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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266화 (1,266/1,329)

12화

모든 상황을 솔직하게 말했다.

한 줄기 희망을 간직했을 것이다.

가뜩이나 위험했던 수술이 혈관 조영술 결과 더욱 위험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사실에 부모 모두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겁니까?”

“수술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가능 혹은 불가능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수술 중에는 물론 수술 후에도 사망 가능성이 너무 높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우리 판단만으로 수술을 권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보호자분과 환자분의 결정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고요?”

“불행히도 다른 대안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망 가능성에 대해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한다면 저로서도 칼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방어 진료를 넘어선 말이었다.

살려고 왔건만 죽음에 대한 얘기만 오고 갔다. 의사에게도, 보호자에게도 고통스러운 자리임은 분명했지만 피치 못할 일이었다.

김지훈이 더욱 힘든 말을 꺼냈다.

“두 분 마음이 어떤지 상상조차 하기 힘듭니다만, 아드님에게도 다시 한번 설명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부모님 눈에 스무 살이란 나이가 어리게 보이겠지만 성인이 아닙니까?”

잔인한 말이었다.

엄마의 울음이 터졌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서럽게 흘렀다.

얼마나 위험한 수술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김지훈에게 긍정적인 답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죽음은 피상적인 생각에 불과했다.

단 이틀이 지났을 뿐이었다.

혈관 조영술이란 단 하나의 검사와 다소 달라진 김지훈의 말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죽음이란 단어가 보다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이십 년을 애지중지 키워 온 아들이었다.

아직도 품 안의 자식이었다.

그런 아이에게 자신의 삶과 죽음을 스스로 택해야 한다는 말을 해야 한다니, 온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갈기갈기 찢어지고도 남았다.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감정이 개입되면 안 된다.’

“미성년자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본인 동의서를 받아야 합니다. 이미 각오를 했다고 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생겼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상황을 알고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엄마의 흐느낌이 더욱 서럽게 들렸다.

눈시울이 벌게진 아버지가 주먹을 꽉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을 하건 못하건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언제 말씀하실 겁니까?”

“괜찮으시다면 지금 설명했으면 합니다. 부모님이 함께 있는 자리가 좋겠습니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스무 살, 봉규민과 마주했다.

부모의 눈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건만 침착하게 자리에 앉았다. 오히려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눈물을 닦아 주었다.

더 이상 어린 청년이 아니었다.

어쩌면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처지가 정신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지도 몰랐다.

“전보다 더 힘든 말을 하게 돼 미안해요. 검사 결과 기형종과 혈관종이 동시에 발생했습니다. 기형종은 알다시피 악성이고, 혈관종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간 혈관과 연결까지 된 상태네요.”

“둘 다 제거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맞습니다.”

“얼마나 더 위험해진 건가요?”

김지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글쎄요. 확실한 건 수술 도중은 물론 수술 후에도 깨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겁니다. 수술 자체도 어렵지만 출혈을 포함해 합병증 발생 위험까지 너무 높아졌네요.”

“성공 확률은 얼마나 되죠?”

“확률은 큰 의미가 없어요. 실패할 가능성이 단 일 퍼센트에 불과해도 문제가 발생하면 손을 쓰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그래도 추측하실 수 있잖아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있는 그대로 말해야 마땅했다.

“이런 경우 의사는 흔히 반반이라고 말합니다. 실패 확률이 50퍼센트나 된다는 것은 확신은커녕 예측조차 힘들다는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 병원 최고의 수술 팀을 꾸렸습니다. 간, 혈관, 위장관 분야 전문의 네 명이 수술할 예정입니다. 아무리 실낱같더라도 의사 입장에서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네요.”

“수술받지 않으면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하루가 될지 일 년이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환자분 나이를 생각할 때 그리 긴 시간은 아닐 겁니다.”

“고통스러울까요?”

“수명을 다해 잠을 자는 것처럼 떠나지 않는 이상 편안한 죽음은 없습니다.”

봉규민이 웃었다.

처연한 듯, 생사를 초월한 듯 알 수 없는 미소였다. 눈앞의 환자가 더 이상 스무 살 젊은 청년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언젠가 똑같은 경험을 했다.

소아암이나 희귀 질환을 앓는 아이의 미소와 다르지 않았다. 죽음이 무엇인지 몰라 웃는 것이 아니라, 그 작은 가슴으로 엄마 아빠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느꼈었다.

‘사랑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아니면 죽음이 스무 살 청년을 성숙하게 만든 건가?’

봉규민이 어머니를 보았다.

“엄마, 내게 다른 선택은 없어요. 두려움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하루를 살더라도 건강하게 살고 싶어요.”

“규민아!”

“내가 건강했으면 울지 않았을 텐데 죄송해요.”

“아니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아버지!”

아들의 어깨만 어루만졌다.

어떤 말로도 아들의 아픔을 대신할 수 없는 아비였다. 자식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엄청나게 힘든지 터지는 울음을 참느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 수술해 주세요. 각오하겠습니다.”

“좋은 말을 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선생님을 믿고 싶어요. 만일 잘못된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 다른 병원에서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수술을 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려요.”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입장이 뒤바뀌었다.

의사가 환자에게 힘을 주고 안정시켜 주어야 하건만, 환자가 도리어 믿음과 힘을 전했다. 갑갑하고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환자 얼굴을 제대로 보기도 힘드네. 확신을 주지 못하는 의사의 마음이 이런 거였구나.’

어쨌든 가장 어려운 단계를 넘었다.

남은 일은 의료진에게 달렸다.

최종적 확인인 수술 동의서를 내밀었다.

