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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267화 (1,267/1,329)

13화

코 줄, 소변 줄을 끼고, 주렁주렁 수액이 매달리는 순간이 환자에게 가장 불안할 때였다. 수술실로 옮겨질 때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기 마련이었다.

봉규민 환자도 다르지 않았다.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눈도 뜨지 못했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억지로 참는 것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야 다른 사람은 도저히 해결해 주지 못하는 긴장과 불안을 이겨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바짝 마른 입술이 허옇게 들떠 갈라져 있었다. 아들이 수술실로 들어갈 때까지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김지훈에게 매달렸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빨리 끝나도 열 시간 이상 걸릴 겁니다. 수술 후에도 중환자실로 가야 하니까 힘드시더라도 꾹 참고 기다려 주세요.”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 방 앞이 사람으로 가득했다.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안 가득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이건만 오늘따라 유난히 가슴이 착잡했다. 매일 환자를 보다 보니 어느새 그들이 어떤 상황인지 무감각해진 모양이었다.

‘정말 많은 걸 느끼게 하네.’

수술실에 들어섰다.

김진호 교수가 직접 마취를 맡았다.

“마취 시작합니다.”

띠띠띠띠!

야윈 몸을 간신히 면한 봉규민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한동안 급박하게 울리던 심장박동이 서서히 규칙적이면서도 안정적으로 변했다.

띠! 띠! 띠! 띠!

97퍼센트-98퍼센트-97퍼센트.

산소 포화도 역시 정상 수치를 보여 온몸 구석구석 산소를 충분하게 전달할 것이다. 오랜 기간 암에 시달렸을 봉규민이었다. 수술을 견디는 데 가장 중요한 심폐 기능이 건강하다는 사실 자체가 큰 위안이었다.

“준비하십시오.”

모든 준비를 마친 수술 팀이 환자 옆에 섰다.

엄청난 진용이었다.

전문 병원 최고의 써전인 김지훈.

대가라는 말로도 부족한 이준영 교수.

간 이식과 혈관에 일가견이 있는 손일석.

간 이식과 위장관에 강점을 가진 강병옥.

그뿐인가?

노련하기 짝이 없는 김진호 원장과 교대를 할 윤서연이 마취를 담당했다. 어려운 수술을 도맡다시피 참가하는 고경아가 첫 번째 어시스트를 서고, 교대할 간호사 역시 검증된 실력자였다.

면면으로만 보면 실패가 도리어 이상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반면 그만큼 어려운 수술이라는 방증이기에 누구 한 명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김지훈이 수술 팀에게 일일이 눈길을 주었다.

아무리 큰 수술이라도 전문의 네 명이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사실 시야를 확보하며 보조하는 일은 세컨만으로 충분했고, 그마저도 전문의가 할 일이 아니었다.

수술의 위험도와 난이도를 고려한 일시적인 조치일 뿐이었다. 그런 까닭에 구성 당시 ‘써드가 필요하다면’이란 단서를 달은 후 손일석과 강병옥에게 요청을 했었다.

누구도 자신의 역할에 개의치 않았다.

이준영 교수가 다소 민망한 상황을 정리해 주었지만 세컨을 요청한 것만으로도 미안한 일이었다. 하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성공해야 했다.

‘부족한 부분을 찾을 수 없는 수술 팀이다. 수술 팀 전체를 믿고 가자.’

김진호 교수가 수술 시작을 알렸다.

“수술 시작해도 됩니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이준영 교수는 존재 자체가 힘이었다.

퍼스트 설 기회를 갖자는 말이 이렇게 실현될지 몰랐지만 다시없을 순간이었다. 절대 실패라는 두 글자를 새기고 싶지 않았다.

‘스승님, 함께 수술하게 된 것이 결코 개인적 바람이나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환자 살리고 싶습니다. 반드시 건강하게 만들 겁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메스가 반짝였다.

여윈 배가 열렸다.

복강 내 모든 병변을 세세하게 확인했다.

긴장이 치솟았다.

소장과 대장 뒤 후복막이 불룩 솟아 있었다. 일부분이 기괴한 모양으로 변형된 채 소장과 이어진 것으로 보아 기형종이 최초로 발생한 부분이 분명했다.

