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264화 (1,264/1,329)

10화

기형종(Teratoma)!

생식세포에서 기원하는 종양으로 주로 난소나 정소에서 발생하며, 드물게 종격동이나 후복막에서도 발견된다. 근육, 뼈, 치아, 모발 등이 관찰되는 것이 특징이다.

다양한 조직이 확연하게 발달한 형태를 보이는 성숙한 기형종인 경우 양성이 많고, 미성숙한 형태의 경우 전이를 동반한 악성이 많다. 다행이라면 완벽하게 제거했을 시 5년 생존률이 95퍼센트에 육박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선천적으로 발생하기에 환자 역시 태어난 당시에 발병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만 종양의 성장이 느려 성인이 된 후에 발견됐을 것이다.

‘어디에 발생했기에 우리에게 보냈지? 혈관종이 의심된다는 소리는 또 뭐야?’

CT와 MRI를 확인했다.

김지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후복막에서 기원한 기형종이 관찰됐다.

애초 많이 보지 못하는 질환이지만 발생 위치 자체가 드물다 못해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경우였다. 더구나 미성숙한 형태를 보여 악성 종양이 분명했다.

설상가상 이미 전이가 진행돼 간 주변과 위장, 소장 일부까지 침범했다. 크기까지 작지 않은데 종양과 장기 사이의 유착까지 심한 상태였다.

완벽한 제거가 불가능해 보였다.

더더욱 심각한 소견이 관찰됐다.

종양에서 발달한 것인지, 별개로 발생한 것인지 모를 혈관 덩어리가 간에 인접해 있었다. 다행히 크기는 작았지만 주변 조직과 복잡하게 얽혀 어떤 혈관이 정상 혈관인지 구분하기 힘들 것으로 예측됐다.

‘두 개의 다른 종양이 제각각 발생한 걸까? 아니면 기형종으로 인한 영향일까? 환자가 원했든, 의료진이 권했든 믿고 왔을 텐데 제거할 수 있을까?’

예전 거대한 기형종으로 수술했던 아이가 떠올랐다. 극적으로 절제해 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때보다 실력이 훨씬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난감한 생각이 앞섰다.

솔직히 두렵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배를 열어 봐야 정확하게 알겠지만 검사 소견만으로도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수술 중 종양 일부분만 잘못 처리해도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판단됐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검사를 다시 확인했다.

역시 간 전이 혹은 혈관종이 문제였다.

‘하필이면 간 동맥, 문맥, 정맥이 한꺼번에 주행하는 부분을 침범하다니 날벼락이나 다를 바 없네. 제거가 가능한가? 양성 혈관종이라 해도 터지면 바로 사망할 텐데 지켜볼 수 있을까?’

악성 기형종까지 겹친 이상 예후가 빤했다. 무조건 수술을 해 제거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암의 종류가 한 가지이든 두 가지이든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많은 경우에서 형식적으로 설명하는 사망 가능성이 실제로 벌어질 확률이 너무 높았다. 더구나 수술 후 책임은 과실 여부를 떠나 오로지 의료진의 몫이기에 선뜻 수술하자는 얘기를 꺼낼 수 없는 환자였다.

한동안 고심하던 김지훈이 환자를 불렀다.

외과 진료를 신청했다는 것은 이미 수술을 받고자 한다는 말이었지만 정확한 의향을 알아야 했다. 만일 환자 스스로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확실하게 알려 주는 일이 우선이었다.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김지훈의 표정이 더욱 안 좋아졌다.

이제 갓 스물이었다.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바짝 마른 얼굴, 창백한 안색, 의사를 쳐다보지도 못하는 눈동자, 잠시도 가만히 놔두지 못하는 손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가 눈에 보였다.

차트로 보는 나이와 실제로 보는 나이가 주는 감정이 다르기 마련이었다. 흔히 생각하는 성인에서 어리기만 한 환자로 변했다.

함께 온 부모의 얼굴도 까맣게 죽어 있었다. 어떤 이유로 찾아왔든 죽어 가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김지훈이 애써 냉정을 되찾았다.

“보호자분, 죄송하지만 먼저 확인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환자분,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고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불안, 초조, 공포까지 안 좋은 감정이 모조리 실려 있었다. 이미 자신의 병과 예후를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보호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미 설명을 들으셨을 테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수술 여부 때문에 오셨습니까?”

