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268화 (1,268/1,329)

14화

이미 계획한 일이었다.

“김 교수, 수고했다. 강 교수, 부탁한다.”

김지훈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너무 힘든 과정이었다.

전문의 네 명이 참가한 최고의 수술 팀이건만 무려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마저도 김지훈과 이준영 교수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휴식이 필요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 분간 쉬겠습니다.”

써드가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아니었다.

응당 장갑을 벗어야 할 이준영 교수가 강병옥이 섰던 자리에 섰다. 깜짝 놀란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묵직한 한마디가 날아들었다.

“강 교수와 손 교수의 손을 보고 싶다.”

김지훈이 입을 열지 못했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극심한 체력이 소모되는 수술이기에 만류하고 싶었지만 스승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누구 한 명 제자가 아닌 써전이 없었다. 특히 김지훈의 손을 끝까지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더구나 수술 중에는 누구보다 냉철해야 할 써전의 결정이었다.

‘감사합니다. 우리를 지켜봐 주십시오. 단, 체력의 한계를 느끼시면 바로 쉬셔야 합니다.’

강병옥도 생각이 많아졌다.

불과 오 분 사이에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전공의 시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살았다. 욕심이 앞서 없어서는 안 될 동료인 송진우는 물론 동료들에게도 못할 짓을 많이 했다.

그렇게 쭉 살았다면 어떤 인생이 됐을까?

능력 있는 의사인 이상 잘 먹고 잘살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최고의 써전이라는 꿈과 어린 시절부터 품어 왔던 미래를 잊고 살았을 것이다.

누군가를 보며 길을 찾았다.

무엇보다 동료와 함께 발전하는 법을 배웠고, 최선을 다해 달려올 수 있었다. 이제는 대가인 이준영 교수가 인정하는 써전이 돼 이 자리에 서 있었다. 때문인지 손을 보고 싶다는 말을 듣는 순간 어울리지 않게도 가슴마저 울컥했다.

일종의 감동이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김지훈 선생님은 내게 은인이나 다름없다. 비록 일부분이지만 내 역할을 확실하게 해내야 한다.’

자신의 실력을 온전하게 보여 주고 싶었다.

결코 자만이 아니었다.

이미 인정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존경하는 써전들이 자신의 손을 확실하게 보고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깨져도 좋았다.

조용히 수술 과정을 되새겼다.

“자! 시작합시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울렸다.

수술 팀 모두 하얀 우유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다음 과정을 시작했다. 이준영 교수도 써드로서 자신의 자리를 잡았다.

“켈리!”

먼저 위와 연결된 혈관을 잡았다.

천만다행 일부분만 절제해도 되는 위치에 종양이 전이됐다. 크기까지 작아 수월해 보였지만 관건은 종양 하부와 면한 췌장이었다.

CT와 MRI 소견상 제거가 가능했지만 암이 직접적으로 퍼졌다면 수술이 불가능했다. 현 상태에서 췌장까지 절제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종양을 촉진했다.

“강 교수, 확인해 봐.”

강병옥이 종양과 췌장을 면밀하게 살폈다.

“어때?”

“검사로 판단했던 것보다 유착이 훨씬 심해 보이지만 침범한 것 같지 않습니다. 제거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위는 소장과 연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일부분만 잘라도 되겠어?”

“위에 침범한 기형종 크기가 크지 않고, 위치도 나쁘지 않아 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오케이! 췌장이 문제구나. 시작하자.”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이런 운이라도 있어야지.’

기형종을 중심으로 위를 원뿔 형태로 잘라 냈다. 잘라야 할 부분의 범위가 조금만 더 넓었다면 아예 절반 정도 자르고 소장을 연결해야 할 뻔했다. 위 절제만 놓고 보면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수술이었지만 봉규민 환자에겐 치명적인 상황이 됐을 것이다.

뻥 뚫린 위를 봉합했다.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게 수처와 타이를 진행했다. 워낙 큰 수술을 받아 회복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수술 후 위가 터진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 기형종을 떼어 내야 한다.

췌장 몸통 부분과 바짝 붙은 데다 시야 확보가 쉽지 않아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어떤 조작이든 췌장에 손상을 가하는 순간 수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모스키토!”