“동의하는 즉시 수술 준비에 들어갈 겁니다. 몸 상태가 허락한다면 일주일 후 수술할 예정입니다. 지금부터 실패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지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엄청난 불안에 시달릴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는 것이 유리했지만 몸이 따라 주지 못하면 수술도 견디지 못한다. 부디 아무 일이 없기만을 바랐다.

그날 저녁.

회진을 도는 김지훈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수술에 동의했다는 말을 전하면서도 침통한 표정만 지었다. 수술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환자에 대한 미안함이자 자책이었다.

손일석도 입맛만 다셨다.

이준영 교수가 조용히 다가왔다.

제자의 마음을 알고도 남았다.

“김 교수, 힘들어할 일 아니다.”

“환자 생각을 할 때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네요. 수술 결정을 환자에게 미루는 것이 맞는 걸까요?”

“다른 환자와 다르지 않아. 항상 우리가 수술 결정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으로 결정하는 사람은 결국 환자 자신이야. 우리는 그 결정이 최선의 선택이자 결과가 되도록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 이번은 그런 면이 직접적으로 느껴진 것뿐이다.”

그렇다.

의사는 신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

그런 생각 자체가 만용일 뿐이었다.

하기에 모든 결과를 원하는 대로 얻어 내지 못할 수밖에 없다. 아픈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했다. 중의, 대의라는 말도 그런 개념의 연장선일 것이다.

“그래도 좋은 감정이다. 어떤 일이든 부족하다는 사실을 잊을 때 실수하기 마련이지. 환자에게 절대 그런 실수를 해서는 안 돼. 평생 따라붙거든.”

독백 같은 말이었다.

김지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준영 교수야말로 자만의 대가를 누구보다 톡톡히 치른 의사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어머니를 덧없이 떠나보냈으니 죽는 날까지 괴로울 것이다.

결코 건드리지 않아야 할 기억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감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스승님, 손 교수, 강 교수와 함께하는 수술인 이상 불가항력이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지훈이 웃었다.

“선생님, 제 어깨가 그렇게 처졌습니까?”

“많이.”

“다시 펴겠습니다. 생각해 보니까 기형종이든 혈관종이든 다 해 봤던 수술이었네요. 어렵지 않은 수술이 없었던 것 같고요.”

이준영 교수가 할끗 눈길을 주었다.

“이제야 김 교수답다.”

“여전히 겁은 납니다.”

“손 교수와 강 교수를 믿어. 그러면 된다.”

“스승님은요?”

“허험!”

어깨 툭 치고 돌아섰다.

김지훈의 미소가 진해졌다.

스승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됐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누군가 우리에게 그런 의미를 준다면 우리 역시 그런 의미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고경아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인생의 동반자보다 소중한 사람이 또 있을까?

‘내 목숨도 아깝지 않은 희연이가 있긴 하네. 일석이까지 도대체 몇 명이야? 난 왜 이렇게 운이 좋은 걸까?’

혈관 조영술 이후 다시 느껴지던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졌다. 부담은 여전했지만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까지 고개를 들었다.

카르페 디엠!

***

하루하루 시간이 흘렀다.

봉규민은 놀라운 의지를 보였다.

모든 사전 준비를 철저하게 지켰다.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부모를 보며 웃었다.

회진을 도는 내내 찡그리거나 기가 죽은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죽음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 텐데 스무 살 청년이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정말 놀랍다. 내게도 큰 힘이 될 정도야.’

어느새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불안이 한껏 고조될 때였다.

“환자분, 긴장되죠?”

“예. 많이 떨립니다.”

“나도 규민 씨를 보며 힘을 얻었으니까 절대 불안해하지 말아요.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애써 미소를 짓던 봉규민이 엉뚱한 질문을 했다.

“혹시 무슨 색 좋아하세요?”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요?”

“퇴원할 때 와이셔츠 하나 선물해 드리고 싶어요. 좋아하는 색이나 무늬 있으세요?”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숱한 환자를 보았지만 봉규민 같은 환자는 없었다. 의사의 상징인 하얀 가운이 무색하게 도리어 환자가 의사의 불안을 지워 주고 있었다.

“그럼 규민 씨도 받고 싶은 선물 하나 정해 놔요. 퇴원하는 날 주고받읍시다. 난 그냥 하얀색이면 됩니다.”

“전 그냥 퇴원하면 됩니다.”

“후회하지 않겠어요?”

“건강이라는 선물이면 됩니다.”

맞는 말이었다.

반드시 주고 싶었다.

“오케이! 수술 전날 제대로 자는 사람 못 봤으니까, 가능한 한 푹 자라는 말은 생략하지만 무슨 뜻인지 알죠? 내일 아침에 봅시다.”

부모가 쫓아 나왔다.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덕분에 저도 자신감을 갖고 수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물도 꼭 받고 싶고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돌아선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어제저녁, 마취과와 간호과를 포함해 수술 팀 전원이 모여 마지막 준비를 끝냈다. 이제 써전의 손에 젊은 청년의 생과 미래가 달렸다.

‘기필코 해결한다.’

강인한 의지가 피어올랐다.

하룻밤이 지났다.

김지훈이 크게 기지개를 폈다.

앙금처럼 남아 있는 불안과 긴장 때문인지 잠을 설쳤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육체적인 면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반면 머릿속은 의외로 명료했다.

긴장이 가져온 효과일지도 몰랐다.

‘가자!’

의사가 된 이후 가장 어렵다고 생각되는 수술, 최고의 수술 팀과 함께할 수술을 위해 한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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