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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271화 (1,271/1,329)

17화

큰 수술, 위험한 수술을 받은 환자일수록 초조하기 마련이었다. 최고의 전문의 네 명이 참가해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해도 절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치료의 기본 원칙은 분명했다.

안정적인 바이탈을 유지시켜야 한다.

체내의 항상성이 깨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상되는 합병증의 징후를 조기에 찾아내 적절하게 대처한다. 아울러 환자의 심리적 안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적시에 강구한다.

결국 의료진의 말과 행동에 달린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봉규민은 더없이 운이 좋은 환자였다. 이준영 교수는 물론 손일석과 강병옥은 절대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미룰 써전이 아니었다.

김지훈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더구나 생소한 질환, 수술을 주저하게 만든 상태, 스승 및 최고의 써전들과 함께한 수술이라는 점에서 의미까지 무척 깊었다.

하기에 반드시 건강하게 만들어야 했다.

가히 총력을 기울였다.

가뜩이나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인데 함께 수술했던 의사들이 수시로 드나들자 보호자들이 오히려 불안해할 정도였다.

“선생님,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아직은 지켜봐야 합니다만 생각보다 경과가 좋습니다. 제가 주치의이긴 하지만 한 명이라도 더 환자에게 관심을 갖는다면 그만큼 회복도 빨라질 겁니다.”

“그런 거였군요. 감사합니다.”

봉규민의 의지도 대단했다.

의식이 명료한 환자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중환자실임에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다. 최대한 자신의 병을 이겨 내려는 각오 역시 결코 꺾이지 않았다.

“환자분, 조금만 더 견딥시다.”

“전 괜찮습니다. 이 정도 통증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수술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든 상황이 완벽했다.

희망의 불씨가 점점 커졌다.

수술 전 두려움과 수술 후 예상됐던 온갖 문제가 무색하게 예상외로 빠른 회복을 보였다. 언제까지 중환자실에서 치료해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였다.

김지훈도 슬슬 확신을 갖게 됐다.

‘이 상태로만 가면 된다.’

때문인지 이제야 대단한 수술이었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다가왔다. 며칠이 지났건만 수술 과정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기억났다.

손일석과 강병옥이 다르게 보였다.

‘애초 긴장할 수밖에 없는 써전이었지만 이젠 무시무시하네. 언제 저렇게 실력을 쌓았지? 방심하는 순간 뒤통수만 보게 생겼어. 긴장하자.’

“아이고! 팔다리야. 이젠 예전 같지 않아.”

“수술한 지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도 엄살이야? 술 먹을 생각 하지 말고 밥이나 잘 먹어.”

“단백질이 필요해. 남의 살 말이야.”

“삼겹살 구울 테니까 저녁에 와.”

“고 과장님이면 몰라도 처형 집 마룻바닥에 기름칠하고 싶지 않다. 죽느냐! 사느냐! 돼지냐! 소냐! 그것이 문제로다.”

‘참 변하질 않아요. 아니지.’

이런 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

때로는 실없고 장난기가 넘치지만, 속이 꽉 차 있는 인간이 바로 손일석이었다. 혈관을 다루는 손만으로도 무서운 라이벌임이 분명했다. 선배들을 보며 조용히 웃고 있는 강병옥도 마찬가지였다.

스승과의 관계는 진해질 대로 진해졌다.

이준영 교수 성격이 변할 이유가 없는 이상 평소와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두 번에 걸친 수술이 준 감흥이 실로 대단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아직도 체력이 뒷받침된다는 사실이 고맙기만 했다.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스승님, 혹시 이번과 같은 수술이 또 있으면 그때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왜?”

“쓰러지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럴 일 없다.”

“당연히 없어야 하겠지만 지난 며칠 얼굴이 영 안 좋으세요. 저도 막판에는 주저앉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앞으로는 욕심 부리지 마세요.”

“나 아직 괜찮다.”

“그러니까 더더욱 체력 안배에 신경 쓰셔야죠. 병원 사정도 생각하시고요. 쭉 우리를 이끌어 주실 분이 스승님밖에 안 계시잖아요.”

손일석은 아예 죽는 시늉을 하는 판인데 여파가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게다가 김지훈도 이젠 제자를 키워야 할 연배가 됐다. 이준영 교수도 느낀 점이 있는 모양인지 멈추지 않는 타박에 헛기침만 연발했다.

