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보호자 모두 이송을 원했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문 병원의 규모가 작은 탓이 아니었다.
젊은 환자가 수술한 지 단 하루 만에 악화됐다. 한 목숨을 살리려 밤을 새워 수술했지만 결과적으로 믿기 힘든 존재가 되고도 남았다.
설령 신뢰가 남아 있다고 해도 어떤 희망조차 줄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다. 보호자로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불행히도 이송마저 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송하는 도중 사망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늦기 전에 더 큰 병원으로 가야겠습니다.”
여러 과가 본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큰 병원으로 간다고 해서 뾰족한 치료 방법이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전문 병원 역시 중환자 치료에 충분한 경험이 있는 데다 부족한 환자 정보에 오히려 상태만 더 악화될 수 있었다.
수차례 만류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모두 사라진 이상 무의미하게 시간만 소모할 뿐이었다. 극적으로 회복된다면 모르지만 악화된다면 서로가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상황만 나빠질 뿐이다.’
김지훈도 결국 동의해야 했다.
불과 이틀도 지나지 않아 이송이 결정됐다.
앰뷸런스는 응급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기본 장비만 갖췄을 뿐이었다. 하지만 언제 어떤 일이 터질지 몰라 반드시 의료진을 대동시켜야 했다.
“고경철 선생, 가는 동안 환자 잘 봐. 자발 호흡을 죽이면 안 되니까 앰부 배깅(Ambu Bagging)과 호흡을 잘 맞춰야 돼.”
“어레스트라도 발생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대로 가야 합니까? 아니면 돌아와야 하나요?”
“그런 생각 하지 말자.”
의식이 흐릿하고, 호흡마저 불안정한 환자를 이송해야 한다니 한숨이 절로 터졌다. 의료진 모두 애써 불길한 생각을 떨쳐 내야 했다.
갈 병원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우습게도 무작정 응급실로 밀고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라도 미리 연락할 경우 거부할 수 있지만 응급실로 곧장 내원하면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평소 많은 불만을 샀던 희한한 제도가 도움이 되다니 허탈하기만 했다.
드르르륵!
환자가 중환자실을 떠났다.
김지훈이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자괴감이 드는 날이었다.
아니다.
자괴감은 백번 천 번 들어도 좋으니 환자가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이 먼저였다. 그럴 리 없지만 수술 중, 혹은 수술 후 놓친 것이 있는지도 철저히 확인해야 했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토요일에 이어 오전 회진을 또 돌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을 느끼기에는 너무 답답했다. 하지만 또 한 명의 환자가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무사히 끝내야 했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다른 환자에게까지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수술 팀, 특히 집도의의 냉정함이 요구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띠! 띠! 띠! 띠!
수술이 시작됐다.
매주 하는 수술이지만 마치 처음 하는 것처럼 항상 긴장되곤 했다. 오늘만은 그 긴장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손을 떠난 환자는 잊어야 했다.
단 한 번의 수처.
단 한 번의 타이.
단 한 번의 기구 조작까지 모두.
극도의 긴장과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했다.
오직 눈앞의 환자만 생각했다.
가능을 잃은 간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간이 이식됐다. 가족이든 누구든 간에 공여자의 헌신과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수술 부위가 깔끔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덟 시간 만에 끝났다.
많이 빨라졌지만 고된 수술임이 분명했다. 더욱이 단 한시도 긴장을 풀지 않아 환자를 중환자실에 옮기는 순간 급격하게 피로가 몰려왔다.
이송한 환자가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써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부디 무사히 회복되길!’
얼굴을 펴지 못하던 김지훈이 들려온 소리에 미소를 머금었다. 한 명의 환자는 보냈지만 다른 환자 한 명은 확실하게 살렸다.
“끄으으응!”
잘 깨어났다.
누군가의 눈길이 느껴졌다.
“선생님,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합니까?”
