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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298화 (1,298/1,329)

4화

하나하나 당면한 일들이 해결되고 있었다. 약간의 난관이 남아 있지만 치밀하게 대처한다면 어렵지 않게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일반외과 전공의 확보도 마찬가지였다.

별별 소리를 다 들어도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사태는 벌어진 적이 없었다. 전문 병원도 다르지 않을 테지만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 또한 현실이었다.

누구도 확신하지 못할 일이었다.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교수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인간적인 면모나 개인적인 인연도 일부분 작용하겠지만 일반외과 본연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김지훈이 턱을 매만졌다.

불현듯 인턴 때 생각이 났다.

‘몇몇 교수님 수술을 보며 정말 충격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었는데 후배들에게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 가능할까? 수술을 통해 바이탈이 깨진 환자를 극적으로 살려 내는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환자 치료에 필요한 요소는 수없이 많다. 모든 과들이 공유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결국 일반외과만이 할 수 있는 수술이 핵심이었다.

수련 부장인 서도진도 십분 동의했다.

“현재도 잡일을 거의 주고 있지 않지만 최대한 환자와 수술 위주로 돌리겠습니다. 일단 많이 봐야 우리 과의 진수를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좋은 생각이야. 오프 일정 잘 조정해서 메이저, 마이너 수술을 골고루 볼 수 있게 조치해 줘. 응급실도 양재필 선생이나 고경철 선생과 함께 돌리는 게 좋겠지?”

서도진이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 곡소리 나겠는데요? 성오도 힘든 기색이 역력했는데 수술 방과 응급실 위주로 돌리면 선호가 오자마자 기겁을 하겠습니다.”

김지훈이 한술 더 떴다.

“병동 업무도 소홀히 하면 안 돼. 수술 후 치료가 무엇인지 제대로 못 보면 반쪽 수련에 불과하잖아.”

“이거 오히려 내쫓는 거 아닙니까?”

“가장 기본적인 업무를 힘들어하면 전공의로 뽑을 이유가 없어.”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어떤 수술을 들어가도 인턴이 퍼스트를 설 기회는 없었다. 결국 끌개 하나 들고 졸음에 뚝뚝 꺾이는 다리를 붙잡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관심이 없다면 고역에 불과했다.

최악의 경우 외과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인턴의 성향이 같을 리 없었고, 김지훈이 원하는 전공의는 일반외과 의사로서 자부심을 갖고자 하는 의사였다.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실력 있는 인턴이 지원하면 좋겠지만 어차피 미숙할 테고, 손은 차차 키워 주면 돼. 기본적으로 우리 과가 어떤 과인지 알고 들어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단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 수술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환자를 살린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 서도진 선생도 그래서 우리 과를 전공한 거 아니야?”

“저야 선생님 보고…….”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하!”

흔히 내외산소라 불리는 네 개 과를 메이저로 칭하는 이유가 있다. 단순히 오랜 역사를 가졌다거나 환자가 많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신경외과나 응급의학과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삶과 죽음을 가장 많이 접하고, 치료하는 과이기 때문이었다. 실제 일반외과에서 빈도수로 수위를 다투는 아뻬조차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이상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면이 피부로 다가오는 것은 별개였다.

누가 아뻬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까?

심지어 의사조차 갖가지 합병증을 경험하지 못하면 무척 간단한 수술로 여기기 마련이었다. 인턴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김지훈이 탁 손바닥을 마주 쳤다.

“선호나 성오나 모두 탐이 나지만 우리 과 일이 힘들게만 느껴진다면 엎드려 절해도 지원할 생각조차 하지 않을 거야. 우리 과를 선택할 수 있는 이유와 열정이 있어야 돼. 그래야 안 도망가지.”

“일 년 동안 모두 열여섯 명이 파견될 텐데, 그중에 지원자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선호가 근무 시작하지? 부탁 하나 하자. 내 수술에 배정해 줘.”

“어후! 재필이도 힘들어하는데 오자마자 선생님 간 이식 수술에 넣으라고요?”

“일 년 차보다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인턴과 전공의의 입장과 마음가짐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정선호에 대한 기대가 욕심을 부리게 하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정선호는 바로 앞 텀으로 근무한 지성오와 또 다른 근무를 하게 됐다. 무지무지하게 힘들 수밖에 없는 일정이 될 것이다.

설상가상!

그 시간, 손일석이 손가락을 뚝뚝 꺾었다.