화제를 돌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환자는 어때?”

‘매일 들르시면서 딴청 부리시긴!’

“괜찮습니다. 수술 전에 무사히 퇴원하게 되면 와이셔츠 선물을 한다고 했는데 받을 것 같습니다.”

“와이셔츠?”

“예. 색깔만 남았습니다. 어이쿠! 늦었네. 가 보겠습니다. 식사 꼭꼭 챙기시고, 커피는 하루에 한 잔만 하세요.”

‘시어머니 잔소리가 따로 없네. 와이셔츠를 받은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 지났나?’

자리에서 일어나던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으레 들고 오던 캔 커피 대신 몸에 좋다는 홍삼액 하나가 놓여 있었다. 봉규민 환자를 수술한 이후 매일 들른 이유 중 하나였다.

“주려면 한꺼번에 주지.”

말과는 달리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봉규민이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온몸에 주렁주렁 매달렸던 줄들이 다 제거되고, 이제 수액 줄 하나 달랑 남았다. 복부 절개창의 실밥도 모두 뽑았다. 옆구리에 박혀 있는 드레인이 은근한 통증을 전하겠지만 그마저 빼고 있는 중이었다.

“기분 어때요?”

“살 것 같아요.”

부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기뻐도 눈물 슬퍼도 눈물이라니, 부모의 마음이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아직은 완전히 안심할 수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지만 마음은 벌써 아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어제 찍은 CT와 MRI 소견상 별다른 이상이 없고, 운동 부족에도 경과가 너무 좋습니다만 지금부터 열심히 걸어야 합병증을 예방하고, 퇴원이 빨라질 겁니다.”

“항암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우리 과 치료가 모두 끝나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과와 잘 상의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워낙 병변이 컸고, 전이까지 발생해 항암 치료를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술 후 일주일 만에 항암 치료를 언급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다음 병실로 가던 김지훈이 밝게 웃었다.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환자와 보호자의 웃음 이상으로 귀한 선물은 없었다. 봉규민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더욱 강해지는 순간이었다.

간만에 정시 퇴근을 앞뒀다.

창문 너머 종합 병원 공사 현장이 보였다.

본관을 비롯해 별관 공사가 시작됐다.

그 속에 특별한 건물 하나가 들어설 것이다.

박재순 기념관!

병원이 존속하는 한 길이길이 뜻을 기려야 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름 세 글자를 항상 기억하며 소아 희귀 질환 치료를 지속하는 것뿐이었다.

‘당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하신 기부가 아니다.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인력 충원부터 모든 일을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이혁원의 도움 아래 송진우와 한수영이 제 몫을 톡톡히 해 다행이었다. 덕분에 상당히 어려운 수술이 아닌 경우 한결 부담을 줄였다. 사실 이준영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감사한 일이었다.

주변이 조용했다.

‘여전히 바쁘지만 다시 평온해지는구나.’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헉! 민 부원장?’

항상 일거리를 들고 오는 민정호였다.

오늘은 또 보따리에서 무엇을 꺼내 들고 압박을 가할지 모를 일이었다. 내일 보자고 해야 일만 쌓이는 꼴이라 미룰 상황이 아니었다.

김지훈이 자세를 가다듬었다.

‘속전속결!’

“무슨 일이죠?”

“다른 일 있겠습니까? 교수 임용 문제를 확실하게 결정해야 할 시기라 들렀습니다.”

항상 머릿속에 있는 일이었다.

“교수만이 아니라 직원 확충까지 신 이사장과 통화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잡은 계획대로 예산을 잡으면 될 겁니다. 덜 들긴 힘들겠죠.”

“알겠습니다. 다음 연도 예산에 반영하겠습니다. 그리고 전주에 수술하신 환자는 잘 회복되고 있습니까?”

“일반 병실로 올라갔습니다.”

“치료비가 만만치 않아 걱정했는데 다행이군요. 열다섯 시간 넘게 수술하신 보람이 있으시겠습니다.”

김지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째 본론이 아닌 것 같았다.

“간만에 일찍 퇴근하고 싶으니까 하고 싶은 말부터 하시죠. 돈 얘기인가요? 아니면 내가 곤란해할 수 있는 문제라도 있어요?”

“음!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산업 의학과 의료진 확보는 언제 하실 겁니까?”

