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렇지.’
진단이 늦어진 탓에 수술 전 반드시 설명해야 할 질환 하나를 빼먹을 뻔했다. 누구도 바라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보호자는 알아야 할 권리가 있었다.
“현재로서는 진통제 장기 복용에 의한 위궤양 천공이 가장 의심됩니다만, 다른 질환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어떤 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드물지만 위암 때문에 천공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CT 소견상 암으로 보이지 않지만 실제 육안으로 보면 다를 수 있습니다.”
“만일…….”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보호자에겐 끔찍한 일이었다.
“병변을 확인한 후 적절하게 대처하겠습니다. 만에 하나의 경우를 말씀드리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참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빠르게 회복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지훈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능력이 없다는 생각 이전에 이렇게 상황을 잘 이해해 주는 사람들만 있으면 좋겠다.’
근심이 가득할 수밖에 없는 보호자의 눈빛에 왠지 신뢰가 실려 있었다. 무작정 의사를 믿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다린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부원장이신 분이 다른 의사들에게 맡기지 않고 내내 환자 곁을 떠나지 않다니 존경받을 만한 선생님이 분명하네. 여보! 걱정하지 말아요.’
그사이 수술 준비가 끝났다.
“환자 올리랍니다.”
환자가 수술 방으로 옮겨졌다.
간호사들이 고개를 흔들었다.
“김 선생, 우리가 언제 위궤양이 터져 복막염이 발생한 환자를 봤지?”
“전 기억에 없는데요.”
“그치? 하다 하다 이젠 나 근무 처음 시작할 때나 보던 환자들이 오네. 정말 부원장님 일복은 당해 낼 수가 없어. 이런 날 실수하기 딱 좋으니까 다들 긴장 풀지 마.”
“근데 코 줄에 공기 집어넣는 방법으로 진단한 거 보신 적 있으세요?”
“그때도 몇 명 못 봤는데 저런 방법을 어디서 봤겠어? 이게 생각보다 도시하고 시골 차이가 꽤 큰 질환이야. 지금은 웬만한 곳에 다 병원이 있지만 예전엔 의원조차 없던 곳이 꽤 많았잖아?”
의료 환경에 따라 급증하는 질환이 있고, 점차 사라지는 질환이 있다. 위궤양 역시 진단 기술이 발전하고, 치료가 용이해지면서 천공까지 발생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졌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이혁원이 입맛을 다셨다.
‘분명 경험을 더 많이 쌓고 있는데 갈수록 어려워지네. 김지훈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지금도 진단을 못해 쩔쩔맸겠지? 이번 환자를 잘 기억해 둬야겠어.’
문득 기본이란 말이 다시 떠올랐다.
김지훈과 이준영 교수는 물론 모든 선배들이 수없이 강조했다. 어쩌면 교수로서 근무가 이 주도 안 남았는데 잘못 이해했는지도 몰랐다.
수술에 필요한 기술, 각종 처치에 필요한 수처나 타이, 진단 검사를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 등이 아니라 환자를 진찰하는 방식과 태도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검사 결과만 믿고 진찰 소견을 무시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예전 방식이거나 교과서에 없는 방법이라고 배제한 채 마냥 최신 검사에만 매달렸으면 얼마나 늦어졌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이런 경험이 곧 산지식인데 그동안 너무 좁게 해석했어. 세부 전공도 중요하지만 언제 어떤 환자를 볼지 모른다. 보다 넓게 생각하자.’
전공의 때의 경험을 잊지 않고 정확하게 진단해 낸 김지훈이야말로 완벽한 본보기였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환자 치료에 있어 무의미한 과정이 없다는 말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혁원이 흠칫 놀랐다.
왜애애애앵!
김지훈이 당직이다.
그 시간.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천공 수술은 정말 오래간만이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적용할 수 없는 질환이 있었다. 위궤양 천공에 의한 복막염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를 자르고 이어야 하는 수술도 복강경을 사용하건만 전통적 방식을 취해야 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위에서 유출된 내용물을 완벽하게 제거해야만 복막염 수술을 완벽하게 끝냈다고 할 수 있었다. 반면 복강경 수술이 상당히 발전했다고 해도 기구를 이용해 배 속 전체를 광범위하게 씻어 내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천공 부위의 위치나 크기에 따라 달라질 수술 방법을 생각하는 사이 마취가 시작됐다. 고통에 시달리던 환자의 의식이 빠르게 사라졌다.
