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269화 (1,269/1,329)

15화

기형종과 혈관종이다.

담낭부터 담도, 간 혈관, 췌장까지 주변의 모든 장기와 관련성이 있었다. 한꺼번에 들어내는 것이 더 쉬워 보일 정도였지만 휘플로도 해결할 수 없는 종양이었다.

무엇보다 악성인 기형종은 물론 혈관종 역시 완벽하게 제거해야 했다. 양성이라지만 혈관종을 부분적으로 남겼다간 대량 출혈의 위험이 급격하게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담낭부터 제거합니다. 보비!”

삐이이이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간에 묻힌 부분이 순식간에 떨어져 나오며 이내 동맥까지 처리됐다. 어차피 살릴 수 없는 상황이었고, 부수적으로 시야가 넓어지는 효과를 얻었다.

소장, 위에 이어 세 번째 장기가 제거됐다.

두 개의 종양이 완전히 드러났다.

크기는 작았지만 제거하기 가장 힘들고, 위험한 덩어리였다. 후복막과 위에 침범한 종양을 절제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그 탓인지 주변 장기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간 혈관과의 연결까지 확실하게 끊는 과정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난관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환자에겐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제거하면 산다.

수술 후 어떤 합병증이 발생할지 모르지만, 인생 중 가장 혈기 왕성한 나이와 95퍼센트에 달하는 놀라운 예후를 믿어야 했다.

반대로 제거하지 못하거나 수술 도중 혈관종에서 대량 출혈이 발생하면 시기가 달라질 뿐 결국 죽는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필연이었다.

둘 중의 하나였다.

이보다 더 큰 압박은 없었다.

김지훈이 입술을 물었다.

‘모든 병원이 고개를 흔든 이유, 우리를 주저하게 만든 이유가 바로 눈앞에 있다. 이놈을 제거해야 환자가 산다. 여기서 실패할 수는 없다.’

손일석 역시 눈가에 바짝 힘을 주었다.

‘김 교수 실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혈관 전문의라 불리는 써전은 나뿐이다. 실패하면 내 책임이다. 스승님께 배운 대로 처리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시작하자.”

수술이 시작된 지 아홉 시간 만에 마지막 종양 제거에 들어갔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극심한 피로가 몰려오고도 남았지만 수술 팀의 의지와 각오는 그 이상이었다.

“모스키토!”

기형종부터 박리를 시작했다.

췌장 머리 부분과 담도가 종양 바로 아래에 위치했다. 사소한 실수나 미흡한 처리만으로도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신중하게 접근했다.

그토록 조심했건만 방금 전 기형종을 떼어 낸 췌장 부위 여기저기가 출혈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당연히 볼 수 있는 소견임에도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기능에는 문제없겠지.’

의외로 순조로웠다.

상대적으로 떨어진 종양과 췌장과의 위치 덕분도 있었지만 경계를 이루는 지방조직 등이 정상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췌장과 담도 주변으로 전이된 암이 어디에서 발생한 거지? 이 부근의 결합 조직이 아니었나?’

왠지 불안했다.

손일석도 수처와 타이가 수월할 정도로 아주 쉽게 분리되는 종양을 보며 눈가를 찡그리고 있었다. 지난 과정을 돌이켜 보면 정말 생각하기 어려운 소견이었다.

‘이상해. 운이 좋은 건가?’

뿌리 내릴 자리도 없이 허공에 붕 뜬 것처럼 종양이 발생할 리 없었다. 분명 어딘가에 암 세포가 자라기 시작한 부분이 있어야 했다.

긴장만이 감돌았다.

어느새 췌장과 완전히 분리됐다.

‘이 부분이 아니라면?’

담도 쪽이 남았다.

단단한 조직으로 구성돼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박리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이를 모르지 않을 김지훈의 손이 더욱 느려졌다.

이유는 명확했다.

담도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암보다 더 위험한 혈관종과 바짝 붙은 부분을 앞뒀기 때문이었다.

담도를 따라 박리를 시작했다.

불과 2센티미터도 안 되는 부분이었다.

모스키토로 경계부를 벌리려던 김지훈이 돌연 눈가를 찡그리며 다급하게 기구를 뺐다.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감촉이 느껴진 것이다.

설상가상 혈관종에 근접한 위치였다.

“손 교수, 확인해 봐. 아무래도 기형종이 담도를 침범한 것 같아.”

“후우! 여기였구나. 너무 쉽다 했어.”