종양과 췌장의 경계면 박리를 시작했다.

거칠고 단단한 암 덩어리가 두부처럼 무른 췌장과 거의 맞닿아 있을 정도로 유착이 심했다. 얼핏 전이가 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경계가 확실하게 살아 있다. 전이가 아니다.’

“보비! 거즈!”

함부로 수처할 수 없어 최대한 전기 소작으로 출혈을 잡았다. 전기에는 눈이 없다. 췌장 조직이 지져지지 않도록 출혈 부위를 정확히 잡아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조작이 아니었다.

한계가 명확했다.

박리도 힘든 상태에서 다소 양이 있는 출혈까지 발생하자 시야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전기 소작은 양이 적어야 효과를 보기 때문에 결국 수처와 타이를 피할 수 없었다.

종양은 몰라도 췌장을 찌르고 묶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손가락으로 강한 압박만 가해도 손상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과정 자체가 살얼음판이었다.

김지훈의 손이 느려질 대로 느려졌다.

“수처! 타이!”

강병옥의 이마가 흠뻑 젖었다.

입술이 바짝 마를 정도였다.

눈과 손은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쌓은 경험과 실력으로 김지훈과 호흡을 맞추며 모든 과정을 대처했다. 매번 마지막 타이인 것처럼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시켰다.

종양과 췌장이 서서히 분리됐다.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에 가까워질수록 또 다른 종양이라 할 수 있는 기형종과 혈관종이 손을 방해했다. 가뜩이나 수술 공간 자체가 손바닥 반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손 한 번 삐끗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수술 팀 모두 극도로 긴장했다.

혈관종을 처리해야 하는 손일석의 눈이 매서워졌다. 과도하게 자극해 부종이라도 발생하면 성패가 달린 마지막 수술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초조함까지 몰려왔다.

‘병옥아, 잘하고 있지만 조금만 더 신중하게 하자. 혈관종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이준영 교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제자들은 결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김지훈과 강병옥의 호흡은 훌륭했고, 췌장과 혈관종을 충분히 주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만 진행하면 된다.’

갈수록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김지훈이 나직하게 말했다.

“췌장 헤드(Head)와 겹친 부분 박리합니다.”

몸통이라면 설혹 손상을 주어도 대처할 방법이 있겠지만 총수담관과 혈관이 통과하는 머리 부분은 얘기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수술 시야가 좁다는 말은 변명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박리, 수처, 타이는 물론 피를 닦을 때까지 모든 조작을 주의하지 않으면 휘플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수술 팀 모두 오직 한곳에 집중했다.

“모스키토! 수처! 타이! 컷! 보비!”

췌장과 종양을 안전하게 분리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건만 수술 팀 누구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드디어 끝이 보였다.

자칫 긴장이 풀어질 수도 있었다.

가장 조심해야 할 순간이었다.

김지훈이 신중하게 모스키토를 밀어 넣었다.

몇 번을 해도 방심할 수 없는 감각이 전해졌다. 조금만 힘을 더 주거나 방향이 빗나가면 지금까지 흘린 땀이 모두 헛수고로 변할 것이다.

경계부가 벌어졌다.

빨간 피가 비쳤다.

“수처!”

허리와 고개를 모두 숙여야 수처가 가능할 정도로 시야가 나빴다. 날카로운 바늘이 조직을 찌르고 빠져나올 때까지 숨도 쉬지 못했다.

“타이!”

강병옥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과정인 타이가 이렇게 힘들지 몰랐다. 매듭을 짓는 손가락에 종양과 췌장이 가려지는 순간 숨이 턱턱 막혔다.

“컷!”

‘좋았어. 됐다. 여기까지 박리하고 나머지 부분을 한꺼번에 잡아도 될까? 아니면 한 번 더 박리를 하는 것이 안전할까?’

집도의의 고민이었다.

육체적으로 워낙 힘들어 성급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었다. 수술 팀은 어떤 자리에 서 있어도 단순한 보조자가 아니었다. 극심한 부담에 시달리는 집도의와 함께 판단하고, 조언하는 존재였다.

“강 교수, 다 잡아도 되겠어?”

“한 번 더 박리하시죠.”

김지훈은 망설이지 않았다.

