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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289화 (1,289/1,329)

15화

정규 수술이 속속 끝나는 시간 덕에 바로 수술할 수 있었다. 수술 방 앞에서도 얼굴이 붉어진 채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보호자에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아직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

보호자의 불신도 문제였다.

“수술 중 수술 부위를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디 가지 마시고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말이 없었다.

아마도 한통속으로 볼 것이다.

불가피 혹은 불가항력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의료 현실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지금은 가운을 입은 의사 전체를 불신할 상황이겠지만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주변 상황이 아닌 환자에게 집중할 때였다.

띠띠띠! 띠띠띠!

설상가상 바이탈이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균형이 깨진 이상 단 한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혈액을 다는 마취과의 손이 분주했다.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어디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충분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기존 절개창이 아닌 복부 중앙을 빠르게 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드레인을 따라 모든 피가 빠져나갈 수 없지만 복강 내 고인 피의 양이 적지 않았다. 바이탈이 유지된 것이 용할 지경이었다.

‘CT로 추정한 양 이상이다. 이 정도 양이라면 동맥을 묶은 타이가 풀렸거나 아예 조직이 괴사돼 떨어져 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추측이 맞는다면 단 일 분이라도 아껴야 했다. 곧바로 복강 내를 깨끗하게 씻어 낸 후 농양의 영향으로 상당히 지저분해진 수술 부위를 확인했다.

한수영과 동시에 말을 잃었다.

동맥을 잡은 매듭이 명확하게 보였다.

확실하게 묶여 있었다.

어느 한 부분의 출혈이 아니라 건드린 조직 전체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써전이 가장 두려워하는 우징 양상의 출혈이었다.

‘후우! 우징으로 이 정도 출혈이 발생하다니 골치 아프네. 설마 혈액 응고 질환이 원인은 아니겠지?’

선택은 두 가지였다.

수처와 전기 소작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최대한 지혈을 시도하는 방법이 첫 번째였다. 성공한다면 손상을 가장 적게 주고 끝낼 수 있었다.

반면 우징은 어디 한 곳을 철저하게 잡는다고 해결되는 출혈이 아니었다. 당장 피가 멈춘 것처럼 보여도 재차 출혈이 발생할 수 있어 삼 차 수술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고령의 환자에겐 치명적인 일이 될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광범위 절제였다.

출혈 부위를 포함해 염증과 우징이 발생한 부위를 모두 제거한 후 정상적인 조직만 남기고 다시 이어 주는 방식이었다.

적어도 대장의 시작인 맹장을 모두 잘라 내고 상행 결장과 소장을 연결해야 한다. 재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을 상당히 감소시키는 이점이 있는 반면 수술이 훨씬 더 커져 또 다른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김지훈이 일단 수술용 천으로 출혈 부위 전체를 압박하며 시간을 벌었다. 다행히 바이탈이 안정돼 그만한 여유가 있었다.

“한수영 선생, 두 가지 방법 중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겠어?”

“고령에 수술 직전 바이탈까지 흔들렸습니다. 대장 일부를 자르는 수술은 수술 후에도 큰 부담이 될 겁니다. 최대한 지혈하는 것이 유리해 보입니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지금도 수혈 중이었다.

당장은 지혈이 최대 관건이었지만 수술에 따른 회복은 별개의 문제였다. 장단점을 포함해 모든 요소를 깊이 생각해 수술 방식을 택해야 했다.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그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분쟁이 일어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이유를 알아야 합리적인 대처가 가능할 것이다.

“보호자 불러 주세요.”

수술실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곳이었다.

주춤주춤 머뭇거리는 보호자에게 수술한 부위를 보이며 정확한 상태를 설명했다. 의학적 지식이 없는 한 직접 눈으로 보아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의사의 과실이라 보기에 무리가 따른다는 소견을 피력했다.

“수술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보시다시피 염증이 퍼진 조직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양이 많은 원인을 확실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수술 후 정밀 검사를 해야 합니다. 그럼 말씀드린 대로 수술 진행하겠습니다. 원인에 따라 또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양해해 주십시오.”