“예.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만, 제거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마지막 희망을 갖고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종양이 한 가지 종류인지, 두 가지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로 판단됩니다. 게다가 간과 인접해 있는 종양의 특성이 무척 위험하게 보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분들이 간 때문에 수술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물었는데 선생님을 추천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고 왔다.

최대한 침착하게 행동하려 했지만 애끓는 마음에 이미 울고 있었다. 아니, 절망의 끄트머리에 서서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김지훈이 입을 열지 못했다.

간 이식을 전문으로 표방하지만 동시에 간담췌 질환 치료도 최고 수준이라고 인정을 받았다는 말이었다. 바라 마지않던 일이었지만 조금도 기뻐할 수 없었다.

‘환자에게 희망조차 주지 못한다면 그런 명성은 아무 소용도 없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찾고 싶었다.

몇 번이나 CT와 MRI를 봐도 간 전이 혹은 혈관종을 물리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안전해야 한다는 절대적 명제를 도저히 담보할 수 없었다.

‘간과 종양 사이의 혈관 분리와 처리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남은 종양을 모두 제거해도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아예 수술의 의미가 없다.’

다른 병원과 똑같은 대답을 해야 할까?

죄책감 비슷한 감정 때문에 몇 날 며칠을 시달리겠지만 눈 한 번 딱 감으면 수술을 피할 수 있었다. 비난할 사람도 없었다.

그때 스무 살 환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문제일 뿐 종양을 제거하지 못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100퍼센트 사망할 것이다. 삶의 희망과 미래를 잃기에 너무 어렸다. 문득 얼마 전 이송한 환자와 거의 비슷한 나이라는 사실까지 떠올랐다.

‘가능성을 찾아보지도 않고 포기하기에는 일러. 수술이 잘못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생각하지 말자. 단 1퍼센트의 희망만 있어도 수술해야 한다.’

포기라는 단어를 모르고 살아왔다.

지나치게 두려워하는지도 몰랐다.

가장 확실한 판단을 내려 줄 이준영 교수라는 대가와 혈관에 관한 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손일석의 의견조차 구하지 못했다.

반면 섣부른 희망 역시 독이 되는 상황이었다.

김지훈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혼자 결정하기에 너무 어려운 수술이라 상의가 필요합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오십시오. 그때까지 확실하게 판단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들과 함께 오겠습니다. 어떤 말씀을 듣든 우리 아이도 알아야 하니까요.”

부모의 목소리에 미세한 생기가 돌았다.

환자는 처음으로 눈을 마주쳤다.

반드시 자신을 건강하게 만들어 달라는 간곡한 마음이었다. 절대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하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어떤 결론이 날지 조금도 예측할 수 없었다.

만일 수술 불가 판정이 나면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은 부모와 환자 앞에서 비관적인 말을 할 수 있을까?

김지훈이 지그시 이를 물었다.

“함께 오십시오.”

한동안 진료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CT와 MRI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제거만 하면 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자다. 부분 절제는 의미가 없다. 관건은 완벽하면서도 안전한 절제가 가능한지다. 안전하게! 안전하게!’

아직은 두려움에 물러설 때가 아니었다.

다들 바빠 부지런히 연락하고, 일일이 시간을 조율한 끝에 간신히 모였다. 상의하고 조언을 구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선후배를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이준영 교수, 손일석, 진충기 교수는 물론 위장관 침범을 판단할 이경석과 후배 사인방에 간담췌 펠로우들까지 대규모로 참석했다.

김지훈이 직접 환자 상태를 설명했다.

여기저기에서 나직한 탄식이 터졌다.

검사 결과를 보자마자 대부분 수술이 불가하다는 눈빛을 보였다. 비관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이경석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후복막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이는데 완전한 제거가 가능할까? 이 부분이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부위 절제는 무의미해.”

“대동맥에서 갈라진 혈관들과 인접해 있지만 다행히 종양에 둘러싸인 형태가 아닙니다. 위험하긴 해도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위와 소장에 침범한 종양은 어떻게 보십니까?”