조심스럽게 기구를 넣어 감촉을 확인한 손일석 역시 강한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

“어떻게 할 거야?”

“다른 암이었다면 휘플을 해야겠지만 종양만 제거해도 예후에 영향이 없는 기형종이란 점이 정말 다행이야. 문제는 혈관종 때문이라도 침범 부위를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건데…….”

난감한 일이었다.

무턱대고 담도를 자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이준영 교수와 강병옥까지 병변을 확인한 뒤 이후 과정을 논의했다.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섣불리 판단해 절제할 수는 없었다.

김지훈이 마취과에게 양해를 구했다.

“잠시 CT, MRI 확인하겠습니다.”

수술 팀 모두 번갈아 가며 뷰(View) 박스에 걸려 있던 검사를 차근차근 살폈다.

“손 교수, 췌장에서 담도에 걸쳐 전체적으로 강한 유착이 의심된다고 했지만, 지금 상태를 고려하면 가장 밀착된 것으로 보이는 이 부분에서 전이 암이 발생한 것 같은데 어때?”

“종양과 담도 위치를 감안하면 맞는 것 같아.”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달리 해석할 수 없어 보인다.”

결론이 나왔다.

문제는 수술 방법이었다.

담도를 완전히 자르면 다시 이어 줄 수 없다. 담도암이 발생한 경우 휘플을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기에 종양만 제거해야 하는데 구멍 난 부분을 처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혈관종과의 연관성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김지훈이 잠시 고민했다.

“손 교수, 기형종의 특성을 믿고, 암이 발생한 담도 일부분을 제거한 후 그 자리에 T 튜브를 넣으면 되지 않을까?”

“아! 어차피 광범위 절제술을 해야 하는 암이 아니니까 그러면 되겠네. 근데 제거한 자리가 상당히 클지도 모르는데 T 튜브로 막을 수 있을까?”

어찌 됐든 암은 암이다.

아예 경험이 없는 경우라 과연 올바른 접근인지 난감하기만 했다. 써드 자리에 서서 묵묵히 지켜보는 이준영 교수의 조언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선생님, 이런 식으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임기응변도 중요한 요소지.’

“가능해 보인다.”

김지훈의 굳었던 얼굴이 다소 풀렸다.

스승의 존재는 든든함 그 자체였다.

담도 제거 부위가 너무 큰 경우 수술 후 제대로 아물지 걱정이 됐지만 종양을 제거하려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한편으로 인간이 가진 재생력을 믿었다.

담도 부분 절제가 시작됐다.

“메스! 가위!”

담도에 조그만 구멍을 뚫은 후 단단히 들러붙은 종양 경계를 따라 잘랐다. 가급적 매끈하게 절제해야 T 튜브 제거 후 잘 아물기 때문에 무척 섬세한 손이 요구됐다.

간단할 리 없었다.

담도 자체가 심각한 출혈이 발생하는 조직이 아닌 점이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혈관종이 가로막은 상태였다. 주변을 박리해 가며 담도를 잘라 내는 내내 숨도 쉬기 힘든 긴장이 감돌았다.

김지훈이 수시로 확인했다.

“혈관종과 너무 가깝지 않아?”

“괜찮아. 그대로 진행해도 되겠어.”

아슬아슬했다.

동시에 두 개의 병변에 집중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눈길을 줄 때마다 자극을 받은 혈관종이 부풀어 오른 것 같아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악전고투 끝에 결국 종양과 달라붙은 담도를 절제해 냈다. 이제 기형종과 장기의 연결이 모두 끊어졌지만 더욱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다.

마지막 과정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예상치 못한 고비를 잘 넘겼지만 남은 덩어리가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혈관종과 한 덩어리가 돼 붙어 있는 상황이었다.

조작 중 실수할 확률이 더욱 높아졌다.

마지막 남은 힘까지 모두 쥐어짜야 할 때였다.

‘후우! 정말 힘드네.’

이제 혈관종만 제거하면 된다.

수술의 성패가 바로 이 순간에 달렸다.

김지훈이 혈관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손일석은 잔뜩 눈가를 좁힌 채 접근 방향과 방법을 수없이 반복했다. 누구보다 혈관을 많이 만졌지만 좁쌀만 한 자신감조차 갖지 못했다.

혈관종에 피를 제공하는 혈관을 안전하게 잡는 것이 관건이었다. 단 하나의 혈관이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거미줄처럼 얽힌 혈관에서 분수처럼 피가 터져 나올 것이다.