“성오야, 루뻬 끼고 혈관 수술을 본 소감이 어때? 맨눈으로 보는 것과 확실히 다르지?”

“예? 그게…….”

지성오가 말꼬리를 흐렸다.

퍼스트를 서는 고경철 옆에 앉아 수술을 지켜보았을 뿐이었다. 새로운 경험이긴 했지만 소감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었다.

“루뻬만 껴 본 거지만 수처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구경했잖아. 기본이 손에 배어야 어떤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어때? 내 수술 들어온 보람이 있지?”

손일석의 눈빛이 야릇했다.

압박인지, 꼬시는 것인지 몰라도 하늘보다 더 높은 교수의 말인 이상 최소 맞장구는 쳐야 했다. 모든 성의를 다해서 말이다.

“예. 한 번 더 보고 싶습니다.”

“자식! 아부는!”

“절대 아닙니다.”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그럼 너하고 단짝처럼 붙어 다니는 선호도 빼먹을 수 없지. 시간 날 때마다 내 혈관 수술에 참가해야 한다고 미리 말해 놔.”

“예? 선호도요?”

“뭘 그렇게 놀라? 많이 배우고 갈수록 너희들 앞날이 피는 거야. 고경철 선생, 안 그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지성오의 한마디 말까지 더해지며 정선호의 지옥 생활이 확정됐다. 영원한 라이벌인 김지훈과 손일석의 눈에 든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도 부족한지 손일석이 불과 이 개월 만에 볼이 홀쭉해진 지성오를 보며 자연스럽게 장래를 논했다.

“성오야, 피를 보니까 피가 막 끓어오르지 않아? 내가 보기에 넌 천생 써전이다. 부담 갖지 말고 딱 일 년 후에 이 자리에서 또 보자.”

흠칫 놀라는 지성오의 어깨에 손일석의 손이 나비처럼 내려앉았다. 분명 부드럽기 짝이 없는데 돌덩이보다 더 무거운 압박에 지성오가 휘청거렸다.

과연 어떤 효과가 날까?

이준영 교수는 원장 수락 문제로, 정선호는 날벼락에 가까운 상황으로, 김지훈은 아직도 남아 있는 갖가지 문제로 고민을 거듭한 주말이 지났다.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과였다.

병원 내 일을 짊어지고 있는 교수들에게야 반복적인 일상이었지만 새로운 과의 일을 시작한 누군가에게는 상당히 초조한 시간이었다.

‘일반외과는 어떤 과일까? 그동안 보았던 면과 다른 점이 있을까?’

정선호의 눈이 일상을 좇기 시작했다.

오전 첫 수술 환자가 옮겨졌다.

이준영 교수가 가장 먼저 메스를 들었다.

나이를 착각하게 하는 체격과 솥뚜껑만 한 손, 무뚝뚝한 얼굴과 달리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수술을 진행했다. 간간이 들리는 몇 마디 말과 언뜻 스치는 표정은 그 자체로 카리스마였다.

‘밖에서 봐도 정말 위압적이시네. 그런데 수술 내내 흥분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으셨는데 화염방사기란 별명이 왜 붙었지? 성오, 이 자식은 꼭 중요한 정보를 빠트려요.’

경험해 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었다.

공여자 간이 적출됐다.

곧바로 김지훈의 수술이 이어졌다.

무섭도록 집중했다.

실패는 곧 두 사람의 인생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환자의 생을 위해 흘린 수많은 의료진의 땀 역시 고귀했다.

어느 것 하나 헛되이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무엇을 배우고, 느껴야 할지는 스스로의 몫이라는 듯 수술 내내 써드를 서는 정선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직 환자의 삶을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열 시간 가까운 수술이 끝났다.

수술 팀 모두 녹초가 됐다.

누구 한 명 꾀를 부리지 않았다.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긴 후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고, 각자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수시로 바이탈을 점검하며 사소한 변화조차 놓치지 않았다.

“끄으으응!”

환자가 눈을 뜨고 주변을 인식하고 나서야 안도의 기운이 퍼졌다. 가장 극심한 압박에 시달렸을 김지훈은 보호자를 만나 자세한 설명을 한 후에야 퇴근했다.

진한 어둠이 내린 후였다.

양재필의 킵이 이어졌다.

이런 수술이 매일 벌어지는 이상 오프를 빼고는 모조리 킵을 한다는 말이었다. 인간의 체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경철과 당직 펠로우들이 번갈아 교대하지 않았다면 이미 몇 번을 쓰러지고도 남았다.

