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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260화 (1,260/1,329)

6화

수술을 함께하려면 언제든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수술하는 날이 정해져 있기에 김지훈의 일정만 조정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굳이 허리조차 펴기 힘든 소아 수술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제자의 심정을 모를 스승이 아니었다.

‘이송한 환자 때문인가? 환자에 관해서는 그간 너무 평탄했던 것도 사실이야.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얻고자 하는 것이 있겠지. 줄 수 있는 것이 남아 있다면!’

툭 한마디만 던졌다.

“김 교수, 세컨은 누가 좋겠어?”

“감사합니다. 앞으로 소아 외과를 이끌어 나가야 할 송진우 선생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자.”

엄청난 수술 팀이 꾸려졌다.

대가라 불리는 이준영 교수, 자타가 공인하는 써전인 김지훈, 소아 외과에 열정을 불태우는 송진우까지 누구 한 명 집도를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혁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완벽한 팀이네.’

강은미가 좋다고 웃었다.

“수술할 아이가 뒤늦게 복을 받나 봐요. 엄마나 아빠는 선생님들이 어떤 의사인지 알까요?”

“강은미 선생, 이름으로는 수술하지 못한다. 행여 보호자에게 엉뚱한 말 하지 마.”

이준영 교수의 목소리가 묵직했다.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며느리가 될 사람이기 이전에 후배 의사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는 예뻐 죽을 것이다.

고경아를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강은미가 재빨리 자세를 고쳤다.

“예, 선생님.”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스승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는구나. 스승님, 그런 눈으로 제 손을 봐주십시오.’

시뻘게진 얼굴로 자신의 기대를 표현하는 송진우를 끝으로 자리를 끝냈다. 이제 아이와 부모를 만나 설명하는 일만 남았다.

전문 병원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이준영 교수를 필두로 무려 다섯 명의 전문의가 뒤를 따라 아이를 보았다.

이제 육 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아이였다.

불안하면서도 수술을 받는다는 기쁨에 들떠 있는 부모와 달리 하얀 가운이 주는 두려움에 울기만 했다. 거구 자체로 더 울릴 텐데 이준영 교수가 무지막지한 손으로 아이를 안으며 웃었다.

‘손자 생각이 나시나?’

“수술을 맡은 이준영입니다. 생각 이상으로 아이가 건강해 큰 문제 없이 수술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레 아침 첫 수술로 시행하겠습니다.”

이준영 교수가 주의할 점을 알리며 부모의 질문에 상세하게 대답했다. 김지훈은 마치 전공의라도 된 것처럼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부모 면담이 모두 끝났다.

이준영 교수가 김지훈을 불렀다.

“커피 한잔하자.”

정작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뜨거운 커피 향이 흐르는 가운데 스승과 제자의 마음이 뒤섞일 뿐이었다. 아직도 막 의사가 됐을 때 가졌던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에 스승은 고마워했다.

‘대가의 길에 손만 필요한 것이 아니지.’

김지훈의 마음이 차차 평온해졌다.

***

어느새 수술 날 아침이 밝았다.

김지훈이 다소 들뜬 표정으로 아이를 기다렸다. 수술실로 아이를 옮기는 일은 자신의 일이라는 듯 송진우가 눈치를 주었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으아아앙!”

엄마 품을 떠난 아이가 울었다.

윤서연이 간호사와 함께 직접 아이를 재웠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기다리세요. 서너 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보호자를 안심시킨 김지훈이 재빨리 아이가 누운 침대를 밀어 수술실로 향했다. 손만 거든 송진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전공의처럼 행동하시네. 퍼스트를 자청한 일도 그렇고, 갑자기 왜 이러시지?’

육 개월밖에 안 된 아이였다.

섬세하고 정확한 손길로 마취가 진행됐고, 이내 손가락보다 가느다란 관을 기관에 삽입했다. 작은 공기 주머니를 따라 손바닥만 한 가슴이 오르내렸다.

수술 팀 전원이 자리 잡았다.

거구의 이준영 교수는 물론 김지훈이나 송진우 역시 작지 않은 데다 아이가 작아 수술대 주변이 꽉 차 보였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작은 배가 열렸다.

이준영 교수의 손을 따라 흐르는 피를 닦던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스승의 손에 섬세함이 가득했다.

‘아이의 배는 이렇게 열어야 돼.’