보호자 눈에는 수술이 잘못돼 나오는 피나 우징처럼 발생한 피나 똑같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온전히 이해하고 납득할 상황이 아니었다.

반면 첫 집도의에겐 그나마 다행이었다. 분쟁을 피할 수 없겠지만 최소 병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부차적인 문제였다.

환자에겐 최악의 상황이었다.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처! 타이! 보비!”

보이는 족족 가장 효과적인 지혈 수단을 동원했다. 심지어 간 절제 후 절단면에 사용하는 지혈제까지 도포해 눈에 안 보이는 출혈에 대비했다.

어려울 것이 없는 과정이었지만 피가 뚝뚝 떨어질 때와 다를 바 없었다. 확신할 상황이 아니기에 솔직히 더 불안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멈출까?’

게다가 또다시 수술해야 한다면 김지훈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환자의 회복부터 한 번에 해결하지 못한 책임까지 온갖 문제가 다 일어날 것이다.

모르고 칼을 댄 것이 아니었다.

일정 부분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제법 시간이 걸렸다.

“어때?”

“이 정도면 멈추지 않을까요? 더 이상 손을 댈 부분이 없습니다.”

어떤 수술이든 완벽한 지혈은 애초에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인간의 육신이 가진 혈액 응고 기능 때문에 무시할 수 있는 출혈이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더 건드리면 문제만 발생한다.’

“닫자.”

수술이 끝났다.

중환자실로 옮겼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수술이었다.

두 번의 마취와 수술에 이어 또다시 출혈이 발생한다면 바이탈까지 급격하게 흔들릴 수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다행히 환자는 잘 깨어났다.

“환자분, 숨 크게 쉬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에 오래 계시지 않을 겁니다.”

한동안 환자를 지켜보던 김지훈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지만 늦은 회진을 돌 때마다 미안한 것이 사실이었다.

환자 보는 일까지 서둘러 좋을 일 없었다.

차근차근 회진을 마친 김지훈이 다시 돌아와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환자 상태를 살피고, 검사 결과와 드레인을 수시로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똑!

드레인을 따라 한 방울의 액체가 떨어졌다. 복강을 씻은 물에 혈액이 섞여 있었다. 수술 후 흔히 보는 양상이었지만 첫 수술 후에도 첫날은 출혈이 없었다.

‘불안하네.’

눈가를 좁힌 채 고민에 빠진 김지훈을 보던 정선호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선생님, 제가 보고 있겠습니다.”

“단순히 노티(Notify)만 하면 되는 환자가 아니다. 인턴 선생이 혼자 보기에는 무리야. 지금은 중환자실에서 필요한 기본 지식을 확실하게 네 것으로 만드는 데 주력해.”

교수보다 일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한수영이 오고 나서야 김지훈이 퇴근을 했다. 한참 동안 향후 치료에 대해 상의하고 난 후였다.

상당히 늦은 시간이었다.

누가 킵을 하든 조그만 문제라도 생긴다면 득달같이 달려올 것이다. 믿음과 신뢰 이전에 환자에게 지켜야 할 의무이자 책임이기 때문이었다.

정선호가 한수영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무엇을 확인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머릿속에 단단히 박았다.

무심코 말했다.

“아뻬로도 중환자실에서 치료해야 하는 환자가 있네요. 재수술이 아니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겠죠?”

“정선호 선생, 환자를 질환만으로 판단하지 마. 응급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순 기관지염 환자도 상황에 따라서 이보다 더한 치료를 해야 할 수 있어.”

정선호가 콧등을 찡그렸다.

이론과 실제의 괴리 때문이었다.

아니다.

기억하지 못할 뿐 분명 배웠을 것이다. 다만 교과서와 말로만 접한 상태에서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에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지도 몰랐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배워야 한다는 말이 바로 이런 거였구나.’

“절대 선입견을 가지면 안 돼. 기본을 무시하면 결국 우리 잘못으로 환자 놓친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몰라서 못했다는 말이 통용될 직업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기본까지 모른다면 죄악이나 다름없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정선호는 말로 끝내지 않았다.

