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265화 (1,265/1,329)

11화

이준영 교수가 다소 의외의 질문을 했다.

“수술을 하게 된다면 누가 집도하지?”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이런 수술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었다. 심지어 이준영 교수에게도 말이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뒤따라올 책임이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갈대보다 더 변덕이 심하다는 말이 공연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과가 좋으면 온갖 찬사를 하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순식간에 돌변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곤 했다.

하물며 사람의 목숨이 달렸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찾은 병원에서 환자가 수술 도중 사망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소송이나 일인 시위까지 자칫 난장판이 될 수도 있었다.

“제가 맡아야 할 수술입니다.”

이준영 교수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술 팀은?”

아무리 날고뛰는 써전이라고 해도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었다. 때문에 집도의 선정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이미 생각한 바가 있었다.

‘스승님의 손이 절실합니다.’

“선생님과 손 교수가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수술 크기상 써드까지 필요합니다. 수술의 특성을 고려할 때 가장 예민한 손을 가진 강병옥 선생이 서 주었으면 합니다. 위장관 쪽에 강점이 있기도 하고요.”

다들 깜짝 놀랐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써전들이 한 팀이 되는 것도 모자라 대가에게 퍼스트를 요청하다니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일제히 눈길이 쏠렸다.

이준영 교수가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간, 혈관, 위장관에 실력 있는 써전들을 잘 조화시킨 구성이야. 집도의의 결정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다고 판단하십니까?”

“집도의의 생각과 판단이 가장 중요해. 조언을 하나 한다면 환자가 이제 스무 살이라는 점을 절대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결정적인 말이었다.

김지훈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이준영 교수 또한 가능성을 엿보았다는 의미였다. 대가의 말이 바로 이 자리를 만든 이유기도 했다.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지만 때론 수술이 답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 고통을 줄이고, 목숨을 연장시키는 치료가 합리적인 나이도 있는 법이었다.

반대로 말기에 달한 암처럼 손을 쓰기 어려운 상태가 아니라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기필코 수술해야 하는 환자도 있었다.

스무 살 환자의 생은 분명 수술에 달렸다. 성공하면 95퍼센트에 달하는 5년 생존률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암 환자에게는 어마어마한 확률이었다.

하기에 수술해야 했다.

김지훈이 손일석을 보았다.

눈가를 잔뜩 좁히고 있었다.

“선생님 앞에서 이런 말 하기 민망하지만, 저렇게 무시무시한 혈관 처리에 내가 빠지면 말이 안 되지. 김 교수, 해 봅시다.”

“강병옥 선생은?”

강병옥이 입술을 모았다.

간 이식 수술 일정이 달라 그동안 함께 수술한 적이 없었다. 더구나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는 김지훈 본인도 두려움을 느끼는 수술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신뢰였다.

‘써드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누가 집도를 하든 정말 인정받는 써전들로 수술 팀을 구성해야 할 수술이다. 어쩌면 내게도 큰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비록 써드를 서야 하지만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로써 수술 팀이 결정됐다.

김지훈, 이준영 교수, 손일석, 강병옥.

실로 어마어마한 수술 진용이었다.

최고의 수술 팀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두려움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우리가 실패하면 어떤 팀도 성공하지 못한다. 최고의 수술 팀이 최선을 다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김지훈이 불끈 주먹을 쥐었다.

모든 논의가 끝났다.

이준영 교수가 수술 팀과 따로 자리를 만들었다. 나직한 목소리로 전하는 말에 다들 깜짝 놀라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긴 수술이다. 맡은 역할이 명확한 만큼 각자 해야 할 부분이 있어.”

“알겠습니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스승의 결정은 언제나 놀라웠다.

대가는 단순히 실력만 뛰어난 의사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에 걸맞은 인품을 갖고 행동으로 보일 때 얻을 수 있는 찬사가 분명했다.

‘난 그렇게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나?’

배움의 길은 끝이 없었다.

김지훈이 바삐 움직였다.

수술은 써전만의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까닭에 마취과와 간호과에 미리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야 했다.

윤서연과 고경아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고?”

