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270화 (1,270/1,329)

16화

손일석이 망설이지 않고 간 문맥과 가까운 혈관 부위에 실을 걸었다. 가늘고 부드러운 실에 적정한 힘을 가해야만 매듭을 지을 수 있었다. 조금만 흔들려도 혈관이 끊어지는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김지훈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서서히 손을 뻗었다.

매듭을 만들어 신중하게 조였다.

저항은커녕 혈관이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무런 감각이 전해지지 않았다. 오직 눈과 경험에 의지해 타이를 시행했다.

입이 바짝 말랐다.

이미 축축해진 등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이런 타이를 문맥과 혈관종 쪽에서 각각 시행했다. 어느 한쪽만 느슨해도 자칫 감당하기 힘든 피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컷! 가위!”

혈관을 잘랐다.

수술 팀의 긴장이 확 치솟았다.

‘확실하게 됐을까?’

어떤 출혈도 보이지 않았다.

매듭이 단단하게 혈관을 물고 있었다.

김지훈이 손을 빼며 훅 숨을 내쉬었다.

순간 극도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며 다리가 부들거릴 정도였다. 솔직히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절대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체력의 한계까지 느껴졌다.

‘이런 타이를 몇 번이나 더 해야 하지?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수술 팀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체력적으로 가장 문제가 될 이준영 교수가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제 몇 번의 박리와 몇 번의 타이만 하면 성공한다는 생각에만 집중해야 했다. 스무 살 청년을 살리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떠올려야 했다.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그때 손일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와우! 제대로 잡았어.”

‘아직 메인(Main) 피딩 베슬이 남았을 텐데 무슨 소리지? 그걸 잡아야 끝나는 거잖아.’

의문도 잠시!

혈관종이 쭈글쭈글해지고 있었다.

간 문맥과 연결된 혈관이 바로 주요 혈류를 공급한 혈관이 분명했다. 거미줄처럼 얽힌 혈관 탓에 혈관 조영술 판독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눈살을 찌푸리고도 남을 일이었지만 지금은 환영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인 수술이었다.

김지훈이 처졌던 어깨를 쭉 폈다.

성공이 눈앞에 보였다.

운이라 해도 좋았다.

“끝까지 방심하지 맙시다. 모스키토!”

상대적으로 쉬워졌다는 말이지 어렵지 않다는 말이 아니었다. 잔가지처럼 연결된 혈관을 차례로 잡으며 혈관종과의 연결을 하나하나 끊어 나갔다.

드디어 마지막 타이가 남았다.

“타이!”

손일석의 손놀림이 매끈했다.

“컷!”

완전히 절제된 기형종, 혈관종, 담도 일부를 배 밖으로 끄집어냈다. 마침내 환자의 목숨을 위협했던 모든 병변을 제거했다.

기뻐할 때가 아니었다.

아직 남은 과정이 많았고, 무엇보다 먼저 챙겨야 할 사람이 있었다. 노련한 써전이라도 때론 수술에 집중한 나머지 자신의 체력이 바닥났다는 사실을 잊는 때가 있었다.

김지훈이 이준영 교수를 보았다.

“선생님, 우리에게 맡겨 주십시오.”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 한 명에게 눈길을 주었다.

‘강 교수, 잘했다. 내가 바라는 써전이 됐어. 손 교수, 신 교수를 넘을 날이 머지않았구나. 김 교수, 자랑스럽다.’

“모두 수고했다.”

수술이 시작된 지 열네 시간 만에 대가의 하루가 끝났다. 끝까지 제자의 손을 보며 함께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느끼고 있었다.

수술 팀 모두 고개를 숙였다.

존경할 수밖에 없는 써전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술 부위를 깨끗이 씻었다.

우려할 만한 출혈은 없었다.

T 튜브를 박은 후 수술 범위가 넓어 드레인을 무려 다섯 개나 박아야 했다. 복부 절개창을 닫는 시간도 꽤 걸릴 수밖에 없었다.

“컷!”

마지막 수처가 끝났다.

오전 아홉 시에 시작한 수술이 밤 열두 시에 끝났다. 무려 열다섯 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환자의 육신을 갉아먹던 종양을 모두 제거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지만 의사의 의무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수술 팀보다 훨씬 큰 부담과 위험을 감수한 환자가 눈을 떠야 했다.