마취과 당직의가 조용히 물었다.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끝나겠지만 시간을 얼마나 잡아야 할지 알아야 마취 과정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 진행하십니까?”
“개복합니다. 위 절제가 필요하지 않으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시작하셔도 됩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배를 열었다.
위 하부 외측 부분에서 제법 심한 염증 소견이 관찰됐다. 염증 방어 직용을 하는 대망이 일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천공이 발생한 부위로 추측됐다.
조심스럽게 대망을 떼어 냈다.
작은 구멍이 관찰됐다.
김지훈의 눈매가 좁아졌다.
천공 원인이 위궤양인지, 암인지 확실하게 구별해야 했다. 판단 여하에 따라 수술 방법이 크게 달라지거나, 이 차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모찬우 선생, 어때?”
“천공 부위 경계가 명확하고 깨끗합니다. 주변 임파선 비대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위궤양으로 인한 천공으로 판단됩니다. 시간상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당장 조직 검사 결과를 보고 결정해야 할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수술 방법은?”
“구멍이 작고, 위치를 생각할 때 절제보다 일 차 봉합을 시행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일 차 봉합으로 수술하자.”
보통 이런 경우 대부분 수술을 넘겼던 김지훈이었다. 복잡하지 않은 수술인 데다 모찬우는 믿을 수 있는 써전이기에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다소 특별했다.
‘위궤양으로 보여 다행이지만 지금까지 과정 모두 불안했다. 내가 직접 하는 것이 좋겠어.’
“진행합니다. 가위!”
이미 터진 부위를 바로 봉합하면 염증 때문에 붙지 않는다. 수술용 가위를 든 김지훈이 신중하게 경계부를 잘라 냈다.
구멍이 약간 커졌다.
조심스럽게 내부를 살폈다.
‘딱딱한 정도와 위벽 주름이 정상적인 것으로 보아 위궤양이 거의 확실하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수처!”
경계선에 걸쳐 발생한 염증 부위를 조금 더 제거한 후 구멍을 봉합했다. 워낙 탄력이 좋은 장기지만 넓게 퍼진 염증으로 인해 주변이 딱딱했다.
수처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수술이든 수처를 하면 타이까지 끝나야 마무리가 된다. 정확하고도 적절하게 해야 위 조직이 찢어지는 일을 방지할 수 있었다.
“타이!”
모찬우의 손은 확실했다.
적정한 힘을 가해 딱딱해진 위 조직을 정확하게 밀착시켰다. 반복되는 수처와 타이를 따라 작은 구멍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언제 봐도 기본기가 정말 탄탄해.’
“대망 붙이고, 마무리하자.”
빠른 속도로 수술이 진행됐다.
봉합한 부분 상부에 대망을 붙여 행여 있을지 모를 유출에 대비했다. 프리 에어를 관찰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위 내용물이 장기 사이 구석구석에 퍼졌을 것이다.
“식염수! 석션! 탭!”
배 속을 깨끗하게 세척했다.
드레인 하나 박고 복부를 봉합하는 것으로 모든 수술을 마쳤다. 진단 과정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싱거울 정도로 쉽게 끝났다.
마취까지 이래저래 두 시간 정도 걸렸다.
“끄으으응!”
환자도 잘 깨어났다.
보호자를 만나 결과를 설명했다.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여 터진 부위를 봉합하고, 보강하는 것으로 수술을 마쳤습니다.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일주일 후에 퇴원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나면 곧 병실로 올라가실 겁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그럼 이만!”
돌아서던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그럼 이만’이란 말이 입에 붙은 모양이었다. 한편으로 이젠 일주일이라는 입원 기간이 정말 길게 느껴진 탓이기도 했다.
물론 간 이식과 간담췌 파트는 상당한 기간 동안 입원을 요했다. 반면 복강경 파트 환자는 하루만 지나도 얼굴이 달라질 정도로 퇴원이 빨랐다. 심지어 위를 건드리는 수술까지도 말이다.