“최소 열 시간 이상.”

“최대 시간은?”

“예측하기 힘들어.”

얼마나 위험한 수술인지 안 이상 수술 팀과 똑같이 집중해야 했다. 게다가 마취의와 간호사는 교대를 한다고 해도, 수술 중에는 단 한 사람이 수술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집도의와 맞먹는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수술 시간 역시 사전 준비의 중요한 요소였다.

“우리나 간호과나 노련한 사람이 필요한데 교대를 피할 수가 없네. 원장님께 말씀을 드려야 하나? 고 과장님은 어떻게 할 거예요?”

“경험이 부족하면 대처하기 힘든 수술이네요. 당직을 바꿔서라도 교대할 선생을 확보하는 방법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네요.”

“그렇죠? 김 교수, 최대 위험이 뭐야?”

“역시 출혈 아니겠어?”

“간 쪽 수술이야 당연하지만 후복막부터 시작하니까 수술 내내 출혈에 주의해야겠네. 후반으로 갈수록 더 위험해진다면 피를 얼마나 준비해야 할까?”

“다행히 별일 없으면 다른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으니까 가급적 많이 준비하는 것이 좋겠어.”

윤서연이 눈가를 좁혔다.

수술을 상의하는 자리에 불과한데도 평소 여유를 잃지 않았던 김지훈에게서 상당한 긴장이 느껴졌다. 그만큼 어렵고 위험한 수술이라는 의미였다. 마취과와 간호과에 가해지는 부담 역시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준영 선생님에 손 교수까지 있어도 자신할 수 없는 수술이라면 우리도 바짝 긴장해야겠네. 하긴 수술 날짜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리 상의하는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

“윤 교수, 고 과장님, 모든 병원에서 수술 불가 판정을 받고 우리를 찾아온 환자입니다. 수술이 아니면 살 수 없는 환자고요.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우리 모두 같은 수술 팀이잖아요. 주간은 제가 맡고, 교대 선생 역시 노련한 선생에게 부탁할게요.”

“감사합니다.”

“펠로우 선생들도 믿음직하지만 원장님하고 내가 맡는 게 최선이겠지? 어쩔 수 없이 당직을 서야겠네.”

“윤 교수, 고마워.”

김지훈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김진호 원장과 윤서연, 그리고 고경아와 노련한 간호사 한 명까지 하나의 수술 팀이 됐다. 전문 병원이 꾸릴 수 있는 최고의 구성이었다.

‘결코 실패할 수 없는 수술이다. 이런 팀을 짠 이상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

앙금처럼 남아 있던 두려움마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일은 철저히 준비해 기필코 수술을 성공하는 것뿐이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렀다.

기존 수술로도 박찼지만 김지훈은 물론 수술 팀 모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기형종과 혈관종에 관한 자료를 검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해부학 교과서까지 다시 펼쳤다.

내과와도 긴밀하게 논의했다.

“만일 종양을 모두 제거하지 못하고 남기는 경우에도 항암 치료의 효과가 있을까?”

“분류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악성 질환도 남아 있는 종양의 크기를 절대 무시하지 못해. 최대한 제거한 후 전과시켜 줘.”

“그게 어려워. 사람 몸이 기계가 아니잖아?”

“써전이 제대로 수술하지 못하면 우리는 더 힘들어져. 게다가 기형종은 경험 자체가 부족해서 솔직히 막막해. 무조건 성공해야 돼. 치료가 불가능한 암 환자를 보는 일이 어떤지 잘 알잖아?”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의료진이 이럴진대 환자와 보호자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스무 살, 봉규민 환자가 내원했다.

상태가 더 나빠졌다.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한 모양이었다.

부모의 입술도 바짝 말라 있었다.

“선생님, 어떻게 결정하셨습니까?”

“일단 수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순간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봉규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부모는 자식의 손을 잡은 채 쏟아지려는 눈물을 삼키며 입술만 깨물었다. 긍정적인 말이 절실했지만 환자와 보호자 모두 정확한 상황을 알아야 했다.