킵을 하는 양재필과 꼬박 밤을 새다시피 했다. 가장 힘든 시간인 새벽 무렵 고경철이 교대해 주지 않았다면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을 것이다.

때문인지 삼교대라지만 이교대와 가까운 형태로 근무하는 간호사들마저 새롭게 보였다. 응급실에서 매일 보던 일인데도 말이다.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아침 일찍 중환자실에 나타난 김지훈까지!

하필이면 자신만 환자 곁을 지키고 있었다. 무척 신경을 쓰는 환자가 분명한데 인턴만 달랑 있으면 화를 내고도 남았다. 더구나 인턴인 자신이 보기에 무리라는 말을 분명하게 한 김지훈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이유를 말했다.

“양재필 선생님은 병동…….”

“회진 준비하러 갔구나.”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환자 상태와 아침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일에 집중했다. 급기야 드레인을 살피고는 드레싱까지 직접 했다.

게다가 기록까지!

‘전공의 선생님이 해야 하는 일 아닌가?’

“환자분, 기분은 어떠세요.”

“나 괜찮으니까 병실로 올려 줘요.”

“혈색이 많이 좋아지셨네. 수술을 두 번이나 받으셨잖아요. 조금만 참으세요.”

한동안 환자를 안심시키던 김지훈이 돌연 머리를 톡톡 치며 다른 차트 하나를 집어 들고는 눈을 떼지 않았다. 잠시 후 종이 한 장을 접어 놓았다.

정선호가 슬쩍 곁눈질을 했다.

‘수술 기록지네. 헉! 빨간색이다.’

건방지다고 해도 물어봐야 했다.

“선생님, 제가 작성한 기록은 몰라도 전공의 선생님이 기록한 건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궁금해?”

“예, 궁금합니다.”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자식! 대부분 넘어갈 일까지 관심을 보이다니 점점 욕심이 나네. 우리 과에 지원하면 알려 준다고 할까?’

“이 차트는 내가 수술하고, 양재필 선생이 어시스트를 선 환자의 차트야. 만약 내가 없을 때 다른 선생이 환자에 대해 알아야 할 일이 생긴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차트만 봐도 파악할 수 있어야겠지?”

“수술 기록지도…….”

“외과는 바이탈과 수술 빼면 시체야. 수술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사람이 죽고 살 수 있어. 정확하게 기록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야.”

길고 깊은 말을 할 시간이 아니었다.

여운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김지훈이 열심히 하라는 듯 정선호의 어깨를 툭 치고는 몸을 돌렸다.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일부터 오늘도 제법 힘든 하루가 될 것이다.

정선호가 잠시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정말 여운이 남는 모양이었다.

그때 김지훈이 야릇한 소리를 내며 으스스한 미소를 머금었다. 한 번 정도는 넘어가도 되건만, 냅다 절대 피할 수 없는 바윗덩어리 하나 던졌다.

“아! 과제를 안 줬네.”

정선호가 바르르 떨었다.

울고 싶을 정도로 여운이 진했다.

오전 수술이 끝났다.

막간을 이용해 중환자실에 들른 김지훈의 얼굴이 다소 펴졌다. 아직 안심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지만 출혈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혈액 응고 검사 결과만 괜찮으면 잘 멈출 것 같은데 별일 없겠지?’

때마침 첫 수술을 한 의사를 만나 추측되는 원인과 상태를 설명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이번 일을 원만히 해결하려면 보호자를 피하면 안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혹시 변동이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큰 문제 없이 보호자들과 잘 얘기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약 부작용만 생겨도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현실이었다. 여담이지만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그럴듯한 표어를 내세운 의약 분업은 왜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오후 수술이 남았다.

신경을 분산시키는 일은 잠시 묻어 두어야 했다. 수술복을 갈아입고 막 수술실로 가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여보세요?”

김지훈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항상 근황이 궁금한 홍재순과 유석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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