‘고민스러울 때는 퍼스트의 판단과 동일한 쪽을 따르는 것이 맞다.’

“모스키토!”

한 번의 박리를 더 진행했다.

고통스럽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힘든 과정이 무사히 지났다. 마지막 남은 끄트머리를 한꺼번에 잡아 처리하고 종양을 끄집어냈다.

두 번째 암 덩어리가 제거됐다.

수술 부위 상태가 만족스러웠고, 손을 써야 할 정도의 출혈도 보이지 않았다. 강병옥과 함께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만 남았다.

“후우!”

절로 긴 숨이 터졌다.

세 시간 가까이 걸렸다.

김지훈이 허리를 폈다.

‘최소 예상 시간을 열 시간으로 잡았는데 어림도 없네. 가장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과정이 남은 이상 무리해서는 안 된다. 스승님도 이젠 쉬셔야 할 텐데.’

“십 분간 쉬겠습니다.”

마침 교대할 시간이 됐다.

김진호 교수가 윤서연에게 수술 상황 및 환자 상태를 자세히 설명했다. 큰 출혈이 없었지만 지속적인 출혈로 인해 수혈을 시작한 지 오래였다.

“바이탈은 괜찮은데 총 출혈량이 만만치 않아. 혈관종을 제거할 때가 고비야.”

“혈소판 농축액까지 필요할까요?”

“수혈량이 가장 중요할 텐데 전혈(Whole blood)이 좋지 않겠어?”

노련한 마취과 의사도 경험하기 힘들 정도로 긴 수술이었다. 마취에 따른 문제까지 나직한 대화가 휴식 시간 내내 이어졌다.

교대할 간호사가 들어왔다.

고경아가 바쁘게 움직였다.

써전들과 똑같이 꼬박 여덟 시간 넘게 서서 수술을 도왔지만 어떤 면으로 보면 가장 힘든 사람이었다. 집도의부터 써드까지 모든 수술 팀을 보조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메이저 기구 세트 다시 꺼냈어. 혈관종 제거가 남았으니까 출혈에 대비해야 돼. 혈관 겸자와 루뻬도 미리 여러 개 준비하는 게 좋겠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수고해.”

자리를 바꾼 고경아가 조용히 어깨와 허리를 이리저리 돌렸다. 직업이고, 정규 수술 시간 내라지만 단 한시도 쉬지 못했다. 수시로 이런 수술에 참가해야 한다면 어떤 간호사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십 분이란 짧은 시간이 많은 생각을 불러왔다. 수술 팀은 단지 써전의 조합이 아니라는 사실을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비단 그들만이 아니라 한 명의 환자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인력이 결코 적지 않았다. 어느 한 명 고맙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제 마지막 암 덩어리 두 개가 남았다.

지금 추세로 진행된다면 적어도 다섯 시간 이상 걸릴 것이다. 김지훈 자신은 물론 손일석과 강병옥까지 상당한 피로를 느끼는 상황이었다.

특히 이준영 교수가 걱정됐다.

더구나 수술 과정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단순히 보조만 하는 써드는 더더욱 피로를 가중시키는 자리였다. 스스로 원했다고 해서 나아질 것이 없었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이제 저희끼리 진행하겠습니다.”

“괜찮아.”

“벌써 여덟 시간이 지났습니다.”

“수술 팀이 된 이상 수술을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약속한 것과 다름없다. 내 의무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말이었다.

이준영 교수의 체력이 받쳐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긴 대가라 불리는 사람이 수술 중 몸 관리를 못해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결국 모든 써전이 자리를 지켰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스승님의 말씀처럼 우린 약속을 했다. 불가피한 상황, 불가항력이라는 말 자체를 떠올리면 안 된다. 남은 암은 단 두 개뿐이다.’

“준비합시다.”

손일석이 퍼스트 자리에 섰다.

강병옥이 세컨 자리를 지켰다.

써드를 자처한 이준영 교수도 가볍게 어깨를 푼 후 긴장을 끌어 올렸다. 자신이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런 일이 생길 리가 없지.’

스승의 신뢰는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김지훈이 힘차게 손을 내밀었다.

“모스키토!”

마지막 암 덩어리의 제거가 시작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