마취에서 회복하는 일조차 힘겨울 것이다.

환자가 눈을 뜨지 못했다.

윤서연이 신중하게 바이탈을 점검했다.

가장 중요한 동공반사와 자발 호흡을 측정한 결과 육신은 회복 조짐을 보였다. 오랜 마취로 정신이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김 교수, 여기서 깰 때까지 보는 것이 더 위험해. 옮기는 게 좋겠어.”

“오케이! 인튜베이션 유지하고, 중환자실로 옮깁시다. 마취과, 윤 교수,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수술 방 간호 선생도 고생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드르륵!

중환자실로 향했다.

전전긍긍 초조한 기색으로 그 오랜 시간 동안 수술 방 앞을 지키던 부모가 달려왔다. 불길한 생각을 지우지 못해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선생님!”

“일단 종양은 모두 제거했습니다. 워낙 시간이 오래 걸려 마취에서 깨어나는 데 제법 걸릴 겁니다. 잠시 후 설명드리겠습니다.”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띠! 띠! 띠! 띠!

심장은 안정적으로 뛰었다.

후욱! 후욱!

자발 호흡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자발 호흡에 맞춰 인공호흡기 연결합시다. 확실하게 깨어난 것을 확인해도 안전을 위해 일단 재웁시다.”

수술 팀은 이미 녹초가 됐다.

연락을 받은 당직 팀이 급히 달려왔다.

이혁원, 나종진, 고경철.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경철이야 당연한데.’

“왜 둘이나 왔어? 누가 당직이야?”

“제가 당직인데 이혁원 선생이 백(Back) 당직을 자처했습니다. 세 명이 보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고맙다. 손 교수, 강 교수, 남은 일은 우리에게 맡기고 빨리 퇴근해.”

“한 시가 다 됐는데 교수 휴게실에서 눈이나 붙여야지 퇴근은 무슨 퇴근이야? 아마 이준영 선생님도 교수실에서 주무시고 계실 거야. 김 교수도 퇴근해.”

“보호자에게 설명은 해야지. 어디서 자든 빨리 가. 이러다 다들 쓰러지겠다.”

농담이 아니었다.

손일석과 강병옥이 어기적어기적 사라졌다. 옛날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가장 체력이 좋다는 김지훈마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일어나지를 못했다.

‘성공한 거지?’

얼마나 피곤한지 머릿속과 달리 감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긴 수술 많이 해 봤다지만 무려 열다섯 시간에 걸친 수술을 했으니 말 다 했다.

환자를 살피는 당직 팀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지훈이 갑자기 귀를 쫑긋거렸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인공호흡기가 요란한 경고음을 울렸다.

자발 호흡이 완연하게 돌아온 봉규민이 파이팅을 한 것이다. 급기야 나종진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눈을 떴다. 수술 전 간신히 체력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나종진 선생, 어때?”

“바이탈 안정적이고, T 튜브와 드레인도 깨끗합니다. 소변까지 잘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침까지 재우는 게 좋겠지?”

“무의식중에 잡아 뺄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의식이 또렷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안전하겠습니다.”

코 줄, 소변 줄, 수액 줄, T 튜브, 손가락에 건 산소 포화도 측정기, 양 옆구리에 박힌 드레인은 물론 기도에 삽입된 튜브까지 절대적으로 유지해야 할 기구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오케이!”

김지훈이 몸을 일으켰다.

‘끙’ 소리가 절로 터졌다.

‘어이구! 팔다리가 천근만근이네.’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보호자를 만났다.

눈물범벅이었다.

“예정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수술 잘 끝났고, 눈도 떴습니다. 다만 아직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안심이 될 때까지 중환자실에서 치료해야 합니다.”

“우리 아들 얼굴을 볼 수 있을까요?”

“조치하겠습니다. 안정을 위해 재운 상태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지훈이 고개를 숙였다.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무통 주사제를 달았지만 엄청난 통증에 시달릴 것이다. 광범위한 수술 부위에서 언제 예기치 못한 출혈이 발생할지 몰랐다. 조기 운동이 불가능해 각종 합병증에 시달릴 가능성도 높았다.

