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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284화 (1,284/1,329)

10화

삐이이이이이!

심장이 뛰지 않았다.

환자의 얼굴은 거무죽죽했고, 팔다리는 축 늘어진 채 힘없이 흔들렸다.

내과 전공의의 이마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다.

“250주울(Joule)! 슛!”

환자의 상체가 강하게 꺾였다.

정선호가 가슴을 압박했다.

심장이 눌릴 정도로 강한 힘에 심전도 그래프가 널뛰었다. 인공호흡을 할 때마다 공기 삐져나오는 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삐이이이이!

“300주울! 슛!”

“하나, 둘, 셋, 넷…….”

삐익! 삐익!

반응이 없었다.

외상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심근경색이 발생한 환자인 모양이었다. 아뻬를 하는 짧은 시간에 이 정도로 진행됐다면 이미 늦었다는 말이었다. 머리로는 알지만 몸이 따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과 전공의, 인턴에 당직 펠로우까지 심폐소생술을 이어 갔다.

보기와 달리 엄청나게 힘든 처치다.

땀이 뚝뚝 떨어졌다.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플 것이다.

삼십 분이 더 지났다.

삐이이이이!

심장이 돌아오지 않았다.

다들 지쳐 압박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후우! 가망이 없나?’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정선호가 더 이상 지속할 의미가 없다는 펠로우의 말에도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처럼 이를 악물고 있었다.

충격을 넘어 두려움일지도 몰랐다.

인턴 때, 똑같은 경험을 했다.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났다.

살아 들어온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본 심정이 어떨지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이제 막 의사 생활을 시작한 인턴 첫날이었다.

눈가를 잔뜩 찌푸린 채 지켜보던 김지훈이 겉옷을 벗었다. 한 번은 거쳐야 할 일이었고, 펠로우의 판단이 정확했지만 스스로 인정해야 충격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

말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공포에 떨고 있는 보호자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들은 더 인정하기 힘들 테고, 솔직히 보호자에게 환자의 사망을 알리는 것은 지금도 두려운 일이었다.

“교대하자. 정선호 선생, 앰부 잡아.”

하나! 둘! 셋! 넷!

빠른 속도로 삼십 회 가까이 압박했다.

갈비뼈가 상당수 부러져 있었다.

정확하게 시행했다는 의미였지만 압박을 가할 때마다 전해지는 감촉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불편하고, 괴로웠다.

정선호가 앰부를 쥐어짰다.

삐익! 삐익!

반응하지 않는 가슴에 공기 삐져나오는 소리만 들렸다. 심장과 폐가 멈춘 이상 생명 유지에 필요한 핵심 장기 모두 기능을 잃고 죽었을 것이다.

김지훈은 멈추지 않았다.

와이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땀이 뚝뚝 떨어졌다.

단 한 번을 해도 정확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처치였다. 교대로 소생술을 시행했지만 온몸이 고통을 호소했다.

삐이이이이!

경고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삼십 분이 더 지났다.

김지훈이 심한 허리 통증에 나직한 신음을 내뱉으며 손을 뗐다. 이제 정선호는 물론 보호자까지 환자의 죽음을 인정해야 할 때였다.

“그만하자.”

“사망 선고는 어떻게 할까요?”

“내가 직접 할 테니까 보호자분들 불러.”

가족들의 얼굴이 창백했다.

경과를 설명하고, 더 이상 심폐소생술이 의미가 없음을 알렸다. 지금도 앰부를 잡고 인공호흡을 하고 있는 정선호가 멈추는 순간이 사망 시각이 될 것이다.

“죄송합니다. 정선호 선생, 인투베이션 제거해.”

정선호의 손이 달달 떨렸다.

“모월 모일 모시에 환자분 사망하셨습니다.”

“여보! 아빠!”

아내가 주저앉으며 절규했다.

자식들의 눈물이 뺨을 적셨다.

정선호는 그저 멍한 눈으로 온기를 잃은 환자와 보호자를 쳐다볼 뿐이었다. 눈앞에서 교차한 삶과 죽음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내과 전공의가 툭 팔을 쳤다.

“당직실에서 쉬고 있어.”

정선호가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앞으로 수없이 마주할 상황이었다.