“내일 아침에 일반 병실로 가셔도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혈전으로 인한 동맥 폐쇄로 대장을 잘라 낸 환자 역시 병실로 올라갈 수 있는 상태까지 회복됐다. 십중팔구 살리지 못할 환자를 살렸다.
힘을 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일과를 막 마칠 무렵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송된 환자를 받은 종합 병원 담당 의사였다.
어느 병원이나 중환자실은 여유가 없을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연락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를 보냈건만 일절 항의하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환자에 대한 관심과 성의가 대단하다는 의미기도 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직접 수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소견서를 봤습니다만, 환자 상태를 보다 자세히 알아야 할 것 같아 연락드렸습니다.)
“환자 상태는 어떻습니까?”
(좋지 않습니다. 하루 이틀 내에 회복되지 않으면 힘들 것 같습니다.)
더 나빠진 모양이었다.
나직한 한숨을 내뱉은 김지훈이 상세하게 경과를 설명했다. 대부분 소견서만을 확인하고 치료에 들어가는데 직접 집도의에게 연락했다는 사실에 고마울 뿐이었다.
‘선생님처럼 성의가 있는 분을 만났으니 반드시 회복될 겁니다.’
말미에 뜻밖의 말까지 들었다.
(다른 얘기입니다만, 간 이식 학회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환자 때문에 심난하시겠지만 잘 준비해 주십시오.)
“학회 회원이십니까?”
(예. 혈액 파트와 함께 간 이식 내과 파트를 맡고 있습니다. 외과 선생님들과 함께 환자를 보는 데다 평소 말씀 많이 들어 겸사겸사 연락드렸습니다.)
종합 병원에서 근무하는 이상 관련 분야가 같으면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처지라지만, 이런 식으로 목소리를 듣다니 반가우면서도 갑갑했다.
“학회 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 뵀으면 좋겠습니다. 환자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 다행이다.’
열의가 있는 의사가 쉽게 포기할 리 없었다.
다소 마음이 놓였다.
김지훈이 어떤 심정일지 잘 아는 손일석과 진충기 교수도 일종의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
“할 일이 많잖아.”
“그동안 재수가 좋아 별일 없었을 뿐이지, 일단 이런 일이 벌어지면 이준영 선생님도 힘들어하실 수밖에 없어. 내일 소아 수술 준비 모임도 있잖아? 푹 쉬고 새로운 마음으로 준비해.”
매일매일 일이 끊이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운 탓에 생각만으로도 힘들었다.
손일석 말대로 하루라도 쉬는 것이 답이었지만, 한 번 받기 시작한 스트레스가 쉽게 사라질 리 없었다. 고경아의 살가운 말, 희연이의 재롱이 아니었으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 노릇, 아빠 노릇 더 잘해야겠다.’
혼자 모든 짐을 짊어질 이유가 없었다. 언제나 곁을 지켜 주고 있는 가족과 동료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낀 하루였다.
***
다음 날, 소아 수술 준비 모임을 앞둔 김지훈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루가 지나도록 이송한 환자의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몇 번이나 수술 기록지와 차트를 봐도 실수한 것이 없다. 하지만 정말 놓친 것이 없었을까? 나도 모르게 기본을 무시한 것은 아닐까?’
사람이 아닌 기계였다면 샅샅이 뜯어 문제점을 찾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수술은 엎질러진 물과 다르지 않아 온전히 주워 담을 수 없는 과정이었다.
어떤 수술이든 기본에 충실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점을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그래. 지금이 기회다. 어쩌면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피할 수 없는 일을 두고 너무 과민하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개인의 가치관이나 역치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두 해를 끝으로 의사 생활을 접을 생각이 아니기에 스스로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눈가를 굳힌 김지훈이 모임에 참석했다.
이준영 교수, 이혁원, 송진우, 강은미, 그리고 다소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는 한수영이 보였다. 간호 부장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던 고경아도 간호사 한 명과 함께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준영 교수를 보자마자 꾸벅 고개를 숙인 김지훈이 간만에 미소를 머금었다.