복막을 절개하자 다소 팽창된 대장이 삐져나왔다. 조금도 늘어나지 않은 에스 결장 이하가 병변이 발생한 부분이었고, 모두 제거해야 했다.

이준영 교수가 손을 내밀었다.

“모스키토!”

수술 과정을 모두 숙지했는지 전담 간호사의 손길이 능숙했다. 고경아는 기구를 준비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며 다음 과정을 함께 대비했다.

하행 결장과 에스 결장 경계 부위를 박리했다. 어차피 절제해야 할 에스 결장 상부에 조그만 구멍을 낸 후 대장 안에 찬 가스와 내용물을 제거했다. 쪼그라든 장의 크기를 가늠한 이준영 교수가 물었다.

“원 스테이지로 진행해도 되겠지?”

“대장 직경도 적당하고, 염증 소견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좋아. 진행하자. 장겸자! 메스!”

양쪽 장을 잡고 잘랐다.

태어난 후 거의 기능을 하지 못했던 에스 결장 절제를 시작했다.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적기라 하지만 몸무게가 10킬로그램 정도에 불과했다.

약하지 않고, 작지 않은 구조물이 없었다.

한 방울의 피조차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모스키토! 수처! 타이! 보비!”

조직을 잡고 자르는 이준영 교수의 손길이 섬세하기만 했다. 위험 구조물을 피하며 출혈을 최소화하는 모습은 정확하기 짝이 없었다.

타이를 하는 김지훈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았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각에 집중하며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힘을 유지했다. 하나의 조작이 끝나고 다음 과정으로 이어지는 내내 스승의 손을 결코 시야에서 놓치지 않았다.

급기야 전공의 시절로 돌아갔다.

‘스승님의 손을 보고 배워야 한다. 내게 부족한 면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송진우의 얼굴이 벌게졌다.

이제 시작이건만 대가와 곧 대가라 불릴 써전의 손은 가히 예술이었다. 물 흐르듯 막힘이 없는 스승과 제자의 호흡은 부러움 그 자체였다.

‘난 수영이와 이렇게 수술할 수 있을까?’

어느새 에스 결장이 모두 박리됐다.

거즈 몇 장이 피로 젖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일부분이었다.

이제 성인 환자라 해도 박리하기 힘든 직장이 남았다. 아이의 몸인지라 시야가 좁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시야 확보가 어려운 데다 혈관 덩어리까지 존재해 극도의 주의가 필요한 과정이었다.

이준영 교수는 멈추지 않았다.

왜 대가라 불리는지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완벽에 가까운 기구 조작과 엄청난 경험이 주는 능숙함만이 아니었다. 필요한 수단을 모두 동원했고, 특히 크고 굵은 손가락으로 그 좁은 부위를 어떻게 박리하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김지훈도 그에 못지않았다.

아예 보이지도 않는 부분에서 타이를 하건만 확실하기 그지없었다.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대응했다.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극도의 긴장이 감돌아야 마땅했다. 그런데 이준영 교수의 눈빛은 편안했고, 김지훈은 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가에 잔주름이 잡혀 있었다.

분명 즐거워하고 있었다.

구부정한 허리와 푹 숙여야 하는 어깨가 주는 불편과 통증조차 잊었다. 감정의 변화가 아니라 완벽하게 몰입한 써전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송진우마저 완전히 녹아들었다.

“거즈! 보비! 수처! 타이!”

가장 위험한 부위의 박리가 시작됐다.

혈관 덩어리가 존재하는 직장 후면이었다.

극히 사소한 실수마저 치명적인 출혈을 야기할 수 있었다. 더욱이 정상 대장을 항문과 이어 주어야 하는 통로기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처리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수술 팀의 변화는 없었다.

팽팽한 긴장과 고도의 집중력 속에 오직 눈앞의 과정에만 충실했다. 위험 구조물을 하나하나 처리할 때마다 한 방울의 땀이 맺혔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전담 간호사를 도우며 수술을 지켜보던 고경아의 눈이 반짝였다. 실로 오래간만에 보는 스승과 제자의 수술이 전하는 감흥이 대단했다.

‘선생님도 이런 수술을 하고 싶으셨겠지? 지훈 씨, 환자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요. 지훈 씨 같은 써전을 누가 탓할 수 있겠어요.’

몰입은 시간마저 좌우했다.

어느 틈에 목표하는 부위까지 도달했다.