적응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견디다 보면 감정보다 이성을 따라 행동하기 마련이었다. 또한 미처 알지 못했겠지만 의학을 택한 그 순간에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빨리 안 들어가고 뭐 해?”

“선생님!”

정선호의 목소리마저 떨렸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환자를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당연한 반응이겠지. 정선호, 널 이해하고도 남아. 하지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정선호.”

“예.”

“오늘 네가 보아야 할 환자는 이 환자로 끝이 아니야. 지금 이 순간 네 자신이 의사라는 사실을 잊지 마. 환자는 우리를 믿고 온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스스로 이겨 내야 할 일이었다.

김지훈을 비롯해 수많은 의사들이 똑같은 일을 경험했고, 잘 헤쳐 나왔기에 정선호 역시 곧 자신의 일에 집중할 것이다.

뚜벅! 뚜벅!

집으로 향하는 김지훈이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조금은 더 여유를 줘도 되건만 너무 빨리 최악의 경험을 한 정선호의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서늘한데 오죽할까? 하지만 이겨 내야 돼. 네가 치료하고, 살릴 수 있는 환자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믿는다.’

어느 틈엔가 삶과 죽음에 무덤덤해진 것은 아닌지 자문했다. 모든 의사가 환자의 죽음과 마주하지는 않지만 바이탈을 다루는 의사는 달라야 했다.

끝까지 환자를 살리려 했던 정선호!

의미가 있고 없음을 떠나 선배라 해도, 수없이 많은 죽음을 경험했다고 해도 배워야 할 자세였다. 의사의 포기는 곧 환자의 죽음이니 말이다.

다음 날 아침.

김지훈이 출근하자마자 응급실을 들렀다.

정선호가 재빨리 달려왔다.

새빨개진 눈, 만 하루도 안 돼 온갖 얼룩으로 더러워진 가운까지 밤새 잠 한숨 못 잔 모습이었다.

내원 환자 기록을 확인했다.

‘많이 왔네.’

학교 다닐 때와는 비교하기 힘든 응급실 근무에도 불구하고 꼼꼼하게 차트를 작성했다. 그 와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을 등한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특하기만 했다.

‘자세한 환자 기록은 단순히 형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야. 그만큼 환자에게 묻고 들은 정보가 많을 수밖에 없고, 결국 치료에 큰 도움이 되는 법이니까 지금처럼만 하자.’

“내가 퇴근한 후 특별한 문제 없었어?”

“…….”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우스운 질문을 했다.

환자 한 명 한 명이 모두 특별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망한 환자에게 받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근무를 지속했다. 어쩌면 살짝 웃음기를 보인 자신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힘들어?”

“아닙니다.”

“오늘 오프지?”

“예. 아홉 시에 외과 일 년 차 선생님과 교대합니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도 제대로 못 잘 테고, 환자 얼굴만 아른거리겠지. 이럴 때는 차라리 몰두할 일이 있는 편이 나아. 내게 리포트를 주실 때 이혁민 선생님은 어떤 생각이셨을까?’

“다음 근무 때까지 심폐소생술에 대해 리포트 작성해서 제출해. 교과서로 배운 것과 실제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 더욱 확실히 깨닫게 될 거야.”

“다음 근무 때까지요?”

“왜? 시간이 부족해?”

“아닙니다.”

정선호가 입술을 꽉 물었다.

하루 만에 모든 환상이 깨졌다.

오히려 환자를 제대로 보지 못할 것이란 불안과 두려움은 바로 현실이 됐다. 선배들은 어떻게 이런 상황을 극복했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 있었다.

간담췌 분야 최고의 써전이라고 학생들에게까지 알려진 의사이자 부원장이지만, 열 시간 가까이 수술하고도 자신과 함께 심폐소생술을 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의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 주고도 남았다.

‘후우! 감기 환자 치료도 제대로 못하는데 더 위급한 환자를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당분간 오프는 다음 근무를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자.’

김지훈이 툭 어깨를 쳤다.

“환자에게 받은 트라우마는 환자가 치료해 주는 법이야. 환자에게만 집중해. 가서 쉬어.”

당직실로 향하던 정선호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나직한 목소리가 고요한 대기를 타고 똑똑하게 전해졌다.