‘정상 조직을 포함해 제거해야 하는데 사이즈가 너무 크다. 소장도 상당 부분 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간과 위 사이에서 종양이 관찰됐다.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위 일부를 절제하는 것 이외에 해결책은 없었다. 주변 조직과 단단히 붙어 박리 자체가 상당히 힘들 수밖에 없었다.

‘후우! 만만한 과정이 없네. 췌장과 근접한 이상 간 병변보다 더 조심해야 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간과 인접한 종양을 확인했다.

나직한 탄식이 터졌다.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병변이 다르다는 사실을 숱하게 경험했지만 이번은 정말 달랐다. 건드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였다.

혈관종이 무시무시해 보였다.

전이된 기형종 제거가 한결 쉬워 보일 지경이었다. 사실 느낌일 뿐 간 혈관은 물론 담도, 췌장 일부와 바로 붙어 있어 위험하긴 매한가지였다.

긴장을 덜어 줄 요인이 하나도 없었다.

수술이 불가능해 배를 열고 닫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와 하등 다를 바가 없을 정도였다.

김지훈이 긴 숨을 내쉬었다.

이준영 교수도 눈가만 굳혔다.

이미 각오하고 시작한 수술이었다.

지금에 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오직 두 손과 수술 팀을 믿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의료진을 믿고 자신의 몸을 맡긴 환자를 반드시 살려야 했다.

김지훈이 눈에 힘을 주었다.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후복막 기형종부터 제거합니다. 메스!”

소장과 대장을 제쳐 후복막을 노출시켰다.

종양의 경계부로 짐작되는 지점에서 1센티미터 정도 여유를 두고 후복막을 열었다. 정상적인 감촉이 느껴졌지만 시작일 뿐이었다.

박리를 시작했다.

“켈리! 보비! 수처! 타이! 컷!”

서서히 종양이 드러났다.

단단하면서도 무른 조직이 뒤섞인 데다 대동맥이 바로 하방에 위치했다. 각 장기로 가는 동맥까지 주행해 단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동맥이다.”

위치로 가늠할 뿐 종양과 인접한 탓에 정확히 어떤 동맥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동맥이라도 손상되는 순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모스키토!”

박리 자체가 힘들었다.

종양을 과도하게 건드리면 암 세포가 퍼져 나갈 가능성까지 상존했다. 상대적으로 가느다란 분지가 보일 때면 출혈 위험성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했다.

김지훈은 침착했다.

이준영 교수는 노련한 손을 유감없이 보였다.

손일석과 강병옥은 신중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피를 닦고, 시야를 확보해야 안전한지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혈관 전문의 이전에 세컨과 써드의 역할에만 집중했다.

조금씩 종양이 떨어져 나왔다.

몇몇 동맥이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남았다. 신경이 지나가는 것으로 여겨지는 부위는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해 최대한 손상을 피했다.

가장 위험한 부위에 도달했다.

대동맥 직상방이었다.

10센티미터가 넘는 부분을 박리해 분리해야 했다. 각 장기로 가는 동맥이 시작되는 부위가 산재해 그야말로 혈관과의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혈관종만큼 위험한 과정이다.’

“모스키토! 수처! 타이! 컷!”

신중한 접근만이 답이었다.

엄청난 혈류가 흐르는 대동맥과 심장박동을 따라 벌떡벌떡 뛰는 동맥이 살벌하기만 했다. 작은 기구 끝이 파고들 때마다 섬뜩한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이미 땀이 맺혔다.

이준영 교수도 예외가 아니었다.

손바닥만 한 종양의 거대한 크기가 주는 압박감이 수술실 공기마저 얼어붙게 했다.

몇 번을 조작해야 고작 손톱만큼 박리할 수 있었다. 그마저 절대 서두를 수 없어 수술이 시작된 후 한시도 쉬지 않았지만 너무 더뎠다.

김지훈이 급해지는 마음을 억누르며 손에 실린 침착함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집도의가 갖춰야 할 태도와 심리적 상태를 굳건하게 견지했다.

사각! 사각!

대동맥이 점차 확연하게 노출됐다.

십여 개에 달하는 동맥 시작부가 완전히 박리됐다. 마침내 후복막 박리의 절정이자 극악한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부위에 도달했다.

종양이 소장으로 가는 동맥을 감싼 부분이었다. 전이가 발생한 소장으로 혈류가 이어져 잘라도 되는 혈관은 단 하나였다.