적시에 대처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겨 낼 거야.’

당장은 잠이 필요했다.

마치 부드러운 모래 위를 걷는 것처럼 발바닥 감각까지 이상해진 상태였다. 부원장실은 너무 멀었고, 머리에 떠오르는 장소는 하나뿐이었다.

‘수술 방 교수 휴게실이 제일 가깝지?’

휴게실 문을 열었다.

쓴웃음이 터졌다.

이준영 교수, 손일석, 강병옥이 이미 소파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행히 한 자리 남아 물먹은 솜으로 변한 몸을 누였다. 누울 곳과 시간만 있으면 어디서든 자야 했던 전공의 시절이 절로 떠올랐다.

드르렁! 드르렁!

화통 삶아 먹은 소리에도 깨지 못했다.

수술 방이 오전 수술 준비로 부산한 움직임을 보일 때가 돼서야 눈을 떴다. 부스스한 몰골의 머리 네 개가 소파 위로 하나둘 나타났다.

“허험!”

이준영 교수가 겸연쩍은 얼굴로 가장 먼저 사라졌다. 남은 셋이야 어떤 모습을 봐도 그러려니 하는 사이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온몸이 엄청 뻑적지근했다.

뜨거운 물이 간절했다.

샤워실로 향했다.

쏴아아아아!

“허험!”

스승과 제자가 알몸으로 또 마주쳤다.

“선생님!”

“물 뜨겁고 좋다.”

찜질방인가?

수술 방을 나가려는 순간 고경아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걱정 가득한 얼굴로 여기저기 살폈다.

“연락 못해서 미안해요. 근데 왜 그렇게 봐요?”

“걱정돼서 그렇죠. 아침 꼭 챙겨요. 이준영 선생님은 더 힘드셨을 테니까 신경 쓰고요.”

아내 앞에서만은 센 척하고 싶은 남편이었다.

김지훈이 내세울 것도 없는 알통을 보였다.

마치 쌩쌩하다는 듯!

눈이 시릴 정도로 피로가 쌓였지만 정해진 일과를 늦추는 순간 모든 업무가 어그러지기 마련이었다. 그나마 말끔해진 김지훈이 중환자실로 향했다.

‘밤새 연락이 없었다는 것은 환자가 괜찮다는 말인데 어디까지 회복됐을까?’

나종진과 고경철이 달려왔다.

“환자 어때?”

고경철이 아침에 촬영한 흉부 사진을 걸며 보고를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흉부 사진 정상적이고, 간 기능을 비롯한 혈액 검사 역시 약간의 빈혈 소견만 보일 뿐 이상 없습니다. 환자 의식 명료하고, 파이팅이 심해 인튜베이션까지 제거한 상태입니다.”

“숨 잘 쉬어?”

“직후 시행한 동맥혈 가스 검사는 정상 소견입니다. 드레인에서 출혈 양상은 관찰되지 않습니다.”

곧 삼 년 차가 된다지만 치프 이상의 능력을 보여 주는 고경철이었다. 전문 병원의 유일한 전공의인 탓에 힘든 만큼 얻는 것도 많았다.

“환자 보자.”

김지훈을 본 봉규민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대단한 회복이었다.

“지금은 안정이 우선입니다. 고경철 선생, 보호자분들 들어오시라고 해.”

눈을 뜬 아들을 본 부모의 반응은 눈물이었다.

“엄마! 아버지!”

“아들!”

김지훈이 미소를 머금었다.

서로를 부르고,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중환자실을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열다섯 시간에 걸친 수술의 대가로 이보다 큰 선물은 없었다.

‘선물?’

와이셔츠 하나가 휙 지나갔다.

꼭 받고 싶었다.

건강이라는 선물을 꼭 주고 싶었다.

점점 더 진한 미소를 머금던 김지훈이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아침 식사! 스승님, 어디 계세요.’

조용해야 할 병원 복도를 부리나케 달렸다.

헉헉! 간만에 스승과 함께 아침밥 먹었다.

커피는 덤이었다.

일단 외치자.

카르페 디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