“정선호 선생, 어때요?”

“인턴 선생님이죠, 뭐. 하지만 환자는 정말 열심히 보시네요. 생각보다 빨리 편해질 것 같아요.”

“지금은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충분한 때잖아요. 잘 모른다고 눈치 주지 말고 많이 도와주세요.”

“예, 부원장님.”

간호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의사가 바로 지금의 자신이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김지훈의 말인 이상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정선호의 휴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처치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지금은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연락이 잘 안 되는 시간일 텐데 어떤 환자지?’

분명 환자가 왔을 텐데 응급실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전문 병원에서 가장 유쾌하다는 손일석이 하얀 실 하나를 든 채 웃고 있었다.

“인턴 선생, 응급실 환자가 주로 외과 쪽이라는 건 알고 있지? 타이 한번 해 봐.”

“예?”

“타이가 뭐 그렇게 놀랄 만한 말인가? 서울 병원에서 근무한 선배들의 말은 싹 잊어야 할 거야. 우리는 인턴의 능력까지 필요해. 뭐 해?”

정선호가 열심히 타이를 했다.

경험이 거의 없어 국가고시에 합격한 후 나름 연습을 했지만 초보 티가 팍팍 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김지훈에 버금간다는 써전 앞에서 하려니 손가락이 더 꼬였다.

결과는 처참했다.

“쯧쯧!”

혀를 찬 손일석이 실 꾸러미를 내밀었다.

“다음 근무 때까지 열 가닥 만들어 와. 원 핸드 타이건 투 핸드 타이건 당장 써먹어야 할 술기니까 꾀부리지 마라.”

학생도 아닌데 숙제를 두 개나 받았다.

인턴에게 이런 과제를 준다는 말도 못 들었다.

잠은 언제 잘 수 있을까?

정선호의 어깨가 축 처졌다.

손일석이 씨익 웃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심장마비가 온 환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마음에 쏙 들었다.

‘이제 근무한 인턴치고는 타이도 제법이네. 우리 과 인턴과 전공의는 언제든 살펴볼 수 있으니까 오늘은 중환자실 인턴에게 관심을 줘 볼까?’

김지훈과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인턴들 곡소리 나게 생겼다.

물론 아끼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일반외과 전공의 일 년 차가 가장 강력한 압박과 실로 과분한 관심을 받겠지만 말이다.

후배 사랑은 곧 나라 사랑이었다.

정선호의 고난은 이것으로 끝일까?

아니었다.

근무 끝나기 직전 간호사가 차트 한 뭉텅이를 전했다. 지난 하루 정말 정성을 다해 작성했건만 빨간색으로 도배가 돼 있었다.

거의 불타오르기 직전이었다.

“이게 뭐죠?”

“부원장님께서 전해 주라고 하셨어

요. 보면 아실 거라고 하시던데요.”

약간은 의아한 눈으로 차트를 확인하던 정선호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미비한 사항부터 쓸데없는 사항은 물론 각 질환의 핵심이 무엇인지까지 자세하게 지적돼 있었다.

‘아! 이렇게 부족했었나?’

한동안 고민을 하던 정선호가 차트를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다. 지끈지끈 느껴지는 두통과 싸우며 자신이 진찰한 환자들을 일일이 기억해 냈다.

졸음과의 사투였다.

상당한 시간을 투자한 끝에 모두 새롭게 작성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엄청난 피로에 미처 검토할 새도 없이 그대로 쓰러졌다.

쿨쿨! 드르렁! 드르렁!

당직실을 채 벗어나지도 못한 채 한 번도 골지 않았던 코까지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김지훈이 내준 리포트, 손일석이 요구한 타이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정말 무자비한 근무 시작이었다.

환자 때문에 응급실로 내려온 전공의가 측은한 눈길을 보냈다. 응급실, 중환자실, 내과에 외과까지 인턴에게는 가히 죽음의 길이었다.

“인턴 초반에 정말 감당하기 힘든 스케줄이네. 푹 자라. 지금은 밥보다 잠이지.”

일복의 화신인 김지훈과 웃음 속에 비수를 숨기고 있는 손일석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았다면 까무러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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