나머지는 무조건 살려야 했다.

“소장 동맥 박리합니다.”

김지훈의 입이 바싹 말랐다.

이준영 교수도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모스키토 끝이 조직을 파고들었다.

인간의 육신을 파먹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는 종양은 수많은 혈관을 간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형종 역시 다르지 않았고, 곳곳에서 종양과 연결된 혈관을 처리해야 했다.

시야까지 나빠졌다.

날카로운 바늘로 출혈 부위를 봉합하고, 매듭을 지을 때마다 치솟는 긴장에 숨소리마저 사라졌다. 서서히 떨어져 나온 종양 덩어리는 여전히 시한폭탄이었다.

‘제거해도 되는 혈관을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

악전고투였다.

노련한 써전들에게도 한계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런 순간을 위해 그동안 무수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수많은 경험이 주는 힘 역시 작지 않았다.

드디어 목표에 도달했다.

종양과 면한 시작 부위 일부분만을 박리하고 나머지를 남긴 동맥은 단 하나였다. 반드시 절제해야 할 소장으로 주행하는 혈관이어야 했다.

김지훈이 이준영 교수를 보았다.

“혈류 차단하겠습니다.”

신중한 표정으로 대동맥, 종양, 동맥의 위치, 소장과의 연결성을 모두 확인한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혈관 겸자!”

따르륵! 따가각!

혈관을 잡았다.

수술 팀의 시선이 일제히 소장으로 쏠렸다.

만일 엉뚱한 부분의 소장이 변색된다면 지금까지 한 모든 노력이 헛고생이 될 것이다. 이미 각 조직이 갈기갈기 찢긴 상태나 다름없었다. 위험한 과정을 또다시 되풀이해야 한다면 더 큰 위험을 초래할 것이 빤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상당한 시간이 경과했다.

마취로 인한 육체적 부담이 갈수록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힐끗 시계를 본 김진호 교수도 초조한 기색으로 수술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종양이 침범한 소장의 색이 변했다.

정확하게 혈관을 찾아 잡았다.

“후우!”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고비 하나를 넘은 것뿐이었다.

“혈관 자르고 박리 계속합니다.”

반복의 반복을 거듭한다고 해서 절대 쉬워지지 않는 과정이었다. 치솟은 긴장은 여전했고, 집도의의 집중력이 떨어질 때가 지나고도 남았다.

김지훈은 아직 지치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면 흐름이 끊긴다. 오히려 집중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퍼스트를 서는 이준영 교수의 체력이 걱정됐지만 몇 시간이 걸리는 공여자 수술을 거뜬히 해내는 써전이었다. 수술에 지장을 줄 정도의 문제를 느낀다면 먼저 말할 스승이기도 했다.

드디어 끝이 보였다.

김지훈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수처! 타이! 컷!”

마침내 후복막에서 종양이 떨어져 나왔다.

절제해야 할 소장으로 이어진 부분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슬아슬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드디어 첫 번째 종양을 제거하기 직전이었다.

“소장 절제합니다.”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빠르게 소장을 자르고 이었다.

거대한 종양 덩어리와 암이 침범한 소장을 한 번에 배 밖으로 들어냈다. 후복막이 상당 부분 사라진 자리에 동맥을 포함한 주요 구조물만이 남았다.

이제야 김지훈이 허리를 폈다.

이준영 교수도 긴 숨을 내뱉었다.

손일석과 강병옥이 내심 감탄했다.

어떤 써전이 수술해도 방심하지 못할 과정이었건만 깔끔하기만 했다. 정확하고 침착한 손으로 최소의 출혈만 발생했고, 눈에 보이는 종양은 없었다. 극심하게 다가올 육신과 정신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 주고도 남을 결과였다.

‘후우! 이준영 선생님이 퍼스트를 서신 덕분만이 아니다. 김지훈, 항상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어? 긴장 타자. 긴장.’

‘이런 수술을 볼 수 있다는 사실, 넘어서야 할 사람이 눈앞에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강렬한 자극이기도 했다.

이제 위에 전이된 종양을 제거할 차례였다.

후복막 종양 제거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기뻐할 겨를이 없었다. 종양과 인접한 췌장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해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됐다.

난이도의 차이가 있을 리 없었다.

같은 구성으로 진행해야 마땅했다.

그때 이준영 교수가 슬며시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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