‘할 수 있다. 제거할 수 있다.’

“손 교수, 간과 연결된 혈관부터 잡은 후 다른 혈관과 연결된 부분을 잡자.”

“오케이! 시작하자.”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긴장이 잔뜩 실려 있었다.

“모스키토!”

간 문맥을 찾았다.

간 이식을 하며 숱하게 보고 다뤘던 혈관이었지만 암 덩어리에 가려 노출시키는 과정조차 쉽지 않았다. 더구나 동맥보다 혈관 벽이 얇고 약해 무리하게 주변을 박리하다간 손상받을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사소한 출혈까지 철저하게 처리해야 심각한 출혈의 징후를 제때에 발견할 수 있다.’

“수처! 타이! 컷! 보비!”

한 방울의 피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든 출혈 부위를 묶고 지졌다. 서서히 간 문맥이 드러나고, 마침내 혈관종과 면한 부분까지 접근했다.

생사가 걸린 박리를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극도의 긴장만이 감돌았다.

행여 방해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준영 교수마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대가조차 느낄 수밖에 없는 두려움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몰랐다.

김지훈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강 교수,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말할 때 이외에는 거즈도 대지 마. 루뻬!”

간 문맥이 확대됐다.

혈관종과의 경계가 뚜렷하게 보였다.

세밀한 시야에도 불구하고 혈관 수술에 쓰이는 조그만 기구들이 상대적으로 커다랗게 보여 박리할 틈이 좁아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시작하자.”

혈관 하나가 보였다.

간 문맥과 연결된 혈관이 아니었다.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 묶고 잘랐다.

확대된 단면을 본 김지훈이 말을 잃었다.

손일석도 콧등을 잔뜩 찡그렸다.

피딩 베슬(Feeding Vessle)이다!

가느다랗지만 혈관종에 혈류를 공급하는 혈관이 분명했다. 가장 큰 혈류를 담당하는 혈관이 있을 텐데 이런 혈관까지 산재해 있다면 그야말로 악전고투가 될 것이다.

‘예상을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였다.

자칫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짜증에 성급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손일석은 이미 평정을 찾고 있었다.

함께 수술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타이! 컷! 모스키토!”

신중의 신중을 기해 연결 혈관을 찾아 박리를 진행했다. 실핏줄처럼 보이는 혈관마저 묶을 수 있으면 묶고, 불가능하면 보비를 이용해 지졌다.

그때마다 식은땀이 흘렀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손에 잡히는 기구를 잡고 수없이 같은 동작을 한 탓인지 손가락의 감각이 무뎌질 정도까지 몰렸다. 이미 열두 시간을 넘어선 수술 시간에 수시로 손을 멈춰야 했다.

고도의 집중력, 적절한 긴장은 물론 절대 판단력이 흐려지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힘까지 쥐어짠 김지훈이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후우! 손 교수, 곧 문맥과 연결된 혈관이 보일 것 같은데 그쪽에서 박리하는 게 안전하겠어.”

손일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내 쪽 시야가 좋고, 기구를 조작하기도 편하다. 정확한 판단이야.’

“오케이! 시작한다.”

혈관 수술에 관한 한 김지훈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손일석이었지만 넘기 힘든 난관에 직면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순간의 판단이 성패를 좌우할 과정이었다.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벌어지지 않은 틈을 꾸준히 벌리고 또 벌렸다. 동맥까지 바짝 붙어 주행해 모든 조작이 아슬아슬했지만 결코 혈관을 손상시키지 않았다.

마침내 간 문맥과 연결된 혈관을 찾았다.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상당히 강해야 하건만 간 문맥의 혈류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약해 보였다. 혈관 겸자마저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수술 전 예측했던 대로 당장 터져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손일석이 답답한 신음을 터트렸다.

“김 교수, 타이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 가능하겠어? 아니면 간 문맥 후면까지 모두 박리해 일시적으로 혈류를 끊어야 될 것 같아.”

어느 쪽이 더 안전하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손가락을 폈다 오므리길 반복한 후에야 답을 했다.

‘이런 시야와 상황에서 문맥까지 박리하다간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정도 감각이면 가능해.’

“타이하자.”

집도의의 결정이었다.

단순히 매듭을 지어 혈관 하나 묶으면 되는 과정에 엄청난 의미가 담겼다.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려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닌 김지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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