“그게 과 특성상 구미 예방 의학과 조언이 절실해서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최근 통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앞으로는 가능하시고요?”

‘아! 골치 아프다.’

주말을 이용해야 하기에 문제가 많았다.

임상을 담당하는 과가 아니더라도 피차 주중에는 모두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휴식을 취해야 할 주말에 시간을 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주중에 내려가야 폐를 안 끼칠 텐데 참 곤란하네요. 내 수술이야 눈 딱 감고 하루 안 잡으면 되지만, 그쪽 분들에게 딱 맞춰 시간을 내달라고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잖아요.”

“아쉬운 쪽에서 시간을 맞춰야겠지요.”

“우리가 아쉽다는 게 문제죠.”

민정호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제가 방법을 하나 만들어 봤습니다.”

귀가 번쩍 뜨였다.

“좋은 방법이 있어요?”

“구미에 연락을 했습니다. 예방 의학과 과장님께서 요즘 진행하고 있는 일이 많아 한 달 후에나 시간이 난다고 하시더군요.”

“한 달 후예요?”

“날이 많이 남았지만 병원 준공 일자를 생각하면 빠르기도 하고, 차라리 잘됐습니다. 그때에 맞춰 수술 스케줄과 외래 일정을 조정하시죠. 목, 금, 토 사흘이면 충분하시겠죠?”

김지훈이 눈만 껌벅거렸다.

“목, 금, 토 삼 일이요? 그럼 일요일까지 3박 4일이네요. 그렇게까지 많은 시간이…….”

“구미 병원과 일정이 딱 맞는다는 보장도 없고, 제법 할 일이 많으실 겁니다. 겸사겸사 필요한 간호 인력도 다를 것 같아서 고 과장님께도 말씀드렸습니다.”

“같이 가라고요?”

“원하지 않으시면 혼자 가셔도 됩니다.”

‘이거 뭐지? 어찌 됐든 직접 얼굴 보고 상의해야 할 일은 하루 안에 끝내야 할 텐데, 경아 씨하고 함께 가라고? 그것도 3박 4일이나?’

힐끗 민정호를 보던 김지훈의 입이 서서히 찢어졌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짧은 휴가를 다녀오라는 말이었다. 전문 병원 개원 후 쉬지 않고 달려온 사람에 대한 예우였다.

확인해야 했다.

“원장님께 허락은 받으셨습니까?”

“결제란에 서명만 받으면 됩니다. 혹시 외과 내부 일정에 차질이 있을지 몰라 이경석 과장님께도 말씀드린 결과 흔쾌히 동의하셨습니다.”

김지훈이 입을 열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카르페 디엠을 부르짖을 것 같은 입과 만세 부르고 싶은 두 손을 간신히 붙잡았다. 진료 일정만 잘 조절하면 문제 될 일도 없었다.

“그래도 될지…….”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혹시 휴가라는 생각을 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어디까지나 일 때문에 가시는 겁니다.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해 필요한 인력 규모와 시설까지 확실하게 파악하셔야 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결정하신 것으로 알고 결재 올리겠습니다. 출장비가 넉넉하지 못하니까 숙소는 이성급 호텔로 잡으셔야 합니다.”

“이성급 호텔이요?”

“흔히 식당 딸린 모텔이라고 하죠. 요즘은 옛날 같지 않아서 어디나 깨끗하다고 하니까 희연이가 있어도 괜찮으실 겁니다. 돈을 보태서 급을 올리시는 것도 방법이겠군요.”

“희연이요?”

“제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희연이 얼굴을 본 적도 없는데 잘못 들으신 거겠죠. 그럼 이만!”

민정호가 사라졌다.

휘리릭!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빠르게 결정됐다.

김지훈이 잠시 문만 바라보았다.

‘내가 지금 본 사람이 민 부원장 맞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순수한 의도는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법이다. 병원 일에 있어서 누구보다 빡빡한 민정호기에 취소되거나 번복될 일도 없었다.

이제야 실감이 났다.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

‘원장님! 민 부원장님! 경석이 형! 감사합니다!’

원장 이하 병원이 공식적으로 준 휴가나 다름없는 출장이었다. 일순 환자가 머리에 스쳤지만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가슴이 설렜다.

‘이 기쁜 소식을 마님께!’

후다닥!

김지훈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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