“단, 추가 검사에서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기형종의 변화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CT, MRI를 다시 시행하고, 혈관 조영술까지 필요합니다. 결과에 따라 결정이 뒤집힐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간 혈관과 종양 혈관이 서로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손을 쓰기 어려운 정도라면 수술을 할 수가 없습니다.”

“후우! 언제 검사를 해야 합니까?”

“아드님 전신 상태가 나빠 수술을 견딜 수 있는 몸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일단 입원한 후 시행했으면 합니다.”

“바로 입원하겠습니다.”

이미 입원할 준비를 하고 왔다.

절박함이었다.

다행히 병실이 있어 바로 절차를 밟았고, 검사 일정도 빠르게 잡을 수 있었다. 혈관 조영술 결과에 모든 것이 달렸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환자분, 힘든 건 잘 알지만 이런 체력으로는 수술을 받지 못합니다. 영양제를 투여해도 입으로 먹는 것을 따라갈 수는 없어요. 가능한 만큼 식사를 꼭 해야 합니다.”

“예. 꼭 먹겠습니다.”

“좋습니다. 지금부터 퇴원할 때까지 의료진의 말을 철저히 따라 줘야 합니다.”

“예.”

봉규민의 눈동자에 희미한 빛이 감돌았다.

드디어 자그마한 희망을 잡았다.

김지훈이 빠르게 움직였다.

CT와 MRI를 찍었다.

종양의 크기 변화나 추가로 발견된 전이가 관찰되지 않았다. 다행이라는 생각 한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스무 살 청년의 몸에 암이 자라고 있을 것이라 의심이나 할 수 있을까? 소화불량, 체중 감소, 간헐적인 복통을 걱정했겠지만 암이 원인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의 무관심도 아니고, 젊은 사람 암의 예후가 더 나쁘다지만 참 잔인하네.’

하루 간격을 두고 혈관 조영술이 시행됐다.

방사선과와 내과가 진땀을 흘린 끝에 종양과 간의 혈관을 촬영했다. 수술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 검사 결과를 찾은 김지훈이 꿀꺽 침을 삼켰다.

손일석, 강병옥과 함께였다.

동시에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연결된 혈관이 관찰된다고?”

수술이 불가능해진 걸까?

필름을 확인했다.

흔히 보는 검사가 아니기에 직접 검사한 방사선과 의사까지 불러 소견을 들었다.

“혈관종이 기형종과 바짝 붙어 발생했습니다. 연결이 의심되는 혈관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조영제가 간으로 주행하는 혈관으로 퍼져 나가는 게 보이시죠? 다행이라면 동맥이 아닌 문맥이고, 하나뿐이라는 겁니다.”

“연결된 부분의 길이가 얼마나 돼?”

“길게 잡아야 5밀리미터 정도입니다.”

“혈관종과 간 혈관과의 간격은?”

“거의 근접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게다가 혈관종 내 혈관의 압력이 무척 높았습니다. 문맥이라고 해도 혈류가 동맥 이상으로 많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되지만 혈관 벽까지 얇아 보여 파열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답답한 침묵이 흘렀다.

단 하나의 혈관만 연결됐다는 사실은 위안이 될 수 없었다. 파열 가능성이 높은 이상 혈관종까지 모두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손일석이 중얼거렸다.

“산 넘어 산이네. 위험 요소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있는 꼴이야. 김 교수, 시도할 거야?”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야.”

“너무 위험해.”

“나도 알아. 하지만 손을 쓰기 불가능한 상태가 아닌 것은 확실해. 최고의 수술 팀을 꾸린 이상 보호자와 상의하지도 않고 우리 결정을 바꿀 이유가 없어.”

“수술 중 사망할 가능성이 너무 높아졌어.”

“수술하지 않으면 얼마 버티지 못해. 당장 내일 혈관종이 터져 사망할 수도 있어. 환자에게도 솔직하게 설명하고, 살 수 있는 길에 희망을 걸자.”

어떤 면에서 수술 결정은 이미 의료진의 손을 떠났는지도 몰랐다. 결국 환자 본인과 보호자의 뜻이 가장 중요했고, 그들의 생각에 달렸다.

김지훈이 보호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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