”
정선호가 중환자실로 향했다.
눈에 익은 보호자들이 절망적인 얼굴로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응급실의 악몽과 배 속 가득한 피가 떠오르며 또다시 불안이 몰려왔다.
그러나 확실히 달랐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환자를 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비록 인턴일지라도 의사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했다.
정선호가 조심스럽게 환자 앞에 섰다.
김지훈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뜸 물었다.
“정선호 선생, 주말에 근무지?”
“예. 당직입니다.”
“비지에이부터 하고, 환자 파악해.”
전공의가 아닌 인턴인데 환자 파악이라니 어딘지 앞뒤가 맞지 않는 오더였다. 이준영 교수만큼 어려운 교수였다. 의문이 가득했지만 진의가 무엇인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곧바로 움직였다.
김지훈은 환자 곁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