‘일석이 촉은 알아줘야 해.’
“한수영 선생, 결정했어?”
“예, 결정했습니다.”
“고맙다. 송진우 선생과 함께 최고의 소아 외과 의사가 될 거야. 간호 과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우리 이 선생 잘 아시죠? 소아 외과를 전담하기로 했으니까 잘 부탁드려요.”
“우리가 잘 부탁드립니다.”
제법 경력이 쌓인 간호사였다.
실력은 물론 알게 모르게 오고 가는 평판이 좋아 수술 팀과 호흡을 맞추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차분해 보이는 인상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일이 잘 풀리려는 모양이었다.
“시작합시다.”
송진우가 환자에 대해 설명했다.
선천성 거대 결장을 앓는 환아였다.
다행히 신경절이 없어 기능을 잃은 대장이 짧아 무난하게 수술을 할 수 있는 경우였다. 무엇보다 경험이 꽤 있는 질환이었다.
덕분에 두 번에 걸쳐 병변이 없는 부위에서 대장루를 만든 후 몇 개월 지나 항문과 이어 주는 전통적 수술 대신 새로운 방식이 가능했다.
대단히 운이 좋은 아이였다.
이준영 교수도 같은 생각이었다.
“송진우 선생, 원 스테이지로 가능하겠어?”
“예. 증상이 심하지 않고, 대장염 등의 징후가 없어 에스 결장과 직장 일부를 제거한 후 항문과 바로 연결해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전통적 방식이 더 안전하다는 이견이 있었다. 하지만 한 번에 수술을 끝냈을 때 얻는 장점이 훨씬 크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전신 마취를 한 번이라도 피할 수 있다면 아이에게 큰 이득이 될 겁니다. 게다가 사전 준비만 잘한다면 안전 면에서도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강은미 선생 판단은 어때?”
“저도 동의합니다.”
심도 있는 토론 끝에 수술 방법이 결정됐다.
한 번에 병변 부위를 자른 후 항문과 바로 이어 줄 것이다. 인공 항문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아이와 부모의 불편과 괴로움을 덜어 줄 수밖에 없었다.
수술 팀을 결정할 때였다.
간호과는 당연히 고경아와 새로운 간호사가 함께 참가하기로 했다. 고경아의 업무가 가중되겠지만 전담 간호사에게도 고도의 숙련도가 요구되는 이상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었다.
“그럼 집도는…….”
이준영 교수의 눈길이 송진우에게 향했다.
신뢰받는 써전이었고, 이번 수술은 충분히 해낼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별다른 말 없이 내내 집중하던 김지훈이 조용히 손을 들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선생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기부 후 시행하는 첫 수술입니다. 송진우 선생에겐 미안하지만 이번 수술은 이준영 선생님께서 직접 집도하셨으면 합니다.”
단순히 소아 수술의 연장을 넘어 의미가 깊은 수술이었다. 한동안 소아 외과를 책임져야 할 김지훈의 제안인 이상 이의가 있을 리 없었다.
“혹시 절 생각하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 수술을 보고 싶습니다.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욕심을 내고도 남을 송진우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이준영 교수도 긍정의 눈빛을 보였다.
“허락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한 가지 더 양해를 구할 일이 있습니다. 송진우 선생이나 한수영 선생이 들어가야 하지만 제가 퍼스트를 서겠습니다.”
“예? 선생님이요?”
다들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설령 선천성 거대 결장 수술이 무척 어렵다고 해도 전문 병원 최고의 써전 두 명이 동시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었다. 더구나 김지훈이 퍼스트를 자청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혁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개인적인 문제야. 선생님과 수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다들 아쉬워도 동의해 줬으면 해.”
이유가 무엇일까?
이준영 교수가 묵묵히 김지훈을 보았다.