직장을 잘라 에스 결장과 함께 배 밖으로 끄집어냈다. 큰 수술이 분명하건만 정작 제거한 대장은 손바닥 안에 잡힐 정도였다. 얼마나 작은 아이를 수술하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만큼 어린아이였다.

이제 후복막에 반쯤 묻힌 하행 결장을 자유롭게 만들어 항문에 연결하면 끝이었다. 소아 수술이 필연적으로 주는 불편이 극에 달할 때가 됐다.

허리를 굽히고 해야 하는 탓에 훨씬 더 피로할 수밖에 없었다. 거구의 이준영 교수는 더욱 힘들 상황이었지만 수술 시간을 줄이면 줄일수록 유리했다. 뿐만 아니라 제자와 함께하는 수술이 주는 기쁨은 기대 이상이었다.

멈추지 않았다.

김지훈과 송진우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행 결장 박리하자.”

혈관이 없는 층을 따라 쭉쭉 박리했다.

일견 과도하게 보일 정도였지만 수술 팀의 능력은 그 이상이었다. 순식간에 평행 결장 경계 부위까지 모두 박리해 하행 결장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물론 주의를 해야 하는 과정을 절대 잊지 않았다. 핏덩어리라 할 비장과 연결된 조직을 박리할 때는 신중한 손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항문과 연결하자. 송진우 선생, 하행 결장 손상받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리해.”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이 자리를 벗어나 아이의 항문이 정면에서 보이는 위치에 섰다. 수술 부위가 좁아진 정도를 넘어 서 있을 자리마저 없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손이 느려졌다.

시야나 자세 때문만이 아니었다.

단순히 이어 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배변 기능을 유지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자칫 괄약근에 손상을 가하면 평생 변이 샐 수도 있었다.

수술을 실패하는 것이다.

한 아이의 인생을 구렁텅이에 빠트리는 일과 다르지 않기에 수술 팀 전원이 마지막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더구나 새로운 방식인 원 스테이지 수술로 하는 이상 실패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항문 주위 일부를 박리했다.

수시로 괄약근을 확인하며 하행 결장과 연결할 부분을 확보했다. 마침내 수술의 성패와 아이의 미래를 결정할 과정만이 남았다.

하행 결장을 항문까지 바짝 끌어왔다.

과도한 압력이 가해지지 않는지 확인한 후 연결을 시도했다.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의 긴장이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치솟았다.

“수처! 타이! 컷!”

집도의와 퍼스트만이 수술 부위를 볼 수 있는 가운데 나직한 목소리만 들렸다. 송진우는 복강을 통해 출혈이 발생하는지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컷!”

하나하나 매듭이 지어졌다.

하행 결장과 항문이 확실하게 이어졌다.

드디어 마지막 수처와 타이가 끝났다.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이 번갈아 조심스럽게 항문을 통해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마취로 인해 괄약근의 힘이 풀렸지만 새롭게 만든 항문의 직경이 적당해야만 정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어때?”

“좋습니다.”

“송진우 선생도 확인해. 지금 느껴지는 압력을 잊지 마. 이보다 약하면 샌다.”

깨끗해야 할 장갑이 오염됐다.

새 장갑으로 갈아 낀 후 마무리를 시작했다.

손을 댄 부위 모두 깔끔했다.

출혈도 보이지 않았다.

복부까지 닫았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그야말로 전문 병원이 꾸릴 수 있는 수술 팀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팀의 완벽한 수술이었다. 그 이전에 바라던 바까지 얻었다.

‘이렇게 몰입해 수술한 적이 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로 어느 틈엔가 자만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변함없는 스승님의 열정과 손, 그에 맞춰 한 내 어시스트 모두 잊지 말자.’

깨달은 점이 많았다.

단순히 실력을 말하기 전에 집도의로서 어떻게 수술 팀을 이끌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최고의 수술 팀은 결국 써전 개개인의 마음과 호흡에 달렸는지도 몰랐다.

‘이송된 환자를 이런 분위기에서 수술했으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결과가 더 나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아쉬움이 모두 가시지 않았다.

그때 이준영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회 되면 다음에는 내가 퍼스트를 섰으면 좋겠다. 한 번 만들어 봐.”

순간 김지훈의 입이 쭉 찢어졌다.

스승은 분명 더없이 만족하고 있었다.

제자의 실력을 이보다 더 인정할 수 없었다.

“으앙! 으아아앙!”

아이의 울음소리가 엄청나게 반가웠다.

고경아도 활짝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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