생체 간 이식 수술 단 하나를 보았을 뿐인데 하루가 지났다. 다음 날 아침 회진 준비를 하는 내내 몸이 무거울 정도였다.

‘두 번째 수술인가? 이제야? 벌써야?’

진충기 교수의 수술이 시작됐다.

어제처럼 밤이 늦어서야 휴식을 취할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공여자 수술을 비롯해 각 파트 모두 정신없이 움직였다. 한 명의 환자가 회복실로 옮겨지기 무섭게 다음 환자가 수술대 위에 누웠다.

“수처! 타이! 컷! 보비! 모스키토!”

수없이 반복되는 과정을 따라 무사히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가족의 품에 안겼다. 수술 팀의 피로가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메이저나 마이너나 똑같구나.’

또 하루가 지났다.

손일석과 이경석부터 쟁쟁한 써전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의 수술에 매진하는 신임 교수들까지 선배들이 보이는 책임감은 놀라울 뿐이었다.

“선호야, 성오한데 얘기 들었지? 지금 네게 가장 중요한 과정을 배울 기회니까 내 수술 끝나고 오프 가자.”

할 일이 산더미였지만 정선호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몰려오는 졸음을 쫓느라 허벅지에 멍이 들 지경이었다.

불과 사흘 만에 기미가 꼈다.

서도진, 강병옥의 간 이식 수술까지 끝났다.

특기할 만한 일이 벌어진 한 주이기도 했다.

이혁원이 드디어 자신만의 수술을 시행해 전문 병원 역사상 최초로 간 이식 양방이 벌어졌다. 오만석이 공여자 수술을 처음으로 단독 시행할 때 이준영 교수가 퍼스트를 선 것처럼 김지훈이 퍼스트를 섰다.

“끄으으응!”

환자가 깨어나자 이혁원의 주체하지 못할 흥분이 멀리서도 보일 지경이었다. 피곤하지도 않은지 밤늦도록 환자 곁을 지키며 자신의 감정을 충실하게 즐겼다.

교수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나종진 역시 자신의 존재를 여실하게 드러냈다. 이경석 못지않은 실력으로 누구보다 많은 수술을 소화해 냈다. 마이너 질환이라고 해도 일반외과의 중요 영역이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었다.

누구 한 명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만 김지훈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전공의만큼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 내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이것이 금요일까지 시간표였다.

중환자실과 달리 매일매일 정규 일과를 수행한 후 이틀마다 짧은 휴식 같은 오프를 받은 덕에 정선호도 똑똑하게 볼 수 있었다.

‘하라는 것만 하면 되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선생님들은 얼마나 힘들까? 모든 병원이 똑같은 상황이 아니겠지만 기본적으로 정말 힘든 과네.’

응급실 업무는 거론할 필요조차 없었다.

김지훈의 수술을 보며 감동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지만 매력적인 과라고 하기 힘들었다. 교수가 되지 못하면 대부분 쓸모없어질 실력과 불안정한 미래 때문만이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3D 과라는 사실 하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모두들 기피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고, 그 탓인지 고경철과 양재필이 신기하게 보일 정도였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과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토요일이었다. 펠로우와 전공의가 수술보다 더 힘들어한다는 주말 집담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온 병원에 소문이 난 데다 지성오에게 들어 정선호도 진즉에 알고 있었다.

‘집담회 때 우리는 자리만 지키면 되지만 대신 준비해야 할 자료가 있어. 정말 철저하게 작성해야 돼. 글자 하나라도 틀리면 작살난다.’

질환명, 수술명, 환자 정보 등이 담긴 일주일간의 수술 기록 작성이 인턴의 업무였다. 잡일처럼 보여도 의학 용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였다.

정선호가 꼼꼼하게 자료를 점검했다.

그나마 한가한 주말이라는 사실, 김지훈은 주말에 당직을 서지 않는다는 사실에 왠지 힘이 났다. 일과 끝나자마자 푹 자고 말겠다는 일념하에 마지막 점검을 하려는 찰나 호출이 떴다.

응급실이었다.

허구한 날 불려 가는 곳이었지만 첫날의 악몽 같은 기억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다. 그러나 머뭇거리는 순간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장소이기도 했다.

정선호가 부리나케 달려갔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김지훈이 왜?

흔한 일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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