‘세상 참 많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많구나. 옛날 방식이든 뭐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네.’
맞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것이 또 있었다.
일복이다.
땀에 젖은 수술복을 채 갈아입기도 전에 이혁원이 연락을 해 왔다. 이 밤에, 그것도 김지훈의 당직 날인 이상 내용은 빤했다.
“알았어. 내려갈게.”
다행히 아뻬였다.
응급실을 지키느라 힘들었던 이혁원에게 수술을 맡겼다. 이젠 거의 100퍼센트 가깝게 복강경으로 시행하는 질환이었고, 당연히 잘 끝났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간호사들 눈이 쭉 찢어졌다.
“오늘 다른 병원 모두 무슨 일 있나?”
“그러게요. 수술한 환자까지 연달아 네 명이 오는 날도 있네요. 도대체 김 부원장님 정체가 뭐죠?”
마이너라고 해서 간호사 일이 크게 줄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별 처치가 필요 없다고 해도 연달아 오면 쉴 시간이 아예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차라리 메이저 수술이 필요한 환자 한 명이 오히려 편할 수도 있었다.
밤을 꼬박 새워야 할 판이었다.
온 동네에서 원성이 들끓었다.
김지훈이 헛기침만 해 댔다.
한때 아베 밭이라고 불렸던 구미 병원이 생각날 지경이었다. 얼굴 피해 다니고 싶었지만 당직의 의무를 저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급기야 한 명 더 왔다.
수술이 가능한 병원들 모두 응급실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들었다. 하필이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말이다.
‘이게 무슨 일이야? 구미 병원에서 뭐가 묻어 왔나?’
결국 새벽이 돼서야 잠잠해졌다.
간호사들의 눈빛이 더욱 사나워졌다.
“생각해 보니까 외과 환자 빼면 몇 명 안 왔네. 내과하고 소아과 모두 오늘은 한산했잖아.”
“맞아요.”
김지훈이 재빨리 사라졌다.
이러다 맞을지도 모른다.
수술 참관하며 밤을 새우는 일이나 밤새 꼬박 수술하는 일이나 피곤한 정도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소파든 침대든 뭉그적거리면 일어나기 더 힘든 법이었다.
눈가가 꺼매진 김지훈이 찬물로 세수를 하고 이른 회진을 돌았다. 이젠 혼자 도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졌지만 은근한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전공의 두 명에 인턴까지 세 명이면 회진 때 누구 한 명은 나를 따라 돌 수 있을까? 아! 스승님을 빼도 경석이 형과 진충기 선생님이 계시네. 명색이 부원장인데 우리 과 서열은 사 등이구나.’
아쉬움에 쩝쩝 입맛만 다셔야 했다.
기존 환자는 물론 어젯밤 수술한 여섯 명의 환자 모두 무사했다. 그중 다섯 명이 아뻬 환자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운동하세요. 그래야 빨리 퇴원합니다.”
“벌써요?”
“실밥 안 터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천공으로 수술한 환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뒤늦게 도착한 가족들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뒤로하고 환자를 일으켜 앉혔다.
“코 줄, 소변 줄 불편하시죠?”
“예. 언제 빼나요?”
“소변 줄은 바로 빼 드릴 거고, 코 줄은 방귀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운동하세요. 참! 앞으로 진통제 복용은 아예 금지합니다.”
회진을 일찍 시작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데다 지난밤 응급실에서 몇 시간을 고생한 환자와 보호자기에 충분한 대화를 나누었다. 가끔 질문할 이유도 없는 말이 나왔지만 김지훈은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자식까지 무척 반듯했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보호자들이 존중해 준다는 느낌을 받으면 어깨가 으쓱해질 수밖에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만난 손일석이 의아해할 정도였다.
“일복 터트려 놓고 뭐가 그렇게 좋아? 응급실 원성이 여기까지 들리는구만, 안 들려?”
“그냥 기분이 좋네.”
“쯧쯧! 우리 김 부원장도 이젠 미쳐 가는구나. 그래. 마음껏 즐거워해라. 명색이 전문 병원인데 아뻬 다섯 명이 뭐니? 여기가 구미야?”
뭐라고 해도 좋았다.
힘들수록 웃어야 덜 피곤한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