“종양만 분리해 절제하긴 힘들어 보여. 다행히 절제 범위가 넓지 않아 침범 부위를 모두 잘라 내도 안전할 것으로 판단돼. 수술 후 기능에도 문제없을 것 같아.”

많은 써전들이 내심 놀랐다.

후복막 종양은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안전한 절제를 자신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특히 대동맥에서 갈라져 나온 혈관과 인접하면 웬만한 써전은 손사래부터 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김지훈의 목소리에서 상당한 자신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이경석 또한 복강경에만 특화된 써전이 아님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두 분 다 대단하시네. 결국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간에 인접한 종양 때문이라는 소리네.’

누가 보아도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확대된 CT와 MRI를 수차례 확인하며 수술이 가능한지 판단하려 했지만 펠로우 전원은 물론 후배 사인방까지 거대한 벽을 느끼고 있었다.

‘혈관종이 양성이라고 해도 저렇게 얽혀 있는데 어떻게 수술해? 너무 위험해. 김지훈 선생님이라고 해도 이번 수술은 피해야 돼.’

절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예상했던 반응이었지만 오히려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한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이상 바늘 구멍만 한 활로라도 찾아야 했다.

“손 교수, 관건은 역시 간 혈관과 종양 혈관의 분리야. 가능하겠어?”

“기형종이든 혈관종이든 이렇게 살벌한 경우는 처음 봐. 더구나 경계가 불분명한 덩어리로 보여 더욱 불안해. 혈관끼리 들러붙은 게 아니라 아예 연결돼 있을 수도 있어.”

답답한 신음이 터졌다.

악성 종양은 정상 조직보다 세포를 증식시킬 영양분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대부분 기존 혈관을 이용하지만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 연결시키기도 한다.

가장 우려했던 일이었다.

혈관 하나를 끊어 먹어도 종양에 국한된 혈관이라면 어떻게든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간 동맥과 연결된 혈관이라면 순식간에 대량 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빠르게 잡지 못하면 저혈량성 쇼크로 수술 중 사망할 것이다. 무턱대고 혈관을 잡았다가 동맥을 같이 묶어 버리면 간 부전에 빠져 사망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거야?”

“일단 혈관 조영술을 시행하는 것이 먼저고, 최종적으로 열어 봐야 알겠지. 설령 연결이 돼 있다고 해도 양상에 따라 분리할 수도 있고 말이야. 하지만 어느 경우든 너무 위험해. 수술을 꼭 해야 한다면 보호자에게 수술 중 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설명한 후 각오하고 배를 여는 수밖에 없어.”

매사 긍정적인 손일석에게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비관적인 말이었다.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일지 몰랐다.

“화학 요법이나 색전술이 도움이 될까?”

악성 종양 치료의 원칙은 물리적 제거다.

다발성이거나 너무 커 일 차 수술이 불가능할 경우 다양한 방법으로 크기를 줄인 후 수술하는 방식이 도입된 지 오래였다. 담도나 췌장암은 별다른 효과가 없었지만 간 종양에서는 전문 병원도 이미 시행하고 있었다.

손일석이 고개를 저었다.

“종양 크기를 줄인다고 해서 혈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 저런 상태에서는 색전술도 혈관 처리에 별 도움이 안 돼. 결국 이 부분은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가 따로 있어.”

“전이?”

“혈관이 연결돼 있다면 이미 전신으로 암 세포가 퍼졌을 텐데 수술이 무의미하지 않겠어?”

“그럴까? 기형종이잖아? 눈에 보이지 않는 전이가 전신에 발생했어도 종양을 최대한 제거한다면 항암 치료의 효과가 더 극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어.”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개인에 따라 혹은 암의 종류나 진행 정도에 따라 항암 치료의 효과는 천차만별이었다. 5퍼센트의 사망률이 갖는 의미였다. 써전이 관여할 치료가 아니었지만 고려해야 할 요소임이 분명했다.

“동의해. 지금은 수술 가능성 여부를 따지는 자리니까 써전의 눈으로만 봐야겠지.”

한동안 논의가 이어졌지만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지 못했다. 100퍼센트 불가능한 수술이 아니라면 해야 한다는 마음과 너무 위험해 시도 자체가 불가하다는 생각이 충돌하고 있었다.

남은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김지훈이 이준영 교수를 보았다.

대가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석자들의 눈길이 일제히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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